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고위 공직자의 문호를 국민에게 개방했다. 장·차관부터 공공기관장까지 다양한 고위 공직 후보를 국민이 직접 추천할 수 있는 '국민추천제'가 시행됐다. 첫날에만 추천이 1만 건을 넘기며 높은 관심을 받았지만, 실질적 인사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인기투표식 선발이나 특정 집단의 조직적 추천, 책임 회피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추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능력', '도덕성',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라는 세 가지 기준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11일 공직자 후보를 국민에게 직접 추천받는 '국민추천제' 시행 첫날에 총 1만1324건의 추천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국민추천제는 장차관과 공공기관장 등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해 국민 누구나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이재명 정부가 전날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추천은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국민추천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의 공식 SNS 계정 쪽지나 대표 이메일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날까지 접수는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공식 시스템을 통해 약 9900건, 이메일을 통해 약 1400건이 이뤄졌다. 추천이 가장 많이 집중된 자리는 법무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순이었다. 대통령실은 접수된 인재 정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할 계획이며, 추천된 인사들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 절차와 별도의 공개 검증 과정을 거쳐 적임자라 판단되면 정식 임명할 방침이다. 국민추천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인터넷 장관 추천제'는 실질적인 임명 사례 없이 끝났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5년부터 상시 제도로 운영됐으나 공직사회 내부에 국한돼 참여도가 낮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임명 사례는 없었으며, 오히려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인사가 다수 발생했다. 이번 국민추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히며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보인다. 이 대통령은 개인 SNS를 통해 국민의 직접 참여를 독려하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당원 주권'을 강조해 당내 시스템의 민주적 개편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여권에서는 국민의 인사 참여 확대가 인재 발굴은 물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즘은 일반 국민들도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고, 인사에 대해 '이 사람이 잘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낼 수 있는 시대"라며 국민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추천 수나 '좋아요' 개수로 장관을 임명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제도가 단순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박 의원은 “최근 당내 선거에서도 당원 의견 반영이 강화되는 등, 이러한 흐름은 지금 시대에 자연스러운 트렌드"라고 평가했다. 한 재선 의원은 “모든 공공기관 공직자들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내년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이나 공영방송 사장 등의 인선에도 이 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인재를 넓게 구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국민추천제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론도 적지 않다. 먼저 인지도에 따른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별 업무 범위가 넓고 복잡한 만큼, 일반 국민이 제한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후보자를 추천할 경우 적합한 인재가 선별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민추천제 홈페이지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는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겸 배우 아이유 등이 언급됐으며, 방송통신위원장에는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는 방송인 김어준이 추천됐다. 이를 두고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잼 대통령님 조심스럽게 인재 추천해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제도가 희화화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조직이 집단적으로 추천 여론을 조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일부 당직자나 강성 친명계 인사를 중심으로 당원들의 추천 참여를 유도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같은 날 온라인상에서는 민주당 중진 B의원을 특정 부처 장관으로 추천하는 방법을 안내한 PDF 파일이 공유되기도 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일부 군 조직이나 시민단체, 노조 등에서 집단 추천 시도가 이뤄질 경우, 특정 집단의 입김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책임 정치 차원에서의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추천제로 임명된 인사가 향후 직무 수행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인사권자가 '국민이 추천한 인사'라는 점만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증 부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 역시 분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모든 후보를 동일한 기준으로 검증하겠다고 밝혔지만, 과거 민정수석실에 비해 자료 접근권과 조사 권한이 축소돼 있어 '검증 공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세 가지 핵심 조건으로 후보자의 능력, 도덕성,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꼽는다. 이 가운데 가장 우선되는 기준은 단연 후보자의 '능력'이다. 단순한 참여 확대를 넘어, 실제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인물을 선별해내지 못하면 제도 자체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좋은 사람 써야 한다. 빨강이면 어떻고 파랑이면 어떻고 왼쪽이면 어떻고 오른쪽이면 어떠냐"고 했다. 진영이나 이념을 떠나 국민을 위해 일 잘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도덕성도 관건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간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로 인해 정권 전체가 흔들리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며, “한두 명의 인사 실패가 전체 인사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도덕성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주운전,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문제들이 반복되면 제도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도 검증 대상이다. 행정 경험이나 학력 등이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와 국정 운영 원칙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부족할 경우 조직 내 혼선이나 정책 충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무직 공직자는 정책 집행의 일관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만큼, 정부 철학에 대한 최소한의 공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국정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하나 기자 uno@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