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승계지도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그려볼 수 있다. 지배구조는 투명하다. 지주사 체제를 일찍부터 확립했고 총수 일가 지분율도 높은 편이다. 다음 세대로 증여·상속을 해도 소유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외에도 26명이 지주사 주식을 들고 있어 '가족 소유' 성격이 강하다. 경영권 측면에서는 50년 넘게 이어온 '장자 승계' 원칙이 기로에 선 상황이다. 4세인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G그룹 지배구조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인 ㈜LG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LG 최대주주(이하 3월 3일 기준)는 구광모 회장(16.27%)이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합치면 ㈜LG 지분율은 42.54%가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6.87%를 가지고 있어 이를 합산하면 과반에 육박한다. 영국에 본사를 둔 자산운용사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엘엘피'(Silchester International Inv)가 ㈜LG 지분 7.17%를 들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실체스터는 LG㈜의 3대 주주다. 주요 계열사들은 ㈜LG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LG전자(35.27%)를 위시해 △LG화학(34.95%) △LG유플러스(38.25%) △LG생활건강(34.74%) △LG CNS(44.95%) 등이다. LG전자는 LG이노텍(40.79%), LG디스플레이(36.72%), 엘지마그나이파워트레인(51%) 등을 아래에 두고 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79.38%를 지니고 있다. LG유플러스는 LG헬로비전 주식을 58.61% 보유 중이다. 이밖에 손자 또는 그 아래에 있는 회사들도 각 계열사들이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편이다. LG전자의 100% 자회사로는 하이프라자, 하이엠솔루텍, 하이케어솔루션, 하이텔레서비스, 에이스냉동공조 등이 있다. 씨에스리더, 아인텔레서비스, 씨에스원파트너, 위드유, 유플러스홈서비스 등은 LG유플러스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LG생활건강 아래로는 코카콜라음료(지분율 90%)와 해태에이치비(100%) 등이 있다. LG화학은 100% 자회사로 팜한농을 두고 있다. ㈜LG 지분을 확보하면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 셈이다. 첫 번째 변수는 3대 주주인 실체스터의 행보다. 이 회사는 주로 저평가된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2023년 ㈜LG의 5% 이상 지분 보유 주주로 이름을 올린 뒤 지난해까지 꾸준히 주식을 사들였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최대주주와 경영 보폭을 맞추고 있다. 5% 확보 이후 공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LG그룹에 '외국계 감시자'가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주주가치 제고 기대에 지주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는 ㈜LG 이사회 측이 제안하는 주주 환원 정책에 우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체스터가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와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달 ㈜LG 정기주주총회 역시 이변 없이 넘어갈 전망이다. ㈜LG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전자주총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상향 등 대대적인 정관 변경에 나선다. 더 큰 관전 포인트는 ㈜LG 지분 소유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LG그룹 경영은 '구광모 체제'가 사실상 완성된 상태다.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탄탄한데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던지며 비주력사업에서 손을 떼고 신성장동력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 스마트폰·태양광 패널 등 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전장,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역량을 쌓는데 집중했다. 이같은 결정은 LG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유 관련 지도는 쉽게 그리기 힘든 상황이다. LG그룹은 55년여간 맏아들이 그룹 지배권을 물려받고, 경영에 참여했던 나머지 형제들은 독립한다는 기조를 지켜왔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떠나자 동생인 구철회 회장은 LIG그룹을 차려 나왔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세 형제는 힘을 모아 LS그룹을 만들었다. 구인회 회장(1969년 별세)의 장남인 구자경 회장(2019년 별세)은 1995년부터 LG그룹 2세대를 이끌었다. 구자경 회장의 동생들은 아워홈(구자학), LF(구자승), LB인베스트먼트(구자두) 등을 맡았다. 2018년 취임한 3대 구본무 회장의 형제들도 경영을 돕다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약속대로 LG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LX그룹(구본준), 희성그룹(구본능) 등이다. 현재는 구광모 회장 체제다. 구광모 회장은 구자경 회장의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양자로 입적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다. 총수 일가들은 혈통보다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법적 절차까지 밟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보수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은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형제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은 4대에 걸쳐 상속을 이어온 탓에 지주사 지분을 지닌 가족 수도 크게 늘었다. 구광모 회장과 엮여 있는 ㈜LG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2.54%로, △LG연암학원(2.17%) △LG연암문화재단(1.14%) △LG상록재단(0.49%) △LG복지재단(0.23%)을 제외하면 모두 개인이다. 구본무 회장의 막내동생이자 LT그룹을 가지고 독립한 구본식 회장이 아직 ㈜LG 지분 4.57%를 가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지분율도 3.11%에 달한다. 이밖에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4.29%)를 포함해 △구본무 회장의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2.97%) △구본무 회장의 차녀인 구연수씨(0.73%) △구형모 LX엠디아이 사장(1.64%) △구본준 LX그룹 회장(1.06%) 등도 의미 있는 수준의 ㈜LG 주식을 보유 중이다. 이밖에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씨(0.69%)를 포함한 18명의 친척 및 방계 구성원들이 ㈜LG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게 '세 모녀의 난'으로 불리는 가족간 상속분쟁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대표, 구연수씨는 지난 2023년 2월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며 소송에 나섰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골자로 한 2조원가량이다. 구광모 회장은 해당 지분 11.28% 중 8.76%를 물려받았다. 구연경 대표는 2.01%, 구연수씨는 0.51%를 각각 상속받았다. 세 모녀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지 4년이 지나 '가족간 합의가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모녀는 구광모 회장이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앞선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구광모 회장 손을 들어줬다.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지난 2월 원고 패소로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원고 측이 재산분할과 관련해 주장한 핵심 쟁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할 협의서는 유효하게 작성됐고, 선대 회장이 남긴 유지에 따라 협의서 작성 과정에서 기망 행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결과보다 소송전 자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목을 끈다. LG그룹이 50년 넘게 지켜온 '장자 승계' 원칙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일단 세 모녀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더라도 '구광모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세 모녀가 승소해 법정 상속비율로 지분을 재분배해도 합산 지분은 15%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회장 힘까지 모아 14%가량 지분 확보가 가능해 보인다. 특수관계인에 그룹 내 공인재단들이 있는데다 다른 가족들도 '원칙을 깬' 세 모녀 쪽보다는 구광모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5세 경영체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구광모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친척들이 지분을 조금씩 쪼개 '가족경영'을 펼치는 와중에 16.27%는 충분한 지분율이 아니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LG그룹과 비교해 훨씬 복잡하고 불완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은 특정인에게 경영권과 지분을 모두 몰아주며 '소유와 경영'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LG그룹의 평화로운 세대 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장자 승계' 원칙이 계속 지켜질지 여부에 재계 시선이 쏠리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LG그룹의 '가족 소유' 전통은 이어져도 '1인 경영' 체제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가족경영이 한국적 특수성 안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환경에서 주주들이 '장남에게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LG가 전통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을 지가 쟁점이다. LG가 '인화(人和)'를 강조하며 가족 간 합의로 일을 처리해온 전통에도 금이 갔다. 가족 사이에서 '유언장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이는 LG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힘을 보태주는 요소다. ESG 경영이 중요해진 시대에 '불투명한 거버넌스(G)'는 기업 가치를 깎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구광모 회장이 LG그룹 '퀀텀점프'를 이끌 수 있을지다. 지금까지는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5세 체제를 감안한다면 보다 눈에 띄는 도약이 필요해 보인다.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과거와 같은 구본무 회장을 뛰어넘는 LG그룹의 전성기를 열고, 자녀는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소유 측면에서는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에 대한 그림을 아직 그리기 힘든 단계다. 구광모 회장은 약 7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모두 납부했다. 지금부터는 ㈜LG 등 배당 확대나 보수가 주요 수입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LG에서만 47억 1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구광모 회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탓에 ㈜LG 외 주요 계열사 주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LG CNS는 미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97만 2600주(지분율 1%)를 아직 들고 있다. LG CNS의 시가총액은 3일 종가 기준 약 7조 2000억원이다. LX그룹 독립이 LG 승계 역사의 마지막 '전통적 이별'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경영에 참여 중인 동생들이 없는데다 이제 떼어낼 수 있는 '적당한' 사업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LX그룹 분할 당시에도 판토스 등 알짜자산 배분을 두고 가족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결론적으로 LG그룹의 승계지도는 앞으로 경영권보다 소유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과거 LG의 계열 분리가 현장에 있던 삼촌들에게 사업체를 떼어주는 방식이었다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4세 이후 친척들간 갈등은 지분 분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LG그룹이 고수해온 '장자 승계' 원칙은 재산권 행사라는 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충돌하며 시험대에 올라선 모습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