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고래싸움에 새우가 등 터지지 않으려면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미국, 일본보다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고래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길 방도는 없겠나?"라는 질문에 대한 손자 진도준의 대답이다. 2022년 12월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오랜만에 돌려보다 정신이 번뜩인 순간이었다.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한 고래 싸움에 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시기적절한 대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한국은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뽐내는 두 나라 모두 한국에 중요한 시장이자 국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간 군사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의지해왔다. 8.15 광복과 6.25 전쟁 이후 돈독한 사이를 이어왔고 2000년대엔 한미 FTA를 통해 자유로운 무관세 무역도 이끌어 왔다.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과의 친밀한 외교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이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최대 고객으로 두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국에도 전례 없던 25%란 관세가 부과됐지만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매겨진 세금인데다 아직 협상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국 역시 마냥 등 돌릴 수 없는 국가다. 미운 점도 많지만 결국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모든 곳에 중국의 부품과 원자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최근엔 중국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AI 모든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전기차와 배터리 쪽에선 중국을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젠 단순히 덩치만 큰 고래가 아니라 사냥도 잘하는 똑똑한 고래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말처럼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의 체력과 체급을 키워 고래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와 민생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에 절실한 것이 정부 차원의 기업 지원이다. 예를 들어 국내 배터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판 IRA'가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국내 배터리 산업을 방치하다간 중국에 완전히 밀려 묻혀버린 디스플레이 업계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점유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졌고 캐즘이 끝나지 않은 지금,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E칼럼] 저기는 맞고 여기는 틀리다

2025년 3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특별한 판결을 내렸다. 2015년 줄리아나 올슨을 포함하여 미국 청소년 21명이 제기한 '줄리아나 vs 미국' 기후소송이 10년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재판 없이 기각됐다. 당시 청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청소년의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미국 대법원은 하급 법원이 2024년 한번 기각한 사건의 원심을 유지하며 원고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이 미국 행정부에 실질적 해결책을 수립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없는 만큼 기각 결정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이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린 이유이다. 미국 사법부는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사실관계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각하고 행정청의 의견을 수렴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미국 사법부는 기후소송과 같은 과학적, 정치적 논쟁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과 달리 2024년 8월 2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녹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탄녹법 제8조 제1항은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재의 판단 논리는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이 없어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어서 해당 조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라며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4건의 소송이 병합된 것으로 소송 주체들은 기후위기비상행동, 녹색당, 아기기후소송단(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과 환경단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정부는 헌재의 판결에 따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년도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한국 법원은 행정부가 해야할 일에 대한 법적 판단을 위한 법원의 검증능력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판단의 결과로 우리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매년도 감축목표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목표가 년도별 수치로 제시되면 기본법에 적혀 있기 때문에 무조건 모든 정부부처, 지자체, 공공기관과 민간까지 이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발전시설과 산업시설 등은 가능한지 모를 목표를 위하여 현존하지 않는 과학적 기술까지 할수 있다고 가정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모두 이를 지켜야 하고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특히 정부가 매 2년 마다 향후 15년 동안 필요한 전력설비 계획과 발전원별 비중을 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이를 따라야 한다. 상위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후 탄녹법) 제 8조에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전기사업법 제 25조에 의거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탄녹법이 더 상위법이기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력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무탄소 전원을 확대해야 한다. 전력시스템이 60Hz를 맞춰야하고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목표 자체가 될 수 없다. 유럽은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하여 지속가능실사와 탄소국경조정 등을 연기하거나 현실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의욕이 충만한 목표는 매우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계획의 파급효과는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홍종

[이슈&인사이트]트럼프 관세의 득실과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관세 폭탄을 퍼부으면서 세계 각국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WTO와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상호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만연해지고 있다. 심지어 자유무역주의가 쇠퇴하고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여 1930년 대공황 직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큰 흐름에 주목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하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품목별 관세, 보편관세, 상호관세 등 다양한 종류의 관세 부과를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과연 어느 나라(지역)가 미국의 우방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캐나다, 멕시코에서 시작하여 EU, 한국, 일본 등에 대해서도 가혹한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들 국가의 주력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였으며, 향후 반도체, 바이오 등 그 동안 관세에서 제외한 품목에 대해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 4월 2일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별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리라 기대했던 우리나라도 예상보다 높은 25% 관세 부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일찍부터 미국과 정상회담, 기업인의 투자 약속 등을 통해 낮은 관세를 기대했던 일본도 24%라는 관세에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개도국도 30~40%대의 상호관세에 경악하였다. 베트남은 서둘러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0%로 낮추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상호관세는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보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하면서 각국은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34% 상호관세에 대해 중국이 같은 수준의 대응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은 50%를 추가하고 중국도 50%를 추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럼트 정부는 21% 관세를 추가하여 기존 관세율과 펜타닐 관련 관세 20%를 포함하여 최종 145%(후에 245%로 수정)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 전쟁 중에 우군을 확보하면서 중국과의 관세 전쟁에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품목별 관세는 미국에 수출하는 경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보편관세를 포함한 상호관세는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미국 로컬 기업에 비해 우리나라에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에 245%의 가공할만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품목에서 미국 내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제3국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다. 3개월 유예기간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최대한 낮추어야 할 것이다. 관세율을 낮추면서 지나치게 내어주지 않도록 관세율 인하와 양보안 사이에서 득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너무 서두르다 졸속 합의에 이르지 않도록 다른 국가들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구기보

[EE칼럼]의원입법과 수권정당의 길

국회는 법을 만든다. 법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국회의원이 발의해서 법을 만드는 경우가 있고 행정부가 발의한 법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정부입법의 방식이 있다.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영향평가, 다른 부처와 의견조율, 규제심사 등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완성도가 높다. 반면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몇 명이 동의해주면 이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의원 입법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우선 비교적 간단한 법제정과정으로 인하여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어의 정의가 불충분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거나, 행정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법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회의원은 법안을 만들었다는 실적은 얻을 수 있으나 이후 이행에 어려움을 낳는다. 둘째로는 국회가 만들지 않아야 할 법안이 탄생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중요한 사항은 법으로 제정되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시행에 관한 사항은 정부의 시행령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행정부가 해야 할 것까지 법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법을 의뢰한 누군가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이미 있는 법안의 조항 한 두 개를 바꾸면 되는 사항을 독립법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법질서가 파괴된다. 관련한 법들이 모여있어도 어려운데 유사한 법안의 개수만 많아져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예컨대 소위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의 일부를 개정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별도의 법으로 만들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법안들이 난립하면서 국민은 그 모든 법을 다 읽어야 되는 상황도 생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당리당략 차원의 것들이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시적으로 사용될 것들이고 법리에도 맞지 않은 것인데 전투적 목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즉 국회가 정치로 해결할 것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다. 법질서가 어지러워짐은 당연하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이러한 의원 입법의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모 의원이 '선발주 금지법'이라는 것을 발의하려고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발의되진 않았다. 반발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선발주라는 것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허가를 받기 전이라도 미리 주문을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설일정에 차질이 없게 부품이 조달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법안을 준비했었던 국회의원은 이러한 선발주가 진행되면 안전규제자가 압박을 받게 되어 허가를 쉽게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안전규제자를 관리하면 될 일이지 사업자를 관리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이러한 선발주를 통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원전건설 경쟁력의 원천인데 바로 그 부분을 못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법안은 행정부가 입법했다면 법제화의 첫단계도 통과하지 못할 사안이다. 고준위폐기물법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을 법제화함으로써 장차 고준위폐기물 처분을 위한 부지선정의 투명성과 주민과의 약속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 법률제정의 취지였다. 이 법이 있으면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원전 계속운전을 저해하는 독소조항이 슬며시 삽입되었다. 원전 계속운전이 불만이라면 이에 대한 별도의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논의해야 하는데 고준위폐기물 법안을 만들면서 그것과 관련없는 조항을 슬쩍 끼워넣은 셈이 된 것이다. 매우 치졸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원입법이 그 당이 수권정당이 되는데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대선후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발전을 노래 부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법안은 여전히 탈원전 시대라면 적절한 법안인 것이다. 도무지 공약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수권정당이 돠고 싶다면 이에 버금가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표를 얻으려고 돈이나 뿌리는 포퓰리즘에 더 이상 속을 국민이 아니다. 트집 잡고, 끌어내리고, 국고를 나눠먹고, 평등이니 뭐니 하면서 사회적 생산성과 역동성을 파괴해서는 지지자의 박수는 받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 정범진

[기자의 눈] 실수도 말 못하게 만드는 조직이 항공 안전을 위협한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조직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거나 관리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묻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공정 문화(Just Culture)'라는 단어가 있다. 고위험 산업군에서 직원이 실수나 오류를 보고하더라도 처벌하기보다 학습의 기회로 삼고, 조직 전체의 안전성을 제고하려는 문화와 그에 목적을 둔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부속서 13을 통해 공정 문화 도입을 권장하고, 유럽항공안전청(EASA)도 고의·중과실이 아닌 이상 면책 원칙을 보장하고 있다. 과거보다 개선됐다고는 하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실수를 보고하면 인사 불이익이나 징계 우려가 여전하고, 실수와 위반의 경계가 모호해 관리자 재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는 게 현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잘못된 게 있어도 입도 뻥긋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전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작년 12월 29일에는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를 들 수 있다. 당시 여객기는 새떼와 충돌했고, 양쪽 엔진이 먹통인 상태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의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완파돼 179명 사망·2명 중상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계기 착륙 장치(ILS)는 잘 부서지는 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ICAO와 국토부 지침에도 어긋나게 콘크리트를 타설한 사람이 누구였느냐는 질타가 끊이질 않았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와 공항공사, 무안공항 측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관계자들 중 그 누구라도 문제 의식을 갖고 제대로 보고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희생 제물만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된 처벌 일변도의 분위기에서는 그 어느 것도 바뀔 수가 없다. 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은 “한국엔 더욱 강력한 면책 기반 자발적 보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에는 아직 공정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음을 점잖은 방식으로 지적한 것인데, 이 마저도 외국인이기에 가능했던 발언이다. 분명 대한민국 항공 산업은 양적 규모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안전에 대한 시각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듯 하다. '누가 했느냐?'는 추궁보다 '무엇이 부족했나?'와 같은 자성에 가까운 질문이 먼저 나와야 ICAO 파트 1 또는 2와 같은 항공 선진국 그룹 일원으로의 도약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눈] 합성니코틴 규제, 이권 다툼에 ‘하세월’

국내에서 담배임에도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 게 바로 '합성니코틴' 액상전자담배다. 기존 연초형 담배·천연니코틴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화학물질로 만든 합성니코틴은 현행법으로 '담배'가 아니라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산품으로 분류돼 있는 탓에 담뱃세·부담금에서 자유롭고, 지정된 소매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판매가 가능하다. 특히, 무인자판기·온라인몰 등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돼 청소년 조기흡연의 주범으로 꼽힐 만큼 부작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합성니코틴을 법 테두리 안에 들이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합성니코틴을 담배 원료로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016년 처음 발의됐으나 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3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경제소위를 열어 관련 개정안을 심사했지만 법안 통과가 불발됐다. 한 담배제조사 관계자는 “업계 출입하는 다수의 기자들이 의결된 방향으로 미리 기사까지 써둘 만큼 이번에는 통과가 유력시된다고 말이 많이 돌았다"면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니 시장에서도 의아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3월 입법 불발이 의아함을 넘어 큰 아쉬움을 낳은 이유는 올해가 입법 공백을 메울 적기로 판단한 나름의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성·생식독성 등 유해물질이 상당량 존재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다. 그동안 규제에 소극적이던 기재부도 태도를 달리해 입법 작업에 시동을 거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무산됐다. 업계 간 의견차로 공회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 액상전자담배 대표단체는 불법 합성니코틴 대상의 실태조사·단속에 무게를 두고 개정안을 반대하는 반면, 또다른 담배업계 관련 단체는 청소년 건강권 보호를 이유로 신속한 입법 과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 간 기싸움도 입법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리 제한 유예기간(2년) 동안 합성니코틴 판매자들의 일반담배 판매 여부를 놓고 기재부와 국회가 이견을 보이면서 입법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 책임 소재를 떠나 하루가 멀다 하고 합성니코틴과 관련한 청소년 범죄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부모 신분증으로 꼼수 구매하는 아이들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같은 세태를 방치한 업계와 정부, 국회가 궁극적인 원인 제공자들이다. 개인과 집단의 이권 때문에 청소년 건강권을 계속 방치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데스크칼럼] 자원전쟁의 시작, 공급망 확보가 우선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은 2023년 35.7%로, OECD 평균 28%보다 높은 수준이다. 수입까지 고려하면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89%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을 보면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핸드폰, 석유화학 등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기술력 향상, 연구개발 확대, 핵심인재 양성, 설비 자동화 등에 힘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에 매번 빠트리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원재료 공급망 확보이다. 가만 생각해보자.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등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모두 광물로 만든다. 철광석, 알루미늄, 구리, 연, 아연 등 산업광물부터 규소, 비소, 인듐, 코발트, 티타늄, 희토류 등 핵심광물까지 모두 광물로 점철돼 있다. 우리나라는 금속광물 수요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매장량도 별로 없지만, 환경피해 우려 때문에 있던 광산들도 모두 문을 닫으면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원부국들이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자원무기화에 매우 취약하다. 현재 세계 경제시장에는 자원무기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반도체 수출까지 막자, 중국 정부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희토류는 첨단, IT, 군수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광물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45%, 생산량의 70%, 제련품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 없이는 희토류 수급이 불가능할 정도다. 희토류는 지각 내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함량이 200ppm(0.02%)에 불과해 생산 시 엄청난 환경피해가 발생하고, 이를 정제하는 과정에 유독물질인 황산이 대량 사용돼 선진국에서는 거의 생산이 불가능한 광물로 평가된다. 중국은 오히려 이러한 점을 이용해 희토류를 전략무기화하고 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열도 영토 분쟁 때 일본에 중국 선원이 구속되자 희토류 수출을 금지시켜 곧바로 풀려나게 했다.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국한테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미국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광물 수출통제에 따른 미국 내 영향을 조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소개하며 “(희토류는) 군사 인프라, 에너지 인프라, 그리고 첨단 국방시스템 및 기술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다. 또한 방위산업 기반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제트 엔진, 미사일 유도 시스템, 첨단 컴퓨팅, 레이더 시스템, 첨단 광학, 보안 통신 장비와 같은 응용 분야에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미국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음을 고백한 셈이다. 이번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동맹 및 무역 관계를 고려하면 우회수출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충분히 타깃이 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약 60일분의 희토류를 비축하고 있을 뿐 그외에 별다른 대응방법을 갖추고 있지 않다. 비축량이 모두 소모되면 첨단산업 생산은 중단될 것이고, 수출 역시 줄게 되면서 국내 경제는 치명적 피해를 입게 된다. 원재료 공급망 리스크가 백척간두인 상황인데도 정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공급망 리스크를 최일선에서 체크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할 자원공공기관 수장에 비전문가인 언론인이 임명됐다. 그는 해당 기관의 비상임이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전문가로 인정된다는 것이 해당 기관의 설명이다. 그 논리라면 그는 이전에 카지노 공기업, 케이블방송사, 금융사에서도 비상임이사를 지낸 바 있는데 그럼 그는 관광, 방송, 금융 전문가도 되는 셈이다. 누가 이를 인정하겠는가. 지금이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 첨단산업을 발전시키고 수출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 첫단계로 우선 원재료 공급망부터 확고히 다져야 한다.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E칼럼]롤러코스터 타는 봄철 날씨

계절적으로는 봄철이 분명한데, 요즘 외출할 때가 되면 가볍게 입어야할지 아니면 두껍게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포근해지는가 싶었던 날씨가 돌변하여 한겨울로 돌아가 버리는가 하면 바로 초여름으로 직행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 구정 연휴의 강한 한파 이래로 열흘이 멀다 않고 롤러코스터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그 탓에 중부지방에서는 만개를 앞둔 벚꽃이 강한 비바람에 낙화하면서 따스한 봄기운에 활짝 핀 벚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던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특히 일주일 전 주말에 한반도로 유입된 강한 한기의 내습은 강풍과 함께 비와 눈을 동반함으로써 기상청 관측 사상 처음으로 4월 중순의 서울지방 적설을 기록하게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양쯔강 이남에는 최악의 황사와 모래바람이 불어 닥쳤고 네이멍구 등 중국북부에는 때아닌 폭설과 시속 100km가 넘는 강풍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는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봄철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제트류 변동이 빚은 주기적 강수현상 일반적으로 봄철은 기온 등 날씨의 변화가 다른 계절에 비하여 큰데, 그 이유는 매년 이맘 때 한반도 상공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제트류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다. 제트류는 남북 간의 온도차에 의해서 중·고위도에 발생하는 강한 편서풍의 흐름인데 제트류가 흐르는 방향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위치한다. 제트류는 일반적으로 뱀이 기어가듯이 남북으로 사행하기도 하는데, 파동 모양의 제트류가 봄철에 한반도 상공을 지날 때, 우리나라는 제트류의 남쪽과 북쪽에 번갈아 놓이게 되면서 따뜻한 날씨와 추운 날씨를 잇달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곳은 대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비나 눈이 내리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봄철에는 기온의 변동과 더불어 매우 주기적으로 강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제트류 파동에서 구불구불하게 남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지나치게 늘어나다가 본류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서 독립된 소용돌이로 분리된 후, 오랫동안 거의 제자리에서 맴도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소용돌이는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고립된 저기압으로 본류인 제트류로부터 분리된 저기압이란 의미로 분리저기압이라고 하며 떨어져 나왔다고 뜻에서 절리저기압이라고도 한다. 이 저기압은 원래 북쪽의 찬 공기로부터 분리되어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한랭저기압이라고도 한다. 한랭한 성질을 가진 분리저기압은 많은 경우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저기압의 상층에 위치한 매우 찬 공기가 하강기류를 유도하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급격한 대류활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대류활동은 천둥과 번개 그리고 강풍 등을 동반한 요란한 강수를 유발시킨다. 지난 주 초에 때늦은 추위와 더불어 적설과 강풍 등 기상이변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이 분리저기압이다. 심해지는 봄철 변화...원인은 온난화와 PDO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영역에 대한 지난 40년 동안의 봄철 기온의 변동을 조사한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지역 기온의 일변동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이 지역 봄철 기온의 일변화가 과거에 비하여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능성 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온난화이다. 지구의 온난화는 특히 저위도보다는 극지방의 기온을 더 높이는데 이로 인해 중위도 지방에서의 남북 간의 온도차이가 감소하여 제트류가 약해지면서 구불구불한 제트류 파동의 사행진폭이 커지기 때문에 분리저기압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북극지방의 기온 상승률은 전지구 평균기온 상승률의 4배에 달할 정도 매우 가파르다. 이에 따라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제트류가 한반도에 걸쳐 놓이는 봄철에 기온변동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북태평양의 중앙과 서쪽의 해면온도가 수십 년을 주기로 평년보다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는 PDO(태평양십년진동)라는 현상이 있는데, 이 현상이 북태평양 기압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2000년대 들어와서 현재까지는 이 지역의 해면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데 이러한 해면온도의 변화가 이 지역에 기압배치를 변화시켜 봄철 한반도의 기온 변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기상위성을 활용하여 지구의 곳곳을 탐사하기 시작한 기간이 고작 PDO의 한 주기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짧기 때문에 관측되는 봄철 기온변동의 증가 원인에 PDO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를 바탕으로 볼 때 기후변화와 더불어 PDO와 같은 자연적 변동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에너지 전력망과 여러 산업에 부정적 영향 봄철의 이상 한파나 난동은 여러 산업 분야에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특히 기후변동에 민감한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개화기나 초기 과실형성기를 맞은 사과, 포도, 복숭아와 같은 과실수에게 이 시기의 이상 한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수확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른 봄의 이상 난동은 식물의 조기 발아나 개화를 유발할 수 있는데 그 후에 기온이 내려가면 싹이나 꽃이 죽어 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 봄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에너지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난방과 냉방 사이의 급격한 전환은 에너지 전력망에 예측 불가능한 부하를 가할 수 있다. 예견된 온난화의 가속화...국가차원의 대응은 제트류 파동에서 남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본류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분리저기압이 되지만, 반대로 북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떨어져 북상을 하면 분리고기압이 된다. 분리고기압은 분리저기압과 반대로 이상 난동과 가뭄이나 대기오염의 원인이 된다. 문제는 구불구불한 제트류 파동에서 분리저기압이나 고기압이 떨어져 나갈지 여부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떨어져 나갈지 등을 최소한 몇 주 앞서서 예측하는 것은 지구유체의 비선형성과 카오스적 성질 때문에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과학적 근거에 의해 마련된 미래 기후변화 예측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구온난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이라 보며 이에 따라 봄철의 기온 변동은 앞으로도 더욱 심해지고 이상 기상현상도 더 빈번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개인과 사회 차원의 대비는 물론 국가 차원의 대응과 적응 정책의 적절한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

[기고] 74년 안보 희생 대가 0원…정부, 동두천 외면

박형덕 동두천시장 동두천시에는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걸산마을이 있다. 분명 대한민국 땅 위에 존재하지만 미군 기지 안에 있다는 이유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마을이다. 1951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마을 주민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입과 거주, 이동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도무지 지금 대한민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2014년, 한-미 양국은 걸산마을이 포함된 캠프 케이시 기지를 2020년경까지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고, 반환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지 사령부는 2022년 6월부터 신규 전입 주민에 대한 출입 패스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주민등록은 돼있는데, 실제로는 마을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최소한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다. 동두천시장 취임 이후, 걸산마을 패스 문제를 비롯해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온 동두천에 대해 정부가 마땅한 보상과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 요구해 왔다. 지역발전 범시민대책위원회와 시민도 다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궐기대회를 진행하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시는 전체 면적 중 42%에 해당하는 40.63㎢의 땅을 미군에 제공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한미군과 그 가족, 관련 종사자 등 약 2만명이 거주해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대규모 병력의 평택 이전 이후 미군이 급감하며 지역경제는 점점 침체됐다. 대신 지속적인 반환 요청으로 23.21㎢의 공여지를 돌려받았지만 99%가 산지여서 개발이 불가하다. 반면 평지로 활용 가치가 높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17.42㎢는 반환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기지의 장기 미반환으로 동두천 경제는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 피해 수치를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 미군 관련 자영업체 중 70% 이상이 폐업했고,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해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지방세 손실, 도시 개발 차질에 따른 매년 5278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 등 누적 피해는 25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여파로 2024년 상반기 실업률 전국 1위, 재정 자립도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때 10만에 육박했던 인구도 현재는 8만대로 줄어들어 이제는 동두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필자는 74년간 지속된 안보 희생에 대한 최소한 보상으로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군 기지 이전을 이유로 제정된 '미군 이전 평택 지원법'을 통해 평택은 삼성 반도체 유치, 기반 시설 조성 등 약 19조원 지원을 받아 인구 60만 도시로 성장했다. 평택 선례에 비춰볼 때, 동두천도 이에 상응하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김성원 국회의원이 '주한미군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두천이 입은 피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또한 2014년, 미군의 동두천 한시 잔류 결정에 따라 정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약 30만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조성 이후 분양과 기업 유치는 온전히 지자체 몫으로 떠넘겨진 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조성만 국가가 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기는 방식이라면 과연 그것을 '국가산업단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사실상 보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동두천시민과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 유치와 2단계 사업 추진에 있어 분명한 책임을 지고 실질적인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 더불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도 강력히 희망한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 국가산업단지 조성,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여부는 동두천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이제라도 정부는 동두천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고, 정당한 보상을 시작해야 한다. 박형덕 동두천시장 kkjoo0912@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개헌의 그림자, 권력의 계산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당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우 의장은 자신의 개헌 주장을 철회했다. 그의 개헌 제안은 타당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1987년 개헌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행 헌법은 그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윤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역대 국회는 모두 개헌 특위를 가동한 바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장애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투표 절차에 있다. 현행법상 개헌 관련 국민투표는 본 투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 투표는 사전 투표까지 실시하고, 개헌 관련 투표만 본 투표 당일에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개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과연 이런 이유에서 개헌에 반대했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되짚어 보면, 개헌론이 주로 부상하는 시기는 정권 말기와 대선 시기다. 이는 거의 예외가 없는 한국 정치의 '비공식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어 온 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개헌론의 등장은 권력, 그리고 세력의 불균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권 말기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권력 말기의 레임덕 현상으로 인한 권력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 시기에도 개헌론이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대개 대선에서 열세에 놓인 쪽에서 주도한다. 레임덕 방지든,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이든, 공통된 점은 개헌이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이다. 개헌이 이처럼 효과적인 카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블랙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헌 이슈가 부상하면, 다른 모든 정치적 이슈는 그 앞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는 자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신이 설정한 선거 구도도 흐트러지게 된다. 따라서 강세를 보이는 후보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임기 말에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도 개헌론을 꺼내 듦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나 책임을 일시적으로 무대 뒤로 물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권력 누수 현상을 일부 완화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전략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은, 정권이 제기하는 개헌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나 정권 말기의 야당은 개헌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치에서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의 틀 속에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정치인의 출현인 것이다. 신율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