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 '주식 리딩방 초대'처럼 개인 관심사를 정조준한 스미싱부터, 가족이나 지인의 목소리를 흉내낸 딥보이스 보이스피싱까지. 갈수록 지능화되는 피싱 범죄에 정부와 정보기술(IT) 업계가 인공지능(AI) 기술로 맞서고 있다. 특히 AI 기반 탐지·차단 기술이 본격 도입되면서, 사전에 범죄를 식별해 피해를 막는 선제 대응 체계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10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탐지된 스미싱 건수는 219만6469건으로, 2023년(50만3300건)보다 4.4배 증가했다. 단순한 사기 문자를 넘어 티켓 예매, 투자 정보 등 개인의 관심사를 자극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도 심각하다. 금융감독원이 접수한 피해 금액은 지난해 9월 249억원에서 12월 610억원으로 급증했다. 3개월 만에 약 2.5배 늘어난 수치다. 1인당 평균 피해금액은 4100만원에 달했다. 스미싱은 문자메시지(SMS)에 악성 링크를 넣거나 앱 설치를 유도해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수법이며,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이용해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금전 피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모두 포괄적 사이버 범죄인 '피싱'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된다. 피싱 수법은 AI 기술을 악용하며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족이나 지인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딥보이스(Deep Voice)', 영상과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fake)' 등을 활용한 접근 방식도 포착됐다. 피해자가 실제 지인으로 오인하고 금융정보를 넘기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추세에 대응해 주요 IT 기업들은 AI 기반 보안 기술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SK텔레콤은 AI 사이버보안 기술 '스캠뱅가드'를 기반으로, 이상거래 탐지 통합 서비스를 개발해 IBK기업은행 및 자사 AI 서비스 '에이닷'에 적용했다. 이 기술은 보이스피싱·스미싱 등 다양한 전자금융사기를 통합적으로 탐지·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KT는 통화 내용을 실시간 분석해 보이스피싱 여부를 판단하는 'AI 보이스피싱 탐지·알림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의심 통화가 감지되면 즉시 고객에게 주의 메시지를 보내 피해를 막는다. LG유플러스는 AI 기반 통화 에이전트 '익시오'를 통해 단말기 자체에서 보이스피싱을 감지하는 기술을 운영 중이다. 서버를 거치지 않아 반응 속도가 빠르고 보안성도 높다. 한컴위드는 숭실대학교와 협력해 딥보이스 탐지 및 음성 인증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의 효과는 실제 사례로도 입증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SK텔레콤의 이상탐지 솔루션을 정식 도입하기 전, 약 2주간의 사전 테스트에서 총 26건의 보이스피싱을 사전에 차단해 약 5억9000만원 상당의 금전 피해를 예방했다. 특히 실제 금융 거래가 일어나기 직전, AI가 이상 징후를 포착해 차단한 사례도 있었다. KT는 지난 1월 상용화한 탐지 서비스의 두 달간 운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분석 가능한 보이스피싱 통화 1528건 중 90.3%의 정확도로 위협을 감지했다. 이 중 392건은 경찰청 보이스피싱 블랙리스트에 등록됐거나 검찰·경찰 사칭 사례로 확인됐다. KT는 정부 발표 기준 건당 피해액을 적용해 약 160억원 규모의 피해 예방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ISA는 지난 9일부터 스미싱 등 악성 문자를 발송 단계에서부터 탐지·차단하는 'X-ray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기존에는 악성 문자가 유포된 후 수신자의 신고를 받아 조치하는 구조였다면, X-ray는 문자 발송 요청 시점에서 악성 여부를 판별해 전송 자체를 차단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시범 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점검하고, 향후 AI 기반으로 고도화할 가능성도 검토 중"이라며 “국민들이 스미싱에 대한 불안 없이 디지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민간이 AI 기술을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하면서, 고도화된 피싱 범죄에 맞서는 'AI 보안 방패'가 하나둘씩 구축되고 있다. 업계는 향후 AI 기반 대응 시스템이 확산되면 피싱 범죄의 확산 속도 역시 점차 둔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