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이 10대 그룹의 성적표를 내놨다. 삼성 그룹은 기초체력이 남들과 차원이 달랐고,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영업이익 1위답게 재무구조가 개선됐다. 반면 유통 공룡인 롯데와 신세계는 악화된 상황을 돌리지 못했다. 아울러 10대 대기업 중 절반이 영위하고 있는 석유화학의 불황은 그룹사 전반적으로 사업환경을 악화시켰다. 지난달 29일 한국기업평가는 사업환경, 재무부담, 신용등급 등을 종합해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주요 10대 그룹사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 그룹사가 주로 영위하고 있는 산업의 업황△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으로 차입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차입금의 절대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국내 그룹 중 등급전망과 사업환경이 확실히 개선된 그룹은 현대차그룹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금융부문을 제외하고 402조원의 매출을 냈고 30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룹사 기준으로는 지난해 영업이익 1위다. 올 4월 한기평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신용등급 전망도 나란히 상향돼 최고 등급인 AAA를 앞두고 있다. 본업인 완성차의 경쟁력 상승과 이에 따른 매출 호조가 신용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지웅 한기평 실장은 “글로벌 완성차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 제고, 제품믹스 개선 등에 따른 평균판매단가(ASP) 상승, 우호적 환율효과 등에 힘입어 완성차부문을 중심으로 그룹 전반의 영업실적 개선세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올해 하반기에도 전기차 판매 감소를 상회하는 하이브리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은 압도적인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반도체 업황을 극복한 모습이다. 지난해 반도체부문은 14조9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반면, 투자 비용으로 27조7000억원의 현금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삼성의 기초체력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그룹의 차입금 의존도는 5%로 롯데, SK, CJ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차입금 의존도는 30% 내외를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삼성그룹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올 상반기 반도체 산업이 회복세가 되자 다시 성장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여전히 현금 보유량이 차입금보다 많다. 송종휴 한기평 실장은 “축적된 유보현금 등 재무적 완충력을 기반으로 그룹 전반의 매우 우수한 재무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2023년 그룹 영업실적은 크게 감소하였으나, 2024년 상반기 회복세에 있다"고 진단했다. 한기평은 신세계와 롯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양 사의 차입금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말 기준 차입금 의존도는 35%~40% 수준으로 30%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본업으로는 차입금을 갚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신세계는 5배, 롯데는 7배 수준에 이른다. 롯데는 10대 그룹 중 가장 높으며 신세계는 한화 다음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1배가 되지 않고, 포스코와 LG가 2배 미만임을 고려할 때 양사의 재무 부담은 높은 수준이다. 두 그룹의 재무부담은 인수합병(M&A) 영향이 컸다. 효과도 아직까지는 미미하다. 신세계그룹이 3조5000억원에 인수한 지마켓(구 이베이코리아)은 적자다. 롯데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2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구 일진머티리얼즈)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 2분기 영업이익 30억원 수준으로 M&A 효과가 있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다. 본업 경쟁력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장미수 한기평 연구원은 “지난해 이마트의 별도 기준 매출액은 역성장했고, 관리비는 상승해 수익성 저하 추세가 지속됐다"면서 “면세점 역시 역기저효과, 회계 처리방식 변경 등으로 수익성이 급락했다"고 진단했다. 그룹사 전반적으로 사업환경은 좋다고 보긴 어렵다. 조선 부문과 기계 및 방산 부문이 핵심인 HD현대그룹만 예외다.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의 주가가 연초 대비 약 3배 상승한 것이 대표적이다.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부문 역시 호조다.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은 5366억원으로 전년 동기 522억원과 비교해 10배 이상 상승했다. 그 외 다른 그룹사들의 전망은 그리 좋지 못한데 이는 석유화학과 이차전지 부문 때문으로 풀이된다. 석유화학 부진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 △여천NCC △SK어드밴스드 등 올레핀 위주 업체는 지난해 대비 적자폭은 축소됐으나, 고유가 기조, 중국의 대규모 증설 물량 유입 등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못한 상황이다. 주요 석유화학 제품 스프레드가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하회하고 있다. 이차전지 부문은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 우려 속 투자부담까지 얹어진 상태다. LG와 SK그룹은 업황 악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1.52배에 불과하던 SK그룹의 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2023년 4.32배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LG그룹 역시 1.11배에서 1.90배로 상승했다. 유준기 위원은 “LG그룹은 사업환경과 등급전망 모두 중립적 하단에 위치했다"면서 “이는 사업환경이 비우호적인 이차전지, 석유화학, 디스플레이에 대한 노출도가 높기 때문"으로 지적했다. 박원우 연구원은 “SK그룹의 신용도 방향은 정유, 석유화학 및 발전사업의 이차전지 손실부담 상쇄 정도, 이차전지 사업의 수익구조 개선과 추가 투자유치 등을 통한 추가적인 차입부담 제어 여부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