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까지 간다”…조희대vs민주당 사퇴 두고 ‘전면전’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사법3법'(법왜곡죄 신설·재판소원제 도입·대법관 증원)을 두고 사법부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이 연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 동안 조 대법원장 사퇴론은 당 내부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조 대법원장이 '사법3법' 강행처리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분위기다. 5일 정치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서 이번 갈등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당 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을 향해 “사퇴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정 대표는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무능·무지할 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반하고 번지수도 잘못 잡고 있다"며 “지금 사법개혁에 대한 저항군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조 대법원장이 지난 3일 출근길에서 '사법3법'과 관련해 “갑작스러운 대변혁이 과연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심사숙고해달라"고 말한 데 대한 반박이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역시 같은 발언을 두고 “국민이 입혀 준 법복 입고 '헌법과 법률' 뒤에 숨으면 썩은 냄새까지 사라지는 줄 아느냐"고 직격했다. 앞서 박 수석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법'은 이미 권위를 상실했다"며 “하루속히 사퇴하는 것만이 '법'의 신뢰를 회복하고, '법원'을 바로 세우고, 후배 판사들이 '판사'의 한 조각 자부심이라도 갖게 하는 길"이라고 썼다. 범여권 일부에서는 사퇴 요구를 넘어 탄핵 필요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범여권 의원 모임인 공정사회포럼은 지난 4일 '조희대 탄핵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조 대법원장의 탄핵을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사법개혁도 몹시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조계원 민주당 의원도 “사법 독립은 조 대법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며 “사퇴하지 않으면 곧바로 탄핵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갈등이 대법관 인사 문제와도 맞물려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준일 시사정치평론가는 “현재 노태악 대법관 후임 인사가 임명되지 않은 상황이고, 앞으로도 왜 임명이 지연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될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와대나 대법원장 중 한쪽에서는 타협을 해야하는데 지금처럼 장기화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조 대법원장이 법왜곡죄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통과된 법에 대해 사법부 수장이 저항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며 “그래서 '사퇴하라'는 요구가 더 거세게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은 내란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며 “사법부도 내란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그 책임의 정점에 조 대법원장이 있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론 역시 일정 부분 사퇴 요구에 힘을 싣고 있다. 여론조사꽃이 지난해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찬성한다'는 응답이 54.6%에 달했다. 국민 10명 중 절반 이상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에 찬성 입장을 보인 셈이다. 최 평론가는 “대통령 지지율이 60%로 높고,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높은 것은 국민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실제로 사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3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이 부여한 소임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임기를 지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 평론가는 “조 대법원장이 6·3 지방선거까지도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서 이 문제가 지방선거의 정치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민주당에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 평론가는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 사퇴 압박이 지선을 앞둔 정치적 공세라고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민주당에게도 꼭 유리한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치적 갈등이 길어지면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 피로감이 커지면서 민주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 평론가는 “민주당이 지금 이상의 강한 액션을 취하면 부정적 여론이 올라가면서 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삼권분립 문제는 중도층과 보수층이 상당히 민감하게 보는 사안이기 때문에 지금은 민주당이 어떻게 할지 관망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李 대통령 “금융 안정화 100조 투입...유가 ‘최고가격제’ 검토”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중동발(發) 지정학적 충격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집행·관리하길 바란다"고 5일 밝혔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관련해서는 주유소의 폭리·매점매석을 강력히 단속하고, 필요하면 유류 최고가격 지정까지 검토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제8회 임시 국무회의에서 주식과 환율 같은 금융 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는 자본시장 안정과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가속화하고, 자금시장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절하고 신속하게 집행·관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이를 통해 주가를 직접적으로 떠받치는 것처럼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억지로 정부가 주식을 사는 식의 대응은 해선 안 된다"고 했다. 특히 휘발유 가격 급등과 관련해 '최고가격 지정제' 검토를 지시했다. 그는 “유류 공급에 관해서는 아직 객관적으로 심각한 차질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주유소 휘발유 가격, 유류 가격이 폭등했다고 한다"며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 매점매석을 하거나 불합리한 폭리를 취하려는 시도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가격을 일률적으로 전국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지역별이나 유류 종류별로 나누는 방식 등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신속히 지정하도록 해달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담합' 적용 외에 행정조치 여부도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 주유소 신고 제도 도입 등 추가적인 관리 방안 검토 필요성도 언급했다. 각 주유소가 매입하는 기름값 정보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라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중동 정세 여파로 주식·환율 등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상황 속에서 나온 첫 공개 메시지다. 이 대통령은 전날까지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방문하는 3박4일 정상 외교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팍팍한 삶’ 주택은커녕 생활비도 빠듯…“벚꽃 추경, 자산격차 더 벌려”

정부의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가구 비율이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율도 15%를 넘어섰다. 지표상 소득 분배는 개선되고 있지만, 주택 등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분배는 나빠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 '벚꽃 추경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이 오히려 자산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 주거기준(흔히 '주거 빈곤층'으로 불리며, 4인 가구 기준 43㎡ 미만)에도 못 미치는 가구 비율이 2024년 3.8%로 전년보다 0.2%포인트(p) 증가했다. 이 비율은 지난 2010년 10.6%에서 2023년 3.6%로 감소세를 보이다 2024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생활비 마련도 빠듯해 먹고 사는 생계마저 위협받는 가구가 되레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상대적 빈곤율도 2024년 15.3%로 전년 대비 0.4%p 증가했다. 상대적 빈곤율 또한 2011년 18.5%에서 2021~2023년 15% 미만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상승세로 전환됐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표상으로 보면 지난 10여년간 소득 분배는 꾸준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국민이 느끼는 빈곤율과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소득 분배와 체감 분배 간 괴리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가처분 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2011년 0.388에서 2023년 0.324로 낮아졌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을 뜻한다. 2024년 조사에서도 국민의 92%가 “소득 격차가 크다"고 답했다. 또 60%는 지난 10년간 불평등이 오히려 늘었다고 응답했다. 국민 삶의 만족도는 2024년 6.4점으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정체된 모습이다. 특히 1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삶의 만족도는 5.8점으로 2년 연속 6점을 밑돌았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국제 비교로도 2022∼2024년 기준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6.04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국민들의 체감 분배가 악화되고 있는 데는 저소득층의 큰 생활비 부담과 계층 간 자산 격차가 꼽힌다.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지출 부담이 고소득층보다 크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기준 하위 20% 가구(경상소득 1분위)는 근로 등 소득의 95% 이상을 생활비로 충당했고, 여윳돈은 5%가 채 되지 않았다. 반면 5분위인 상위 20% 가구는 소득의 절반인 53%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이나 자산 투자 등에 사용했다. 저소득층일수록 근로소득만으로 자산 축적이 어렵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크고, 주택 등 부동산 중심으로 자산 격차가 커져 체감 분배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혜진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던 노동시장 보상이 이제는 자산 보유 가능성으로 대체됐다"며 “소득 지표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국민들의 물가 부담과 자산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등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과 맞물려 자산 가치가 상승하며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 변동성, 수출과 물가에 미칠 파장 등에 따른 정부의 '벚꽃 추경' 가능성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 등 자산 양극화는 정부가 이자 낮추고 돈을 푸는 정책을 반복하며 만든 것"이라며 “수도권에 서민들이 당장 필요한 임대 주택을 늘리는 등 실질적 주거 안정 목적의 부동산 공급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자산시장에도 간접적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추경 편성 얘기가 나올 만큼 정부는 굉장한 확장적 재정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며 “확장재정을 하다보면 그만큼 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조심스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단독] ‘3조’ 체불 임금, 국민 세금으로 줬다

민생 경제의 핵심인 '임금 체불'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대지급금 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간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 임금으로 지급한 '대지급금'은 3조원을 넘어섰지만 회수율은 25% 수준에 그쳤다. 결국 사업주의 채무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5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대지급금 누적 지급액은 총 3조 1791억 원을 기록했다. 연도별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5466억 원과 2022년 5369억 원에서 2023년 6869억 원, 2024년 7242억 원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이후 2025년에는 6845억 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대지급금은 파산했거나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사업장을 대신해 국가가 체불 임금을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하고, 이후에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5년 내 상환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지급금 회수율은 여전히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사업주로부터 회수한 금액은 2021년 1482억 원(27.1%), 2022년 1532억 원(28.5%), 2023년 1481억 원(21.6%), 2024년 1582억 원(21.8%), 2025년 1793억 원(26.2%)으로 총 7870억 원(24.8%)이다. 돌려 받지 못한 금액은 2조 3921억 원에 달한다. 특히 건설업종에서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부각된다. 지난 5년간 건설업 대지급금 총액은 7180억 원에 달하지만, 회수액은 1426억 원에 불과해 회수율이 20%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낮은 회수율은 사업 완료 후 법인을 해산하거나 사업주가 재산을 은닉하는 등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사업주가 임금 지급 능력이 있음에도 간이대지급금을 사실상 '쌈짓돈'처럼 이용하는 사례도 적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을 허위로 신고해 간이대지급금 3억30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뒤 잠적한 건설업체 대표가 구속됐다. 이 사건에는 서류 위조에 가담한 하청업체 관계자와 허위 근로자 10명도 연루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해당 대표는 임금체불 진정서를 관할 노동청에 제출하고 허위 노무비 명세서를 증빙자료로 내는 방식으로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허위 근로자 명단에는 실제로 근무하지 않은 가족과 지인까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현장에서는 대지급금을 정부가 대신 지급해 주는 '공짜 돈'처럼 여기면서, 대지급금 범위 내 임금 체불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인식까지 퍼져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대지급금 제도가 체불 피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지만 회수율이 낮고 사법처리 비율도 충분하지 않다"며 “대지급금 회수율을 높이고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사법처리를 강화해 임금 체불을 근본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디자인이 바꾸는 경북 제조업의 미래…중소기업 경쟁력 높이는 ‘디자인 산업 육성 프로젝트’

경북=에너지경제신문 정재우 기자 경북도 제조업이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단순한 외형 개선을 넘어 기업의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 수단으로 디자인이 자리 잡으면서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도는 2022년부터 '경상북도 디자인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도내 중소기업과 디자인 전문기업을 연계해 제품 경쟁력 강화와 기업 가치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제조 중심 산업 구조가 강한 경북에서 디자인을 산업 혁신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려는 정책적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제품 디자인, 브랜드 전략,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디자인 산업 자체의 경쟁력까지 동시에 강화하는 '산업 생태계 확장형 정책'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디자인 경쟁력이 기업 성장의 새로운 사다리 최근 산업 환경에서 디자인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라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가 부족하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북 지역 중소기업들은 수도권과 비교해 디자인 전문 인력이나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고, 예산과 조직 규모의 한계로 인해 브랜딩과 마케팅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경상북도는 중소기업의 수요에 맞춘 단계별 디자인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인 개발, 브랜드 전략, 마케팅 콘텐츠 제작까지 이어지는 종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 기업이 디자인을 경영 전략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실제로 지난 4년간 경북도 디자인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제품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웹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880건의 과제가 추진됐다. 이러한 지원은 단순한 디자인 개선에 그치지 않고 매출 증가와 신규 고용 창출로 이어지며 기업 현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25년 실시된 수혜기업 성과 조사 결과도 이러한 효과를 보여준다. 참여기업의 2024년 총매출은 전년 대비 평균 8.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기업경영분석'에서 나타난 국내 중소기업 평균 매출 성장률(-0.26%)보다 8.86%포인트 높은 수치로, 디자인 지원 정책이 기업 성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분석된다. ▲기술기업의 시장 진입 돕는 '신시장 창출형 원스톱 지원' 경북도 디자인 정책의 핵심 사업 중 하나는 '신시장 창출형 원스톱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기술 중심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시장조사와 제품 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 전략까지 전 과정을 통합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술 개발에 집중해 온 제조기업들이 시장 분석과 브랜드 전략을 함께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디자인을 단순한 외형 개선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 도구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경주에 위치한 한 군수용 드론 제조기업은 이 사업을 통해 제품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 고도화까지 전 과정의 지원을 받았다. 이 기업은 디자인 개선을 통해 제품 신뢰도와 브랜드 이미지를 동시에 강화했고, 그 결과 국내 벤처투자사로부터 약 2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딥테크 챌린지 프로젝트'에도 선정되면서 연구개발(R&D) 지원과 지분투자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얻었다. 기술력과 사업성이 동시에 인정받은 사례로 평가된다. 이처럼 경상북도 디자인산업 육성 프로젝트는 디자인을 통해 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까지 연결하는 성장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제품·브랜드·뉴미디어…기업 경쟁력 높이는 디자인 지원 경북도는 기업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지원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제품디자인 지원사업'은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제품 디자인 개발과 목업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기업이 경쟁 제품과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외형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기능과 디자인을 결합한 전략 상품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가구에 공기청정 기능을 결합한 융합형 제품 개발처럼 새로운 시장 수요를 반영한 제품 개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브랜드 디자인 지원사업'을 통해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과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해 제품의 특성과 기능을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돕고 있다. 국내외 시장 특성에 맞춘 브랜드 전략을 구축함으로써 기업의 시장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이와 함께 '뉴미디어 디자인 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홍보 영상 제작, 홈페이지 구축,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발, 상품 안내서 제작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지원해 기업의 온라인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중소기업이 변화하는 유통 환경에 대응하고 온라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상공인부터 디자인 기업까지 산업 생태계 확대 경북도의 디자인 지원 정책은 제조기업뿐 아니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까지 폭넓게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디자인 애로해결 지원사업'은 로고 디자인, 홍보물 제작, 간판 제작 등을 무상으로 지원해 소규모 기업과 소상공인의 브랜드 인지도 향상과 시장 진입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디자인 비용 부담 때문에 브랜드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소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지역 디자인 산업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 전문기업에 대한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전문가 상담과 디자인 상품 제작, 마케팅 지원 등을 통해 지역 디자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포항의 한 디자인 전문기업은 지역 관광지를 활용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해 전국 23개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했고, 누적 판매량 1만 개를 돌파하며 지역 대표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산학 협력 성과도 눈에 띈다. 대경대학교와 대구한의대학교 등 지역 대학과 협력해 매년 약 70건의 웹 상세페이지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실무 경험을 쌓고 기업은 비용 부담을 줄이는 상생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북도, “디자인 중심 산업 혁신 확대" 경북도 디자인 정책은 높은 만족도와 함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수혜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디자인 품질과 사업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98.1%로 나타났으며, 2024년 기준으로 229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는 성과도 확인됐다. 경상북도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6년에도 디자인 중심 기업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K-글로벌 프론티어 원스톱 지원', '컨슈머링크 제품디자인 지원', '마켓온 브랜드·패키지 디자인 지원', '뉴미디어 디자인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맞춤형 디자인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디자인은 중소기업의 기술에 가치를 더하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며 “앞으로도 경북 기업들이 디자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재우 기자 jjw5802@ekn.kr

[이슈&인사이트] 세계 1위 운용수익률 국민연금, 이제 지배구조 혁명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2025년 231조 원의 운용 수익을 올려 기금 설치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는 2개월 동안 120조 원을 달성했다. 231조 원의 수익은 5년분의 연금 재원에 해당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1월 23일 코스피 5천 선 돌파를 기점으로 “국민연금 고갈 우려나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이제 내려놓아도 되는 상황"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180만 명의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기금 고갈의 위험에서 해방했다는 측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전 국민의 박수와 하이닉스에 준하는 포상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이닉스의 2026년 성과급은 영업이익 47조 원의 역대급 실적에 대한 보상이다. 기본급의 약 2,965%로, 연봉 1억 원 기준 성과급만 약 1억 4,820만 원 수준이다. 여기서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에 대한 하이닉스급 포상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의 실적은 코스피가 2025년 76%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23% 상승하며 랠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연간 운용 수익 18%는 일본 GPIF(12.3%), 노르웨이 GPFG(15.1%), 캐나다 CPPIB(7.7%) 등 글로벌 자산운용의 강자 중 1위 수준이다. 또한 외생변수만을 따진다면 하이닉스의 실적도 반도체 경기의 수퍼사이클에 의존한 바 크다고 폄하할 수 있다. 2026년 국민연금의 직원 수는 7,200명 전후로 운용 수익은 231조 원이다. 반면 하이닉스의 3만 3천 명의 직원이 거둔 영업이익은 47조 원이다. 인당 이익으로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302억 원/인 인 데 반해서 하이닉스는 14억 원/인이다. 국민연금의 가성비는 하이닉스의 20배다. 국민연금에 대한 획기적 보상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국정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연금 운용 수익이 1% 올라가면 기금 소진 기간이 15년 연장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운용수익률을 연 6.5%로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57년에서 2090년으로 늦춰질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서 현 정권의 최우선 정책과제가 도출된다. 장기 기금수익률 7% 달성의 정책과제다. 최우선 정책 과제는 국민연금이 미래 한국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다. 그를 바탕으로 정치적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이사장만은 탁월한 전문가를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여야 합의선언이다. 1988년 창립 이래 38년 동안 18명의 이사장이 취임하여 평균 재임 기간 2년이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중 임기를 채운 수장은 30% 내외다.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임기를 조기 마감한 결과다. 출신별로 보면 관료·정치인·군 출신이 대부분이다. 실용 국정의 기본 방향은 첫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다.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 중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둘째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다. 해외의 경우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고 정은경 장관과 같이 의사 출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셋째가 기금운용 베테랑인 실장급 운용역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이 필수적이다. 운용역에 대한 과감한 자율과 인센티브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넷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투자 기법의 과학화다. 다섯째,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면적 개편이다. 예를 들면 선진국 지향적 안전 투자에서 적절한 위험을 감수하는 개발 도상국 투자의 수익 모델로 전향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다고 국민연금의 흑자 기조가 보일 때 2,180만 명의 연금 가입자와 그 가족 그리고 국민에게서 연금 고갈의 스트레스에서 해방하는 과감한 혁명적 실용 국정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bienns@ekn.kr

충남도,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유치 ‘총력’…16개 기관 맞손

충남=에너지경제신문 김은지 기자 충남도가 미래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인 이차전지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지역 경제의 비약적인 도약을 이끌기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유치에 나섰다. 도는 최근 천안·아산·서산·당진 등 서북부권 4개 시와 국내외 이차전지 산업을 선도하는 주요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총 16개 기관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기관 간 협조를 넘어 산학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견고한 협력 기반을 구축해 충남형 이차전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추진한다. 특히 이번 협약에는 도와 4개 시 외에도 이차전지 소재 산업 최전선에 있는 한국유미코아배터리머티리얼즈·하나머티리얼즈·서해그린화학·송우이엠(EM) 등 선도기업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산업 활성화 효과가 기대되며, 단국대·호서대·한서대·신성대 등 지역의 교육 거점과 충남테크노파크·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등 전문 연구기관이 합세해 기술 개발부터 인재 양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협력 체계 구축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약의 주요 골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위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민관 협력(거버넌스)을 형성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각 협약 기관은 사업 종료 시점까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히 소통하고 특화단지 지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행정적·기술적 역량을 집중하기로 약속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협약 기관들은 구체적인 6대 협력 분야를 설정하고 실질적인 이행에 착수하기로 했다. 우선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위한 공동 대응과 함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민관 협력(거버넌스)을 구축해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또 이차전지 관련 기업이 최적의 환경에서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반 여건을 조성하고 부지 및 관련 시설 설치를 지원한다. 기술 분야에서는 이차전지 핵심 기술 개발은 물론, 실제 현장에서의 실증과 사업화 단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해 충남 이차전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국 중심의 이차전지 공급망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인적 자원의 확보도 이번 협약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지역 내 대학과 협력해 이차전지 맞춤형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된 인재들이 지역 내 기업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지역 인재 육성과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한다. 이와 함께 유망 기업의 추가적인 투자 유치를 끌어내고 지역 상생 모형을 발굴함으로써 특화단지 조성이 지역사회 전반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도가 구상 중인 특화단지 조성 계획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올해부터 오는 2034년까지 잠정적으로 추진하며 서북부권인 천안·아산·서산·당진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입주 기업은 기술 개발 및 수출 촉진을 위한 지원과 각종 인허가 사항의 신속 처리 등 파격적인 행정적 혜택을 받게 돼 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 관계자는 “산학연관 협력으로 도가 보유한 이차전지 산업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이라면서 “정부 공모 절차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우리 도가 대한민국 이차전지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이슈&인사이트] 양도세 중과가 아니라 정상화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다주택과 증시가 단연 중심 이슈다. 오는 5월로 예고된 다주택자 양도세 정상화를 두고 야당이나 보수층은 '정치적 증세'라거나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가난은 나라도 못구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팩트부터 정리하자. 증세가 아니라 세금부과를 연기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공격은 언급할 가지초자 없는 선동이다. '가난은 나라도 못구한다'고? 물정 모르는 말이다. 나라가 부자는 못 만들어도 가난은 구한다, 구해야 한다. 그게 근대 국가다. 가난은 '그저 조금 불편'한 게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거나, 지갑 사정 헤아려보다 뭔가를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다. 가난은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한다. 그 불안은 영혼을 좀먹는다. 그러다 결국 황폐해진다. 형편없는 시간 당 임금은 자존감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린다. 벗어날 수 없는 나락감에, 그 절망감에 무기력해지는 거다. 그러다 종내는 대인기피증 같은 것을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사회가 가난을 가난한 사람의 무능과 못난 탓으로 돌리며 부끄러워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제 무능을 탓하며 안으로 안으로만 숨어든다. 남루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본능적 정서다. 모든 이는 위아래가 따로 없이 한결같이 존귀하며,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의 인권을 가졌다는 말은, 잠시 접어두시라. 가난 앞에서는 사치이거나 허탈한 공왈맹왈이다. 해질 녘 리어카에 자기 몸집의 두어 배는 될 라면박스와 파지를 잔뜩 실은 채 언덕배기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놔두고서 '선진'을 말하는 건 사치를 넘어 죄악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왜 세금을 걷는가. 세금 안내면 왜 빨간 딱지 붙이고 집달리들이 찾아오는가. 세금받는 대신 생존의 기본 조건을 마련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토록 하기 위해서다. 그게 국가가 정부를 통해 납세자인 국민과 한 '계약'이다. 납세자들은 그 계약을 믿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모든 납세자(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와 내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같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 자체가 미안스러워지는 삶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래서 '복지'라는 개념이 생겼다. 학자들에 따라 견해는 엇갈리지만, 목불인견의 처참한 생존을 그대로 놔두면 인간성이 상실되는 층이 생기고 체제 유지가 위태로울 정도로 사회가 붕괴될 수도 있다. 빈부 격차를 방치하다가 체제 자체가 붕괴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재정(조세)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이야 어떻건 간에 복지정책이 성공하려면 이 점 하나만은 확립되어야 한다. 가진 자가 베푸는 방식이어선 진정한 복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적선이다. 적선의 밑바탕에는 기복적 희구가 자리잡고 있다. 선을 베품으로써 좋은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동양적 정서가 깔려있다. 그러므로 적선은 기본적으로 일과성이고, 시혜다. 적선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구조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개인적 행위라는 것이다. 가난은 개인적 시혜나 기부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정부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정부를 통해 행해지는 정책은 그러기에 구조화와 정합성이 필수다.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는 근대 국가의 기본이자 복지의 출발점이고, 공정을 향한 첫 이정표다. 입이 아프지만 다시 명토박아 말한다. 가난은 나라가 구하는 게 맞다. 국민주권정부는 실용적 정책들로 이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극빈이나 생활고 참상을 영구 퇴출시켜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 bienns@ekn.co.kr

[윤석헌 시평] 디지털금융 전환과 국내은행의 혁신

은행의 혁신이 관심사다. 지난 정부에선 과점수익이 비난의 대상이었다면, 새 정부에선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요구로 공격 방향이 바뀌었다. 특별한 위험부담이나 역할수행 없이 고수익을 벌어드리는 소위 '천수답 경영'이 비판의 핵심이다. 선진경제 문턱에 오른 한국경제가 필요로 하는 중개서비스를 저비용 자금과 유능한 인재를 갖춘 은행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디지털금융은 IT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지급결제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크게 개선했다. 이어서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자금을 이체하고 은행 등 중개기관 도움 없이 대출, 투자, 트레이딩을 추진하는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은행의 독과점적 영향력을 우회하려는 노력이 기술발전을 배경으로 전통금융의 울타리 밖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 등 중개기관 도움을 배제하는 디파이는 유동성 불일치, 상호연계성, 과다한 레버리지, 충격흡수장치 부재 등 온갖 위험 노출로 곧바로 안정성에 문제가 생겼다. 테라루나 사태가 비근한 예다. 결국 중앙화 거버넌스 요구가 다시 생겨나는데,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를 '탈중앙화 환상'이라 불렀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금융은 지급결제, 신용창출, 규제감독, 예금보험 등 제도적 발전을 이룩했으나, 시장의 불확실성과 탐욕은 금융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온라인 상에서 한 번의 클릭으로 거액의 자금이 빛의 속도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시스템 위험이 다시 증가하면서 금융에 대한 신뢰를 뒤흔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전통금융과 디지털금융을 연결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법제화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해외에선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더불어 토큰화예금(TD) 및 예금토큰(DT) 등 다양한 선택지가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디지털화폐의 선택은 국내금융이 전통금융을 토대로 디지털금융으로 지속가능 발전하여 금융혁신을 이루는 경로이고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두 가지가 핵심으로 보인다. 첫째는 안정성 확보다. 스테이블코인은 명칭과 달리 담보자산 내용물에 따라 가치변동이 발생한다. 게다가 혁신 추구를 위해 발행 자격을 확대 허용하면,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이 가능하고 해외 투자자 참가 시에는 통화주권 상실도 우려된다. 둘째는 혁신을 담보하는 중개기능 확충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CBDC, 자산 등을 100% 예비하므로 런(run)의 우려는 없지만 그만큼 중개기능(신용창출)이 제약된다. 반면, 토큰화예금(TD)이나 예금토큰(DT)은 은행의 안정성을 토대로 부분지급준비방식을 사용하므로 신용창출 제약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까? 금융은 안정이 핵심이며, 중개역할 확충 또한 한국경제 현실에서 소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은행이 주도하는 TD나 DT 발행이 바람직해 보이는데, 다만 이러한 선택은 은행의 독과점 구조를 강화하여 국내은행의 중개서비스 혁신 요구에 배치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탈출구는 은행이 스스로 혁신하거나 또는 금융당국이 관련 제도 개혁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런 탈출구를 피한다면 은행 주도 디지털화폐 및 국내금융 혁신에 대한 기대는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은행의 혁신과 개혁 방안을 살펴본다. 첫째, 은행은 고객에 대한 중개서비스 제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내은행은 비이자이익이 미미한데, 이마저도 고객서비스와 무관한 유가증권 매매익과 평가익이 주다. 비용과 노력이 들더라도 고객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둘째, 생산적 금융 촉진 과정에서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BIS비율 산정시 위험자산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 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부동산대출은 하한을 높였고 주식보유는 가중치를 낮추었다. 그런데 방향은 맞지만 은행의 행태가 바뀔지 의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이후 늘어난 은행의 책임회피용 행정업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셋째, 은행권의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다시 강화하여 은행의 주담대 시장 점유율을 낮추고, 파킹통장 활성화로 비은행 주담대 시장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금융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전통금융 하부구조 이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은행의 혁신과 개혁은 국내금융산업 혁신의 지름길로 보인다. 윤석헌

[박영범의 세무칼럼] 28만 영세 체납자, ‘부활의 사다리’ 놓이나

고금리와 고물가, 내수 부진의 삼중고 속에서 결국 '폐업'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 영세 사업자들. 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것은 '과거의 세금'이다. 국세청이 역대급 규모의 구제책을 가동한다. 이번달부터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국세 체납관리단'이 전국 각지의 체납 현장을 누비며 옥석 가리기에 나선다. 이번 조치는 체납 세금 독촉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징수 능력이 없는 이들의 세금을 면제하여 경제활동 현장으로 복귀시키는 '생계형 체납자 납부 의무 소멸 특례제도'의 성공적인 시행이 자리 잡고 있다. 국세청은 이달부터 활동할 일반 시민 500명을 '전화·방문 실태 확인원'으로 신규 채용했다. 이들은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2024년 말 기준 국세 체납자 133만 명 전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 이들의 주 목적은 징수독려와 '실태 파악'이다. 확인원들은 체납자의 거주지와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실제 거주 여부, 가족관계, 생활 수준 등을 면밀히 파악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세 체납자 납부 의무 소멸 대상자 실태조사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조사서는 향후 국세 체납 탕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세금 납부 의무를 소멸시켜 준다. 다만 법에서 정한 요건이 구체적이므로,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대상 세목은 종합소득세(농어촌특별세 포함)와 부가가치세, 그리고 이에 부수된 가산세와 강제징수비에 한정된다. 또한 해당 체납액은 2025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것이어야 하며, 소멸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금액이어야 한다. 둘째 폐업 및 소득 요건은 실태조사일 이전에 모든 사업을 폐업한 상태여야 한다. 최종 폐업일이 속한 과세 연도를 포함해 직전 3개년의 평균 사업 수입금액(매출액)이 15억 원 미만인 영세사업자가 대상이다. 셋째 처벌 이력이다. 최근 5년 이내에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은 사실이 없어야 하며, 현재 범칙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어도 안 된다. 특히 과거(2018~2019년)에 시행됐던 영세 개인사업자 체납액 소멸 특례를 적용받았던 사람은 이번 혜택에서 제외된다.올해부터 시행하는 제도로 약 28만 명이 3조 4천억 원 규모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평균 약 1,200만 원의 '세금 족쇄'를 푸는 셈이다. 대상 영세 체납자는 1단계로 현장 조사 협조이다. 이달부터 체납관리단이 연락하거나 방문할 경우 피하지 말아야 한다. 문을 걸어 잠그거나 연락을 끊으면 '은닉 재산이 있다'는 의심을 사 정밀 추적조사의 타깃이 될 수 있다. 2단계는 경제적 빈곤을 증명해야한다. 본인이 가진 재산이 강제징수비(체납 처분비)에도 못 미친다는 점이나, 현재 수입이 최저생계비 수준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신청 시기 준수이다. 소멸 신청 기간은 2026년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까지다. 신청서를 내면 국세청은 국세체납정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6개월 이내에 탕감 여부를 통지한다. 이번 특례 제도는 '성실 납세'라는 조세 원칙과 '영세 납세자 경제 재기'라는 복지적 가치 사이에서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이자 결단이다. 실패를 겪은 이들이 신용을 회복하고 다시 창업이나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훗날 건실한 납세자로 돌아오게 만드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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