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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공공기관 통폐합...산업 전략 기회로 삼아야

정부는 3일 공공기관 109개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기능 개혁 추진 방향 (안)"을 발표했다. 감축이 현실화하면 전체 공공기관은 현재 524개에서 415개로 줄어든다. 이재명 정부가 보수 정권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대대적인 공공기관 통폐합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부처 간 이해관계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기관들이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판단에서다. 서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 경쟁적으로 신설되다 보니 정부 재정 부담만 늘어났다. 이번 발표의 최대 관심은 에너지 공기업 통폐합의 중심인 한국남동발전 포함 발전 5사 통합과 석유·가스공사 통합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 개편안의 핵심은 흩어진 자원개발과 발전 기능을 각각 하나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발전사는 2001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쪼갰지만 25년 만에 통합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의 “2024 탈석탄" 로드맵에 맞춰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인적. 물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별 발전사가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 평균 부채 비율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정부는 연구개발비, 대형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묶어 투자 효율성을 높이려면 통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발전사 통합을 통해 재무구조로 투자 여력을 확보해 에너지 대전환과 탄소중립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또 하나의 이슈는 역대 정부에서 여러번 추진했으나 매번 무산된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이다. 정부는 두 공사를 합쳐 “에너지자원공사(가칭)"를 세우고 에너지 공급망 위기를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탐사. 개발 역량과 구매력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글로벌 에너지기업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취지다. 전국 공공기관 재무구조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542조 원이던 공공기관 부채는 2025년 769조 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공공기관 인건비 예산은 29조 6000억 원에서 37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더 이상 방치할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통폐합은 단순한 기관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기능과 국가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 개혁으로 평가하는데 맞다. 현재 공공기관의 가장 큰 문제는 기관 수가 많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능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 있다. 특히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는 한국전력을 포함 발전 5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그리고 각종 연구, 지원기관 등이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라는 큰 그림을 누가 책임지는가가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번 개혁을 단순한 예산 절감이 아니라 국가 전략 기능 중심의 재편으로 추진한다면 상당한 의미와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부도 이번 109개 기관 감축을 전략적 구조 개혁,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 자회사, 소규모 기관 통합의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통폐합 숫자 경쟁이다. 즉 109개를 줄였다는 숫자가 개혁의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A 기관과 B 기관을 합쳐서 기관 숫자는 1개 줄였는데 본부는 그대로 있고, 인력도 그대로이고, 자회사도 그대로이고, 업무도 그대로이고, 임원 자리만 늘어난다면 그것은 통폐합이 아니라 간판을 바꾼 것과 불과하다. 따라서 성공 여부는 기관 몇 개를 없애느냐가 아니라 통합 이후 국가적 성과가 얼마나 커졌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발전사 통합은 매우 중요한 시험대이다. 단순히 5개 발전사를 하나로 합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먼저 통합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한국발전을 발전회사->종합에너지기업->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LNG, 원전 연계, 재생에너지, ESS, SMR, 수소, 해외 발전사업, 핵심광물과 에너지자원까지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개 발전사를 합쳐 놓고 거대한 국내 발전회사 하나를 만드는데 그칠 수 있다. 그리고 자원.에너지 공기업 통합은 더 신중해야 한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하나의 에너지자원공사(가칭)로 통합하는 방안은 상당히 의미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직 통합보다 기능 통합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 자원개발, 에너지안보, 핵심광물, 공급망, 트레이딩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자원은 부족하지만, 경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원개발, 에너지, 핵심광물, 공급망을 분절해서 관리해서는 중국·미국·일본과 경쟁하기 어렵다. 따라서 에너지->자원개발->핵심광물->소재.배터리->전력->산업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공공기관 통폐합은 조직 개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을 다시 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청와대 역린은 괜찮았는지 모르지만 국민들 역린은…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 정부의 인사 문제로 인한 '신뢰의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조짐이다. 에너지경제신문 여론조사를 비롯, 여러 조사를 종합해봤다. 국정지지율이 6주째 하락 일로다. 이 정도면 추세적 하락이다. 정권 출범 불과 1년 석 달 만이다. 추세적 하락이란 특별한 계기 없이는 상승 반전이 어렵다는 얘기다. 집필 시점 상 가장 최근인 갤럽조사를 보면 긍정평가가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긍정 38% : 부정 51%). 조사에 따라서는 이미 한두 주 전에 긍정이 30%대로 떨어진 조사가 많다. 갤럽 조사 특징 중 하나는 몇몇 항목에서 주관식으로 답하게 하는 점이다. 선택지를 주고 고르는 것과 주관식 응답은 차이가 작지 않다. 응답자율성이 가장 큰 특징이자 차이점이다. 국정지지 항목도 주관식이다. 응답자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말하고, 그걸 다 취합, 분류해서 집계한다. 부정평가 원인 1위가 부동산정책(24%), 2위가 인사(16%), 3위가 경제/민생(10%)이다. 1, 3위는 넓은 의미의 정책분야고 자주 꼽히는 항목인데, 인사가 처음 올랐다는 게 핵심이다. 누적된 불만과 비판이 주관식 답변으로 모아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의 경우 제기된 사항에 대한 반론이나 허위입증은 거의 없이 폭로자 한동훈 의원에게 “그 자료 어디서 났느냐"뿐이었다. 시민 입장에서는 폭로 내용에 대해 뭐라고 설명이든 해명이든 해서 납득시킨 다음, “그런데 이거 불법적으로 수집된 자료 아닌가?"라고 하는 게 상식적 순서다. 그렇지 못한 채 하루하루 충격적 폭로의 연속 앞에 속수무책이니 시민들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법무부건 어느 부처건 장관으로서는 택도 없는 내용들이었고, '저런 지경인데 왜 유야무야 끝났었지?' 라는 생각이 급속히 확산됐다. 여론의 변곡점이었다. 폭로 내용 중 '식약처에서 이게 풀리면 큰 돈이 되겠다' 같은 내용이 있다. 민주당은 '공익 민원'이라고 했다. 여론이 결정적으로 뒤집어진 지점이다. 여러 조사에서 김 후보자에 대해 “잘못된 인사"라는 응답이 50%를 넘겼다. 이 정도면 논란이 아니라 “이건 아니다"라는 게 대세라는 뜻이다. 민주당의 판단 착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김민석 대표는 “지켜볼수록 잘 된 인사"라며 “김 후보자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 다수가 아니라는 데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면 이미 소통은 불가한 지경에 빠져버린다. 김 후보자나 민주당, 청와대는 “처신과 해명에 잘못이 있었다. 만일 청문 기회를 주신다면 상세히 설명드리겠다"고 즉각적으로 자세를 전환했어야 한다. 국민들의 1차 관심은 폭로의 사실 여부이고, 자료 출처는 별도로 조사할 문제였다. 폭로 내용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자세 전환은커녕 공익민원이라며 문제 제기자를 고발했고, 경찰은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했다. 민주당의 이런 대응은 “아, 폭로 내용이 사실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자는 결국 사퇴했지만 청와대나 본인 모두 국민 비판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명확히 새기고 향후 재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신철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본인은 물론 친인척 네 가족이 철거민특별분양 케이스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강 후보자 본인은 고가의 강남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네 가족의 군사작전과도 같은 철거민특공은 주민등록지 이전 등 그 시기와 고의성 등에서 불법 소지가 있어 보인다. '해당 지역 철거민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을 건데 왜 하필 저 가족들만 저럴까?' 당연한 질문이다. 이상 여러 후보자에 대해 청와대 역린은 괜찮았는지 모르지만 국민들 역린을 건드렸다. 이 정부 출범 후 첫 국무위원 구성때부터 이번 개각에 이르기까지 '근본적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인사가 모든 사람의 개인적 기준을 다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서민 대중의 가치관과 눈높이,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어서야 어찌…. bienns@ekn.co.kr

[데스크 칼럼] 죽은 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산업은 원래 죽는다. 석탄을 태우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낡은 산업은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다. 기술 발전, 소비 문화, 정치와 외교, 국제 질서 등 산업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은 산업의 탄생과 소멸을 예외적 사건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로 만들었다. 불과 반 세기 만에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더욱 그렇다. 섬유에서 철강, 조선, 자동차로. 다시 반도체와 IT로. 한때 미래 먹거리로 불렸던 산업은 금세 주력 산업이 되고, 다른 산업이 그 자리를 넘겨받으며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새 산업의 등장에 환호하는 동안, 기존 산업의 생태계는 조용히 사라졌다. 사라지는 순간의 산업은 어떤 모습인가. 제조업은 연일 피지컬 AI를 외친다. 완성차 업체들은 로봇과 AI를 앞세워 생산공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는 1220대로 세계 평균의 9배를 웃돈다. 반면 중소 제조업의 AI 전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를 보면, 중소 제조기업 가운데 실제 생산 현장에 AI를 적용한 곳은 1.5%에 그쳤다. AI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초기 비용 부담과 인력 부족이 꼽혔다. 현대자동차는 2028년부터 아틀라스 로봇을 국내 제조 현장에 투입하고, 2030년에는 조립 등 더 복잡한 공정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무후무한 생산성 향상과 막대한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그저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토대를 촘촘하게 만들어온 중소 협력사들이다.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은 6만9807개, 종사자는 199만 명에 달한다. 이들 공장이 같은 미래를 맞을 리 없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곳은 앞서가고, 그렇지 못한 곳은 뒤쳐진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찾지 못한 채 사라진다. 정부는 올해 첫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2030년까지 100만 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산업전환 충격이 집중되는 지역에 대한 대응책도 담았다. 지난 7일, 중기부와 과기정통부는 중소 제조기업의 피지컬 AI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내놨다. 기술 공급기업과 제조 수요기업을 연결하고, 기술개발부터 실증과 현장 적용, 확산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서 우리는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사이의 빈틈을 봐야 한다. 기술을 도입할 여력이 없는 기업,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기업은 그 빈틈에서 뒤처진다. 산업의 이름은 남는다. 성과도 남는다. 그러나 그 안의 생태계까지 그대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일자리, 기술과 공급망은 산업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다시 짜인다. 죽은 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든 기업을 살릴 수도, 모든 일자리를 지킬 수도 없다. 산업은 죽을 수 있다. 산업의 이름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산업을 떠받쳐온 생태계까지 함께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산업이 남긴 기업과 기술이 다음 산업으로 건너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오유신 기자 news@ekn.kr

[기자의 눈] 콜버스와 닥터나우…낡은 규제와의 투쟁 10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스타트업 콜버스랩이 선보인 심야 호출형 버스 서비스 '콜버스'가 난관에 봉착했다. 콜버스는 밤늦게 택시를 잡기 어려운 사람들을 앱으로 모아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승객들을 한 대의 버스에 태워 보내는 서비스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택시보다 저렴하면서 승차 거부도 피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며 콜버스의 운행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가 심야 콜버스 운행 자격을 버스·택시 면허사업자 중심으로 제한하면서 콜버스랩의 사업모델은 크게 바뀌게 됐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김봉진 당시 우아한형제들 대표(코리아스타트업포럼 초대 의장, 현 그란데클립 대표)에게 연락했다. “우리가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장면은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린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닥터나우는 환자가 앱으로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약국에 전송할 수 있도록 연결한 서비스다. 닥터나우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의약품 도매업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은 편법행위가 우려된다며 해당(의약품 도매업) 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코스포는 “혁신의 성패가 시장과 이용자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며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반발했다. 콜버스와 닥터나우는 스타트업 규제사(史) 10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봉진 코스포 초대 의장은 지난 9일 서울 강남 팁스타운에서 열린 '코스포 1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규제 문제 때문에 스타트업이 모이게 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규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게 현재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현 의장은 코스포의 숙원으로 규제 혁신을 꼽았다. 스타트업을 위해 규제를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 혁신의 속도에 제도의 속도를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김 의장은 “시장을 움직이는 규칙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혁신은 성장할 수 없다"며 “갈등이 생겼을 때 몇 년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더 빨리 조정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10년은 낡은 규제와의 투쟁사였다. 다가올 10년은 스타트업의 혁신과 제도의 혁신이 발을 맞춰 함께 가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E칼럼] 에너지자원 공기업 통합의 성공 조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합하여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를 설립하겠다는 정부의 공기업 통합안이 발표되었다. 단순히 공기업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통합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길 바라며 진정한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와 경제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합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산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고 자원보유국의 자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에너지자원 공급망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석유는 액체인 오일과 기체인 가스를 함께 이르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오일을 석유라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메이저 석유회사는 석유와 가스를 함께 개발 생산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는 모두 같은 원리로 지하에서 만들어지고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석유가스산업은 석유가스를 개발 생산하는 상류부문과 생산된 원유를 정제하고 천연가스를 액화하여 판매하는 하류부문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저 회사는 상류와 하류 부문에 모두 투자하여 사업의 포트폴리오 구성하여 유가의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즉, 고유가 시에는 석유생산으로 상류부문에서 수익을 내고 저유가 시에는 정유사업인 하류부문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니 100년 넘게 회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와 따로 존재하고 있을까? 두 공기업 탄생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내외 석유가스개발과 석유비축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한편,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의 국내 도입과 공급이 주요 업무이다. 즉, 석유공사는 석유산업의 상류만 담당하고 있고 가스공사는 가스사업의 하류 부문을 주요 업무로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두 회사의 현 업무 특성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석유공사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높은 상류부문 사업만 추진하는 회사인 셈이다. 반면 가스공사는 천연가스를 국내로 도입하여 공급하는 하류부문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석유가스산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상류-중류-하류의 수직적 일괄조업 형태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가 변동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와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지닌 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석유공사가 하류부문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으면 원유의 생산과 도입 및 정제 분야에 걸친 일괄조업 형태를 갖추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하고 보다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가스 공사가 과거에 추진했던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가스전 개발과 LNG 사업과 같은 상류부문에 투자했으면 지금과 같은 에너지 공급망 위기 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문제를 해결하려다 미래를 망치기 쉬운 것이 에너지자원 분야이다. 정부에서 계획 중인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은 석유가스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 전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단지 공기업의 개수를 하나 줄이는 겉보기 성과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은 3가지이다. 정부 예산으로 석유공사의 부실자산 처리, 국내외 석유가스 개발과 탄소중립 사업 지속적 추진, 국내 에너지 가격 정상화이다. 현재 수년째 자본 잠식에 빠져있는 석유공사의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통합이 되더라도 재정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고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의 핵심인 석유가스개발은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가스공사의 13조가 넘는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 가격의 정상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정권교체 시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이 추진되다 좌초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예산 투입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니 통합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예산 투입 없는 통합을 추진하려면 그냥 여기서 멈춰라. 겉보기 통합은 국민에게 또 다른 짐이 될 뿐이다. bienns@ekn.kr

[김병헌의 체인지]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문이 많다. 그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도 많다. 칭찬을 들고 오는 사람, 좋은 숫자를 들고 오는 사람,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는 보고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정작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대통령님, 그건 아닙니다." 이 말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이다. 판단이 빠르고 결정하면 밀어붙인다.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는 '일잘러' 이미지도 두드러진다. 여당의 의석도 든든하고 뚜렷한 2인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정책을 움직일 힘이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권력이 강할수록 대통령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워지 때문이다.처음에는 참모가 반대한다.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다음에는 표현을 순화한다. 그래도 소용없으면 보고서에서 빼버린다. 결국 대통령 책상에는 좋은 뉴스만 올라온다. 현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대통령 보고서는 초록색이다. 지지율도 계속 빠지는 추세로 돌아선지 꽤 됐다. 권력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집권 초반의 대통령에게는 지나치게 빠른 표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더구나 대통령의 권력 자체가 약해진 것도 아닌데…. 레임덕을 단순히 권력이 빠져나가는 현상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진짜 위험은 국민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도착하지 않는 순간부터이다. 인사도 그래서 중요하다. 첫 조각에서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와 산업·과학 분야 등에 경험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배치하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진영보다 능력을 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 초심이 필요하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청와대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야당이 왜 공격하느냐가 아니다.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장관 후보라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해봤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대통령에게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충성은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유명세도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이 국가의 일을 맡길 자격증일 수도 없다. 특히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반도체가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반도체의 봄이 대한민국 전체의 봄은 아니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온도는 다르다. 청년은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고 지방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를 설명해 줄 사람이 아니다. 숫자 밖의 국민을 보여줄 사람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런데 왜 골목은 춥습니까"라고 물을 사람,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 “정책은 맞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사람,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라도 자격이 부족하면 “이번 인사는 접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대통령도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철회하는 것도 굴복이 아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계속 달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자동차가 시속 50㎞로 달릴 때는 엔진이 중요하다. 200㎞로 달릴 때는 브레이크가 더 중요하다.이재명 대통령에게 성능이 뛰어난 엔진은 이미 있다. 추진력도 있고 권력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브레이크다. 정치에서 가장 좋은 브레이크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자신과 생각이 다른 유능한 사람을 쓰고, 그 사람이 반대할 자유를 주는 것. 대통령이 말해온 '통합'도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통합은 여야 인사 몇 명을 섞어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다.권력은 대통령에게 사람을 고를 힘을 준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은 그 힘으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만 고르지 않는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고른다.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준다.“대통령님, 아닙니다." 그 한마디가 대통령의 귀에 계속 들리는 정부라면 아직 건강하다. 대통령의 귀가 열려 있는 동안 권력은 쉽게 늙지 않는다.레임덕은 권력이 약해질 때가 아니라,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지 않기 시작할 때 문앞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김한성의 AI시대] 똑똑해진 AI, 이제 무엇을 맡길 것인가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9월 들어 주요 AI 기업들의 발표를 보면, 우리가 AI에 맡길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오픈AI는 GPT-6 Astra가 컴퓨터와 브라우저를 사용해 작업을 수행하고, 새로 주어진 조건에 맞춰 다음 단계를 조정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앤트로픽은 Claude Fable 5.1의 장시간 문제 해결을, 구글은 Gemini 3.8 Flash의 여러 단계에 걸친 추론과 반복적인 도구 활용을 앞세웠다. 개발사들의 자체 발표라는 한계는 있지만 변화의 방향은 눈여겨볼 만하다. 경쟁의 기준이 '얼마나 잘 답하는가'에서 '얼마나 복잡한 일을 해내는가'로 넓어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여러 일에 두루 쓰이도록 학습한 '파운데이션 모델'의 발전이 있다. 지시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능력에 검색·계산 도구와 실행 환경이 결합하면서, 중간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이어가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서로 다른 일을 연결해 가는 AI의 능력이다. 다만 성능 시험이나 시연에서 높은 성능을 보였다고 현실의 업무까지 사람의 감독 없이 끝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업무에는 빠진 정보나 서로 충돌하는 조건이 있고,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누군가 감당해야 한다. 가족여행을 준비한다고 하자. “부모님이 오래 걷지 않으면서 예산에 맞는 여행을 계획해 달라"는 부탁에는 여러 일이 담겨 있다. 관광지를 찾고 이동시간을 계산하며 숙소의 위치와 가격을 비교해야 한다. 지도상 가까운 숙소라도 가는 길에 계단이나 가파른 언덕이 있다면 부모님께는 불편할 수 있다. 가격을 낮추려고 이동 횟수를 늘려도 여행의 목적과 어긋난다. 예약 단계에서는 취소 조건을 확인하고 결제 여부도 물어야 한다. '오래 걷지 않기'를 '한 번에 15분 이내로 걷고 중간에 쉬기'처럼 구체화하면 비교 기준도 선명해진다. 하나의 부탁 안에 성격이 다른 작업과 판단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런 작업 배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에이전틱 라우팅'이다. 작업의 성격과 진행 상황에 따라 어떤 AI 모델이나 도구로 처리를 이어갈지 선택하는 방식이다. 최신 정보는 검색으로 확인하고 비용은 계산 도구로 따지는 식이다. 실제 업무에서는 각 결과를 연결하고, 중요한 결정은 사람에게 넘기는 절차도 필요하다. 예산 안에서 보행 조건을 충족할 숙소를 찾지 못했다면, AI가 조건을 슬쩍 바꾸기보다 예산을 늘릴지 여행지를 바꿀지 물어야 한다. 어느 한 모델이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곳에 일을 맡기면서 처음의 목적과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일에 여러 모델과 도구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일은 정해진 절차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작업에 맞는 복잡성을 선택하는 것도 설계의 일부다. AI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답변 가격이 싸더라도 오류를 고치느라 여러 번 다시 시키고 사람이 오래 검토해야 한다면 전체 비용은 커진다. 보고서 초안을 빨리 받았어도 출처와 수치를 다시 확인하느라 반나절을 썼다면 그 시간까지 비용에 넣어야 한다. 복잡한 과제를 풀면서 추론과 도구 사용을 반복해 이용료가 늘 수도 있다. 성능 향상이 곧바로 작업당 비용 감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처리 속도와 이용료뿐 아니라 원하는 수준까지 일을 끝냈는지, 재작업과 검토에 시간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싼 답변과 싼 업무 완료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을 배분하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여행자에게 편안한 일정과 서비스 제공자에게 수수료를 많이 남기는 일정은 다를 수 있다. 일을 배분하고 결과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학교와 일터, 공공서비스에서도 비용 절감 때문에 특정 이용자의 서비스 품질이 낮아지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예컨대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짧은 자동 응답만 제공한다면, 처리 건수가 늘어도 좋은 서비스라고 하기 어렵다. '무엇을 맡길 것인가'만큼 '어떤 기준으로 맡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개인은 원하는 결과와 지켜야 할 조건을 분명히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조직은 무엇을 성공으로 볼지 정하고, 어느 단계에서 사람의 판단을 구할지도 정해야 한다. 어디서 잘못됐으며 왜 수정했는지 기록하면 다음 업무의 기준도 고칠 수 있다. 사람의 승인을 마지막에 한 번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 근거를 확인할 수 있고, 검토할 시간과 수정하거나 중단할 권한이 있어야 승인이 제 역할을 한다. 완성된 결과만 보여 주며 승인 버튼을 누르게 해서는 어떤 조건이 빠졌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용자에게도 자신에게 적용된 기준을 이해하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할 통로가 필요하다. AI는 개인과 작은 조직에도 시간과 비용 때문에 미뤘던 일을 시도할 기회를 넓혀 준다. 자료 조사와 계산, 문서 작성의 부담이 줄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누리려면 다음번 부탁에서 세 가지를 분명히 해보자. 무엇을 이루려는가, 무엇은 양보할 수 없는가, 무엇을 확인해야 일이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 가족여행의 목적은 정교한 일정표를 받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실제로 무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AI의 성과도 우리가 바라던 현실의 변화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명절은 간소화됐는데, 왜 지갑은 가벼워질까

명절이 예전보다 간소해졌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차례상을 차리는 가정이 줄고 가족 규모가 축소됐다. 명절 음식을 직접 장만하기보다 필요한 만큼 사서 먹는 경우도 늘었다. 유통업계가 추석을 앞두고 '소포장'을 확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명절을 간소하게 보낸다고 지출 부담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올해 추석 선물세트 시장을 보면 이런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1++등급 한우와 특수부위를 200g 단위로 나눈 소포장 상품을 확대했다. 한우 선물세트에서 소포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5%에서 지난해 34%까지 높아졌고, 올해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은 '적게'가 반드시 '싸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포장은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고급 상품을 소량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200g 단위의 1++ 한우와 함께 수백만원대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도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등 다른 백화점들도 프리미엄 식품과 희소성 높은 상품, 소포장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 과거처럼 선물세트의 크기와 구성품을 늘리기보다 품질과 취향, 희소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 변화가 물가 부담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기준 한우 등심 100g당 소비자가격은 지난해보다 22.6% 올랐다. 안심은 19.9%, 양지는 17.7% 상승했다. 한우 사육 마릿수 감소로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결국 명절 소비는 '많이 사서 풍성하게 차리는 방식'에서 '필요한 만큼 사고, 대신 좋은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통업계가 달라진 소비 방식에 맞춰 소포장과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소비자 역시 적은 양이라도 품질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소포장'과 '프리미엄'이 가격 부담을 정당화하는 수식어가 돼서는 곤란하다. 적게 사는 것이 반드시 지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얼마를 지불하느냐'다. 올해 추석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변화다. '간소화'가 소비자의 부담을 줄인 것인지, 아니면 부담의 방식을 바꿔놓은 것인지 돌아볼 때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호르무즈 파병, 노무현의 교훈과 이재명의 숙제

최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정국과 맞물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정치권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이라크 파병 논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여권과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핵심 지지 기반인 진보 진영의 반발에 직면하자,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2003년 4월 2일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굳건한 한미공조가 중요하다"며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한미관계의 갈등 요소를 (투자자들은)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라는 경제적 이유도 함께 제시했다. 한마디로 안보와 경제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런 노 대통령의 당시 인식은 지금의 상황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이재명 정권 역시 '원활하지 못한' 한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압박도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의 이란 비핵화 노력에 한국이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으나, 한국 측이 “No thanks!"라고 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 천궁-II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칼럼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만 한미 공조를 통해 안보 불안을 완화하고, 경제적 차원의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 당시 노무현 정권과 현재 이재명 정권이 직면한 고민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한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면, 지금의 대북정책 기조는 당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선 비핵화'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핵 동결을 의미하는 '우선 중단'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정 장관의 언급에 비추어 보면, 과거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파병을 결정했던 반면, 지금은 북한의 즉각적인 비핵화보다 우선적인 핵 활동 중단을 추구하는 국면에서 파병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한데, 핵무기가 없는 우리로서는 파병을 통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혹은 전략 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확실히 보장받는 것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 또는 6위 수준이라는 점을 자주 언급하지만, 이는 재래식 무기만을 기준으로 한 순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래식 무기에 핵무기까지 더해 국방력 순위를 다시 계산하면, 오히려 북한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진보 세력 일각에서는 미국의 '침략 전쟁'에 우리나라가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전략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핵 방어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실효적인 방어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평화가 이상주의만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대 플라톤부터 나온 이야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자는 식의 이상주의적 주장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호응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포용금융의 빈틈, 사라지는 은행 점포를 우체국 금융으로 메워야

정부와 금융당국은 포용금융을 핵심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축소는 해당 기조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고령자·저소득층·농어촌 주민·이주노동자처럼 대면 금융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계층까지 일률적으로 비대면 채널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금융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의 위기 대응력과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최근 1년간 4대 시중은행의 영업지점은 51개나 줄어들었다. 점포 통폐합은 은행 입장에서 비용 절감과 디지털 전환에 부합할 수 있다. 모바일뱅킹 이용이 보편화되고 단순 입출금 업무가 줄어든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령자는 인증·앱 설치·비밀번호 관리·비대면 본인확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장애인과 저소득층은 스마트기기·통신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언어 장벽, 체류자격 확인, 금융 이력 부족 등으로 대면 설명과 상담의 필요성이 더 크다. 특히, 대출, 채무조정, 보이스피싱 피해 대응, 정책 서민금융 신청은 단순 앱 거래와 다르다. 소득과 부채, 신용상태를 설명하고 적합한 상품을 비교·선택해야 하며, 취약계층일수록 대면 상담의 가치가 커진다. 지점 폐쇄가 금융비용을 줄이는 대신 취약계층에게 이동시간·교통비·정보탐색비용이라는 추가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융 접근성 약화는 취약차주 가계의 부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직, 질병, 임대료 상승, 교육비, 영세사업 손실 같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가계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적시에 상담받고 적정한 신용대출·정책금융·채무조정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하거나, 연체가 누적된 뒤에야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가계는 식료품·외식·의류·문화·교육·내구재 등 재량적 소비부터 줄인다. 취약가계의 소비 감소는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고, 다시 고용과 소득을 압박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가계부채가 높은 경제일수록 금융 접근성은 신용 공급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을 예방하고 상환 가능성을 높이는 금융안전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포용금융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대출을 공급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금융 소외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 적시에 금융상담을 받았는지, 정책 서민금융과 채무조정으로 실제 연결됐는지, 대면 지원이 필요한 계층의 접근권이 유지됐는지를 함께 측정해야 한다. 금융선진국인 영국은 은행 지점 폐쇄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훼손될 경우 금융회사가 대체수단을 평가하고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수단으로는 무료 ATM, 우체국 네트워크 등이 활용된다. 특히, 지역 주민이나 지역단체도 접근성 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은행의 영업망 조정을 단순한 민간기업의 경영 판단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사회 금융 인프라의 유지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우체국 지점을 통해 현금 입출금, 잔액조회, 공과금 납부, 수표 현금화 등 일상 금융서비스를 보완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기 전에 해당 지역의 고령 인구 비중, 대중교통 여건, 인근 대체점포까지의 이동 거리, 외국인 주민 비율, 디지털 취약성, ATM 및 우체국 접근성, 대면 대출상담 수요를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우체국은 전국적 네트워크와 높은 지역 접근성,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갖춘 생활밀착형 인프라이다. 특히, 은행 점포가 사라진 군 단위 지역과 농어촌에서 우체국은 단순한 우편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지역 금융접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2026년 7월부터 전국 20개 총괄우체국에서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우체국에서는 4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과 정책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등 총 8개 상품을 상담·신청할 수 있다. 향후 시범사업을 20개소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은행이 없는 군 지역, 고령화가 심한 읍·면, 농어촌과 도서산간 지역부터 우체국 은행대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인신용대출뿐 아니라 새희망홀씨, 햇살론 등 정책 서민금융의 상담·신청·사후관리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다국어 안내, 통역 연계, 체류·소득 증빙 서류 안내도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화가 곧 포용금융은 아니다. 4대 은행의 지속적인 지점 축소는 고령자·취약차주·농어촌 주민·외국인 노동자에게 금융 접근의 장벽을 높일 수 있으며, 이는 가계부실과 소비위축을 거쳐 지역경제와 국민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점포 축소의 경제적 효율성과 금융 접근성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체국 금융망을 은행대리업, 정책 서민금융, 채무조정 연계, 다국어 금융상담의 거점으로 확장한다면, 지역 금융 공백을 현실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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