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 인상에 대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자 은행들이 만기와 한도를 조절하는 가계대출 죄기 추가 방안을 시작했다. 은행들은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출 금리를 높이면서 대출 조절에 나섰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은행권에서는 금리 인상을 사실상 묵인했던 금감원이 금리 인상이 지나치다며 경고를 하는 것에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이달 29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먼저 만 34세 이하를 대상으로 최장 50년으로 내주던 주담대 대출 기간은 수도권 소재 주택에 한해 30년으로 줄인다. 신규 주택구입 대출 시 1년 이내, 생활안정자금 대출 시 3년 이내로 운영하던 주담대 거치기간은 당분간 없어진다. 그동안 한도가 없었던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는 1억원으로 제한한다. 또 주담대 모기지보험(MCI·MCG) 가입을 중단하며 사실상 대출 한도를 줄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마이너스통장 한도는 기존 1억원∼1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축소한다. 논이나 밭, 과수원 등 나대지 담보 대출과, 갈아타기로 넘어오는 전세자금대출은 금지한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자 지난 7월부터 대출 금리를 높여왔다. 금리 인하 기대감에 시장금리는 낮아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하자 대출 금리를 높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지난달부터 주담대 등 금리를 높인 횟수는 20회가 넘는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도 가계대출이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은행들은 대출 만기·한도를 조절하는 식으로 대출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공교롭게도 전날 이복현 원장이 은행권이 가장 손쉬운 대출 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대출을 관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은행들은 추가로 대출 금리를 높이는 것에 부담도 느끼게 됐다. 앞서 신한은행은 플러스모기지론(MCI·MCG)을 중단하며 대출 한도를 줄인 바 있다. 이어 이날부터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도 중단했다. 우리은행도 다음 달 2일부터 주담대 총량 관리 방안을 추가로 실시한다. MCI·MCG 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일 예정이다. 대출 모집법인 한도는 월별 2000억원 내외로 관리하기로 했다. 소유권 이전, 신탁등기 말소 등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도 제한한다. 은행권은 이 원장이 은행권의 금리 인상을 비판한 것에 억울하다는 입장도 보인다. 금리 인하기에 금리를 높이는 것과 같은 움직임은 은행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국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당국이 사실상 그동안 묵인을 하다 은행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제일 처음 시행할 수 있는 것이 금리 인상"이라며 “은행권 분위기를 거슬러 독단적으로 만기나 한도를 줄이지는 못한다. 당국의 우회적인 주문이 있었다면 은행들이 더 빠르게 움직였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은행권의 만기·한도 추가 조치는 앞서 금리 인상 대응보다는 대출 수요를 줄이는 데 더 즉각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건데, 대출이 나가는 한도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총량 관리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요자들은 대출을 많이 주는 은행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은행권 전반적으로 한도 관리를 타이트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은행권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주택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현재 수도권 중심의 주택 구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데, 결국에는 주택 공급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금융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