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일본 롯데로부터의 독립 시도가 무리한 투자로 인해 좌절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일본 롯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던 계획이 그룹의 재무위기로 크게 후퇴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015년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롯데홀딩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한국 롯데의 독자 노선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는 15조원에 달했고, 상장을 통해 일본 측 지분(99%)을 희석시켜 한국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 하지만 같은 해 신동빈 회장은 3조원을 들여 삼성 화학계열사들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차입경영에 나섰다. 이는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했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 사드 보복, 코로나19 등으로 번번이 미뤄졌다. 그 사이 실적은 악화됐고, 부채는 급증했다. 올해 3분기 기준 호텔롯데의 1년 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은 2조3061억원, 총차입금은 8조7616억원에 달한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직접 이끌었던 화학 부문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까지 6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조원 규모의 회사채 상환 위기까지 맞았다. 이로 인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는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급락시켰다. 2015년 15조원이던 기업가치는 지난해 3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롯데그룹은 지난달 기업설명회에서 “IPO는 현재 검토 중이지 않으며 실적 개선이 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회장으로서 경영을 하고 있지만, 실제 그룹 지배구조에서 그의 지분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사실상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회사가 아직 아니다. 일본 측 주주들의 지지가 없다면 신동빈 회장은 지배력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일본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국내 계열사로 이어진다. 롯데그룹의 높은 배당성향도 이런 지배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28,14%)인 광윤사는 신동빈 회장의 형 신동주 회장이 50.28%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38.98%에 불과하다.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의 지분은 고작 2.69%에 불과하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를 보면 광윤사가 28.14%, 종업원지주회가 27.8%, 임원지주회가 5.96%를 보유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것은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 등 일본 측 주주들의 지지 덕분이다. 호텔롯데의 경우도 신동빈 회장의 지분은 2.7%에 불과하다. 호텔롯데는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롯데지주(11.05%), 롯데물산(32.83%), 롯데건설(43.07%) 등 19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신동빈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일본 측 주주들의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텔롯데의 상장 실패는 신동빈 회장에게 치명적이다. 상장을 통해 일본 측 지분을 희석하고 한국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불안정한 지배구조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의 독립 시도가 좌절될 경우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지만, 이는 오히려 독립의 기회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며 “롯데그룹의 수익성 훼손으로 일본 측 주주들에게 향하는 배당이 줄어든다면 그들은 언제라도 지지를 철회해 제2의 형제의 난을 일이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