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를 아직 가동할 수밖에 없다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이념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여야가 고준위 특별법 통과를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은 에너지경제신문·CF연합·한국풍력산업협회·한국원자력산업협회 주최,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무탄소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세미나'에 참석,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주제로 한 패널토론을 통해 이같이 고준위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했다. 고준위특별법이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내용을 포함한 법안이다. 이들은 아직 임기가 남은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특별법 통과를 기대하고 있고 적어도 22대 국회 초에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에서 고준위 특별법을 원전 확대를 위한 법이라고 규정, 이념적으로 접근해 적극 나서지 않고 있지만 이같이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임시저장소에는 포화 상태고 원전을 아직 가동해야 하기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고준위 특별법은 폐기물 처분 시설의 용량을 정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다. 폐기물 처분 시설의 용량을 많이 정해놓으면 그만큼 원전을 추가로 지겠다는 의도로 보여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는 의견이다. 이날 토론에서도 고준위 특별법에서 폐기물 처분 시설 용량을 정하는 문제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은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날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토론에는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조동건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용후핵연료저장처분기술개발단장,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이 참여했다. 토론에 앞서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K- 원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주헌 교수는 “지속가능 성장의 핵심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화석연료를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고 원자력은 경직적이다. 수소는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무탄소에너지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는 “무탄소에너지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런 특징으로 입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원자력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자원이다. 원전을 상당기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고준위법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고 토론이 열린 배경을 밝혔다. 여야가 22대 국회에서는 고준위법 통과를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재학 교수는 “고준위법 법제화는 원자력의 지속가능한 이용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숙제"라며 “중저준위방폐장 건립에도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법안을 제정한 뒤로는 빠르게 방폐장을 조성했고 중저준위 방폐물은 높은 안전수준을 갖춘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2대 국회가 절호의 기회"라며 “여태는 지역주민들이 반대해 왔지만 지금은 지자체들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의 한시성을 법안으로 보장받기 위해 법안 수립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입법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오랫동안 이 이슈를 바라본 입장에서 지금이 최적의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 야당 쪽에서 주저하는 부분들은 원전의 계속 운전과 확대를 막는 것과 연결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어 법안 통과가 안 되고 있다고 본다. 결코 이념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정 교수는 “에너지믹스에 대해 논의할 장을 따로 만들 필요도 있다"며 “계속 운전과 설계수명은 제쳐두고 당장 허가받은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해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처분 용량을 확보해줘야 한다"며 “이 관점에서 보면 여야 주장의 사이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이 안전하다는 설명을 충분히 알렸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동건 단장은 “21대 국회에서 고준위특별법이 왜 통과 못 됐을까 생각해보면 제정 필요성만 언급했지, 정작 부지 안에 들어가는 시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안 했다"며 “핀란드를 예로 들면 고준위 폐기물을 담는 땅속에 묻는 특수용기는 수명이 10만년이고, 100만년에 0.5미리미터(mm)밖에 부식되지 않는다. 즉 폐기물이 자연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용기 안에 버티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 단장은 이어 “설사 용기가 잘못돼도 매립과 중간 방벽까지 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안 나오는 굉장히 안전한 시설"이라며 “21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22대로 넘어가더라도 이러한 안전 관련 부분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이해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조 단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고 암반이 특정돼야 연구개발(R&D)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노후 원전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은 “탈원전과 원전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 같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의 관건은 무탄소 에너지원을 활용한 비용효율적 탄소중립 달성이다. 그동안 재생에너지의 장점에 대한 홍보가 주로 이뤄졌지만 실제 비용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원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탄소에너지로 가는 길에 재생에너지를 많이 늘리다 보면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효율성이 높은 원전 계속 운전을 활용해야 한다"며 “아무런 운영데이터가 없는 신규 원전보다 데이터가 축적된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무작정 노후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은 에너지전환의 비용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련 논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며 “고준위폐기물 특별법이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도 계속 운전에 관한 내용인데 특별법 상에 계속 운전의 안전성에 대한 부분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준위 특별법 통과를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반면 폐기물 처분시설 용량 문제를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양의석 CF연합 사무국장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대응해야 한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고준위 특별법은 현재 원전 비중을 그대로 유지하는 걸 전제로 뒀다"며 “지금 무탄소 에너지를 늘려야 하는 국제적 요구를 봤을 때 현재 원전 비중을 유지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용성 고려대 식품경제학과 교수는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의 완벽한 폐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가동 중단된 고리 1호기를 완벽하게 폐기하려면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폐기물 처분시설 용량을 크게 하면 계속 더 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려를 주는 점도 있다. 일반 시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어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