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택시에 배달까지?…공정위에 ‘배민’ 인수 사전신청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가 국내 1위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 인수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을 신청했다. 공정위는 미국의 우버 테크놀로지스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의 주식 전부를 취득하는 방식의 기업결합 사전심사 신청서를 접수, 심사에 착수했다고 22일 밝혔다. 우버 테크놀로지스는 국내 차량공유 서비스로 '우버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우버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최대주주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 중이다. 공정위의 기업결합이 승인되면 택시 호출 서비스와 함께 국내 최대 플랫폼의 음식배달 서비스 등 2개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공정위는 사전심사 후 승인 또는 기각 결정을 하게 된다. 우버는 사전심사가 승인될 경우 공정위에 정식 심사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전심사는 기업결합을 계획한 회사가 기업결합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를 두고 신고 기간 이전에 공정위에 심사를 요청하는 제도다. 이번 기업결합은 우버의 택시 호출 플랫폼 사업과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 플랫폼 사업 간 혼합결합에 해당한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기업결합이 승인될 경우 우버는 모빌리티와 배달 서비스 간 교차 이용 확대, 가맹점 대상 광고·프로모션 서비스 확대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우버가 택시와 배달 서비스 데이터 결합, 통합 멤버십 서비스 등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묶으면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는 국내 택시 호출 시장과 배달앱 시장의 경쟁구조, 경쟁사업자의 사업 활동, 이용자·입점업체의 선택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닻 올린 이형일 부총리호, 출사표 “추석 물가 잡겠다”…대미투자·부동산 시험대

22일 취임한 이형일 신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첫 시험대로 추석을 앞둔 물가 안정이 될 전망이다. 이 부총리는 이날 별도 취임식 없이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그가 취임식 대신 출사표로 밝힌 최우선 과제도 물가와 민생 안정이었다. 이 부총리는 “물가 안정은 민생 경제의 기본이자 양극화 완화의 출발점"이라며 “모든 국민이 성장의 성과를 체감하실 수 있도록 더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이 부총리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그는 구윤철 전 부총리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두 번째 경제사령탑을 맡게 됐다. 중동전쟁에 따른 물가 불안과 대미투자, 부동산 세제 개편 등 엄중한 경제 상황을 고려, 취임식도 마다하고 현안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총리는 무엇보다 물가 안정과 민생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대응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 달러 이상 치솟았다. 추석을 앞두고 먹거리 가격도 들썩이며 8월 소비자물가는 3%대로 상승했다. 정부는 밥상 물가 안정을 위한 '추석 민생안정대책'으로 역대 최대인 1930억원 규모 농축수산물 할인 행사를 지원 중이다. 정부가 비축한 추석 성수품 공급량도 18만5000톤(t)으로 확대했다. 지난 1일 열린 국무회의 추석 민생안정대책 보고 때 그는 이 대통령의 “추석 물가 자신 있냐"는 질문에 “확실하게 잡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재경부 1차관에서 부총리 후보자 임명 후에도 그는 전통시장을 찾아 장바구니 물가와 소비 동향을 점검하는 현장 행보를 이어갔다. 한미 간 쟁점이 큰 대미투자도 이 부총리가 맞닥뜨린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 부총리는 이날 첫 일정으로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열린 대미투자 프로젝트 협상 비공개 보고에 참석했다. 정부는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로 223억달러 규모의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후속 사업으로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등이 진행될 전망이다. 다만, 투자 조건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은 여전한 상황이다.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당초 목표였던 9월 말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 양해각서(MOU) 서명 절차도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부동산 과세를 둘러싼 정부의 세제개편안 논란 역시 이 부총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그는 실거주자와 비거주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를 차등화하는 내용의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설계했다. 하지만, 1주택자 세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에 비거주 1주택 종부세 공제액을 기존 9억원에서 낮췄다 다시 12억원으로 수정했다. 정부안이 후퇴했다는 지적에 그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가 저하될 우려가 있는 점은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자는 “거주 중심으로 주택시장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은 확고한 방향성이 있는 원칙"이란 소신을 분명히 했다. 이 부총리는 경제 성장과 정책 대응을 위해 경제현안간담회도 신설할 예정이다. 이전 '녹실(綠室)회의'와 같은 성격의 간담회로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모여 경제 현안 관련 신속한 대응책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날 잠재성장률 향상과 함께 성장의 성과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대한민국이 마주한 경제 상황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국민에 대한 책임도 어제와 다르지 않다"며 “경제 성장은 숫자만으로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일과 성장의 온기가 국민 삶에 고르게 퍼지도록 하는 일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부연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대미투자 1호 텍사스 가스발전 확정…원전 8기·알래스카 LNG는 추가 논의

정부가 2000억달러 규모 대미 전략적 투자의 첫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총사업비는 223억달러로, 정부는 20년간 430억~450억달러를 회수할 수 있어 '상업적 합리성'을 갖춘 사업으로 판단했다. 다만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누가 얼마나 구매할지, 한국과 미국의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등이 아직 변수로 남아 있다. 미국 내 신규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은 아직 추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원전 사업의 경우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를 확보하고 의결권을 갖는 방안을 놓고 한·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비공개 보고에서 대미 투자 프로젝트 3건의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김 장관은 공개 발언에서 “오늘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인 사업관리위원회와 재경부 장관이 위원장인 운영위원회를 거쳐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사를 결정한 프로젝트를 1건 보고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구체적 추진 의사를 결정한 사업은 아니나 양국의 관심을 반영한 2건의 프로젝트에 대한 추진 계획을 보고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을 결정한 1호 사업은 텍사스 엔시날 지역에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전체 설비용량은 약 6.3~6.4GW 규모다. 최근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서 전력 수요가 늘어난 텍사스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사업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1.4GW 규모 가스터빈 발전소를 건설한 뒤 실제 전력 수요와 경제성을 점검하고, 이후 발전효율이 높은 4.9GW 규모 복합화력 설비를 증설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업성 검토 결과에 따르면 총사업비는 223억달러이며 20년간 예상 회수액은 432억9000만~454억300만달러 수준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상업적 합리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국회에서는 수익성을 뒷받침할 장치에 대한 검증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특히 장기 전력구매계약(PPA)과 실제 전력 수요를 문제로 들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재정경제위원회 전체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그러면 전기를 사야 하는데 누가 살 것이냐, 데이터센터는 만들게 돼 있느냐, 누가 만드느냐, 충분한 능력이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며 “국민적 부담을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그런 면에서 클리어하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도 정부가 상업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한 데 대해 “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른 어떤 변수가 있을지 우려 사항이 제기돼 상업적 합리성 부분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도 사후 검증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기형 민주당 재경위 간사는 “프로젝트는 지금 초기 단계니까 사후 단계가 필요하고 차분히 계속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이후 프로젝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판단에 대해서는 “상업적 합리성을 갖추지 않았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엄격히 심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분 구조도 협상 대상이다. 산자위 관계자에 따르면 텍사스 발전소 사업은 한국이 건설 자금을 100% 부담하는 방안을 전제로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 측은 초기 '5대 5' 지분을 요구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90%, 한국 10% 지분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대미 투자 1호 사업을 확정하면서 원전과 알래스카 LNG 사업의 후속 협상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추진 계획을 마련한 원전 사업은 미국 내 신규 원전 8기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6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2기는 한국형 원전 APR1400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한·미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확보 규모도 당초 거론됐던 20% 안팎에서 5~10% 수준으로 낮아졌다. 김 장관은 국회에 “미국과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확보를 목표로 협상 중"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지분 5~10%만 확보하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야당 소속 산자위 관계자는 비공개 보고 직후 “지분이 10% 이상 돼야 이사를 선임할 수 있고, 이사가 선임돼야 의결권을 갖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사는 선임 못해도 의결권은 갖는다고 장관이 명확히 밝혔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원전 8기와 알래스카 LNG 개발은 텍사스 발전소와 같은 단계까지 절차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김성원 산자위원장은 회의 후 “1호 사업에 대해서만 그렇게 (추진 결정을) 한 것"이라며 “나머지 2건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 집행 규모에 대한 정부의 선도 분명했다. 김 장관은 실제 투자 규모가 대미투자펀드 한도인 2000억달러를 넘어서는 경우 투자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정부의 접근 방식과 관련해 “정부는 그간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치열하게 미국과 협의해 왔다"며 “대미 투자가 단순한 자금 투입과 회수를 넘어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도록 국익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국회 보고에서 대미 투자 1호 사업에 대해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한미전략투자법은 상업적 합리성이 확보되지 않은 사업을 국가안보나 공급망 안정 등의 이유로 추진할 경우 미국과 협의를 시작하기 전 국회 관련 상임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편 한·미 간 대미 투자 협상과 관련한 양해각서(MOU) 체결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기형 의원은 향후 발표 일정에 대해 “여러 변수가 있고 단정적으로 얘기한다고 바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구체적인 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단독]세무사 업역 넓히려 댓글 공작까지…양천구 조례압박 나선 세무사회

한국세무사회가 민간위탁사무 검증을 세무사의 새로운 업무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온라인 댓글 작성을 독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양천구가 연간 5억원 이상 민간위탁사업비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자 세무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조세일보에 김선명 세무사회 부회장이 올린 ''감사'가 '검사'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두고 세무사회 청년이사가 회원들에게 댓글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메시지에 “민간위탁 결산검사와 관련하여 하반기 입법 전쟁이 시작되었다"며 “기고문은 차후 방향을 결정 할 수도 있는 중요한 기고문이니 상단에 부정적인 댓글에 싫어요 버튼이라도 눌러서 상단 노출을 없애는데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썼다. 특히 “댓글 참여 만으로도 양천구에 무언의 압박이 가능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정부는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회계감사(검증) 체계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 1억원 이상 국고보조금은 보조금법에 따라, 3억원 이상 지방보조금은 지방보조금법에 따라 회계검증을, 또한 양 법 모두 10억 원 이상에 대해서는 회계감사를 받도록 한다. 반면 같은 재원으로 노인복지 업무 등 민간기관에 위탁으로 운영하는 사업은 상위 법령에서 관련 규정을 명확히 정하고 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감독 방식을 정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뿐만 아니라 서울 자치구 중 12곳이 민간위탁 회계감사 근거를 두고 있다. 강남·중구·관악·도봉·동대문·서초·영등포·은평구 등 12개 자치구는 기초구의회의 조례로서 연간 5억~10억원 이상의 사업을 회계감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양천구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연간 위탁금액이 5억원 이상인 민간위탁사무에 대해 회계법인 또는 공인회계사의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조례안은 지난 11일 양천구의회 행정재경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세무사회의 조직적인 반발이 이어지면서 제2차 본회의에서는 안건 처리가 이뤄지지 못했고, 오는 23일에 다시 본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제2차 본회의에서 조례 발의자인 유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유 발언을 통해 “민간위탁사업의 공공성·투명성·구민 이익의 추구를 위한 의회의 입법 활동이 특정 전문직이나 단체의 이해관계의 논리로 좌절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세무사회가 양천구 조례 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민간위탁사업비 검증 업무를 세무사의 새로운 업무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구재이 세무사회 회장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인사·지역세무사회 모임·회직자 워크숍 등에서 여러 차례 민간위탁사업 검사 등 세출 검증분야에서 새 업역을 창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기고문을 작성한 김 부회장 역시 세무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단체 대화 채널에서 민간위탁사업 검증 업무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위탁 사업비를 비롯해 국고·지방보조금, 공동주택, 집합건물 등 세출 검증 분야로 세무사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며 “그 첫걸음이 민간위탁사업비 결산검사제도의 안착"이라고 했다. 다만 임원진들의 홍보와 선전에도 불구하고 세무사회 내부에서도 민간위탁사업비 사후검사 업무를 둘러싼 의견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김 부회장은 “민간위탁사업비 사후검증 관련해서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을 잘 알고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기장업무에만 머물러있다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세무사 업무영역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는 2021년에 세무사도 민간위탁사업비 결산검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 개정을 의결했고, 서울시장이 해당 조례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인회계사법상 회계감사는 공인회계사의 고유 업무이므로 세무사가 이를 수행하는 것은 법 위반"이라며 재의결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대법원은 오 시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민간위탁한 후 이를 관리·감독하는 업무는 '자치사무'"라며 “엄격한 회계에 의한 감사를 받게 할 것인지, 간이한 결산서 검사를 받게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지자체의 재량을 강조하는 판결에 취지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2024년 다시 엄격한 회계감사를 거치도록 하는 조례안을 의결했고 2025년 3월 민간위탁 회계감사를 원상 복원했다. 이에 세무사회가 당초 모 의원안은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며 비판을 이어가자 서울시의회에서는 지난해 해명자료를 내어 “대법원 판결은 모 의원안을 다룬 것이 아니어서 무효가 된 사실조차 없다. 대법원의 판결은 지방의회의 자주권을 보장해 준 것"이라며 “세무사회의 서울시의회에 대한 거듭된 거짓 주장이 도를 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시 외에 세무사가 결산검사 주체로 포함된 일부 지방·기초지자체에서도 조례 제·개정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왔다. 지난해 최초로 '간이한 결산서 검사제도'가 도입된 경주시의회에서는 세무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현직 의원이 세무사 추가 조례를 직접 발의해 '셀프입법' 문제가 불거졌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해당 조례안은 주요 사항 및 쟁점을 고의로 누락시켜 상임위를 통과했고, 본회의에서는 무기명 투표를 강행했다"며 “본회의 진행 도중에 세무사회 부회장이 직접 조례 통과 축하 현수막을 가져와 촬영을 했는데, 이는 조례안이 통과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올해 초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에서는 상임위에서 부결된 민간위탁사업 검사인에 세무사를 추가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한 의원이 본회의 당일에 예고없이 기습상정해 통과시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역시 주요 쟁점 누락 및 사실관계 왜곡이 발생해 현재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민간위탁사업은 지자체가 감독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연간 수억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검증인 만큼 사업 규모에 따라 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김 부회장은 “현재 회계감사라고 이름 붙인 검증도 실제로는 보고서 한 두 장으로 끝난다"면서 “실질에 맞지 않게 회계감사라는 명칭을 쓰고 검증보고서 형태로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무사회는 경쟁이 확대되면 사후검증의 품질도 높아진다고 본다. 세무사와 회계사의 업무수행 범위가 다른데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 보냐는 질문에 그는 “세무사도 회계 역량이 충분하다"며 “우리나라는 유독 회계감사라는 말이 들어가면 회계사만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건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회계사들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계감사는 명칭과 관계없이 회계정보를 검증해 의견을 표명하는 업무이므로 대상이 기업의 재무제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업비 집행 내역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것 역시 회계감사의 범주에 포함된다. 또 현행법상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는 법률상 부여된 전문 직무가 다르다. 세무사는 지출 검증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어, 세무사 업무에 지출 검증 업무를 추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도 국회 심사 후 지난해 9월 폐기된 바 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김천에 AI 반도체 ‘유리기판’생산공장 온다…JNTC 3470억 투자·430명 고용

경북도·김천시·JNTC 21일 투자협약 체결 2027~2030년 김천1산단에 TGV 생산공장 구축 AI·HPC 차세대 반도체 핵심소재…첨단산업 전환 신호탄 자동차·전자부품 중심 김천, AI·반도체 소재 생태계로 확장 김천=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김천에 인공지능(AI) 시대 차세대 반도체 핵심소재로 주목받는 'TGV 유리기판' 생산기지가 들어선다. 투자 규모는 3470억원, 신규 고용은 430여 명이다. 자동차·전자부품과 소재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김천의 제조업 지형이 AI·반도체 첨단소재 산업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김천시는 21일 오전 김천시청 강당에서 경상북도, ㈜제이앤티씨(JNTC)와 TGV 유리기판 생산공장 건립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JNTC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김천1일반산업단지에 약 3470억원을 투자해 TGV 유리기판 생산공장을 구축한다.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430여 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배낙호 김천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상욱 JNTC 회장을 비롯해 송언석 국회의원, 오세길 김천시의회 의장, 안용우 김천상공회의소 회장과 도·시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AI 반도체 성능 높이는 '유리기판'…김천서 생산 이번 투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TGV(Through Glass Via)' 기술이다. TGV 유리기판은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전기적 신호가 통하도록 하는 첨단 패키징용 기판이다. AI와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반도체의 연산능력과 데이터 처리량이 크게 늘어나자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성능 경쟁이 칩 자체의 미세화뿐 아니라 여러 반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패키징하느냐로 확대되면서 고성능 기판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JNTC는 이런 시장 변화에 맞춰 기존 커버글라스와 커넥터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AI·반도체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김천 공장이 그 생산거점 가운데 하나가 되는 셈이다. '3D 커버글라스' 기술 반도체로 확장 1996년 설립된 JNTC는 커넥터 사업을 시작으로 모바일과 차량용 커버글라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온 정밀소재·부품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3D 커버글라스를 개발했고 차량용 일체형 3D 커버글라스 등 고난도 유리 가공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회사는 기존 사업 과정에서 확보한 유리 가공과 레이저 정밀가공 기술, 대량 생산 노하우를 TGV 유리기판으로 옮기고 있다. 이번 김천 투자는 단순히 생산시설 하나를 추가하는 차원을 넘어 JNTC의 사업구조를 커버글라스·커넥터에서 AI·반도체 첨단소재로 넓히는 신사업 전환의 성격을 갖는다. 회사는 김천1일반산업단지에 우선 생산기반을 구축한 뒤 글로벌 AI·반도체 시장 성장과 수요에 맞춰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3470억원·430명…김천 산업지도 바뀌나 김천시에도 이번 투자의 의미는 작지 않다. 김천은 그동안 자동차부품과 전자부품, 소재 등 전통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키워왔다. 여기에 TGV 유리기판 생산시설이 들어오면서 AI·반도체와 연결되는 첨단소재 산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보할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3470억원 규모의 직접 투자는 생산시설 건설과 장비 도입을 넘어 협력업체와 관련 소재·부품 기업의 추가 유입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430여 명의 직접 고용도 지역경제에는 적지 않은 규모다. 김천시는 향후 TGV 유리기판을 중심으로 연관 기업이 집적될 경우 산업단지의 업종 고도화뿐 아니라 청년층이 선호하는 첨단 제조업 일자리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자동차·전자부품 제조 기반에 AI·반도체 소재 산업을 결합해 산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김천시의 과제다. 공장 건설·인허가부터 전력·용수까지 지원 관건은 투자협약을 실제 공장 가동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다. 김천시는 JNTC의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공장 입주와 건설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절차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대규모 첨단산업 시설 운영에 필수적인 전력과 용수, 폐수처리 등 기반시설 문제에도 경북도와 함께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기업이 생산시설을 조기에 구축하고 계획된 투자를 실행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와 산업 인프라를 동시에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배낙호 김천시장은 “TGV 유리기판 사업의 생산거점으로 김천을 선택한 JNTC의 투자가 계획대로 추진되고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경상북도와 함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앞으로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첨단기업을 적극 유치해 김천의 산업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상욱 JNTC 회장은 “이번 투자협약은 당사의 중장기 신성장동력인 TGV 유리기판 사업이 고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업화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며 “기술과 품질,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첨단소재 선도기업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김천 지역사회와도 상생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 도시' 넘어 AI 반도체 소재 거점 노린다 이번 투자의 성패는 3470억원이라는 투자금액 자체보다 김천에 새로운 첨단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 기판·소재 분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천에 TGV 유리기판 생산라인이 안착하고 연관 소재·장비·부품 기업까지 뒤따라 들어올 경우 지역 제조업의 체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김천이 기존 자동차·전자부품 생산도시를 넘어 AI·반도체 첨단소재 생산거점으로 산업지도를 넓히는 첫 시험대가 시작된 셈이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주병기 공정위원장, 쿠팡 소송 대응에 “굉장히 유감”…“현장조사 무력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쿠팡 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 관련 공정위 현장조사 취소 소송에 유감을 표했다. 최근 쿠팡은 할인 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한 의혹 관련 공정위 현장 조사를 거부하고, 직권 조사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주 위원장은 경쟁이 제한돼 왔던 방위산업 분야의 경우 신규기업 진입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는 올 하반기 먹거리와 생필품, 교육, 에너지 등 민생 분야 담합 조사와 제재도 지속한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의 석유류 가격 담합도 10월까지 조사를 완료, 심의 절차에 돌입하는 등 속도를 낼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주 위원장은 “공정위의 현장조사에 대해 행정처분,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잠정적, 실질적으로 공정위 조사가 무력화된 것은 굉장히 유감"이라며 “전자상거래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수십만 명 소상공인의 최소한 권익에 대한 보루를 무너뜨리는 행위여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쿠팡 대상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19~28일 현장 조사할 계획이었다. 이에 쿠팡은 현장 조사를 거부하고 직권 조사 취소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주 위원장은 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과 관련 허위자료 제출 의혹도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에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때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제출했지만 공정위 조사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자료가 있었다"며 “위법 사항을 신속히 확인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최근 미국 하원에서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관련 외국 공무원의 입국 제한 대응 관련 지속적인 법 집행 의지도 내비쳤다. 주 위원장은 “공정위가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필요하면 외교부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절차적 공정성을 지키면서 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법 집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 위원장은 방산물자 및 방산업체 지정제도로 소수의 지정업체가 특정 방산물자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하반기에 국가 안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경쟁에 제한돼 있던 방위산업 분야의 규제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며 “방산물자 시장에 신규기업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KAI)의 2대 주주가 되면서 독과점 우려가 나오자 공정위가 신규 사업자 진입을 통한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주 위원장은 “한화-KAI 사례의 경우 공공부문이 대주주"라며 “국내 다른 방산업체들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는 설탕, 밀가루 등 먹거리에 이어 하반기부터 교복, 석유 등 에너지 관련 민생 담합 근절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서민 생활과 물가에 직결된 정유사들의 석유류 가격담합 사건은 10월까지 조사를 마치고 심의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정위는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10월 조사를 완료한 뒤 결과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 그는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와 높은 수준의 광고료 관련 입점업체의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주 위원장은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수수료와 광고료가 과도한 것이 사실"이라며 “전체적인 부담이 현재 수준보다 내려가야 한다"며 “국회에 계류된 배달앱 관련 특별법안의 입법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구미시, 16조 투자 다음은 ‘시민의 삶’…골목·시장·농촌까지 바꾼다

김장호 시장 21일 민선 9기 생활혁신 구상 공개 공실률 71% 인동시장 주상복합 재개발 추진 구미역 광장 5459㎡로 확대…지하 130면 주차장 빈 점포엔 청년창업, 면 지역 학생엔 최대 2560만원 구미=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민선 8기 16조원이 넘는 투자 유치와 대형 국책사업으로 산업 성장의 판을 다시 짠 경북 구미시가 민선 9기에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구도심, 농촌까지 도시의 '생활판'을 바꾸는 데 나선다. 대기업과 첨단 산업을 끌어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시장과 골목, 역 앞 광장, 농촌학교까지 변화시켜 대규모 투자의 성과를 시민이 체감하는 도시 경쟁력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21일 구미 시청사 3층 대 회의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전통시장 재개발과 골목경제 활성화, 구미 역 열린 광장 조성, 면 지역 초등학교 활성화 등을 담은 민 선 9기 실행 구상을 밝혔다. 민 선 9기 출범 이후 20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와 투자 계획이 잇따르고 삼성SDS AI 데이터센터 착공, 대구·경북 신 공항 경제권과 연계한 동 구미 역 신설도 가시 화 하는 가운데 구미시는 경제혁신·정주혁신·공간혁신을 3대 축으로 도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 140개 점포 중 100곳 비었다…인동시장 '대수술' 첫 번째 변화의 무대는 쇠퇴한 전통 시장이다. 1988년 준공된 인동 시장은 전체 140개 점포 가운데 100개 가 비어 있다. 공실 률 만 71.4%다. 현재 영업 중인 40개 점포 가운데 37개도 노후·불량 건축물에 해당해 안전 문제와 상권 슬럼 화 우려가 이어져 왔다. 구미시는 더 이상 부분적인 시설 보수 만으로는 시장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인동 시장 부지를 주상 복합 형태로 재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강동 권의 중심 상권으로 기능을 재편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말까지 개발 방식과 사업 주체 등 세부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주민 설명회를 통해 토지 소유자와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2028년부터 기본·실시 설계 등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금오 공대 이전과 인구 유출 등으로 상권이 위축된 신 평 시장도 손 본다. 신평 상가와 대창 상가에는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외벽 도색과 바닥·간판 정비 등 시설 현대 화를 추진한다. 그린상가는 소유주가 주도하는 재건축을 행정적으로 지원한다. 새마을중앙시장 국수골목은 '국수 특화거리'로 다시 만든다. 현재 국유지 내 영업으로 시설 정비에 제약이 있는 만큼 구미시가 국유지를 매입한 뒤 상가를 신축해 기존 상인에게 임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평시장과 국수골목은 주민·상인 의견수렴을 거쳐 2028년 상반기 시설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텅 빈 점포를 창업공간으로…청년 불러들이는 구도심 구미역과 문화로, 금리단길, 원리단길 등 구도심에는 창업과 문화 콘텐츠를 집어넣는다. 온라인 소비 확대와 상권 이동으로 빈 점포가 늘어난 데 대응해 '구도심 리(RE):채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공실을 창업공간으로 전환하고 창업자에게 점포 환경 개선과 교육·컨설팅,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구미역 일원에는 민간 건물을 임차해 리모델링한 '기술창업공간'도 들어선다. 2028년부터 운영해 구미역 일대를 청년창업과 기술창업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골목 자체에도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든다. 정부 사업으로 확정된 '문화로 자율상권활성화사업'을 통해 거리 경관과 간판을 정비하고 공동 마케팅, 계절 별 축제, 대표 브랜드 개발을 추진한다. 현재 24곳인 골목 형 상점가는 50곳까지 늘린다. 지역에서 쓴 돈이 다시 지역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도록 '구미 세일 페스타'도 추진한다. 지역 내 소비금액의 일정 부분을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공공배달앱 '먹깨비'는 가맹점 8000곳, 회원 10만 명을 목표로 혜택을 확대한다. '우리동네 반값데이'와 '소담스퀘어 경북' 등 온·오프라인 판로 지원도 병행한다. ■ 골목경제 전담 '국 단위 조직' 만든다 행정 조직도 현장 중심으로 바꾼다. 구미시는 2개 과, 8개 팀으로 구성된 국 단위 조직인 '골목상권지원단'을 신설할 계획이다. 골목 경제와 로컬 성장, 전통 시장 활성화, 시장 시설 정비 등 소상공인과 골목 상권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상인과 현장 종사자가 직접 참여한다. 요식· 숙박, 소매·유통, 지역 업체, 창업, 농업 등 5개 분과의 현장 종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지역경기살리기위원회'를 10월 중 출범시켜 지역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 구미역 앞 1581㎡→5459㎡…도심의 '거실' 만든다 구미 역 앞 풍경도 크게 달라진다. 대경 선 개통으로 광역 교통 거점 기능이 강화된 구미 역 광장을 대폭 확대해 교통과 문화, 휴식이 결합된 도심 중심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구미역 광장 면적은 1581㎡다. 구미시는 인근 상가와 유 휴지 3878㎡를 추가 확보해 전체 광장 규모를 5459㎡로 넓힐 예정이다. 지금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지상에는 공연장과 시민 쉼터, 택시 승강장, 차량 회 차로 등을 배치하고 지하에는 130면 규모의 주차장을 조성한다. 단순히 역 앞 공간을 넓히는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구미역 열린광장'을 각종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문화로와 새마을중앙시장 등 주변 상권으로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역 이용객이 광장에 머물고, 다시 구도심 상권으로 이동하도록 사람의 동선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시는 올해 주민설명회와 기본구상·타당성 조사 용역을 마무리한 뒤 내년 도시계획시설 변경과 재정투자심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2028년부터 토지보상 등 후속 절차에 착수해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학생이 돌아와야 마을도 산다…농촌학교 살리기 저 출생과 고령화로 학생 수가 줄고 있는 농촌 면 지역은 '학교'를 중심으로 살린다. 대상은 무을·옥성·도개·해평·장천면이다. 구미시는 이들 면 지역에 주소를 두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최장 6년 간 학업 장려 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특히 다른 시·군에서 면 지역으로 전입 한 학생은 전입 축하 금과 학업 장려 금, 진학 축하 금 등을 합쳐 6년 동안 최대 2560만 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현금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구미 시의 설명이다. 학교 별 여건과 지역 자원을 활용한 특성 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원어민·AI 활용 외국어 교육과 문화·예술, 스포츠, 생태·환경 체험 등 도시 학교와 차별화된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자녀와 함께 면 지역으로 이주하는 가구에는 이사비와 주택수리비, 주거 임대료 지원 등을 연계해 초기 정착 부담을 낮춘다. 올해 하반기 세부계획과 지원 규모·방식을 확정하고 2027년 상반기부터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 '기업이 오는 도시'에서 '사람이 머무는 도시'로 구미의 도시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민 선 8기의 핵심이 반도체와 방산, AI 등 첨단 산업 투자 유치를 통해 산업 기반을 넓히는 것이었다면 민 선 9기는 규모 투자와 좋은 일자리 만으로 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다. 기업 유치가 도시의 외형을 키우는 일이라면 시장의 공 실을 줄이고, 구미 역 앞에 사람을 모으고, 농촌 학교에 학생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도시의 체온을 높이는 일이다. 민 선 9기 구미의 성패를 가를 지점도 여기에 있다. 수십 조 원 대 투자 유치 실적이 실제 골목 상권의 매출과 구도심 유동 인구, 농촌의 정 주 인구 증가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느냐 가 관건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좋은 일자리와 대규모 투자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우리 동네가 달라졌다', '살기 좋아졌다'고 느껴야 진정한 혁신"이라며 “전통 시장과 골목 경제, 구도심, 농촌까지 생활 속 불편을 하나 씩 해결하고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 민 선 9기를 완성해 구미를 대한민국 모범 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투기 잡겠다며 촌로 잡은 농지법…국회, ‘거래 절벽’ 알고도 눈감았다

8월 말 본격 시행된 개정 농지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회는 심사 과정에서 현장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도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지방자치단체장의 농지 강제처분 명령을 '재량'에서 '의무'로 전환했다. 하지만 정작 직격탄을 맞은 것은 고령화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해 농지를 임대해 주거나 은퇴 후 귀농을 준비하던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21일 본지가 개정 농지법의 입법 과정을 추적한 결과, 이번 사태를 낳은 처분명령 의무화 과정에는 더불어민주당 윤준병·어기구·임미애 의원의 행적이 고리로 얽혔다. 처분명령 의무화를 최초 발의하고 심사를 이끈 인물은 윤준병 의원이다. 윤 의원 등 10명은 지난 4월 3일 지자체장의 농지 처분명령을 재량행위에서 기속행위로 바꾸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후 윤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아 법안 심사를 직접 주재했고, 전체회의에 결과를 보고했다. 주목할 대목은 개정안의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임미애 의원의 소위 내 발언이다. 임 의원은 4월 14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서는 처분명령을 내려도 실제로 농지를 매수할 사람이 부족할 수 있다"며 현실적인 문제점을 제기했다. 처분 이후 매수자 부재와 임대차 혼란 등 농촌 현장의 우려가 심사 테이블에 명확히 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경고는 최종 법안의 제동 장치로 작동하지 못했다. 당시 농해수위원장이었던 어기구 의원은 윤 의원안을 비롯한 9건의 농지법 개정안을 하나의 '위원회 대안'으로 통합하는 전체회의 의사 진행을 주재했다. 상임위 차원에서 지역별 거래 여건과 처분 이후 매수자 문제를 보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심도 있는 안전장치 마련 없이 대안이 가결됐다. 법안 처리가 이토록 속도를 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통령이 올해 2월 국무회의에서 “귀농 비용을 줄이려면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며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강조하자 여권이 일사천리로 움직인 셈이다. 결국 농해수위 대안은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86명 중 찬성 163명(반대 1, 기권 2)으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더불어민주당(110명)과 조국혁신당(10명)은 물론, 국민의힘(37명) 의원들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농지 규제 강화라는 표면적 명분에 매몰돼 법안 발의자부터 상임위, 그리고 본회의에 참석한 여야 의원 전체가 촌로들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강제금 폭탄에 고령농·임차농 혼란 법 시행 이후 현장의 부담은 현실화되고 있다. 농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인 상황에서, 1년 내 처분하지 않을 경우 매년 농지 가액의 최고 25%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강제금을 피하려는 매물이 쏟아져도 매수세가 없어 가격은 하락하고, 갑작스레 땅을 돌려줘야 하는 임차농들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윤준병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괴담처럼 농지를 강제로 빼앗거나 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물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농지 조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전수조사는 조사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투기와 중대한 불법은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하되 농촌 현실에서 발생하는 관행적이고 경미한 위반은 정상화한다는 기본 원칙을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당정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방치하거나 타인에게 몰래 경작시키는 등 투기 행위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투기 목적이 아닌 불법 임대차에 대해서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 은행에 위탁하면 처분을 유예하기로 했다. 당정은 불법 전용 농지 양성화와 처분 유예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말까지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농지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농지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농지은행의 농지 매입 예산 증액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이슈&인사이트] 이상범죄가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2026년 6월 말 기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총 287만 4,278명이다. 그리고 2026년 외국인 방문객이 2,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외국인 방문객 및 체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치안 강국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다. 국가별 치안 지수(Safety Index) 비교에서 대한민국이 최상위권 수준이고, 특히 범죄율 지수 항목 중 '밤에 혼자 걸을 때 느끼는 안전함'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치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벌어진 여성 실종 사건으로 우리나라 경찰의 실종자 관리의 허술함이 드러났고, 지난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장윤기'로 인해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과 대책 마련 여론이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3년 서울 강북구 미아동 마트 살인, 2024년 전남 순천시 조례동 10대 여성 흉기 피습, 2023년 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등은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사건들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 즉 이상 동기 범죄(무차별 범죄)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체류 외국인도 길을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살인미수 또는 살인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부추긴다. 주요 범죄 사건만 언론 보도에 나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 범죄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 이상으로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필자는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는 이상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을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중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일반 시민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받은 성범죄자의 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웹을 통해 열람할 수 있고, 인근 주민에게 우편과 모바일로 고지하고 있다. 이는 범죄 예방 차원의 정보 제공이다. 그러나 일반 중범죄자의 경우 웹을 통한 신상정보 열람이나 인근 주민 대상 우편·모바일 고지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중범죄자는 무기를 쥐고 있을지 모르지만, 인근 주민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일반 시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앗아가고 있다. 범죄 가해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의 보장은 더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관계 당국은 이에 대한 예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둘째, 촘촘한 사회적 예방 및 위험군 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상 범죄 발생 확률이 높은 클라이언트(이상 범죄 시도자, 중증 정신 건강 장애인, 치매 노인들 등)가 지역사회 복지 시스템을 통해 전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하고, 경찰 체계와 사회복지 체계가 연계하여 위험군을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사례별로 상호 정보를 교류하고 필요한 서비스와 자원을 발굴·개발하여 클라이언트가 이상 범죄자로 발전하지 않도록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선량한 시민과 그 가족을 범죄 피해자로 전락시키는 국가 폭력이다. 셋째, 지능형 AI CCTV 및 감시망 확대가 필요하다. 각 지자체와 경찰청은 이상 동기 범죄 취약 지역(공공장소, 산책로, 상가 등)뿐만 아니라 중범죄자 거주 주변 장소에 AI 기반 이상 행동 감지 CCTV를 확충하고, 순찰 사각지대와 사각 시간대가 없도록 순찰 인력을 운영하여 이상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 사후 진압형 대처에만 급급한 경찰 행정을 지양하고, 중범죄자의 이상 징후가 지능형 AI CCTV에 포착되면 즉각 출동하여 이상 범죄를 막는 범죄예방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경찰청과 중수청 그리고 법원이 연계하여 이상 범죄 근절 TFT팀을 조속히 구성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치안 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EE칼럼] 한전 사장의 역할과 자질

2023년 9월 20일, 정치인 출신 김동철 전 의원은 제22대 한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비장한 취임사를 발표했다. 직전 해인 2022년 한전은 역대 최대인 32조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에도 적자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경영상황에서 '전력 비전문가'였던 그는 글로벌 무한경쟁과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며 KT와 포스코, 이탈리아 전력회사 ENEL을 소개했다. 독점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와 시장개방, 사업구조 개편을 거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회사들이다. 약 100일 뒤인 2024년 1월 2일, 김 사장은 신년사에서 또 이 세 회사를 한전의 롤 모델로 들었다. “ENEL처럼 완전히 달라지겠다, 공기업 틀을 벗어나겠다"는 발언이 민영화로 해석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즉각 “한전 민영화는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 사장 역시 사업 다각화와 해외시장 진출 사례를 소개했을 뿐이라고 물러섰다. ENEL은 과거 이탈리아의 국영 전력회사로서 시장을 독점했지만, 1999년 전력시장 개방 이후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세계적인 전력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한전의 변화를 말하면서 정작 변화의 핵심인 전력시장 구조와 한전의 역할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정부와 노동조합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개혁 동력도 약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요금이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전은 2021년 1월 모든 용도별 전기요금을 내린 이후 같은 해 10월부터 2024년까지 모두 여덟 차례 요금을 올렸다. 김 사장 취임 이후 두 번의 인상은 산업용에만 집중됐다. 2023년 11월과 2024년 10월이다. 한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계속 올라가면서 일부 대형 우량 수요자들은 한전을 떠나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기를 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고객 이탈'은 점점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한전에게 유리한 고객은 떠나고 나머지 고객의 부담은 더 커지는 구조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도 마찬가지다. 비수도권 요금을 낮추면서 그만큼 수도권 요금을 올리지 못하면 한전의 요금수입은 크게 줄어든다. 산업정책과 지역정책의 비용을 한전 전기요금에 얹는 방식이다. 전기요금의 정치요금화가 더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전기요금만이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메가트렌드로 세계 전력산업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력시장은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중심에 한전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과 간헐성, 변동성을 갖는다. 이를 늘리려면 발전량이 넘칠 때는 싸게 쓰고 부족할 때는 비싸게 쓰는 시간대별 가격신호가 필요하다. 저장장치와 수요반응, 분산자원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유연한 시장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고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는 틀에 묶여 있다. AI, IoT와 빅데이터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전력산업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 예측하고 수많은 분산자원을 연결하며 소비자가 가격에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수용되기 어렵다. 김동철 사장은 한전이나 전력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 전기에 관한 한 순백(純白)한 상태에서 사장에 취임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존 전력산업의 고정관념을 깰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두 번이나 ENEL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민영화'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을 때 물러설 것이 아니라 왜 ENEL이 변했는지, 세계 전력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산업용만 반복해서 올릴 것이 아니라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을 포함해 용도별 원가와 원가회수율을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이 오히려 전기요금의 정치화를 끊어냈어야 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이렇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김 사장이 전력산업 비전문가였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한전과 전력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자의 반응에 민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기 한전 사장 공모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정무 감각이나 정치권과의 관계가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전환, 전력시장 개혁을 이해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 한전을 ENEL처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면서도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장기적 목표를 설계하고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책과 실무에 정통한 전력 전문가가 한전 사장이 되어야 한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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