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의 지렛대] ⑤ 상법 개정, 균형 찾는 ‘무게추’ 될까

한화에너지, 삼성에버랜드, 현대글로비스, SK C&C. 이들 기업은 각기 다른 그룹에 속해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나 승계 과정에서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내부거래 집중, 전환사채(CB) 발행, 비상장 계열사 활용 등 방식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왔다. 이런 구조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공정하지 않은 승계, 소수주주의 이익 침해, 시장의 신뢰 저하 등의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외부 위협에 대비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를 거듭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이처럼 기울어진 지렛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적 시도로 읽힌다. 삼성에버랜드는 1996년 주당 7700원의 CB를 발행했다. 당시 장외시장에서는 8만5000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주식이었다. 이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인수하면서, 이 회장은 단숨에 최대주주(25.6%)로 올라섰다. 이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는 이른바 '헐값 승계' 논란을 촉발했다. 현대글로비스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00% 지분으로 설립한 후, 그룹 물류를 집중 수주하면서 급성장했다. 설립 초기 내부거래 비중은 80%를 넘었고, 2016년에도 67.4%에 달했다. 초기 투자금은 약 30억원으로 알려졌지만, 수년 만에 수천억원의 자산 가치로 불어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정 회장은 2015년과 2022년에 걸쳐 지분을 매각해 내부거래 규제를 피했다. SK C&C는 비상장사로서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기록해왔다. 2010~2011년 기준 60%를 넘었고, 공정위는 2012년 부당지원 혐의로 3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후 SK㈜와의 합병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지배구조는 더욱 단단해졌고, 당시 활용된 워커힐호텔 주식 맞교환 방식은 법원에서 배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단 SK C&C 사례는 한편으로는 '불공정한 합병'의 대표적 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된다.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이후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며 그룹은 경영 공백 위기를 맞았고, 이 틈을 타 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이 지분을 대거 매입해 경영권을 노렸다. SK는 이사회를 통해 방어에 성공했지만, 이를 위한 수단으로 SK C&C를 활용했고, 워커힐호텔 주식 맞교환과 같은 구조는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SK 입장에서는 '위기 속 지배력 방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됐다는 점에서 제도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이러한 사례들은 상법이 지배구조 내에서 소수주주 보호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고 있어, 주주 개별의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보호할 근거가 부족했다. 실제로 삼성물산 합병 논란 당시 이 조항은 “회사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면책 논리로 작동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내부거래나, 비정상적인 합병 비율 결정 등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또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논의도 진척되고 있다. 이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복잡한 지배구조에서 실질적인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SK나 한화처럼 '옥상옥' 구조가 존재하는 그룹에서 특히 실효성 있는 견제 수단으로 평가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 집중투표제 의무화 역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장치로 논의되고 있다. 재계는 이러한 개정안들이 도입되면 소송이 남발되고, 기업의 경영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영진이 소수의 주주나 외국계 자본의 위협에 흔들릴 수 있다"며 “합리적 판단의 위축은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우려는 과장일 수도 있지만, 무시해서도 안 된다. 제도의 취지는 균형에 있다. 경영 판단의 자율성과 시장의 공정성이 충돌할 때, 법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견제는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지배구조는 기업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이자, 시장의 신뢰를 결정짓는 요소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렛대는 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로 인해 시장의 불신은 커지고, 기업도 그 주체로 의심받았다. 개별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현행 상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불만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지난 17일 국회는 상법 개정안의 재표결을 시도했지만 국민의힘의 이탈로 재의결 정족수 200석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민주당은 전략적으로 삭제했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모두 포함해 개정안을 재발의 할 방침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은 지렛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공정하게 설계하자는 것"이라며 “이제는 '총수를 위한 지렛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지렛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지배구조의 지렛대]④ 현대차 승계 키플레이어 ‘현대글로비스’ 그룹 최대 문어발 사업 눈길

현대자동차그룹의 승계 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18년을 변곡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당시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선임됐다. 같은 해에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골자는 현대모비스 모듈과 사후관리(AS) 부품 사업 등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발표 이후 합병비율이 현대글로비스 주주에게 유리하게 책정됐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합병 자체가 무산됐다. 합병이 무산된 이후 현대차그룹의 승계 시계는 사실상 멈춰 있다. 그러나 2018년 이후부터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극대화가 현대차그룹의 승계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20%의 가치도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극대화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 승계를 마무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글로비스의 전신은 2001년 3월 현대차그룹이 설립한 현대로지텍이라는 물류 전문 계열사다. 당시 자본금은 12억5300만원에 불과했고, 정 회장이 59.85%, 정 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40.15%의 지분을 보유한 개인 회사에 가까웠다. 이후 현대로지텍은 사명을 2003년에 글로비스로, 2011년에 현대글로비스로 각각 변경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설립 이후 현대차 계열사의 물류 수요를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연간 매출은 설립 첫해인 2001년 1984억원에 불과했으나 4년 후인 2005년 1조5408억원으로 7배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93억원에서 785억원으로 8배 이상 늘었다. 이후 노르웨이 해운사 빌헬름센에 지분 매각과 기업공개(IPO)로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이 지속적으로 줄어왔다. 지난 2015년 2월 당시에는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 둘이 합쳐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하기도 했다. 공정거래법 시행으로 대주주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30% 이하로 낮춘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정 회장이 20%의 지분을 보유한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설립 당시 단순 물류사에 가까웠던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기업 정관에 60개가 넘는 사업 목적을 명시하며 적극적으로 신규 사업에 진출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현대글로비스는 사업목적 현황에 사업 근거 62개를 등재했다. 이 중 실제 현대글로비스가 영위하는 사업도 53개에 달한다. 주요 영위 사업은 육·해상 및 항공화물운송업과 그 관련 서비스업, 화물운송주선업, 물류센터 운영 및 관련 서비스업 등이다. 이는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중에서 가장 사업 목적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그룹의 맏형인 현대차는 사업 목적으로 총 30개를 등재했다. 기아와 현대모비스도 정관에 기재한 사업 목적이 각각 34개와 13개 수준에 그친다. 이를 감안하면 현대글로비스는 그룹의 다른 핵심 계열사보다 2배 가량 사업 목적이 많은 셈이다. 특히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3년 동안 주목할 만한 사업목적들을 연이어 추가해왔다. 2022년에 수소·암모니아 발전사업 및 탄소 중립 관련 부대사업을 등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폐전지 판매 및 재활용업, 비철금속제품의 제조 및 판매업 2가지를 추가하기도 했다. 최근 현대글로비스는 해당 사업목적과 연계해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BaSS)'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배터리 회수 및 전처리, 재활용을 아우르는 종합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향후 전기차 등에 배터리 활용이 늘어나면 엄청난 잠재력을 갖춘 사업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글로비스가 신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특히 성장성이 높은 여러 신사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진출한 것은 다른 핵심 계열사와의 어느정도 의사소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 경영권 승계 관점에서 다른 계열사보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20%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020년 그룹 회장으로 선임됐다. 다만 회장 취임 후 5년차가 되도록 승계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는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해 부친인 정 명예회장을 능가하는 지배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이다. 다만 조만간 정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명예회장은 올해 86세로 고령인 데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후 8년째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건강 악화설까지 돌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도 2018년 이후 승계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어떤 경우라도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승계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지배구조의 지렛대] ③ SK C&C ‘IT 관리자’에서 그룹의 조종석으로

SK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한때 이름조차 낯선 IT 자회사가 있었다. 그룹 내부 시스템을 관리하던 SK C&C는, 어느 순간부터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을 떠받치는 핵심 '지렛대'로 기능했다. 그리고 2015년, SK그룹은 이 비상장 회사를 공식 지주사와 합병하며 지배구조의 방정식을 다시 썼다. 구조는 단순해졌지만, 방향은 그대로였다. SK C&C는 1991년 '선경텔레콤'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설립 목적은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등 계열사들의 IT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외부 매출보다 내부 거래에 기반한 안정적 수익이 더 컸고, 그룹의 방대한 IT 수요는 이 회사를 전담 플랫폼으로 만들어주었다. 이후 중고차 플랫폼(SK엔카), 핀테크, 사회적 기업 설립 등으로 외연을 확장했지만, 본질은 그룹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실무형 조직이었다. 하지만 이 조용한 IT 자회사에 SK그룹 총수 일가는 전략적 지분을 집중시켰다. 최태원 회장은 한때 SK C&C 지분을 49%까지 보유했고, 2015년 합병 직전까지도 32.9%를 유지했다. 그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10.5%를 보유해, 총수 일가 합산 지분율은 43.4%에 달했다. 공식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직접 지분은 이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SK C&C는 SK㈜ 지분을 약 10% 보유하고 있었고, SK㈜는 다시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의 계열사를 지배했다. 최 회장 일가 → SK C&C → SK㈜ → 사업회사로 이어지는 역피라미드형 구조, 이른바 '옥상옥' 구조가 그렇게 형성됐다. 이 구조는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라는 대규모 위기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분식 규모는 약 1조5000억원에 달했고, 최태원 회장과 당시 손길승 회장이 구속되며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구조조정본부가 해체됐다. 그 틈을 타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4.99%를 확보하며 경영권 공격에 나섰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율은 1%도 안됐다. 당시 SK의 소액주주들은 소버린의 '공격'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에 최 회장이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방어카드는 '맞교환'이었다. 최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던 비상장사 워커힐 호텔 주식 385만주를 1560억원에 SK C&C에 매각하고, 그 대가로 SK C&C가 보유하고 있던 SK㈜ 지분 646만주(5.08%)를 넘겨받았다. 이 거래로 최 회장은 SK㈜ 최대주주가 되었지만, 검찰은 이 과정에서 비상장 주식 가치가 고의로 과대평가되었다고 판단했다. SK C&C에 2071억원의 손해가 발생했고, 최 회장에게는 700억~800억원의 부당이득이 돌아갔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었다. 2008년 대법원은 최 회장의 배임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이 판결은 비상장 주식의 과대평가가 경영진의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처음으로 명확히 밝힌 사례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SK C&C는 그룹 내부 거래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갔다. 2010년 내부거래 비중은 63.9%, 2011년은 65.5%, 2013년에도 41.5% 수준을 유지했고, 합병 이후인 2016년에는 SK㈜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이 84.9%에 달했다. 2012년에는 인건비 과다 계상 등으로 공정위로부터 3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비상장사가 내부 일감을 독점하면서, 총수 일가에게 과도한 이익이 몰리는 구조는 '사익편취' 논란으로 계속됐다. 이 같은 구조는 규제 강화로 압박을 받았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확대하며, 상장사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보유 기업을 집중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SK그룹으로선 구조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2015년 4월, SK그룹은 SK C&C와 SK㈜의 합병을 전격 발표했다. SK C&C가 SK㈜를 흡수합병하는 구조였고, 합병 비율은 1:0.7367839로 산정됐다. 당시 SK C&C 주가는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반면, SK㈜는 저평가 상태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당시 SK㈜ 지분 7.19%)은 “SK㈜ 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합병은 그대로 강행되면서 합병 법인은 SK㈜라는 이름으로 새 출범했다. 최태원 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23.4%를, 총수 일가는 30.9%를 보유하게 됐다. 비상장사가 그룹 전체를 간접 지배하던 '비공식 지렛대'는 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최 회장은 공식 지주회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직접 지배하게 됐다. 동시에,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증여세 부담도 일정 부분 완화됐다는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 C&C는 한때 실무형 IT 자회사였지만, SK그룹의 지배 전략 한복판에서 작동한 핵심 변수"라며 “총수 일가 지분의 이동 경로, 규제 회피 수단, 위기 대응 메커니즘이 모두 이 회사 안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지배구조의 지렛대]② 테마파크, 삼성의 심장이 되다

지배구조의 핵심이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놀이공원 운영사 삼성에버랜드는 1990년대 후반, 총수 일가 지분을 집중시키는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계기로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정점으로 부상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삼성그룹의 기둥을 세운 셈이다. 이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까지 이어지며, 삼성에버랜드는 '재벌 승계의 교과서'가 된 첫 사례로 남았다. 15일 재계 등에 따르면 지난 1976년 개장한 삼성에버랜드의 전신 '용인자연농원'은 고(故) 이병철 회장의 국토녹화 구상에서 비롯된 사업이었다. 초기에는 사파리월드, 유실수 재배, 양돈 사업까지 포함한 복합농업단지였으나,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테마파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1996년, 단 한 번의 전환사채(CB) 발행이 계기가 됐다. 그해 10월, 에버랜드는 총 125만4000주의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에 발행하기로 결의한다. 이 가격은 당시 추정 주가(약 8만5000원)보다 9배 이상 낮았다. 일부에선 상속세법상 주당 10만원, 법원 감정으로도 1만4825원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전환사채는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발행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제일모직 등 기존 주주들은 인수권을 포기한다. 이후 이재용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전량을 실권주 방식으로 배정했다. 이 회장은 이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도 '시작은 미약'했다. 이재용 회장은 1995년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60억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입했다. 이후 두 회사가 상장되자 이를 매각해 605억원을 확보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에버랜드 CB 매입에 투입했다. 결국 이 지분은, 향후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의 출발점이 됐다. 1998년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 거래가 이뤄진다. 에버랜드가 당시 비상장 상태였던 삼성생명 지분 21%(344만 주)를 주당 9000원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다. 이로써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라는 구조가 완성된다. 여기서 삼성생명이라는 금융계열사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수익을 내야 하기에, 항상 대규모 현금자산을 보유한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은 자연스럽게 시가총액이 큰 삼성전자 주식을 안정적으로 장기 보유할 수 있었고, 이는 곧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는 자산 기반이 됐다. 결과적으로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장악하게 되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사업적 비중은 작지만, 비상장사이자 총수 일가의 지분이 집중된 에버랜드는 그룹의 실질적 지배축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에는 순환출자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이었기에, 비상장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연결하는 구조는 제도상 허용된 회색지대 전략이었다. 당연히 법적 논란도 뒤따랐다. 2000년 법학 교수들이 이건희 회장과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고, 실무 임원들은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사건은 종결됐다. 당시 판결은 “경영상 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 있었다"는 논리를 따랐지만, 재벌 편법승계의 대표적 상징으로서 사회적 비판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삼성에버랜드의 영향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에버랜드는 2015년,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꾼 뒤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추진한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한 최대주주였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한 핵심 계열사였다.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 자산·매출 기준으로 삼성물산이 3배 이상 크다는 점에서, 이 비율은 사실상 이 회장의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구조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삼성물산 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6%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은 외부 자문기관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훗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과 얽혀, 국민연금의 결정이 부당했다는 법적 판단과 사법 처리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합병은 그대로 성사됐고, 이재용 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8.1%를 확보하면서 지배구조 최상단에 오르게 된다. 그 결과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 삼성물산 →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로 완성됐다. 표면적으로 지주회사는 없지만,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각 계열사 인사와 전략, 투자 방향의 중심에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는 놀이공원이라는 비주력 사업에서 출발해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중심축으로 진화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지분과 구조를 통한 지배력 확보, 비상장사의 활용 등 그룹사 지배구조 문제의 해결법을 제시한 해설집이 됐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지배구조의 지렛대]① 한화에너지, 전산 운영서 발전까지 ‘카멜레온’…자본금 30억원 출발해 승계의 허브로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는 단순한 지분 도표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계열사였던 한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지배구조의 핵심 축으로 작동하는 일이 적지 않다. IT 자회사, 물류회사, 태양광 발전사 등으로 출발했지만, 총수 일가의 지분 집중과 내부거래를 거쳐 그룹 전체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된 기업들이 있다. 에너지경제는 그런 '시작은 작았지만 결국 창대해진 결정적 회사'들에 주목했다. 그룹의 전략, 승계의 논리, 그리고 법과 제도 사이에 놓인 한국 재계의 현실을 따라가 본다. 한화그룹 승계의 첫 단추는 지난달 김승연 회장이 보유해왔던 ㈜한화 지분 22.65% 가운데 절반인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증여 후 그룹의 지주사격인 ㈜한화의 지분율을 따져보면 한화에너지가 22.16%, 김 회장 11.33%,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9.77%,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5.37%,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5.37% 순으로 구성된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이보다 8개월 전인 지난해 7월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한 것이다. 공개매수 결과 이전까지 9.7% 수준이었던 ㈜한화 지분율을 14.9%로 5.2%포인트(p) 급격히 늘릴 수 있었다. 지난해 공개매수가 없었다면 지난달 갑작스레 김 회장이 지분 절반을 증여했더라도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한화에너지가 승계의 핵심이자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 등 오너 3세가 지분을 100% 보유한 계열사다. 지분율은 김동관 부회장이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씩 보유하고 있다. 오너 3세의 개인 회사에 가까운 한화에너지가 ㈜한화를 지배하게 되면서 결국 '오너3세→한화에너지→㈜한화→핵심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게 됐다. 그동안 김 회장이 보유한 지분 22.65%를 직접 세 아들이 승계하는 방식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나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증여세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한화에너지가 20여년 이상 오너 3세의 승계를 위해 지원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한화에너지의 전신은 한화S&C다. 한화S&C는 그룹의 전산 시스템 운영을 맡은 계열사로 20001년 ㈜한화의 정보 부문을 분사해 설립됐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30억원에 불과했으며, 지분율은 ㈜한화가 66.67%(40만주), 김승연 회장이 33.33%(20만주)를 보유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할 만한 계열사가 아니었으나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화그룹의 승계 핵심으로 낙점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2005년 6월 ㈜한화는 보유한 한화에너지 지분 66.67%를 김동관 부회장에게 매각했다. 동시에 김승연 회장도 보유 지분을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 등 두 아들에게 각각 절반씩 매각했다. 한화S&C는 이듬해인 2007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이에 참여한 결과 지금의 지분율이 완성됐다. 오너 3세의 개인회사로 전환되면서 한화S&C는 더 이상 그룹의 전산 운영 사업에 안주하지 않았다. 한화S&C는 2007년 한화종합에너지를 인수해 다른 사업 영역으로 진출했다. 이후 2012년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의 자회사인 여수열병합 지분 100%를 인수했으며, 여수열병합을 한화에너지로 사명을 바꿨다. 이에 따라서 한화S&C→한화에너지의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한화에너지는 2015년 말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임팩트)의 인수에 참여하면서 큰 폭으로 몸집을 불리는데 성공했다. 2017년에는 국내 대기업그룹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화S&C는 투자회사인 에이치솔루션과 사업회사인 한화S&C로 기업 분할을 단행했다. 이후 한화S&C는 다시 한화시스템과 합병했다. 정리하면 에이치솔루션→한화에너지로 지배구조가 변화된 것이다. 한동안 투자회사로 존재감을 보였던 에이치솔루션은 2021년 자회사에 역합병되면서 현재의 한화에너지 단독 체계가 완성됐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화에너지의 사업 영역은 전산 운영에서 투자회사로, 다시 발전사로 마치 카멜레온처럼 바뀌어가면서 외형을 확장해왔다. 실제 지난해 기준 사업별 매출 비중은 테레프탈산(PTA) 생산·판매 32.17%, 선박 엔진 17.73%, 전기제품 공급 14.08%, 태양광 14.03%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정체성은 20여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돼 왔다. 오너 3세의 개인회사이자 ㈜한화의 지분을 확보하는 승계의 허브이자 핵심이라는 정체성이다. 실제 한화S&C는 2007년 오너 3세의 개인회사가 된 직후 ㈜한화의 지분 2.2%를 확보하면서 처음으로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장기간 2.2%의 지분을 유지해왔으나 투자회사인 에이치솔루션 시기인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한화 지분을 늘려갔다. 한화에너지로 역합병된 이후는 9.7%까지 지분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공개매수와 함께 고려아연이 보유한 ㈜한화 지분까지 인수하며 ㈜한화 보유 지분을 22.16%까지 늘려왔다. 이에 김 회장이 돌연 지분 증여를 결정했음에도 오너 3세가 안정적으로 ㈜한화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에너지는 최근 20여년 동안 오너 3세의 승계를 위한 지원군 역할을 도맡아왔다"며 “최근 한화그룹이 승계 관련 잡음이 발생했지만 오너 3세가 한화에너지를, 한화에너지가 ㈜한화를 지배하는 구조가 명확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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