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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조업 강한 한국, 亞 해상풍력 허브기지 능력 충분”

한국 해상풍력 산업이 '목표만 크고 성과는 더딘 산업'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 협의 구조를 통해 공급망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영국이 세계 2위의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활용한 거버넌스 모델을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해보겠다는 구상이다. 전 세계 해상풍력 성장을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오션에너지패스웨이(Ocean Energy Pathway)의 장다울 한국대표는 최근 본지와 만나 “한국은 조선·철강·전선 등 해상풍력의 핵심 제조 기반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해양 엔지니어링과 전력 인프라 역량까지 갖추고도 지난 20년 동안 해상풍력을 사실상 키우지 못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업계와 함께 실행 가능한 이행계획을 짜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션에너지패스웨이는 전 세계 해상풍력 성장 가속화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보호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글로벌 비영리 단체다. 한국·일본·인도·브라질 등을 포함한 약 9개국에서 활동하며, 정부와 산업계, 싱크탱크를 연결하는 중립적 정책 지원 역할을 맡고 있다. 장 대표는 “해상풍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수단이면서도, 해양 생태계와 공존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하는 산업"이라며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돕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한국 해상풍력 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장기간의 정책과 실행 간의 괴리를 꼽았다. 그는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해상풍력 논의를 시작했고,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세계 3대 해상풍력 강국'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2030년까지 12GW 보급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달성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인 2030년 3.2GW 수준으로 하향 조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실제 국내 해상풍력 누적 설치량은 0.3GW에 그치는 등 아직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 대표는 “한국은 현재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해상풍력 단지가 많지 않다"며 “실증용·소규모 단지를 제외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라며 “조선, 철강, 기계 등 해상풍력과 연계 가능한 산업 역량이 충분하고, 타워·하부구조물·케이블 분야에서는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까지 보유하고 있음에도, 시장을 키우지 못해 결국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 삼성중공업, 효성,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들이 풍력 분야에 진출했지만 시장 부진과 정책 불확실성 속에 잇따라 사업을 접은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장 대표는 “당시 내수시장을 일정 규모로 키웠다면 한국이 지금 훨씬 강한 경쟁력을 가졌을 것"이라며 “해상풍력은 한국이 충분히 세계 최상위권을 노릴 수 있었던 산업"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해상풍력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높은 발전단가만을 지목하는 시각은 단편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해상풍력은 단순히 터빈 몇 기를 바다에 세우는 사업이 아니라 항만, 설치선박, 계통, 금융, 수용성, 인허가가 한꺼번에 맞물려야 돌아가는 중후장대 산업"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병목으로는 △전용 설치항만 부족 △설치선박 부족 △계통 연계 불확실성 △군(軍) 협의 및 어업 수용성 문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연 등이 꼽힌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해상풍력 설치 역량을 사실상 결정하는 것은 항만"이라며 “현재 연간 설치 가능 물량이 제한적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치선도 충분치 않고, 현재 국내에서 운용 가능한 선박은 대형 차세대 터빈 설치에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15MW급 이상 터빈이 본격화되면 선박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PF 문제도 핵심 변수다. 장 대표는 “입찰에 선정됐다고 바로 착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은행이 조 단위 자금을 빌려주려면 계통, 군 협의, 주민수용성, 기술 검증 등 여러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하는데, 이 단계에서 상당수 사업이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산업이 커지려면 '지속적인 수요'가 가장 중요하다"며 “연간 시장 규모가 예측 가능하고 실제로 이행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항만을 짓고, 선박을 만들고, 공급망 기업이 공장을 확충해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주목하는 모델은 영국이다. 영국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해상풍력 비용이 높았지만,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비용 절감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비용도 낮추고 세계 2위 수준의 해상풍력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는 “영국은 2011년 무렵 해상풍력 보급량이 2GW 수준이었지만, 그 시점에 이미 정부 주도로 '비용절감 TF'를 만들어 해상풍력 가격을 어떻게 낮출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며 “이후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고, 공급망·기술혁신·시장제도·금융·인허가 등 분야별 과제를 체계적으로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영국의 핵심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지속적인 협의와 점검 체계였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영국은 해상풍력 비용을 낮추기 위한 과제를 세운 뒤, 해마다 목표 대비 성과를 점검했다"며 “정부가 혼자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산업계와 함께 실행전략을 만들고 서로 역할을 분담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영국은 공급망을 세부 품목별로 구분하고 자국 생산, 보호, 산업 육성, 수입 등 전략적 선택지에 대해 기술 역량, 비용 효율성, 시장 가치, 파급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최고의 방식을 선택했다"며 “대부분을 처음부터 자국 기업이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접근이 아니라, 산업 발전 단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 현실적이었다. 또한 영국 내에 투자해 공장을 짓고 생산하는 경우, 자국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구분하지 않고 장려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도 최근 해상풍력 민관 거버넌스 구축에 나섰다. 장 대표는 “지난해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후 가진 첫번째 장관과 풍력업계 간담회 이후 영국 사례를 참고한 민관 협력 구조의 필요성을 검토했고, 그 결과 해상풍력 분야에서 새로운 거버넌스의 틀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해상풍력법 상으로는 해상풍력 발전위원회와 실무위원회, 해상풍력발전추진단, 전담기관 등이 법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비용절감, 공급망 육성, 인프라 구축의 전략을 짜서 해상풍력발전추진단의 자문 역할을 하는 체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과거에도 유사한 협의체가 있었지만 지속적인 운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는 차관이 직접 정부 측 공동 위원장을 맡고, 정부 측에는 해상풍력발전추진단과 전담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을 비롯해 발전공기업, 전력계통·시장기관, 정책금융기관,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한다. 민간에서는 제주대 김범석 교수가 민간 측 공동위원장을 맡고, 한국풍력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산업계, 학계, 싱크탱크 등이 직접 참여해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기서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어떤 성과를 내느냐"라며 “올해 안에 목표하고 있는 '한국 해상풍력 경쟁력 강화 전략'이 제대로 수립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향후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로 2035년까지의 장기 입찰 로드맵을 꼽았다. 그는 “해상풍력은 공급망과 금융,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2~3년짜리 단기 계획으로는 기업들이 움직이기 어렵다"며 “2035년까지 어느 해에 어느 정도 물량을 시장에 낼 것인지 예측 가능한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며 “입지 조사와 개발, 설계·제조·설치·운영 등 전 주기에 걸쳐 필요한 다양한 전문 인력을 대학과 훈련기관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핵심이며, 석탄발전 등 기존 에너지 분야 인력의 전환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전략도 중요하다. 장 대표는 “지금 한국 해상풍력의 국내 공급망 비중을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한 번에 끌어올리려 하기보다, 우선 시장 자체를 키우면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부터 확실히 먹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타워, 하부구조물, 케이블, 항만, 시공, 유지보수, 금융, 보험, 법률, 인허가 등은 한국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라며 “블레이드와 나셀처럼 시간이 더 필요한 분야는 장기적으로 기술이전을 포함한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해상풍력이 장기적으로는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민간 시장에서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 해상풍력 고정가격계약 낙찰가는 높은 편이지만, 해상풍력은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 비용이 높다가도 보급 확대와 학습효과, 금융비용 하락, 공급망 확충을 통해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며 “유럽 여러 국가들도 일정 보급량을 넘기면서 비용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2035년에 가까워지면서 비용이 충분히 낮아지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규모 전력 수요 기업과의 기업 전력직접거래(PPA)가 가능한 시점이 올 수 있다"며 “그 단계까지 가면 해상풍력은 단지 재생에너지 보급수단을 넘어 산업경쟁력과 전력시장 안정에도 기여하는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태양광만으로는 대규모 산업용 전력 수요와 24시간 탄소중립 전력 조달 요구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며 “한국에서 해상풍력은 장기적으로 기업들의 RE100, CBAM, 기후공시와 같은 탄소 무역 장벽 대응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해상풍력은 잠재력 대비 지금까지의 성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던 산업"이라면서도 “2050년 150GW 이상의 방향을 가지고 앞으로 5년, 10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해상풍력은 한국의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분야"라며 “호주,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이 열릴 때 한국이 공급망 허브로 선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또다시 장밋빛 목표만 내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어떻게 낮출지, 어떤 인프라를 언제 깔지, 어떤 공급망을 우선 육성할지, 어느 정도 시장을 지속적으로 열 것인지까지 책임 있게 설계하는 것"이라며 “이번 민관 거버넌스가 그런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대명에너지, 1360억원 규모 곡성그린풍력 EPC 계약 체결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인 대명에너지가 곡성그린풍력발전과 1360억원 규모의 곡성그린풍력발전소 건설공사 일괄도급(EPC)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사업은 대명에너지가 사업 발굴 단계부터 직접 개발해 온 설비용량 42메가와트(MW) 규모의 대형 육상풍력발전단지다. 전라남도 곡성군에 조성되며, 6MW급 최신 풍력발전기 7기가 설치된다. 계약기간은 올해 4월 24일부터 2029년 3월 1일까지 약 34개월이다. 곡성그린풍력은 발전 수익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사업구조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대명에너지는 지역 마을기업 '곡성행복바람'과 손잡고 주민 직접 출자 방식의 사업구조를 설계했다. 대명에너지는 지난 2022년 코스닥에 상장한 국내 대표 신재생에너지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현재 8개 육상풍력 단지(누적 약 278MW)를 운영하고 있다. 대명에너지 관계자는 “자체 개발 풍력·태양광 파이프라인을 안정적으로 확장하고 해상풍력 등 신규 영역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해 주주가치 제고와 국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한국 에너지 정책의 만기 불일치

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무력화하기 위해 '호르무즈 이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편 한국은 이란 전쟁 이후 차단된 중동 석유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국회는 걸프협력회의(GCC)국가 대사들을 만나 원유 최우선 공급 협조를 당부했고 청와대는 대통령 특사가 UAE를 방문해 원유 최우선 공급 약속을 받아냈으며, 4월 사우디, 카자흐스탄, 오만을 방문해 원유와 나프타 확보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중동 국가는 왜 한국에 최우선 공급 노력과 약속을 천명했을까. 물론 청와대와 의회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이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의 큰손, 장기계약자이기 때문이다. 업스트림 개발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계약자 확약이 필요하다. 중동 걸프국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히 자국 연료의 장기 수요자를 넘어 에너지 안보 자산 장기 투자자이며 경제성장 동반자이자 국가 안보 파트너다. 문제는 한국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화석연료 의존도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건 에너지 정책의 '만기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다. 우리는 이미 과거 탈원전과 탈석탄을 진행했었고 이제 중동 석유와 가스 의존을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전환은 '속도전'이다. 이는 화석연료와 탄소배출의 빠른 단절을 의미한다. 탈석탄과 탈가스가 이어질 것이고 내연기관차와 가스보일러 대신 전기차와 히트펌프로 대체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 '장기계약' 비중을 빠르게 줄여야 한다. 장기계약 대신 현물 계약으로 바뀌어도 중동이 우리에게 최우선 공급을 약속할까. 아마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다. 에네르기벤데로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한 독일은 지난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전 세계가 가스 수급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에도 천연가스 장기계약을 꺼렸다. 이들은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전기화가 미래라며 장기 에너지 균형 대신 단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몰두했고 저렴한 파이프라인 가스 장기계약을 값비싼 현물 LNG와 저장고로 대체한 결과 급등하는 에너지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에너지 믹스 간 균형과 함께 장기 균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이 단시일 내 없어지지 않는다면 연료 계약부터 전문인력, 관련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가 단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보다 중요해진다. 중국의 에너지 정책의 대전제인 '선립후파' 역시 화석에너지 의존 감소의 큰 방향성에 동의하는 것이지 그 과정이 속도전이어야 한다는데는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의 에너지 전환을 '급진적 주장'이라 말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기존 에너지원을 퇴출시켜선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실패와 스페인 대정전은 단기적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매몰되어 장기 에너지 균형을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에너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탈원전과 탈화석연료는 쉽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추후 이들을 다시 찾을 때 제대로 운영되리란 보장이 없다. 당장 현물시장에서 연료 수급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간헐성과 변동성을 지원할 가스 발전소 역시 같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단기 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 정책은 이 가스 발전 확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해야 하는 역설을 이란 전쟁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의 급격한 비중 확대와 축소는 장기 에너지 균형을 무너뜨려 에너지 위기에 가장 취약해진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독일은 이제 탈원전을 후회하고 있지만 없어진 발전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라이헤 에너지부 장관은 원전의 '엄청난 실수'를 가스로 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카타르의 라스라판 복구엔 최대 5년이 걸리고 가스 발전 건설비용은 3배가 넘게 올랐다. 장기 에너지 정책 균형이 무너진 그들은 곧 2번째 실수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김성우 시평]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전환의 조건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최근 미국∙이란간 전쟁의 방향이 점점 불확실해지면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실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것을 목격하며, 지정학적 충격이 수급안정이라는 기본 전제를 허물고 에너지 시장의 전후방 공급망과 가격을 단숨에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 중에 추가로 더해진 금번 에너지안보 리스크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며, 자국내에서 생산∙통제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등으로의 전환이 공급망 수급 및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근본적 해법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E3G는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특정 해협이 물리적으로 막히지 않더라도 전쟁 위험 고조로 해상 보험이 거부되어 수급 경색을 초래하는 '페이퍼 초크포인트(paper chokepoints)'를 새로운 위협으로 꼽았다. 마두라 조시 E3G 글로벌 청정전력 외교 프로그램 책임자는 “한국처럼 LNG 의존도가 높은 경제권은 장기간 시장 경색을 흡수할 여지가 제한적이어서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것이 가장 지속가능한 회복탄력성의 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술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에너지 전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에너지 전환이 지속가능하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이라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아무리 국내산에너지가 안보 위기를 완화하더라도, 너무 비싸면 전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은 주로 기술가격과 금리에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태양광 발전단지를 에너지저장장치와 함께 건설할 경우를 가정하면,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가 얼마나 비싼지와 이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가 얼마인지에 따라 해당 투자의 경제성이 결정된다. 다행히 그 동안 기술가격의 하락은 괄목할 만하다.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2007년 이후 95% 하락했고, 배터리 전력저장장치는 2010년 이후 93% 하락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가 지난 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에너지 전환 투자는 2.3조 달러로 전년 대비 8% 성장해 역대 최고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대규모 투자 확대의 배경에는 기술가격의 하락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차의 경우도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가격이 얼마인지가 중요한데, 배터리 가격하락 등이 전기차 가격에 하방압력을 가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내 전기차 가격은 이미 내연기관차 대비 약 15% 정도 저렴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금리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고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켜 정부가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우 전쟁 이후에도 지금처럼 에너지안보 이슈가 부상했고 이는 대규모 에너지 전환을 예고했었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에너지 전환이 기대에 못 미쳐 관련 주가가 힘을 받지 못했던 사실을 시장은 기억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우드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금리가 2% 상승할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약 20% 상승하는 반면, 가스발전의 단가는 11% 상승에 그친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초기투자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서 조달 금리 상승시 경제성에 더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란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위기는 과거 에너지 수급 차질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위기로, 에너지 공급망 수급차질이나 장기가격 상승 위기에 산업경쟁력 위기로까지 번지다 보니 근본적 해법에 여느 때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여겨 온 국내산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 실제로 실행되고 지속가능하려면 기술가격과 금리라는 경제성 조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과거 교훈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ekn@ekn.kr

간척지부터 베란다 태양광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로드맵 윤곽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위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간척지·군사접경지역 등 대규모 부지부터 산업단지 지붕, 지역 마을, 아파트 베란다까지 활용 가능한 모든 공간을 총동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추진 물량을 단순 합산해도 목표 달성에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경기 시화·화옹지구, 파주 접경지역 등을 중심으로 GW급 대규모 태양광 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시화·화옹지구에는 약 3GW, 파주 일대에는 그 이상의 규모가 거론된다. 기존 최대 규모인 새만금 수상태양광(1.2GW)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인천 수도권 매립지에도 GW급보다는 작지만 수백 메가와트(MW) 규모 대규모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경기도 대단지를 포함해 여러 공공부지를 이용하면 2030년까지 최대 10GW까지도 늘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정부가 수도권에 주목하는 이유는 송전망 용량에 여유가 있어서다. 한국전력 재생에너지 연계 여유용량에 따르면 올해 기준 경기도는 약 107GW로, 전남(0GW), 전북(0.6GW), 충남(1.5GW) 등 지방 대비 압도적으로 크다. 다만 송전망 여유가 곧바로 설비 확대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송전된 전력을 최종 수요지까지 전달할 배전망 구축이 필요하고 지방자치단 규제와 부지 확보 문제도 여전히 변수다. 그럼에도 간척지, 군사접경지역, 수도권 매립지 등 유휴부지 규제가 완화될 경우 대규모 태양광 확대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곳이 시화·화옹지구다. 약 3000만평 규모 간척지로, 정부는 수도권 최대 재생에너지 잠재지로 보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지난 22일 현장을 방문해 “에너지 전환 방향은 확고하며 이제는 속도와 집행력의 문제"라며 조속한 사업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접경지역 역시 전략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기북부는 약 6GW 수준의 송전망 수용 여력을 갖추고 있다. 유휴부지가 넓고 민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반도체·AI 클러스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와 인접해 '지산지소'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규모 단지 외에도 중소형 분산형 모델도 병행된다. 산업통상부는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 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산업단지 지붕과 유휴부지에 총 6GW 보급 목표를 제시했다. 주민이 직접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은 2030년까지 2500개 조성, 최대 2.5GW 규모로 추진된다. 국회와 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해 전력망 우선 접속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도 10만 가구 보급 시 약 0.1GW 수준의 전력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누적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38GW 수준으로, 대단지·산단·마을·주택 물량을 모두 더해도 100GW 달성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풍력 역시 보급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목표대로라면 2030년까지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수준에 그친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경기도 대단지 최대 10GW, 산업단지 6GW, 햇빛소득마을 및 베란다 태양광 2.6GW,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등 총 28GW 수준이다. 기존 설비(38GW)를 더해도 약 66GW에 그친다. 이마저도 모든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는 가정 하의 수치다. 결국 추가로 약 30GW 이상을 공공과 민간이 별도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전력당국 관계자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실제 달성 여부를 떠나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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