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세부내용이 10일 총선 결과에 따라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와 여당은 '원전 최강국' 국정 기조에 따라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야당에서는 RE100 달성을 위해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하는 등 에너지 정책에 대한 견해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RE100은 기업의 생산에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을 말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총선 결과 야당이 압승할 경우 신규원전이 포함된 초안이 발표 되더라도 이후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공청회 등 최종안 작성 과정에서 세부내용이 대폭 수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정부 및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현재 11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는 2038년까지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최소 2기에서 최대 4기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최종적인 전원 믹스, 특히 무탄소 전원 비중을 두고 고민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력수급계획 수립 절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신규 원전을 확대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그렇다고 비중을 낮추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려진 대로 11차 전기본의 최대 쟁점은 신규 원전 건설 규모다. 원전 업계에서는 최대 10기까지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2~4기 정도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 건설이 포함되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이후 처음이다. 앞선 10차 전기본(2022∼2036년)에서는 2036년 전원 믹스를 △원전 34.6% △석탄 14.4% △액화천연가스(LNG) 9.3% △신재생 30.6% △수소·암모니아 7.1% △기타 4.0%로 정했다. 한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원전,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각각 31.1%, 33.2%, 26.5%, 7.9%였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출력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인 원전이 늘어나면 자연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LNG발전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고 있다. 전기본 상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은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었다. 지난 10차 전기본 발표 이후에도 야당과 환경단체는 지난 정부보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낮아져 2050 탄소중립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으며, 원전업계는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원전 확대가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도 이같은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선거 유세 현장에서 “RE100도 모르면서 'RE100 같은 건 몰라도 된다'라는 마인드로 어떻게 재생에너지 중심사회에서 대한민국 경제 산업이 견뎌내겠습니까"라며 “우리나라 경제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정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재생에너지를 확충하지 않으면 우리 수출 기업은 국내 생산을 못 하고 유럽,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내 좋은 일자리가 다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소영 의원도 “RE100은 원자력발전(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데, 윤 정부는 지난해 원전을 주축으로 하는 CFE라는 무탄소연합을 출범시켰다"며 “20개 국내 기업만 참여하고 있을 뿐 단 하나의 국외 기업도 CFE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진국 중심으로 탄소무역장벽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며 “누가 얼마나 더 빨리 탄소배출을 줄이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결정되고, 얼마나 빨리 RE100을 달성하느냐에 기업 운명과 국가 미래가 걸렸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에 앞서 이를 활용할 송전망 확충과 합리적 에너지믹스 계획, 원전 등 무탄소 전원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미래 대변인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이행에는 재생 에너지 뿐만 아니라 원전과 수소를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가 좋아하는 RE100 본부가 있는 영국은 올해 1월에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4배로 늘리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글로벌 공통의 기후대응 목표에 각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첨예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본 수립 주무부처인 산업부도 고심이 많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여러 가지 데이터들을 확인하면서 2050탄소중립,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과의 정합성을 맞추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며 “예전 차수에 비해서 감사원에서도 여러 차례 내용을 들여다 보는 등 이번에 주문이 많다. 수립에 참여하는 위원들에게 쫓기듯 하지 말고 꼼꼼히 챙겨보자고 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산업부는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에 4월 중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고했으며, 이르면 9일 초안 확정 위한 전력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총선 결과에 따라 최종안 발표가 상반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전기본은 2년 마다 수립하는 계획이다. 지난 10차 계획이 지난해 초에 발표된 만큼 올해 말까지만 수립하면 된다"면서도 “다만 정부의 국정과제도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수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급하게 하는 것보다 올바른 계획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기본은 초안 발표 이후 공청회외 국회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안을 발표한다. 조만간 초안이 발표된다고 해도 현재 총선 정국인 만큼 국회 보고 일정이 잡힐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다음 22대 국회가 5월 30일에 시작하는데 상임위 등 원구성이 한 달안에 마무리 될지도 미지수다.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 원 구성에 평균 41.4일이 소요된 바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