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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간첩법 개정해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법적 안전망 구축해야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첩보요원 신상이 유출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상세한 개인정보와 부대원 현황이 담긴 극비 자료가 군무원을 통해 중국 국적 동포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일단 신분이 노출된 요원은 재파견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타국 내 정보원 등 협조자 신상도 줄줄이 노출될 수 있다. 수년간 정보 당국이 공을 들여 만든 정보망이 와해될 수 있다. 군에서 극소수밖에 접근이 안 되는 블랙요원 자료가 일개 군무원에게 유출된 것도 황당하지만,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군 검찰이 군무원을 구속하면서 군형법상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고 '기밀누설'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국가 기밀 정보를 적국에 넘길 때에만 간첩죄를 적용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며, 적국은 북한만 해당한다.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만 해도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으나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법원행정처가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별법 형태의 군사기밀보호법이 개정 논의되던 간첩법보다 법정형이 가벼운 점을 들어 법체계상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냈다. 또 우방국, 동맹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적국, 준적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일률적으로 높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임을 표명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간첩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법원행정처 논리는 우리 기밀을 탈취한 국가가 우방국이냐 비우방국이냐에 따라 간첩행위를 한 자의 처벌 수준도 달리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런데, 어느 국가를 위해 정보를 누설하든 간첩행위란 본질은 그대로인데 해당 국가와의 관계가 왜 고려 대상이 돼야 하는 지 의문이다. 결국, 간첩행위 처벌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간첩법)은 법원행정처와 민주당의 반대로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은 적국과 동맹국·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간첩죄의 대상을 외국 일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블랙 요원' 자료 유출 같은 일이 이들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간첩죄나 그 이상의 죄로 중형에 처할 것이다. 미 해군정보국(ONI) 분석관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이 주미대사관 무관에게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인 '로버트 김 사건'은 그 사례다.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 관계이며,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한국이 당사국인 사건이었지만, 미 연방법원은 간첩죄를 적용해 로버트 김에게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반(反)간첩법(방첩법)'을 개정하여 간첩 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처벌을 강화하였다. 법적으로 '비밀 자료'로 간주되지 않는 통계 수집이나 지도 저장, 국가기관 사진 촬영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중국 주재 대사관에서는 중국 여행시에 각별히 유념해달라는 공지를 올렸고, 중국에 여행가는 것도 꺼려진다는 말이 나왔다.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주호영 의원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해외 국가·개인·단체의 간첩행위에 대해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등 처벌 근거를 마련했다. 격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적국과 동맹국·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간첩죄의 대상을 외국 일반으로 규정하여 국익을 도모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법적 안전망을 하루 속히 만들어야 하며, 간첩법 개정에 여당은 물론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2024년 올림픽과 제22대 국회

# 대한민국의 총, 칼, 활이 파리를 휩쓸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50명을 출전시킨 이후 145명이라는 최소 규모 선수단으로 일군 성적이다. 4년 전 도쿄 올림픽에 232명을 파견시켰으니 60% 수준이다. 최약체로 꼽혔던 22개 종목의 선수단이 거두어들인 메달은 역대 최고다. 금메달의 대부분이 총, 칼, 활 종목에서 나왔다. 열대야에 지쳐 아침에 일어나면 단비와 같이 감동을 주는 메달 소식이 이어졌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 뒤에는 협회와 후원사의 미담이 숨어 있다. 선수 선발 과정이나 훈련은 물론 다양한 지원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과연 그 선수의 그 협회라는 생각에 그냥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궁협회(현대차)와 펜싱협회(SK네트웍스)가 대표적이다. 사격협회 회장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사표를 내면서 뒷말을 남겼지만 이번에 협회가 선수 선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꾸자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배드민턴협회나 축구협회는 국민 밉상으로 전락했다. 협회가 아무런 전문성 없이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 국회는 민의의 전당은커녕 말폭탄의 전장으로 전락했다. 총, 칼, 활보다 더 독한 말로 상대방을 마구 찌르고 베며 서로 어깃장을 부려서 되는 일이 없게 만드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2달이 넘도록 국회의원들이 한 것이라고는 탄핵 시도와 필리버스터 및 재의결 시도 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검사 탄핵에 더해 방통위원장 탄핵을 시도하느라 여야 사이 강대강 대치가 끊임없다. 채 해병 특검법을 포함해서 벌써 몇 개의 쟁점 법안이 필리버스터 끝에 표결로 통과되면 대통령은 재의요구를 해서 국회에서는 부결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사이 민생 법안은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그 누구 하나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주호영 국회 부의장이 이제 바보들의 행진을 그만하자고 한 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여론이 안 좋고 민생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인지 지난주에 드디어 양당의 정책위원회 의장, 원내 수석 부대표, 원내대표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말폭탄을 던지고 통보만 하던 사이에서 이제 여야 간에 의견 차이가 작은 민생 법안들을 골라서 먼저 통과시키자고 한단다. 이마저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이게 모두 국민의 눈에는 여론에 떠밀려서 억지 춘향격으로 하는 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몇 번 하다가 또 말폭탄 전쟁이 재개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더 이상 거창하나 현실성 없는 협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발 숨 쉬고 살 수만 있게 해달라는 게 국회에 거는 희망의 전부다.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 때나 코로나 때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7월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폐업 신고 사업자가 99만 명으로 2022년(87만 명)보다 13.7% 증가했다. 2006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 기록이다. 폐업 이후 이들은 실업자나 아예 비경제활동 인구가 되는데 이 역시 증가세다. 올 상반기 부도 건설사가 20곳인데 전년 대비 2배이다. 상반기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가 전년 대비 38.7% 늘었고 전문건설사 폐업 신고도 6% 늘었다. 악성 미분양도 계속 증가세다. 티몬과 위메프 대란으로 6만 이상의 영세업체가 줄도산 위기고 소비자 피해도 엄청나다. 국민은 국회에서 말폭탄 전쟁보다는 민생회복의 아이디어와 진정성 경쟁에서 금메달리스트들이 쏟아지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 양궁 대표들은 5개 금메달 전관왕으로 8월에 귀국했는데 이제 9월에 바로 202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계급장을 모두 떼고 동등하게 참가한단다. 올림픽 선수단 수는 대폭 줄었는데 성적은 역대급이다. 세비만 받고 시간만 축내는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일 때가 아닌가. 그 세비 아껴서 차라리 안세영 선수 치료비로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말폭탄 잘 쏘아대서 전투력 좋고 당대표나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하는 사람 말고 양궁 대표같이 정말 실력 있는 사람만 고르고 골라서 국회로 보내고 청와대로 보낼 방법을 궁리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국회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에 투철하고 서로 신뢰와 존중으로 똘똘 뭉친 양궁협회같이 거듭나느냐 아니면 국민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배드민턴협회가 되느냐 갈림길에 섰다. 이준한

[박원주 칼럼]산업정책의 역할과 기대

산업정책은 국가 안보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루스벨트 연구소의 토드 터커는 산업정책을 '투입 비용이나 산출물 가격의 변화 또는 다른 규제적 수단을 통해 유한한 자원을 하나의 섹터나 산업으로부터 다른 쪽으로 넘기는 모든 정부 정책'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산업정책은 국가 발전을 위해 정부가 차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이 바람직한가? 답하기 어렵다. 특정 산업에 혜택을 준다는 것은 그 범위밖의 다른 산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같다. 게임의 룰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산업정책은 기존 거래의 판을 깨는 행위에 해당한다. 특정국이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켜서 교역조건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므로 내가 가지는 만큼 남의 것이 줄어드는 Zero Sum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교육, 연구개발, 사회문제 해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각국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WTO, TRIPs 등 각종 국제 조약을 얼개로 각국의 차별적, 개입적 산업정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여년간 산업정책은 다들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안한 척 하는 것이었고, 상대국이 알게 되면 박 터지는 무역분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산업정책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도적 개입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 성공 사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 정부의 집요한 산업정책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정책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보통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주체를 '정부'에서 '공동체'로 완화해 준다면 조금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1년 9월 일제 총독부가 조선산업조사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우리 기업인들은 조선인을 위한 산업정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제국 방침에 맞추어 한반도에서는 산미 증식과 철도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동아일보가 이 조치를 '조선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물산장려운동이라는 공동체 차원의 경제자립운동이 벌어진다. 이 운동은 당시 한국인들을 대표할 정부가 없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산업정책의 본질을 그대로 담았다.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 단련하고, 조선인이 만든 상품을 애용해서 시장을 창출하며, 조선인의 경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 연구, 지도활동을 수행한다는 내용은 기술개발, 인력양성, 시장창출, 조사연구, 현장 애로지원 등 지금 우리의 정책과 흡사하다. 21세기 이후 세상의 물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을 선도했던 미국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를 필두로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미국 우선의 산업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철강, 알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기업 인수합병 규제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경쟁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법, IRA 등 공세적인 보조금으로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 외국의 첨단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이전의 반칙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일본도 다를 바 없다. 2017년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에서 보이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술 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EU 등 세계 각국들도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전 세계가 산업정책의 본격적 재림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선언 이후 지금까지 고금리,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 공급망 애로, 무역규제, 내수 위축 등 무수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장 미국 대선의 향배만으로도 환율과 이자율이 출렁거리고 있다. 각국의 거세진 압박으로 우리 아이들의 일터가 되어야 할 공장들이 남의 나라에 지어지고 있다. 과거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주적인 산업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되고 있지 않다면 100년전의 선배들 볼 낯이 없다. 물론 지금의 복합 위기는 과거 고도성장 초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젊고 근면하며 우수한 노동력,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 기술을 공여하고 시장을 열어주던 우방국들...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사회시스템은 경직되고, 노동시장은 갈등과 대치를 못 벗어나고 있으며, 국민들은 늙어가는 나라. 새로운 산업정책의 처방 또한 극히 복합적이어야 할 것이다. 외교, 국방, 재정, 금융, 노동, 복지, 세제, 중소기업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메타플랜이 아니라면 답도 없을 것 같다. “수출도 잘 되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보다는, 피부로 체감하는 위협과 다가올 시련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뼈를 깍는 대안과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통찰력과 진지함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원주

[신율의 정치 칼럼]이재명 전 대표가 한동훈 대표에게 줄 시사점

정책위 의장의 사임 문제로 국민의힘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결국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김상훈 의원이 신임 정책위 의장으로 결정됐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런 측면은 한동훈 대표의 당내 입지가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전 대표가 민주당을 어떻게 장악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전 대표는 과거 민주당의 철저한 비주류였다. 지금이야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 매우 가까운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필요' 때문이지, 두 사람이 원래부터 가까운 사이였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조국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지만, 이재명 전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를 받았을 정도의, 완전한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박해받는 비주류 인사가 민주당을 장악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당 외부의 강성 친명 지지층으로부터 나왔다. 즉, 당의 주류였던 친문 세력이 힘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강성 친명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재명 전 대표가 '전통적 방식'으로 당을 장악하려 했다면, 실패했을 확률이 90% 이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비주류가 당내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주류를 '전통적 방식'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주류가 흔들리기는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방식이란, 당내 의원들을 차곡차곡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세를 확장하고, 끝에 가서는 당을 장악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런 방식은 주류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됐을 때나 가능하다. 이재명 전 대표는 당 내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 외부로부터 내부에 진입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력과 정치 감각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을 한동훈 대표는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한 대표가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 이재명 전 대표가 당을 장악했던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과거 친문이 주류를 이루었던 민주당보다는, 주류인 친윤 세력의 당 장악력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 전 대표의 방식, 즉 당 외곽으로부터 내부로의 진입이 훨씬 용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처럼, 매우 충성도 강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한동훈 대표와 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다.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당 외곽에서 내부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한 대표의 경우처럼, 팬덤을 가지면, 외곽에서 당 내부로 장악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이미 당 지도부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친윤들이 한 대표를 어떤 식으로든 흔들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에, 한 대표가 당을 장악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 대표가 이재명 전 대표와 같이 당을 '1극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지는 대통령실과는 달리, 여론에 적극 호응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볼 때, 팬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팬덤이라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언급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한 대표는 팬덤을 이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위론적 주장일 뿐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동훈 체제가 어떻게 당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티몬·위메프 사태...전자금융업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

최근 우리 경제는 여전히 내수시장이 부진하다. 올해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는데, 주요 이유는 고물가에 따른 가계의 소비 억제와 관련 있다. 민간소비는 우리 경제성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요 부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간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만한 사건이 우리 경제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그것이다. 해당 업체는 전자상거래 업체로서 영세한 온라인 가맹점의 판매대금 수령을 위해 정산결제 업무를 지원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이하 결제대행업체, PG: Payment Gateway)이다. 결제대행업체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전자금융업자로 규정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급결제 시장은 중·저신용자의 신용거래를 가능케 한다는 명분으로 결제대행업체의 시장진입 문턱을 낮춰왔다. 혁신금융이라는 취지하에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은 결제대행업체는 선불전자지급수단인 상품권 발행에 규제를 받지 않았으며, 이를 자본조달의 수단으로 악용해왔다. 이른바 상품권 할인발행을 통한 자금횡령 사태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머지포인트 사태의 재판이 이번 티몬·위메프의 사태에서 벌어졌다. 비록, 결제대행업체에 대한 규제를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이미 마련되기는 했지만, 현재 시행이 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급결제시장은 신용에 기반한 질서 유지가 필요한데, 티몬·위메프와 같은 부실한 업체가 사업을 영위해왔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혁신금융 지원정책에 큰 허점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해 소비자와 소규모 영세상공인의 피해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품판매대금을 수취하지 못한 영세상공인에 대한 정부의 긴급경영안정자금만 대략 수천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더욱이, 여름 휴가시즌을 맞아 예약한 항공권이나 숙박이 취소되는 등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면서, 자칫 결제대금을 환불받지 못할 경우, 가계의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져 소비지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는 사실 티몬·위메프와 같은 업체가 너무 쉽게 지급결제시장에서 결제대행업체로 영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위메프는 202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있었고, 2022년 티몬의 현금 등 유동성 확보수준은 대략 8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과연 이렇게 부실한 업체가 어떻게 국내 지급결제시장의 한축을 담당하는 결제대행업체로 영업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국내 온라인 결제시장은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한 상품 구입·결제가 이루어지면, VAN(부가가치통신망, Value Added Network) 사업자를 거쳐 티몬·위메프에게 자금이 수취되고, 해당 자금은 쇼핑몰 입점업체에게 전달된다. 결제대행업체는 물건을 판매한 영세상공인의 판매대금을 수취하고, 지급해야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금융사업자임에도 부채비율 200% 이내란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시장진입이 가능하다. 즉, 인허가제보다 진입이 쉬운 등록제를 통해 결제대행업 영위가 가능하다. 더욱이, 등록된 결제대행업체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경우에도 등록증 반납을 요구할 제도적 여건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전자금융감독규정의 전자금융업자 경영지도기준 제63조에는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차감한 자기자본이 0을 초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사실상 최근 자본잠식으로 등록이 취소된 업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위와 같이 전자금융업자의 진입단계 및 진입후 영업단계에서 규제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더욱이, 대규모유통업법(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제8조에서는 상품판매대금의 지급기간을 40일 이내로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결제대행업체의 정산주기는 최대 60일이 넘는 데에도 이러한 정산주기를 규제할 규정을 찾기 어렵다. 또한, 해당 자금을 오랜 기간 보유하고, 관리의 방법도 불투명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도 찾기 어렵다. 결국,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는 민간소비 위축을 가져와 우리 경제성장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우려된다. 더욱이, 자영업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구조에서 영세소상공인에 대한 실적악화가 예상되고, 이를 위한 정책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필자는 향후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몇가지 대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결제대행업체가 발행하는 상품권 발행을 제한하는 제도마련이 필요하다. 결제대행업체가 소비자 대상으로 발행하는 상품권이 자금조달 수단으로 악용되었음에도 제재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둘째, 정산대금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서는 선불업자로 분류되는 결제대행업체가 해당 대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 또는 지급보증보험방식으로 관리토록 되어 있다. 가급적 50%가 아닌 전액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결제대행업체의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 현재 최소한의 부채비율을 통해 등록제로 사업진입이 가능한 점을 개선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자기자본·부채·유동성·건전성 비율 등의 충족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진입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검증되지 않은 전자금융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또한, 금융당국은 재무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자금융업자를 혁신금융사업자로 지정할 경우 자칫 초래될 국민경제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지용

[신연수 칼럼] 한동훈, 반윤(反尹)만으로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사가 대통령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뚜렷이 각인시켰다는 점이란다. 우리 국민은 군부 독재와 싸워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군인이 정치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를 겪으며 검찰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다는 점에서 반어(反語)적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못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국민의 한숨은 늘 30%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정 지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가 2년여 동안 보여준 좌충우돌 식 국정운영과 고집불통, 남에게는 정의와 공정을 들이댔던 대통령이 자기 식구는 한없이 싸고도는 상황이 낮은 지지도의 주요 원인이다. 여당에서 제1의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가장 아꼈던 측근이고,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함께 영광과 고난을 나누었던 동지다. 타협하지 않고 '법대로' 밀고 나가는 검찰 정권의 문제, 검사 경력이 거의 전부인 개인적인 한계를 한 대표 역시 고스란히 가질 수밖에 없다. ◇ 한동훈 앞에 놓인 딜레마 그런 한 대표가 보름 전 전당대회에서 '변화'를 외치며 당선됐다. 4명의 후보들 가운데 윤 대통령과 제일 잘 아는 사이면서도, 당정(黨政) 일치를 주장하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비윤(非尹), 때로는 반윤(反尹) 노선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리고 당심(黨心)과 민심에서 모두 62% 넘는 지지를 받으며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정부·여당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국힘 지지자들과 국민 여론이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다. 이번 선거기간에 불거진 두 가지 큰 사건, 김건희 여사의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읽씹'과 나경원 의원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 논란은 국힘의 강성 당원들과 친윤(親尹) 의원들을 경악하게 했다. 두 사건은 한 대표가 처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아무리 친해도, 설사 '우리 편'이어도 공(公)과 사(私), 불법과 합법은 구별하는 태도를 보여줬다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여야 모두 자기 진영만 챙기며 '내로남불' 하는 정치권에 질린 국민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변화의 방향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민심과 국민의 눈높이에 반응하는 것, 둘째 미래를 위해 더 유능해지는 것, 셋째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지지층만 바라보던 정부 여당의 실점(失點)을 만회하고,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다가올 지방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국힘이 이기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 민심이 움직이면 당심도 따라 방향은 잡았으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우선 그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와 채 해병 특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는 대표가 된 후 부쩍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말로만 민생을 찾을게 아니라 실제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의정(醫政) 충돌로 나날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 의료 시스템과 위메프 사태, 전세사기 피해 등 많은 민생 과제가 쌓여 있다. 혹여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으나 국민과 소통을 잘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미온적인 대책만 내놨다가는 국민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려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오세훈의 '약자와의 동행', 이재명의 '기본 사회'처럼,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있건 없건 한동훈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정책 브랜드가 필요하다.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한 대표의 과제로 당내 통합과 당내 지지기반 구축을 꼽는 다. 당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정점식 정책위의장 사퇴 논란에서 보듯이 여전히 저항 세력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 국회의원도 아닌 원외 당 대표로서 그가 의지할 곳은 국민 여론 밖에 없다. 이번 당 대표 선거가 보여줬듯이 민심이 움직이면 당심도 따라올 것이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이슈&인사이트] 중대재해처벌법은 정의로운 법인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주무부처도 답변하지 못한다.",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현장에서 아우성이다. 입법 취지를 들먹이며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더라도 형사법의 생명인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법을 정의로운 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해예방의 실효성도 없고 애꿎게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의를 참칭한 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과 절차로 제정된 결과이다. 더 큰 문제는 법의 모호성, 비현실성과 엄벌 공포에 기대어 자의적 법집행·해석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법이든 형벌권 남용은 그 자체가 악이고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이다. 이러한 폐해를 생각지 않는 것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경영책임자를 불법적 수단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폐해는 중소기업일수록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강한 처벌이 수반되는 형사법은 행정실무나 입법정책상의 필요만을 이유로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수범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특히 문제 있는 형사법은 가능한 한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악법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정비하기 전에라도 실체법적으로 법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거나 절차법적으로 엄격증명의 요구 등 절차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이러한 방향성을 갖지 못하면 법집행·해석기관은 실정법의 노예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악법에 부화뇌동하는 꼴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정비하거나 법치행정을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정부 때 제정됐지만, 현 정부는 야당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 국민을 상대로 그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통 보이지 않는다. 수사기관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 법을 즐기면서 무분별한 법집행·해석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 대신 정부는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생색내기용 미봉적 정책만 양산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부터 산재예방행정이 가성비가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됐지만, 현 정부는 전문성과 진정성의 부족으로 '고비용 저효과' 행정을 바로잡기는커녕 조장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를 형해화시키지를 않나, 안전관리자를 벽돌 찍듯이 단기 속성으로 배출하지를 않나, 정체불명의 공동 안전관리자를 통해 사업주의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의식을 약화시키지를 않나 그 아마추어리즘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인프라의 핵심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정부가 앞장서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조직이기주의를 앞세워 반대를 한다. 비대할 정도의 방대한 행정조직으로도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담당자였던 고용부의 본부 국장과 과장은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고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비상식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공직을 로펌에 줄 대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도덕불감증이 놀라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이 법을 '공무원 일자리 보장법'이라고 비아냥거리겠는가. 전문성과 진정성 밑천이 약할수록 엄벌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안전을 잘 모르거나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엄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문성과 진정성이 있어야만 올바른 산재예방정책이 가능하다. 보여주기가 엄벌만능정책으로 나타난다. 엄벌만능주의가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처벌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정교하고 실효적인 예방정책이 처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정진우

[이슈&인사이트] 뇌 구조가 이상하다?

'뇌 구조가 이상하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 위원장)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이 후보자의 '일본에 대한 태도 때문'이라며 취소할 생각이 없단다. 최 의원은 이 후보자가 일본 위안부가 강제적이냐라는 질문에 '논쟁적 사안'이라며 답변하지 않았고,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과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에 대해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송통신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일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 그것도 과거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동일시하는 질문이 과연 필요하고 타당한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과 스스로 위안부를 선택한 사람, 혹은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람 등이 혼재된 복잡한 이슈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우리가 반대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이를 충분히 물리칠 힘을 가지고 있다. 평화헌법의 폐기 문제는 이미 실질적 무장단계에 들어선 일본의 현실과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실익 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들을 국방부 장관도, 외교부 장관도 아닌 방송통신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그런 최 의원의 뇌 구조가 이상한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최민희 의원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3일째 인사청문회에서 탈북민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이 후보자에 대한 공세를 “면책특권을 남용한 심각한 인신공격·명예훼손·인민재판이 아닌가"라고 힐난하자 박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시다 보니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보이나"고 비판했다가 국민의힘의 항의에 사죄하기도 했다. 최 의원의 진행이 민주주의 원칙과 거리가 멀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참 이상하다. 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 의원은 지난 6월 25일, 성남 FC 사건 재판에서 검찰의 무더기 증인 신청을 “인민재판"이라 비난했는데, 최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이재명 의원은 전체주의 정당에 몸담고 있다 보니 민주주의 원칙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기왕에 뇌 구조 문제가 나왔으니 따져 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지도자로 평가했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믿었다. 심지어 지난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과 국제적 감각'이 있는 지도자로 평가했다. 그가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죽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짓밟는 인권 범죄자라는 사실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보수 인사들은 반대할지언정 그의 뇌 구조에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생각의 다양성과 그의 인터뷰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표현의 자유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김준혁 의원은 초대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가 '종군 위안부를 보내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 사람'이며 '미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 시키고 그랬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 의원의 주장은 이임하 성공회대 교수의 2004년 제14호에 게재된 논문에서 언급된 내용을 근거로 한다. 이 교수는 김활란이 미군장교 등 고위층을 위한 파티대행업을 했다는 주장과 모윤숙이 조직한 낙랑클럽의 활동을 기술했는데, 김 의원이 이를 성상납으로 오독(誤讀)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정청래, 박주민, 양문석, 김현 등 민주당 의원들의 망발이나 헌정사상 유례없는 평검사 탄핵, 그것도 이재명 의원 수사 검사를 줄줄이 탄핵하고 MBC 장악을 위해 방송개혁이라 왜곡하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추천해야 방통위가 5명 체제를 갖출 수 있는데 추천은 하지 않으면서 2명 체제의 방통위가 위법이라며 방통위원장을 줄줄이 탄핵하는 것도 정상적인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할 짓은 아닐 것이다. 뇌 구조가 이상하다는 것은 ×쳤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서로 입장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비난한다면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 수 없다. 설마 더불어민주당이 다른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 이재명 1인의 독재 정당이라고 다른 정당의 정치인이나 국무위원 후보자들까지도 모두 똑같은 뇌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홍성걸

[이슈&인사이트] 금융산업에서의 생성형 AI: 기회와 도전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3년이 세계가 생성형 AI(GenAI)를 주목한 해였다면, 2024년은 조직들이 이 기술을 사용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한 해가 될 것이다. 최신 맥킨지 글로벌 AI 서베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정기적으로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이는 10개월 전 33%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기업들은 마켓팅과 판매,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집중한 가운데 IT, 서비스 운영, 소프트 엔지니어링, HR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성형 AI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인적 자원 비용 절감 및 공급망 및 재고 관리에서 수익 증대 등의 실질적 이익을 나타낸다. 산업별로 기술, 에너지 및 재료, 미디어 산업이 AI도입에 적극적이며, 대부분의 산업이 예산의 5% 이상을 생성형 AI에 지출하고 있다. 금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금융기관들은 점진적으로 AI 기술을 그들의 운영에 통합해왔다. 2000년대 초,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처음으로 사기성 신용카드 거래를 탐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가 증가하면서 AI 응용 분야는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2010년대 중반에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 관리 부문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고, 최근에는 신용 평가, 리스크 관리, 알고리즘 거래, 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2023년 이후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금융 분야는 새로운 AI 활용의 패러다임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생성형 AI 이전에는 AI가 주로 대형 금융기관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이제는 개인화된 금융 상담, 복잡한 금융 문서 분석, 고급 자연어 기반 고객 상호작용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기술적으로, 생성형 AI는 비정형 데이터 처리와 자연어 이해 능력이 뛰어나 다양한 금융 업무에 활용된다. 또한, 데이터 과학자나 퀀트 분석가뿐만 아니라 일반 금융 전문가와 고객도 AI를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운영 효율성 향상과 리스크 관리에서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 고객경험 혁신, 의사결정 가속화 등으로 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금융에서 AI의 유망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도전 과제와 우려사항이 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AI 시스템들의 상호 연결성은 잠재적으로 위기 시에 충격을 증폭시켜 연쇄적인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적 리스크가 우려될 수 있다. 또한 생성형 AI 기반 시스템들이 “블랙박스"로 작동하여 그들이 어떻게 결정에 도달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투명성 부족은 금융 소비자들로 하여금 신뢰를 약화시키고 규제 기관에는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금융에서의 AI 사용을 감독할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엄청난 과제에 직면케 한다. 그리고 AI 시스템은 그들이 학습한 데이터에 의존하는 알고리듬의 편향성이 본질적으로 존재함에 따라 금융 데이터에 축적된 역사적 편향이 차별적인 대출 관행이나 투자 결정을 부추킬 수 있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 기관, 기술 기업, 규제 기관, 학계 간의 협력을 포함하는 다면적 접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금융에 AI를 통합하는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우려사항을 가진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과 금융 기관은 AI의 주요 채택자로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윤리적 책임도 지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혁신의 최전선에서 전통 기관에 도전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는 AI를 통해 정교한 투자 옵션을 얻을 수 있지만, 투명성과 시장 변동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부문 직원들은 AI로 인해 업무 변화와 일자리 대체에 대한 걱정이 크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금융 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성공적인 AI구현을 위해서는 리더십, 전략적 로드맵, 위험 관리, 인력 재구성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실행이 필수적이다. ㅍㅍ 우선 고위 리더십의 강력한 지원과 명확한 전략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 로드맵에는 우선순위 사용 사례 식별, 인재 및 기술 역량 개발, 유연한 운영 모델 유지가 포함된다. 또한 생성형 AI는 일상 작업을 자동화하고, 전문가의 품질과 전략적 통찰력을 향상시켜 회계 및 재무 보고를 혁신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프라이버시, 지적 재산권 침해, 출력의 부정확성 등 몇 가지 중요한 위험도 수반된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며, 거버넌스와 워크플로우 통합에는 도전이 따른다. 특히, 생성형 AI의 도입은 금융부문의 인력을 재구성하는 변화를 가져온다. 프롬프트 엔지니어와 모델 파인튜너 같은 새로운 인재 프로필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존 직원들은 기술 발전에 맞춰 지속적인 업스킬링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직무 축소에 대한 우려를 관리하고, 자동화가 생산성과 직원 경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투명성과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김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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