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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AI! 나는 너를 못 믿겠다

'AI로 신문 기사를 수집해서, 과거 주가 변동 추세를 딥러닝으로 분석해서, 주가를 정확히 예측해서, 기계적으로 매매해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라는 소문이 시장에 떠돈다. 펀드매니저보다 똑똑하고 횡령·조작도 못할 테니 인간보다 믿을 만하단다. 나는 그러나, AI가 하는 매매에 내 자산을 맡기고 싶지 않다. AI는 매매 판단의 근거를 설명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AI 개발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가 튜링 테스트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이 고안한 인공지능 평가 방법이다. 1950년 철학 저널 '마인드'에 게재한 '기계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논문이 시초다. 테스트의 개념은 간단하다. 채팅으로 알 수 없는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는데, 상대방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기계인 상대방은 '인간과 같은 지능이 있다'라고 평가한다. 고릿적 인공지능 능력 평가 기준이지만 고전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알고리듬을 작성해 보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 한다. 인간은 질문이나 대답에 얼마나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반응하는지, 얼마나 감정적인지 논리적인지, 얼마나 지식의 폭이 넓은지 좁은지 등등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 심지어 인간이 어떤 말에 신경질을 내는지, 어떤 타이밍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등을 먼저 예상해 봐야 한다. 알고리듬을 짜다 보면 '인간은 왜 이 모양으로 불완전한가?'하는, 우리 종에 대한 회의마저 느껴진다. 물론 현재 인류를 휩쓸고 있는 AI 기술 수준을 보면, 튜링 테스트(1단계)쯤은 쉽게 통과한다. 최근까지 알려진 기술력으로 보면, 2단계 시청각(이미지나 음성 처리)도 통과한다. 갈겨쓴 손 글씨를 인식하거나 박보검 같은 연예인의 목소리를 합성해 내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에까지 영상통화가 사용되는 걸 보면 2단계는 이미 통과된 거다. 3단계는 화상전화를 통한 실시간 상호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학습 연산 속도에 달린 일이라, 통과가 멀지 않았다. 그래서 AI는 불안하다. AI의 시작점은 '뛰어난 지능'이 아니라 '인간 같은 지능'이라서다. 눈치 빠른 사용자는 AI 서비스를 사용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뭔가 잘하는 거 같은데, 한두 가지 꼭 빠뜨린다. 더욱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또다시 내 생각을 입력해야 한다. 그걸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결과물이 개선되는 것 같긴 한데 또 한두 가지 부족하다. 나는 분명히 기계에게 일을 시키는데, 결국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바이트를 소진하다 보면 어느새 페이월이 뜬다. 기계의 '의도된 실수'인데, AI가 인간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로직 중 하나다. 튜링 테스트가 AI 설계 철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게 아니라 인간처럼 불완전한 결과물을 제출해야, 지능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사실 '완벽한 결과물'이란 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AI 개발자들은 생성형 AI의 설계 철학을 두고 '아직도' 싸운다. AI를 인간처럼 만들었으니. 돈도 인간처럼 버는 거다. 불완전한 AI가 판타지로 활용된다. 기계에 자산을 맡겨두면 24시간 돈을 불려줄 것만 같다. 또 그럴 것처럼 광고한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다. AI는 학습 구조상 어떤 판단 근거로 매매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손실을 낸 기계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기계를 만든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기자의 눈] 여전히 구호만 넘치는 에너지정책, 현실은?

'에너지 고속도로', '탄소중립', 'RE100'… 멋진 구호는 많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정책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 재생에너지 보급, SMR 산업 육성, 그리고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까지. 듣기만 해도 혁신적이고 전환적인 수식어가 넘친다. 하지만 2025년의 땅 위 현실을 보면 여전히 그 대부분은 '구호'에 머물러 있다. “전기차가 도로에 없던 시절에 충전소를 짓는 게 의미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기차가 도로를 덮은 뒤에도 충전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에너지정책은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정책 목표는 2030년을 바라보지만, 전력망·요금체계·시장제도는 2010년에 멈춰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는 정부의 국정과제는 선명하다. 하지만 정작 송전망 구축은 주민 반대와 재원 부족, 그리고 제도 미비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분산형 전원 체계'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한전 독점의 중앙집중형 전력망 구조에서 한 발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에너지전환에 필수적인 것은 인프라와 재원이다. 하지만 요금 현실화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전히 금기어다. 가정용 요금은 민심을 의식해 건드리지 못하고, 산업용은 2년 연속 인상했더니 기업들이 한전에서 빠져나가 한전의 경영악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30%, RE100 산단 확대, 에너지 집약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외친다. 구호는 넘치지만, 그에 따르는 요금 개편·시장 설계·보조금 구조는 빈껍데기다. 결국 그 격차를 메우는 것은 공기업의 적자와 국민 부담이다. 탄소중립도, 재생에너지도, 에너지전환도 결국 정치적 결단보다 제도적 설계와 재정 기반이 우선되어야 한다. 장기 공급계획은 있지만, 단기 조정 수단은 없고, 투자 수요는 폭증하지만, 재정 여력은 바닥이다. 공공은 시장에 책임을 전가하고, 시장은 규제 미비를 탓하며, 현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감내한다. 이제는 “2030년까지"가 아니라 “내년 예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해야 할 시점이다. '에너지고속도로', '탄소중립', 'RE100'이 종이 위 슬로건이 아닌 현실이 되려면, 정치적 용기와 함께 요금체계의 합리화, 민간투자의 길 열기, 제도의 틈새 메우기부터 이뤄져야 한다. “왜 아직 안 됐냐"는 질문보다, “지금 이대로 가능한가"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한 시기다. 이제는 구호보다, 설계가 필요하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관세 장벽서 ‘포스트 불닭볶음면’ 나오려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7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전격 시행된다. 품목별 관세를 적용받는 분야를 제외하고 우리 수출 기업들은 15%의 관세를 부과 받게 된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푸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국내 식품업계 영향을 살펴보면, 먼저 북미시장에서 '불닭볶음면'으로 초대박을 낸 삼양식품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양식품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7.1% 늘어난 52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80%는 해외에서 나왔다. 특히 전체 매출의 4분의 1이 나온 곳이 바로 미국이다. 오뚜기와 CJ제일제당의 해외 매출 비중도 각각 65%와 49%로 높은 수준이지만 사정은 조금 다르다. 오뚜기의 주력 시장은 중국과 베트남이고, CJ제일제당은 미국에 생산기지를 갖춰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약 37%에 달하는 농심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 제2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한다. 결국 현지 설비가 없는 식품기업과 중소 K-푸드 수출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후속 지원 대책에 식품 부문을 포함하기로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가 미국 시장에서 (수출)모멘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 이런 일(관세 부과)이 발생해 답답하다"며 “관세 후속 지원 대책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세 대응책으로는 바우처 프로그램이나 금융지원 강화 카드가 거론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관세 대응 수출 바우처', 중소벤처기업부의 '수출 바로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처방이지만, 사실 이를 장기적 해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내놓을 관세 후속 지원책에 식품 기업들의 수출국 다변화를 지원하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대책들이 대거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단기 처방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품 산업의 구조적인 경쟁력 강화다. 그래야 '포스트 불닭볶음면'도 나올 수 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수출 한계 넘자…‘공유성장’이 미래 무역 모델

올해 들어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는 단순한 외교 갈등을 넘어 세계 무역 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이 당연시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수출의 40% 이상이 미국과 중국에 집중되어 있어, 대외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수출 시장의 다변화는 오래된 과제지만, 이제는 그 방식 자체를 재설계할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개발도상국 대상 경제협력은 원조, 단순 무역, 또는 OEM 중심의 투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단순한 거래 관계를 넘어 '협력형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해졌다. 변화의 출발점은 기존 무역의 장벽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관세, 물류비, 가격경쟁력 등은 여전히 주요 진입장벽이며, 중남미 시장은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더욱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장벽은 '함께 만드는 방식'으로 넘을 수 있다. 공동 생산, 공동 기술개발, 공동 브랜드 전략이 바로 그 해법이다. 지난 6월 말, 에콰도르 수도 키토시의 고위 공무원 연수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숭실대학교, 서울산업진흥원(SBA), 이노비즈협회,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등 다양한 창업 및 혁신 기관을 방문해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고, 다자간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창업 협력과 기술 역량 공유, 공동사업 추진을 위한 발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 키토시 산하 혁신기관 콩키토(CONQUITO)가 체결한 협약은 양국 스타트업 간의 1:1 기술 매칭, 공동 연구개발(R&D),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등 다층적인 협력 모델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 수출을 넘어, 산업 기반을 함께 설계하고 성장하는 '공유성장형 파트너십'의 구체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노비즈협회 역시 기술 기반 중소기업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 시장개척에 그치지 않고, 기술이전, 혁신 교육, 스마트팩토리 도입 등을 포함한 '역량 전이(capacity transfer)' 중심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양국 기업은 '시장 + 기술'이라는 두 가지 자산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숭실대학교가 주관한 키토시 고위급 연수 또한 같은 흐름에 있다. 창업 정책, 제도, 지원 시스템 등 비가시적 인프라의 공유는 단기적인 수익과는 직결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신뢰와 상호 이해 형성의 핵심 요소가 된다. 이제는 선진국이 일방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시대를 넘어, 서로 성장하는 상호협력 모델을 본격적으로 설계할 때다. 한국은 기술과 시스템을 제공하고, 개발도상국은 시장과 인재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구조다. 이는 무역 장벽을 본질적으로 낮추는 전략이자, 단기적 실적이 아닌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중남미는 이러한 '공유성장' 접근이 특히 효과적인 지역이다. 스마트시티 인프라, 적정 농업기술, 친환경 제조, 청년 창업지원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중남미 현지의 수요와 잘 맞아떨어진다. 기술을 단순히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와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전통적 수출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현지 파트너와 협력하고, 생산과 수익을 '함께 만드는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공동 프로젝트형 ODA, 세이프가드 없는 기술이전 모델, 스타트업 간 교차 연수 프로그램 등의 실질적 제도가 요구된다. 이제는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키토시와의 협력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한국이 개발도상국과 손잡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새 질서'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먼저 포착한 기업만이 미래의 무역 장벽을 뛰어넘고,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박주영

[EE칼럼] 자원협력으로 남북관계 풀어 보자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냉각기를 유지해 온 남북 소통의 길이 조금씩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매번 반복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 천명이나 통일 의지 다짐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한국을 상대하기보다 미국과 직거래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북 관계 정상화는 누가 먼저가 아니라 실질적인 먹고 사는 일, 상호 경제적 이익이 수반되는 일부터 시작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최근 KOTRA의 “2024년 북한 대외 무역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수출은 전년대비 10.9% 증가한 9억 6044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수입은 4.4% 감소한 23억 3567만 달러로 무역적자는 19억 7523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은 가발 등 솜털 가공 제품이며 2023년 3위였던 광물이 40.7% 증가해 2위로 올라섰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김정일 집권 기간(1994~2011년) 3.86%였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김정은 집권(2012년) 이후 2023년까지 0.84%로 급격히 하락했다. 북한이 계속해서 자력갱생만을 고집할지 특단의 변화를 택할지는 모른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남북 개선을 위해 새로운 전략을 가져야 한다. 남북 관계는 커다란 목표 설정보다 우선 상호 불신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이외 국제사회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 등 통상을 넘어 소리없는 전쟁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 관계를 갈등으로만 대처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협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관적·포괄적 해결보다 단계적·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작은 협력을 관계 복원의 마중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 교역 또는 물물교환의 차원을 넘어 남북 양측의 필요 하에 서로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유무상통의 원리와 함께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상생과 협력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경험했듯 광물자원 협력부터 다시 재기해 보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 품목에 속하지 않는 텅스텐·몰리브덴 등의 광물 반입부터 시작해 차츰 신뢰가 축적되면 남북 광물개발 협력도 해볼 수 있다. 남과 북은 지난 김대중 정부 때 북한 황해도 연안군 정촌 흑연광산 개발 사업을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 생산에 들어가 남한으로 세 차례에 걸쳐 약 1,000톤의 흑연을 반입한 사례가 있다. 그 후 이명박 정부 때 두 차례 개성공단 북측 안가에서 한국광물자원공사와 북한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산하 명지총회사 간 실무자 만남을 통해 정촌 흑연광산 재가동과 중단된 남북간 자원개발 합의를 체결했다. 당시 북측은 북한산 희토류 샘플 4개를 제공하기도 했으나 그 해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합의 이행은 성사되지 못했다. 남북 간 경제 협력이 잘 진행되었던 때는 2006년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이며 이에 따라 남한은 북한 경공업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대가로 함경도 단천의 마그네사이트, 아연 광물조사와 개발권, 그리고 약간의 아연을 받았다. 그리고 광물공사와 명지총회사 간 합작사업인 정촌 흑연광산 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북한 내 주요 광물이 남북 경제 발전에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은 이미 확인 되었다. 북한에는 철광석·구리·마그네사이트 뿐만 아니라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니켈·코발트·흑연과 희토류·텅스텐 등 각종 핵심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마그네사이트·텅스텐·몰리브덴·흑연 등의 매장량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다. 미국 콜로라도 광업대 페인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 최대의 희토류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또한 인하대학교 북한자원개발연구센터에 따르면 북한의 주요 광물 중 남한 내수의 절반만 북한에서 조달하면 가용 연한은 최소 25년 이상이며, 연간 수백억 달러 이상의 수입 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북한 내 자원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남북의 의견이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정부의 남북 관계를 푸는 방법 중 하나로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각론을 마련해 접근해 보는 것이 좋다. 남북 관계를 너무 큰 틀에서 접근하지 말고 시대 변화에 맞게 정치적 시각보다는 경제면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해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 강천구

[기자의 눈] 금융주 기대 꺾은 정책 혼선, ‘코스피 5000’ 신뢰도 흔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히자 시장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금융주였다. 밸류업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혔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개하며 주주환원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4~0.6배 수준이던 금융주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수혜 기대감에 단기간 주가가 급등했다. 실제 KRX은행 지수는 지난 6월 2일 989.13으로 1000선을 넘지 못했으나 지난달 14일 1308.93까지 치솟으며 13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큰 그림과 달리, 금융권을 둘러싼 압박과 정책 혼선이 주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서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은행권의 '이자 놀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어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한 실망감과 주식 양도세 대주주 자격과 관련한 세제 개편 논란 등이 겹치며 시장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드뱅크 재원 분담, 교육세 부담 확대, 미래·혁신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강화 등의 각종 요구도 금융사의 자원 여력을 축소시켜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밸류업 관점에서 보면 기업대출 확대는 위험가중자산(RWA)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밸류업 달성 속도를 늦추게 한다. 정부가 주가 부양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정책 혼선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부각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망감도 나타나고 있다. KRX은행 지수는 지난달 25일 1264.88에서 이달 1일 1152.02로 떨어지며 1200선 아래로 밀렸다. 금융주는 'PBR 1배'를 상징적인 중장기 목표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시장과 소통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증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인데, 정부의 지금 모습은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코스피 5000은 구호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국내 주식 시장을 외면했던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책과 목표 달성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신뢰를 쌓기란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은 새로운 구호가 아닌 일관된 모습과 정책이 필요하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분수령

2025년은 파리 협정이 채택된 지 10년이 되는 해로, 글로벌 에너지전환의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의 역할은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태양광과 풍력은 비용 절감과 제조 능력증가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며,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및 에너지 연구소(Energy Institute, EI)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92.5%, 발전량 증가의 74%를 차지하며 화석연료를 크게 앞섰다. 파리 협정이 채택된 2015년부터 2024년 사이 재생 발전설비 용량은 2,428GW 증가했으며, 이는 화석연료 발전설비 용량 증가(615GW)의 약 4배에 달한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전 세계 발전설비에서 화석연료 비중은 53.6%, 재생에너지 비중은 46.4%였으며, 2025년에는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앞서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7월 30일 발표한 보고서 '2025년 중기 전력 업데이트'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전력 수요는 2024년 대비 3.3% 증가하고, 2026년에는 2025년 대비 3.7% 증가할 것이며, 태양광과 풍력이 2025년 전력 수요 증가분의 9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글로벌 싱크 탱크 엠버(Ember)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전 세계 원별 발전량 증감 분석결과 전체 발전량은 396TWh가 증가했고, 태양광이 292TWh로 전체 증가량의 73.8%, 풍력이 93TWh로 23.5%를 기록했으며, 핵발전 35TWh, 화석연료 15TWh를 압도했다. 반면 수력발전은 41TWh, 석탄은 17TWh 감소했다. 2024년 발전량 기준 상위 1위와 3위인 중국과 인도의 전력 수요는 2024년의 급격한 증가세보다 2025년에는 완만한 증가가 예상된다. 2024년 7% 급증한 중국의 전력 소비량은 2025년에는 5% 증가할 것이며, 이는 산업 부문의 수요 증가 둔화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2024년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의 대략 50%를 차지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도의 전력 수요는 2024년 6% 성장 후 올해 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에너지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은 지난 2월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용량이 핵, 바이오, 석탄, 가스 등을 포함한 화력 발전 설비용량을 넘어섰다. 6월 말 기준으로는 1,673GW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설비를 설치해 화력 발전 설비용량 1,475GW보다 198GW 더 많다.특히 태양광의 경우 213GW를 설치해 2024년 같은 기간 설치된 102GW 대비 109% 증가했고, 2025년 전체 신규 발전설비 설치 용량의 71.3%를 차지했다. 누적 설치 용량도 5월 말 1,084GW로 1,000GW를 돌파한 후 6월 말에는 1,100GW에 도달했다. 빠르면 올해, 늦어도 2026년 중에는 석탄 화력 발전설비 용량을 추월해 태양광이 제1 발전원이 될 것이다. 발전량 점유율에서도 2025년 상반기 풍력발전 점유율 12.1%, 태양광 발전 점유율 11.2%, 풍력과 태양광 합산 점유율은 23.3%로 역대 최대이자 수력발전 점유율 11.2%, 핵발전 점유율 4.9%를 크게 앞서고 있다. 반면 석탄 화력 발전량 점유율은 2015년 이후 역대 최저인 55.9%를 기록했다. 인도 역시 2025년 상반기 18GW의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해 2024년 같은 기간 설치된 12GW 대비 51% 증가했다. 21세기는 전기의 시대이며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4년 20%에서 2050년 52%가 될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의 필요성 증가와 AI 데이터 센터, 전기차, 히트펌프 등 전력 수요가 높은 산업의 확대 때문이다. 전기화 시대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이며, 대한민국 역시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세대를 위한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

[기고] 방송통신대 동두천 학습관 폐관, 철회하라

“교육은 기회이며,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최근 방송통신대학교 동두천 학습관의 폐관 방침은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시민의 배움터이자 희망의 공간이던 학습관이 충분한 공론화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동두천은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시 면적의 42%에 달하는 땅을 미군에게 제공하며, 경제적 피해와 발전 제약을 감내해 왔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조건 속에서도 시민은 묵묵히 삶을 일구어 왔으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일터에서 고된 하루를 마치고 야간이나 주말을 쪼개 학습관을 찾는 이들, 육아와 생계를 병행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학업,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시작한 도전. 동두천 학습관은 이 모든 이들에게 열린 배움의 창이자 재도약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문이 닫히려 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본부는 효율성과 운영비 절감을 이유로 동두천 학습관 폐관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조직-인력 운영 효율화를 위한 조직개편 기본계획'을 시행하며, 전국 12개 임차 학습관과 2개 별관 학습관의 운영 종료를 순차적으로 추진 중이다. 해당 지침은 임차 건물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동두천 학습관 또한 '임차 시설'이란 이유로 폐관 대상에 포함됐다. 문제는 폐관의 기준이 '소유 여부'에 치우쳐 있으며, 실제 교육 수요나 지역 특수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운영 효율이란 명분이, 지역 시민들의 절박한 배움의 권리를 외면할 만큼 정당한가?" 현재 동두천 학습관은 경기북부 5개 시-군에 거주하는 방송통신대에 재학 중인 300여명에게 실질적 학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서 학습관은 사실상 유일한 고등교육 접근 통로이며, 이 시설이 문을 닫게 되면 학습자들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곧 학업 포기와 학습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평생교육, 지역균형발전, 교육복지. 이 세 가지 가치는 오늘날 국가와 공공기관이 강조하는 핵심 원칙이다. 그러나 정작 수도권 북부의 소외지역 시민들은, 자신의 배움터 하나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동두천시는 2024년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이를 계기로 유아부터 노년까지 전 생애에 걸친 교육지원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시민 누구나 학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교육 사다리를 놓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학습관은 그 사다리의 마지막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 고령층 시민에게 이 공간은 재도전의 상징이며, 지역사회 복지 기능을 보완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교육을 포기하는 도시는 미래를 잃는다. 시민이 학습을 포기하는 사회는 더 큰 복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 폐관되는 것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교육의 희망'이다. 지금 멈추는 것은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그러므로 이 결정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폐관은 시민과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국가의 교육 철학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학습관 존치를 다시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에게도 간곡히 호소한다. 지역의 작은 배움터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누구든, 어떤 형편이든,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동두천시는 시민과 함께 학습관 존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박형덕 동두천시장 강근주 기자 kkjoo0912@ekn.kr

[이슈&인사이트]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의 숨겨진 원인

일본의 잃어버린 기간을 20년, 30년, 40년으로 다양하게 말한다. '잃어버린 20년'은 10년 전 2015년에 제기되었다. 1995년 GDP 5조 달러가 2015년까지 20년간 동일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30년'은 10년 후인 2025년에 제기되었다. 그때까지 30년간 GDP가 5조 달러에 머물렀다. 또한, 닛케이 지수도 1989년 고점을 회복하는 데 34년이 걸렸다. '잃어버린 40년'은 '잃어버린 30년'에 '버블 10년(1985년~1995년)'이 더해진 수치다. '잃어버린 40년'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 가치를 65.7% 절상한 플라자 합의를 맺은 1985년에서 시작한다. 1987년에 루브르 합의를 통해서 일본 금리를 5.0%에서 2%로 낮춘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밝게 타오르듯 일본경제는 낮은 금리로 1985년에서 1991년에 걸쳐 부동산, 주식, 명품, 문화재 등 국내외 사회 전반에 걸쳐 거품이 전개된다. 일본의 닛케이 지수는 1985년 11,992에서 1989년 38,915포인트로 3.5배 상승한다. 부동산도 같은 기간 3.5배, 골프장은 4배 폭증한다.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산다는 말이 유행했다. 1989년 세계 시총 20위 기업에 14개의 일본 기업이 포함되었다. 젊은이들은 고급 차 폭주족, 명품 플렉스, 레저 열풍이 불고 세계 명품의 70%를 일본이 소비했다.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 리조트의 60%를 사들이고, 록펠러 센터, 페블비치 골프장 등 미국 부동산을 투매했다. 이러한 일본경제는 1989년 재할인율 인상으로 금융 긴축이 시작되어 1,500조 엔 규모의 자산이 공중분해 되면서 붕괴했다. 일본경제 붕괴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의해서 이미 예고되었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시가 나고야시를 꺾고 1988년 올림픽 최종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이다. 당시 일본의 GDP($1조 860억)는 한국의 17배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시발로 GDP 격차는 1990년 11배, 2000년 9배, 2010년 5배로 급감했다. 드디어 2024년 한국의 1인당 GDP($36,132)가 일본의 1인당 GDP($32,859)를 추월했다. 일본의 전체 상품 수출액이 한국과 비슷하다.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쌀을 사려고 공항에서 줄을 선다.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25년 세계 최강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6위, 일본은 8위다. 2024년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이 내놓은 '2024 글로벌파이어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5위, 일본은 7위다. 2024년 OECD 국제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한국은 1위, 일본은 5위다. 폭삭 망한 일본의 자화상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의 주요인으로 1995년의 고베 대지진, 2011년의 도호쿠 대지진 등 천재지변과 외생변수, 특히 미국의 환율 조작과 금리 인하 등을 든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1970-80년대, 세계 최고 품질 경쟁력의 일본경제 폭망 원인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실마리를 일본 뿌리 산업의 원조라고 할 오타쿠 공단에서 찾는다. 7·80년 대에 이곳은 일본 장인정신 '모노즈쿠리'의 산실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만개의 공장은 2005년 5천 개로 급감했다. 뿌리 산업의 붕괴는 2009년 도요타사의 천만 대 리콜로 연계된다. '하류사회'라는 책을 펴낸 미우라 아츠시는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경우 잘살아 보겠다는 목표 의식이 없다"라고 했다. 유학을 가지 않고 이공계를 기피한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도 “요즘 일본인은 생각하려 하지 않고, 작은 행복에 만족하려는 소시민적 성향이 짙다"라고 진단한다. 매뉴얼 사회가 편하고 그래서 악명높은 플로피 디스크 사회가 전개된다. 성년 젊은이의 60%가 캥거루족이다.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마키는 일본 남자를 2006년 초식 동물 의미의 초식남으로 명명한다.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급감하는데 국민은 이민이나 입양아를 수용할 포용력이 없다. 인구가 줄고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된다. 생산 인력은 급감한다. 이것은 투기와 거품으로 노동 가치가 무너진 거품경제의 후유증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이 남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거품경제의 초입은 아닌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숙고할 일이다. 윤덕균

기후경제 언박싱 ⑤ 이재명의 에너지고속도로, 실현될까?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산업을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질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약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에너지고속도로다. 박정희 정부가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정부가 인터넷고속도로를 만들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고속도로라는 새로운 경제 동맥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력수요를 분산해야 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부터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 값비싼 해저 송전망 건설이 가장 급한 일인가 하는 비판, 그리고 이재명 정부 5년 내에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다양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차기 전기학회장)와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하나하나 분석해본다. 한국의 전력망이 심한 병목 현상에 부닥쳤다는 지적은 몇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발전소를 지어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송전망을 건설하지 못해 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동해안에 화력발전소 등이 지어졌으나 송전망이 부족해 총 설비용량 17.9 기가와트(GW) 가운데 최대 7.4 GW의 전력이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도 수요처가 많은 수도권까지 끌어올 송전망이 없어 출력제한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호남은 20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가 중단되었다. 반면에 인공지능(AI)의 발달과 경기도 남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전기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RE100(재생에너지 100%로 전기를 조달) 캠페인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많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커서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소보다 더 많은 전력망을 필요로 한다. 또한 재생에너지는 다루기가 까다로워 과거처럼 일방향의 전력망이 아니라 좀 더 스마트한 새로운 전력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과 호남지역을 잇는 서해안 전력망을 시작으로, 호남과 영남을 잇는 전력망, 동해를 따라가는 전력망까지 전국을 U자형으로 에워싸는 해저 송전망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해저 송전망은 기술적 어려움과 건설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지상 송전망에 비해 비용이 몇 배~ 몇 십 배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 송전망은 교류(AC) 형태로 전기를 보내지만 해저 송전망은 전기를 직류(DC)로 바꿔 전송하는 등 상당히 다른 기술을 요구한다. 한국은 제주 일부를 빼고는 장거리 해저 송전망 설치 경험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값비싼 송전망 건설에 앞서 전력시장을 개편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부터 “국산 기술에 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해저 송전망 건설을 늦춰야 한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정부만의 정책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서해안 해저 전력 고속도로' 계획을 발표했다. 호남에서 생산한 원전과 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2036년까지 해저에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를 깔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것을 2030년까지 서해안에 첫 1개 선로를 완공하고, 2040년까지는 서해안 뿐 아니라 남해안, 동해안을 포함해 U자형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박종배 교수는 “밀양 송전탑 갈등 이후 정부와 한전의 송전망 건설 방침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다. 지상 송전망은 더 이상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서 바다 밑이나 땅 밑으로 송전망을 구축하는 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2005년부터 경남 밀양시에 건설 예정이던 765kV 초고압 송전선과 송전탑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과 한전 간에 벌어진 분쟁이다. 주민들은 건강과 생업 피해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분신을 하는 등 2014년 이후까지 갈등과 비극이 이어졌다. 밀양 사건 이후에도 송전망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은 갈수록 강해져 송전망 건설이 보통 10여년 씩 늦어지고, 이는 비용 증가와 국가 경제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김승완 교수는 “해저 전력망에 쓰이는 기술은 전부는 아니지만 국산화가 많이 되어 있고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도 있다. 지상 송전망 건설에 따른 민원 해결에 많은 비용이 들고, 제 때 건설을 못하면 경제에도 부정적 효과를 주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해저 전력망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에너지고속도로가 수도권 집중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시골에도 공장 만드는데 왜 삼성과 SK는 수도권만 고집하냐. 반도체 공장을 지방으로 옮겨라" 같은 비판이 대표적이다. 수요처를 지방으로 옮길 생각을 해야지, 지방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에너지고속도로는 지역 균형 발전과 분산형 에너지 확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승완 교수는 “에너지고속도로는 하나의 브랜드명일 뿐, 실제 정부의 설계에는 분산형 에너지를 포함한 미래형 전력망 개념이 모두 들어있다"고 말했다. 서해안 해저 송전망 외에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송전로,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위한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배터리 설치로 송전망 수요를 줄이는 에너지휴게소, 계통안정화 설비 등 5대 설계요소를 다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방은 생산만 하고 수도권은 소비만 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설계도가 에너지고속도로의 핵심"이라면서 해저 송전망 뿐 아니라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 송전망의 필요성을 줄이는 전력 안정화 장치 등이 모두 잘 건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지난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에도 속도를 내달라"고 당부하면서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에너지고속도로란 서울로 가는 뻥 뚫린 길이 아니고, 대한민국 전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첨단 전력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배 교수는 “현실적으로 대규모 전력 수요를 가진 기업들을 전부 지방으로 이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수도권 기업들에게 전기를 제공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등 새로운 전기 수요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수요 분산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겠지만, 수도권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신규 송전망 건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분산화와 송전망 건설이라는 투트랙(two track)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전기의 수요지와 공급지가 달라서 전력망이 더 필요하다는 데는 기업들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문제는 새로운 전력망을 구축하는데 드는 재원 마련이다. 올해 5월 한전이 발표한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력망 확충에 72조 8천억 원이 들고, 서해안 해저 송전망에만 11조 원 가량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 제도상 전력망 건설과 운영은 한전의 책임이다. 그런데 한전은 지난해 말 기준 부채 규모가 200조 원, 누적 적자가 34조 7천억 원이다. 전기요금이 정치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경영상의 이유로 전기요금을 올릴 수도 없다. 이재명 정부는 아직까지 에너지고속도로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선 공약에서는 공공- 민간 합동투자 모델을 도입하고, 민간 자본 유입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한다는 포괄적인 안만 제시했다. 국비, 전력산업기반기금, 발전사업자 부담금, 녹색채권 활용 등 다양한 방안을 수립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셈이다. 김승완 교수는 “그동안 전력망 재원 마련과 건설 책임은 한전에 있었으나, 이제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민간과 함께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영국처럼 직접 재정을 투입하거나 국책은행 출자,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려면 그만큼 수익이 보장되어야 하고, 한전 역시 계속 적자를 늘릴 수는 없으니 결국 전력망 구축 비용은 전기요금에 전가되거나 국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종배 교수는 “결국은 전기요금이 더 인상돼야 한다"면서 “송전망 건설 속도를 높여야 조금이라도 소비자의 요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고속도로를 실제로 건설하려면 수많은 난관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원 마련부터 비용 분담, 노선 설계에 따른 각종 민원 등을 해결해야 한다. 송전망을 해저에 건설하더라도 해저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지점의 변환소, 변전소 건설에서 또 민원이 발생한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서울로만 가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역균형 발전을 함께 도모하려면 RE100 산업단지 건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 등 여러 가지 제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범 부처 차원의 강력한 콘트롤 타워를 성공의 열쇠로 꼽았다. 박종배 교수는 “에너지고속도로를 만들려면 산업부는 물론이고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부처와 기관들이 관련된다. 에너지고속도로가 2040년, 2050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생각한다면 범 부처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이왕에 범부처 차원의 사업을 추진하려면 전력망 뿐 아니라 통신망과 수소망, 가스망을 포함해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승완 교수는 “정책이 성공하려면 리더십 차원의 강한 의지, 재원, 전문 인력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전문 인력은 있는 것 같다면서 재원을 마련할 창의적인 방법과 실행력을 성공의 조건으로 꼽았다. 시간도 촉박하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에 끝난다. 그 때까지 기후에너지부를 만들고, 전력망 구축과 재원 조달을 위한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고, 세부 설계를 완성해 서해안 해저 송전망을 1개라도 깔려면 빠르고 강한 추진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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