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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SK어드밴스드가 던진 질문: 전력시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24년11월7일 본지에서 단독 보도 된 SK어드밴스드가 전력 도매시장 직접 접근을 모색한 사례는, 우리 전력시장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는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다수의 전력 공급자가 있지만, ㈜한국전력이라는 단일 독점 수요자가 존재하며, 소매시장에서는 ㈜한국전력이 독점 공급자로서 모든 전력 소비자를 상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의 기본 원칙인 자유 경쟁과 완전 경쟁의 정의에 어긋난다. 전력시장의 개방이 왜 필요한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서 경제 효율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도매 전력 가격이 소매 가격보다 낮다는 점은 경제적으로 명백하며, 기업들이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PPA(전력구매계약)는 이미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형 RE100의 핵심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는 전력시장이 유통 과정을 축소하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SK어드밴스드의 사례는 이와 같은 흐름을 잘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 도매시장 접근권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본질적 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마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것과 유사하다. 중간 유통업자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거래 효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역할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러한 변화의 핵심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정부 당국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대고 있지 못할 뿐이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망 구축 사례를 보자. 한국전력은 전용 송전망 구축 비용을 기업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업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만약 기업들이 시장에서 전력을 도매가격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다면, 송전망 구축 비용 역시 자발적으로 감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송전망 구축 비용도 물면서 소매가격으로 전력구매를 하자니 억울한게 아닌가. 정부가 ㈜한국전력의 재정난을 이유로 도매시장 개방을 막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명분 모두 부족하다. 도매시장 접근권을 차단하는 것은 국영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행위로, 자본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굳이 전기사업법 제32조를 근거로 한 법적 분쟁의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전력시장이 시장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전력도 공정한 가치가 매겨져야 하는 상품의 하나이다. 이는 경제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으로, 그 시장구조가 공정하고 효율적이어야만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시장은 정치적 시혜나 소득 재분배의 도구로 악용되며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 ㈜한국전력의 독점 구조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접근성은 자본주의의 핵심 근간이다. 우리가 비웃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이, 공급자에게는 충분한 보상도 안 주고 제품생산을 강요하며, 소비자에겐 어처구니 없이 싼값에 상품을 제공하는 거 아닌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부가 시장의 중간에 끼어서 공급자는 소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고, 소비자는 도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전력시장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시장에서 중간 브로커로서의 역할과 존재를 강제시키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연결될 수 없게 적극적으로 방해자를 두고 차단벽을 치는 것이다. 전력시장 개방은 공급자에게는 더 나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할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전력시장이 진정한 시장다운 구조를 갖추는 첫걸음이다. ㈜한국전력은 독점적 역할에서 벗어나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정치권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그러나 권력이 어느 방향으로 재편되든, 미래를 이끌 새로운 권력에게 전력시장 개혁은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낼 강력한 이니셔티브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제안한다. 보수 진영에게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적용하는 정책으로, 진보 진영에게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매력적인 아젠다를 제공할 수 있다. 유종민

[기자의 눈] 기후변화 아닌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아닌 지구가열화

'기후변화' 아닌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아닌 '지구 가열화.' 단어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단어는 단순한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단어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게 만들고, 또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지 결정짓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라는 표현을 떠올려보자. 어딘가 완만하고 점진적인 느낌을 준다. 변화라는 단어는 마치 시간이 충분히 있고 천천히 적응하면 될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진다.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비슷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느긋한 표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은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행동을 촉구하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기후위기'와 '지구 가열화'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다. 전 세계는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가뭄, 기록적인 폭우와 산불 같은 기상이변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북반구 곳곳에서 섭씨 50도에 가까운 폭염이 나타났고, 해수면 온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해양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올여름, 서울과 대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38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고, 강릉에서는 역대 최고기온인 41도를 기록했다. 장마철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하천을 범람시키고 마을을 삼켰다. 충청권과 경북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하며 큰 인명 피해를 냈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변화'라고 표현하기엔 이 모든 현상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지금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온난화'가 아니라 '가열화'라는 표현이 지금의 위기를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익숙한 단어들이 현실의 위급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좌우한다. '변화'와 '온난화'가 주는 여유 대신 '위기'와 '가열화'가 주는 경각심이 필요한 이유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음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를 '변화'라고 부르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변화'라는 느긋한 표현 대신 '위기'로, '온난화'라는 부드러운 단어 대신 '가열화'로 선택해야 한다. 단어를 바꾸는 일이 별 것 아닌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이슈&인사이트] 조선의 수호통상조약,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세기 조선은 내부의 모순적 사상과 부패한 관료들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시 한반도까지 밀려온 제국주의로 조선이 가지고 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까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서구와의 직접 교류를 거부하고 청에 의존하던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라고도 부르는 근대적이지만 불평등한 조약인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였다. 이후 조선은 1882년부터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서구 열강들과 유사한 조약을 체결하여 항구를 열어 외국과 직접 교류하며 공식적인 외교관계도 수립하였다. 조선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지속되었던 1886년까지 제국주의 국가들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조선이 서구 열강과 체결한 이 조약은 기존 청 또는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와 유지하였던 외교관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서구적 방식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약을 근거로 조선에는 그들의 외교공관이 마련되었고, 전문적인 외교관이 파견되었다. 한반도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던 이들, 과거부터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한 청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를 구현하려는 일본이 복잡하게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정부가 청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종료하고 자주적으로 서구와 교류하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조선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예를 들어, 1884년 체결된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도 양국 직접 교류에 국제법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 조약의 여러 내용이 불평등한 것이었음을 관찰하면, 양국의 불평등한 외교관계는 예상가능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당시 체결되었던 수호통상조약들과 다른 고유한 규범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제국은 청과의 베이징 조약 등으로 극동에서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여 부동항을 얻고 조선과 국경을 직접 마주하며 교류하게 되었다. 결국 동아시아 상황을 관망하던 러시아는 조선과 직접 교섭을 하려고 하였고, 이 조약의 배경과 협상 과정은 러시아의 극동이자 한반도 주변에 관한 러시아의 인식과 정책 그리고 당시의 국제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육로 교류에 관한 규정은 청의 반대로 규정화되지 못하였지만, 수년이 지나서 별도의 조약인 육로통상조약의 체결로 해결하였다. 이 조약과 조선이 체결한 다른 수호통상조약의 관세(율)에 관한 규정과 내용들도 차이가 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역사의 산물이 되어버린 조선이 체결한 수호통상조약의 현대적 의미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최혜국 대우의 원칙은 A국과 B국이 서로 좋은 교역 수준을 제공하다가 A국이 제3국인 C국과 더 좋은 (최고의) 교역 수준 혜택(최혜국 대우)을 제공하면, 자동으로 B에게도 C국 수준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호통상조약에도 최혜국 대우의 원칙이 명시되었는데, 지금은 WTO 다자주의 무역조약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많은 조약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원칙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이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게 당시 현실에서는 조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한반도에서는 조선의 붕괴와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광복, 남과 북의 분열과 이데올로기 경쟁, 경제성장과 평화 그리고 핵무장 위협 등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국제사회도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종료로 인한 신흥국의 출현과 발전, 이념으로 무장된 냉전, 유럽의 분열과 통합, 그리고 소련의 붕괴와 새로운 러시아의 갈등 확산 등이 발생하였다. 한반도의 작은 한국 그리고 서구 열강이었던 국가들은 조선 말기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냉전 시기 이념경쟁과 한국전쟁, 20세기 말부터 이어진 경제협력 그리고 최근의 경제제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연결된다. 세상이 묘하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비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오래전 조선이 체결했던 수호통상조약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김봉철

[EE칼럼]중국산 태양광시설들이 전국 산림을 파괴할 거라는데...?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산림을 파괴할 것입니다." 지난 12월 12일 대통령 담화를 듣던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는 곧바로 전문을 찾아보았다. 아뿔싸! 그대로였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의 한 요인으로 '중국산 태양광'을 꼽은 것이다. 지난 3년 윤석열정부가 재생에너지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쳐온 것을 우려해왔지만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고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인식을 살펴보고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보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도입이 제한된 유럽연합은 에너지 위기에 처했다. 유럽연합은 파이프로 싸게 들여오던 러시아 가스 대신에 좀 더 비싼 미국의 LNG를 들여와야 했다. 이와 함께 주춤하던 태양광 발전 설비의 보급을 확대하였다. 외국의 에너지 자원에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립에너지인 태양광의 확대는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90% 이상의 에너지를 수입하기 위해 연간 200조원을 써야 하는 우리에게 자립에너지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태양광은 또한 청정에너지로서 탄소 감축에 핵심적인 수단이다.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에 적극적인 것은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에 누구보다 앞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부족한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재생에너지 사용이 국내보다 더 유리한 해외 사업장의 확대에 가중치를 둘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처럼 태양광 발전은 우리의 안보를 해치는 적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주도할 중요한 산업으로서 우리의 아군이다. '중국산'은 주적인가?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산업국가이다. 세계 교역량 순위 6위인 우리나라는 국내 시장이 독자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크지도 않고 부존자원도 부족하다. 우리 경제가 현재의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오롯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한 수출기업들에 의존한 바 크다. 더구나 21세기 들어 우리의 최대 교역국가는 중국이다. 무역수지에서 우리가 가장 이익을 보는 나라이기도 하다. 시골 5일장의 장돌뱅이도 내 물건을 많이 사주고 나도 사오는 거래처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빈말이라도 상냥하게 하고 서비스라도 하나 더 준다. 윤석열 정부 초기 급감했던 대 중국 수출이 왜 발생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 설치한 태양광 셀 중 중국산의 비중은 74.2%에 달했다. 2019년 33.5%였던 중국산 비중이 4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국산 셀 비중은 2019년 50.2%에서 지난해 25.1%로 줄었다. 바로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왜 이리되었을까? 첫째는 중국의 퀀텀 전략의 성공이다. 21세기 들어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및 보급에서 세계 최대의 투자국은 중국이었다. 우리의 반도체와 무선통신이 세계 일류가 되었듯 중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이미 싸고 효율 좋은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셀, 모듈 등 세계 태양광 산업 공급사슬의 70~80%를 중국산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는 국가 온실가스 저감목표의 하향 조정과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등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축소에 기인한다.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패널제조업체들은 미국이나 유럽, 중동 등 새 시장을 찾아 떠났다. 며칠 전 태양광 셀 제조업체인 한화큐셀은 세계 최초로 페브로스카이트 적층 셀의 상용화에 한발 다가섰다고 발표했다. 기존 실리콘 셀과 페브로스카이트 셀을 적층하여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함으로써 발전효율을 28.6%까지 끌어올려 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시스템연구소로부터 국제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이 셀이 상용화되면 현재의 셀보다 15%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일류에 진입하고 있는 '중국산 태양광'을 극복하는 길은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국내 보급 시장을 확대하는 데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한국과학기술원 학위수여식에서 이에 항의하는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쫓아내는 사태가 다시 발생해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끝으로 '전국의 산림'은 어떤지 살펴보자. 2018년 2443ha로 최고치를 기록한 태양광 목적 산지전용 허가 면적은 점차 줄어들어 2020년에 229ha로 급감하고 2021년 상반기엔 32ha에 불과했다. 2018년 산림청이 산지전용허가 경사도 기준을 25도에서 15도로 강화하고 2019년에는 환경부가 생태자연1등급 지역을 회피지역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산지 태양광 발전은 매우 어려운 사업이 되었던 터이다. 국가의 모든 고급 정보가 올라오는 대통령실에서 무엇을 보고 정책 결정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새해에는 정상적인 경제 인식을 가진 이들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기를 희망해본다. 신동한

[기자의 눈] AI 열풍 꺼지지 않길…K-ICT의 간절한 바람

“내년에도 인공지능(AI) 열풍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만난 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이 말했다. 그의 말에서 AI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는 통신, 게임 등 ICT 산업이 녹록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통신 업계는 꾸준히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주력 사업으로 꼽히는 이동통신 사업의 성장이 정체되며 긴장감이 감돈다. 게임 업계도 이용률 감소로 고민에 빠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59.9%(5988명)가 '최근 1년간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62.9%)와 비교해 3%포인트(p) 감소한 수치로, 콘텐츠진흥원이 전체 게임 이용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한때 전체 국민 4분의 3에 이르렀던 게임 이용률이 하락세에 직면한 것. 이러한 상황에서 ICT 업계가 주목하는 해법은 바로 'AI'다. 통신사들은 미래 먹거리로 AI를 낙점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AI 에이전트 및 AI 데이터센터(DC) 구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게임 업계의 AI 활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게임 내 캐릭터에 지능을 부여하고, AI와 대화하며 진행하는 추리게임을 개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게임 경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게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앞서 업계 관계자가 AI 열풍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 이유다. 과거 메타버스가 확 떴다가 급격히 관심이 사그라든 것처럼 AI도 메타버스의 전철을 밟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하지만 AI와 메타버스는 다르다는 의견이 많아 업계는 희망을 품고 있다. AI의 강점은 실용성과 접근성에 있다. 복잡한 업무를 간소화하고,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AI는 더 이상 유행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았다. ICT 업계는 현재 내년 사업 계획서에 AI 관련 내용을 추가하느라 바쁘다. 이러한 노력과 AI 열기가 맞물려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기를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비상계엄·탄핵 속 부동산시장, 변동성 줄여야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길게는 6개월까지 본격적인 탄핵정국에 접어들게 됐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탄핵정국이 부동산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부동산시장에는 각종 악재가 겹치며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수요자들 사이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매매 매물이 급증하는 동시에 거래량은 줄어들고 있다. 이달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8만8938건으로, 1년 전(7만6795건)에 비해 무려 15.8%나 늘었다. 위기를 의식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067건으로 3753건이었던 한 달 전과 비교해 18.2% 줄었다. 올해 아파트 매매거래량 정점을 찍었던 지난 7월(9211건)과 비교하면 66.7% 급감했다. 이에 따라 집값 또한 하방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달 반년 만에 하락전환한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5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상승폭은 줄어들면서 보합(0.00%)전환에 가까워졌다. 서울 전세값 또한 1년 7개월여 만에 상승세를 멈추고 보합전환하며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집값 부담, 대출규제 영향, 경기침체 우려, 탄핵소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 등 각종 악재가 겹쳐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이 같은 악재가 지속된다면 불확실성의 공포가 시장을 지배해 2022년 말의 급락세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주택 수요자들은 집을 사길 꺼려하고 있다. 공급자들도 '비상계엄', '탄핵'이 온통 뉴스를 도배하는 바람에 “올해 말 장사는 접었다"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비상계엄 후 치솟고 있는 환율도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본다. 당장 수입 물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천정부지로 치솟은 공사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주택 공급,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가 할 일은 단기적으로 다시 날 뛸 가능성이 높은 공사비를 잡는 게 먼저다. 수입 물가를 최대한 안정시켜 공사비 급등→분양가 상승→주택시장 침체→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주택 시장의 변동성을 최대한 약화시켜 국민들의 주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값 싸고 안정적인 공공 주거 시설 공급을 대폭 늘려 서민들이 안심하고 주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인 주택 공급 정책을 안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폴 사무엘슨이 말했듯 시장은 눈에 보이는 악재보다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2.0시대에도 예상되는 강달러와 고금리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트럼프가 과연 중국에게 60%를 그리고 나머지 나라들에게는 10% 이상의 일반관세를 부과할지 그리고 강달러가 지속될지 세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트럼프 2.0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주요 정책은 감세와 관세다. 관세로 감세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와 금리의 인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은 지난 주 하원의 예산안 투표 부결과 연준의 내년 2번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점도표를 보면서 과연 트럼프가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 20세기 이전 미국은 관세만으로 재정을 꾸려 왔다. 트럼프는 19세기 말 맥킨지 대통령 시대가 가장 미국다운 시대였다고 자주 말하면서 그 시대를 오마쥬 하여 관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관세 전쟁을 선포했지만 세계는 관세부과 폭탄을 맞기 전에 트럼프 인수위에 줄을 대고 딜을 시작하고 있다. 각 나라는 트럼프에게 조공으로 미국 물건을 더 사주겠다고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고 우리도 LNG 수입선을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릴 협상을 하면서 트럼프 관세 비율을 줄이는데 각고의 노력들을 하고 있다. 관세의 부과는 미국의 무역불균형을 완화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거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관세가 감세를 만회한다지만 그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감세에 따른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거다. 지난 목요일 연준회의에서 내년 금리를 2번 정도 밖에 내리지 않을 거라는 점도표 발표 때도 시장이 경기를 일으켜 시중 금리는 오르고 주식은 빠졌다. 시장은 계속해서 높은 금리 (H4L)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시대에는 강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달러가 강세가 된다면 수입 단가를 떨어뜨려 물가에는 도움이 되지만 관세를 올린다고 하니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을 거다. 미국 달러 강세로 각국이 미국 채권 매수를 늘려 준다면 미국 금리의 하락에 도움이 되겠지만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달러 자산 동결을 목격한 중국과 중동 국가들의 미 채권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이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제품의 가격만 올려 수출에 마이너스 효과와 인플레에 영향을 줄 거라 예상된다. 2022년 러-우 전쟁과 AI 산업의 발달로 미국 자산 가치가 올라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물밑들 밀려 들어오고 있다. 달러 강세와 경제 성장이 나온다면 물가는 안정되겠지만 돈 유입량이 임계점을 넘어 미국 부동산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지금도 인플레가 고집스럽게 끈적거림으로 남아 있는데 잠잠했던 인플레가 다시 발생할 거고 연준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거다. 이는 부메랑처럼 미국 채권 이자에 부담을 주어 미국 재정안정화를 계획하는 트럼프 계획이 빗나갈 거다. 현실은 우려한대로 달러가 지금 이리도 강한데도 미국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달러로도 미국 물가 상승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번 연준에서 강달러와 고금리로 물가를 진정시키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보였다 트럼프의 의도와는 반대로 시장은 강달러와 고금리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탄핵 정국으로 환율이 1450원을 넘은 상태에서 우리는 내수 부진으로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미 연준이 내년 금리를 2번만 내린다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린다면 미국과의 금리차와 달러 강세로 인해 외인 자금의 유출과 1500원을 넘는 원달러 환율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환율과 자본유출을 고려한 금리 동결.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최용

[EE칼럼]기후변화 대응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명연설이 있지만 고(故)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했던 연설 중 'Connecting The Dots'라는 부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요약하면 인생 속 경험과 과정들을 일련의 점으로 표현하고 그 점들을 연결하다 보면 현재의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한 점은 미래의 우리와 후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 노동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1월 개최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는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막 전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이력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주요국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 의사를 밝히는 등 난항이 예상되었고, 개막일에는 100여 명의 국가 및 정부 수반이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는 와중에 개최국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는 화석 연료를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기후변화를 서방의 가짜 뉴스에 비유해 비난했고, 환경단체나 정치인들이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연설을 해 참석자는 물론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참석한 정상들과 회담을 통해 자국의 가스를 수출하는 협상을 벌이는 등 반 기후적 행동도 서슴없이 했다. 이번 COP29에서는 국제 탄소 시장 운영을 위한 표준 확정(파리협정 제6조), 선진국이 기후 재원을 매년 최소 3,000억 달러(약 420조 원) 조달 합의, 2025년 이후 신규기후재원조성목표(NCQG)를 수립하기 위한 논의 진행 등의 일부 결과가 있었지만, 파리협정 제6조 이외에는 사실상의 성과라고 보기 어렵고 개도국이 요구하던 5,000억 달러(약 700조 원)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기후 재원에 합의하는 등 개도국의 불만이 크게 제기되었다. 이에 국제환경법센터(CIEL)의 니키 라이쉬(Nikki Reisch) 기후·에너지 책임자는 'COP29는 재앙(dumpster fire)이었다'라고 비난했다. COP29에서의 제한적인 성과와는 대조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이 그 중심에 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24년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는 약 600GW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약 600기에 해당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홈페이지에 명시된 11월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총용량 374.531GW의 1.6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태양광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요국은 2024년 신규 태양광 설치량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은 2023년 216.9GW에서 2024년 최대 260GW를 설치할 것으로 보이며, EU는 2023년 51GW에서 2024년 최대 64GW, 미국은 2023년 24.8GW에서 2024년 최대 40GW, 인도는 2023년 10GW에서 2024년 최대 23GW(11월까지 20.8GW 신설), 독일은 2023년 14.3GW에서 2024년 최대 18GW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주요국에서 신규 발전설비의 70~80%를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어, 태양광이 이미 주력 발전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사태로 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탄핵 정국'의 후폭풍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모든 정책은 표류하고 있고 특히 당장 시급한 기후·에너지 정책은 길을 잃은 모양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롯해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년 감축 목표) 수립이 대표적인데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COP29에서 우리나라는 2년 연속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3위에서 올해는 1위로 올라서는 등 글로벌 기후 악당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얼마나 미흡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이러한 오명은 향후 국제 협력에서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은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있어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과감한 투자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대응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부디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 대한민국이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황민수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개혁과 노인빈곤율

2023년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4.2%의 약 3배에 달했다. 에서는 평균소득 기준 순 연금대체율이 35.8%로 OECD 평균 61.4%보다 훨씬 낮았다. 노인빈곤율은 높고 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기본적인 연금체계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연금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공적연금으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퇴직연금(혹은 퇴직금)이며, 세 번째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개인연금 상품이다. 연금체계의 목표는 간단하다. 은퇴 후 생애 평균소득 대비 70%를 소득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출범 당시 이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기대여명의 증가로 연금제도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번 개혁을 거쳐야 했다. 1998년 1차 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재정추계를 도입했으며, 2007년에는 이를 다시 40%로 낮췄다. 연금을 받는 연령 역시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를 통해 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할 수 있었으나, 노인빈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24년 7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2,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영향력이 큰 제도를 개선하거나 개혁하는 논의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표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논의는 대체로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가'라는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사업장 가입자 기준으로 소득월액(월급여) 39만 원에서 617만 원까지를 기준으로 납부한다. 회사와 개인이 각각 4.5%씩 총 9.0%를 부담하며, 이를 40년간 유지하면 소득대체율은 40%가 된다. 그러나 직장인의 평균 근속연수 23~26년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 중반으로 낮아진다. 국민연금 개혁은 이 9%의 납부율과 40%의 소득대체율이라는 방정식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현재 추계에 따르면, 2040년대 후반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미래의 재정상황을 예측한다. 재정추계는 약 20년 이후의 기금소진 시점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납부율과 소득대체율 간의 다양한 조합을 제안하면서도 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많은 가정이 수반된다. 따라서 납부율과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뿐 아니라 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 등 대체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가능한 대안 중 하나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선을 현재 617만 원에서 건강보험처럼 상한을 없애는 것이다. 이 경우 추가적인 납부금 확보로 납부율을 약 2%포인트 이상 올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만, 납부 금액 대비 은퇴 후 수령액의 소득비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대안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씩 높이는 것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약 8~10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 거버넌스 선진화, ESG 철학을 포함한 기금운용 정책의 실질적 개선, 전문 인력 확충 및 처우개선 등이 필요하다. 2,200만 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한국 사회의 핵심 노후 복지제도다. 명확한 해결책 없이 OECD 국가 중 최악의 노인빈곤율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재광 ESG모네타 대표

[데스크칼럼] 여야정협의체 ‘시민권력 참여’ 필요하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3번이나 재현됐다. 불행이라는 언표(言表)는 윤석열 대통령이 짊어질 정치적 불행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국가적 불행을 말함이다. 탄핵 가결의 단초가 됐던 윤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은 한마디로 대통령 본인은 물론 집권여당과 국내 보수세력에는 하등의 도움, 아니 자칫 자멸을 초래할 수 있는 '뻘짓'에 해당했다. 더욱이 계엄령 선포의 명분으로 삼은 '거대야당의 입법독재', '지난 총선 부정선거 의혹' 등은 스스로 '자기 부정'을 자인한 행위였다. 총선은 국민의 투표행위로 다수표(국회의원)를 받은 정당이 의회를 장악해 다수의석 수를 바탕으로 행정부를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주요 메커니즘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의 다수결 행위를 입법 독재로 치부하고, 다수당의 존립근거인 총선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본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0.73%(24만 7077표) 차이의 '다수결 신승'을 부정하는 꼴이다. 스스로 자기 정권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논리는 결국 국회에서 일부 여당 의원이 찬성하는 탄핵 가결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정당성 상실'이라는 부메랑으로 귀결됐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대다수 국민들이 국회의 탄핵 가결을 승인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제 윤대통령의 탄핵 가결은 헌법재판소의 인용 또는 각하라는 최종 심판만 남겨 놓고 있다. 문제는 그 기간까지 대한민국이 '헌재의 시간'만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외 정치·경제 파고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계엄령과 탄핵가결의 암초를 만난 대한민국 선단으로선 어떻게든 난파의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탄핵의 '정치 시침(時針)'도 긴박하지만, 정부·기업·국민들에겐 '경제 초침(秒針)'이 더 절박하다. 다행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회,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이 여야정 국정협의체 가동에 합의하는 분위기여서 국정 혼란의 급한 불을 꺼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겨주고 있다. 다만, 혼란기 국정을 바로 잡고 정상화시키는 국정협의체 움직임이 과연 정치권 주도로 전개돼야 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정법)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즉, 윤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장관들로 구성된 권한대행의 정부는 최대한 윤 정부의 국정기조를 유지하려들 것이며,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런 권한대행체제를 자기 관리 아래 두고 헌재 심판 이후의 권력 헤게모니를 모색할 것이다. 탄핵 가결로 정국 주도권을 잡은 거대야당 민주당은 국정의 한 축으로 수권정당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헌재의 탄핵 인용 유도과 이어질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국정 안정과 국민 안심을 내걸고 있더라도 3자의 '정략적 셈법'에 따라 좌충우돌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선 안된다. 정치 논리로 여야정 협의체 운영이 흘러가도록 놔두선 안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협의체에 민간 파트너가 참여해야 한다. 민간 파트너에는 경제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 통칭 시민권력이 포함된다. 여야정협의체가 아닌 노사정협의체로 구성해야 여야정의 정치적 셈법을 제 4 권력인 시민권력이 감시·견제할 수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불의하고 부정한 권력을 무너뜨린 맨 선두에는 항상 시민권력이 있었음에도 이후 수습과정에서 역할이 축소되거나 소외됐다. 불행한 대통령 탄핵 가결의 3차례 반복도 정부 및 정치 권력의 시민세력 배제와 탄압에 따른 내재적 견제 시스템의 마비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내재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선 다수결(절차), 삼권분리(실행) 못지 않게 시민권력의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 탄핵 정국이 바로 적기(適期)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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