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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내시경] 투표용지 부족이 망가뜨린 것들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신뢰 붕괴의 직접적 계기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후 수습 과정에서도 관리상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당초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투표소를 송파구 12곳, 강남구·광진구 각 1곳 등 총 14곳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이를 50곳으로 정정하더니, 현재는 91개 투표소로 다시 수정했다. 필자조차 이제는 몇 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 수가 이처럼 반복적으로 바뀐다는 사실 자체는 선관위의 기초적 관리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주먹구구식 선거 관리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서로 다른 투표소에서 유력 두 후보의 득표수가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도 발견되고 있다. 인천 연수구 송도 1동과 송도 2동의 관내 사전 투표 개표 결과를 보면, 민주당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두 곳 모두에서 3,030표,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는 역시 두 곳 모두에서1,440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광주 광산구 송정 1동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사전 투표에서는, 민주당 민형배 후보가 두 곳 모두에서 1,401표, 국민의힘 이정현 후보가 120표로 동일한 득표를 기록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전남 신안·여수 등 광주·전남 지역 10개 사전투표소에서도 나타났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천 선관위와 전남 선관위는 공통적으로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천 선관위는 “투표함 개함부터 투표지 분류기 분류, 육안 재확인, 심사·집계, 위원 검열 등 개표의 전 과정을 각 정당과 후보자가 추천한 참관인들이 참관한 만큼 부정 개표나 조작이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해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각 정당이 추천한 참관인이 개표와 집계의 전(全) 과정에 입회하는 만큼, 부정 개입의 개연성은 현저히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전남 지역처럼 소규모 투표소가 밀집한 곳에서는 통계적으로 이러한 '쌍둥이 득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아울러 서로 다른 투표소에서 두 후보의 득표수가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과거 사전 투표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곧바로 부정선거의 증거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선관위의 부실한 일 처리가 각종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충북 청주에서는 성화·개신·죽림동 제5투표소의 선거인명부에서 1,295명이 누락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선관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지 않는 한, 각종 음모론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존재의 언행을 계속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관위는 방어적 해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 의혹과 오해가 음모론으로 번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선관위의 행위 전반을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남긴 것이 선관위에 대한 불신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사회자본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사회자본의 핵심 요소는 사회적 신뢰인데, 선관위가 바로 그 사회자본의 토대를 크게 손상시킨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 역시 훼손했다. 민주주의의 근간 중 하나인 법치주의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데, 이번 사태가 바로 그 제도적 신뢰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원상으로 회복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선관위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고위직에게는 감독·관리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 전환의 특이점

에너지전환의 특이점(Tipping Point)이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가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역전되어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결정적 급변점을 의미한다. 한 번 이 지점을 넘어서면 기술·경제·사회적 관성이 재생에너지 체제로 고착되며, 화석연료로의 회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놀랍게도, 그 특이점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으며, 이 특이점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비용 경쟁력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이미 많은 지역에서 석탄·가스 발전보다 저렴해졌다. 기술 발전과 대규모 생산 효과로 인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시장 논리 자체가 재생에너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기후 위기의 경고음이 더해지고 있다. 온실가스 축적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이미 약 1.4℃ 상승한 것으로 관측되면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5개국이 합의한 1.5℃ 상승 제한 목표에 바짝 다가섰다. 과학자들은 이 1.5℃를 '안전한 상한'으로 제시했으나, 우리는 그 문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는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바꿔놓고 있다. 이 두 가지 흐름, 즉 경제적 우위와 기후적 절박함이 맞물리면서 에너지전환의 특이점은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지고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세계 에너지 투자 보고서(World Energy Investment 2026)는 이 전환의 속도를 숫자로 증명한다. 2025년 청정에너지 투자액은 2조 1,550억 달러에 달한 반면,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투자액은 1조 80억 달러에 머물렀다. 청정에너지 투자가 화석연료의 두 배를 넘어선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현상이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역사상 최대의 에너지 안보 위기 속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세계는 화석연료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국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연례보고서는 더욱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2025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 발전량을 사상 처음 추월했고, 2025년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분 849TWh를 청정에너지가 100% 이상 감당했으며, 화석연료 발전은 오히려 38TWh 감소했다. IRENA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85.6%가 재생에너지였고, 그 중 태양광이 74%, 풍력이 23%를 차지했다. 태양광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 세계 누적 태양광 설비가 1TW에 도달하는 데에는 1954년 실리콘 태양전지 개발 이후 약 68년이 걸렸지만, 2TW까지는 34개월, 3TW는 불과 20개월이 소요됐다. 이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전환의 신호다. 에너지전환은 더 이상 선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3월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필리핀은 2026년 4월 기준 4.1GW의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수입하여 신흥·개도국 중 최대이자 세계 2위 수입국이 됐다. 수입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수준이며 같은 기간 파키스탄 3.6GW, 태국 2.3GW, 베트남 2.2GW로, 일본(2.1GW)과 한국(1.8GW)을 앞질렀다. 아프리카에서도 콩고가 2025년 한 해 1.2GW를 수입한 데 이어 2026년 4월까지 이미 1.3GW를 기록했다. 주요국의 발전 비중도 눈길을 끈다. 룩셈부르크(30.5%), 헝가리(27.8%), 칠레(25.1%), 스페인(21.1%), 파키스탄(18.8%)이 이미 전체 발전량의 5분의 1 이상을 태양광으로 조달하고 있고, 2020년 대비 2025년 발전량 증가율을 보면 콩고 126배, 폴란드 10배,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9배, 스리랑카 6배 등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중심의 제조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에너지전환의 특이점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명운을 가르는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RE100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조달 능력은 이제 수출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해외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의 미비는 곧 산업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최근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100GW 확보, 2035년 발전비중 30% 목표를 확정했다. 이는 바람직한 출발점이지만, 글로벌 에너지전환 속도를 고려할 때 목표 달성 속도와 실행력에서 한층 더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목표대로 10년 뒤인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를 달성해도 이는 2025년 전 세계 평균 33.8% 보다 3.8%포인트 낮은 수준이며, 10년 뒤 목표가 오늘날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야심찬 목표라기보다는 사실상 포기선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글로벌 에너지전환 속도에 맞춰 전환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기자의눈] 국힘 상임위원장들, 문(門)은 열어야 한다

누군가 22대 국회 전반기 1년을 아우르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폐문(閉門)'이라고 하겠다. 국민의힘 소속 상임위원장들의 이야기다. 본인들은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됐다, 민주당이 먼저 거부했다, 겸임 구조 탓이다. 하지만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민생 법안들은 그 변명을 듣지 못한다. 본지가 국회 회의록과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했더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17개 상임위에 접수된 법안 8041건 중 1636건(20.03%)만 처리됐다. 국민의힘 위원장 상임위 7곳 가운데 4곳이 처리율 하위 7위권에 몰렸다. 윤한홍 위원장의 정무위가 15위, 신성범 위원장의 정보위가 16위. 상임위 회의 횟수도 마찬가지다. 정보위·성평등위는 월평균 1.6회, 국방위는 2.5회. 민주당 소속 법사위가 한 달에 6.7번 문을 열 때, 이들은 두 번을 채 열지 않았다. 최대 4배 차이다. 문을 닫아둔 사이 쌓인 것들이 있다. 정무위에서 자본시장법과 온라인 플랫폼 공정거래법은 1년째 그대로다. 산자위에서 RE100 산단법, 2차전지 육성법, 중소기업 기술보호 관련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정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그나마 처리하는 법안도 이견이 없는 보훈법"이라며 “조문 하나로 법 6개가 바뀌는 구조인데 이걸 실적으로 치면 6개 법을 처리한 것처럼 보이지 않냐. 더 깊게 보면 정무위 처리율은 더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답답한 민주당 의원들은 정무위를 떠나 코스피5000 특위 같은 곳에서 따로 활동했다. 상임위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의원들이 흩어지는 악순환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여당 의원들에게서 비슷한 하소연이 나왔다. “정권을 방어할 때도 안 열고, 정권을 견제할 때도 안 연다"는 것이다. 한 산자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다른 상임위가 열 번 회의할 때 한 번 열까 말까 한다"고 했다. 한 외통위 소속 의원 역시 “윤석열 정부 때는 외교 참사 질타를 피하려고 안 열고, 지금은 이념 충돌이 부담스럽다며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여당일 때도, 야당이 된 지금도 닫혀 있다. 상임위원장의 권한은 문을 잠글 권한이 아니다. 국회의 꽃은 상임위다. 그 꽃이 피려면 문이 열려야 한다.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국민의힘은 관례를 내세워 최소 7개 위원장직을 요구하고 있다. 원내대표 후보들은 일제히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공언했다. 전반기 1년 동안 닫아둔 문의 개수를 세고 나서 하는 요구다. 문을 잠가온 사람에게 다시 열쇠를 맡길 수 있는지, 그것이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의 진짜 질문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진보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일어나는 역설

한국 정치의 역설은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다. 비즈 한국(2025.5.30.)에 의하면 보수 정권의 전국 지가상승률은 김영삼 3%, 이명박 16%, 박근혜 10%, 윤석열 11% 등 평균 8%지만, 진보정권의 지가 상승률은 김대중 38%, 노무현 34%, 문재인 38% 등 평균 36.7%로 3배 이상 높다. 경실련(2025.6.25.)이 정권별 서울 아파트 상승률 순서를 보면 문재인 119%, 노무현 80%, 박근혜 21%, 윤석열 1%, 이명박 –10% 순이다. 역설은 규제가 심할수록 아파트 상승률은 높다. 진보정권의 부동산 정책 기저에는 '토지는 공공재'라는 사상과 '땀 흘려 일한 소득이 부동산 불로소득 보다 우대받아야 한다'라는 철학이 있다. 진보정권은 집권하면 핵심 가치를 “토지공개념"에 두고 온갖 '강력한 과세' 정책을 펼친다. 문재인 정권의 '투기와의 전쟁'이 그 사례다. 집값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출 제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부활 등 강력한 26번의 규제책들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집값은 폭등했다. 이재명 정권의 투기와의 전쟁도 이와 유사성을 보인다. 10·15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구를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토지거래허가제를 확대했다.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했으며, 스트레스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강력한 규제로 진정되는 것 같던 집값 급등세가 재현되고 있다. 진보정권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은 진보정권과 보수 정권의 교체 과정에서 부동산 규제와 해제를 반복하면서 빚어진 시차 현상이다. 부동산 규제의 핵심은 부동산 세제다. 부동산을 보유할 때 내는 보유세와 부동산을 거래할 때 내는 거래세로 나눈다. 선진국은 '보유세 중심'이라면 한국은 '거래세 중심' 구조다. 미국 보유세의 실효세율은 1% 수준으로 높지만, 한국은 0.2% 내외로 낮다. 반면 선진국의 양도소득세는 보유 기간에 따라 20% 내외로 매우 낮다. 한국은 양도소득세가 높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중과세로 최고 82.5%에 육박하는 세율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매물 잠김 현상'이 발생한다. 주요 선진국의 부동산 정책의 핵심 기조가 “보유는 무겁게, 거래는 가볍게"라면 한국의 기조는 “보유는 가볍게, 거래는 무겁게"로 요약된다. 이것이 진보정권에서 부동산값 폭등이 일어나는 원초적 오류다. 진보정권은 부동산 규제로 양도소득세를 중과한다. 그런데 문제는 양도소득세는 양도할 때 발생하는 세금으로 양도를 안 하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동산 소유자들은 진보정권 하에서 거래를 중단하는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매물 잠김이 가능한 것은 보유세가 상대적으로 거래세에 비해서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곧이어 등장할 보수 정권에서 양도세를 인하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매물 잠김은 가수요를 불러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제일 먼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다. 그러면 부동산 소유자들은 이때 부동산을 처분한다. 역설적으로 보수 정권에서 부동산 거래가 촉진되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진보정권에서는 열심히 부동산 규제를 해서 매물 잠김이 일어나고 보수 정권에서는 규제를 해제해서 매물 거래를 촉진한다. 정권에 따라 부동산 규제의 냉탕과 온탕이 교체되는 학습효과로 부동산 투기의 독버섯이 자생한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하여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과 철학을 가지고 원칙을 세워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이 땀 흘려 일한 근로 소득자와의 자산 격차로 인한 세대 간, 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가 일어나는 구조를 차단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동산 규제를 징벌적 제재 수단이나 세수 증대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면서 투기가 합리적으로 제어되는 “거래는 가볍게, 보유는 무겁게"하는 선진국의 세제를 타산지석 삼을 일이다. bienns@ekn.kr

[특별기고] ‘날씨가 전기를 만든다’ 재생에너지 시대, 기상정보의 가치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1970년대 대비 폭염일수는 2.3배, 집중호우 빈도는 3.1배 증가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상재해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 된 것이다. 기후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확대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생산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응책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의 구축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이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 2024년 기준 32%에 달하는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30년에는 43%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고자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3년 기준 8.4%로 전 세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치지만, 2030년에는 두 배 이상인 18.8%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로, 올해 2월 말 시작된 중동사태가 에너지 위기로 이어지면서 국가 에너지 체질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바 있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로 태양광과 풍력을 들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전기'라는 점에서 기존의 발전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맑은 날에는 태양광 전기가 많이 생산되지만,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면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풍력 발전 역시 바람이 약하거나 너무 강할 때, 풍향이 이리저리 자주 바뀔 때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결국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려면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잘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상정보이다. 이에 기상청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상정보 플랫폼'에서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출발점은 기상자원을 정확히 읽어 최적의 발전 위치를 찾아내는 '발전단지 입지 선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지역에 햇빛이 얼마나 잘 드는지, 바람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부는지 알 수 있는 장기간 기상기후자료가 필요하다. 기상청은 바람 분석정보(재현바람장)와 햇빛 분석정보(일사량 자원지도)를 제공하고 있으며, 발전사업 관련 기관과 기업들은 이를 풍력과 태양광발전 시설의 입지 선정에 활용할 수 있다. 발전단지 구축 후 본격적인 발전기 운용 단계에서는 발전량에 영향을 주는 일사량, 구름의 양, 풍속 등의 기상예측정보가 요구된다. 수 시간에서 수일에 이르는 기상예측자료는 발전량 예측 정확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전력시장 운영과 직결된다. 기상청은 올 하반기에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의 일사량과 풍력터빈 고도의 바람 예측정보를 제공하여, 전력 공공기관과 발전단지 등이 이를 발전량 예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기상정보는 발전설비의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크다. 강풍, 낙뢰, 폭설, 염해 등은 발전설비의 주요 고장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이를 사전에 예측해 대응하면 사고를 줄이고 유지관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상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경우,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상당하다. 신뢰도 높은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발전량 예측 정확도가 향상되면 전력계통 운영 비용이 절감되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시장의 안정성과 투자 신뢰도를 높여, 재생에너지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에너지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을 높여 국가 위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기상정보는 날씨 안내, 그 이상의 커다란 가치를 가진다. 기상청은 재생에너지 맞춤형 기상정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전력 공공기관, 정책기관 등과의 협력은 물론이고 재생에너지 산업계와 실질적인 연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신뢰성 높은 기상정보를 제공하여 에너지 전환 시대에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거듭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시장 외면한 ‘원유(原乳)가격연동제’, 소비기한 다 돼간다

올해 원유(原乳) 기본가격이 3년 연속 동결됐다. 생산비가 4% 이상 증감할 때만 협상이 열린다는 규정에 따라 올해는 협상 테이블 자체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음용유 가격은 리터당 1084원, 가공유는 882원으로 유지된다. 다만 가격과 별개로 이달부터 시작되는 용도별차등가격제의 음용유·가공유 물량과 비율 조정을 두고 낙농가와 유업체간 치열한 샅바싸움이 예상된다. 우유가 안 팔리는데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 기형적 구조의 원인은 '원유가격연동제'에 있다. 일반적인 시장이라면 수요가 감소할 때 가격이 내려가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원가에 초점을 맞춰 생산비를 보장하는 현행 구조에서는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다. 소비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 수요를 재창출해야 하지만, 제도가 가격을 하방 경직적으로 묶어두면서 생산자와 제조사 모두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카드를 잃어버렸다. 원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격은 요지부동이고 유업체는 의무 매입 부담을 진다. 결국 가격을 낮춰 수요를 회복할 길이 막히자 유업체는 매입 물량을 줄이려 하고 낙농가는 생존권을 이유로 맞서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 시장의 수급 변화를 무시한 채 생산비 보전에만 매몰된 제도가 낳은 그늘이다. 이 인위적인 지지선이 버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이미 밀크플레이션에 지쳐 리터당 3000원에 육박하는 국산 우유 대신 1000원대 수입산 멸균우유를 선택하고 있다. 공급자가 가격을 지키는 사이 소비자가 시장을 탈출하는 현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 미국산 우유의 무관세 진입에 이어 당장 다음 달인 7월부터는 유럽산 유제품의 관세마저 전면 철폐된다. 그동안 국내 낙농업계를 보호해주던 유통 관세 장벽이 무너지며 국산 우유가 무방비 상태로 진짜 무한경쟁 체제에 내몰리게 된 셈이다.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외산 우유의 공습 앞에, 그동안 인위적으로 버텨온 국내 가격 지지선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국내 원유 자급률이 40%대 중반까지 주저앉은 상황에서 안방에 앉아 물량 몇 톤을 두고 싸우는 것은 다가오는 파도 앞에 무의미하다. 낙농가의 생산비만 보전해 주면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가격이 지지되던 원유가격연동제의 정책적 소비기한은 이미 끝났다.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제도는 공급자도 지킬 수 없다. 시장 원리와 수요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가격 결정 체계의 근본적인 개편 없이는 다가올 개방 파도 속에서 낙농 생태계의 고사를 막을 수 없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이슈&인사이트] 반도체 초호황에 미래를 잃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반도체 호황은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고 경기가 둔화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다. 반도체 호황이 과거와 같이 단기 사이클에 그치지 않고 AI 산업과 궤도를 같이 하면서 장기화하고 초호황 국면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반도체 호황이 여타 산업의 침체를 커버하고 유례 없는 수출을 이끌면서 1분기 우리나라의 수출 순위를 일본을 제치고 5위까지 끌어올렸다. 산업연구원은 금년도 수출액이 지난해(7,093억 달러) 대비 무려 30.3% 증가한 9,24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 같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금년도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전망치(1.9%) 대비 0.6% 포인트 상승한 2.5%로 전망하였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이 시점에 냉정하게 반도체 호황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AI 산업이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므로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도 상당 기간 우상향할 전망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고점에 가까워질수록 우하향 사이클에 접어들 때 그 충격은 금융위기에 준하는 정도로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통 제조업은 물론 첨단 제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태양광, 풍력, 디스플레이, 드론, 전기차 및 배터리, 로봇 등 미래 먹거리에서 중국에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술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글로벌 시장은 중국에 내주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고관세를 부과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에서는 우리나라가 중국을 월등히 앞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도 중국 정부의 지원을 힘입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D램에서는 CXMT가 빅3에 이어 4위(5%)에 올라섰고 낸드플래시에서는 YMTC가 6위(11%)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파운드리에서는 SMIC가 삼성전자에 이어 3위를 유지하며 삼성전자와 근소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분야인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결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 이외에 설계, 생산설비, 후공정, 소재 등 여타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는 것이 반도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관련 수출 통제에 맞서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여 전반적으로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 지원 외에도 반도체 인력 육성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지방 정부는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는 용인 반도체 단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소재, 부품, 장비 관련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기업이 대학에서 운영하는 계약학과 형식의 반도체 학과를 넘어서 일반 학과로 반도체 학과를 확대하여 중소 반도체 관련 기업이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젠슨 황의 한국 사랑과 ‘엔비디아의 계산서’

글로벌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의 수장이 한국의 대중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녹화방송을 찍었다. 심지어 국내 기업 총수들과 소맥 잔도 기울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다. 지난 5일 방한한 그의 행보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상징하는 절대자의 방문인 만큼 가는 곳마다 언론의 열띤 취재와 일반인의 높은 관심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을 휩쓸고 있는 '젠슨 황 신드롬'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는 왜 이토록 한국에 공을 들이는가." 일각에서는 이를 '한국 사랑'으로 해석하지만, 글로벌기업의 움직임을 감정으로 읽는 순간 본질을 놓치게 된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은 '애정'이 아니라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냉정하게 말해 젠슨 황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지금의 엔비디아에 한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AI산업의 핵심 제품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대체불가'의 한국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칩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삼성·SK와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이다. 젠슨 황이 강조하는 '로보틱스'와 '피지컬 AI'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 산업으로 확장하려는 엔비디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를 갖춘 한국은 중요한 전략 거점이고, 국내 기업은 전략적 파트너이다. 그의 친근한 행보 역시 사업적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물론 이런 젠슨 황의 행보를 색안경 끼고 볼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의 계산이 아니라 '우리의 착각'에 있다. 글로벌 경제 거물이 한국을 찾는다는 사실에만 취해 수동적인 환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협력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특정 생태계 종속이나 핵심 인재 유출 같은 고민도 함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젠슨 황이 무엇을 얻어 가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얻어내느냐다.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과 제조 역량은 우리가 쥔 강력한 카드다. 엔비디아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인지, 아니면 공급기지와 소비시장에 머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환영은 충분히 하더라도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젠슨 황의 손에 계산기가 들려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역시 계산기를 들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느냐다. 엔비디아의 계산서를 읽어내고 우리의 계산서를 내밀 수 있을 때 '젠슨 황의 방한'은 진정한 기회가 될 것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네오위즈, 박성준 새 공동대표 선임…‘P의 거짓’ 개발 주역

네오위즈가 회사의 글로벌 히트작 'P의 거짓'의 개발을 이끈 박성준 신작개발그룹장을 신임 공동대표로 내정했다. 다수의 신작 라인업 발표에 앞서, 개발 현장의 목소리와 글로벌 성과를 연결짓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8일 네오위즈는 새 공동대표에 박성준 신작개발그룹장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 내정자는 오는 8월 공식 취임한 후 배태근 공동대표와 함께 회사 경영을 이끌 예정이다. 그동안 배 공동대표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온 김승철 공동대표는 대표이사 사임 후에도 사내이사직을 유지하며 이사회 멤버로서의 역할을 지속한다. 박 내정자는 회사의 글로벌 히트작 'P의 거짓'과 다운로드콘텐츠(DLC) 'P의 거짓: 서곡'의 글로벌 흥행을 견인한 핵심 인물이다. 지난 2013년 네오위즈CRS 개발 이사를 역임했고, 네오위즈블레스스튜디오 콘솔개발본부장을 거쳐 지난 2019년부터 ROUND8(라운드8) 스튜디오 본부장을 맡아왔다. 2023년부터는 신작개발그룹장을 겸임하며 네오위즈의 차세대 개발 라인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네오위즈 측은 “박 내정자는 개발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해온 현장 전문가이자 글로벌 성과 창출에 가장 적합한 리더"라며 “대표이사 취임 이후에도 신작개발그룹장을 겸임하며 주요 프로젝트의 개발 방향성과 경영 전략을 긴밀하게 연결해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 내정자는 “현재 여러 프로젝트가 개발 궤도에 올라있는 만큼, 내년부터는 네오위즈가 준비해 온 신작 파이프라인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게이머가 원하는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개발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신작 성과 창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김병헌의 체인지] 민주당, 지방선거 이후가 위험한 이유

1997년 영국 노동당은 역사적 압승을 거뒀다. 영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정부를 가장 먼저 흔든 것은 내부 권력투쟁이었다.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과의 갈등은 집권 초기부터 폭발했고, 당내 권력 이중구조는 장기 집권의 동력을 갉아먹었다. 블레어는 높은 지지율 속에서도 끊임없이 당내 눈치를 봐야 했고, 후반기로 갈수록 국정 장악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일본 민주당 정권도 비슷했다. 2009년 자민당을 무너뜨리며 등장했지만, 내부 계파 갈등과 정책 혼선 속에 불과 3년 만에 붕괴했다. 권력은 승리의 순간 가장 강해 보인다. 그러나 그때부터 균열이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강한 야당보다 내부 권력 충돌과 민심 이반이었다. 지금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장면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놓쳤지만 무난한 승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오히려 “선거 후가 더 위험하다"는 말이 나온다. 선거 승리는 끝이 아니라 권력 재편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그 중심에 민주당 전당대회가 있다. 겉으로 보면 민주당은 친명 일색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부는 이미 여러 층위의 권력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친이재명계와 정청래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강성 당원 조직 사이의 긴장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이다. 단순한 계파 경쟁이 아니다. 차기 총선 공천권과 이후 대권 지형까지 연결된 권력 전쟁이다. 특히 정청래 대표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민주당은 대통령 중심 정당에서 당대표 중심 정당으로 일부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민주당 구조에서 강성 권리당원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문제는 대통령 권력과 강성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위해 중도층 확장이 필요하지만, 강성 지지층은 더욱 선명한 노선을 요구한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지점도 대개 여기였다. 권력이 강성 지지층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시작하면 외연 확장은 멈춘다. 이재명 정부의 두 번째 위험요인은 이른바 '공소 취소 특검' 문제다. 지방선거 이후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것은 “정치권력이 대통령의 사법 문제를 직접 정리한다"는 인상으로 바뀐다. 물론 지지층은 환호할 수 있다. 검찰개혁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도층은 다르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지지층 결집을 민심 확장으로 착각하는 때다. 핵심 지지층은 웬만하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도층은 한번 등을 돌리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총선과 대선 승패를 결정하는 것도 이들이다. 세 번째 변수는 부동산 세제다. 역대 한국 정부 대부분은 부동산 문제 앞에서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집값 자체보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 한다"는 불신이 치명타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집값 안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방식이다. 특히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나 1주택자 세 부담 확대 가능성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수도권 중산층의 민감한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세금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국민이 “내가 벌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민심은 급격히 돌아선다. 정권은 흔히 야당 때문에 무너지거나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권력의 몰락은 대부분 내부 균열과 민심 피로에서 시작된다. 블레어 정부도, 일본 민주당 정권도, 프랑스 사회당 정권도 그랬다. 강한 권력은 외부 공격에는 버티지만 내부 충돌에는 의외로 취약하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의 높은 지지율과 거대 의석이라는 강력한 기반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권력이 강할수록 위험한 것은 내부 과속이다. 전당대회 권력투쟁, 공소 취소 논란, 부동산 세제 개편은 각각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모두 “누구를 위한 권력이냐"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승리한 권력이 오래가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려운 것은 승리 이후 스스로를 절제하는 일이다. 지금 민주당이 진짜 경계해야 할 대상은 어쩌면 야당이 아니라 지방선거 이후의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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