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쏘아올린 2%대 물가, 4월부터 더 오른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여파가 국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4월부터 물가 상승세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전쟁 장기화로 유가 변동성이 커질수록 물가 상승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기 종전이 되더라도 이미 오른 유가는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물가 상승세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3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2% 상승했다. 이 가운데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하며 전체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말 시작된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두바이유의 배럴당 월평균 가격은 2월 68.4달러에서 3월 128.5달러로 87.9% 급등했다. 상세 지표를 보면, 경유(17%), 등유(10.5%), 휘발유(8%) 등 주요 유종 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0.39%포인트 끌어올렸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였던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다만,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해 상한을 정하면서 국내 기름값의 오름세가 일부 억제된 것으로 분석이다. 그럼에도 이달부터 국제유가 급등 영향이 본격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처는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할증료 상향 조정으로 국제 항공료가 오르면 소비자 물가 전반을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주마다 조정되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지난달 27일부터 유종 가격이 210원씩 인상됐는데,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통상 국제 유가 변동은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정부 역시 국제유가 변동성이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지난 2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4월 이후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의 큰 폭 상승 영향으로 오름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물가 상승 압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주요국 파급효과' 보고서에서 중동전쟁이 끝나더라도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KIEP가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쟁이 조기에 종료될 경우 에너지 시설 피해 복구 지연으로 유가가 전쟁 이전보다 43% 높은 배럴당 90달러 가량 추산됐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전쟁이 장기화되면 세계 원유 생산량이 10% 감소해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86% 오른 배럴당 117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송하윤 KIEP 국제거시팀 부연구위원은 “수입 에너지 비용 증가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에너지 순수입국의 물가·경상수지에 상당한 압력을 야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국제기구들도 중동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려잡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7%로 0.9%p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4월 발표 예정인 세계 경제 전망에서 중동 전쟁과 고유가 국면을 반영해 물가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IMF는 “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세계 인플레이션율은 0.4% 상승한다"고 밝혔다. 댄 카츠 IMF 수석부총재는 지난달 20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나 “중동 사태 장기화로 인플레이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물가상승률 하향 조정을 시사했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에 대비, 공산품, 가공식품 등 생활 밀접 품목을 물가 특별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일일 가격을 조사할 계획이다. 송 연구위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유가 공급 차질이 생겼다는 뉴스 후 0.12%p 상승했다"며 “에너지 수입 가격 상승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경로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단독] 군납셔츠 만들다 ‘파산위기’…중소기업 울린 조달청 ‘관례’

군납셔츠(컴뱃셔츠)를 납품하던 영세 중소기업인 '캠프리본'이 조달청과의 분쟁으로 20억원 가까이 피해를 입고 폐업 위기에 몰렸다. 원단 검사 과정에서 검사기관 변경과 관련한 공문이나 계약서 변경이 없었음에도 공급 지연에 대한 책임을 업체에게만 묻고 있다는 것이 캠프리본의 주장이다. 소송을 피하기 위한 조정기구인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가 업체 손을 들어줬음에도 조달청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분쟁은 민사소송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군납셔츠 납품 절차상 업체는 사전에 검사기관으로부터 원단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으면 셔츠를 생산해 수요처인 육군 군수사령부에 납품하는 구조다. 총 계약금액을 낙찰받은 뒤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분할 납품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3일 에너지경제신문이 입수해 확인한 계약서에는 “시험성적서는 공인된 시험기관으로부터 발급된 것을 우선 적용하고, 공인된 시험기관의 시험이 불가한 경우 자체(제조회사) 시험성적서로 대체 할 수 있으며, 공인된 시험기관 시험이 불가한 것은 계약상대자가 입증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여기서 공인된 시험기관은 한국인정기구(KOLAS) 등록 시험기관을 말한다. KOLAS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산하 조직이다. 법령 및 국제표준화기구(ISO/IEC)에서 정한 국제기준에 따라 조직, 자원, 프로세스, 품질시스템의 공신력을 인정한다. 시험기관과 검사기관 등 적합성 평가기관을 국제기준으로 평가하는 만큼 KOLAS 인정을 받으면 국제기준과도 부합한다. 킴프리본은 해당 계약을 3차례에 걸쳐 수주했으며 1·2차분은 적기에 납품을 완료했다. 문제는 기관 간 업무이관에 따라 지난 2022년 6월분부터 검사기관이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조달품질원'으로 바뀌면서 불거졌다. 조달청은 품질인증검사를 KOTITI시험연구원, KATRI시험연구원, FITI시험연구원 세 곳 중 한 곳에 맡기는 것으로 조건을 변경했다. 업체는 계약조건에 없는 내용이라며 항의했다. 그러나 “업무상 관례"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품질인증검사 기관 변경과 관련한 공문도, 계약서 변경도 없었다. 이전까지 문제없이 납품해오던 원단이 불합격을 받자 업체는 이에 의문을 가지고 조달청이 제시한 나머지 두 기관을 포함한 KOLAS 등록 기관 네 곳에 시험의뢰를 했다. 결과는 모두 합격이었다. 캠프리본은 조달청에 재검사를 요구했지만 조달청은 원칙을 내세워 거절했다. 전체 원단으로 검사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였다. 업체는 잔존 원단이나 완성품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원단 성질은 동일하다고 반박했다. 과거에도 완성품을 대상으로 국방기술연구원 시험을 통과해 납품한 사례가 있는 만큼 갑작스러운 검사기관 이관 결과를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달청 규정에 따르면 일부 사항에서 불합격이 나왔을 경우 감액을 조건으로 납품을 신청할 수 있다. 이에 캠프리본은 육군 군수사에 감액납품 승인을 청원했다. 군수사는 “4개 검사기관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 업체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달청은 끝내 재검사를 수용하지 않았고 업체가 시험 방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사이 납품이 지연됐다. 조달청은 납품 지연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 보증금을 국고로 귀속시켰다. 동시에 조달청은 업체에 지체상금 7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캠프리본은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재검사 기회를 달라는 것과 지체상금을 감액 또는 면제해달라는 취지였다. 국가계약분쟁조정제도는 소송 전 단계에서 분쟁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해결하려는 대체적분쟁해결제도(ADR)다.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조정 성립시 재판상 화해 효력을 갖는다. 위원회는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 소속이다. 조달청은 모든 지체의 책임이 업체에 있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업체가 조달청 답변을 받지 못해 지체상금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조달청은 감액 검토 요청과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을 회신했다고 반박했다. 위원회는 캠프리본 손을 들어줬다.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른 결론이었다. 기획재정부는 “계약보증금의 국고 귀속은 계약의 불이행을, 지체상금은 계약의 지체이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계약 해지가 이뤄져 보증금을 이미 국가로 귀속했다면 지체상금을 별도로 부과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조달청은 이의를 제기했고 조정은 결렬됐다. 현재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업체는 이의제기 사유도 모른채 조정이 결렬돼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이의제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조달청 관계자는 “소송 진행 중인 사안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캠프리본은 지체상금과 받지 못한 납품대금 등을 합하면 20억원 가량 자금이 묶여 있다. 한때 70명을 고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수년이 걸려 민사소송에서 최종 승소한다고 해도 중소기업이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김병헌의 체인지] 호르무즈 위기와 트럼프 정치의 비용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를 상대로 정치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 유권자를 상대로 정치한다. 문제는 정치의 파장이 국경을 넘는다는 데 있다. 그 비용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가 나눠서 치른다는 대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일, 트럼프의 대 이란 발언은 그 본질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식의 경고를 했고, 동시에 호르무즈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관계 있는 나라들이 해결하라"고 출구 카드를 던졌다. 압박은 극단으로, 책임은 분산으로. 강하게 치고 빠지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을 시사하는 순간부터 세계는 즉각 반응했다. 유가는 요동치고, 해상 운임은 치솟으며, 금융시장은 불안정해졌다. 그 순간 세계경제는 이미 전쟁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이 장면은 지금 시대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전쟁은 더 이상 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 물류, 금융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충격으로 확산된다는 사실을. 더 중요한 대목은 이런 방식의 선택이 왜 반복되는가이다. 답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에 있다. 그는 외교를 관계가 아니라 거래로 본다. 동맹도, 분쟁도 결국 비용과 이익의 계산인 것이다. 복잡한 국제 질서는 그의 방식 안에서는 단순한 구조로 재편된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상대는 반응하고, 그 반응을 다시 협상으로 연결하는 공식이다. 여기에 쇼맨십이 결합된다. 우리는 관세 문제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 하나, 이미지 하나가 곧 정치다. 다만 모든 메시지는 미국 국민을 향한다. 국제 무대는 미국 내 정치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 과정이 웬지 낯설지 않아 보인다. 대문호 헤밍웨이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이 떠오른다. 늙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물고기를 놓지 않으며 끝까지 버틴다. 트럼프 역시 그렇다. 밀어붙이고, 버티고, 물러서지 않는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노인의 싸움은 인간 존엄을 위한 것이었고,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가 있었다. 반면 트럼프의 싸움은 철저하게 자기 이익과 연관된 결과가 중심이다. 그 결과는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충격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세계는 점점 트럼프 주연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호평을 받은 미국 기업드라마 석셰션(Succession)이 많은 부분 오버랩 된다. 권력은 거래로 움직이고, 동맹은 언제든 깨진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지만 지금 세계의 상황처럼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다. 중국은 조용히 계산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이란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판을 흔들려한다. 한국은 중심은 아니지만 빠지면 안 되는 위치, 단지 트럼프에 '중요한 나라'이기만 한 셈이다. 동시에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나라다. 실제 그 충격은 한국에 가장 먼저 도달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소나기가 아닌 폭풍우로 지금은 전시상황"이라는 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유가 상승은 곧바로 물가와 산업 비용으로 이어진다. 해상 물류가 흔들리고 수출이 영향을 받는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환율과 자본 흐름을 자극한다. 한국에서 이 세 가지 축이 동시에 흔들린 적이 있었나? 지금 한국이 그렇다. 전쟁은 중동에서 벌어지지만 경제적 후폭풍은 우리 국민의 일상으로 무섭게 스며들고 있다. 한술더 떠 트럼프의 출구 전략마저 큰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호르무즈는 이해관계 국가가 해결하라"는 발언은 '나는 몰라'라는 책임의 외주화다. 압박을 통해 멋대로 판을 흔들고, 이후의 안정은 다른 국가에 맡기는 구조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에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질서를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규칙이 아니라 힘이 기준이 되는 순간, 누구도 예측 가능한 환경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답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안보 축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애매한 위치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동시에 에너지와 금융 방어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략 비축, 공급선 다변화, 시장 안정 장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진짜 해법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중요한 나라'에 머물러서만은 안 된다. '대체 불가능한 나라'로 가야 한다.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과 같은 산업이 출발점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외부 충격 속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동시에 시장도 재배치해야 한다. 단순한 다변화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이다.지금도 실감하고 있듯이 우리는 무엇보다 에너지가 중요하다.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에서, 비싸더라도 끊기지 않는 에너지로… 앞으로의 생존 기준이다. 에너지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안보다. 지금 세계는 한 개인의 정치 스타일이 얼마나 큰 파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선택은 미국 내부 정치에서 출발했지만, 여파는 세계 경제를 흔들고 한국의 현실을 무섭게 압박한다. 이 흐름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략은 더욱 단순해진다. 줄타기가 아니다. 눈치 보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빼면 게임이 돌아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는 최상의 생존 방식이 될 것이다.

위기경보 ‘경계’…정부, ‘비축유 맞교환’에 ‘생활필수품 생산’ 명령도

2일 자원안보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되면서 정부는 정유사에 비축유를 먼저 제공하고 나중에 돌려받는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를 시행한다. 비닐 등 생활필수품 부족에 대비해 제조 기업에 품목 생산 명령도 내릴 방침이다. 정부는 미국산 원유를 포함한 대체 물량 확보를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4월 대체 물량이 현재 5000만 배럴 내외로 판단된다"며 “5월 물량도 변동은 있지만 상당한 물량이 확보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축유 스와프로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원유에 대한 자원안보 위기경보가 '경계'로 격상된 것은 지난 18일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된 지 불과 2주 만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봉쇄될 위험이 커지면서 원유 도입에 비상이 걸린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 유가 상승 여파로 국내 기름값이 치솟고, 나프타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산업현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 자원안보 위기 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총 4단계다.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제23조에 따라 위기 상황의 심각성, 국민 생활 및 국가 경제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령한다. 산업부는 위기경보 격상의 주요 배경에 대해 “지난달 초 호르무즈 해협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유조선이 지난달 20일 국내에 들어온 뒤로, 열흘 넘게 호르무즈발 원유 도입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지역에 발이 묶인 국내 초대형 원유운반선은 7척, 총 1400만배럴 규모로 파악됐다. 국제 원유 시장에서도 조달 차질이 발생하고, 국내 원유 재고가 20% 이상 감소하면서 산업 전반에 영향이 가사회되기 시작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여기에 친이란 무장세력 예멘 후티 반군의 참전 선언으로 홍해도 봉쇄될 위험에 놓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후 원유 대체 수송로였던 홍해가 막히면 유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현지 원유 생산·수송시설에 대한 공격이 지속되면서 국제유가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4~5월 두 달간 '비축유 스와프'를 운영해 원유 수급을 관리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정유사가 확보한 대체 도입 물량을 전제로 정부가 비축유를 먼저 공급하고, 이후 해당 물량이 국내에 도착하면 이를 상환받는 방식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업계의 도입 차질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또 해외 공관과 코트라 무역관 등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대체 물량도 확보하기로 했다. 한국석유공사의 해외 생산분도 본격 도입한다. 특히 미국산 원유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 실장은 “정부 비축유 중 중동산 비중이 높지만 2000만 배럴 이상 확보돼 있어 6월까지 비축유 방출을 포함한 원유 수급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기업들이 얼마나 대체 물량을 확보하느냐, 중동 사태가 언제 정리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비닐봉투·수액제 포장재 등 생활필수품과 보건·의료제품의 공급 차질도 막기 위해 민간 기업에 필수품 생산 명령도 내릴 방침이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천재지변, 긴급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로 물가 급등, 공급 부족 등의 현상이 나타날 때 정부가 민간 기업에 물품 생산을 명령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때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필수품 생산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원유와 함께 수급 차질을 빚고 있는 나프타와 석유제품에 대한 공급망 관리도 강화된다.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에 대한 매점매석 금지,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27일 나프타를 수출 제한 품목으로 지정한 뒤 기업의 생산과 도입, 판매, 재고 등 모든 사항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정부는 고위급 등의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원유·나프타 대체 수입선 발굴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인도 상공부 장관을 만나 나프타 수입 긴급 확대를 요청했다. 대체 공급선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등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을 받지 않는 중동 국가를 비롯해 미국, 카자흐스탄, 그리스, 알제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 영향이 6월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미국산 원유 도입을 포함해 다양한 에너지 대체 물량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제과점인가 카페인가… 가업상속공제 둘러싼 업종 판정 전쟁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온 창업 세대의 고령화로, 안정적인 가업승계는 중소·중견 기업 창업주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가업승계'란 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상속이나 증여를 통하여 그 기업의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승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업승계 지원제도에는 가업상속공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창업주의 사망 시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10년 이상은 300억 원, 20년 이상은 400억 원, 30년 이상은 600억 원 한도로 공제해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3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으로 가업상속 재산만 700억 원이며, 상속인은 자녀 1명이고 가업상속공제와 일괄공제만 있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아니면 납부할 상속세는 332억 원으로 상속재산의 절반에 달하지만, 가업상속공제 600억 원을 모두 공제받는다면 상속세는 41억 원으로 상속재산의 5%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생전에는 가업승계 자녀에게 600억 원을 한도로 10억 원 공제 후, 120억 원까지는 10%, 120억 원 초과분은 20%의 증여세율을 적용하는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 제도가 있다. 주식 증여재산 가액이 70억 원이면 일반적인 증여 세액은 29억 원이지만, 특례 적용 대상인 경우 증여세 6억 원만 내고 상속인끼리 생전에 다툼 없이 주식을 증여받아 안정적으로 가업승계를 할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은 대부분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사회 복지, 서비스업, 광업 등이 해당한다. 그중 음식점 및 주점업 내 음식점업에 해당하는 제과점인 대형 베이커리를 차려 놓고, 실제로는 음료점업에 해당하는 커피전문점인 카페를 운영하며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업종 기준 허점을 노린 수도권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 대하여 국세청은 3월부터 전수 확인 조사에 들어갔다.이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악용하여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을 세금 없이 물려주려는 소위 '꼼수 상속'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해당 업종으로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사업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가장 큰 쟁점은 해당 사업장이 '제과점'인가 '커피 전문점'인가 하는 것이다. 세법상 음식점업에 속하는 제과점업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이지만, 음식점업이 아닌 비알코올 음료점 커피전문점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많은 자산가가 이를 악용해 실제로는 커피 판매가 주력임에도 사업자등록만 제과점으로 해두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제과 시설 없이 케이크 완제품만 매입하거나, 음료 원재료 매입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경우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또한 커피의 마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구매액 비중이 비슷하더라도 매출액 비중에서 음료가 월등히 높다면 이는 제과점이 아닌 카페로 간주해 공제 혜택이 부인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자는 실제 제조 공정과 매출 구성을 자세히 따져 '주된 사업'의 실질을 입증해야 한다. 두 번째 검증 포인트는 가업상속 재산에 포함되는 '사업용 자산'의 범위다. 교외형 베이커리 카페는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데, 이 부지 내에 사업주 일가가 거주하는 전원주택이 포함된 경우가 빈번해 주의가 필요하다. 가업상속공제의 핵심 요건 중 하나는 피상속인(부모)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다른 사업을 영위하거나 은퇴한 70~80대 고령의 부모를 바지 사장(명의상 대표)으로 앉히고, 실제로는 자녀가 운영하는지를 현장 검증한다. 국세청은 대형 베이커리 카페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가업상속공제가 편법 상속·증여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공제 요건에 대한 사전·사후 검증을 강화하고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 대한 가업상속공제 신청 시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혐의점은 더욱 면밀히 살피고, 공제를 적용한 이후에는 업종 및 고용 유지, 자산 처분 제한 등의 사후관리 요건 이행 여부를 철저히 검증할 예정이다. 또한 실태조사 과정에서 창업 자금 증여, 자금 출처 부족 등 탈세 혐의가 확인될 때는 엄정하게 세무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가업승계를 준비 중이라면 '절세 혜택'뿐만 아니라 ①업종의 실질(제조 여부) ②자산의 업무 연관성 ③경영의 진정성이라는 3대 요건을 유지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제 '형식'만 갖춘 절세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실질'을 갖춘 진정한 가업승계만이 국세청의 현미경 검증을 통과할 수 있다. ekn@ekn.kr

정부, 원유 위기경보 ‘경계’ 격상…천연가스 ‘주의’

정부가 2일 자정부터 원유에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한다. 천연가스에 대한 위기경보도 '관심'에서 '주의'로 올라간다. 산업통상부는 1일 김정관 장관 주재로 '제5차 자원안보협의회'를 열어 자원안보 위기경보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의 4단계로 운용된다.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제23조에 따라 위기 상황의 심각성, 국민생활 및 국가경제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령한다. 정부가 위기경보를 3단계로 격상한 데는 중동전쟁 장기화로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수준을 넘어 국제 석유 시장에서 석유 조달에 일부 차질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원유 재고가 20% 이상 감소하는 등 실제 경제·산업에 영향에 주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앞서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지속 등 수급 여건 악화로 지난달 18일 '주의'로 격상했다. 천연가스도 지난달 5일 '관심' 단계로 발령됐다. 위기경보가 3단계인 경계로 격상되면서 정부는 석유, 나프타 등 수급 관리 조치를 강화한다. 원유의 경우, 해외 공관 상무관과 코트라 무역관 등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하지 않는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다. 한국석유공사의 해외 생산분도 본격 도입한다. 기업이 중동산 원유 대체 물량을 확보하면 비축유로 바꿔주는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도 시행한다. 석유화학의 기본 원료인 나프타는 매점매석 금지와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을 추진한다. 대체 수입에 따른 수입단가 차액 지원을 추경안에 반영하는 등 해외 물량 도입도 지원한다. 석유화학 제품도 필수재 생산 차질이 없도록 수급 점검과 공급망 관리를 강화한다. 천연가스는 지난달 5일 카타르의 '불가항력 선언'(Force Majeure) 직후 발 빠르게 현물구매, 해외자원개발 물량 등 대체 물량을 확보해 연말까지 수급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동아시아산 천연가스의 국제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전력 및 난방 요금에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적극적 수요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천연가스에 대해서도 위기경보를 격상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19일’ 역대 최단 추경 편성…직접 지원금 ‘돈풀기’ 물가 자극하나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26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신속히 편성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금성 민생지원금이 5조원에 달하는 등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추경발 물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일 정부에 따르면, 26조2000억원 규모의 이른바 '전쟁 추경안'은 단 19일 만에 마련됐다. 통상 40일 걸리던 기존 추경 편성 기간과 비교하면 역대 최단 수준이다. 정부는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부담에 선제 대응하고, 경기 회복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신속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세부 사업을 보면 고유가 피해지원금,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 등 고유가 대응에 총 10조1000억원이 배정됐다. 이 가운데 4조8000억원은 고유가 피해지원금 형태의 직접 현금 지원으로 편성돼 전체 추경의 18%를 차지한다. 단일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다. 지원 대상은 소득 하위 70% 국민으로, 1인당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60만원까지 지급한다. 특히 지방 거주자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구조다. 당초 취약계층 중심의 '핀셋 지원'이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중산층까지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및 경기 둔화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원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쉬었음' 청년 등 일자리 사업에 1조9000억원, 숙박, 공연 등 문화·관광업계 지원에도 1000억원이 추가로 배정됐다.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 설치 250억원,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800억원도 각각 편성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쟁 추경이라 하지만 사실상 경기 부양 목적의 소위 돈 풀기 성격이 강해 '중동전쟁과 무관한 사업들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기본적으로 경기 전체가 침체될 수 있는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추경을 통해 0.2%포인트(p)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원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마련됐다는 점을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초과세수 25조2000억원과 기금 자체재원 1조원 등을 활용해 충당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법인세·증권거래세 등 초과세수로만 편성했고, 우리 경제의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친다는 점을 들어 추경 편성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를 일축했다. 조 실장은 “추경 재원을 초과세수로 국채 발행 없이 마련했다는 점, 취약계층을 타킷 지원하는 점까지 포함한다면 물가 자극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추경으로 대규모 현금성 지원이 이뤄질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재정 확장 기조에 따라 추경은 예상됐지만, 직접 지원 등으로 규모가 커져 기름값, 먹거리 가격 등 체감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며 “고유가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까지 상승하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높아지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단순히 취약계층 지원을 넘어 사실상 경기 부양 성격이 강한 추경"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재정을 풀면 단기적 효과는 볼 수 있겠지만,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이슈&인사이트] 중동 사태와 우리나라의 대응방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반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란은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과 드론 등을 동원하여 중동 지역 내 미군기지와 이스라엘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걸프 국가의 석유 및 가스 시설, 심지어 식수원인 담수화 시설까지 타격하였다. 중동 사태가 악화하면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게 되었다. 우선 안정적인 원유 수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전체 원유 수입 중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70%를 상회하며, 그중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비중이 65%에 달한다. 원유 수송이 어려워지면서 국제유가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으며 심지어 150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또한 카타르는 가스관이 이란의 공격을 받아 LNG 공급을 정상화하는데 최대 5년이 걸릴 전망이며 불가항력을 선언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카타르에서 14%의 LNG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그만큼 현물 구매 부담 커질 전망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였고 유류세 인하를 검토 중에 있다. 유류세 인하는 결국 정부의 세수입을 감소시키고 전기, 가스 요금 동결은 한전,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 부채를 증가시키게 된다. 또한 원유나 가스 외에도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헬륨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카타르산 헬륨 수입 비중은 65% 정도인데, 장기간 수입이 어려워지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삼성전자가 헬륨 재사용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 외에 요소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과거 중국이 요소 수출을 통제하여 운송용 차량이 타격을 입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농업용 요소 비료 생산이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직접적인 중동 수출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원유와 관련된 석유화학, 자동차 등 산업의 대외 수출 전반에 타격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어야 할 수 있다. 한편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서 수입 물가가 상승하여 국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뉴욕 증시가 하락하면서 코스피도 급락하는 등 불안정성이 심화하고 있다. 그 동안 증시 상승의 한 동력이었던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팔면서 환율 불안정은 더 심화할 수 있다. 결국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타파하기 위해 동맹국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였다. 한편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트럼프 정부는 인도에 한시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허용하고 심지어 이란산 원유 제재를 30일간 면제하기로 하였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가 이란과 협상하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엄중한 상황에서 신중한 선택과 대안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다. 호르무즈 항해를 위해 군사력을 파견할 경우 이란의 적으로 간주되어 통항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여타 걸프국과 이란의 원유를 가져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일본이 이란과 협상을 통해 일본 선박의 통과를 보장받으려는 노력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가 느슨해진 시점에 러시아와 원유 수입 협의를 진행하고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수입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구기보

‘전쟁 추경’ 26.2조…소득하위 70%에 ‘최대 60만원’ 지급

정부가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1인당 최대 60만원 민생지원금을 지급한다. 유류비·교통비 부담 완화,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 등에도 5조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31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총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고물가 상황에 경기마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빠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번 추경은 고유가 대응과 민생 안정, 산업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등 3개 분야에 중점을 뒀다"며 “선제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속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정부는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대응을 위해 10조1000억원을 배정했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직접 지원금으로 소득 하위 70% 국민이면 기본적으로 1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비수도권은 5만원, 인구감소 지역 거주자는 10만~15만원을 더 받는다. 취약계층 중 한부모 가정은 수도권 35만원, 비수도권 40만원을, 기초수급자는 수도권 45만원, 비수도권 6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대상자는 3256만명으로 4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지원금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지역화폐 중에서 선택해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지급한 민생 회복 소비쿠폰과 유사하다. 조용범 기획처 예산실장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및 경기 둔화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원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류비 경감을 위한 석유 최고가격제 등에는 5조1000억원이 편성됐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휘발유, 경유 가격을 정부가 정해 규제하는 제도다. 이번 추경을 통해 정부 재정으로 6개월분의 정유사 손실을 보전해준다. 또 석유 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납사) 확보 등 수급 위기에도 대응한다. 교통비 경감과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K-패스의 환급률은 6개월 한시로 최대 30%포인트(p) 상향하는데 총 877억원을 투입한다. 15차례 이상 이용 시 환급률은 저소득층이 최대 83%, 3자녀 가구 75%, 청년·어르신·2자녀 가구 45%, 일반은 30%까지 각각 높아진다. 민생 안정을 위해 취약계층에 '핀셋'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등에도 2000억원을 편성했다. 등유·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20만 가구에 5만원씩 지원한다. 농어민과 시설 농가에도 유가 연동 보조금을 한시 지급한다. 무기질 비료 구매비 42억원, 축산농가 사료 구입비 650억원 등도 지원한다. 아울러 저소득층에 기본 생필품을 제공하는 '그냥드림센터'를 기존 150개소에서 300개소로 늘리는데 21억원을 투입한다. 일시적 위기 상황에 놓인 가구를 지원하는 긴급복지 확대에 131억원, 돌봄서비스 추가 제공에 99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복지시설 750개소의 냉·난방설비에도 128억원을 지원한다. 숙박, 공연 등 문화·관광업계 지원에도 1000억원을 추가 투입한다. 서민 장바구니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도 800억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중동 전쟁에 따른 산업 피해 최소화, 공급망 안정에도 2조6000억원을 배정했다. 물류비 상승, 자금난 등으로 어려움이 큰 중동 수출 기업 대상 수출 바우처 지원을 7000곳에서 1만4000곳으로 두 배 늘린다. 중동 현지에 공동물류센터를 추가 지원한다. 정부는 또 6500억원의 재정 지원을 통해 금융권에서 7조원 이상 수출 정책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발전설비 지원도 역대 최대인 1조1000억원을 편성했다. 아파트 베란다 소규모 태양광도 10만 가구에 설치하는 데 250억원을 투입한다. 공급망 안정화 사업으로 나프타의 원활한 수급 목적의 5000억원을 새로 배정했다.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보유한 국내 석유화학 기업이 대상으로, 나프타 수입단가 상승분 차액의 50%를 보조해준다. 2000억원을 들여 비축유도 130만 배럴 추가 확보한다. 이외에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 재자원화 등에 81억원, 중동 의존도가 높은 요소의 수입선 다변화에 39억원을 각각 지원한다. '쉬었음' 청년 등 일자리 지원에도 9000억원을 배정했다. 대기업이 참여해 청년 취업을 연계하는 'K-뉴딜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창업 지원에도 9000억원을 추가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초과세수 25조2000억원과 기금 자체재원 1조원 등으로 재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활황과 국내 주식시장 거래 활성화 등으로 법인세, 증권거래세 등 세수 추계가 늘어났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내국세와 연동된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지방 지원도 10조원 가까이 늘어난다. 총지출은 본예산인 727조9000억원 대비 25조2000억원 늘어 총 753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와 별도로 국채상환에 1조원을 활용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책을 고민할 때 더 선제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긴급재정명령은 헌법 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등으로 국회의 절차를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법률적 효력을 지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한 제도다. 앞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하면서 행사한 바 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환율 상승에도 냉정한 톤…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 “달러 유동성 양호”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한 고환율 국면에서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시장의 불안과는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놨다. 환율 상승을 금융 불안으로 직결시키기보다, 외환시장 구조와 달러 유동성 여건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 스와프를 통한 외국인 자금 유입이 이어지며 대외 리스크는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신 후보자는 31일 서울 중구 한화금융플라자 내 인사청문회 준비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외환 스와프를 통해 채권시장에 투자하면서 원화를 차입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며 “달러 유동성이 풍부한 만큼 대외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2시 기준 1540원에 근접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신 후보자는 “환율 레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환율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며 시장 일각의 위기론과 거리를 뒀다. 다만 대외 변수에 대한 경계는 유지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중동 전쟁을 지목하며 “국제유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고, 경제에는 하방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될지는 불확실한 만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후보자는 국제결제은행(BIS) 출신의 '실용적 매파'라는 인식에 대해 “매파냐 비둘기파냐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어 “경제의 흐름을 잘 읽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스템 차원에서 금융제도와 실물경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효과를 만드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 상승 및 물가상승에 선제적 대응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은 서로 연계된 측면이 있다"며 “선진국들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라고 답변했다. 미국·유럽·영국·일본이 매파적 동결에 나선 만큼 한은도 비둘기적 스탠스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그는 지난 4년간 한은을 이끈 이창용 총재를 향해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고, 업적도 많았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후보자 신분이라는 점을 들어 “(중앙은행의)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방향에 대해 언급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원론적으로 보면 커뮤니케이션은 통화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경로로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금융통화위원들과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평가·논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해당 질문은 적극적으로 시장과 소통했던 이 총재와 달리 신 후보자가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한은이 지난달 포워드 가이던스를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금통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1인3표' 방식의 점도표로 나타낸 것을 유지하겠냐는 질문에는 답을 아꼈다. 다만 이같은 변화를 이 총재의 업적으로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명 '전쟁 추경' 규모로 볼 때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드러냈다. 또한 “중동 상황에 따른 취약부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정책적으로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신 후보자의 '유연' 노선에 힘을 싣는 발언이 나왔다. 애당초 매파와 비둘기파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과거 발언·논문 일부를 이유로 신 후보자를 매파로 분류했던 주장이 빈약했다고 꼬집었다. 신 후보자가 최근 에너지값 상승에 대해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한 점도 언급했다. 박 연구원은 “과거 경제상황과 지금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고환율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련 리스크를 신임 총재도 고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에 대해서는 “레벨만 놓고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고, 당국자들은 '문제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외환 보유액과 민간 금융기관 외환 사정으로 볼때 달러 유동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며 "금융위기 수준이냐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봤나'는 질문에 “아직 뵙지 못했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등의 절차를 통과하면 다음달 21일 취임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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