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5년간 동업 관계를 유지해오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격화한 고려아연과 ㈜영풍 간 갈등이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측은 서로를 향해 “중국 자본에 기업을 판다", “일본 전범 기업과 손을 잡는다"는 등 비난까지 가하는 상황이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이날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 기자회견에서 기술 유출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 경영권이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측에 넘어갈 경우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투자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엄청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마다 수백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어떤 것은 몇천억원짜리도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인데, 이게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뒤에도 회사를 중국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은 “중국이 세계 비철 생산의 절반을 하고 있고, 관련된 분야 생산의 절반을 전부 중국이 하는데, 당연히 (기술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장형진 영풍 고문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려아연은 주인이 어떻게 바뀌든지 영원히 잘 가길 바라고 또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개매수에 성공해도 “(고려아연의)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며 MBK가 최 회장이 추진하던 사업을 그대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풍은 오히려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옛 전범 기업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풍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고려아연은 토종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를 '중국계 자본'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워놓고 본인들은 일본의 대표적 전범 기업, '라인야후 경영권 강탈' 논란을 일으킨 일본 기업과 손잡으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 측이 종합상사 스미토모 등 일본 기업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 데 대한 공격이다. 영풍은 “스미토모는 2012년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일본 전범 기업 287개사 명단에 포함된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양측 신경전이 고조되고, 지분 확보 경쟁 과열이 계속되면 누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지분 매수 경쟁 이슈로 급등했던 영풍과 고려아연은 둘 모두 주가 약세가 나타나고 있다. 영풍 주가는 고려아연 기자회견이 열린 이날 전날보다 11.68% 내린 35만 5500원으로 마쳤다. 전날 29.39%보다는 낙폭이 줄었으나 이틀째 큰 폭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주요 관계사로 역시 공개매수가 진행 중인 영풍정밀도 0.70% 내린 2만 1250원을 기록해 이번 분쟁 이후 처음으로 약세 전환했다. 영풍과 영풍정밀은 전날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돼 매수 시 위탁증거금을 100% 납부해야 하고, 신용융자로 매수할 수 없게 되는 등 매매에 제한이 걸렸다. 고려아연도 3.32% 내린 69만 9000원으로 마감해 전날(-1.63%)에 이어 이틀 연속 약세였다. 이에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제시한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66만원에 가까워졌다. 안효건 기자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