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집값 안 잡혀 vs 장기적 효과”…보유세 강화 ‘유효성’ 논란

정부의 10·15 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전문가들 중에선 장기적 집값 안정을 위해선 보유세 강화 등 부동산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단 오는 5월 9일 일몰되는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가 연장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특히 6.3 지방선거 이후 보유세 강화 등 대대적인 세제 개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를 두고 부동산업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거 정부마다 세금을 올리거나 내려도 집값은 금리·유동성·공급 여건에 따라 움직여 왔다는 회의론이 나온다. 반면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낮춰야 장기적으로 시장 안정과 불평등 완화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재산세·양도소득세 강화 등 부동산 투기를 세금을 동원해 잡겠다고 나선 첫번째 사례다. 그러나 오히려 2000년대 중반 서울·수도권 집값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수도권 수요 집중 속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반대로 종부세 완화와 취득세·양도세 인하 등 감세 기조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대신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보금자리주택 등 공급을 통해 집값 잡기에 나섰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 여파 속에 수도권 일부는 하락·정체, 지방은 상승하는 등 지역별로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이 두 정부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집값 추세가 세금보다는 다른 요인과 관계가 깊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취득세 영구 인하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세 부담을 더 낮추고, 재건축 규제 완화와 분양가상한제 축소 등의 정책이 시행됐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확산됐고, 저금리와 전세난이 맞물리며 매매·전세 가격이 동시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종부세율 인상과 과세 대상 확대,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강도 높은 보유·양도세 인상에 대출 규제까지 더했지만, 공급 부족과 초저금리, 서울 쏠림 수요가 겹치면서 수도권 아파트값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세제를 강화했지만 집값은 오히려 더 올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윤석열 정부는 다주택자 종부세·양도세 완화와 중과 유예, 취득세 일부 조정 등을 통해 다시 감세 기조로 선회했으나, 고금리와 경기 둔화, 수도권 입주 물량 감소 우려가 겹치면서 지역별로 하락과 반등이 엇갈렸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아직 본격적인 보유세·양도세 법 개정에 나서지 않은 채 6·27 대출 규제, 9·7 공급 대책, 10·15 부동산 대책 등 규제·공급·대출 카드를 먼저 내놓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1년 동안 8.71% 올라 문재인 정부 시기 연간 최고 상승률을 웃돌았고, 강남·한강벨트 지역은 10~2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10·15 대책 이후 거래량은 80% 안팎 줄고, 매물과 전세 물건도 20% 가까이 감소하는 등 거래 위축과 전세난이 동시에 나타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정책이 반복됐지만, 집값과 전·월세는 금리와 경기, 공급 여건이 맞물리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이 때문에 세제가 집값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거래와 매물 흐름, 계층별 부담을 조정하는 보조 변수에 가깝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6.3 지방선거 전후를 염두에 두고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조정을 포함한 부동산 세제 개편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강한 규제와 공급 대책에도 서울 집값과 전·월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세제를 통해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장기적인 집값 안정과 불평등 완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토지+자유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정책 보고서는 “보유세 강화 없이는 집값을 잡을 수도, 불평등을 완화할 수도 없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우선 토지와 건물을 분리해 과세하고, 토지에는 모든 보유분을 합산해 누진적으로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는 공급이 고정돼 있고 개발이익이 집중되는 만큼, 많이 가진 개인·법인일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투기와 과도한 보유를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건물 보유세를 비례세 중심으로 단순화해 전반적인 부담을 완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토지는 강하게, 건물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과세해 투기성 토지 보유는 줄이되 주거·임대·생산에 쓰이는 건물 공급은 위축시키지 않겠다는 취지다. 또 보유세 강화와 함께 거래세 구조를 손보자는 주장도 한다. 보고서는 1주택자에게 최대 80%까지 적용되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일반 부동산과 같은 최대 30%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집값과 시장이 일정 수준 안정된 이후에는 취득세·등록세 등 거래세를 인하해 “보유는 비싸게, 사고팔기는 덜 비싸게" 만드는 조합을 제시했다. 이는 '똘똘한 한 채'에 과도한 세제 혜택이 집중된 구조를 완화하고, 서울 핵심지로의 수요 쏠림과 자치구 간 가격 격차 확대를 줄이기 위한 구상이다. 진성준 의원은 “재고주택이 시장에 나오게 하려면 보유세를 올려 집을 내놓도록 유도하고, 대신 거래세를 낮춰 이동 비용을 줄여줘야 한다"며 “이런 방식의 보유세 강화가 장기적으로 집값 상승 압력을 낮추고 부동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도 있다. 미국은 주·카운티별 재산세 체계를 통해 주택 보유에 지속적인 세 부담을 부과하고 있는데, 재산세율이 높을수록 집값이 낮게 형성되고 젊은층 자가점유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됐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분석에 따르면 재산세율이 두 배로 높아질 경우 같은 임대수익을 내는 주택의 매매가격은 평균 약 20% 낮아지고, 재산세율이 약 0.8% 수준인 캘리포니아에 2%대 세율을 적용하는 시뮬레이션에서는 집값이 약 18%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재산세 인상이 단기적으로는 보유 부담을 키우지만 그 부담이 집값에 '미리 반영된 할인'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는 주택 소유 구조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보유세 강화가 단기간에 집값을 끌어내리는 수단이 되기는 어렵지만, 거래세 조정과 함께 설계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집값 상승률을 둔화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유세나 양도세를 건드릴수록 매물 잠김과 전세난이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세제를 강화할 경우 일부 투기 수요는 억제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매물이 줄고 임대 시장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집값이 1년에 8%씩 오르는 상황에서 보유세를 미국처럼 '20억 초과 1%'로 올린다고 해서 강남 집주인들이 과연 집을 팔겠느냐"며 “유동성이 풍부한 국면에서는 보유세 인상만으로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자산가 중심의 매수 구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이후 일부 매물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시장 전체 흐름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은퇴자나 일반 직장인의 보유 부담이 먼저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를 강화하면 소득이 없는 은퇴자·고령층의 부담이 커지고, 양도세를 강화하면 매물이 잠긴다"며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은 반드시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주택자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차등하는 방식이 '똘똘한 한 채' 쏠림과 강남 고가 아파트 가격 급등을 불러온다"며 “보유세를 강화하더라도 주택 수가 아니라 보유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규제를 강화하면 문재인 정부 때처럼 거래 절벽이 나타나고, 그 부담이 결국 집값과 임대료에 전가되는 효과가 생긴다"며 “세금을 아무리 올려도 그 부담은 가격에 얹혀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제만으로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관심 집중’ 추가 공급 대책…시장 안정화, 속도·물량 ‘키포인트’

10·15 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1월 중 추가 공급 대책을 예고했지만, 과연 시장이 체감할 만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역대 정부마다 대규모 공급 계획을 내놓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고,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 역시 착공까지 최소 8~10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단기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따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속도와 물량을 동시에 확보하는 '투트랙 공급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공부지 활용을 비롯해 리모델링, 오피스텔, 빈 상가 전환 등 비교적 단기간에 공급이 가능한 대안들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집권 초기마다 '공급 확대'와 '역대 최대 공급'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 시장에서 나타난 결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왔던 게 현실이다. 수치상 주택 공급량은 늘어났지만, 집값과 전월세, 지역별 체감도는 오히려 왜곡되거나 양극화됐다. “공급만 늘리면 집값이 잡힌다"는 단순 공식은 번번이 작동하지 않았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 공공택지 지정과 대규모 주택 공급을 병행하며 주거 안정을 표방했지만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속에서 강남과 이른바 '버블세븐'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했다. 버블세븐은 2006년 전후 부동산 급등기에 집값 거품(버블)이 많이 끼었다고 정부와 시장이 공통 인식했던 7개 주요 지역을 묶어 부른 표현이다. 보통 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구와 경기 분당·평촌·용인 일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또한 연평균 36만 가구 수준의 공급에도 불구하고 청약 과열과 '로또 분양' 논란이 확산되며, 공급 확대가 실수요 안정이 아니라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반값 아파트'를 내건 보금자리주택 정책으로 공격적인 공급 확대에 나섰고, 단기적으로는 매매가격 안정 효과를 냈다. 그러나 계획 대비 착공이 크게 미달하면서 공급 공백이 발생했고, 매매 대기 수요가 늘어나는 사이 전세물량이 줄며 전세난이 심화됐다. 매매가는 눌렀지만 전세가격 급등과 서민부담 확대로 이어진 경험은 공급 방식에 따라 시장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는 전세난 해소를 목표로 공공임대와 기업형 민간임대(뉴스테이) 확대에 나섰고, 연평균 주택 준공 물량은 45만 가구로 크게 늘었다. 전세 시장은 점차 안정됐지만, 임대료 수준과 입지 문제로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질 좋은 임대'라는 목표와 달리 실수요자에게는 비싼 장기 임대로 인식되며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수요 억제에 집중하다가 집값 급등 이후 대규모 공급 정책으로 선회했고, 연평균 54만 가구로 역대 최대 공급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서울·수도권 집값과 전세가격은 급등했다. 공급이 도심 선호 지역과 어긋난 데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인기 지역 신축이 막히면서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심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 물량 숫자는 늘었지만 집값 폭등과 전세불안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 역시 5년간 270만 가구 공급을 내걸며 역대급 공급 확대를 약속했지만, 고금리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건설 경기 위축이 겹치며 인허가와 착공물량이 급감했다. 규제 완화로 장기 기대는 키웠지만, 단기적으로는 공급 절벽 우려가 커지며 시장에 또 다른 불안 요인을 남겼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20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10·15 대책'의 후속인 추가 주택공급 방안이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공식화했다. 이 자리에서는 “공급 대책은 이미 마련돼 있으며, 발표 시점은 늦어도 1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고,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국회 상임위와 당정 보고에서 1월 중 발표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추가 공급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도심 곳곳에 흩어진 공공청사·파출소·주민센터 등 공공용지를 재건축·복합개발로 재편해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를 통해 멈춰 선 민간 사업장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공청사 복합개발은 설계와 인허가만 정리되면 입지와 수요가 어느 정도 검증된 지역에서 비교적 빠르게 착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지금 발표하는 물량이 실제로 언제, 어디에 지어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PF 역시 단순한 만기 연장이나 추가 대출을 넘어 채권단 조정과 부실 사업 정리 원칙을 분명히 하고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자금이 신속히 공급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공급은 공공과 민간이 투트랙으로 함께 가야 한다"며 “공공 물량만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과 민간이 동시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금융 환경을 만드는 것이 1월 대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이어 “이번에는 공공과 민간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속도로 집을 지을 것인지까지 보여줘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 같은 중장기 사업 외에도 이미 도심에 존재하지만 활용되지 않고 있는 '즉시 투입 가능한 재고'를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빈 상가와 공실 오피스, 국제업무센터 등 유휴 건축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고, 리모델링과 대수선을 통해 빠르게 공급 물량을 늘리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최원철 한양대 융합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금 당장 실효성이 있는 공급은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건물을 주거로 바꾸는 것"이라며 “빈 상가나 오피스, 공실 건물을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원룸, 공유주거 형태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소방법과 용도 규제 등으로 주거 전환이 가로막혀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시대가 바뀐 만큼 비어 있는 공간을 쓸 수 있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리모델링과 대수선 역시 단기 공급을 늘릴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최 교수는 “재개발·재건축은 입주까지 8~10년 이상 걸리고, 분담금 부담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며 “반면 대수선은 현재 거주하면서도 비교적 빠르게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건설사들이 대수선 방식으로 '살면서 고치는 주택'을 제안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시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고쳐 쓰는 주택'이 보편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최 교수는 “파리나 로마, 런던 같은 도시는 100년, 200년 된 건물을 계속 고쳐 쓰며 주거로 활용한다"며 “우리는 30년만 되면 헐고 다시 짓자는 사고방식이 강한데, 이 인식부터 바뀌어야 주택 정책이 선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대규모 재개발은 극히 제한적으로 추진하고, 대부분은 기존 건축물의 활용과 정비에 초점을 맞춘다는 설명이다. 젊은 2030세대를 겨냥해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둔 공급 전략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꼽으라면 결국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주택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며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 같은 비(非)아파트 주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패스트푸드형 주택 공급"이라는 표현을 썼다. 오피스텔과 상가 전환 주택은 인허가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도심에 이미 위치해 있어 단기간 내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상권 침체로 공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주거 수요와 결합하면 도시 공간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젊은 세대는 역세권 오피스텔을 실질적인 주거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 단기 수급 불안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위원은 “아파트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2030세대는 오피스텔을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기성세대의 주거 인식에 맞춘 공급이 아니라, 지금 수요가 받아들일 수 있는 주택부터 늘리는 게 단기 시장 안정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주택공급 vs 마천루…용산정비창 개발 ‘진짜 공공성’ 논란

서울 마지막 초대형 공공부지로 꼽히는 용산정비창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공공자산 헐값 매각 금지' 지시 이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용산정비창 내 주택 물량을 두고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업 추진이 사실상 멈춰 선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과 전문가들은 공공성을 앞세운 '도심 주택공급' 논리와 사업성·도시 완성도를 중시하는 '랜드마크 개발론'이 충돌한 결과로 해석한다. 용산정비창 개발은 그동안 '서울판 허드슨야드'를 표방해 왔지만 뉴욕 허드슨야드와 용산은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드슨야드 갈등은 방치된 철도부지를 되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였다면, 용산정비창은 이미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핵심 공공자산이다. 단순한 벤치마킹을 넘어 “이 부지가 서울에서 어떤 장기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용산정비창 개발 구상은 국토부·서울시·코레일·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함께 '국제업무·MICE(회의·전시·컨벤션) 중심 복합도시를 조성하되, 내부에 주택 6000가구를 포함한다'는 큰 틀에서 출발했다. 국제업무·컨벤션·문화시설과 초고층 랜드마크 타워를 조성해 서울의 대표 비즈니스 거점으로 키우고, 그 안에 일정 규모의 주거를 배치하는 구조였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자산 매각 전면 중단과 공공자산 헐값 매각 금지를 공개적으로 지시하면서다. 국유지였던 용산정비창도 이 지시의 영향권에 휩싸였다. 서울시와 국토부가 민간업체에게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맡기면서 지나치게 용산정비창 땅을 싸게 팔아 수익을 챙기게 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매각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이후 사업지내 공급할 주택 규모로 논란이 옮겨 붙었다. 국토부는 서울 도심 주택 공급 부족을 이유로 “용산에 최소 1만~1만2000가구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2만가구까지 거론했다. 반면 서울시는 “처음부터 국제업무·MICE·문화 중심의 랜드마크를 전제로 한 계획"이라며, 고밀 주택 배치는 교통·학교 등 기반시설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고 도시 균형을 해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권대중 한성대 석좌교수는 “주택 물량 자체보다 용산정비창을 어떤 성격의 공간으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개발 철학의 차이"라며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물량부터 논의하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정비창 논쟁은 '집을 많이 짓는 것이 공공성인가, 아니면 도시 전체의 기능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공공성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국토부는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공공성의 핵심으로 보는 반면, 서울시는 국제업무·문화·공원·보행축을 중심으로 한 도시계획 기능이 공공성의 본질이라는 입장이다. 공공성의 정의를 둘러싼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논쟁은 사업성과 정치적 대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시가 계획 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 청사진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도 깔려 있다. 용산 일대의 업무상업시설 공실률이 37%로 서울 시내에서 가장 높은 상황에서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또 지어 대규모 오피스·점포를 공급하는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마천루의 저주'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전세계적으로 초고층 빌딩을 짓고 나면 극한의 경기 불황이 닥친다는 '징크스'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등이 대표적 사례다. 시도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 이번처럼 초고층빌딩이 포함된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을 추진하다 극심한 경제 침체에 사업이 아예 무산됐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이견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주택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향후 도심 공공부지를 둘러싼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택 공급=공공성'이라는 단순한 시각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도로·공원·문화시설 등 도시계획시설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인 반면, 공공주택은 혜택이 특정 입주민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용산을 주거 위주로 채울 경우 입주민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업무·고용·문화·공원 기능을 강화하면 훨씬 더 많은 시민과 방문객이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서울 도심 핵심 입지에서는 주거가 중심이 아니라 보완적 기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시공학 분야에서도 공공성을 주택 물량이 아니라 도시 구조와 공간 운영의 문제로 본다. 누구에게나 열린 보행 네트워크와 공원·광장·문화시설을 조성하고, 개별 개발이 도시 전체 맥락을 해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도시적 공공성이라는 설명이다. 철도와 한강, 국립중앙박물관, 도심 업무지구가 맞닿은 용산정비창 같은 결절점에서는 고밀 주거보다 이러한 도시적 공공성을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서울 전체의 경쟁력과 일상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는 집값 안정 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용산정비창 논쟁은 주택 공급 확대 여부를 넘어 서울 도심 핵심 공공부지를 어떤 기능과 역할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공공성 판단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허드슨야드는 철도 차량기지(레일야드) 상부를 데크로 덮고 초고층 오피스·레지던스·상업시설·공원·문화시설을 복합적으로 조성한 대형 개발 사례다. 철도 정비창 상부에 국제업무·주거·상업·MICE 기능을 얹으려는 용산정비창과 개발 방식이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도심의 마지막 대형 유휴부지'에 새로운 스카이라인과 업무 중심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설명하며 '서울판 허드슨야드'라는 표현을 써 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두 사업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허드슨야드는 방치된 레일야드를 재생한 프로젝트에 가깝지만, 용산정비창은 이미 서울 한복판의 핵심 공공부지"라며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뉴욕이 '버려진 땅의 재활용'에서 출발했다면, 서울은 '도심 핵심 공공부지를 장기간 어떤 기능의 거점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허드슨야드는 개발 당시 약 250억달러(약 37조 250억원) 규모로 추진됐고, 세제 혜택과 공중권(토지 상공의 개발 권리) 판매, 민간 자본을 통해 초기 비용을 조달했다. 그러나 경기 둔화와 금리 상승, 코로나19 이후 고가 콘도 분양 부진과 임대 공실, 부채 부담 논란을 겪으며 재정 리스크와 지역 불균형을 키웠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반면 용산정비창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공자산 헐값 매각 금지' 지시 이후, 국유지를 어디까지 매각할지, 공공이 토지와 인프라를 얼마나 장기적으로 보유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허드슨야드가 민간 자본 유치와 수익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용산은 공공부지 매각을 어디까지 제한하고 공공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이를 오히려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김인만 경제부동산연구소장은 “용산에 1만2000세대를 넣는다고 서울 주택난이 크게 해소되지는 않고, 입지 특성상 주거 안정 효과도 제한적"이라며 “6000세대 수준의 복합개발을 조기에 안착시키거나, 토지 매각 재원으로 다른 지역에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성걸 교수는 “용산 같은 도심 핵심 입지는 한 번 조성하면 100년 이상 가는 공간"이라며 “당장의 주택 물량이나 용적률보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 구조인지가 먼저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강, 용산역 일대와의 연계 등을 고려해 허드슨야드가 겪은 공실·부채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는 설계가 '서울판 허드슨야드'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적자 공사 10곳 중 4곳…“구조적 문제, 이러단 다 망해”

K-건설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공사비 급등, 과도한 저가 발주, 물가 인상을 반영하지 않는 비탄력적 계약, 짧은 공사기간 등으로 최근 3년간 준공된 공사 10건 중 4건 이상이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같은 적자 구조는 무리하게 공사를 앞당기거나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해 결국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도급 시스템 개선 등 건설 공사의 계약 구조를 바꾸고 발주·수주 관행을 손보는 등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건설산업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4일 대한건설협회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까지 준공 공사 가운데 적자 공사 비중은 43.7%에 달했다. 공사를 끝내도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 이른바 '적자 장사'가 건설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적자 원인으로 입찰 단계의 공사비 과소 책정, 계약 이후 공사비 미조정, 공사기간 압박 등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라기보다 공사비 구조와 발주·수주 관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적자 구조가 원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청의 손실은 하도급 단가 인하, 공기 단축, 대금 지연 지급 등으로 전가되며 건설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고, 업계 안팎에서는 “지금 구조를 방치하면 건설산업의 체질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건설업계 적자 확대의 출발점은 공사비 급등이다. 건설자재 가격은 2021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섰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글로벌 유동성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급등과 공급망 차질이 겹치며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비켜 가도록 설계된 사업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당시에는 중국 수입 차질까지 겹치면서 철근난이 발생했고, 철근·봉강 가격도 크게 뛰었다. 이후 2022년에는 비금속광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폭등했다. 3~5월 1차 시멘트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레미콘과 골재 가격이 줄줄이 올랐고, 2020년 톤당 7만5000원 수준이던 시멘트 가격은 2024년 11만2000원 안팎까지 올라 4년간 50%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2023년에도 2차 시멘트 부족 사태가 반복되면서 공사비 부담은 구조적으로 확대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1~2024년 건설용 중간재 물가는 누적 35.6% 상승해 같은 기간 생산자물가 상승률(22.4%)을 크게 웃돌았고, 공사원가의 37.7%를 차지하는 자재비 급등이 전체 공사비를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인건비와 안전관리 비용, 금융비용 부담까지 동시에 커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친환경·제로에너지 건축 기준 강화로 현장 인력과 관리 비용이 증가했고, 금리 인상 국면에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 부담까지 누적됐다. 분양이 지연되거나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건설사는 공사비와 금융비용을 동시에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에 더해 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과거에는 수익이 남던 공사도 손실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단일 요인이 아니라 공사비·금융비용·분양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 구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적자 수치를 해석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3년간 준공 공사에서 적자 비중이 높다는 점은 의미 있는 지표지만 이를 곧바로 '공사비를 더 올려줘야 한다'는 정책 논리로 연결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공사는 사적 계약 영역이어서 계약 이후 비용이 올랐다고 자동으로 증액되는 구조가 아니며, 공사 유형과 계약 시점, 수주 전략에 따라 손실 원인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적자 공사 비중이라는 수치는 사실이지만, 이를 업계 요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단선적으로 해석할 경우 논의가 왜곡될 수 있다"며 “제도 개선 논의는 비용 구조 변화와 계약 관행, 시장 수용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청의 공사 적자는 하도급과 협력사로 전가되고 있다. 단가 인하 압박, 공기 단축 요구, 대금 지연 지급 등은 하도급 업체의 경영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장에서는 “공사를 하면 할수록 남는 것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사기간 문제도 적자 구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대한건설협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64.1%는 공사기간이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고, 전체 공사의 22%에서는 지체상금을 피하려고 장비와 인력을 한꺼번에 몰아넣는 '무리한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비용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현장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최근 잇따른 건설 현장 사고 역시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협회는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보장하지 못하면 품질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며 적자 시공이 절반에 가까운 상황에서 현장 안전관리와 품질 확보를 위한 인력·시간 투입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과거에는 원청 적자를 하도급에 전가하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무한 전가도 어려워졌다"며 “현장은 비용·공기·안전 압박을 동시에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전반의 위축 신호도 뚜렷하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사가 600곳을 넘어서며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건설업 전반의 폐업 신고 역시 역대 최다 수준까지 불어났다. 여기에 올 10월까지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종합건설사도 40여곳에 달해 2023년과 2024년에 비해 훨씬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면서 중견·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부도·법정관리와 폐업이 동시에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자 누적과 자금 경색이 실제 법정관리·폐업 급증으로 직결되며 건설업 구조조정 압력을 키우는 국면이라는 뜻이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지난 10월 기준 전국 2만8080가구로, 10년 넘게 이어진 통계 가운데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악성 미분양의 80% 이상이 지방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자 누적과 수요 위축이 지방 건설사와 지역경제를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금융 부담 역시 적자 구조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사 지연이나 미분양 발생 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 비용이 누적되면서 건설사는 공사비 손실에 금융비용까지 이중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 놓인다. 특히 중견·중소 건설사의 경우 자체 자금 여력이 크지 않아 자금 경색이 빠르게 경영 위기로 전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가 지연되거나 분양이 늦어지면 PF 이자가 그대로 비용으로 쌓이는데, 이미 공사비에서 적자가 난 상태에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사와 달리 중견·중소사는 금융비용 부담이 곧바로 유동성 압박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적자 누적을 일시적 불황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본다. 해법의 출발점으로는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 보장이 꼽힌다. 자재비·인건비·안전 비용을 공사비에 합리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면 적자와 안전 리스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민간공사의 경우 계약금액 조정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일괄적인 공사비 증액보다는 비용 구조 변화가 계약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공공공사 역시 총사업비 관리 기준과 예산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친환경·제로에너지 기준 등 사회적 요구가 강화된 만큼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현장의 부담은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주 방식 전환과 산업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최저가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품질·안전·관리 역량을 함께 평가하는 구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적자 구조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고,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정 관리·생산성 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황은 개선되든 악화되든 일정 기간 방향성이 유지되고, 그 과정에서 시장은 자연스럽게 재편된다"며 “모든 회사를 살리려는 접근보다는 변화된 비용 구조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세운4구역은 ‘제2의 대장동’?…개발이익 논란의 진실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용적률 상향에 따른 경관·문화재 훼손 우려를 넘어 서울시와 특정 민간업체 간 유착 의혹까지 불거졌다. 한 매체가 “세운4구역 개발이익이 1조 원에 달하며 특정 업체가 상당 부분을 독점하는 구조"라고 보도한 것이다. 개발이익 산정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이재명 대통령이 아직도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장동 의혹'도 비슷한 양상이어서 시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랴부랴 해명했고, 해당 업체도 토지 전부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매각하겠다며 의혹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재개발 이익 산정 기준이 왜 다른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세운4구역 개발이익 논란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수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양측이 말하는 '개발이익'의 정의와 계산 방식이 애초부터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한 매체는 한호건설 계열사가 세운4구역 민간지분 27.1%를 확보한 점과 시의 대폭적인 용적률 상향을 근거로, 상향 전·후 사업가치 차이를 개발이익으로 보고 최대 1조원대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시 고시 분양가가 지나치게 낮게 잡혀 있고 인근 시세를 반영하면 총수입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을 근거로, 민간 몫이 수천억 원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시는 같은 사업을 두고 전혀 다른 산식을 적용하고 있다. 시는 “민간 토지 등 소유자에게 돌아갈 순이익은 112억 원, 그중 한호건설 몫은 약 34억 원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총수입 3조 3465억 원에서 총사업비 2조 9803억 원을 뺀 3662억 원을 손익으로 본 뒤, 여기에 종전자산(사업 전 토지가치) 3550억 원을 다시 차감하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들은 “원래 가진 땅값까지 이익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건 토지주가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회계상 순수익 중심의 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쟁점은 여기서 갈린다. 사업 전체가 용적률 상향으로 새로 얻게 되는 가치 증가분을 개발이익의 핵심으로 보느냐 여부다. 시는 '토지주의 순수익'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 자산을 이익 계산에서 별도로 떼어내지 않는다. 반면 이를 반드시 제외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여기에 분양가 가정도 다르다. 해당 매체는 시장 시세에 가까운 높은 분양가를 반영해 총수입을 확대하고, 시는 고시된 2491만 원을 기준으로 보수적인 수입을 적용하고 있다.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서로 전혀 다른 대상을 계산한 결과, 1조 원과 112억 원이라는 극단적 차이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적률 상향 전·후 개발이익 변화에 대한 설명도 논점이다. 시는 용적률 상향 이후 기준의 총수입·총지출·손익과 공공기여 2164억 원 등은 제시했지만, 상향 전 사업계획과 비교한 전체 초과이익 손익표나 증가분 규모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언론 보도가 말하는 '상향으로 새로 생긴 이익'과 시가 제시한 '토지주 순수익'이 애초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종합하면 이번 논란의 본질은 특정 숫자 자체라기보다, 개발이익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고 어떤 분양가·비용 가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준 차이와 정보 공백이 해소되지 않으면 세운4구역 개발이익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운4구역 수익 산정 방식에 대한 불투명성은 이 사업이 여러 면에서 과거 대장동 재개발사업과 닮았다는 지적을 불러온다. 두 사업 모두 공공이 사업의 구조·룰을 정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실제 이익 배분은 민간에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다. 대장동의 경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과반 지분을 보유했음에도 배당 구조는 “공공은 확정 수익, 초과이익은 민간 독식" 방식으로 설계돼 집값 상승기 민간이 수천억 원의 이익을 가져간 바 있다. 세운4구역 역시 SH공사가 전체 토지의 약 60%를 매입해 사업 리스크를 떠안고 있지만, 민간(특히 한호건설 계열) 지분은 30% 내외임에도 용적률이 660%에서 1008% 수준으로 크게 상향된 상황이다. 이 상향으로 발생할 추가 이익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민간에게 얼마나 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산정 자료가 없는 상태가 오히려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시는 공공기여 2164억 원을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했다"고 주장하지만, 핵심인 '상향 이전 대비 얼마나 개발이익이 증가했는가(초과이익)'에 대한 비교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공이 룰을 쥐고 있으나, 초과이익 구조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이는 대장동 논란 초기의 문제 제기와 유사한 지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운4구역은 공공이 주요 리스크를 부담하는데 이익 구조는 민간에 열려 있는 준(準) 대장동식 구조와 비슷하다"며 “용적률 상향 이후 사업성을 고려하면 민간 이익이 수천억 원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과이익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한 같은 논란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는 세운4구역 개발을 '종묘–남산 녹지축 복원'이라는 도시계획 전략의 핵심 사업으로 규정했다. 시는 세운지구에 개방형 녹지와 공공임대상가를 조성해 13만6000㎡ 규모의 도심 녹지를 확보하고, 종묘 일대의 역사·경관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또한 세운 일대의 건축물 97%가 30년 이상 노후 건물이고, 목조 건물 57%, 도로 폭 6m 미만 비율 65% 등 안전 인프라가 취약해 정비는 더 미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3일 서울시장 누리집에 게재한 '세운상가 재개발 이슈 총정리' 영상에서 “종묘–남산 녹지축은 도시계획사에 남을 혁신적 모델"이라며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다. 이어 4일에는 세운지구를 직접 찾아 주민 간담회를 열고 “이 문제는 주민 삶의 질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주민 의견을 반영해 사업 병목구간을 조정하고 일정 구체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도 세운4구역 재개발의 필요성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낡고 위험한 도심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 종묘–을지로–남산으로 이어지는 도심축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공통 인식이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상가 재건축 자체는 필요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렇다고 현 방식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제시된 고층·고용적률 조감도는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제 보행자의 눈높이에서는 '절벽'처럼 보일 수 있다. 도시는 한 번 지으면 되돌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역시 “이미 600%대의 높은 용적률에 1000%대 상향을 더하는 것은 특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사업성·공공기여·세운상가 매입·철거 비용 등 필수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감도만 먼저 제시하는 방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두 전문가의 견해는 “개발은 필요하나, 제시된 방식은 검증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모인다. 세운4구역이 강조하는 '녹지 조성 +개발 연계 방식'은 과거 보수정권의 상징사업과 닮은 측면도 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2014년 롯데월드타워 승인 모두 '도시 경쟁력 강화'라는 큰 서사가 정책 추진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세운4구역은 공공(SH)·민간(한호건설 등)·역사문화재(종묘)가 얽혀 있고, 용적률 인센티브·공공기여·민간 이익 배분이 충돌하는 복합 구조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 맞은편이라는 입지는 경관 영향에 대한 국제 기준까지 고려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세운4구역은 개발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추진 방식은 근거와 검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즉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현재 방식에는 더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10.7조 대어’ 가덕도신공항 입찰 전쟁 막 올랐다

정부가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공사기간을 늘려 입찰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건설업체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현대건설이 지난 5월 공기 부족을 이유로 자진 이탈한 후 '간을 보던' 대형 건설사들이 정부의 조율로 조건이 마련됐다. 주택 시장의 끝없는 침체로 불황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 입장에선 오랜만에 토목·인프라 공공 공사에서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일단 현대건설의 컨소시엄에 포함됐던 대우건설이 토목 1위 실적을 앞세워 경쟁에 나선 가운데, 롯데건설과 한화 건설부문도 입찰 참여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전히 공사의 본질적인 문제인 공기 부족·지반침하 가능성 등 핵심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새로 정한 2035년 개항 목표 조차 낙관적이라면서 아예 사업 타당성 검토부터 새로 해야 한다는 이들또 있다. 가덕도신공항 논의는 박근혜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 검토 끝에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지만, 산악 관통 비행과 군·민 공역 중첩, 소음 등 안전·환경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며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무총리실 검증위가 2020년 김포공항 확장안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면서 사실상 백지화됐고 가덕도신공항 신설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국회가 2021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하며 사실상 추진이 확정되고 사업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특별법은 예타 면제, 인허가 단축 같은 신속 추진 장치를 담고 있었고, 국토교통부는 기본계획·사업비·공사 방식을 확정하며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한 해 빠른 2029년까지 개항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문제는 지나치게 짧은 공기였다. 바다를 매립하고 그 위에 부지를 조셩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사를 이례적으로 8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마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부실공사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가덕도는 두꺼운 연약지반이 분포한 해상 매립지다. 따라서 '성토–압밀–계측–안정화' 과정이 필수임에도 기존 계획에는 안정화 계측 기간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4차례에 걸쳐 입찰이 무산된 후 지난해 12월 공사를 따낸 현대건설마저도 정부의 84개월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108개월 이상을 달라고 주장했다. 해상 매립지에서 성토 직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면 활주로·구조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국토부가 기존 계획을 유지하자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수백억 원 규모의 기본설계 권리까지 포기하며 컨소시엄을 이탈했다. 현대건설의 이탈 이후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등 다른 참여사들도 사업성·공기 리스크를 이유로 참여 여부를 꺼리면서 사업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현 공기 기준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해졌고, 국토부 역시 일정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국토부도 기존 산정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1일 공기·공사비 조정 방침을 발표한 김정희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장은 “성토 후 안정화 계측·검증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며 “공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안정화 시간을 포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결국 84개월 공기가 비현실적이었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모처럼 10조원대 초대형 인프라 건설 공사가 시장에 나오자 대형건설업체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단 차기 주관사로 대우건설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기존 컨소시엄에서 현대건설(25.5%)에 이어 18% 지분을 가진 사실상 2대 주주였던 데다, 해상·연약지반 공사에 특화된 시공 이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거가대교 해저침매터널(총 3.7km, 180m 함체 적용)처럼 외해·대수심 조건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고난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부산항·부산신항·이라크 알 포 방파제 등 초대형 해상·항만 공사를 잇달아 성공시킨 이력도 있다. 2023·2024년 국토부 시공능력평가에서도 2년 연속 '토목 실적 1위'를 기록하며 기술력을 다시 확인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국책 초대형 토목사업은 실적과 경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며 “조건이 이전보다 나아진 만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관망하던 롯데건설·한화건설도 참여 검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롯데건설 역시 “공기 연장이 판단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며 기존 컨소 참여 방안을 논의 중이다. 두 회사 모두 공사비 10조 원대의 초대형 SOC 수주 기회를 매력적으로 평가해 왔으며, 리스크 완화로 참여 여건이 한층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롯데건설은 가덕도 접근철도 1공구를 이미 수주해 지역 인프라 공사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롯데그룹이 부산·경남권에 보유한 유통·레저·물류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공항 개항 시 직접적인 수혜도 기대된다. 한화 건설부문은 해양 매립·발파 등 대형 토목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며, 그룹의 방산·항공우주 사업 확장성과 연계한 시너지 가능성도 언급된다. 정부가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조정하며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담하다. 표면적으로는 공기 연장과 사업비 조정으로 기술적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약지반·해상매립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침하·균열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해상 매립지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단계에서 알 수 없는 변수가 시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라며 “특히 가덕도처럼 수심 변화가 급격하고 회류가 강한 구간은 장기적으로 구조물 변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가덕도 해역의 물리적 조건이 일반 매립지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덕도와 영도 사이 낙동강 하구는 물살이 돌아나가는 회류 구간이어서 성토 구조물에 지속적인 횡력(橫力)이 작용한다"며 “이런 곳에서는 활주로나 방파제 같은 중량 구조물도 장기 침하·균열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기 연장이 불가피했지만, 이 조정이 모든 기술 리스크를 해소하는 '해결책'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 같은 우려는 다른 대규모 매립·연약지반 공사에서도 이미 현실화된 바 있다.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매립지는 개항 후에도 활주로·계류장 일부에서 부등침하가 반복돼 수년간 보강·재포장을 이어왔고, 지금도 수백 개의 계측기를 통해 지반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새만금 매립지 역시 도로·항만·산업단지 곳곳에서 침하·균열·피복석 붕괴 등이 발생해 국토부와 전북도가 반복 보수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활주로와 여객청사 주변 침하로 인해 '운항 중단 → 보수 → 재운항'이 반복된 사례로 꼽힌다. 조 교수는 “이들 사례는 해상·연약지반 공사가 설계상 가능해 보이더라도, 실제 시공 단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공기가 늘어나고 유지관리비가 증가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2035년 개항 목표의 현실성을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덕도는 환경·행정·정치적 변수가 얽힌 복합사업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기를 늘렸다고 해서 일정 안정성이 확보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환경영향평가, 철새 도래지 보전, 어업권·보상 갈등, 지자체·중앙정부 간 조율 등 지연 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2035년 개항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상당히 낙관적인 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초기 설계·평가·보상 절차가 한 번만 흔들려도 수년 단위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침체된 시골 부동산…‘GPU 26만장’에 설렌다

전국 부동산 시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공급 약속에 들썩이고 있다. GPU를 활용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어디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대대적인 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과 산업 지형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 만큼 입지에 따라 지역 경제와 부동산 시장의 흐름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해외에서도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은 토지 시장이 먼저 들썩이고 산업·상권·인구 구조가 재편되는 변화가 반복돼 왔다. 국내에서는 태양광 밀집 단지인 전남 해남·영암 일대 '솔라시도', 강원 동해안과 수도권 외곽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그러나 전자파·열섬 등 인체 유해 논란과 지자체간 갈등이 곳곳에서 표출되면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서버 보관 창고가 아니다. 생성형 AI와 초거대 언어모델이 산업·행정·금융·제조 전반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하느냐가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 인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소비하는 존재가 AI가 된 순간 데이터센터는 선택적 시설을 넘어 사실상 '국가 기반시설'로 성격이 바뀌었다. AI 특화 데이터센터는 기존 IDC(인터넷데이터센터)와는 '급'이 다르다. 수만 장의 GPU가 동시에 돌아가고, 그 열을 식히고 연결할 초고속 네트워크·냉각 시스템·전력망까지 한꺼번에 갖춰져야 한다. 정부와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이 확보한 GPU 26만 장을 실제로 돌리려면 1GW 안팎, 즉 천연가스(LNG) 발전소 두 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지역의 산업 계획과 전력 체계가 통째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은 이미 5000~6000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북버지니아 애쉬번에는 세계 전체 용량의 70% 가까이가 몰려 있다. 중국도 '동수서산(東數西算)' 전략으로 250~300개 대형 컴퓨팅센터를 만들며 국가 단위의 AI 연산망을 확장 중이다. 반면 한국은 165곳 정도의 데이터센터 중 6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전력 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 공급망 확충도 고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이 주요국 중 데이터센터 전력 증가율이 가장 빠를 것으로 본다. 2035년에는 지금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AI 반도체 산업과 정부·기업의 AI 전환 속도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말 경주 APEC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에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혀 이미 가파르게 치솟는 전력 수요 곡선에 또 하나의 가속 페달이 밟혔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여의도멘션'에서 “데이터센터는 한 도시의 미래 산업지도를 통째로 바꾼다"며 “이 기반을 확보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일자리·부동산·도시계획까지 흔드는 '전략 인프라'가 되면서 데이터센터 입지는 이제 지역 개발 논쟁을 넘어 전국적 관심사로 번지고 있다. 인구 900만의 수도 서울은 AI 산업의 수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다. 초거대 모델 이용자도, 기업·스타트업도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하지만 서울은 정작 그 핵심 인프라를 지을 수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지을 땅도 없고 지나치게 비쌀 뿐더러 전력망 확충도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북한과 가까워 포격 한 번이면 잿더미가 된다. 비슷한 사례는 이미 해외에서 확인된다. 싱가포르는 2019년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전면 중단했다. 땅은 좁고 전력 수요는 폭증했지만 더 지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국외였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와 인도네시아 탐 지역에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따로 구축해 문제를 풀었다. 박 교수는 “도시 안에서 수요가 폭증하지만 입지는 외부에 둘 수밖에 없는 구조가 싱가포르 모델"이라며 “서울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유사하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인 북버지니아(애슈번)는 워싱턴DC 외곽에 자리한 공급기지다. 수요는 대도시에 있지만, 전력과 부지는 외곽 소도시가 떠안는 구조가 이미 굳어졌다. 이 모델을 서울에 대입하면, 데이터센터는 결국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외곽' 선정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인접 지역을 보면, 경기 남부는 인구 과밀과 높은 땅값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기 북부는 저렴하지만 군사·안보 위험이 크다. 박 교수는 “북한 포 사정거리 안에 국가 핵심 인프라를 둘 수는 없다"며 “이 때문에 전남·신안 같은 최남단 지역이 후보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은 AI 시대의 최대 수요지임에도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짓기 어려운 도시"라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대도시의 기술 수요와 외곽 지역의 입지·전력 인프라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만큼, 국가 차원의 공간 전략과 전력망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강해지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인접 지자체의 역할 분담, 보상·협력 구조, 장기 전력 수급 계획에 따라 한국 AI 산업의 속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다. 데이터센터가 어디에 들어서든 민원이 거세다.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자파·열섬·소음 같은 우려와 불신이 겹치며 사업이 잇따라 좌초되고 있다. 최근 시흥 장현지구 사례가 대표적이다. 9층 규모 데이터센터가 추진됐지만, 주민들은 “전력 케이블과 전자파 영향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며 반대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컸다. 사업자가 “국제 기준 대비 매우 낮은 수치"라고 해명했지만, 지자체의 소통 부족이 불신을 키웠고 결국 사업은 백지화됐다. 시흥 배곧 서울대캠퍼스 AI컴퓨팅센터 후보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입지 검토 소식만으로 반대가 퍼졌고, 주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가 설치한 '전자파 신호등' 같은 장치는 설명 대신 통보로 받아들여지며 갈등을 더 키웠다. 고양 등 수도권 다른 지역에서도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사이 충돌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등의 핵심을 '위험성'이 아니라 '절차와 신뢰'의 문제로 본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자파는 국제 기준의 1~2% 수준으로 인체 영향은 사실상 없다"며 “문제는 주민들이 정보 비공개와 소통 부재를 반복 경험하며 행정과 사업자를 믿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입지 검토 초기부터 자료 공개, 설명회, 완충녹지, 지역 기여책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갈등의 대가는 적지 않다. 최근 3년간 무산·지연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16곳에 달한다. 추진 중인 국내 프로젝트의 약 35%가 주민 갈등으로 1년 이상 늦춰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가 '혐오시설' 인식 속에서 멈춰 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절차 개선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가 어디에 들어설지는 부동산 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1~3GW급 전력을 끌어올 전력망, 초대형 단지 규모, 재생에너지 연계, 지자체·정부 지원이 핵심 기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전남 해남·영암 '솔라시도'다. 이미 2028년까지 3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으며, 100% 재생에너지 기반 운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민간·공공 협력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BS산업은 지난 13일 한전KDN이 솔라시도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분산형 전력망과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함께 추진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AI 데이터센터 신규 구축·운영 △분산에너지 전력망 플랫폼 구축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 데이터 활용 등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솔라시도가 초대형 AI센터에 필요한 전력·인프라 기반을 갖춰가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SK 등 대기업 참여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후보지는 강원 동해안이다. 강릉·삼척·동해 전역은 전국 최고 수준의 전력 여유(총 17GW 발전설비·11GW 송전 가능 용량)를 갖춘 지역으로 평가된다. 화력·원전·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밀집해 있어 전력 안정성이 높고 송전 비용도 낮다. 다만 솔라시도처럼 '3GW급 단일 부지'를 통째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세 번째 축은 수도권 외곽이다. 접근성·인재 수급·물류 측면에서는 가장 매력적이지만, 군사·안보 변수(북한 포 사거리), 복잡한 개발 규제, 환경영향평가, 주민 민원 등 리스크가 크다. 전력망 증설도 필수라 국가 단위 전력계획과 맞물릴 때만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입지 논의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는 주택보다 토지가 먼저 움직이는 시설"이라고 말한다. 실제 미국 버지니아 북부 라우든카운티는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후 토지 가치가 급등했고, 중국 내몽골 역시 데이터센터 유치 이후 농지·산지 중심 지역에서 기반시설·토지 가치가 동시에 뛰었다. 국내에서도 솔라시도·동해안·수도권 외곽 등 후보지 일대에서 토지 문의와 산업단지 관심이 먼저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사업 추진 속도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전력망 확충이 차질을 빚거나 주민 갈등이 반복되면 시장 기대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토지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 상권 유입과 산업단지 확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나타날지는 결국 인프라 구축이 어느 속도로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유령세금’ 재초환 논란 재점화…공급 해법인가 부자 감세인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 시내 주택 공급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자 재건축·재정비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재초환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결국엔 '강남 부자 감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선 재초환 폐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고, 재초환이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핵심 규제로 지목된 것이다. 지난 4월 재초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 동의를 넘기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공식 회부됐고, 이후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완화·폐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공론화가 됐다. 국민의힘은 “국민청원이 성립된 만큼 국회가 즉각 심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폐지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김은혜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재초환 폐지 법률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상정해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은 “예측 불가능한 규제가 정비사업을 막고 있다"며 재초환을 “시장 왜곡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복기왕 의원 등 일부는 “공급 확대를 위해 대폭 완화나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논의의 문을 열었다. 다만 당 지도부는 신중한 태도다. 민주당 대변인은 “폐지·완화는 일부 의원의 개인 의견일 뿐 당론은 아니다"라며 “시장 자극과 형평성 논란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재초환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됐다. 당시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부동산 과열을 억제하고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건축으로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초과한 이익이 발생하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제도는 사실상 유예됐다. 당시 정부는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공급 확대"를 내세워 시행령을 완화했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도는 장기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10여 년간 실질적인 부과 사례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폭등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2018년 1월 재초환을 부활해 전면 시행했다. 이후 서울 강남 3구의 재건축조합들에게 억 단위의 부담금 통보서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실제 부과는 쉽지 않았다. 집값 변동과 개발비 산정, 정상 상승분 계산 방식이 복잡해 산정 기준마다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재건축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2022년 면제 기준을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리고, 이익금 산정 시점도 조합 설립 인가일로 조정했다. 고령자 납부유예·공공기여 감면 등 완화책도 포함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단 한 건의 부과도 없었다. 올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또다시 정비사업 단지를 대상으로 재초환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재초환 부과가 예상되는 전국 단지는 총 58곳이다. 이 중 서울이 29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11곳), 대구(10곳), 부산·광주 각 2곳, 인천·대전·경남·제주 각 1곳 순이다. 서울의 1인당 평균 부담금은 약 1억4700만원으로, 전국 평균(1억300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예상 부담금이 1억원을 넘는 단지는 24곳에 달해 부과 대상이 주로 고가 단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기준보다 다소 줄어든 수치다. 당시에는 전국 68개 단지, 1인당 평균 1억500만원이었으나 올해는 단지 수와 금액이 모두 소폭 감소했다. 국토부는 집값 상승폭 둔화와 공사비 인상 등으로 초과이익이 줄어들면서 예상 부담금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초환 제도를 두고 팽팽히 맞선다.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실질 부과 사례가 거의 없는 만큼 “사실상 유령세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폐지를 추진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거세다. 제도 폐지 혹은 대폭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정부가 공급 의지를 시장에 명확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조합이 실제로 이익을 실현하기도 전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지자체가 부담금을 부과할 기준도, 역량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라리 과감히 폐지하고 정비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게 해야 한다"며 “정부가 공급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폐지를 선언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재초환은 본래 재건축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지금은 주택공급 확대가 정책의 핵심 목표"라며 “정책 목표가 바뀌었으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후 단지가 급증한 상황에서 억제형 규제를 그대로 두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폐지가 부담스럽다면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완화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유지론자들은 재초환을 손댈 경우 강남 고가 단지 중심의 '부자 감세'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공사비가 급등해 재건축으로 남는 이익이 거의 없다"며 “재초환 때문에 사업이 막힌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익이 남지도 않는데 제도를 없애자고 하면 결국 강남 고가 단지 세금만 깎아주는 결과가 된다"며 “재초환 완화는 공급 확대보다 특정 계층의 감세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책학과 교수도 “지금은 제도를 손댈 때가 아니다. 논의는 많지만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며 “재건축·재개발 촉진책으로 삼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사실상 사익에 가까운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초환을 조금 손본다고 공급이 늘어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런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하반기부터 재초환 제도를 완화했지만, 뚜렷한 공급 확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국토정책 Brief'(2024년 4월 22일자)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주택공급 실적은 인허가 42만9000호, 착공 24만2000호, 준공 43만6000호였다. 2005~2022년 평균과 비교하면 인허가는 81.8%, 착공은 54.7% 수준에 불과하다. 수도권으로 좁히면 착공 비율은 54.3%, 서울은 44.3%로 더 낮았다. 완화 이후에도 공급 지표는 반등하지 못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 2년(2022년 6월~2024년 5월) 동안 전국 주택 인허가 실적은 86만7000가구로, 문재인 정부 초기 2년(2017년 6월~2019년 5월)의 116만 가구보다 약 30만 가구 줄었다. 착공 실적은 58만3000가구로, 전 정부 초기의 100만 가구에 한참 못 미쳤다. 서울의 인허가는 18만 가구에서 7만3000가구로 60% 가까이 감소했고, 수도권 전체 공급량도 크게 위축됐다. 이는 고금리 기조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 등으로 공사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재초환이 실제 폐지되더라도 공급 지표에서 의미 있는 상승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외부 변수의 영향이 컸다 하더라도, 정책 효과만 놓고 보면 재초환 완화가 공급 확대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합원 부담이 일부 줄었지만 금융비용과 분양가 규제, 시공비 상승 등 구조적 요인이 사업 추진 여력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재초환 완화가 정비사업의 상징적 걸림돌을 해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공급 확대를 이끌 만큼의 추진력으로 작용하진 못했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재초환 논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10·15 대책 이후 부동산 민심이 악화하자 정부와 여당은 공급 확대 방안을 검토했지만, 동시에 “강남 부자 감세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재건축 단지에 유리한 제도 개편을 추진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부에서는 일단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을 지켜보자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공급 확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섣부른 제도 변경이 자칫 정책 신뢰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지금은 제도를 손댈 타이밍이 아니다"며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부자 감세 논란이 커질 경우 정치권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업 촉진을 내세운 일부 주장은 사익적 동기가 강하지만, 경기와 시장 분위기에 따라 논의가 다시 열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텅 빈 상가를 주택으로”…도심 공급 ‘대안’ 급부상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상가·오피스·지식산업센터 등 비어 있는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사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건축·재정비나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공급에는 최소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지만 공실 상태의 비주거 건물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입주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과잉 공급 여파로 상업용 건물들의 공실률이 높아진 상황도 이 같은 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한차례 추진됐으나, 제도적 한계와 비용 부담 등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만큼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개선과 안전 기준이 관건"이라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서울 도심의 상가와 오피스 공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집합상가의 공실률은 9.27%로, 최근 1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유동인구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강동구 대단지 아파트 상가와 동대문 쇼핑몰 등 한때 '불야성'이던 상권조차 임대 문의가 끊겼고, 연남동·서촌 등 MZ세대(1980년~2000년 초반 출생)가 주도하던 골목상권에서도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오피스 시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올해 1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 등 도심권(CBD)은 2년 만에 4%대로 진입했고, 강남권(GBD)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신축 빌딩의 공실률은 오히려 높았다. 8월 기준 서울 오피스 거래량은 급감했고, 꼬마빌딩 거래액은 3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고금리와 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공실이 늘고 거래는 줄어드는 '이중 침체'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도심 공간 구조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비어 있는 건물을 단순한 '유휴공간'이 아닌 '주거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이미 5년 전부터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8·4 대책(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민간사업자도 공실 오피스·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리모델링 비용 융자 지원과 주차장 증설 면제 등 규제 완화책을 담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결과 실제 사업도 추진됐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안암생활'은 기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 청년 임대주택으로 바꾼 대표 사례다.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0년부터 1인 청년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했으며, 개인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형 구조에 공용 라운지·세탁실을 결합한 도시형 생활주택 모델로 주목받았다. 입주 경쟁률은 10대 1을 넘길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LH는 또 서울도시주택개발공사(SH공사)와 함께 2020~2021년 서울 등 수도권 도심의 공실 오피스·상가를 매입해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종로·영등포·중구 등 10개 사업지에서 총 1200가구, 즉 노후 업무시설과 상업용 건물을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원룸형 주택으로 바꿔 공급했다. 교통과 생활 인프라 접근성이 높고 임대료가 낮아 사회적 반향도 컸다. 그러나 이러한 비주거 건물 주거 전환 실험은 기대만큼 확산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구조 변경 비용과 안전 규제 부담이었다. 바닥 난방과 욕실 설치 등 개조에 수천만 원이 들고, 구분소유자와 임차인 동의 절차도 복잡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저조했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지만, 실제로 '사업성이 보장되는 모델'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보완과 안전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이제 땅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비주거 건물을 주거로 전환할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면서 “현장의 인식과 해석, 사업성 판단이 운동장 차이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제도만큼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송파구 가든파이브처럼 공실이 많은 상업시설이나 도봉구 성균관대 야구장 등 활용도가 낮은 부지는 복합용도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 전환의 핵심 변수는 안전 규제 완화 여부"라며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소방·피난·주차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도 변경 시 구조 하중이나 정화조 용량까지 바꿔야 해 비용이 크게 늘 수 있다"며 “공공이 주도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적 검증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 전환에는 건축적으로 까다로운 기술 기준 충족이 필수적이다.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화재감지기·비상등·피난구 설치 등 소방설비와 피난·방화 구조, 주차장 기준, 정화조 용량 산정 등 추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정화조는 업종별 예상 오수 발생량과 저장일수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고 건축허가 단계에서 설계도면 반영과 보건소·지자체 기준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용도 변경에는 구조 안정성·위생·화재안전·주차 등 다각도의 기술 검증이 뒤따라야 하며, 그만큼 추가 비용과 공사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실이 늘고 있지만 지역별 용도지구 구조가 달라 모든 건물이 전환 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등 이미 복합용도가 가능한 곳부터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국토부도 다시 적극적인 검토에 나서고 있다. 최근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의 주거 전환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용도변경 절차 완화'를 주제로 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문석준 국토부 건축정책관 과장은 “공실 상가나 오피스를 주거로 바꾸는 절차가 복잡해 실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 초 착수했고 내년 1월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존 생활형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환할 때 적용했던 성능설계, 외부 주차 인정, 피난·소방 기준 보완 방식 등을 오피스·상가 전환에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며 “안전 기준은 유지하되 절차적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LHRI)은 지난 9월 발간한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동향과 추진 여건' 보고서를 통해 “LH가 비주택 리모델링 임대주택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도심 오피스·상가의 공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을 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향후 5년간 전국 1만 가구, 서울 4600가구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세부적으로는 숙박시설 1740가구, 업무시설 2440가구, 상가 190가구, 노유자시설 230가구 등으로 전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LHRI는 “역세권 반경 250m 내 상업용 건물의 전환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청년층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해외 사례로 뉴욕·런던 등의 오피스 전환 정책을 인용했다. 미국 뉴욕시는 팬데믹 이후 '오피스 투 레지던셜(Office to Residential)' 프로그램을 통해 세금 감면, 용적률 상향, 신속 인허가를 제공하며 현재까지 약 2만8500가구를 공급했고, 2030년까지 7만 가구 추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LHRI는 “국내에서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공급 확대와 도심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땅 없고 속도 느려…서울 집값 잡을 획기적 공급 대책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집값 불씨는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의 근본 안정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어렵다며, 공급 확대 로드맵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서울의 현실이다. 남는 땅이 거의 없고, 재개발·재건축은 주민 반대와 절차 지연에 가로막혀 있다. 속도를 낸다 해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철거와 공급 공백이 불가피하다. 다주택자 보유분 역시 시장에 나오지 않고, 현행 보유세 체계로는 실질적인 매물 유도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실질적 공급 대안이 무엇인가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보유세를 '장기보유'에서 '장기거주' 중심으로 전환하는 세제개편 △정비사업 병목 해소 △비주거시설의 주거용 전환 △장기모기지형 공공분양 등 현실적인 공급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4개월 여 동안 세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뚜렷한 공급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이 규제 강화로 발목이 잡히면서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공급 차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월세 시장도 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이에 무주택 실수요자와 세입자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추가 공급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SNS에 글을 올려 연내 공급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그는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공급 확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6·27과 10·15 대책이 벌어준 시간 안에 시장 안정을 이끌 실질적 공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책임자로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같은 입장이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10·15 대책 발표 때 “연내 명확한 입지와 규모를 포함한 공급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12월 중 구체적 방안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10·15 대책의 부작용·시장 불안을 잠재울 '특단의 공급 대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장 혼란을 막고 청년·서민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양질의 주택을 합리적 가격으로 공급하는 실효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같은당 이언주 최고위원 역시 “갭투자 억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급 지체와 건설 경기 위축을 감안할 때 착공·분양 일정이 포함된 로드맵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 내에서 뚜렷한 공급 대책을 내놓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7 대책에서 향후 5년간 135만가구 공급을 약속했지만 대부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서울 시내에선 수천가구의 신규 공급만 약속해 시장을 실망시켰다. 이에 따라 다주택 보유자들이 세제 개편을 통해 집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거나, 양도소득세·취득세 등을 조정해 시장에 매울을 공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있다. 이와 관련 최경영 전 KBS 기자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장기거주 특별공제'로 전환하자"면서 “보유가 아니라 실거주 기간이 길수록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정기간이 지나면 세율을 올리겠다는 신호를 주는 일몰형 세제, 주택 구입시 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제를 매기는 제도 등의 아이디어도 내놔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주택 보유자들이 향후 주택 가격 상승을 예상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전문가들 중에는 서울 도심 공급의 핵심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택지 개발로는 속도가 나기 어렵고, 도심 공급은 정비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분양가상한제 같은 병목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며 “공공부지 개발도 필요하지만 중앙·지방·공공기관 간 협의 절차가 복잡해 속도를 내기 어렵 다"고 진단했다. 또 “공공은 영구임대나 사회주택처럼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고, 민간은 정비사업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김제경 투미컨설팅 대표 역시 “서울 수요는 도심에 집중돼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신도시와 한국토지주택개발공사(LH) 중심"이라며 “실질적 공급 해법은 재개발·재건축 외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0·15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이주비·중도금 대출 제한이 동시에 시행돼 정비사업이 사실상 역행 신호를 받았다"며 “재초환 완화와 금융 예외 적용이 병행돼야 공급 신뢰 회복의 단초가 열린다"고 분석했다. 핵심 변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와 금융라인 복원이다. 김 대표는 “이주비·중도금·분양보증 등 자금 흐름을 풀어주지 않으면 착공과 분양 일정 모두 막힌다"며 “자금 흐름이 막히면 정책도 멈춘다. 금융 병목 해소가 공급정책의 전제"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주거용 건물의 용도 전환을 가장 빠른 공급 해법으로 꼽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공실이 늘고 있는 지식산업센터나 대형 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하면 리모델링만으로 두세 달 안에 수만 세대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임대나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전환해 사회적 요구를 채우면서도 시장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며 “신규 착공 없이도 공급을 늘리는 전환형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매입할 때는 취득세 감면과 대출 지원을, 다주택자가 그 주택을 팔 때는 양도세 완화를 병행하면 '기존 주택 순환형 공급 구조'로 전세시장 과열과 갭투기 위험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쉽게말해 정책의 초점을 '새로 짓는 공급'에서 '움직이지 않는 기존 주택을 순환시키는 공급'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이다. 3기 신도시 조기 완공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기존 공급 계획을 더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공급대책을 또 짜는 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격"이라며 “이미 3기 신도시, 공공재건축, 도심복합사업 등 다양한 대책이 발표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집행 속도와 실효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정부가 전략을 자주 바꾸면 시장이 불확실성으로 피로해진다. 일관된 메신저와 빠른 속도가 신뢰를 만든다"면서 “시장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대책'이 아니라 약속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는 정부의 실전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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