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들의 '밸류업'을 위해 주주가치 제고와 더불어 균형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와 함께 26일 서울 상장회사회관에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20여 년간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가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기업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입법적 개선이 보다 확충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환영사를 맡은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 겸 한경연 원장은 “이번 상법 개정이 장기적 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영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기업들의 신속한 경영판단이 어려워지고 이사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온갖 소송과 사법 리스크에 시달릴 가능성이 제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 활성화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명이 넘고 주식소유의 목적도 제각기인 상황에서 이사가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과도한 민사책임으로 인해 이사의 혁신적인 경영활동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은 자명하다"며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 회사의 이사책임 보상계약제도 도입, 회사의 피고측 소송참가제도 도입 등을 주장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지평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정책적으로 경영권방어를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경영권방어를 제한해 소위 기업지배권 시장을 활성화할 것인지는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결정으로 경제주체들의 사회적 합의에 바탕할 수밖에 없다"며 “제도가 오남용될 것이 두려워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방어를 위한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선진기업지배구조 정책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입장에서 경영권방어가 필요한지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사법심사를 기반으로 하므로 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고 장기경영 전망도 불투명해 굳이 '경영진 개인'을 위해 경영권방어를 할 필요성이 없다면 위와 같은 수단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현재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영향을 주는 세목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상속세 및 증여세"라며 “고세율, 최대주주할증, 기업승계제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가업상속공제의 불합리한 요인 등으로 기업승계의 불확실성이 상존해있고 근본적으로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지 않음으로 인한 비효율성등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적용대상 확장, 상속재산 처분시까지 과세 이연, 연부연납기간 연장 등 납부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투자자 측 대표 강성부 KCGI 대표, 기업 측 대표로 김지현 헥토이노베이션 상무, 정인철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 유관기관 대표로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본부장,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학계 대표로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는 경영의 축소나 매각을 유인해 기업의 유지·발전을 저해하는 '경영권 승계금지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업승계를 원활히 하고,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위해 현행 상속세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인철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는 “국내 소액투자들과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이 증가추세여서 국내기업은 투자 유치를 위해 글로벌 공룡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른 시일 안에 자리 잡아 국내 기업의 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상법 개정 논의의 시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을 위한 투자자 보호장치 강화"라며 “재계 눈치를 보다가 법을 형해화시키면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국인 자금이 우리 주식시장에 보다 많이 유입되고 미국 등 외국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국내 자금이 돌아오는 것이 필요한데 외국인 투자자나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주주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사의 의무 개정 논의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지현 헥토이노베이션 상무는 “이사의 경영적 판단은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똑같이 만족시키기 어렵고 특히 빈번하게 주주가 바뀌는 코스닥 시장에서는 투자기간에 따라 주주의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다"며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과 함께 코스닥 밸류업 ETF 활성화 등 종합적인 투자환경 선진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자본시장 주체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강력한 밸류업 정책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이사가 회사와 이익충돌관계를 형성하거나 사익추구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발달한 법리이나, 업무집행 과정에서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인수합병(M&A)과 같이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는 영역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이사의 의무와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공적인 기업 벨류업을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경영권 방어법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기업 밸류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방어법제의 개선도 병행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