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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트럼프의 화석연료 회귀와 한국의 선택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5년 미국은 다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청정에너지 지원 자금 지급 철회, 미국산 석유·가스 개발 및 수출 확대 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몰입하고 있는 와중에, G7 국가 중 최대 탄소 배출국인 미국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상황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다시 흔들고 있다. 그 여파는 곧장 한국에도 미치고 있다. 미국은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한국에게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석유 수입 확대를 사실상 요구하고 있고, 한국산 자동차·철강에 대한 통상 압박도 강화되었다. 여기에 방위비 협상과 연계된 에너지 수입 요구는 외교와 경제가 맞물린 복합적 협상으로 한국을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리더십보다는 에너지 자립과 화석연료 수출 중심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을 마치 고정 수입처처럼 관리하고자 한다. 문제는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이 이 흐름에 타지 않을 수도 없지만, 마냥 끌려가기만 한다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은 한국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릴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현재 양당의 경선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각 당의 주요 예비 후보들도 저마다의 에너지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공존'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기술을 신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김동연 후보도 탄소중립을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보고 SMR 활용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지사로서 그는 재생에너지의 적극 활용은 물론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기·냉난방비 등의 공동주택 관리비를 대폭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국민의힘의 홍준표 후보 역시 SMR 상용화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SMR 상용화를 서두름으로써 에너지 안보는 물론, 기후위기 대응,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국민의힘의 한동훈 후보는 '성장하는 중산층 시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에너지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 후보는 전기·가스 요금과 관련해 “에너지 공급을 위해 안전하고 저렴한 전력원인 원전을 새로 건설하고 기존 원전은 계속 운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각 후보의 접근은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실제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수입 압박이 본격화될 경우, 정치적 의지와 외교 전략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크게 표류할 수도 있다.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안보에만 국한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곧 산업정책, 무역전략, 외교 노선, 세대 정의와도 연계되는 문제다. 다가오는 6월 대선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제공한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공감대, 기술 혁신과 시장 유인책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대전환의 구상, 그리고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통합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임은정

[기자의 눈] 상지건설 광풍이 보여준 대선 테마주의 민낯

테마주는 미래가치를 선반영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가치를 선반영하기에 테마주는 비이성적인 급등세를 시현하기도 한다. 최근 상지건설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2일부터 16일까지 상지건설의 주가는 882% 치솟았다. 10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상지건설의 임무영 전 사외이사가 과거 이 대표 캠프에 합류했던 사실이 부각되면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테마주로 분류된 것이 상승 배경이다. 만약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고하면 상지건설의 가치가 급등할까? 우선, 테마주의 근원지인 임 전 이사는 상지건설의 사외이사에서 퇴임한 상황이다. 임 전 이사가 퇴임한 상황이므로 선반영될 추상적 가치도 없다. 또한 상지건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상지건설은 지난 2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했는데, 주주우선공모로 진행했다. 증권사가 실권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진행하는 방식이다. 증권사가 상지건설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존주주들의 시선도 싸늘했다. 유증의 발행가액은 발표 전일 종가인 3860원의 30% 비싼 5000원으로 확정됐는데 이는 당시 주가가 액면가액을 하회했기 때문이다. 실적이 우수하거나 재무상태가 건전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88% 감소했고 그렇다고 신규분양프로제트를 진행하고 있지도 않다. 차입금의존도는 46%에 육박해 통상의 30%를 훌쩍 넘긴 상태다. 정책 기대감이 있다면 그나마 의미라도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상지건설의 '상지카일룸'과 같은 프리미엄 오피스텔을 지원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사외이사가 퇴임했다는 점까지 고려할 때 대선 테마주는 상지건설의 급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비정상적인 상승의 흔적도 있다. 초반 2연상이 이어질 당시 거래량과 거래액은 2일 약 10만건과 약 4억원, 3일에는 약 4만 건과 약 2억원에 불과했다. 최대주주는 '세력들의 놀이터'라는 키워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검찰은 최대주주인 중앙첨단소재를 대상으로 일부 주주가 시세를 조종했다고 보고, 해당 주주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달에는 최고의 껍데기(쉘)로 평가받고 있는 KT의 손자회사 '현금부자' 이니텍을 인수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최근 상지건설의 급등세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상당하다. 그렇기에 금융감독원과 남부지검의 금융합수단 뿐만 아니라 시장 관계자 및 언론에서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이슈&인사이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〇〇은 누렇고, 끈적끈적한, 이제 막 발효되기 시작한 포도주처럼 담벼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감각적인 문장은 200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나온다. (퀴즈. '〇〇'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20세기 소설의 이정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대낮의 반사광이 그 노란 날개를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덧문 문살과 유리창 사이 구석진 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두 문장에는 직접은 아니지만 내용상 태양이 개입한다. 만일 태양이 문학에 미친 흔적만으로 글을 쓰면 아마 전집이 가능할 법하다. 21세기 들어 태양은 문학뿐 아니라 삶 전반을 장악하는 중이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32%였고, 그중 태양광발전이 6.9%포인트였다. 풍력 8.1%포인트, 수력은 14%포인트로 아직 태양광의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태양광은 20년 연속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력원이며, 최근 3년 사이 발전량이 두 배로 증가해 2024년에는 2,000TWh를 돌파했다. 기술발전과 비용하락으로 앞으로 태양광발전이 에너지 전환의 엔진 역할을 하리라는 데에 거의 이견이 없다. 이런 상황이 마뜩잖은 세력은 화석연료 진영으로, 대표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월 20일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발표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행정명령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에서 제외했다.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 안보의 기본 요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가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 11가지라고 분명하게 정의하며 태양광, 풍력 등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에너지에서 제외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석탄 산업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석탄 발전이 현재 미국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미만으로, 2000년(50%)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석탄을 더 때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게 트럼프 생각이다. 이런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석탄발전소가 화려하게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미국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보면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반대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2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추가된 미국 총 발전용량의 90% 이상이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특히 태양광은 전체 신규 발전용량의 81% 이상을 차지하며, 2024년 12월까지 16개월 연속 가장 큰 신규 전력원의 위치를 지켰다. 2024년에 추가된 새로운 태양광 발전용량은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합친 것의 거의 9배에 달한다.세계 흐름도 마찬가지다. 전기에너지 중 세계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0년에 46%로 확대되고 태양광발전은 34.9%포인트를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9% 미만으로 세계 평균의 3분의1에 못 미친다. 2030년 목표는 고작 20%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가 해야 할 많은 과제 중에 재생에너지 강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꼭 민주주의에 국한한 게 아닐 터이니, 누가 되든 트럼프 같은 역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퀴즈의 답은 '석양'이다. 안치용

[이슈&인사이트]美 관세 폭탄이 부른 또 다른 위기

미국의 대규모 관세폭탄이 대기업에게 해저 지진이라면, 트럼프의 '소액 면세' 폐지는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곧 이어 몰려올 거대한 쓰나미다. 소액 면세 기준을 활용해 미국에서 급성장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알·테·쉬) 등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판매하던 물량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거세게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판촉공세를 펴는 중국산 제품의 상륙에 진정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중국발 C-커머스가 이름들이 낯설게 들렸던 건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이들은 초저가와 광속 배송을 무기로 국내 소비자의 '합리적 욕망'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자국은 선명하다. 바로 소상공인의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4년 하반기, 유통 생태계에 또 하나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티몬과 위메프. 한때 쿠팡의 아성에 도전했던 이들 플랫폼에서 정산 지연 사태가 터졌다. 수개월 동안 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고,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온라인을 뒤덮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자금을 풀고 정산 주기 단축을 약속했지만, 상처는 깊고 복구는 더뎠다. 이 역시 알테쉬의 공세에 밀린 온라인발 위기의 전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어떻게 이 파고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에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초저가 전쟁은 더 이상 우리의 무대가 아니다. '싸고 많은 것'은 이제 중국의 강점이다. 우리가 갈 길은 분명하다. 중가 시장으로의 도약, 즉 가성비에서 가치비(Value-for-Money)로의 전환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싼 것'이 아닌 '좋은 것을 합리적으로' 찾는다. 이제는 품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에 담긴 철학과 손끝의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둘째, D2C(Direct to Consumer) 모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유통의 중간 단계를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소통하는 구조. 이는 단순한 유통 효율을 넘어, 브랜드의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다.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가 담긴 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산다. 셋째,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 싸워야 한다. 공동 물류, 공동 구매, 공동 마케팅, 공동 R&D. 연합과 협업 없이는 거대한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생존이 어렵다. 생존을 위한 '연대의 경제'가 절실한 시점이다. 넷째,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1인 가구, 개인 맞춤형 소비 등 소비자의 니즈는 급변하고 있다. 소상공인은 오히려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감성화. 단순히 '좋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담은 제품이 중요하다. 감정에 호소하는 콘텐츠와 리뷰, 브랜드 스토리가 '가격'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 이제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기부 산하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한유원)은 단순한 지원기관이 아니라, 생존 플랫폼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 전용 D2C 플랫폼, 공동 물류 시스템, 중가 브랜드화 지원,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교육… 이 모든 것들이 한유원의 새로운 임무가 되어야 한다. 중국발 초저가 공습과 플랫폼의 신뢰 붕괴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유통 생태계 전체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이 판을 읽고, 대응하고, 반격하지 않으면, 다음 생존자는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상공인은 생존하기 위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지원을 넘어 소상공인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설계하는 연출자이자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EE칼럼] 태양광 산업에 볕이 들려면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있지만, 올해 미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록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태양광 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은 2024년 미국 전력망에 48.6GW의 발전용량이 추가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서 태양광은 30GW가 설치되어 62%를 차지했다. 2025년에도 AI와 데이터센터 등의 영향으로 전년에 비해 약 30% 증가한 63GW의 발전용량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태양광은 32.5GW가 설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광 산업의 성장에 있어 가장 큰 위협요소는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25년 경제성장 방향을 '전광리'와 AI로 잡았다. 전(電), 광(光), 리(리튬)는 각각 전기차, 태양광, 리튬 배터리를 의미한다. 태양광의 가치사슬은 폴리실리콘, 잉곳, 웨이퍼, 셀,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은 태양광 가치사슬 모든 분야에서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상위 10위 태양광 모듈 공급업체는 모두 중국 기업이다. 중국의 태양광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정룽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려 했던 스정룽은 행정 착오로 호주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즈대학으로 진학한다. 여기에서 태양전지 연구의 전설적 존재인 마틴 그린 교수를 만난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0년에 잠시 귀국한 그는 중국에 태양전지 회사를 차리겠다는 200쪽자리 계획서를 작성했다. 열 달 만에 우시 지방정부로부터 간신히 600만 달러를 받아내어 2001년에 선텍(Suntech)을 설립했다. 스정룽은 태양광의 장벽은 비용이라고 보고, 비싼 기계 대신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여 비용을 줄였다. 유럽의 발전차액지원제도와 일본의 정부 보조금 덕택에 선텍은 발족한 지 불과 4년 만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태양광 가치사슬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퍼스트솔라가 눈에 띈다. 2024년 모듈 공급량 기준으로 13위에 위치한다. 퍼스트솔라는 박막형 태양광 모듈 생산 기업으로 태양광 모듈 생산 기업 중 유일하게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미국에서 생산한다. 박막형 모듈은 중국이 독과점 중인 폴리실리콘 모듈의 가치사슬과 생산 방식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중국 기업을 거치지 않고서도 태양광 모듈을 생산할 수 있다. 박막형 태양전지는 효율이 낮고, 비용도 높은 편이기에 사장되어 가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효율 개선과 비용 절감을 통해 이제는 중국이 장악한 실리콘 태양전지와 견줄 정도가 되었다. 박막형 태양전지는 실리콘 웨이퍼 대신 유리나 금속기판 위에 반도체 박막을 증착하여 제조한다. 이 전지에 어떤 물질을 증착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퍼스트솔라의 박막형 태양전지는 카드뮴 텔루라이드를 태양광 흡수층으로 사용한다. 퍼스트솔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 태양광 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중국과 차별화한 한 발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것이다. 태양전지의 차세대 혁신기술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을 들 수 있다. 2024년 MIT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이 이르면 3년 안에 상용화돼 에너지 혁명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1839년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발견된 광물인데, 러시아의 광물학자 레브 페로브스키(Lev Perovski)의 이름을 딴 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박막형의 한 종류이다. 탠덤셀이란 두 종류 이상의 태양전지 셀을 적층한 형태의 태양전지를 말한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주로 적외선을 이용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가시광선을 광범위하게 흡수하며 적외선과 자외선도 일부 흡수한다. 따라서 기존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를 결합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은 다양한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어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효율이 최대 27%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 한계 효율도 30% 미만이다. 이에 비해 페로브스카이트 텐덤셀의 이론적 한계 효율은 44%에 달한다. 상용화는 퍼스트솔라가 앞서고 있는데, 한화큐셀도 따라가고 있다. 현대차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 중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투명하고 잘 구부러지기 때문에 선루프와 창문 등에 부착하면 자연광은 통과시키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가시광선으로 충전이 되므로 지하주차장의 LED 조명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은 올해 수립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공급망을 구축하여 지붕과 건물 벽면 등에 2040년까지 20GW를 설치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업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박성우

[기자의 눈] ‘상생 지원’ 수십조라는데, 진짜 지원은 어딨나요

은행권이 36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카드를 꺼냈지만 우리나라 경제 구성원 중 취약층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은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일제히 경제적 약자 구성원에 대한 방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들은 실상 '손 벌릴 곳이 없다'며 호소하고 있다. 은행권의 상생금융엔 온통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강조돼 있지만 실제 자금난에 빠진 이들이 당장 안전하게 대출할 곳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문턱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있다. 올해 1분기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은 전년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을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개인사업자 대출은 오히려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달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를 밑도는 0.8%까지 내려갔다.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전반적 상향) 현상이 나타난데다 대출 심사에 까다로워진 은행권이 사실상 안전한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만 선호한 결과다. 은행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기업대출에는 가계대출보다 높은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가 적용되기에 리스크 관리상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가뜩이나 미 관세 정책으로 기업의 연체율 우려가 커진데다 계엄 이후 환율이 급등해 은행권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에 은행에만 상생을 의존하지 말라며 화살을 당국에 돌리고 있다. 당국은 관계기관 협의나 시장 모니터링 등 갖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지만 실제적인 대책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내리는 '지시'에 그친다. 대안신용평가 도입, 정책자금 확대 등 보완책을 모색하고 있다지만 당장 숨통이 막힌 이들을 도울 실질적인 상생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금융지주 회장을 소집해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실물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결국 은행권에 '방책을 내놓으란식'으로 목소리 내기에 그치고 있단 지적이다. 그러나 은행은 대출 총량 규제와 수익성에 발이 묶여 단기간 내 대출 확대에도 나설 수 없다며 대응한다. 대선 준비에 들어간 정치권도 '민생 회복'을 외치지만 포퓰리즘성 발언만 무성하다. 서로 부담 떠넘기기에 열중하는 사이 자영업자들은 매출 악화와 재무 부담이 쌓여 폐업이나 수십퍼센트대 이자를 받는 불법 사금융에 기댈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상생금융은 조단위인데, 경제위기 속 돈 구하기에 전전하는 자영업자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인사이트] 그는 아직 파면되지 않았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지난 4일 파면당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한 번 더 칼 대려는 거 아니다. 7년 전, 국민에게 사과하고 청와대를 나왔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나마 덜 나쁜 케이스였다고 느끼게 될 줄이야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다. 무서운 일이다. 인간의 죄의식이라는 거, 아니 생각이라는 거, 참 무섭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1주일 만에야 관저를 나오던 모습에서 망령과 미몽을 봤다. 절망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1500여 시민들(경찰 추산)은 “윤 어게인", “사기탄핵"을 외쳤다. 대학교 점퍼(과잠)를 입은 수 백 명 젊은이들은 윤과 포옹하다 울기도 했다. 박해받는 순교자나 체포돼 끌려가는 안중근 의사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윤 피고인의 지시로 50~70대는 대열의 뒤로 빠지고, 주민등록증 소지 20대 200명을 전열에 도열시켰다가 악수하고 포옹까지 했다고 한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고? 다시 출마하라고? 윤석열 피고인은 끝까지 사과는커녕 승복 메시지도 없었다. 관저에서 나오며 “나라를 위해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했다. 새로운 일! 파면되던 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런 그에게 자숙 요구는 너무 점잖다. 그는 '구속기간 만료 후 기소'로 구속사유가 취소돼 일시 석방된 피고인일 뿐이다. 그가 지지자들을 세뇌시키듯 조종하는 거야말로 경거망동이다. 헌재는 그를 파면했지만 계엄망령은, 내란망동은 그대로다. 그는 아직 파면되지 않았다. 과잠을 입은 그 젊은이들도 불과 몇 년 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을 배우고 한국사를 공부했을텐데, 헌법파괴자와 포옹하려 줄을 서고 다시 출마하라며 울부짖는다. 이들을 정신 나갔다고 손가락질하며 사회불안요인으로 방치한다면, 공동체나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몽과 망령에서 깨어나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야 말로 공동체가 공동체구성원에게 해야 할 의무이자 역할이다. 특정 신념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주장이나 신념체계를 신봉하건 누구를 지지하건 헌법과 법률의 범주 안에 있게 해야 한다. 관저에서 나온 윤 피고인은 빨간 모자를 건네받아 썼다. 트럼프를 가져다 베낀 그 빨간 모자. 영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Make Korea Great Again(한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가 수감돼 죗값을 치르는 게, 법치가 정상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확실히 보여주는 게, '중국인 부정선거' 망령에 빠진 사람에게 사실을 알게 하는 게, “아무개 헌재 재판관의 한국어 발음이 이상한 걸 보니 재판관으로 잠입한 중국인이 맞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미망에서 깨어나게 하는 게, 내란주모자를 다시 출마하게 하자는 피켓이 자신의 헌법상 권리를 파괴하는 망령임을 알게 하는 게 '코리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시작이다. 12.3 계엄내란을 통해 다시금 통렬히 깨닫는다.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새 정부는 윤정권 과오청산이나 사회대개혁과 함께, 이들 미몽에 빠진 사람들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도 애써야 한다. 그들을 정치적 지지자로 만들라는 게 아니다.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게 국민통합의 첫 단추이자 사회불안요인제거의 첫 걸음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게 하는 것,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사고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내란 이후 숙제다. 윤 피고인과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상식의 중요성을 거듭 깨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상식체계가 망가진 사람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암담하고 슬픈 얘기다. 이강윤

[EE칼럼]전기요금구조와 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

국제무역 질서가 요동치면서 에너지 시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의 영향으로 3년 전 시작되었던 에너지 가격 급등이 이번에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변수가 많아 단기적 현상만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뜬금없이 나타나는 외부적 충격은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된다. 그동안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에너지 시장과 가격이 또 다시 커다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은 국가 에너지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력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복합적이다.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2018년 이후 kWh당 60∼80원 내외에서 오르내리던 전력시장가격이 2022년 발발한 러-우 전쟁의 여파로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그해 연말에는 kWh당 270원 수준까지 폭등하였다. 2023년 4월 이후 150원대로 하락한 후 최근 들어서는 110원대까지 낮아졌다. 2022년부터 급등한 국제유가로 인해 유발된 전력시장가격의 급등이 전기요금에 즉각 반영되지 않아 한전의 적자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한전 적자가 수년간 누적되어 2022년에는 영업적자만 33조 원에 이르렀고, 2021년∼2023년 3년간의 영업적자는 43조원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누적된 한전의 누적적자 또한 2023년에는 200조원에 이르러 심각한 경영상의 우려를 낳게 하였다. 이처럼 누적된 한전의 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2023년 이후에만 4차례 걸쳐 인상되었으며, 그 결과 한전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고 작년에는 약 8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발생하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유가가 유지된다면 한전 흑자는 올해도 지속되겠지만, 속단하기는 어렵다. 한전의 적자나 흑자 여부는 한전의 구입비용과 판매요금간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전기를 구입하여 송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팔고 전기요금을 받는다. 이때 사는 비용이 높거나 파는 요금이 낮으면 적자고 반대면 흑자다. 물론 여기에는 전력시장의 효율성이나 요금구조 문제 등 들여다봐야 할 요인도 적지 않다. 문제는 한전의 구입비용과 전기요금 간에 발생하는 차이를 조정해줘야 하는데 그 시기와 조정폭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전기요금 조정이라는 정책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시장가격은 매시간 변동하고 구입비용 또한 정산과 조정절차를 거치더라도 단기간에 반영되는데 반해, 이를 전기요금으로 조정하기까지는 통상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연동제도 있지만 이 또한 제한된 역할에 그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데는 소비자의 부담, 산업체의 영향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들 잠시 뒤로 늦출 뿐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요금 인상 과정에서 용도별 수준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다 보니 정작 공급원가와는 역행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용 요금은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주택용의 60% 수준이었으나, 2020년 이후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여 현재 대규모 산업용 요금은 kWh당 183원으로 업무용이나 주택용보다도 높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산업용 요금의 급격한 인상이 역설적으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체로 하여금 자가발전설비와 같은 분산형 전원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높아진 요금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앞으로 전력망 문제 등이 단 시일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역간 수급불균형을 줄이고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전이 적지 않은 영업흑자를 기록했던 때도 있다. 요금을 올리니 인상요인이 사라져 버려 예상치 않게 흑자가 되기도 한다. 2013년∼2017년 5년 동안에는 무려 35조 6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본사 매각대금 10조원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지금보다 절반 수준이었던 당시의 전력산업 매출액을 고려한다면 대규모 흑자이다. 당시 남은 돈은 이후 전력산업의 발전을 위해 남겨지지 못하고 각종 펀드조성, 보조금, 학교 설립, 전기 복지사업과 같은 용도로 소진되 버렸다. 원칙대로라면 구입비용의 감소폭 만큼 높아졌던 요금을 즉시 낮추어야 하지만, 한번 오른 요금을 낮추기란 쉽지 않다. 이제 만약 다시 흑자가 지속된다면 이번에는 어떻게할 것인지 정해진 규칙이 없으니 여전히 알 수 없다. 이처럼 흑자와 적자의 반복되는 현재의 후진적인 요금시스템을 언제까지 방치할것인가?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요금을 객관적 중립적으로 관리하는 선진국형의 '요금조정메커니즘'을 제안한바 있다. 이렇게 하면 주기적으로 요금 변동요인을 반영하게될 것이며, 대규모 전력소비자는 자신의 지불해야될 에너지비용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요금체계를 지속하는 것은 실익이 없으며 소비자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등장하는 물가안정이나 민생과 같은 구호는 결과적으로 기형적인 요금구조로 이어졌을 뿐이다. 요금구조와 체제의 변화가 시급하다. 이창호

[기자의 눈]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人災 더는 없어야

부산 도시철도 공사 현장 부근에서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이틀 연속 일어났다. 지난달 25일과 13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일어난 땅꺼짐 현상까지 포함하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사고만 4건째 일어난 셈이다. 대형 싱크홀 사고가 지반이 약화되는 장마기간도 아닌 봄철에 지속 발생하자 근방 주민들은 발 뻗고 잠들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싱크홀 사고는 갈수록 빈번하다. 2018~2024년까지 총 1337건이나 발생해 연평균 200여 건에 달한다. 지역별 지반 침하 발생 건수는 △경기도 289건 △광주광역시 155건 △부산광역시 132건 △서울특별시 112건 등이었다. 심각한 것은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부실 행정임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4건의 사고는 모두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에서 일어났다. 지반 안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의 잘못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에 따르면 2021년 한국터널환경학회가 싱크홀 위험을 경고하는 공문을 시에 보냈다. 그러나 시는 시공사에 전달한 것 외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시는 특히 최근 지반침하 안전지도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생명보다 집값을 중시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뒤늦게 지난 9일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첫 사고 이후 약 한 달간 제대로 된 대책 마련보다 대선 출마에 골마했다는 점에서 '뒷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지난 11일 일어난 신안산선 사고도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붕괴 17시간 전 기둥 파손 징후가 발견돼 시공사가 위험 요인을 보고하며 작업을 일시 중단했음에도, 추가 공사가 진행돼 결국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게다가 사고가 난 구간은 2023년 감사원이 지반 상태가 매우 불량한데도 터널 설계에 적절한 시설 마련이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 곳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 지하 시설물 매립 구간과 하천 인접 구간을 2년간 전수조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고 징후를 소홀히 여긴 행정 개선은 물론, 공사 현장 인근 점검과 위기 대응 인력 확대, 첨단 재난 대응 기술 도입 등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이슈&인사이트]헌법재판소의 부정선거 의혹 해소 선고

12월 3일 야밤에 봉창 두드리는 계엄선포가 해가 바뀌어 4월 4일 아침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로 막을 내렸다. 윤석열 자신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헌법재판관이 주심으로서 결정문까지 작성한 선고에서 8대 0 만장일치 파면은 그 무게가 상당하다. 헌재의 선고 이후에 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사상자가 많았던 2017년 박근혜 파면 선고 당일의 모습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6월3일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는 제발 헌재가 선고 요지에 담은 선관위와 관련된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헌재는 “중앙선관위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 보안 취약점에 대하여 대부분 조치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사전.우편 투표함 보관장소 CCTV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개표과정에 수검표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였다"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투개표 과정에서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한 것이다. 2022년 7월 대법원이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에 대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과 같이 사법부는 일관되게 대한민국에 부정선거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와 달리 국회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3월 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사전투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전투표제도가 2014년 지방선거에 선보인 뒤 투표율상승에 기여했지만 이제는 그 효과가 줄어드는 중이고 2024년 총선에서 사전투표 관리에 722억 원이라는 어마한 비용이 들었는데 관리가 부실하다고 입장이다. 대신 장 의원은 “기존 수요일에 치러지던 본투표를 ... 옮겨 금·토·일 3일 동안 치르도록 하면 투표율 상승도 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표 관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와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사전투표까지 3일에 걸쳐 실시되는 투표에서 최근 투표율 상승효과가 사라지는 중이라면서 일요일을 포함하여 3일 연속 투표하면 갑자기 투표율이 올라가리라 기대할 수 있나. 3일 연속으로 투표하면 현 사전투표제와 달리 투표함 관리 등 여러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나. 사전투표 관리에 722억 원 이상이 들어서 문제라고 했는데 3일 연속 투표로 바꾸면 그 비용이 현저히 줄어드나. 3월 5일 출근길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한 정당의 대표가 대만식 투표소 개표를 소개했다. 그는 특정 정당이 사전투표제 폐지에 반대하니 "그럼 투표소 개표하자. 사전 선거도 투표소 개표 본 선거도 투표소 개표하는 것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제가 행안위에 있을 때 이미 선관위에서 가능합니다 ... 그 문제만 되면 많은 부정 선거의 의혹들이 해소가 된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사전투표를 투표소마다 바로 개표한다면 개표 비용이 엄청나게 추가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 비용을 세금으로 다 채워서 개표한다 해도 투표 결과가 바로 공개되면서 일어나는 일은 누가 책임지나. 투표 결과가 그다음 날 사전투표에 영향을 주고 다시 본 투표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현재 여론조사 결과도 선거일 직전에는 공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두었다. 대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아예 과거같이 부재자투표와 하루 본선거로 복귀하는 게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투표율 하락 등 다른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남는 것은 다시는 계엄군을 동원하여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점검한다며 직원을 출입통제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하며 전산시스템을 촬영하는 위헌적인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주장을 담은 유튜브를 즐길 시간에 2022년 7월 민경욱 전 의원의 부정선거 의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는 게 더 낫다. 또 이번 조기 대선에 개표참관인이나 개표사무원으로 직접 개표부정이 있는지 체험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곧 선관위마다 개표 참관인과 사무원 모집 공고도 나온다. 용돈 벌면서 부정선거 유무를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대법원과 헌재가 부정선거가 없다고 하니 안심하고 투표하시라. 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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