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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의 AI시대] AI 시대의 언어, 명령에서 협력으로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5년의 인공지능은 단순히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다. 이제 AI는 스스로 사고하고, 계획하며, 협력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오픈AI의 최신 에이전트는 짧은 요청 한 줄만으로도 복잡한 절차를 설계하고 실행한다. 클로드는 여러 도구를 동시에 조작하며 사람 대신 업무를 완수한다. 구글의 제미나이는 여러 AI가 함께 일하는 멀티에이전트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은 이러한 Agentic AI가 기업 효율을 약 30% 높여, 2024년 51억 달러에서 2030년 471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가상 동료(Virtual Colleague)시대의 개막"이라 부른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기술이 아니다. AI의 자율성이 커질수록, 인간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 명령의 언어가 사라지고, 협력의 언어가 등장한다. Agentic AI는 목표를 인식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인공지능이다. 과거의 AI가 질문에 답하는 도구였다면, 지금의 AI는 함께 판단하고 행동하는 동료적 지성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정확한 지시문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이 형식으로 써라", “이 조건을 따라라"는 식의 명령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지금의 AI는 명령이 아니라 목적을 이해한다. “함께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자." 이 한 문장에 AI는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맡고, 인간은 전략을 결정하며, 둘은 체크포인트를 통해 결과를 함께 검토한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좀 더 구체적 상황을 예로 들여다 보자. 글로벌 자산운용업을 하는 A사는 다음의 방식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 “위험 대비 수익률을 최적화하자"는 요청에 AI는 수천 개 자산의 상관관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다. 인간 펀드매니저는 AI가 제시한 옵션들을 검토하며 시장 심리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최종 전략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시 AI에게 묻는다. “이 전략의 취약점은 무엇인가?" AI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하고, 인간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략을 미세 조정한다. 명령과 응답의 구조가 아니라, 대화와 해석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롬프트가 기술을 넘어 사고의 언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철학자 오스틴은 말했다. “말하는 것이 곧 행동이다." Agentic AI 시대의 프롬프트는 이 문장을 현실로 만든다. “시장 분석을 설계하자." 이 말이 발화되는 순간, AI는 데이터를 모으고, 구조를 설계한다. 언어는 세계를 묘사하는 도구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행위로 바뀌었다. AI의 자율성은 효율과 창의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긴장을 낳는다. 첫째, 자율성과 통제의 긴장— AI는 스스로 판단하지만, 그 과정은 인간에게 투명하지 않다. 둘째, 명확성과 유연성의 긴장— 명령형 프롬프트는 재현 가능하지만 창의성을 잃고, 에이전틱 프롬프트는 창의적이지만 예측하기 어렵다. 셋째, 전문성과 보편성의 균형— 모든 이가 AI와 협력해야 하는 시대에, 그 언어는 소수 전문가의 기술이 아니라 모두의 문해력이 되어야 한다. Agentic AI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인식이다. 최신 모델은 이미 자기 검증과 동적 역할 전환이 가능하다. 문제는 인간의 인식이 여전히 'AI는 명령받는 기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한계보다 사고의 한계가 더 크다. 따라서 협력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명령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동안 인간은 그 의미를 해석하고, AI가 실행하는 동안 인간은 방향을 조율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분업이 아니라 공동 해석의 과정,즉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의미를 생성하는 세미오시스(semiosis)다. AI가 실행을 맡는 동안 인간은 목표를 설계하고, 사회적 맥락을 해석하며, 결과의 의미를 판단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AI의 시대에 인간의 지성은 더 깊이 있는 사유로 진화해야 한다. AI가 자율적일수록 인간의 언어는 더 윤리적이어야 한다. AI가 논리적으로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더 깊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Agentic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태도를 묻는다. 우리는 AI에게 무엇을 시킬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고할지를 배워야 한다. 협력이란 서로의 강점을 조율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언어는 단순한 지시가 아닌 약속과 책임의 도구로 작동한다. 이 변화는 산업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교는 AI와의 협력으로 새로운 문해력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의료기관은 AI와 협진을 통해 진단의 질을 높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정책 수립 과정에 AI를 참여시켜 보다 투명하고 시민 친화적인 행정 구조를 설계한다. AI와 인간의 협력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실험이 되고 있다. AI의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닮아갈수록, 인간의 언어도 더 깊은 사유의 윤리를 요구받는다. AI는 정답을 제시하지만, 가치의 방향은 여전히 인간이 정한다. AI의 언어가 효율의 언어라면, 인간의 언어는 의미의 언어다. 이 둘이 만나야 기술은 문명이 된다. Agentic AI의 시대는 기술보다 언어의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AI는 이미 자율적 에이전트로 진화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이다. 명령의 언어를 버리고, 협력의 언어를 배우려는 의지 — 그것이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의 출발점이다. AI는 이미 준비되었다. 이제 언어가 인간을 시험한다. 협력의 언어를 익힌 사회만이 AI와 공존하며 진보할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에 맞는 언어를 만들어왔다. 활판 인쇄가 문학을, 인터넷이 소통을 바꾸었듯, AI는 이제 사고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프롬프트는 더 이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과 다시 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문명 언어다. 김한성

[데스크 칼럼] 모니터 속 AI만 버블이다

'인공지능(AI) 버블론'이 국내외 증시를 강타했다. 코스피 지수를 4000까지 끌어올렸던 큰 축이 AI 반도체 산업이었으니, AI에 대한 흥분이 잦아들자 반도체 기업 주가가 급락, 코스피 지수마저 크게 흔들렸다. 빌 게이츠는 “AI 붐은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예일 경영대학원은 벤처캐피털 투자의 70%가 AI 스타트업으로 몰리고 있으며 “패자의 손실은 상당할 것"이라 분석했다. IMF와 영란은행은 지난 10월 “투자자 입맛이 틀어지면 글로벌 주식시장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과연 AI 버블이 터진 것인가. 과거 IT 버블에서 답을 찾아보자. 2000년 3월 10일, 나스닥 지수는 5048포인트를 기록했다. 2년 7개월 후 같은 지수는 1114포인트로 추락했다. 78%의 가치 증발. 5조 달러가 사라졌다. IT버블의 교훈은 명료했다. '.com' 접미사만으로 기업가치가 치솟던 시절, 수백 개 기업이 실적 없이 상장했다. 그러나 Pets.com은 상장 9개월 만에 파산했고, 2000년 슈퍼볼에 광고를 집행한 17개 닷컴 기업 대부분은 2년 내 소멸했다. 거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며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점유율을 쫓던 비즈니스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현재 IT를 버블이라 칭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은 살아남았고 버블을 견딘 IT 기업들은 오히려 지구의 산업과 증시를 이끌고 있다. 결정적 전환점은 '실제 산업으로의 확산'이었다. 구글 애드워즈는 2000년 출시돼 광고 산업을 재편했다. 검색 광고 시장은 2005년 100억 달러에서 2024년 280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전자상거래는 2000년 270억 달러에서 2024년 1조 1000억 달러로 40배 증가했다. 마케팅과 소매라는 명확한 수익 모델이 기술을 구했다. IT는 측정 가능했고, 수익화가 가능했다. 2025년 AI를 향한 자본시장을 보자. 엔비디아는 2년간 1150% 상승했고, AI 주식은 S&P 500 수익의 75%, 이익 성장의 80%를 차지한다. 빅테크의 AI 인프라 지출은 2025년 2분기에만 9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아마존의 연간 자본 지출은 1180억 달러를 상회한다. 과거 IT 버블 직전 닷컴 기업에 자본이 쏠리던 그 당시 모습이다. 현재 시장 흐름의 특징은, 자본이 칩과 데이터센터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순환 투자의 미로가 형성됐다. 오픈AI는 AMD 지분 10%를 취득했고, 엔비디아는 오픈AI에 1000억 달러를 투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대주주이자 엔비디아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오픈AI는 오라클과 5년간 3000억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600억 달러다. 그런데 오픈AI의 2025년 매출 추정치는 130억 달러에 불과하다. 여전히 적자다. 돈은 순환하지만, 수익은 없다. 그래서 AI 버블론이 나왔다. 결정적으로 '실제 산업 확산'이 더딘 것이 문제다. 맥킨지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를 확대 배치한 기업은 23%에 불과하다. 제조업 AI 도입률이 77%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예측 정비나 품질 관리 개선 같은 내부 효율화다. 혁명을 기대했건만 개선에 불과했단 이야기다. 협동 로봇 시장은 2024년 약 10억 달러로, 전체 AI 시장 1840억 달러의 1%도 안 된다. 공장 자동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서비스 혁신도 마찬가지다. ChatGPT는 그림도 그리고, 동영상도 만들고, 보고서도 잘 쓴다. 하지만 모니터 안에서만 인상적이다. 아직 가상세계인거다. 산업은 리얼월드에서 소비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기상천외한 기술이나 화려한 논문은 연구자 외의 인류에게 그다지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이나 잘 조합한 보고서는 찰나의 흥미에 지나지 않는다. AI로 재화의 가격은 떨어지고 품질은 올라가고, 노동자의 여가 시간과 소득이 늘어나는 등 인류의 행복이 비가역적으로 증대되어야 AI가 또 하나의 '산업 혁명'이 된다. AI 버블론은 칩 양산과 데이터센터 같은 AI 기초 기업에 대한 자본 집중이 한도에 닿았다는 의미다. 이제는 AI가 인간의 실제 삶으로 확산하도록 자본 흐름이 전환될 때다. 엔비디아가 아니라 GPU의 결과물을 리얼월드에 응용하는 기업을 살펴볼 시점이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기자의 눈] 오너의 ‘개인은행’이 된 비상장사

“상장사 오너에게 비상장사는 개인을 위한 작은 은행에 가깝다." 수많은 경영권 분쟁을 다뤄온 한 법조인의 말이다. 비상장사가 오너 일가의 '사금고(私金庫)'로 전락하는 현실을 압축한 표현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처럼 지배구조 감시가 느슨한 곳에서는 이런 구조가 더 깊게 뿌리내려 있다. 수법은 단순하다. 오너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비상장사에 배우자나 자녀를 대표이사·사내이사로 앉힌다. 이들은 실제 업무에 관여하지 않지만, 매달 급여를 받아간다. 외부에서는 합법적 급여로 보이지만, 실상은 회사 돈을 가족에게 이전하는 통로다. 세무상 손금처리로 위장된 사익편취의 한 형태다. 또 다른 방식은 '자금 순환'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분기 초 비상장사 자금을 끌어다 쓰고, 분기 말 재무제표 결산 직전에 다시 넣는다. 2~3개월간 오너의 자금창구처럼 이용되는 셈이다. 겉보기엔 문제없지만, 만약 돌려막기에 실패하면 부실로 전이되고 급하게 채권채무로 돌려 재무상태를 꾸민다. 더 심한 경우엔 그룹 총수의 개인 채무 상환에까지 비상장사 자금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런 비상장사는 대부분 상장사의 출자금으로 세워진다. 결국 상장사의 돈이 오너 개인의 현금흐름으로 흘러드는 구조다. 비상장사가 사금고로 변질되는 순간, 피해는 상장사로 전이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주의 몫이 된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합법의 외피'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거래 신고 기준(100억원)에 미치지 못하면 공시 의무가 없다. 사실상 시장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구조다. 그 틈을 이용해 수년간 반복적으로 '돈 돌리기'가 이뤄진다. 거래 상대방이 계열 비상장사라면, 외부 감사도 실질 내용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감시 시스템의 사각지대는 결국 제도 미비에서 비롯된다. 오너 일가가 이사로 이름을 올릴 때, 실제 근무나 경영 참여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는 없다. 등기이사로만 올라 있으면 세법상 급여 지급도 가능한 구조다. 근로제공이 없거나, 명목상 이사에게 급여를 지급하면 '인건비 손금산입 불가'하지만, 현실적으로 근무 실태를 입증·조사하는 절차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 틈새를 악용해 세금 절감과 자금 유출을 병행하는 '가족회사식 경영'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코스피는 '오천피' 시대를 논하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외면받는다.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고, 투자심리가 위축된 배경에는 이런 지배구조 리스크가 깔려 있다. 투명한 회계와 책임경영 없이 시장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코스닥이 성장의 무대가 되려면, 이런 사금고식 경영부터 바로잡는 것이 출발점이다. 감사 강화와 내부통제 실질화, 그리고 주주가 지켜보는 시장 문화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방산 수출 확대, 수은법 개정에 그쳐선 안 된다

지난해 2월 말, 국회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액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2차 방산 수출 계약이 금융 지원 한도에 막혀 좌초될 수 있다는 업계의 절박한 호소가 6개월 만에 수용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K-방산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 듯 보이지만 이는 '응급처방'일뿐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K-방산이 진정한 '세계 4대 강국' 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수은법 개정 너머의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특정국가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한 핵심 규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10조원 증액은 또 다른 리스크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K-방산이 제2의 폴란드급 수주에 성공하면 K-방산은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또한 이 10조원은 즉각 활용 가능한 실탄이 아니라 정부가 예산으로 채워 넣어야 할 '그릇'을 늘린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신임 국방부 장관이 “금융 조건이 수용 가능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듯 K-방산의 금융 지원 역량 한계가 전 세계에 노출됐고, 향후 협상 비용만 영구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핵심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가장 큰 문제다. K-방산의 대표 상품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는 오랜 기간 엔진과 변속기(파워팩)를 독일산에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의 수출 허가 없이는 우리가 수주한 물량도 팔지 못하는 기술종속 상태에 놓였었다. 최근에야 엔진 국산화에 성공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현대로템 K-2 전차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등 여전히 많은 주력무기체계가 핵심부품 해외 의존도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폴란드 원 툴'이라는 심각한 편중 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K-방산 수출 물량의 46%가 폴란드 단 한 국가에 집중됐다. 이는 K-방산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 폴란드의 정치·경제 상황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실제 2023년 폴란드 정권 교체 후 계약 재검토 가능성이 거론되며 업계 전체가 흔들렸다. 중동·미주 등 시장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정부의 역할 재정립도 시급하다. 수출 규모가 커지며 기업 간 각개전투나 갈등이 발생해도 방위사업청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조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경우 대외 군사 판매(FMS)를 통해 정부가 계약을 보증하고, 이스라엘은 SIBAT을 통해 마케팅과 G2G 계약을 직접 지원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K-방산 '수출 전담 기구'로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 수은법 개정은 K-방산이 넘어야 할 수많은 허들 중 첫 번째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 '금융·기술·시장·거버넌스' 네 바퀴가 함께 굴러가지 않는 한 'K-방산 르네상스'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부동산 담보의 그늘을 넘어: 은행의 사업전환이 여는 신성장의 문

우리 경제의 혈맥을 담당하는 은행권이 여전히 부동산이라는 안전지대 속에 머물러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원화 대출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이는 은행 여신의 10원 중 7원이 주택담보대출 또는 부동산 개발자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5년간 이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금리 인상기에도, 경기 둔화기에도, 은행들은 가장 손쉬운 길을 선택했다. 담보가 있고 리스크관리가 용이한 부동산 대출이 주요 대출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기 안정성 추구는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안정된 퇴행'에 가깝다. 실물경제로 자금이 적시에 공급되지 않으면 기업의 혁신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창출 여력도 줄어든다. 가계의 자산은 부동산으로 쏠리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중산층을 잠식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내 집 마련'조차 요원한 목표가 된다. 결국, 은행의 안정이 국민경제의 불안으로 전이되는 역설이 형성된 것이다. 은행권이 생산적 금융을 실현하는 첫 출발점은 평가 역량의 혁신이다. 과거 벤처 붐 시절, 많은 자금이 기술력만을 믿고 투입됐으나 부실로 끝났다. 반면 오늘날의 '기술 금융'은 동일한 벤처 대출이라도 기술 가치 평가에 근거한 정밀한 심사체계를 바탕으로 운용된다. 이는 성공적인 생산적 금융의 안전판이 된다. 은행이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대출기관'이 아니라, 산업을 분석하고 리스크를 공유하는 '투자기관'으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제도적 유인이다. 현재 은행들은 BIS 비율 규제에 따라 대출자산의 위험가중치에 맞춰 자기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벤처기업 등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400%로 책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대비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다 보니, 은행들이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는 안전한 부동산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만약 정부가 벤처·혁신기업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120% 수준까지 낮추면, 은행으로서는 동일한 자본으로 더 큰 투자 여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유인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역금융 강화도 필요하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을 통해 지방은행이 중소·중견기업과 장기적 거래관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했다. 대출 대상 기업의 신용등급뿐 아니라 현장 방문, 기술력, 고용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이 방식은 지역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높였다. 관계형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서 정부의 보증 지원 활성화가 시급하다. 신생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해 금융 접근성이 낮다. 이에 정부가 일정 부분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서서 은행의 리스크 부담을 줄여주면 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은행 내부의 체질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국내 은행 인력의 다수가 여전히 담보평가, 채권관리, 소매금융 영업에 집중되어 있다. 기술평가, 산업 분석 등 생산적 금융의 핵심 역량을 갖춘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신용리스크를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산업별 전담 심사팀을 구성하는 것이 향후 10년의 은행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생산적 금융의 전환은 단순한 '투자 확대'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자원배분 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의 개혁이다. 적절히 운용된 생산적 금융은 다음과 같은 거시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 기업 투자가 확대되어 고용이 창출되고, 가계소득이 증가한다. 이는 소비와 세수를 늘려,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한다. 둘째, 은행 수익구조가 다변화되어, 부동산 경기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구조가 가능해진다. 셋째, 기술 금융과 벤처투자를 통한 혁신기업 성장으로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 넷째, 금융과 산업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자본시장의 깊이가 한층 두터워진다. 궁극적으로 금융은 국민의 부로 이어질 때 그 존재 가치를 갖는다. 국민경제가 더 이상 부동산과 대출금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는, 은행의 자금이 창의와 도전, 생산과 혁신의 현장으로 흘러가야 한다. 유동성과 리스크 회피가 아닌, 신용과 감별력으로 먹고 사는 '원래의 금융'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손쉬운 담보에 안주하던 시대를 넘어, '평가할 줄 아는 은행', '투자할 줄 아는 금융'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되어야 할 때이다. 부동산 담보가 아니라 기술과 신용으로, 이자수익이 아니라 성장성과 가치로 승부하는 은행이야말로 국민이 진정으로 신뢰하는 미래형 은행이다. 서지용

[EE칼럼] 데이터센터와 배터리의 위험한 동거, ‘액화공기’가 해결책인 이유

지난 9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나라 디지털 인프라의 치명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길은 22시간 동안 타오르며 정부 전산시스템을 마비시켰고, 이는 단순한 시설 화재를 넘어 '국가 행정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화재가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의 교훈을 반영하여,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설비를 이전하는 작업 중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위험을 예방하려던 조치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른 것이다. 이 사건은 AI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센터가 '리튬 배터리와 위험한 동거'를 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 데이터센터는 리튬 배터리의 화재 위험뿐만 아니라, '전력망 확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장벽에 직면해 있다. AI 시대의 도래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최근 11개월간 수도권에만 원자력 발전소 20기에 해당하는 20GW 규모의 전력 사용 신청이 몰렸다. 하지만 수도권의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새로운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은 주민 민원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83%가 평균 41개월씩 지연되고 있으며, 그 원인의 절반 이상은 주민 반대로 기인한 것이다. 결국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은 화재 위험을 감수하며 리튬 배터리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사업에 필요한 전력조차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액화공기 에너지저장장치(LAES, Liquid Air Energy Storage)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LAES는 잉여 전력으로 공기를 영하 190도 이하의 액체로 만들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기화시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물리적 저장 시스템이다. LAES가 왜 AI시대의 '게임 체인저'인지 네 가지 핵심 이유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 '가상 송전망'으로 전력 병목을 해결한다. 데이터센터 부지 내에 LAES를 설치하면, 전력망이 한가한 심야에 전기를 미리 저장해두었다가 전력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논란이 많은 신규 송전망을 건설할 필요 없이,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가상 송전망' 역할을 한다. 주민 민원과 행정 절차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둘째, 절대적인 화재 안전성을 보장한다. LAES는 오직 공기와 물만을 사용하기에 리튬 배터리의 '열 폭주'와 같은 화재나 폭발 위험이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재 발생으로 인한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재앙은 발생할 수가 없다. 셋째, 공생을 통한 압도적인 경제성을 자랑한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의 약 40%를 서버 냉각에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폐열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 폐열은 LAES 시스템에서는 발전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귀중한 '연료'가 된다. 반대로 LAES가 전기를 만들고 배출하는 냉열은 데이터센터 서버 냉각에 재활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버려지던 열 에너지를 자원으로 바꾸는 완벽한 공생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넷째, 진정한 에너지 독립을 실현한다. 2026년부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시행되면 수도권의 전기료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LAES를 갖춘 데이터센터는 값싼 심야 전력을 저장해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전력망 안정화 서비스로 판매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로 거듭날 수 있다. LAES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영국 하이뷰 파워(Highview Power)는 맨체스터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인 50MW/300MWh급 상용 플랜트를 건설 중이며, 가동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토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국기계연구원이 핵심 부품인 터보팽창기와 콜드박스를 100% 국산 기술로 연구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전 화재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리튬 배터리에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만으로는 AI 시대의 에너지 수요를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에 LAES를 도입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할 필수 전략이다. 화재 위험과 송전망 갈등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벽을 동시에 허물 수 있는 LAES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정부와 산업계의 과감한 결단과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 상기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소속기관 등의 공식적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연구위원 이종석

[기자의 눈] 산업부가 자초한 ‘톡신 카르텔’ 논란, 깜깜이 행정 불신만 키워

보툴리눔톡신(톡신) 국가핵심기술 논란에 '행정카르텔 의혹'이 공식 추가됐다.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서다. 주로 산업계 일각에서 주장했던 논란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정치권까지 확산한 것이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 산자위 국감에서 제기한 행정카르텔 의혹은 산업통상부 산하 '전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특정 이해관계와 결탁해 톡신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데 이어, 업계의 지정 해제 요구를 반복 무산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톡신, 특히 미생물인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은 지정년도인 2016년 이후 약 10년간 꾸준히 지속됐다. “균주 상용화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국가핵심기술이므로 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 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작용하기에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 모두 타당성이 있다. 공개 연구와 공청회, 토론회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면 된다. 정책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문제는 규제기관 역할을 맡은 산업부와 전문위원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유지 일변도인 전문위원회의 공정성과 결정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측이 제기한 질의에 산업부는 '비밀유지'를 근거로 사실상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올해 국감에선 일부 내용이 공개됐는데, 지정 해제·유지 결정의 키를 쥔 전문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2인이 균주 국가핵심기술 지정 당시인 2016년부터 올해까지 5회(회당 2년)에 걸쳐 유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임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문위원회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반대해온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귀띔했다. 일방적 주장인데다 산업부가 관련 내용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구체적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산업부의 깜깜이 행정으로 업계 내 행정 불신이 깊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관련 토론회에선 산업부의 장관 축사 철회 요청 논란도 있었다. 업계 내 의견 대립이 첨예한 사안으로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관 축사 철회를 요청했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공개된 김정관 산업부장관의 축사는 “균형있는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골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확언한 김정관 장관과 산업부는 빠른 시일 내에 사안을 살피고 경과를 공개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문위원회 임기가 이달 만료되는 탓이다. 깜깜이 행정은 불신만 키울 뿐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최민희와 캄보디아

국정감사 기간에 딸 결혼식을 열어 피감기관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아 논란을 일으킨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여론은 APEC 정상회담이후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조용히 버티다 보면 여론이 바뀌고 사건 사고가 많은 나라이니 이 사건 또한 잊히기를 최 의원이나 더불어민주당이 기대하고 있다면 “1년 지나면 또 찍어주더라"라는 윤상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생각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큰 뉴스가 많았던 APEC 정상회담 기간에도 정부의 캄보디아 국제 범죄 대응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 강원경찰청은 3일 전국 총 560건의 사기 사건을 수사해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형법상 사기, 범죄단체 가입과 활동 등 혐의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국내외 조직원 114명을 붙잡아 구속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며 대통령 경호처 등으로 신분을 사칭하여 노쇼 사기 등으로 소상공인을 울렸다. 같은 날 국세청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 브리핑에서 “최근 캄보디아 스캠(사기) 범죄의 배후로 알려진 법인 관련 국내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대상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과 관련된 외국법인 국내 영업소다. 최근 서울 명동에 부동산 관련 영업소를 연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프린스그룹도 세무조사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틀 전인 1일엔 캄보디아 사태가 APEC 정상회담 의제로 올랐다. 한국 경찰청과 중국 공안은 이날 경주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보이스피싱ㆍ온라인 사기범죄 대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한 자리에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최민희'와 '캄보디아'는 서로 무관한 사건으로 보이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먼저 '캄보디아'. 주변에서 자주 들은 얘기 중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피해자라고 지칭하며 “구출했다"고 말하는 김병주 의원 등의 주장이 가당하냐는 게 있다. 김 의원뿐 아니라 박찬대 의원 등 민주당 입장이 대체로 그러한 듯하다. 가해자이지만 피해자라는 논리. 반대로 국민의 힘에선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여서 자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자를 감싸고 도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한다. 둘 다 맞는 얘기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미궁을 헤맨다. 답이 없는 건 아니다. 답을 못 찾은 건 애초에 범주 구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범죄자인지,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한 고려 사항은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타국에서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사태를 그들이 비록 범죄자라 해도 국가는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범죄는 대한민국 법에 따라 더도 덜도 말고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외국법에 저축되면 그 또한 국제법에 따라 대한민국 법절차에 따라 처벌받게 하면 그만이다. 이 문제는 그들의 정체성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쟁점이다. 국가의 수준 및 자존심과 직결되기도 하고. 이제 '최민희'. 더 간단하다.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가 열리는 동안 국회에서 자녀 결혼식을 올린 건 윤리적 흠결이라 치자.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와 이모저모 관련된 기관이나 인사로부터는 축의금을 받은 건 선출직 공직자로서 사실상 범죄 행위이다. 여론이 질타하듯 사적인 행사를 공적인 관계망에 연결 지은 것 자체가 사리분별을 잊은 태도였다. “Leave no one behind"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구호이다. '캄보디아'에 적용해야 할 이 구호를 반대로 최 의원이 자신의 딸 결혼식에 적용하였다. 간단한 범주마저 구분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너무 많아 국민이 걱정이다. 안치용

[EE칼럼] 전력시장 자율규제기관 독립화 담론, 개혁인가 성역 강화인가

오랜 동안 전력시장을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의결·인사·예산 독립성을 확보하여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고, 원칙에 따라 요금을 산정하며 시장을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 결정기구, 예컨데 새로운 형태의 '전기위원회'나 '전력감독원'을 설립해 시장의 합리적 운영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비교하기도 한다. 독립규제기관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치와 정부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물가 안정과 정치적 통제 필요성 등이 우선시 되면서 제도화되지 못했다. 최근 이 논의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정부조직법 개편이 있다. 산업부가 쥐고 있던 권한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독립 위원회 모델이 대안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초대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또한 이러한 전력부문 자율기구의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하지만 명분에 앞서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성숙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기구를 도입하는 것이 마치, 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는 일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 역시 자율적인 전력 규제기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단골로 주장된다. 그러나 성숙한 전력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자율기구가 먼저 등장한 사례가 과연 있었는가? 혹은 시장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율기구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주도적으로 그럴듯한 시장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는가? 예컨데 한국은행 금통위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던 배경에는 탄탄한 민간 은행업권과 금융시장이 존재했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그 뒤에는 이를 수용·반영하는 상업은행, 자본시장, 민간 금융업자가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민간 은행 연합의 이해관계 속에서 태동했으며, 한국은행 역시 은행권과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금통위는 정부의 정책적 수요와 민간 금융시장의 기능 사이에서 균형자이자 심판자로 작동하며, 독립성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전력시장은 시장 참여자라 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규모 있는 발전사 대부분이 한전 자회사 계열이고, 소매 전력시장은 아예 독점적 구조로 한전이 사실상 단일 판매자다. 민간 발전사가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SMP(System Marginal Price)는 CBP(Cost-Based Pool) 체제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제출된 원가 자료를 기반으로 산정될 뿐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비용 부담 역시 사후 정산 구조로 운영되며, 전가되는 과정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시장 가격 형성 메커니즘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전력 가격은 온전히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이러한 제도적 특성 때문에 전기요금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라기보다 준조세적 성격을 띠며, 민간 이해관계자가 제도적으로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이런 현실 때문에 전기위를 금통위 혹은 여타 선진국들의 자율규제기구와 비교하는데 현실적 배경적 간극이 크게 존재한다. 금통위 독립성은 정부와 민간 금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제도로 설계된 반면, 현재 전기위 독립성 논의는 정부 내 권한 조정과 소수의 폐쇄적 이해관계자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레토릭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독립성이 명실상부하게 작동하려면 단순히 제도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민간 전력시장 개방과 소매 다변화 같은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금통위 모델을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결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은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를 고려할 때, 전력부문 자율규제기구 독립화는 제도적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독점자에 의한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즉 독점자에 의해 자율규제기구가 좌지우지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금통위는 은행권 등 민간 금융 주체가 존재하고, 그 이해관계가 제도적으로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의 균형자로 기능한다. 그러나 전력시장은 소매 부문이 부재하고 발전 분야 역시 대부분 한전 자회사로 채워져 있어, 독립위원회가 설립되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뒷받침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새로운 자율규제기구 설립이 시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일부 극소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식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규제 포획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전기요금 산정에 필요한 핵심 비용·수급 정보는 한전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위원회는 이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풀 역시 간택된 호위무사들이 주축을 이루어, 독립성보다는 기존 구조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요금 인상 등 책임을 위원회에 전가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시장 독점자는 로비와 정보 제공을 통해 제도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오히려 전력시장 관리에 있어 현행 제도와 비교해 민주적 통제 가능성만 훼손시킬 수 있다.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비와 직결되는 준조세적 성격을 지녀 왔으며, 이러한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국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적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짙다. 그러나 독립위원회 체제에서는 정치 개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국민 통제력이 줄어들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준상업 기관으로서의 ㈜한국전력과 폐쇄된 일부 네트워크의 영향력만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요컨대 전력 도·소매 시장이 성숙하기 전 현 시점에서 전기위원회 독립화는 제도적 상징성은 있을지 몰라도 의도했던 실질적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전의 독점력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율규제기구라는 배를 띄우기에 앞서 소매시장 개방, 민간 경쟁 촉진, 정보 공개 강화 등 시장 기반을 다지는 넓은 바다부터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그 필요조건 하나하나조차 충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지 않던가? 선행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민주적 통제가 약화되는 동시에 기존의 독점자만 간접적으로 강화되는 부작용만 남길 것이다. 정권과 무관한 자생력을 독점에 선물하면서 독립이라 부르는 순간, 속칭 개혁이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전락할까 걱정된다. 유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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