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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신임 사장에 이성훈 靑국토교통비서관…국토부 관료 출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임 사장에 이성훈 대통령비서실 국토교통비서관이 임명됐다. 지난해 이한준 전 사장 퇴임 이후 이어진 장기 수장 공백이 해소되면서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LH 조직 개편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3일 관가와 LH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 비서관을 LH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 신임 사장은 이날 공식 취임해 업무에 들어간다. 임기는 2029년 7월까지다. 이 사장은 1973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충북고와 고려대 토목환경공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기술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국토교통부 부동산개발정책과장, 물류정책과장, 지역정책과장, 기술정책과장, 정책기획관 등을 지냈다. 2023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정책국장을 맡았고, 이후 대통령비서실 국토교통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주택 공급과 부동산, 교통 현안을 조율해 왔다. 2021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당시 경기도 건설국장으로 파견 근무한 이력도 있다. 이번 인선으로 LH의 장기 직무대행 체제도 마무리됐다. LH는 지난해 8월 이한준 전 사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후임 인선이 지연되며 거의 1년 가까이 리더십 공백을 겪어 왔다. 그동안 내부 출신 후보들이 거론됐지만 최종 임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신임 사장 앞에 놓인 첫 과제는 공공주택 공급 확대다.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LH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의 공급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LH가 직접 시행해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와 3기 신도시, 공공택지 개발, 매입임대주택 공급 등 주요 사업에서 LH의 실행력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올해 발표된 수도권 매입임대주택 9만 가구 공급 계획에서도 LH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비아파트를 매입해 단기간 내 주거 공급을 늘리는 사업인 만큼, 재원 조달과 사업 속도 관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조직 개혁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정부는 LH의 개발 기능과 공공임대주택 운영, 자산·부채 관리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공공주택 공급 기능은 강화하되, 공공임대 사업 등으로 커진 재무 부담을 관리하기 위한 취지다. LH의 부채와 조직 비대화 문제는 오랜 숙제로 꼽혀 왔다. 신임 사장은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와 재무 건전성, 조직 쇄신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5850가구 중 일반분양 300가구?”…은마 재건축, 분담금이 더 관심인 이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으며 23년 만에 재건축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관심은 사업시행인가 자체보다 다음 단계인 관리처분계획과 추가 분담금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총 가구 수는 크게 늘어나지만 실제 일반분양 물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반분양 수익이 제한될수록 조합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어 향후 사업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3일 서울시와 강남구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는 기존 4424가구에서 지하 6층~지상 49층, 29개 동, 총 585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재건축된다. 기존보다 1426가구가 늘어나는 구조다. 그러나 증가 물량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909가구와 공공분양주택 195가구 등 모두 1104가구가 공공주택으로 공급된다. 이를 제외하면 단순 계산상 일반분양이 가능한 물량은 약 322가구 수준이다. 여기에 상가 소유주 권리 배분, 현금청산 대상, 보류지 등 관리처분계획 단계에서 반영되는 물량까지 고려하면 실제 일반분양은 이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정비업계의 분석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은마는 총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일반분양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공공주택과 기존 권리관계를 반영하면 일반분양 물량은 상당히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비 대부분을 조합원이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일반분양 수익이 줄면 추가 분담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마 재건축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제시했던 추정분담금 자료에 따르면 전용 76㎡ 소유자가 신축 전용 76㎡를 받을 경우 약 4억2000만원, 전용 84㎡는 신축 전용 84㎡를 받을 때 약 3억2000만원의 추가 분담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이는 사업 초기 추정치다. 관리처분계획 수립 과정에서는 공사비와 일반분양가, 금융비용, 권리가액 등이 다시 산정되는 만큼 최종 분담금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급등한 공사비는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공사비가 추가 인상되거나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날 경우 관리처분 단계에서 조합원 분담금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상가 문제 역시 사업성을 좌우할 변수다. 은마아파트는 대규모 상가를 포함하고 있어 상가 소유주에 대한 권리 배분 방식에 따라 일반분양 물량과 사업수지가 달라질 수 있다. 대규모 세입자 이주도 남은 과제다. 은마아파트는 대치동 학군 수요 영향으로 전세와 월세 비중이 높은 단지로 알려져 있다. 향후 수천 가구 규모의 이주가 시작되면 대치동은 물론 강남권 전월세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로 행정 절차의 큰 고비는 넘겼지만 진짜 승부는 관리처분 단계부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리처분계획에서 권리가액과 분담금이 확정되고, 이후 이주와 철거, 착공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공사비 협상과 상가 권리 조정, 조합원 부담 등이 사업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은마아파트를 핵심 주택공급 사업으로 선정하고 후속 절차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은 “강남권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 사업시행계획 인가는 신속한 재건축 추진의 대표 사례가 될 것"이라며 “주택 공급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남은 절차도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단독] “학생 통학로, 환경평가 대상 아냐”…내달 입주 앞둔 반포3주구 도로 논란 ‘재점화’

삼성물산이 재건축하는 '래미안 트리니원(반포3주구)'이 다음 달 완공을 앞둔 가운데, 단지 인근 세화고 남단 도로 개설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교통영향평가가 연기된 이후 기존 양방향 도로안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는 주민 측 주장이 나오면서 학생 통학환경과 교육환경평가, 50년 넘게 이어진 플라타너스길 보존 여부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3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논란은 지난 5월 8일 예정됐던 반포3주구 재건축 관련 교통영향평가 변경심의가 연기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민들은 조합 요청으로 교통영향평가 심의가 연기된 이후 기존 일방통행안 대신 양방향 도로안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합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고, 관련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구는 교통영향평가 심의가 연기된 사실은 인정했다. 구는 “반포3주구 조합이 변경심의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심의위원회 개최 전 입주예정자 민원이 발생해 조합이 심의 연기를 요청하면서 심의가 개최되지 않았다"며 “향후 조합이 다시 심의 상정을 요청하면 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서초구는 “양방향 도로 개설을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합의 공식 추진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로 확인하지 않았다. 본지는 반포3주구 조합에 양방향 도로안 검토 여부와 교통영향평가 연기 사유, 주민들이 제기한 서명운동의 공식성 등에 대해 입장을 요청했지만 조합 측은 “아무런 답변을 드릴 수 없다"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의 또 다른 쟁점은 교육환경평가 적용 범위다. 주민들은 세화고·세화여고·세화여중 학생들이 실제 이용하는 통학로임에도 해당 구간이 반포3주구 재건축 정비구역 밖이라는 이유로 교육환경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학생 안전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구는 세화고 남단 도로 개설 구간은 반포3주구 재건축 정비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구는 “반포3주구는 개발기본계획에 따라 확정된 사업구역이며 세화고 뒷길 도로 개설 구간은 정비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해당 구간은 교육환경평가 대상 규모가 아니며 도로 개설 시 인접 학교와 협의를 거쳐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강남서초교육지원청도 같은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 자체는 교육환경평가를 실시했지만 평가 대상은 정비구역까지"라며 “세화고 남단 도로 개설 구간은 정비구역 밖으로 교육환경평가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환경평가 대상은 법령으로 정해져 있어 교육청이 임의로 평가 범위를 확대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향후 도로 계획과 관련해 구청으로부터 공식 협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관련 요청은 없었다"며 “다만 올해 1월 통학로 안전 관련 국민신문고 민원이 접수됐을 당시에는 서초구 도로과에 학생 안전 조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 반포3주구 측 참석자가 세화고의 도로 개설 관련 협의 문서가 존재하며 해당 문서는 비공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화고가 과거 작성한 공문에는 학교 우회도로 설치가 학생 통학환경 개선과 학교 주변 교통 혼잡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학교는 협의 내용 공개가 이해관계와 원활한 사업 추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비공개를 요청했다. 본지는 현재 세화고 측에 당시 협의 경위와 현재 학교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질의했으며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현재 반포종합운동장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를 위해 조성된 임시도로를 활용하는 대안노선을 검토하면 학생 통학환경과 플라타너스길을 보존하면서도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서초구는 “심산기념관 방향 대안노선을 관련 기준에 따라 검토했지만 추진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주민들이 제기한 피천득길 산책로 확장사업과 세화고 남단 도로 개설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피천득길 산책로 확장사업은 산책로 폭 협소에 따른 주민 요청으로 시행한 별도 사업이며 세화고 뒷길 도로 개설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초구는 도로 개설을 검토하는 배경으로 신반포로 일대 교통 문제를 들었다. 구는 “반포1·2·4주구와 반포3주구, 래미안원베일리, 래미안원펜타스 등 대규모 재건축으로 신반포로 일대 교통량 증가가 예상된다"며 “세화고 건축물로 인해 기존 도로 확장이 어려워 반포종합운동장과 세화고 사이 우회도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적으로는 신반포로 교통정체를 분산하는 동시에 인접 주민의 차량 통행과 보행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며 “도로가 개설될 경우 학생 안전과 보행환경을 고려한 교통안전시설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사례와 관련해 “학교는 사회 인프라 가운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설"이라며 “교육환경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할 때는 교육청과 학교는 물론 학부모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많이 걷는 것은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도로가 조성된다면 차도와 인도를 명확히 구분하고 신호체계, 가로등 등 기본적인 안전시설을 충분히 갖춰 학생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송윤주의 부동산생태계] 세운지구, 오피스 변혁 가능할까…또 20년 표류 안 하려면

2006년 세운지구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지 20년 만에 서울시가 세운상가 6구역 일대 도시계획 밑그림을 완성했다. 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6-1-1구역과 6-4-1구역의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안을 지난달 30일 수정 가결했다. 이번 결정으로 을지로에 대규모 오피스와 주상복합, 녹지공간이 들어설 기반이 마련됐다.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는 2028년 이후 도심권역(CBD)에 대우건설이 개발 중인 원엑스(ONE X)와 세운지구 개발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라 진행되면서 공급 과잉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시계획의 큰 틀이 마련된 지금, 세운지구가 도심 복합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20년간 발목을 잡아온 것은 무엇이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시는 제6차 도시재정비위원회를 열고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6-1-1구역과 6-4-1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안)을 각각 수정가결했다. 이번 계획 지정으로 을지로 업무기능이 강화되고 도심 주거 공급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을지로3가역 인근 세운6-1-1구역에는 프라임급 대규모 오피스 시설과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저층부에는 벤처기업집적시설·창조교류플랫폼·근린생활시설 등을 한곳에 모아 도심형 복합혁신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대지면적의 47% 이상을 개방형 녹지로 계획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인접한 6-1-4구역의 광장형 도심숲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녹지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통행 개선을 위해 을지로3가역 7번 출구를 대상지 내부로 옮긴다. 을지로 지하상가와 건축물 지하 공간을 통합해 상업거점을 개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세운6-4-1구역에는 주상복합 거점이 조성된다. 1만9418.2㎡ 규모 촉진구역을 신설하고 주거·업무(오피스텔)·판매기능이 도입된 복합개발계획을 수립한다. 건축계획안에 따르면 대상지는 지상 49층 규모의 공동주택 999세대를 공급하고 복합시설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번 계획에는 공공임대산업시설을 설치해 기존에 세운상가에 있던 세입자의 재정착을 지원한다. 인쇄업 등 도심산업 종사자와의 상생을 위한 공공기여 방안도 반영됐다. 세운지구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CBD 일대 오피스 시장에도 다시 관심이 쏠린다. 과거에는 도심 노후화와 여의도 개발 등의 영향으로 금융회사들이 CBD를 떠났다. 최근에는 도심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들이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는 향후 CBD에 공급과잉으로 임대료나 자산가치가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큼 을지로에 대규모 오피스 공급 소식은 기정사실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운지구 개발사업이 20년 간 표류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시정비 전문가들은 세운지구가 20년 동안 표류한 이유로 '재정비촉진지구 제도의 특성'과 '제도적 일관성의 부재'를 꼽는다. 재정비촉진지구는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일반 재개발과 달리 여러 구역을 하나로 묶어 도시 전체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도록 설계된 제도다. 당초에는 개별 사업을 따로 추진하는 것 보다 도시계획을 일괄적으로 수립해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구역의 높이나 용적률, 개발 방식이 바뀌면 인접 구역과의 연계성까지 다시 검토해야한다. 계획 변경이 반복되다보니 한 구역의 지연이 다른 구역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전체적인 사업 속도가 늦어지는 구조다. 여기에 서울시장 교체에 따른 정책 기조 변화도 주민들의 불신을 키웠다. 오세훈 시장 시절 전면 철거 중심이던 계획은 박원순 시장 시절 도시재생과 보존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후 다시 오 시장이 복귀하면서 고밀 녹지생태도심으로 선회했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면 사인을 잘 안 해준다고 들었다"며 “20년 동안 정비 방침이 일관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나 업자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주민들 사이에 '어차피 또 엎어질 것'이라는 불신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6-4-1 구역은 현재 아직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채 준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는 이번 변경안을 통해 세운 6-4-1구역 등에 공공임대산업시설을 조성해 기존 인쇄업체 등 도심산업 종사자의 재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다. 시세의 70~80% 수준으로 임대료를 책정해 상생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회의적이다. 세운지구의 핵심 산업인 인쇄업은 대형 윤전기와 종이 원료, 완성품을 지속적으로 운반해야 하는 특성상 1층 공간이 필수적이다. 지하나 상층부로 이전할 경우 장비 반입 자체가 어렵고 물류비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사업을 추진하는 토지 소유주나 디벨로퍼(시행사) 입장에서도 가장 사업성이 높은 1층 상가를 공공임대산업시설로 제공하는 데 부담이 적지 않다. 공공임대산업시설을 마련하더라도 실제 재정착 과정에서는 상당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 방식을 둘러싼 충돌도 남아있다. 6-4-1구역의 경우 재개발준비위원회는 신성상가아파트를 포함한 조합방식 통합개발을 원하지만, 시행사 측은 해당 아파트를 제외하고 매입방식의 분리개발 추진을 선호했다. 전문가들은 소형 지분자가 많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이 포함될 경우 조합의 의사결정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3구역에서는 1+1 분양권 배분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으로 관리처분계획을 둘러싼 소송이 이어졌고 사업이 상당 기간 지연된 사례가 있다. 세운지구가 또 다시 20년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 조합 정관에 권리관계와 이익·부담에 대한 균형 배분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 프리미엄 상승에 따른 지분 갈등이나 다수결에 의한 정관 변경 리스크를 명시해둬야 사업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도심산업 종사자들의 재정착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협상안을 통해 현실적인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귀용 도시정비 전문가는 “도시계획이 확정됐다고 사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주민 간 이해관계 충돌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또다시 계획 변경과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토목학회장 “반도체 공장 하루아침에 안 생겨…인프라, 국가전략자산”

“반도체 팹을 짓겠다고 해도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국가 혁신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도로와 철도 같은 개별 시설 개념에서 벗어나 국가 핵심 전략자산으로 인프라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각 부처가 역할은 하고 있지만 국가 전체 차원의 마스터플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는 없다"며 “국가 전체 차원에서 인프라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고 장기 전략을 수립할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토목학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회 미래국토인프라혁신포럼과 함께 지난 4월 여야 의원 36명이 공동 발의한 '국가인프라기본법' 제정을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조국혁신당 등 여야가 모두 참여한 초당적 법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법안은 교통·물류뿐 아니라 전력과 에너지, 데이터센터, 수자원, 방재시설 등 국가 기반시설을 통합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인프라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는 5년 단위 국가인프라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전략사업을 지정해 예비타당성조사 특례와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을 적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한 회장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같은 국가 전략사업은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미리 계획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며 “필요한 사업은 원스톱 인허가와 신속 추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에는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이미 만들어진 인프라를 어떻게 오래 안전하게 유지하고, 수명이 다한 시설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까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발생한 서소문 고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노후 사회기반시설(SOC) 해체공사 제도를 전면 보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 회장은 “건축물은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해체공사 제도가 상당 부분 마련돼 있지만 토목 인프라는 오히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량은 만드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이 열 배는 어렵다"며 “역해석과 구조 안전성 검토가 필요한데도 토목시설은 해체 설계 의무조차 없어 안전관리가 허술하다"고 말했다. 학회는 ▲해체 설계 의무화 ▲SOC 해체공사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 ▲해체공사 품셈 및 공사기간 현실화 ▲해체 전문 감리제도 도입 등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특히 “민원을 이유로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안전보다 속도가 우선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해체공사는 충분한 기간과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소문 사고 당시 안전점검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희생된 것과 관련해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 회장은 “위험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문가부터 현장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며 “드론과 원격장비를 활용해 먼저 안전성을 확인한 뒤 사람이 들어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적인 안전점검 과정에서 희생된 전문가들에 대한 순직 인정이나 보험체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며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대한토목학회는 건설산업의 AX(AI 전환)와 Physical AI 시대를 대비한 인프라 로드맵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학회는 정부 연구용역이 아닌 자체 전문가 조직을 통해 인프라 분야 AI 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연말까지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한 회장은 “지금까지는 건설로봇이 시범사업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단계"라며 “표준 데이터와 통신체계, 안전기준, 책임체계를 미리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AI가 의사결정을 지원하더라도 최종 책임은 반드시 휴먼 엔지니어가 져야 한다"며 “자율 굴착기나 건설로봇 사고에 대한 책임체계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학 교육도 AI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기존 토목교육만으로는 미래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AI와 디지털트윈, 스마트 유지관리까지 아우르는 교육체계로 전환해야 하며 빠르면 내년부터 새로운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서울 구청장들 첫 결재는 ‘재건축’… 민선9기, 정비사업 속도전 시작

민선 9기 서울 자치구가 본격 출범하면서 재개발·재건축이 구청장들의 '1호 결재'를 사실상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비사업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인허가를 신속 처리하는 방안을 첫 업무로 내세우면서 서울 주택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일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구청장들은 취임 직후 재개발·재건축 지원을 핵심 과제로 잇따라 선택했다. 선거 과정에서 확인된 부동산 민심과 서울의 공급 부족 문제가 구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강남구다. 김현기 강남구청장은 취임 첫날 '강남 재건축 신속화합(신화) 프로젝트'를 제1호 결재로 처리했다. 구청장 직속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사업장별 추진 현황을 직접 관리하고, 주요 인허가 법정 처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54일까지 단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민선 9기 동안 약 2만7000가구 공급도 추진한다. 서초구 역시 재건축 지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재건축 신속지원단 운영계획'을 1호 결재로 선택했다. 지원단이 직접 재건축 단지를 찾아 주민 의견을 듣고 인허가 절차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송파구는 장기간 추진돼 온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첫 결재 안건으로 처리했다. 지역 최대 재건축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공급 확대를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용산구도 개발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경대 용산구청장은 '용산개발 신속추진단' 신설을 첫 결재로 추진했다. 정비사업과 대형 개발사업을 구청장이 직접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안전관리 기능도 함께 강화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청장들도 정비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점이 눈길을 끌었다. 류삼영 동작구청장은 '재개발·재건축 등 사업 촉진 방안'을 1호 결재로 처리하고 구청장 직속 정비사업촉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갈등조정과 공공기여 검토 기능을 갖춘 전담 조직을 통해 90여 개 정비사업을 집중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유보화 성동구청장은 '재개발·재건축 신속관리추진단 설치'를 첫 업무로 결재했다. 기존 주거정비과를 확대 개편하고 사업장별 맞춤형 컨설팅과 주민 갈등 조정을 전담하는 조직을 운영할 방침이다. 마포구도 재개발·재건축 신속 추진 전담반(TF)을 출범시켰다. 권역별 책임관제를 도입해 사업장을 밀착 관리하고, 구청장 주재 정기 간담회를 통해 인허가와 주민 갈등 해결에 직접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광진구 역시 '속도감 있는 명품주거단지 완성을 위한 주거정비사업 추진계획'을 첫 결재로 채택했다. 2030년까지 23개 사업장 착공과 11개 사업장 준공을 목표로 단계별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반면 일부 자치구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른 현안을 첫 과제로 선택했다. 강서구는 구민 참여형 협치 행정을 위한 '구민주권행정'을, 종로구는 일자리·상권 활성화, 중랑구는 교육공동체 지원, 서대문구는 주민자치회 활성화를 각각 1호 결재로 추진했다. 금천구는 데이터센터 갈등 해소를 위한 주민참여형 검토체계를 첫 정책으로 내세웠다. 업계에서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정책에 자치구의 행정 지원이 더해질 경우 정비사업 추진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실제 사업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와 중앙정부 협의, 주민 갈등 조정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은 결국 재개발·재건축이 핵심"이라며 “구청장이 직접 전담 조직을 꾸리고 인허가 단축을 추진하는 만큼 이전보다 사업 속도는 빨라질 가능성이 크지만, 서울시와 중앙정부 협력 여부가 최종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투기 잡는다’는 동탄 규제…전문가들 “최대 피해자는 실수요자”

동탄 규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전문가들의 진단이 엇갈린다. 정부는 투기 수요가 유입됐다고 진단한 반면, 전문가들은 대부분 실수요자가 움직인 결과로 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반도체 협력업체 종사자 등 현금 동원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용인시 기흥구·구리시를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이날부터 지정하고, 오는 5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한다. 국토부는 이번 규제의 목적을 차입을 활용한 투기성 매수와 갭투자를 차단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과 교통 호재에 따른 실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투기성 목적의 가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규제로 인한 가장 직관적인 변화는 무주택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다. 기존 비규제지역에서는 LTV가 70%까지 적용됐으나 규제지역으로 묶인 뒤에는 LTV가 40%로 낮아졌다. 8억원 아파트 매입 사례에 대입해 수치적으로 단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8억원 주택에 대해 규제 이전에는 2억4000만원의 현금만 있으면 대출을 받아 해당 주택 매매가 가능했다. 규제 이후에는 LTV가 축소되면서 대출 외에 4억8000만원이 있어야 매매가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동탄 지역의 최근 집값 상승세는 대부분 실수요 영향일 것으로 봤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를 통해 집값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번 규제 대상이 된 지역에 투기가 있어 이번 토허제 지정이 필요한가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증시 호황에 따른 수익과 반도체 기업 성과금이 해당 지역의 가격 상승에 영향을 끼친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는 투기보다는 실수요 측면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허제는 본래 기존의 도심지역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해당 지역 토지 거래가 늘고 가격도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지보상금 등이 크게 증가하면 사업 추진을 저해하므로, 이를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할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이 위원은 “토허제는 이후 주요 도심의 가격 급등 억제를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 변경됐다"면서도 “초기 취지와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토허제는 실수요의 거래까지 막는 제도는 아니다. 주택의 거래를 어렵게 함으로써 가격의 변동폭을 줄이려는 것이 목적이다. 대출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가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면 이번 규제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자금 여력을 가진 실수요가 주된 원인이라면 의도했던 정책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추가 규제 가능성을 경고하는 성격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이번 규제에 대해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규제가 들어갈 수 있으니 거래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크다"면서도 “정부가 얘기하는 대로 시장이 움직여주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번 규제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계층으로 반도체 협력업체 종사자들을 꼽았다. 동탄은 서울 출퇴근 수요보다 반도체 산업 종사자의 주거 수요가 중심인 지역인 만큼, 성과급 대상이 아닌 협력업체 직원들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성과급을 받은 대기업 직원들은 일정 수준의 자금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1·2·3차 밴더 직원들은 같은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대출 의존도가 높다"며 “규제로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이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먼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이 성공하려면

집은 삶의 공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집은 사는 곳보다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됐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부동산 상승으로 얻는 이익이 더 커지는 사회에서는 청년의 희망도, 경제의 역동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라보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오래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혜택을 받는 구조보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필요 이상의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경우에는 합당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유세 조정은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기대 심리를 낮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양도세 개편은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시장"이 아니라 “필요 없는 주택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투자 목적 매입에 더 높은 부담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추가취득세(ABSD)와 대출 관리 정책을 함께 활용하면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고 실거주 중심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캐나다 밴쿠버 역시 빈집세를 도입했다.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투자 목적으로 방치하는 것을 막고 시장에 다시 공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핵심은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니라 주택이 본래 기능인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방향을 잡은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적의 정책도 시장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세금을 높이면 반드시 집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 집을 가진 사람이 “팔아야겠다"고 판단하려면 명확한 출구가 있어야 한다. 보유 부담은 높이면서 동시에 일정 기간 합리적으로 처분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문을 모두 닫아놓고 나가라고 하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특히 과거 정부 정책을 믿고 등록임대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변화가 필요하다. 제도를 조정하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과 단계적 적용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 정책의 가장 큰 자산은 세금이 아니라 신뢰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공급이다. 세금 정책만으로 집값을 완전히 안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투기 수요는 줄이되 실제 살 집은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필요한 주택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세금 정책도 결국 가격 압력을 막기 어렵다.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하나다. 시장에 건강한 매물이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다주택자가 필요 이상의 주택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실수요자가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진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세 부담 때문에 팔지도 않고 버티는 매물 잠김 현상이 발생하면 거래는 얼어붙고 시장 불안은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의 세제 개편은 내우 정교해야 한다. 투기 목적의 반복적인 주택 매입,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실거주 없는 장기 보유에는 분명한 부담을 줘야 한다. 반면 평생 노력해 마련한 1주택자, 은퇴 고령층, 실제 거주자는 보호해야 한다. 진짜 정교한 세제란 많이 걷는 세제가 아니다. 시장에 정확한 신호를 보내는 세제다. “살 집은 보호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쌓아두는 집에는 책임을 묻는다." 는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가 풀렸다 강화됐다 반복하면 시장 참여자는 정책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최소한의 사회적 원칙은 정권을 넘어 유지돼야 한다. 정부는 데이터에 기반한 세제 설계, 충분한 공급 계획, 투명한 정책 운영으로 시장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 역시 부동산을 빠른 부의 증식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이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때,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도 건강한 방향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정부의 세금을 통한 부동산 억제책 성공 가능성은 결국 '강도'가 아니라 '균형'에서 결정될 것이다. 투기 수요를 정확히 겨냥하면서도 실수요 보호와 공급 확대가 함께 작동한다면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팔 수 있는 길은 좁히고 보유 부담만 높이는 정책은 매물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라 매물이 숨어버리는 시장을 만들 수 있으며, 그 순간 부동산 안정 정책은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동탄·기흥·구리 토허제 왜 묶였나…“차입 비중 높고 과열 우려”

국토교통부가 동탄·기흥·구리 3곳을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한 배경 중 하나로 해당 지역 차입 규모가 30~40% 수준으로 높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30일 오후 세종시 국토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백브리핑에서 국토부 이유리 주택정책과 과장은 동탄·기흥·구리 지역을 7월 1일부터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5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국토부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지정 시 정량적 요인과 정성적 요인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3곳은 모두 최근 3개월 물가 상승률과 집값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법령상 기준인 1.3배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거래량의 추이나 청약 경쟁률, 인허가 공급 상황, 자가 보유율·점유율과 같은 정량 지표도 함께 고려한다. 정량 지표가 한번 충족됐다고 해서 바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발 호재나 자금 조달 계획서 상 차입 비중, 거래의 특성 등 정성적인 요인도 고려해 시장상황을 판단한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업계 특수에 따른 성과급 등으로 유동성이 늘어났고, 이에 대한 실수요 영향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추가 규제 지정을 통해 집값 상승 기대감으로 대출을 얻어 진입하려는 가수요를 차단할 수 있으므로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번 규제의 틀과 내용은 10·15대책과 동일하고 대상 지역 3곳만 추가 지정된 것이다. 10·15 대책 때는 규제지역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으로 확대 지정했다. 풍선효과 우려에 대해 정부는 10·15 대책 당시에는 서울 권역과 인근지까지 상승세가 확대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광범위한 지역으로 규제지역을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반도체 라인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높은 상황이라 수요가 광범위하게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동탄·기흥·구리를 반도체나 GTX 개발 등 특수성이 반영된 부동산 급등 시장으로 해석했다. 해당 지역의 차입 비율은 30~40%로 높은 편이라는 점도 이번 지정의 배경이다. 정부는 10·15 대책 이후 대출 차입을 통한 구입, 갭투자 등 수요가 줄었고, 거래량도 고점보단 꺾인 상황이라 시장 안정 측면에서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번 지정 대상이 되지 않은 다른 지역들의 경우 물가 상승률과 집값 상승률 1.3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전세 불안에 대해 이 과장은 “단기간에 공급 물꼬를 터주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5월 말에 발표했던 비아파트 공급 활성화를 통해 시차가 짧은 공급 모델들을 보완적으로 활용하고 근본적으로는 3기 신도시나 택지 지구 등 도심 공급 속도를 제고하는 투트랙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장혜원의 부동산현장] “AI 켜졌지만, 팹은 아직 지도 위”  반도체 투자 광주·전남 현실은?

“반도체 공장 들어온다고 땅 보러 온 사람은 아직 없어요. 말은 많은데, 공항이 먼저 옮겨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30일 낮 에너지경제신문이 광주송정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얘기에 잠시 웃었다. 정부가 광주·전남권을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KTX를 타고 내려온 취재진 눈앞의 송정역 주변은 아직 들뜬 개발 열기보다 평일 한낮의 일상에 가까웠다. 정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기씩, 모두 4기의 메모리 반도체 팹을 구축하는 구상을 내놨다. 수도권에 집중된 생산 기반을 분산하고, 전력·용수·부지·인허가를 정부가 뒷받침해 메모리 생산 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자료에는 광주·전남권이 인프라와 정주 여건, 인력을 종합 고려한 새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적시됐다. 현장에서는 “어디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풀어야 했다. 광주송정역에서 광주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멀지 않았다. 광주공항과 군공항 부지는 대규모 산업단지 후보지로 거론돼 왔다. 넓은 부지와 KTX역, 도심 접근성이 장점이다. 공항 터미널 앞 주차장에서는 국내선 이용객과 차량이 오갔지만, 활주로 너머의 넓은 땅은 여전히 항공기와 군 시설의 영역이었다. 공항 주변 주민과 택시기사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반도체가 아니라 군공항 이전이었다. 군공항과 민간공항 이전 논의는 오랜 기간 지역의 숙제로 남아 있다. 군공항은 소음 문제와 이전 후보지 선정, 중앙정부 지원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한 지역 주민은 “공항이 옮겨져야 개발도 할 수 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얘기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팹은 통상 수백만㎡ 단위의 부지와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망을 요구한다. 군공항 이전 부지는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이전 자체가 선행 조건이다. 결국 '부지가 있다'는 것과 '반도체 공장이 곧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장이다. 광주공항 주변에서 만난 한 운전기사는 “공항만 나가는 게 아니라 군공항까지 같이 이전돼야 하는데, 이건 광주시만의 힘으로 풀 일이 아니다"며 “정부가 재원과 이전 방안을 확실히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반도체 구상의 또 다른 시험대는 물이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거점 조성과 관련해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물은 단순히 강물이 흐르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수 확보, 취수·송수관로, 정수·재이용 설비, 초순수 생산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광주공항 인근에서 황룡강 쪽으로 향하자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줄기와 제방, 주변 농지와 도로가 이어졌다. 강은 흐르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한 물길이 곧바로 반도체 공정용 물을 뜻하지는 않았다. 반도체 제조에는 미세 불순물까지 제거한 초순수가 필요하다. 취수량이 충분하더라도 정수 과정의 비용과 회수율, 폐수 처리 능력, 가뭄 시 공급 우선순위까지 따져야 한다. 현장에서는 물 부족에 대한 인식도 엇갈렸다. 일부 주민은 장성댐과 영산강 수계, 광주의 기존 상수도 공급 체계를 들어 “과거보다 물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가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팹 수요가 더해질 경우 생활·농업·산업용수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지역 관계자는 “강물을 바로 공장에 쓰는 구조가 아니라 저수지와 송수 체계, 정수시설을 거쳐야 한다"며 “물의 양도 중요하지만 수질과 공급 안정성이 더 큰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시 반도체AI 관련 부서 역시 정부 발표 직후에는 구체적 공급 경로와 광주 배정 물량을 확인하는 단계라는 입장을 보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부가 언급한 산업용수 수치와 관련해 “정부 발표를 보고 있는 중"이라며 향후 발표 내용과 협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는 반도체 유치의 성패가 투자 총액보다 '물길의 설계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대형 팹은 착공 전부터 수년간 용수와 전력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 입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로 길이, 취수원, 저장시설, 펌프장 위치와 비용을 구체화하기도 어렵다. “하루 몇십만t, 몇백만t 공급 가능"이라는 숫자가 실제 공장 가동 시점의 공급 보증으로 이어지려면, 공학적 설계와 재원 조달, 환경 인허가가 뒤따라야 한다. 다만 광주가 빈 도화지는 아니다. 북구 GIST와 첨단3지구로 이동하자 분위기는 공항권과 또 달랐다. 넓은 도로와 연구·산업 시설, AI 관련 인프라가 이어졌다. 광주는 국가AI데이터센터와 AI집적단지, GIST를 중심으로 AI 연구와 인력 양성 기반을 꾸려 왔다. 정부도 GIST Arm스쿨 개교와 남부권 연합공대 인력 양성 등을 통해 반도체 인력 공급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의 강점은 반도체 대기업 팹을 당장 세울 수 있는 완성된 제조단지라기보다, AI와 연구 인프라를 반도체 산업과 연결할 수 있는 기반에 있다. AI 반도체 설계, 팹리스, 패키징, 장비·소재,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실증 분야에서는 GIST와 국가AI 인프라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규모 메모리 전공정 팹은 전력과 용수, 부지, 협력사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구상은 단순한 지역 유치전이 아니다. 수도권 팹 집중의 한계를 넘기 위해 새로운 생산 거점을 만들겠다는 산업 전략이다. 정부는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생산 기반이 전력·용수·부지 측면에서 한계에 닿고 있다고 보고, 서남권을 새로운 생산 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주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800조원'이라는 숫자의 크기만큼이나 실행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공항 이전은 부지를 열어야 하고, 황룡강과 영산강 수계는 물길의 안정성을 증명해야 하며, 첨단3지구와 GIST는 연구 인프라를 기업의 실제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해야 한다. 광주송정역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기사는 “큰 공장이 들어와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은 따라온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곧 “말만 남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광주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이제 발표를 마쳤다. 다음 과제는 물과 전력, 부지와 이전, 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먼저 확보하느냐다. AI는 이미 광주에서 켜져 있다. 반도체 팹은 아직, 지도 위의 선을 공사 현장의 선으로 바꿔야 한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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