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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은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자금이다. 투자자는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돈을 맡긴다. 정부가 모험자본 공급 확대에 힘을 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신기업이 성장하려면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기업의 도전을 격려하고 자본을 투입하면서 정작 그 결과를 기다릴 준비는 돼 있는지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투자자가 부담스러워했다고 털어놨다. 투자자의 펀드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대신 기업공개(IPO)를 앞당겨 투자자의 기대수익을 충족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토로한 셈이다. 숫자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를 받은 뒤 IPO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3년이다. 반면 벤처캐피털(VC) 펀드의 평균 운용 기간은 7~8년에 그친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시점이 5~6년 먼저 찾아오는 구조다. 물론 무작정 기다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VC 역시 투자금을 맡긴 출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펀드에는 만기가 있고 투자에는 회수가 필요하다. 기업의 성장을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자본을 무기한 묶어두기란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시간표가 기업의 성장 전략까지 흔들기 시작할 때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지, IPO를 서두를지 결정하는 기준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보다 투자자의 회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모험자본이라는 이름도 무색해진다. 성장을 위해 들어온 자본이 정작 그 성장을 기다리지 못하는 역설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만기가 임박한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새로운 펀드로 넘겨 투자 기간을 연장하는 '컨티뉴에이션 펀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지적재산권(IP) 유동화 등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통로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보다 성과가 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감수면서 기업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 모험자본의 역할일 것이다. 모험자본 확대가 혁신기업 육성으로 이어지려면 자금을 공급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이 성장하기 전에 투자금부터 찾아오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모험자본이 의미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기다려줄 시간도 자본이다. 김태환 기자 kt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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