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에너지경제신문 강근주기자 1994년 10월 개막한 한국 경륜은 1기 112명을 시작으로 28기까지 선수 수가 은퇴 선수까지 총 1187명에 달한다. 과거 서울 잠실경륜장과 현재 광명스피돔에서 시행된 경주가 무려 6만 경주에 육박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는 경륜전문가, 경륜선수, 경륜 팬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한국 경륜 30년, 역대 최고의 명승부 5선'을 선정했다. 예상지 '최강경륜' 박창현 발행인은 “다섯 경주는 모두 역대 최고 명승부로 꼽을 만큼 경기 내용이 훌륭하다"며 “지금도 매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명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많은 분이 광명스피돔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륜경정총괄본부는 '경륜 30년 최고의 명승부 5선' 영상을 제작 중이며, 오는 6월경 장내 방송 및 경륜경정총괄본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1. '10년 앞서간 경주'라 평가받는 1998년 경륜 올스타전 1994년 말 개막한 경륜은 1995년 3월부터 본격적인 경주가 시작됐다. 이때 경륜 2기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직행한 김보현(은퇴), 원창용(은퇴), 정성기(2기, B3, 일산)는 단숨에 잠실경륜장을 점령했고, 경기 흐름을 바꿔놓았다. 당시 지역 최강은 창원팀이고, 경륜 일인자는 '국가대표, 중앙대학교, 기아자동차 실업팀' 출신 선수들 몫이었다. 이런 흐름은 2008년 조호성이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3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그 아성을 잠시이지만 깨트린 선수가 있으니, 바로 경륜 4기 엄인영(은퇴)이다. 엄인영은 상대 선수들보다 2년 늦게 입문한 탓에 초반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가며 1998년 마지막 경주인 경륜 올스타전에서 이들 선수와 정면승부를 선포했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타종 전부터 원창용 선행이 시작되고, 엄인영의 젖히기 반격으로 주도권 다툼이 펼쳐졌지만 두 선수가 경주 막판에 체력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뒤에서 참고 기다린 김보현이 추입,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주는 당시 경륜을 대표하는 간판급 선수가 총출전한 점, 개인전 못잖게 팀전 양상까지 더해진 점, 당대 최고 맞수이자 가장 인기가 많던 엄인영, 원창용의 첫 정면 승부, 선행 대 젖히기에 이은 막판 추입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전개 등 경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발산한 경주로 손꼽힌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경주를 당시에는 보기 힘든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경주'로 평가한다. #2. 조호성-홍석한 첫 맞대결(2004년 11월28일 결승 14경주) 2004년 혜성과 같이 벨로드롬에 등장한 조호성선수는 당시 '신인은 첫해 그랑프리 경주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11월 마지막 경주를 끝으로 일찌감치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마지막 경주에서 조호성은 당시 경륜 1위 홍석한(8기, A2, 인천)을 마주했다. 홍석한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프린터 종목에서 최고 선수라 평가받았고, 이와 유사한 경륜 종목에도 최적화된 선수였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2002년과 2003년 그랑프리 2연패, 성적 1위, 상금 1위를 독식했다. 이런 두 선수 대결은 연말 그랑프리 못잖게 화제가 됐고, 아마추어 학생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으며 구름관중이 잠실경륜장에 몰려들었다. 경륜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창과 방패 대결에서 우승은 조호성이 차지했다. 당시 신인 조호성이 홍석한을 상대로 심지어 선행으로 우승을 차지한다는 점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하지만 조호성은 홈스트레치부터 선두로 나서며 적절하게 완급조절을 했고, 나머지 선수들을 견제용으로 활용하며 시종일관 홍석한을 괴롭혔다. 그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신인이던 조호성은 첫해 홍석한이란 어마어마한 대어를 낚았고, 이 경기로 인해 두 선수 위상은 크게 바뀌었다. 이후 엄청난 인지도를 얻은 조호성은 경주마다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했고, 그랑프리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3. 조호성을 무너뜨린 김민철(2007년 스포츠조선배 대상 경륜) 홍석한을 무너뜨린 조호성은 그랑프리 3연패를 비롯해 연승 기록 등 경륜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경륜 황제로 군림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조호성에게도 뜻밖에 천적이 나타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특선에서 준 강자 정도로 평가받으며 어찌 보면 평범했던 선수에 불과한 8기 김민철이다. 이날 대상경주에서 조호성을 만난 김민철은 당시 같은 팀 선수인 정점식(6기, 은퇴)과 송경방(13기, A3, 동광주) 뒤를 따르며 거리를 크게 벌리는 일명 '차 간 두기' 전술을 시도했고, 뒤따라오던 조호성 속력을 올렸다 내렸다가 하는 완급조절로 타이밍을 빼앗아 막판 추입에 성공했다. 처음 1승은 이변 또는 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후 김민철과 조호성의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김민철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경륜 황제 조호성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유일한 선수이고, 특히 대상 경륜이나 조호성이 연승 중일 때마다 조호성 발목을 잡아 더 큰 인상을 남겼다. #4. 경륜 춘추전국시대 평정한 이명현(2012년 스포츠서울배 대상 경륜) 2008년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 조호성이 떠난 경륜은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했다. 힘 좋은 신예들이 등장하자 어느덧 선임이 되어버린 또 다른 경륜 강자 홍석한도 노쇠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권 황태자로 꼽히는 이국동(15기, A1, 신사)이 그랑프리를 접수하며 이전 지역 최강인 수도권 명맥을 이어가나 싶었지만 그 꾸준함이 이전 선배들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역 패권도 수도권과 경상권으로 양분화됐지만, 두 지역 모두 화력이 예전과 같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대혼란을 평정하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는데 바로 이명현이다. 그가 특별했던 점은 큰 경기이거나 편성이 불리해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항상 편안하게 경기를 펼치고 또 우승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기가 2012년 제18회 스포츠서울배 대상 경륜 결승 경주다. 경주 초반 대열 두 번째에 있던 이명현(16기, S3, 북광주)을 최순영(13기, A2, 양주), 이욱동(15기, A1, 신사), 김영섭(8기, S1, 서울 개인), 김현경(11기, S3, 대전 도안)이 마지막 반 바퀴 남은 시점까지 가둬놓았는데도, 마지막 4코너에서 그의 전매특허인 '이단 젖히기'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를 통해 이명현 위상은 하늘을 찔렀고,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며 진정한 경륜 1인자로 등극했다. 유독 큰 경기에 강했던 이명현은 대상 경륜 7회 연속 우승이란 대기록을 남겼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표현은 경륜에선 이명현 몫이었다. #5. 그랑프리 5회 우승, 정종진 등장(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경륜) 스포츠는 물론이고 어느 분야에서 최고 인물은 성장과정만 보더라도 드라마 같은 감동 요소가 가득하다. 경륜에서 이에 걸맞은 대표적 선수를 찾는다면 바로 정종진(20기, SS, 김포)이다. 정종진은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어렵게 사이클에 입문했고, 아마추어 시절 노력형 선수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선수였다. 경륜 입문 전 생활고로 옷가게 아르바이트도 했고, 경륜훈련원 재수 등 온갖 시련을 겪었다. 이런 정종진이 그랑프리 5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은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정종진이란 걸출한 선수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서막을 알리는 경주가 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경륜(네티즌배) 결승 경주다. 이 경주에서 경륜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정종진은 혈혈단신으로 박용범(18기, S1, 김해B), 박병하(13기, S1, 창원 상남), 이현구(16기, S2, 경남 개인), 이명현(16기, S3, 북광주)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들 선수는 역대 그랑프리 우승자로 당시 기세가 절정이다. 정종진이 이런 선수를 1:1로 상대해도 우승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무려 4명이나 만난 것 자체가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이고, 경륜 팬도 정종진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종진은 대열 후방에 자리 잡은 후 2코너에서부터 폭발적인 속력으로 네 명의 선수를 모두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이 경기를 통해 정종진 위상이 크게 바뀌었고, 본인은 물론 김포팀을 사실상 최고의 지역팀 반열에 올려놓게 됐다. kkjoo0912@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