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이 4월을 넘지 않는다 해도 국제유가는 2분기에 평균 배럴당 110달러 이상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중단 사태가 회복하려면 최소 몇주에서 연말까지 소요되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징수를 주장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도 전쟁 전 수준의 유가는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유가 체제를 전제로 에너지 정책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발전 믹스에서는 LNG를 줄이면서 원자력과 석탄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조기 퇴출을 위해 재생에너지, 전기차 중심의 에너지전환에 강하게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LNG 발전 비중이 줄게 되면 재생에너지까지 영향을 받게 되고, 고유가는 재생에너지 생산단가를 높이기 때문에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에너지안보와 비용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동 원유 생산 중단량 일 910만배럴, 회복 몇주에서 연말까지 소요 8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을 비롯한 국내외 관련 기관들에 따르면 이번 전쟁이 4월에 종료되더라도 브렌트유 가격은 2분기 평균 배럴당 115달러, 4분기에도 9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에도 초반기에는 80달러를 넘었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60달러 중반대로 수렴돼 연평균으로는 70달러 중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일일 약 91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 차질이 발생한 상태다. 이는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9% 수준이다. 생산 및 수출 정상화에는 나라 사정에 따라 최소 몇 주에서 길게는 연말까지 소요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천연가스 시장 역시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카타르 국영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의 약 17%가량이 이란군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어 완전 정상화까지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타르는 미국, 호주에 이어 세계 3위 LNG 수출국이다. 이는 글로벌 LNG 공급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LNG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전력시장과 산업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일종의 통행세를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해협이 자기네 영해라며 배럴당 1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VLCC급은 원유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데, 배럴당 1달러 통행세를 내게되면 200만달러(약 28억원)를 내야 한다. LNG 선박에도 같은 수준의 통행세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유가 및 가스 가격은 단기적인 급등에 이어 중장기적으로도 높은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분간 석유 최고가격제 유지…LNG 발전 줄이고, 원전·석탄으로 대체 전쟁이 끝나더라도 2분기까지는 높은 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물가 안정을 위해 3월 13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시아의 석유가격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제품가격을 국내 시장에 반영하면 휘발유는 약 2000원, 경유는 약 3000원 수준이다. 차량 운행이 늘어나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어 타이트한 연료 수급으로 인해 가격은 좀처럼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LNG 가격도 높게 형성됨에 따라 발전 믹스에서 LNG 비중이 줄고, 원자력과 석탄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북아 LNG 현물가격은 MMBtu당 19.8달러로 전쟁 전의 10달러보다 98%나 오른 상태다. 북반구 여름철 냉방전력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가격은 더 오르고, 이상고온까지 겹치게 되면 가격 폭등도 올 수 있다. 당장 재생에너지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정부로선 원전과 석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화석연료 줄이고,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전환 가속 이재명 정부는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우선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정책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 정책사업도 기존 목표인 올해 500개, 2030년까지 2500개 구축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나라 행정리가 3만8000개인데 왜 2500개만 하는 것이냐"며 늘릴 것을 주문했다. 또한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방 우대, 경찰차·택시·렌터카·법인차 등 전기차 전환, 충전시설 보급 속도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환 장관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2030년 신차의 40%를 전기 및 수소차로 전환하는 등 모든 동력원의 전기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중동 사태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전력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 환경에서는 연료비 영향을 받지 않는 원전과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낮은 석탄이 전력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정부 역시 LNG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원전 이용률을 높이고, 2040년 석탄발전 60기 폐쇄를 유지하면서 폐쇄 집중도를 후반부로 늦출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LNG 발전 비중이 줄게 되면 재생에너지 보급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태양광은 햇볕에 따라 하루 3~4시간만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몰 시간대에는 이를 보완해 줄 발전원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2~3차례 발전기 가동을 번복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현재로선 LNG가 유일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완 수단으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를 제시하고 있지만, 비용과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다. 에너지산업 컨설팅업체인 C2S컨설팅의 최승신 대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핵심 원자재 공급망이나 설비 구축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전력 수급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태양광과 풍력 역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과 소재에 기반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원전, 재생에너지, 화석연료를 포함한 균형 있는 에너지 믹스를 유지하는 것이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유가 전제로 설계된 에너지전환 유지 어려워…현실 기반 전환 요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정책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정책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에너지안보와 비용 문제가 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전과 같은 저유가 환경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에너지 정책도 이러한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저유가 시대를 전제로 설계된 에너지 전환 정책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며 “이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그리고 비용이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현실 기반 정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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