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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용접공과 원전 르네상스

최근 원전 업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에너지 위기 이후 세계는 원전을 다시 찾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원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다수의 서구 국가가 원전 밸류체인 붕괴로 예산 내 적기 시공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원전 르네상스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가장 시급한 건 숙련인력 수급 문제다. 2023년 파이낸셜 타임즈는 프랑스 원전 용접 가능 인력이 500여 명에 불과하며 원전 유지 보수를 위해 미국에서 100여 명의 숙련 용접인력을 불러와야 했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1000여 명의 숙련인력이 필요하지만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기까지 최소 7년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숙련인력 입장에선 굳이 원전만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AI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대안으로 부상하는 천연가스의 경우 캐나다에서만 LNG 캐나다,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수백 명의 숙련인력이 필요하며 미국 역시 골든패스를 비롯한 셰일 업계의 동시다발 프로젝트 진행으로 경험 많은 숙련 용접공 수급이 어렵다. 연봉을 4~5배 올려준다고 해도 인력난은 여전하고 배관, 전기 기술인력 추가 부족은 고스란히 공급망 비용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골든패스 프로젝트 지연을 선언했고 참여기업 자크리는 지난해 5월 비용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다. 국내에서도 조선, 플랜트, 반도체, 자동차 산업의 숙련 인력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용접공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 6기 건설에 엔지니어와 프로젝트 감독, 보일러 제작과 전기 기술자 등 총 10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반복 건설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원전 건설 '기회'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마크롱보다 더 공격적인 20기 원자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데 에너지 정책만큼은 정파를 뛰어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원전 밸류체인 복구를 원하는 국가들도 이를 뒤따를 것이다.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세계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물결에서 화석연료 투자 급감으로 인한 셰일과 천연가스, 석탄 보틀넥을 겪었다. 에너지 위기 이후 화석연료 수급 부족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미국 셰일에 필요한 프랙샌드와 설비 리스 가격이 3~4배가 급등했음에도 관련 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가가 올라가면 관련기업이 모두 '드릴 베이비 드릴'을 실행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고유가가 아닌 고유가의 '기간'이다. 연봉을 몇 배 더 올려준다고 해도 쉽게 돌아가지 않았던 건 셰일 암흑기에 어렵게 구한 일자리와 터전을 박차고 갈만한 '이유'를 업계가 제시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재생에너지냐 아니냐로 싸울 때 '모든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밸류체인'은 인구구조 변화와 함께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한국 원전은 1971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중단 없는 건설 경험으로 강력한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고 있고 UAE를 비롯한 해외 원전 적기 시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최근 한미 원전 협력을 바탕으로 기존 원전과 SMR 분야에 장밋빛 미래를 그릴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원전 산업 절대 인력 감소, 불가피한 외국인 노동자 활용과 기술 전수, 베이비붐 퇴직인력 활용과 더불어 신규 인력 유치와 양성은 쉽지 않은 과제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주최한 '한미 원전 동맹과 k-원전의 글로벌 선도 전략'에서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위기 이후 기후변화가 에너지 안보로 바뀌었듯이 데이터센터와 AI 붐 등 원전에 우호적인 상황이 어느 순간 바뀔 수 있다며 일희일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대로 최근 알리바바 조 차이 회장은 AI·데이터센터 버블을 경고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월에 이어 2기가와트 전력을 소비할 미국과 유럽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과잉공급 우려로 철회했다. 기술과 자본만큼 중요한 건 인력 유치를 위한 향후 40년 원전산업의 비전이다. 수축의 시대, 글로벌 에너지원별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미래에 이 산업에 수십 년 몸을 맡겨도 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퍼미안 분지로 돌아오는 인력은 같은 이유로 원전산업에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며, 시장 상황으로 얻은 것이 아닌 스스로 일궈낸 비전이 가치를 더할 것이다.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이슈&인사이트] ‘윤석열 파면’이 남긴 숙제

8년 만이다. 대통령이 또 파면됐다. 사유는 위헌 불법계엄. 군대를 동원해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려 한 내란이었다. 전 국민이 중계방송을 통해 지켜봤고 파면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파면 결정을 마음 졸이다가 환영해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암담하고 참담했다. 헌법재판소 선고문이 명문이라고들 한다. 동의한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법리 해석이나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갖고 있는 상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위치와 과제를 직시하게 한 넉 달이었다. 과제는 상식과 원칙, 합리의 회복이다. 과제가 너무 당연하고도 평범해서, “이미 다 이룬 것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그 상식과 원칙, 합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한 넉 달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현 주소다. 헌재 선고 두 시간 후 윤석열 피소추인은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승복도, 사죄도 아니었다. 누구의 무슨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건가? 애매하다. 일부러 애매하게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과는 한국말 깨우친 삼척동자도 의심의 여지없이,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사과다. 다 떠나서, “야권이 못살게 굴며 빌미를 제공했고 대통령으로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군대를 동원한다? 헌재 선고문이 지적했다시피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식의 변화가 없다. 계엄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은 일점일획도 없었다.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보겠다는 뉘앙스마저 읽힌다. 그래서 더 암담하고 참담하다. 아직도 국민이 만만한가…승복도 사죄도 아닌 '윤석열 입장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힘은 철처하고도 무조건적인 사과와 승복을 천명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자신들 지지자들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헌재결정 승복과 폭력적 대응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게 공동체 속에 존재하려는 정당의 기본 모습이다. 헌재의 파면 선고 순간부로 대선 모드에 돌입했다. 국힘은 윤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내란 옹호/선동에 앞장 선 의원들에 대해 출당 등 징계에 나서야 한다. 그게 사과와 거듭남의 행동표현이다. 사과란 사과받을 국민들이 “됐다, 그만 사과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과 추종세력의 축출 없이, 사과와 선 긋기 없이, 무슨 염치로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소속 대통령이 8년 새 두 번씩이나 파면당했으면서 아직도 주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계엄내란후유증 정리해야 파면 전까지는 '야권'으로 불리운 제 정파도 각종 정치적 식언과 정당 운영의 비민주성, 극단적 지지자들의 훌리건적 언행/편가르기 등에 대해 반성하고 수권 세력의 정책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게 내란 후 치르는 대선의 기본 모습이다. 임기를 조기 강퇴당한 전임자의 후임자를 뽑는 '단순 보궐선거'가 돼서는 안된다. 주권자들이 넉 달 간 거리와 광장에서 외친 것은 내란수괴척결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파면으로 리셋은 끝났다. 다음 정권은 당연히 나, 우리"라며 전리품 획득자처럼 군다면, 미안하지만 번짓수가 틀렸다. 계엄내란의 후유증 청소는 확실히 하되,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극단주의자들의 정치보복 트집을 제압할 수 있다. 계엄내란의 한 원인이었던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음모론을 제어해야 한다. 사회의 성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분파성과 적대성의 위험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도록 지루함을 견디며 끈기있게 대화하고 인식을 모아나가야 한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상식과 합리가 존중받는 풍토, 극단 과격주의자들에게 좌우되지 않는 지적 토대와 의사결정과정 구축이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는 '역사적인 숫자'가 있다. 3‧1, 8‧15, 4‧19, 5‧16, 10‧26, 12‧12, 5‧18, 87년 6월, 4‧16…. 여기에 12‧3이 추가됐다. 12‧3 비상계엄. '역사의 모르스 부호'가 된 숫자들을 열거하고 보니 쿠데타가 세 번이나 된다. (참고 : 물론 이승만 시절에도 계엄이 여러 번 발령됐지만, 전시거나 준사변일 때도 있어 숫자에서는 일단 제외.) 리셋이 필요한 대한민국…상식과 합리 회복 절실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 장기 교착돼있기 때문이다. 윤석열비상계엄내란을 제대로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수록 상식과 원칙, 합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는 아직 원칙과 상식, 합리가 시대정신이어야 하는 수준이다. 현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런 인식에 기초해 양극화해소와, 공교육회생, 저출생극복으로 나아가는 첫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가족들 건강과 취업걱정, 학비걱정, 물가걱정, 노후걱정…들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다행인 걱정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기간이었다. 두 번째 파면이다. 같은 문제로 수업료 두 번 내지 말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전 영역에서 확인되는, 아니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통합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이강윤

[기자의 눈] ‘탄핵선고 뒤탈’ 없어야 서민경제 산다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나온다. 계엄령 파동과 탄핵 정국에 따른 시국 불안이 종지부 찍을 전망이다. 그동안 4개월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았던 비상계엄과 현직 대통령 구속, 179명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낸 경북지역 산불까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잠잠해질만 하면 파도처럼 몰아치는 게 놀라울 정도다. 공교롭게도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 후폭풍은 꼭 소상공인들이 얻어맞았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사고에 각종 모임이 줄줄이 취소돼 요식업계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고, 봄꽃 축제를 앞두고 발생한 '역대급 산불'로 소상공인들은 가슴에 멍이 들고 있다. 최근 소상공인·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선 산불 피해에 놀란 지방자치단체의 축제 취소사태를 두고 상인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 봄꽃축제만 손꼽아 기다려왔던 어떤 상인은 “산불과는 관련 없는 하천가 축제들까지 취소하며 다른 소상공인 숨통을 조여야하나"라며 불만을 토로한 반면, 산불지역 상인들은 “피해지역은 살길이 막막한데 꼭 축제를 해야 하나"라며 분노했다. 산불에 다 타버린 산자락도 참담했지만, 어느 편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소상인들의 안타까운 외침도 서글프긴 매한가지였다.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기업들은 선고 당일 아예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고, 헌법재판소 인근 식당들도 아예 문을 열지 않겠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탄핵선고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싸울수록 그 불똥은 민생에 튄다. 정치권이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서민경제의 축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탄핵선고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권은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합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일 발표한 한국에 상호관세 25% 부과에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다. 대통령 탄핵의 리스크를 넘겼으니 이제 사회 안정과 경제 회복에 '올 인'해야 한다. 더이상 정치 불안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선 안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상호 관세 발효로 사라진 트럼프 풋 기대감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언론에서 잠시 흘러나왔던 보편 관세 발표가 아닌 원래대로 나라별 상호 관세로 발표되었다.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고 EU 20%, 중국 34%, 한국 25%, 일본 24%, 대만 32%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현재 미국 무역 대표부(USTR)의 300명도 안되는 인원을 가지고는 국가별 관세를 정하는데 물리적 시간이 짧아 보편 관세가 발표될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을 깬 상호 관세 형태 였다. 관세 발표 후 금과 채권 가격은 오르고 주식은 하락하면서 안전 자산으로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불확실성이었던 관세는 변수에서 상수가 되었다. Yale Budget Lab 연구소에 의하면 20% 관세를 기준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 증가하고 가구당 구매력은 $3,400-$ 4,200로 줄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상호 관세와 자동차에 25% 부과한 관세로 인해 6조 달러의 관세 수입이 생길 것이며 이는 차후 감세 발표안의 재원이 될 거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Liberation Day"에 발표한 관세 부과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감세로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을 회복시킨다는 그의 생각이 들어 맞을 지 아니면 시장이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를 가져올 지 이제는 지켜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을 겨냥한 관세 정책이 이제는 친구도 적도 구분없이 모두에게 그 화살이 날라왔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팃포택(Tit-for-Tat)으로 세계 각국은 보복을 할 거라 예상한다. EU와 캐나다, 중국, 일본, 우리도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그나마 관세 발표 전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의원 회의에서 “이번 관세가 상한선이 될 것이고 이후에는 협상을 통해 낮출 수만 있다"라는 발언으로 일단 관세를 높게 부르고 깎아 주는 'elevate to deelevate' 전략을 쓰겠다는 힌트를 준 희망 고문은 그나마 다행이다. 주식 시장에 관세 영향이라는 불확실성이 다시 생겨났다. 앞으로의 영향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 주식 시장 참가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는 아이 떡 준다'는 전략을 써서 항상 떡을 얻어먹었다. 우리가 말하는 풋을 끌어냈었던 것이다. 금리를 낮추어 주는 연준 풋(파월 풋), 재정을 푼 옐런 풋이 그 좋은 예다. 풋은 옵션 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걸 방어하는 데 쓰이는 상품의 명칭이다. 이처럼 시장은 관세 발표전까지도 트럼프 풋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주 베센트 장관의 “빚을 키우면서 소비를 늘려가는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무리"라는 발언과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주식시장은 한 시점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며 1기 행정부 때 그랬듯이 월가는 이번 행정부에서도 괜찮을 것"이라는 발언에 덧붙여 결정적으로 상호 관세의 발효로 트럼프 풋 기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받아 든 성적표는 25% 관세다. 한미 FTA로 사실상 무관세였던 우리 수출품의 가격이 이제는 미국에 수출할 때 25% 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쟁국도 비슷하게 관세가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한 나라와 불리한 나라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베센트 장관의 말처럼 이번 관세가 최고치이고 협상을 통해 관세울을 낮출 수 있다지만 우리는 4월 4일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관세 협상은 6월초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을 거다. 기각이 되어도 국정 공백으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할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동안 예샹되었던 관세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얼마나 이에 대한 준비를 잘 하고 있었는지 그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 되었다. 최용

[EE칼럼] 전력시장 지역 차등요금제, 소매 경쟁 없이는 허상이다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전력산업에 지역별 차등요금제 (LMP, Locational Marginal Pricing)도입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정작 법 통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전은 LMP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1년 간 하위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아 제도가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을 정도다. 독점기업 입장에서 자신에게 비용 부담만 지우는 정책에 저항하고 미온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긴 하다. 사실 소매 전력시장의 경쟁화 없이 지역별 차등요금제라는 반쪽짜리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한국전력이 모든 전력을 독점 판매하는 구조에서는 지역별, 시간대별로 미세 조정된 가격 신호가 불가능하다. LMP가 본래 목적으로 삼는 송전 혼잡지역 발전설비 회피, 효율적 입지선택, 계통관리 비용 절감 등은 가격 신호가 명확하고 세부적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소매부분의 독점 판매 구조에서 그런 세부적 신호가 전달될 리 없다. 도매시장에서의 발전사업자도 미미한 가격 차등성만 보고 입지를 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신호가 흐릿한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전 김동철 사장도 “LMP는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며 정부 방침에 호응하는 발언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말과 계획은 행정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로 예고됐던 도매 단계 LMP는 기약 없이 밀려났고, 구체적인 시장 시스템 개편이나 시뮬레이션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실제 준비는 지지부진하며, KBS 등 언론에서는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와 수도권 반발 여론으로 LMP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송전비용을 지역별로 약간 차등화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끝내 흐지부지된 바 있다. 2013년에 발표된 에너지경제연구원 송전요금 차등안에서는 전국을 4개 권역으로 구분해 송전망 이용률에 따라 다른 요금을 부과하도록 했지만, 이조차 시장에 적용되지 못한 채 이론상 방안으로만 남았다. 독점체제에 익숙해진 관성과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어떠한 아이디어도 현실 장벽 앞에 좌초되고 만다. 지금 한전도 겉으로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론 울며 겨자먹기 식일 것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산업부가 분산에너지 특구에서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PPA)하도록 허용하려던 계획도 지연되고 있다. 당초 특구 내 무제한 PPA를 허가해 지역 자체적으로 전력 거래를 활성화하려 했으나, 중간에 “한전 상황을 고려"한다며 결정이 늦춰진 바 있다. 수도권 vs 비수도권의 이분법적 LMP를 시행한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 반쪽 적용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애초에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하려는 진짜 목적은 보다 정교한 가격 신호를 시장에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두 덩이(수도권/비수도권)로 잘라 도매가격만 구분해본들,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비수도권이라 해도 지역별 발전원 구조와 수요 특성이 천차만별인데 일괄적으로 같은 SMP를 적용하면 내부 비효율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전과 석탄이 밀집한 동남권(경북·부산·울산 일대)과 태양광·풍력이 많은 서남권(전남·전북)은 공급 특성이 크게 다른데, 이 둘을 뭉뚱그려 동일 가격을 매긴다면 제대로 된 입지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 또 수도권이라 해도 경기 북부와 서울 도심의 전력사정은 다를진대 한덩어리로 처리해 버리면 미세한 계통 혼잡 비용이나 손실 비용을 반영하기 어렵다. 결국 현재 논의되는 3개 권역 LMP(수도권·비수도권·제주) 방식은 시작일 뿐, 궁극적으로는 노드별(발전기별) 가격차등에 근접해가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반쪽짜리 LMP를 도입한다면 해봤던데 별거 없다는 식의 자조감만 들게 하고, 정책 취지는 사라진 채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만인 결과로 끝날 수 있다. 결국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성공은 시장 원리로 돌아갈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나 공기업이 행정 편의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면서 여기저기 민원을 무마하려 든다면 모든 제도는 시작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 어디까지나 정교한 시장 가격으로서 작동해야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관치 요금제가 되어선 안 된다. 즉 사실상 전력 소매판매 경쟁 시장을 전제로 해야만 의미를 지닌다. 독점이 지배하는 구도에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메커니즘도 유령처럼 겉돌 뿐이다. 다양한 소매업체가 지역의 발전 및 전력 소비 패턴과 지역적 여건에 맞는 전력상품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역별 차등요금이 실제 소비자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발전사업자 역시 입지선정과 투자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형식적인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유종민

[증권가 레이더] ‘홈플러스 체납’ 책임이 NH투자증권?…논리 비약이 부른 오해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를 향해 날선 비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NH투자증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각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으로 인한 농축산업계 피해를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LBO) 자금 지원과 연결 짓고 있어서다. 지난달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유가공 조합·업체의 경우 홈플러스로부터 40억~100억원의 납품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하고 있다"며 “홈플러스의 대금 정산이 계속 지연되면서 일선 농협, 영농조합, 유가공조합 등 농축산물을 유통해야 하는 농축산업계는 큰 충격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축산업계가 피해가 부각되자 MBK에 차입매수 자금을 지원한 NH투자증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고려아연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이다. 농민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한 NH투자증권이 사모펀드의 주요 자금원으로 등장한 점은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NH투자증권이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에선 홈플러스 사태와 NH투자증권의 차입매수 지원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NH투자증권의 MBK 자금 지원과 홈플러스 사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는 경영 부실에서 비롯된 사안일 뿐 증권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브릿지론을 제공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차입금은 브릿지론으로 주식 공개매수 등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차입 형태다. 이번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 지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투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이번 사태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MBK와의 경영권 분쟁의 일환으로 NH투자증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과도한 여론전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불확실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대립’에서 ‘대화’로…주총장의 바뀐 공기

“주주들은 회사의 적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난달 시가총액 2조원 규모 코스피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주주제안 안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을 본인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장사들을 향해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주총 시즌과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몇몇 상장사의 주총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액주주들과 이사회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고성이 오가는 건 물론이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해 수십명의 경호 인력과 주주들이 대치하는 경우도 잦았다. 반면 올해 주총장의 공기는 달랐다. 이사회와 소액주주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주주환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주주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소액주주들 역시 사측을 공격하기보단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액트 등 의결권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주주연대 활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총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동주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주주연대의 힘도 커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주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였던 액트가 이제는 주주행동의 상징이 됐으니 말이다. 그 결과 방만경영을 일삼은 경영진을 주주들이 직접 해임시킨 사례도 등장했고 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주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주들의 요구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전통적인 주주환원 방식에서 이사 선임 등 경영 개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주주들은 물론 상장사들도 주주환원과 주주 권익 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주주들을 배척하는 기업들도 많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의 성장 저해 가능성, 소송 남발 우려 등을 이유로 상법 개정에 극구 반대표를 던지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주총 현장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장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주주를 동반자로 여길 때 비로소 진정한 밸류업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당면과제는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정치 기반 구축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5년 3월20일 18년 만의 국민연금 모수 개혁안에 합의했다. 연금 개혁 관련 국민연금 중 모수개혁 합의문의 요지는 연금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13%(…26년부터 매년 0.5%씩 8년간)로, 소득대체율은 기존 40%에서 43%(…26년부터)로 인상하는 것이다. 이 합의안에 대해서 여야가 서로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겉으로 보면 국민의 미래세대를 위해서 여야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지만 30·40대 여야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모수 조정안을 요약하면 당장의 보험금 혜택을 인상하고 후세대의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라며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 문제를 외면한 채 추계의 통계적 오차범위에 있는 오십보백보의 개혁안을 갖고 별것이나 하는 듯이 시간을 끌어왔다는 주장이다. 개혁의 본질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의 수익률 제고다. 국민연금공단은 2022년 수익률 –8.22%로 79.6조 원의 적자를 실현했다. 2023년에는 수익률 13.59%, 수익금 126.7조 원에 이어 2024년 기금 적립금 1,213조 원, 수익금 160조 원, 수익률 15%를 기록했다. 1988년 창립 이래 2024년까지 연간 평균 수익률이 6.82%다. 여기서 개혁의 본질을 발견한다. 대체 소득대체율 43%냐 44%냐라고 1%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연간 평균 투자 수익률 1%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논의할 때다. 2024년의 수익금 160조 원은 그해 지급액 40조 원의 4년분이다. 평균 투자 수익률이 1% 올라갈 때 기금 소진 시점은 5년 정도 연장된다. 개혁의 기본 방향은 첫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CalPERS, 네덜란드 ABP 등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을 조사한 결과,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둘째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다. 해외의 경우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보면 임기를 다 채운 수장은 30% 내외다. 1988년 창립 이래 36년 동안 18명의 이사장이 취임하여 평균 재임 기간 2년이다.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임기를 조기 마감한 결과다. 출신별로 보면 관료·정치인·군 출신이 대부분이다. 셋째가 기금운용 베테랑인 실장급 운용역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기금운영본부의 서울 이전이 필수적이다. 대체투자 전문가 등 관련 인재를 위한 적절한 인센티브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넷째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투자 기법의 과학화다. 작년에 작고한 미 버클리대 수학박사인 사이먼의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이공학박사 등 퀀트들로 창립했다. 당사의 메달리언 펀드는 1988~2018년의 30년간 평균 수익률 39%를 달성했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기금 규모가 1,200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이 기금이 고갈될 경우, 근로자는 월 소득의 1/4을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의 실패는 다음 세대에 대한 악몽이다. 본질적인 국민연금의 개혁을 위한 첫 단추는 국민연금이 미래 한국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다. 최우선, 최소한의 과제는 “정치적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이사장만은 탁월한 전문가를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는 여야 합의 선언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국제화에서 지역전문가 육성과 특수외국어교육의 의미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장 오늘날 한국은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23년을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5%에 육박하는 250만 명을 넘어섰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의 외국인 유입이 혼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해당 국가와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협력이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신흥국들과의 교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의 경제 협력은 유럽과 디지털 무역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도 남미 또는 아프리카 국가와는 자원을 개발하는 등 다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변화는 한국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다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낳는다. 한국의 대외관계가 다양한 국가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국가들과의 협력과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국제화는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하여 부드럽고 조화롭게 대응하는 것이며, 그 전제는 사회 구성원의 포용력과 외국어 이해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외국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언어 교육은 주로 미국이나 일부 유럽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에 집중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의 다면적 글로벌 협력 시대에 베트남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힌디어 등 다양한 언어 교육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다언어 구사 능력이 국제적인 맥락에서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간편한 통번역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상황이지만, 특정 지역이나 외국어에 관한 전문 지식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비록 그런 전문가가 극소수라고 하더라도, 극소수 전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예상하지 못하게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한 나름의 노력도 해왔다. 예를 들어 2016년 국회는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였고, 정부는 희소성이 높은 언어 교육을 활성화하고 언어 생태계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일반 대중들의 접근성도 열어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이 추진되며, 표준 교육과정 구축과 산학 연계 인재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과 그에 따른 지원 사업은, 일반적으로는 한국에서 사용 빈도가 낮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언어라도 전략적인 이유에서 교육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언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해당 전문가 육성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과 관련 정책은 희소가치를 지닌 언어를 학습하고 연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한국 사회에서 절실하게 관련 전문가를 필요로 할 결정적 순간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초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국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 국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특수한 언어와 해당 문화의 다양성 및 고유성을 보존하는 역할에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오스어 또는 관련 전문가의 관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할 부분이다. 관련 국가와의 다면적 협력에 기반이 되는 지역 전문 지식과 언어는,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다. 특수외국어 관련 지역과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는 외교망 확충, 공공기관과 기업 대상의 외국어 교육 확대, 전문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진흥 사업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도 연계되어 다양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포용과 국제 협력을 촉진할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 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등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게 된다. 아울러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사회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봉철

[EE칼럼]태양광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것은

대개의 산업 분야에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규모의 경제는 투입규모를 키워 생산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별 기업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몇몇 산업 분야에서는 소수의 기업에 의한 독과점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현대 산업사회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사회가 되었고 이를 위해 중앙집중형 관리체제가 발달해 왔다. 그러나 모든 산업 분야가 대량 생산과 관리 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산업 분야는 자연이나 사회 환경의 제약에 의해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를 이루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벼농사가 대표적이다. 벼농사는 무논에서 짓는다. 호남평야의 대농이나 서산간척지의 현대농장 같은 경우는 기업 경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1만평방미터 이하의 소농이 경작하였다. 각지에 산재하는 무논을 대규모로 경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는 자가 소비도 중요하다. 따라서 벼농사는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어 왔으며 정부는 소생산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소농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쌀 수매 제도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한 쌀 수매제도는 당초 부족한 쌀 수급을 위한 강제 공출이었지만 1970년대 이후 개량 품종에 의해 쌀 생산량이 늘어나고 수입이 강요되면서 생산비를 밑도는 쌀 가격을 보전하여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하는 정책으로 운영되어 왔다. 농가의 입장에서도 수시로 변하는 시장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정부나 농협에서 일괄 구매해주는 방식이 가장 간편하면서도 유익한 제도였다. 현재 식생활의 변화와 쌀 생산량의 증대로 제도의 변화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단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에서 소생산자를 보호하는 제도로는 생산비를 보전하는 가격으로 정부나 공적 기관에서 일괄 구매하는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하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가자. 현재 산업 분야 중 다수의 소생산자를 참여시켜야 하는 곳이 바로 태양광 발전이다. 태양에너지는 모든 곳에 골고루 주어진다. 위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낮 시간 동안 지표면 1평방센티미터에 1분 당 1칼로리 정도의 태양에너지가 도달한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은 이렇게 지구에 주어진 태양에너지를 바로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이 확대되려면 보다 많은 소생산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모든 건물의 지붕과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야 하며 여유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작은 발전소를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는 자가소비도 하고 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할 경우 한전에 판매할 수도 있다. 3~5kW 용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집에서 쓰는 전기는 충당할 수 있다. 20~30kW 용량 이상의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있다면 발전사업자가 되어 한전에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대규모 토지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간척지나 유휴 염전 등에는 MW급의 대형 발전소도 설치할 수 있다. 새만금 간척지에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가 들어서고 있으며, 전남 신안군이나 경북 봉화군의 경우 기획 단지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분양하거나 협동조합으로 참여하게 하여 주민 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양광 발전 산업은 다수의 소생산자들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소생산자들의 참여를 용이하게 하고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하기 전에는 생산비를 보전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2003년 기준가격의무매입제(FIT)를 도입하였다가 2012년 부터는 의무공급제(RPS)로 변경하여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촉진해 왔다. FIT는 쌀 수매 제도와 같은 방식이다. 정부에서 규모에 따라 기준가격을 정해 한전에서 일괄 구매하는 것이므로 소생산자들이 참여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그런데 RPS는 생산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발급해준 인증서(REC)를 판매하여 생산자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하는 방식이다. 이 인증서를 현물시장이나 계약시장에서 판매해야 하니 전업 발전사업자가 아니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에서는 이번에 RPS 제도를 폐지하고 지원 정책을 조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도 많이 낮아져 대규모 발전사업의 경우 프리미엄 가격 또는 차액지원 등의 형태로 입찰제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태양광의 확대는 이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생산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방식의 지원 정책이 아니라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 확대하겠다고 한 국제사회에서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정부 당국의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한 까닭이다. 신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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