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우리나라 키워드로 ‘용문점액(龍門點額)’을 선정했다. 중국 황하에 있는 ‘용문(龍門)’은 물의 흐름이 강해 큰 물고기도 거슬러 오르기 어려운 협곡이다. 물고기가 급류를 힘차게 타고 이 문을 넘으면 용(龍)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지만, 타고 넘지 못하면 문턱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額)에 상처(點)가 난 채 하류로 떠내려간다는 전설이 있다.한국경제가 용이 될지 물고기로 남을지 갈림길에 섰다는 뜻이다.2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4년 경제키워드와 기업환경 전망에 대한 전문가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기로(岐路)’, ‘용문점액(龍門點額)’, ‘살얼음판’, ‘변곡점’, ‘Go or Stop’ 등을 꼽았다. 우리경제의 중장기 미래가 좌우되는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고 진단했다.다른 전문가들도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운파월래(雲破月來, 구름 걷히고 달빛이 새어나오다)’, ‘사중구활(死中求活, 수렁 속 한줄기 빛)’ 등과 같이 경제회복을 기대하는 의견들과 ‘Squeeze Chimney(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음), ‘Lost in Fog(안개 속 길을 잃다)’, ‘젠가게임(Jenga Game, 조금만 방심해도 공든 탑이 쉽게 무너진다)’ 등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의견들로 갈렸다.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코로나와 고금리로 인해 길었던 경기침체가 내년에는 본격적인 회복세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온 뒤 땅’이라는 키워드를 꼽았지만, 여전히 우리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매우 어렵고 먹구름이 잔뜩 껴있다"며 "땅이 굳기도 전에 다시 비가 내리면 진흙탕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므로, 우리 기업들은 경제환경의 변화를 더욱 민감하게 파악하고 신중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내년 우리경제의 경기추세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전문가의 48.9%가 ‘U자형의 느린 상저하고(上低下高)’를 보일 것이라고 응답했고, 26.7%는‘L자형의 상저하저(上低下低)’를 전망했다. ‘우하향의 상고하저(上高下低)’(16.7%), ‘우상향의 상고하고(上高下高)’(3.3%), ‘V자형의 빠른 상저하고(上低下高)’(2.2%) 등의 전망이 뒤를 이었다. 한국경제의 본격적인 경기회복 시점에 대해서는 ‘2024년 하반기’(31.1%)나 ‘2025년 상반기’(26.7%)를 꼽은 응답이 많았다. ‘2025년 하반기 이후’(21.1%)로 전망하거나 ‘향후 수년간 기대하기 어렵다’(13.3%)는 응답도 있었다. ‘내년 상반기 이전에 회복할 것’이라 기대한 전문가는 7.8%에 그쳤다.전문가들이 전망한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주요기관 전망치와 유사한 2.1%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세계경제는 2.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세계경제 성장률의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내수소비는 ‘올해보다 둔화될 것’으로 본 응답자가 57.8%로 과반을 이뤘다. 투자도 ‘올해보다 둔화’(37.8%)를 예상한 응답이 ‘올해보다 개선’(27.8%)을 예상한 응답보다 많았다. 수출은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본 응답이 51.1%에 달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내년도 수출은 반도체 업황 개선을 중심으로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중국경제의 회복 여부가 불확실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및 고금리 상황 등의 여건 개선도 불명확해 이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내년 한국경제가 주의해야 할 대내외 리스크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대외리스크로는 ‘미국 통화긴축 장기화’(37.8%)가 가장 많이 우려됐다. ‘글로벌 수출경쟁 심화’(36.7%), ‘중국의 저성장’(33.3%) 등 수출무역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어 ‘고유가 및 고원자재가’(24.4%), ‘고환율 기조 지속’(23.3%), ‘세계경제 블록화 심화’(22.2%) 등에 대한 응답도 있었다. 내년 대외리스크로 가장 많이 꼽힌 ‘미국 통화긴축 장기화’와 관련해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금리인하가 시작될 것’(43.3%)으로 내다본 응답이 가장 많았다. ‘상반기부터 인하 시작’을 응답한 전문가는 32.2%였고, ‘내년 중에는 인하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응답도 24.4%였다.우리나라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미국금리 움직임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94.4%)고 입을 모았다. ‘미국금리와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5.6%에 그쳤다. 우리의 기준금리 인하전략에 대해서는 ‘미국의 인하여부 및 경제상황을 보고 점진적으로 인하해야 한다’(83.5%)는 답변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인해해야 한다’(10.6%)는 응답보다 크게 앞섰다. 국내리스크로는 ‘가계부채 심화’(53.3%)가 가장 많이 꼽힌 가운데, ‘부동산發 리스크’(33.3%), ‘생산 및 소비물가 상승’(32.2%), ‘내수경기 침체’(28.9%) 등 민생관련 이슈가 주목됐다. 내년 4월에 있을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이슈 과열’(20.0%)을 응답한 전문가도 있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최근 높아지고 있는 국내 수출 경기 회복 기대감, 글로벌 피벗 가능성(통화정책 전환), 재정정책의 유연성 등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보이고 있으나 불투명한 중국경제 회복 여부나 지정학적 불확실성 이외에도 돌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큰 만큼 내년에도 여전히 우리경제의 완전한 회복 궤도 복귀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각종 돌발 리스크에도 국내 경제주체들이 유연하고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책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경기 회복 과정에서의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실효성 높은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었따.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내년은 우리경제가 지속성장의 길을 걷느냐, 장기침체의 길을 걷느냐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해가 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각종 대내외 리스크로 인해 지속성장의 길이 좁아 보이고, 장기침체의 길이 더 넓어 보인다"며 "우리 기업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좁은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정부와 새롭게 구성될 국회가 힘을 모아 지원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yes@ekn.kr전문가가 꼽은 ‘2024년 경제키워드’2024년 한국경제의 경기추세 전망 및 기관별 경제전망치2024년 국내 경제여건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