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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재차 확인된 두산의 속내와 규제 필요성

두산 그룹의 새로운 사업재편안은 기존과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 또 한 번 두산밥캣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평가방식을 사용했다. 과거와 평가방식이 달라졌지만, 밥캣의 가치를 주식시장의 기업가치로 평가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밥캣의 기업가치는 4조 2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헐값 매각 논란이 줄어들리 만무하다. 과거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잉거솔랜드(현 두산밥캣)를 인수했던 49억불(당시 한화 4조 5000억원, 현재 환율 기준 약 7조원)에도 미치는 못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 금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로보틱스에 매각하려 한다. 두산밥캣의 실적이 악화된 것도 아니다. 두산밥캣의 영업이익은 △2020년 3938억원 △2021년 5953억원 △22년 1조716억원 △23년 1조3899억원으로 실적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현금도 넉넉히 보유하고 있어, 차입금을 갚고도 남는다. 두산로보틱스는 현재 밥캣의 상각 전 영업이익 기준 2.5년이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게 된다. 일반적인 기업간 거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6~8년은 필요하다. 게다가 밥캣은 세계 1위 소형 중장비 업체다. 미국 내에서도 입지가 상당하다. 성장하는 공룡인 세계 최고 국가 미국 내 입지 역시 상당한 프리미엄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저평가 상태로 매각하는 것은 매수자가 두산그룹의 특수관계자인 두산로보틱스이기 때문이다. 특수관계자 사이의 매각은 여러 논란을 낳는다. 거래 상대방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경제인이라면 하지 않을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개연성이 있다. 그렇기에 세법은 부당행위계산의 부인이란 규정을 따로 두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모든 계열사의 주주에게 이득이 되며 사업적 시너지가 극대화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사업적 시너지를 미래가치로 담아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비로소 의미가 발현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가치평가 방식 중 미래가치를 충분히 반영되는 방식들은 충분히 많다. 그렇기에 두산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업적 시너지'를 주주들에게 확인해 주면 된다. 당국은 두산의 행동 없는 시너지를 용인해선 안된다. 만약 용인한다면 그간 당국이 보였던 리더십 역시 180도 뒤집힐 수 있다. 그렇기에 당국은 두산이 행동으로 사업적 시너지를 입증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김성우 칼럼] 미필적 고의와 기후위기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라는 법률 용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로 정의하고, 통행인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차로 질주하는 경우로 예시하고 있다. 대법원도 “살인의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판시해, 가해 의도가 없더라도 불확정적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경우를 미필적 고의로 인정한 바 있다. 환경에너지 전문가인 필자가 뜬금없이 미필적 고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현재 세대의 심리상태가 미필적 고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 중 기후변화만큼 장기적으로 위험한 것이 없다는 점을 현재 세대가 어느정도 인식하거나 예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배출 감축이나 신재생에너지 증가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를 접할 때 마다 찜찜했었다. 이렇게 혼자 삼켜 오던 찜찜함이, 지난 8월 29일 기후위기가 미래 세대의 권리는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모두에게 확인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20년 3월 이후로 청소년 환경단체의 회원들, 5세 이하 영유아 등 200명 이상의 청구인이 순차로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하여 국가가 법령 등으로 설정한 정책이 불충분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환경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다툰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이 선고된 것이다. 특히 전원일치로 헌법불일치 결정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의 경우,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목표로 하면서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은 조항이, 과소보호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하여 환경권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까지 감축을 담보할 장치가 없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는 2031년 이후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해 2026년 2월 28일을 시한으로 법령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향후 정부가 2031년 이후까지 포함하는 기후 대응 관련 정책 수립시 미래 세대에 대한 과중한 부담 이전을 하지 않도록 강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고려해야 한다. 파리협정에 의해 내년 중에 UN에 제출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설정을 예로 들 수 있다. 추가로 이번 결정을 계기로 환경단체 등 사회내 이해관계자의 기후 대응 요구가 강화되고 추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월 동아시아연구원과 중앙일보가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1.2%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라고 답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응답(51.1%)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북핵과 유사한 수준의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통행인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차로 질주하는 미필적 고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미필적 고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히는 이유다. 김성우

[기자의 눈]전기요금, 비싸졌지만 오늘이 가장 저렴할수도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1년 만에 또다시 높였다. 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한국전력공사의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이다. 정부는 원가 인상분 반영 등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는 가격경쟁력 하락에 따른 수출 차질 등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계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가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지율이 최저로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요금도 서울 집값처럼 '오늘의 가장 싸다'는 말을 들을 공산이 크다. 수요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확대, 전기차 보급 증가, 전기로 건설을 비롯한 요인이 있다. 가정에서도 인버터 등 가전제품이 늘어나는 추세다. 충분한 공급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공급능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등의 이유로 2036년까지 전국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석탄화력발전은 올 1~8월 기준 전체 발전량의 28.5%를 차지하는 주요 발전원이다. 국내 발전량의 13%가 넘는 전력이 12년 안에 사라진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를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방침이지만, 경제성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따른다. LNG발전 정산단가는 유연탄·무연탄을 꾸준히 상회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LNG값이 급등하고 각국의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다. 재생에너지 가격경쟁력도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에 따르면 지난달 태양광발전 정산단가는 kWh당 145.8원, 풍력은 136.0원으로 집계됐다. 수치상으로 보면 석탄화력발전 보다 낫지만,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의무이행비용정산금 등을 합한 수치는 이를 훌쩍 상회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전이 부담한 RPS 관련 비용은 4조원에 달한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으로 꼽히는 원자력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 지연에 직면한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장소를 찾지 못하면 신규 원전 건설은 꿈도 꿀 수 없다. 원자력업계는 2030년대 중반부터 기존 원전의 가동 중단도 우려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마음을 모으지 못하면 결국에는 민생을 이유로 억눌렀던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도 이뤄질 수 있다. 국민들도 기후변화로 폭염과 한파가 심해지는 가운데 쉽게 냉·난방 할 수 있도록 여야가 마음을 모으길 기대하고 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이슈&인사이트] 중국 5% 경제 성장에 우리가 관심갖는 이유

중국 정부가 5% 경제성장 달성을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처럼 빚이 많은 상태에서 디플레가 온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지난 해 5.2% 성장을 달성하면서 자신감을 가진 중국은 올해 특별한 대책 없이 같은 기조로 경제를 끌고 왔지만 경제가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2,3분기 연속 성장이 5% 이하로 떨어지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이자 부랴부랴 금융 및 재정 정책을 내 놓고 있다. 미국과 경제의 양대 산맥인 중국이 부양책을 써서 침체된 중국 국내 소비가 살아난다면 이는 우리 경제에도 영향이 크다. 그래서 중국이 내 놓는 부양책에 우리의 관심도 집중된다. 중국 정부의 부양책 핵심은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내수의 회복이다. 중국은 2008년 경기부양을 위해 당시 GDP의 14%에 맞먹는 4조 위안을 시장에 풀었지만 부동산 가격만 올리고 부채의 사슬에 엮이게 되었다. 2014년 주식시장 부양 정책도 실패하였고 2019년 이후 코로나 봉쇄로 인해 중국 경제성장과 지방정부 재원의 주된 수익원인 부동산이 오히려 지금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21년과 23년 부동산 개발회사인 헝다와 비구이위안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아파트 미분양과 공사 중단 사태가 발생한 부분이다. 중국 지방정부 재정의 거의 전부인 토지 매매가 중단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정은 심각한 상태다. 게다가 리오프닝으로 경제와 부동산이 살아날 거라는 기대감마저 무너지면서 소비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부동산 소유자들과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버는 돈을 빚을 갚는데 쓰다 보니 내수가 망가져 오히려 디플레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올해 들어 5% 미만의 분기별 성장이 나오면서 4분기에 5% 상단의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면 중국 정부가 목숨처럼 여기는 5% 성장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7월 3중전회에서 시진핑이 “현재 중국 경제 발전이 일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자기 고백을 하였고 중국 당국은 부랴부랴 여러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9월 24일 지준율을 50bp를 내리자 시장은 반응했고 상해지수와 홍콩 항생지수가 20% 넘게 상승을 하였다. 그 후 저소득층을 위해 현금과 소비쿠폰 지원 및 내년도 예산 조기 집행들의 얘기도 나왔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10월 12일 중국발전기금위원회의 발표 때 특별 국채 발행의 구체적 규모가 나오지 않자 21일 중국의 기준금리인 LPR의 25bp 인하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홍콩 주식시장은 조정을 받은 후 현재 답보 상태에 들어가 있다. 시장은 좀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특별채권 빌행과 호구제 폐지 또는 변경안이 있다. 트럼프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중국 상품에 대해 공공연하게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특별채권 금액을 내놓기는 어려울 거다. 미 대선 이후 특별채권 규모가 발표될 거라 예상된다. 만약 그 규모가 2조 위안을 넘지 않는다면 시장은 크게 실망할 거다. 호구제 변경은 정치적인 문제라 기대는 하지만 구체적 얘기는 시기상조라는게 중론이다. 일단 부양책이 성공할려면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침체된 내수를 재정 정책이 마중물이 되어 국내 소비를 살려야 효과가 나타난다. 경제는 어차피 심리의 안정이 최우선이다. 우리의 대중 수출도 올 들어 살아날 조짐이 보였으나 다시 주춤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로 수출이 막힌 중국은 국내 소비를 통해 경제를 살려야 하고 이게 성공한다면 우리의 화장품과 레거시 반도체인 D램, 낸드플래쉬를 비롯한 중간재 등의 대중 수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 또한 그러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용

[EE칼럼] 비난을 각오한 석탄을 위한 변론

영국이 마침내 142년 석탄 발전 역사를 마감했다. 지난 9월 30일 마지막 석탄 발전소인'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를 중단함으로써 영국은 석탄 발전소를 완전히 없앤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석탄 발전을 시작한 국가이었기에 이번 석탄발전소 완전 폐쇄는 문명사적 의의가 크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원지로서 지난 200년 넘는 기간 동안 석탄과 함께 성장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1882년 세계 최초로 건설한 홀론 바이덕트 석탄발전소는 런던의 거리를 밝혔다. 그 후부터 20세기 기간 내내 석탄은 영국 발전의 기둥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석탄의 발전비중은 80%에 달할 정도였다. 그 후 북해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석탄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최근까지 중심 전원이었다. 실제로 2012년에도 석탄은 영국의 전력 발전의 39%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기후변화가 전 인류의 공통 의제가 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분명한 목표가 되었다. 영국은 2008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후 목표를 수립하고, 2013년 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2025년을 목표로 석탄발전 중단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단 12년 만에 석탄발전 비중을 39%에서 0%로 낮추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석탄 발전 비중은 2022년 기준 39.7%로 우연히도 영국의 2012년 수준과 거의 같다. 수치만 단순 비교하면, 우리도 영국이 해낸 것처럼 12년 만에 석탄발전 퇴출을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일부 환경단체는 이번 영국의 사례를 앞세우며, 국내 석탄발전소 옥죄기에 더 한층 나서고 있다. 이미 탄소중립 2050 계획에 따라 전국 석탄발전소 59기 중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38년 석탄발전 비중을 10.3%까지 대폭 낮추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만을 표시하며 203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석탄발전 옥죄기를 넘어 죽이기에 가까워보인다. 영국의 탈석탄 과정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지난 2013년 기준으로 평균 사용기간이 45년가량으로 이미 상당히 노후화된 상태였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폐쇄된 석탄발전소도 1967년에 건설되어 약 55년 만에 퇴출되었다. 사실 영국에서 석탄은 마가렛 대처 수상의 탄광노조 개혁 이후 줄곧 하락 추세를 보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전력계통에 노후화된 석탄발전소들만 대부분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특별한 조치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퇴장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말이다. 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마당에 북해 천연가스를 상대적으로 싸게 쓸 수 있는 영국에서 굳이 석탄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최근 석탄발전 중단 정책은 쇠퇴해 가던 석탄에 마지막 쐐기꼴을 박은 정도지 추세를 뒤바꾼 혁명적 정책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는 대개 2000년 이후 준공된 비교적 신규 발전소에 가깝다. 특히 2011년 전력부족 사태를 해결하고자 허가했던 민간석탄발전소는 2020년 전후로 가동을 시작한 최신발전소다. 이들 발전소는 경제성 높은 소위 잔여발전량을 아직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 사례와는 완전히 다르다. 옆집이 20년 된 고물 자동차를 폐차했다고, 엊그제 구입한 에너지효율 1등급 새 자동차를 덩달아 폐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분별없는 석탄발전소 때리기는 지양해야 한다. 무리한 탈석탄은 제 발등 찍기가 될 수도 있다. 전 세계 에너지빈곤 현황을 고려할 때 모든 국가의 탈석탄 동참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석탄발전소는 이미 석탄발전 상한제, 송전제약, 지역별 요금 차등 등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스스로 문을 닫을 판이다. 에너지효율 높은 최신 석탄발전소가 자의든 타의든 조기 중단되는 것은 절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전혀 다른 해외 사례에 기대어, 멀쩡한 최신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 과거 수 백 년에 걸쳐 진행된 에너지전환을 나타내는 장기 에너지 대체 곡선을 보면, 특정 에너지의 시장점유율이 1%에서 10%까지 도달하는데 예외 없이 40~50년이 걸렸고, 50%에 도달하는 데 100년 이상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인류가 경험한 에너지전환 과정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현재 진행 중인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에 대한 시각도 좀 더 객관적이야 한다. 박주헌

[기자의눈] 삼성전자의 ‘감히’ 문화, 혁신의 발목 잡는다

지난 11일 밤 김포공항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귀국을 기다리는 50여 명의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삼성전자가 급히 공지한 자리였다. 이 회장의 귀국 소식에 기자들은 반도체 위기와 하반기 인사 계획 등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장의 기자들은 질서 있는 취재를 위해 대표 질문자를 선정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질문을 준비하며 이 회장의 도착을 기다렸다. 이 회장을 기다리며 현장의 삼성전자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크게 실망한 일이 있다. “이 회장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으신거냐"고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물어보자 그 직원은 “감히 삼성 내부에서 이 회장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가볍게 답한거겠지만 내심 충격적이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수장과 직원들 사이의 소통이 이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은 크게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감히"라는 표현에 담긴 함의는 삼성 내부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삼성전자는 HBM 시장 대응 실패, 파운드리 사업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수장과 구성원 간 소통 부재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시장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과 혁신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수직적 위계를 넘어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통 부재가 삼성의 일상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진행하는 타운홀 미팅조차 경영진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적 부진이나 경영 전략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이나 토론이 제한되며, 임직원들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주저하고 있다고 한다. '감히'로 상징되는 경직된 조직문화는 삼성의 혁신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미국과 대만 등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성장하는 동안, 삼성은 관료주의적 문화에 발목이 잡혀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직급과 직책에 관계없이 건설적인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리더와 구성원 간의 열린 대화, 수평적 의사소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삼성전자는 조직 문화의 혁신 없이는 재도약이 어렵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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