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성우창 기자] 일신방직 소액주주들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미술품 공개 청구’가 최근 기각됐다. 일신방직 측 소장품의 가치가 회계에 축소 반영되고, 오너의 사유화 가능성 등이 있어 주주들은 법원의 결정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는 곧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인 주주 제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십∼천억원대 작품도 있는데 재무제표에는 ‘다 합쳐 79억’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신방직은 작년 일부 주주들이 제기한 ‘장부등열람허용가처분’ 청구 결과를 공시했다. 결과는 청구 기각, 주주들이 제기한 신청에 대해 법원이 회사 측의 손을 든 것이다.주주행동에 있어 주주들이 회사 측이 보유한 주주 명부나 회계 장부 열람 등사를 신청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이 눈길을 끈 것은 일신방직이 보유한 ‘미술품 목록’을 회계장부의 일종으로 보며 공개를 신청했기 때문이다.일신방직은 오너 김영호 회장의 유별난 미술품 사랑이 유명해 ‘미술품 자산주’로 분류될 정도다. 현재 일신방직 측이 소유한 미술품은 200~300점에 이르며, 이 중 일부가 일신방직 사옥에 직접 전시되기도 했다. 이 중에는 장 미쉘 바스키아, 하종현, 박서보 등 거장의 작품이 다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이에 작년 8월 일신방직 소액주주연대는 일신방직이 소유한 구체적인 미술품 목록을 공개하라며 가처분 신청에 나섰다. 회사의 자금으로 구입한 재산인 이상 가치가 재무제표에 정확히 반영돼야만 하는데, 축소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 미술품들은 회계상 ‘공구기구비품’으로 분류되는데, 작년 3분기 재무제표상 일신방직의 공구기구비품비 총액은 79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일신방직 소유로 알려진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한 점에 수십억에서 많게는 1000억원 수준에도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부가 김 회장의 자택에도 걸려 있다는 소문이 있어, 오너 일가의 사유화 논란도 존재한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들이 회사 자금으로 구입한 작품의 작가명, 제작연도, 현재 보관 장소 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법원 "추측이나 의혹에 불과"...최신 판례와 배치돼그러나 약 5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법원은 주주들의 열람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주주들이 제기하는 추측이나 의혹만으로는 열람을 허용할 만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요지였다.이는 과거 대법원이 주주의 회계장부 등 열람권 요구 이유에 대한 기준을 크게 낮춘 것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판례(2019다270163)에 따르면 주주가 제출하는 열람·등사 청구 시 ‘이유’는 회사가 이에 응할 의무 존부나 서류 범위 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기재되면 충분하고,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기게 할 정도로 기재하거나 이유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첨부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즉 구체성 기준을 완화해 청구가 허위이거나 부당함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용되기 쉬워진 것이다.이에 대해 일신방직 소액주주연대를 대리한 김경태 변호사는 "해당 대법원 판례가 지난 2022년 선고된 비교적 최신 판례인 만큼, 구체적인 실무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지금 상황에선 본안 소송을 진행해 봐야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가적인 소명 자료를 좀 더 모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4.36%‘ 주주연대 "16일 소송·주주제안 등 결정"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는 만큼 일신방직 소액주주연대가 어떤 대응에 나설지도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미 일신방직 소액주주연대는 지난 2022년~2023년에 걸쳐 자사주 매입, 주식 액면분할 등 다양한 주주제안을 내놓고 이를 성사시켰을 정도로 적극적인 주주행동을 보여온 바 있다. 이번 가처분 청구에 참여했던 소액주주들의 지분만 총합 4.36%에 이른다.서일원 일신방직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회삿돈으로 구입한 자산을 공개 요구한 것인데, 이번 청구 기각은 주주들이 회사 자산도 모르고 깜깜이식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오는 16일 소액주주연대 모임을 갖기로 했으며, 소송부터 주총에서의 제안까지 여러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