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 부모님을 몇 개월만에 만난 5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깜짝 놀랐다. 80대 초반에 접어든 부친의 기억력과 판단력이 예전과 다르고,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70대 후반의 모친도 남편의 일상생활 능력 저하를 걱정하며 아들 내외에게 털어놓았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일상생활 수행능력이란 △식사 △외출 △화장실 이용 △목욕 △전화 사용 △음식 장만 △돈 관리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스스로 얼마나 잘하는 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신체적 일상생활 수행능력은 △대소변 가리기 및 화장실 사용하기 △세수 및 목욕하기 △식사하기 △옷 입기 △이동하기 △걷기 및 계단 오르기 등 육체 기능에 관한 것이다.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감퇴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도구적 일상생활 수행능력은 △전화 사용 △물건 구입 △음식 장만 △돈 관리 및 재정관리 △가정 돌보기 △교통수단 이용 및 길 찾기 △취미생활 △약 복용 △세탁 △TV 보기 등 여가 생활, 탐구적·창의적 활동, 상황대응수준 등의 복잡한 기능을 의미한다. 신체적 일상생활 수행능력과 달리 치매환자의 초기 단계부터 민감하게 감퇴한다. 치매가 고령사회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본인의 건강문제일 뿐 아니라 가족의 고통이 초래되고, 개인적·사회적 비용 또한 막대하게 들어간다. 한국은 내년에 65세 노인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후 노인 인구의 비중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치매 환자 또한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정부와 학계는 추정한다. 중앙치매센터와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60세 이상 고령 인구는 1365만 2453명이며, 이 가운데 추정 치매환자 수는 약 101만명(유병률 7.4%)이다. 연령이 높아지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46만 2270명이며, 추정 치매환자 수는 약 98만명(유병률 10.4%)이다. 2023년 100만명을 넘어선 치매인구는 오는 2030년 약 150만명, 2040년 약 250만명, 2050년에는 약 300만명에 다다를 전망이다. 치매는 기억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인지기능의 장애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뇌질환이다.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와 혈관 치매가 대표적이며, △루이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알코올치매 등 치매의 종류는 다양하다. ◇ 뇌세포 퇴화 '노인성 치매' 알츠하이머, 전체 치매의 최대 70% 차지 알츠하이머는 뇌세포의 퇴화로 생긴다. 전체 치매의 55∼70%를 차지한다. 1907년 이를 최초로 발견한 독일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혈관치매는 뇌졸중 등의 원인으로 뇌의 혈액공급에 문제가 생겨 뇌 기능이 상실되면서 발생한다. 알츠하이머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하다. 전체 치매의 15∼20%를 차지한다. 루이체 치매는 파킨슨병 증세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이다. 환자들의 뇌에서 이상 단백질을 처음 발견한 독일의 학자 루이의 이름에서 병명이 유래됐다. 전체 치매의 10∼25%를 차지한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전두엽이나 측두엽의 앞쪽에서부터 진행된다. 전체 치매의 2∼5%를 차지하며, 45∼64세의 연령층이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의 약 60%에 달한다. 알코올 치매는 장기간 과음으로 발생한다. 알코올 섭취량과 빈도에 따라 50대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생할 수 있다. 치매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기억력 장애'다. 흔히 기억력 저하와 함께 언어 능력, 판단력, 성격 등의 변화가 같이 나타난다. 단순한 건망증의 경우에는 사건이나 경험의 내용 중 일부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치매 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도인지장애는 환자 본인 혹은 보호자가 보기에 기억력 저하가 있고, 심리검사 결과 분명한 기억력 저하가 있으며, 그 외에는 인지기능이 전반적으로 정상이어서 일상생활 능력에는 이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치매는 기억력, 언어기능, 시공간 기능, 실행 기능, 계산 기능 등 인지기능의 여러 영역이 저하되면서 기분 변화, 성격변화, 행동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치매는 노인성 질환으로 60대 이후 고령층에서 주로 발병하지만, 40∼50대에 발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계에 따르면 65세 미만 '젊은 치매'(초로기 치매) 환자 숫자는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다. 부모 중 한 쪽이 알츠하이머 유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 가까이 된다. 뇌졸중 가족력이 있으면 젊은 나이에 혈관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음주 후 블랙아웃(black out:기억이 끊긴 현상)이 반복되는 사람들은 초로기 치매의 고위험군이다. ◇ 운동·식사·독서 잘 하고, 절주·금연 지키고, 건강검진으로 조기발견 치매는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 이미 치매가 진행된 경우라 하더라도 적절한 평가와 치료를 통해 악화를 막고 호전 또한 가능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치매 치료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에 가깝다. 치매를 근본적으로 완치하는 약물이나 방법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증상을 개선하거나 악화를 늦추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한 통합적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치매 분야의 권위자인 나덕렬 박사(전 대한치매학회장)는 치매 예방을 위한 '진인사대천명' 수칙을 제안했다. 진땀나게 운동하고(진), 인정사정 없이 담배 끊고(인), 사회활동과 긍정적인 사고를 많이 하고(사), 대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대),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천), 수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라(명)는 것이다. 운동은 뇌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뇌 신경을 보호하며 신경세포 간 연결을 원활하게 해준다. 흡연은 동맥경화증과 같은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고, 유해산소와 염증반응을 유발하여 신경세포와 퇴화를 일으킨다. 활발한 사회활동은 뇌의 기능을 촉진시키고 신경 세포간의 연결을 활발히 해준다. 긍정적인 사고는 뇌와 마음을 즐겁게 한다. 독서, 퍼즐맞추기 등 활발한 두뇌활동은 인지기능의 저하, 인지 장애나 치매의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과음과 폭음은 인지 장애를 유발하며 뇌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고 알코올 중독, 우울증, 간경변 등의 위험 또한 크다. 특히, 뇌가 기능을 잘 하려면 제때에 골고루 적당히 먹어야 한다. 국가치매관리위원회는 '치매 예방 3-3-3 수칙'을 권고한다. 3권(勸), 3금(禁), 3행(行)인데 △3권은 운동·식사·독서이고, △3금은 절주·금연·뇌손상 예방이며, △3행은 건강검진·소통·치매 조기발견을 말한다. 치매상담 콜센터(1899-9988)로 전화하면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치매 예방법을 포함한 치매 상담을 해준다. 치매예방 운동법 동영상을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www.nid.or.kr)에서 볼 수 있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