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전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올해가) 경제·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SK의 원년이 돼야 합니다." 지난 2018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신년사 중 일부이다. 당시 신년사가 주목받은 이유는 대기업 총수로서 유달리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여온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 경영'을 SK그룹의 핵심전략으로 공식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SK그룹은 경영 목표에 '사회적 가치 창출'을 담고 구체적인 실천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창하는 최 회장의 구상이 재계 안팎으로 선한 영향력으로 스며들고 있으며, 갈수록 이론과 실행에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 등을 공론화하면서 기업과 기업인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9일 열린 세계경제포럼 슈왑재단 총회에서 '사회적 가치 거래 방안'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선한 의지만 있다고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성과를 화폐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세제혜택 등 금전적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기업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거래 가능한 가치로 파악할 수 있다면 시장 시스템은 더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이윤 창출과 사회혁신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피력했다. 최태원표 '사회적 가치 거래'는 긍정적인 사회성과를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시급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장 메커니즘이다.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면 해당 성과를 화폐적으로 측정하고 일정 부분에 어떤 형태로든 크레딧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시스템이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자신이 직접 언급한 'SPC(Social Progress Credits)'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최 회장은 당시 SPC를 '사회문제 해결 성과에 기반한 금융지원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측정하고 현금 인센티브를 주는 '사회성과 인센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참여한 사회적 기업은 약 500개로, 이들 기업이 창출한 사회문제 해결 성과는 약 5000억원 규모다. SK그룹이 참여기업에 제공한 인센티브 규모도 700억원 가량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슈왑재단 총회 발언에 앞서 지난 4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지난 10년간 SPC는 개별기업이 만드는 사회적 성과에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큰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과 '집합적 영향력'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2개월 뒤의 '사회적 가치 거래' 제안을 예고했다. SPC 10주년 행사에서 최 회장은 “지난 10년간 SPC 기업들이 만든 성과를 보면 고용 효과는 2200억원쯤 되고, 이는 최저임금 기준 8903명의 근로자가 1년간 벌 수 있는 급여와 동일하다"며 “이들이 창출한 약 5000억원의 가치는 상암월드컵경기장과 고척 스카이돔을 짓고서도 1000억원이 남는 규모"라고 소개했다. 이같은 성과를 제시하면 자신감을 드러낸 최 회장은 “제2, 제3의 SPC 기업이 계속 등장하고 성장하면 사회문제 해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며 자신있게 예측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사회적 책임 경영론을 우리 사회의 미래세대 인재들에게 전파하고 확산하는 역할에 앞장 섰다. 지난 24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선발한 해외유학생 26명에게 장학증서 수여하고 격려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해 장학생들에게 “사회기여 인재가 돼야 한다"는 덕담을 남겼다. 특히, '우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소개하면서 “여러분이 음수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기억하고 사명과 책임감을 가지시길 바란다"는 인상깊은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SK그룹은 국내 기업 중 눈에 띄게 인재 육성과 학술 분야 투자에 적극적인 곳으로 꼽힌다. 그룹 산하 최종현학술원과 한국고등교육재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지난해 공익목적사업을 위해 사용한 사업수행비용은 총 251억7782만원이다. 이 중 60% 가량인 151억4965만원은 국제학술 분야에 쓰였다. 장학사업(82억6818만원)과 자료실운영(5억9634만원)에 쓴 돈도 상당했다. 1974년 설립된 한국고등교육재단의 경우 그간 해외유학장학제도, 대학특별장학제도 등을 통해 5000여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세계 유수 대학 박사도 1000여명 배출했다. 최 회장이 장학생들에게 '사회적 가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 재계 이목을 잡고 있는 배경이다. 최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ESG 시대' SK그룹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각종 국내외 기관의 ESG 경영 평가에서 SK그룹은 매번 최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최 회장은 2022년 “지금까지 ESG 이슈에 적당히 대응·수비하고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향이었다면 앞으로는 정면으로 돌파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각 계열사들은 사회적 가치 창출 금액을 수치화하며 다른 기업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2023년 기준 SK그룹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금액으로 16조8000억원에 이른다. 경제 간접 기여 성과 16조6000억원, 환경 성과 2조7000억원, 사회 성과 2조9000억원 등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최 회장의 생각은 구성원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최 회장은 지난 2020년 이후 기업의 최종 목적을 '이윤 극대화'에서 '구성원의 행복'으로 전환하려는 철학을 강조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행복토크'를 주재하며 소통을 강화해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봉사활동에도 열중하고 있다. SK그룹은 2003년 'SUNNY 대학생 자원봉사단', 2004년 'SK 봉사단'을 출범시켰다. 2010년부터는 사회적기업 육성을 위한 사업단도 만들었다. 금융 생태계 지원 펀드 조성 같은 다각적인 사회적 기업 육성 및 자생력 강화 활동을 추진하며 재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앞세워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고 있는 최 회장의 고민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 선대회장은 경영일선에 있을 당시부터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만 있지 않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을 강조해 왔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