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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미중 무역전쟁과 한국 경제의 전략적 대응

2025년 4월, 미중 무역전쟁의 두 번째 라운드가 본격화되며 세계 경제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수 부진과 높은 실업률로 정치적 난국에 처한 중국을 전략적으로 압박하며 고율 관세와 다양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강력한 보복관세와 희토류 수출제한으로 대응하며 양국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글로벌 공급망은 흔들리며, 세계 각국은 이 거대한 충돌의 여파를 피해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이미 위기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5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0.2%를 기록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고, 수출 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결과가 미국의 고율 관세가 본격적으로 발효되기 이전의 수치라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파가 앞으로 더욱 강하게 밀려오면 한국 경제는 훨씬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두 강대국의 충돌이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흔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떠올릴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경제 고래가 격돌하는 사이에서 한국은 작은 새우처럼 무력하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비유다. 실제로 양국의 무역전쟁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이며, 중국은 제조업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두 나라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은 수출 감소와 공급망 혼란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 피해를 우려하거나 상황을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제 정세의 급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은 능동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단순히 새우처럼 등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고래들이 싸우는 틈에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전략적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자주 언급했던 손자병법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제압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강력한 관세 정책과 제재로 중국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축소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에 따라 미국 내 기업들과 미국에 수출하는 국가들은 중국산 제품을 대체할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미 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중국과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에게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 중국에 추격당하고 추월당했던 가전, 반도체 부품, 자동차 부품, 화학 소재 등 중간재 및 최종재 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했던 공급망의 빈자리를 한국이 채울 수 있다면, 관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급망 재편은 국가 경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기회로, 평소라면 쉽게 일어나지 않는 대규모 변화가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의 격변 속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공급망 재구축은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할 기회다. 중국이 빠진 자리를 한국이 메운다면,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고래들이 싸우는 틈에서 실속을 챙기는 영리한 전략이 될 것이다.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게끔 유도하면서 한국은 그 사이에서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실현할 수 있다. 물론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새로운 공급망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 시장 진출 지원 등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기술 혁신과 품질 향상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 한국이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물론 병행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결코 수동적으로 물러설 때가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 경제에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단기적으로는 수출 감소와 성장률 하락이라는 뼈아픈 타격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혼란을 기회로 삼아 공급망 재편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우리의 경제구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사고와 능동적인 대응이다. 손자병법의 이이제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국만의 생존과 성장 전략을 수립한다면,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

[EE칼럼] 미국과 유럽의 기후 전쟁

미국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4월 23일 세계은행과 IMF가 기후변화 같은 허영심 가득한 프로젝트에 빠져 거시경제 안정과 개발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소홀했다며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40억 달러의 세계은행 기금 기부 약속은 핵심 목표 성과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스벤야 슐체 독일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은 미국의 압력에도 기후변화 문제를 포기할 수 없고, EU 회원국이 미국 이상의 은행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 미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의에서도 청정 전력과 넷제로 글로벌 전환 업무를 압박하며 '화석연료가 아닌' 모든 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했다. 한 프랑스 관료는 폴리티코에 익명을 전제로 '탈탄소화는 에너지 안보이자 도구로 프랑스 입장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IEA가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백한 충돌이자 글로벌 기후의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운은 2025년 1월 20일 '국제 환경 협약에서 미국 우선'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이 행정명령은 미국 경제를 손상시키거나 억압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제 협정 개발과 협상에서 미국과 자국민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미국에 부당하게 또는 불공정하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파리협정 탈퇴는 물론이고 개도국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한 4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제기후금융을 철회했다. 또한 국제 에너지 협정을 계획·조정하는 모든 부서와 장은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모든 대외관계에서 경제적 효율성, 미국 번영 증진, 소비자 선택권, 재정 절제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이 원칙에 따라 전선을 조정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수세에 몰렸다. 에너지 위기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쓴 농민시위는 유럽 국민들의 피로감이 겹쳐 기후의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녹색당 등 좌파를 몰락시켰고 이 틈을 우파와 극우가 파고들었다. 올해 초 유럽의회는 공급망실사지침(CSDDD)의 시행을 연기했고 탄소국경세 기업 부담을 대폭 완화했다. 이 흐름을 주도했던 건 국내외 언론이 그린딜에 우호적이라고 불렀던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이다. 여기에 트럼프 2기의 기후의제 압박이 추가된 것이다. 무게의 추가 기운 이유다. 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여론과 참여다.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에너지 전환 수용의사와 지불의사가 다르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GDP의 2% 미만인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시위에 대중이 움직였던 이유는 정치인들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약자를 에너지 정책으로 핍박한다는 호소가 먹혔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가 불러온 인플레이션은 4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생활비 위기로,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보조금이 갈수록 늘어나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미 우선순위는 국방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는 저렴한 에너지 비용을 원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에너지 집약산업이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 비해서 5~7배가 넘는 에너지 비용을 지불하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COP28에서 금융기관들은 수익성이 없는 녹색 전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주체의 참여 인센티브가 없는 정책은 보급물자 없는 전쟁과 같다. 이 기후 전쟁은 아프리카의 손에 달려있을 수 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올 3월 CERA 컨퍼런스에서 아프리카 정부의 화석연료 투자를 지지했고 아프리카엔 석탄을 비롯한 모든 연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막대한 자금지원을 시사했다. 반면 유럽은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아프리카 대륙 화석연료 개발을 막으면서도 에너지 위기에서 자신들만 예외로 두고 그들의 대륙에서 천연가스와 석탄을 수입해가는 모순을 보여줬다. 여론과 경제주체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진영이 이번 기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번 폭염과 한파를 지나며 전 세계 국민들은 에너지 요금 고지서를 보고 승자를 결정할 것이다.

[이상호 칼럼] 인도-파키스탄 충돌로 보는 한국의 핵무장 딜레마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파탄 일보 직전이다. 지난 4월 22일 카슈미르의 도시 파할감(Pahalgam)에서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장 세력의 총기 난사 테러가 발생해 힌두교도 관광객 26명이 사망했다. 테러범들은 힌두교 성을 가진 비무슬림 남성만 골라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인도는 이 사건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고 양국 국경 폐쇄는 물론 1960년 체결된 '인더스 수역 조약'을 파기하는 등 강력한 대응을 했다. 파키스탄이 인더스강의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천천히 망해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고, 이는 파키스탄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는 재앙이다. 양국은 과거 여러 번 전면전과 국지전을 벌였지만, 이번 상황은 심각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둘 다 핵보유국이다. 핵 보유의 대표적인 논리는 핵무기의 가공한 성능과 공포 때문에 핵보유국 사이 전쟁은 발생하지 않으며 충돌이 있더라도 국지적 또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바로 핵 억제전략의 본질이다. 양국은 핵무장 이후에도 계속 충돌했다. 적어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핵 억제력이 분쟁 발생을 막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핵무기가 확전을 방지하지만, 전쟁 위협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만약 양국이 충돌한다면 핵무기 사용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북한도 파키스탄같이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에도 국가 존망을 걸고 핵무장을 이루어 냈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확산으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확장억제력)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며 핵무장 여론이 큰 힘을 받고 있다. 한국이 아직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핵 보유 잠재력이 있는 국가이다. 최근 한국 핵 보유 논란의 핵심은 북한이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아무리 강해도 북한의 핵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에 각종 군사도발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핵 보유에 따른 자신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핵우산으로 한국을 보호해 준다지만, 100%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미국의 제공하는 확장억제력를 신뢰해야 한다는 주장과 소위 '핵자강'을 이뤄내야 한다는 여론 모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핵우산'과 '핵자강' 사이 하나만을 선택할 지렛대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 당장 핵무장을 통해 한국만의 '고슴도치' 방식의 고립된 생존 정책을 택해야 할 시나리오는 미국과의 관계가 파탄 나고 북한과 전쟁 상태에 있으며 중국이 한국을 전방위에서 고립시켜 숨통을 끊을 정도의 국가 재앙적인 상황일 것이다. 향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 한국의 핵 보유 논의는 시의적절하며 필요한 것이다. 핵 보유의 길을 가더라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이 영향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안은 한미동맹을 지키면서 한국이 핵 보유 잠재 역량을 계속 확대하고 한국 핵 보유에 따른 득실을 계산하며 시간과 인내를 가지고 한 걸음씩 천천히 전진하는 것이다. 당장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은 옳지 않다. 비록 이번 인도-파키스탄의 충돌 양상이 과거와 달리 매우 심각한 국면이지만, 지금까지 양국의 재래식 충돌은 전면 핵전쟁까지 확대되지 않았다. 이는 핵 보유가 국가 간 무력 충돌이나 전쟁을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회피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핵무기는 공포라는 극단적인 감정을 통해 교전 당사자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설득해 주는 도구다. 한국의 도전 과제는 최근 어려운 국제 환경에서 독자적이든 집단적이든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이런 공포의 균형을 분명하게 보증할 수 있는 대안을 어떻게 확보하냐는 것이다. 이상호

[EE칼럼] 불안정한 세상과 다시 올 녹색성장

세상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우리가 오래 당연하게 생각해온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 온다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의 골격은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7월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약(Bretton Woods Agreement)이다. 이 협약은 세계 대전의 시련을 딛고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주요 내용은 1) 금(金) 본위 기조 아래 미국 '달러'화의 기축(基軸) 통화 지위 합의와 고정 환율제의 채택, 2) 환율 안정과 국제 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설립으로 요약된다. 이 협약은 전후 세계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환율의 변동성이 최소화되어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었고, IMF와 IBRD의 지원 활동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미국의 대외 부채가 증가하고,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에 기본을 둔 '달러'화 기축 통화 지위를 포기하여, 이 협약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여기서 석유파동이라는 에너지 위기가 '브레튼우즈' 체제 종식의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실물자산인 석유-에너지가 가상자산인 '달러'화 기축체제 종식을 유도한 셈이다. 이 결과로 글로벌 가치 교환체제가 붕괴와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세계가 처한 가장 큰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 행태라는 '골드만 삭스' 등 여러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이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독불 장국 '트럼프' 정부 재집권 등 정치 위험은 두 번째이다. 관세 부과를 통한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트럼프' 정책은 석유파동으로 훼손된 '달러'화 가치를 지금 보전받으려는 염치없는 행태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논리의 경시에 따라 '트럼프'취임 100일 만에 미국민 지지도는 40%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마 시장 논리에 따른 정상적 보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행태 그러나 우리는 정치외교 전문지인 'Foreign Affairs'가 지정학 위험의 주요 원인으로 '인프라 네트워크' 취약성을 꼽은 점에는 여전히 유의해야 한다. 국가 간 연계 증가와 공통 기술 의존성 증대로 인해 다양한 글로벌 상호연계가 급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상호연계 사례가 에너지산업과 통신일 것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에너지, 통신 부문을 필두로 필수 민생서비스 제공을 완전보장할 수 없다. 대신 민간기업과 일부 공기업들이 정부와 연계하여 민간 필수재 공급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과 공기업 간의 역할 일부 혼돈과 이해 충돌은 누적되어 에너지-기후문제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에너지 부문의 주된 해결과제는 전통적 에너지 생산-유통-소비 체계가 아니다. 1980년대부터는 에너지 절약/이용 합리화가 주요 관심이었으나 지금은 기후변화대응이 압도적이다. 더욱이 기후변화 감축 효과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2100년까지 지구 대기 온도상승을 섭씨 1.5 도 이하 유지라는 UN'파리'협약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세계 최고 과학자들은 영국 '가디언'지 설문 조사에서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최소 2.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현존 지구 문명 소멸 수준이다. 이들 중 거의 절반은 최소 3C 이상 상승을 예상했다. 아마 갈수록 비관적 견해가 커질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기후 유발 '디스토피아(Dystopia; 극단적 암울한 미래)가 우려된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한계, 글로벌 정치와 시장통합의 파행(Fragmentation), AI 등 신기술의 역할 강화 등으로 에너지 부문의 역할과 가치는 급변할 수 있다. 이에 에너지 수급 취약성이 매우 큰 우리나라는 신중한 에너지 연구방법론이 요구된다. 기후변화대응, 에너지분야의 주된 해결 과제 사실 기후변화 '이슈'는 갈수록 지정학 주요 과제에서 밀려나고 있다. 재무장 및 AI 우위를 향한 경쟁과 같은 지정학 과제들이 관심의 초점이다. 해수면 상승, 장기 무더위 등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실 기후 변화위협은 과학적 기준에서는 분명히 커지고 있지만, 기업은 물론 기후 혁신운동가조차도 효율적인 대처방안 모색 없이 단지 어색한 침묵을 지킬 수 있다. 민간 경제주체들이 재정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환경적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행태를 '그린 허싱'(greenhushing)이라 한다. '그린 허싱'의 증가는 기후대책, 안보, 시장경제 문제해결과정에서 우선순위 설정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왜곡된 정보와 부정적 주장의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바로 '정책실패' 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새로운 정책 시도를 통해서 왜곡된 시장과 시민들의 관념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책실패를 고려해야 한다. 바로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이다. 작년 11월 발간된 '이코노미스트( Economist)'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보도하였다. 한국 선출직 정치인의 1/3이 박사학위(PhD) 소지자이란다. 그러면 우리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가? '웃으면서 답은 하지 않는다.'라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반 국민복지와 국리민복 고양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대선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유력 후보들은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어느 유력 후보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활용 증대에서 필수적인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과 RE100 (신-재생에너지 자급) 산업단지 100개 이상 조성 등을 약속하였다. 다른 후보들도 에너지 부문의 숙원인 기후경제부 신설, 기후산업 400조 원 투자, SMR(소형 '모듈러' 원전) 상용화 추진 등을 공약하였다. 왜 모두들 에너지대책에 관심이 큰가?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미흡이 그 큰 이유 중 하나로 필자는 생각한다. 예너지 정책의 성공 요체는 정확한 미래예측 어느 후보가 검토 결과를 제시하니 다른 후보들이 검증 없이 급히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에너지 부문의 특성은 장기 규모 장기 투자와 긴 선행기간이 요구되어 대규모 단기적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급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릇 국가 에너지대책은 '인과관계의 규명'과 반복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일반화' 그리고 정립된 이론을 통한 '미래예측 능력의 통제' 과학적 연구방법론 이행과정을 엄격히 거쳐야 한다. 이래야만 미래예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70년대 석유파동보다 더욱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여건에서 우리 정치권의 '무책임성'이 갈수록 두렵다. 더욱이 우리는 지난 정부의 과시적 '녹색개발(green developments)'의 후과(後果)를 청산해야 한다. 온난화 방지와 성장과 복지를 동시 증진할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여러 논리적 한계로 지금은 그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적정 탄소 가격의 부재와 민간기업의 시장진입 한계가 가장 큰 제약이다. 이에 선진 학계에서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녹색성장 논리가 차기 정부 에너지대책 기반 논리가 될 소지가 있다. 지역균형 발전, 분배 중시 등의 정치 이념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더욱이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에 한계가 있는 에너지 부문의 특성을 활용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10년쯤 뒷걸음칠 수 있는 우리 에너지 부문을 생각하면 되돌아가기도 하는 세월 흐름의 무게를 되새길 따름이다. . 최기련

[기자의 눈] 은행권 과점 깨기…꾸준한 정책이 필요하다

DGB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제4인터넷전문은행 추진은 윤석열 정부가 은행권 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내놓은 금융정책이다. 5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구축된 독점 체제가 은행권에 유리한 이자 장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추진됐다. 정부의 '은행 때리기'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지금의 과점 구조 해체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금리 인하기에도 불구하고 높은 금리로 고통받은 차주들이 많았던 데다, 경기 침체기에도 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이익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중은행으로 재탄생한 iM뱅크와 제4인터넷은행 출범 예고를 반기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기존 시중은행들과 비교하면 경쟁이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작고, 시장 안착에 대한 의구심도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란 시도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iM뱅크는 시중은행 전환 이후 은행 서비스가 부족했던 원주 지역에 곧바로 지점을 열었고, 충청권 등 추가 출점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으나, 은행 점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영업망을 구축하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4인터넷은행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은 소상공인 특화 은행을 표방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은행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 현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국소호은행이 계획대로 출범하게 되면 대형 시중은행 중심의 금융 체제에서 소외됐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보다 특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은행들은 은행권의 '메기'로 부상했다. 2017년 인터넷은행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으나, 지금은 기존 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시장 파급력이 커졌다. 새로운 시중은행 등장과 제4인터넷은행 출범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은행 지형을 흔들지 모를 일이다. 다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금융정책은 6월 3일 조기 대선 이후 바뀔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정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꾸준히 추진돼야 하는 정책들은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을 위해, 은행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필요한 은행권 과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이 있는 정책으로 확장돼 추진돼야 할 것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은행권 역대급 이자이익의 불편한 이면

최근 몇 년간 국내 은행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2024년 기준, 국내 은행권 이자이익은 60조원에 육박한다. 은행권 이자이익은 전체 은행 이익의 90%를 넘는 수준이다. 은행이 이자이익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자이익은 은행의 상품경쟁력에 따라 수익이 창출되는 비이자수익과 본질적 측면에서 다르다. 예대금리차에 의해 결정되는 이자이익은 은행의 노력보다는 금융환경 및 정책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지난 2022년에 이미 59.2조원의 이자이익을 기록했다. 2022년초 1.00%이던 기준금리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연말 3.25%까지 빠르게 인상되며,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도 본격화되었다. 2021년 1.43%였던 순이자마진(NIM)이 2022년에는 1.73%까지 상승하며, 이자이익이 전년대비 무려 21.6%나 급증했다. 2023년 들어서는 기준금리가 3.5% 수준을 유지하며, 은행의 대출이익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크게 둔화되었지만, 전년보다 소폭 높아진 대출금리를 이용하여, 은행들은 2023년에도 역시 59.2조원의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더욱이, 2023년에는 연초에 기준금리가 한차례 소폭(0.25%p) 인상된 후 무려 1년 8개월동안 기준금리가 3.5%로 동결되었다. 2023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여 2023년초 4.25~4.50%이던 연방기금금리가 2023년말에는 5.25~5.50%까지 인상되었다. 하지만, 금통위는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도 포워드가이던스를 통해 기준금리의 동결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시사했다. 이는 결정적으로 대출수요가 급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분간 금리가 높아지고 전에 은행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가수요까지 겹치면서, 2023년 상반기부터 주택담보대출은 2024년 상반기에 걸쳐 급증했다. 동 기간중 증가율은 6.0%이며, 금액은 61.5조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동기(2022년 상반기~2023년 상반기)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율(1.4%) 대비 무려 4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급증한 주택담보대출 억제를 위한 금융당국의 강한 대출 규제가 2024년 상반기 중 시행되었다. 우선, 금융당국은 기존에 대출한도를 연 단위로 관리했으나, 월·분기별로 대출공급을 관리하며, 일부 은행의 대출한도가 조기 소진되는 '대출 절벽'현상도 나타났다. 이로인해 사실상 은행권의 가계대출 공급은 축소되었지만, 높아진 대출수요를 이용하여, 은행들은 수익 보존을 위해 대출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24년 8월부터 4개월 연속 은행권 평균 가계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가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강한 대출 공급 규제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었음에도 은행권은 대출금리 인상을 토대로 오히려 전년대비 증가한 59.3조원의 이자이익을 거두었다. 2025년 들어서도 은행권의 이자이익 창출 기조는 멈추지 않는다. 올해 1분기 이자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금통위의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2025년 1분기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년동기 대비 상승하면서 고점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은행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수요지수(19)는 전년동기(10)에 비해 크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3.5%수준이던 2024년 1분기의 기준금리가 최근 2.75%까지 낮아졌음에도 최근 은행권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오히려 전년동기대비 높은 편이다. 2025년 1분기의 은행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수준이 4.32%로 전년동기의 4.27%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올해에도 은행권은 최소한 지난해 59.3조원의 이자이익 이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에는 높아진 금리수준에 힘입어 대출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역대급 이자이익을 창출했다. 2023년부터는 기준금리 동결을 기회로 주택 구입을 염두에 둔 대출수요가 급증하며, 은행권은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두었다. 2024년에는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대출수요와 대출금리 인상을 통해 전년도 이자이익 이상의 역대급 실적을 창출했다. 올해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부동산 가격 상승, 대출 가수요 발생,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를 기반으로 이자이익 창출을 위한 호재가 펼쳐지고 있다. 아마도 올해도 지난 2022년~2024년 이상의 이자이익을 훨씬 넘어서는 역대급 이자이익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 창출은 반대로 많은 금융소비자의 이자비용 지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금융당국의 효과적이지 못한 대출 규제정책, 시장 예측력과 정책 전환의 한계점을 드러낸 통화정책의 문제점도 은행 이자이익 창출에 한몫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소비자 후생 제고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미 연준과 비교해서 시장 상황 대비 후행적 결정이 많고, 정책 전환 시점이 늦은 통화정책의 문제점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서지용

[EE칼럼] 슈뢰딩거의 석유: 줄어들까, 늘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1970년대 석유파동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인류가 느낀 석유 고갈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영화 시리즈를 통해 극적으로 시각화됐다. 1979년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석유 부족으로 문명이 붕괴하고 무법 세계가 된 미래를 그렸다. 이는 석유 생산이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는 '피크오일(Peak Oil)'론의 경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피크오일론은 1956년 미국 석유 지질학자 M. 킹 허버트(M. King Hubbert)가 미국 내 석유 생산이 1970년 무렵 정점을 찍을 것이라 예측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후 셰일 혁명으로 비전통 석유 생산이 급증하고,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하면서 기존 피크오일론은 사실상 폐기됐다. 오늘날 주목받는 것은 공급 한계가 아니라 수요 변화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탄소중립 정책 확산으로 석유 소비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면서, 석유 수요가 공급보다 먼저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른바 '수요 피크(Demand Peak)' 시대가 논의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IEA는 'Oil 2024'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 하루 약 1억 500만 배럴을 정점으로 이후 감소해, 2050년에는 최소 2,300만 배럴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OPEC은 World Oil Outlook을 통해, 인도·중국 등 비OECD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 증가가 지속돼 2050년에는 하루 1억 2,00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는 석유 수요 피크 시점을 늦출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보조금 축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목표(2035년)마저 규제 완화 압력에 직면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하며 기후정책이 후퇴하고, 화석연료 회귀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시장에서 에너지 전환이 지연된다면, IEA가 제시한 2030년 수요 피크 시점은 뒤로 밀릴 수 있다. 심지어 OPEC이 주장하듯 당분간 수요 정점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금 이 순간 '글로벌 석유 수요 피크'가 시작됐는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는지는 확정할 수 없는 상태다. 이는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제시한 사고 실험처럼, 관찰하기 전까지 고양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닮아 있다. 시간이 지나 구체적 데이터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석유 수요가 증가할지 감소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4년 장기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석유제품 소비는 2021년 1억 2,130만 TOE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에 들어섰다. 다만 감소 속도는 연평균 0.6%에 그쳐, 2035년에도 2020년 수준과 비슷한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이를 반영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훨씬 급격한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2035년 한국의 석유 수요는 2020년 대비 45.6% 감소, 사실상 반 토막 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석유 수요의 미래는 여전히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것은, 석유 수요 정점과 이후 감소가 단순한 예측 문제가 아니라 국가 투자 전략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산업에는 민간 투자가 위축되기 마련이고, 이는 에너지 안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석유비축계획은 수요 전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30 NDC가 가정한 급격한 수요 감소를 고려한다면, 이제 정부는 비축유 매각 여부와 그 속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2030 NDC는 실현 가능성 검토가 부족했으며, 감축 목표의 절반 이상이 수단 부족이나 현실성 결여로 이행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목표 자체의 과학적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된 만큼, 앞으로 발표될 2035년 NDC는 더욱 객관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 위에 설정되어야 한다. 특히, 석유 수요와 직결된 무공해차 보급 목표(850만~1,000만 대 수준)에 대해서는 실제 달성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목표는 시장 혼란만 초래하고, 국가 에너지 전략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경

[기자의 눈] 상품 팔기에 혈안된 금융사...건전한 질서는 어디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업계 1위로 도약하자고 외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듣기에 그리 편치 않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경제단위이고, 업계 1위 기업은 시장에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렇기에 CEO들이 1위 도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1등이 되지 못한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 고객 확보, 매출 증가 등에 난항을 겪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기업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CEO들의 1위 구호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상품 가입 전화, 대출 권유 문자 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어느 순간 유료서비스에 가입돼 있어 놀란 적이 한두 번인가. 혹시나 싶어, 혹시 대출 상환에 이상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어김없이 실망하곤 한다. 금융상품을 광고하거나, 대출을 권유하거나, 연회비가 더 높은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금융사 CEO들의 1등 구호는 그래서 불편하다. 기업들이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가급적 많이 판매하고, 수익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이 금융상품이 금융소비자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실적 압박을 받는 직원들은 진실은 감춘 채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유한다. 당장의 상품 판매가 아닌, 고객 신뢰 확보와 고객 편의를 위해 정진하는 CEO는 어떨까. 이 질문에 최근 만난 한 금융권 관계자는 “CEO도 결국 오너일가가 고용한 사람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단기적인 안목으로 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경영권 안정성 확보, 후계 구도 등 후일을 위해서라도 단기간에 빠르게 수익을 내는 CEO를 선호한다는 논리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들어 7차례에 걸쳐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소비자경보가 발령된 분야는 브리핑 영업 방식의 보험 상품 판매, 달러채권 투자, 공모주 청약 대행 등으로 다양하다. 몽골 G은행 발행채권에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연 11%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현혹하며 투자금을 편취하거나, 정부 산하 노인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공공단체로 가장해 어르신들의 자금을 편취하는 수법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품을 많이 판매하는 기업이 곧 최고기업이라는 인식은 이래서 위험하다. 지금의 상품 판매가, 당장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될지라도 소비자의 신뢰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들이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젊은 세대일수록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금융사 직원들이나 보험설계사들을 불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금융사 CEO와 오너일가가 외쳐야 하는 구호는 업계 1위가 아닌 고객 신뢰 1위, 고객 만족이 곧 회사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진실한 마음가짐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이자 이치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E칼럼] 에너지 효율 향상 의무화 강화가 필요하다

꿀벌과 벌새 우화가 있었다. 꿀벌은 꽃가루를 옮기면서 꿀을 만들고, 벌새는 꿀을 먹고 꽃의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꿀벌과 벌새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서로 협력하면 꽃이 번식하는 데 더욱 효율적이라는 교훈일 것이다. 서로 독립성을 지키면서 완벽한 공존을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꽃을 확산시키고 있으니 흔히 이야기하는 윈윈(win-win)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경제적 효율성이다. 노동의 효율성이다." 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효율성은 투입한 시간 에너지, 재료 비용 등에 비해 산출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한 능력이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자원의 효율성이 강조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고, 리튬이나 희귀금속은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으니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한 국가에게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급이 안정적이라고 흥청망청 쓰거나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 할지도 모른다. 흡사 소득이 적어도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온다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2018년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를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향상 의무화 제도(EERS)를 시범사업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의 감축실적을 보면 지역난방공사만 지속적인 에너지 효율 개선 성과를 보이고 가스공사는 계속 감소 추세이고, 한전은 롤러 코스트를 타고 있다. 이미 미국은 2004년도부터 동 제도를 도입하여 왔으며 30개주에서 '에너지 효율 자원 기준(EERS)'을 통해서 전력·가스 사업자에게 연간 1% 수준의 절감 목표를 부여하고 있다. 2030년까지 연간 1.15퍼센트의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데 우선 이익 공유제도로 비용보다 이익이 많으면 고객과 공유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목표량 보다 많이 절감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수수료 면제나 관리 사전 검토 성과 보상 제도도 있다. 물론 패널티도 있다. 주마다 다르지만 펜실베니아의 경우 에너지 절감 계획을 제출하지 않으면 10만 달러, 절감 목표 미달성시에는 1000만- 2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유럽 연합에서는 '에너지 효율 의무(EEO)' 제도와 '에너지효율 지침(EED)'을 통해 2030년까지 최소 11.7% 절감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자원 효율성을 달성하고 탄소중립에도 기여 하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과거 3년동안 에너지절감 의무량을 할당 받으며 성과에 따라 에너지인증서를 발급받아 거래할 수도 있다. 헌데 작금의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우선 언제나 불안한 해외 에너지 가격에 의존하는 한국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가? 2018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40%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노사간의 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노동의 생산성은 높일 수 있을 까? 쓰고 버리기만 하는 사회에서 자원의 순환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까? 답은 필자가 보기에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달성할 수 없다. 우선 에너지에서라도 공급정책과 수요정책이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교통, 건설, 농산물 정책도 수요과 공급이 조화로워야 문제가 없다. 그래서 균형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에너지 효율 의무화는 규제가 아니라 기업들의 생존을 도우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식은 제고되어야 하고 확산되어야 한다고 본다. 효율성을 부정하는 사회는 없다. 다만 효율성을 인정 안하는 사회가 문제다.

[이슈&인사이트] 관세로 흔들리는 미 달러의 위상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심지어는 달러 시대의 종말까지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후 3개월간 달러 인덱스는 -8.2% 하락했고 지난 주에만 -2.8% 떨어졌다. 지난 30년 동안 7번째로 큰 주간 하락률이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12개월 내에 유로화 대비 달러 가치가 대략 6% 전후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파이넌셜 타임즈(FT)는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트럼프 쇼크'에 대해 2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첫째는, 트럼프 쇼크로 인한 달러 약세가 얼마나 더 진행될 것인가? 둘째는, 미국 시장에서 외국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의 지배력이 얼마나 약화될 것인가다. 4월초 아시아에서 미국 국채 매도가 나오면서 금리가 뛰고 머니 마켓이 흔들리자 놀란 트럼프가 부랴부랴 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하고 나라별 1대 1 개별 협상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금융 시장의 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다. 관세 정책의 아킬레스건은 무역도 주식시장도 아닌 머니마켓과 외환시장이라는 게 드러났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르스텐 슬록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19조 달러의 미국 주식과 12조 달러의 미국 국채와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이 “고래들"의 31조 달러에 달하는 자산 투매가 나온다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다. 한 나라가 통화의 패권국이 된다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관세를 통해 무역수지 적자를 축소하고 미국 국채의 이자 비용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근본적 개념의 무지함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기축통화를 인정하는 것은 세계 각국이 기축통화국에 물건을 팔고 다시 그 나라의 통화에 투자하면서 그 지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기축 통화국의 적자는 발생하게 된다. 이게 트리핀 딜레마다. 만약 관세로 무역 장벽이 높아진다면 달러의 위상 또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달러를 발행해서 외국의 재화를 사다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종이 지폐를 발행해 손쉽게 물건을 사올 수 있기에 역사적으로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등 모든 패권 국가들의 제조업은 후퇴했었다. 하지만 관세론을 주장한 백악관 고문인 스티브 미란은 그의 연설에서 보듯이 “달러에 대한 높은 수요가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시켜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외환시장을 왜곡시켜 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과 근로자들은 지나친 부담을 져야만 했고 미국 제품과 노동력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관세 정책의 후퇴는 쉽지 않을 거다. 기축통화는 역사적으로 100년마다 바뀌었다. 그럼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얼마나 지속될까? 보통 국채에 대한 이자가 국방비를 넘어서는 순간이라고 얘기한다. 2024년 연방 정부의 순이자 비용이 8,817억 달러였는데요, 그해 국방 지출이 8,741억 달러였다. 그 분기점을 넘어섰다. 그럼 달러는 결국 기축통화 역할을 마감하는 걸까? 그럴 확률은 아직 낮다. 영국의 파운드가 수명을 다해갈 때 달러가 부상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달러 대안 통화가 부각되는 모습이 안 보인다. 시중에 거론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도 가상화폐도 아직은 달러를 대체할 수 없을 거다. 달러 종말론은 지난 수십년 동안 거래되는 단골 이슈였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달러는 대안을 만들어 살아 남았다. 달러의 몰락을 걱정하기 보다는 AI 산업에서 뒤쳐져 약해지는 원화의 위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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