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제약업계가 전례없는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연합학습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 'K-멜로디(K-MELLODDY)'가 바로 협업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다. 이 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각 기관의 데이터 외부유출 없이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신약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발굴하는 AI 솔루션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국내 8개 제약사를 비롯해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 등 분야별 국내 최상위 기관 26곳이 참여한다. 한 기관은 이번 사업에 선정된 후 아예 담당 부서명을 K-멜로디 사업에 맞춰 AI신약개발팀으로 변경하기도 했으며 다른 일부 기관은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후 크게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업계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협업 프로젝트에서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는 8개 제약사들은 기대감에 못지 않게 불안감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주요 제약사들은 독자적 또는 AI 벤처기업과 협업해 개별적으로 AI 기반 신약개발 솔루션을 구축해 왔다. 대웅제약은 8억개의 화합물을 DB화한 '다비드'와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를 자체 구축해 신약개발에 활용하고 있으며, JW중외제약은 빅데이터 기반 약물탐색 시스템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합한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 '제이웨이브'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K-멜로디 사업의 성패는 다양한 데이터를 많이 학습할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인공지능 머신러닝(기계학습) 특성상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은 8개 제약사들이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각자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온 제약사들은 자신의 핵심자산이자 영업비밀인 약물·임상 데이터를 국내 최초 시도이자 경쟁사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선뜻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적은 양의 데이터만 제공하고 향후 완성될 AI 솔루션의 '결실'만 공유하려 한다는 이른바 '무임승차'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데이터 보호만 확보된다면 K-멜로디 사업에 우리회사 데이터를 적극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한 제약사 연구책임자의 말에서 보듯 무엇보다 K-멜로디 사업에 데이터 보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참여 제약사들의 바람이다. 제약업계는 K-멜로디 사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이자 국내 제약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모처럼 경쟁관계인 제약사들이 한 뜻으로 뭉친 만큼 대승적 협력에 나서 우수한 성능의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다수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