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자타공인 국내를 대표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모범생'이다. 일찍부터 지주사 체제의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성했다. 환경·지역사회 등에 기여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매년 성적표를 발표하고 있다. '돈만 벌어서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 철저히 투영된 결과다. 또한, SK는 지분 측면에서 '최태원 체제'가 안정화돼 있는 상태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 등 가족간 계열사 분리도 깔끔하게 매듭지었다. 최태원 회장의 세 자녀는 회사 안팎에서 자신들만의 경험을 쌓아 나가고 있다. 다만,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이 변수다. 비록 전 부인 노소영씨에게 약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을 선고한 항소심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원심파기 및 서울고법 환송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재산분할 액수 크기에 따라 SK그룹 지배체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규정한 개정 상법 시행 이후 지주사 SK㈜의 자사주 비중이 상당히 높은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재계는 중장기적으로 SK그룹 총수 일가가 사촌 등 가족들을 아우르는 '협력경영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중간지주사 숫자를 줄이는 등 일정 수준 조직 개편도 뒤따를 전망이다. SK그룹 총수일가는 SK㈜ 지분을 확보해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SK㈜는 공정거래법상 SK그룹의 지주회사다. SK㈜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17.9%)이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포함하면 지분율이 25.41%가 된다. 주요 주주는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6.66%) 정도다.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 자손들도 20명 이상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지분율은 0.01~0.02% 수준에 불과하다. 이밖에 국민연금공단이 SK㈜ 주식 7.75%를 들고 있다. 자사주 비중도 24.8%에 이른다. 주요 계열사는 그 아래로 가지처럼 뻗어 있다. SK㈜가 △SK스퀘어(32.14%) △SK이노베이션(51.09%) △SK텔레콤(30.57%) △SKC(40.64%) 같은 핵심 계열사 및 중간지주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SK네트웍스(43.90%), SK바이오팜(64.02%), SK에코플랜트(63.17%) 등도 SK(주) 지배력 아래에 있다.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SK하이닉스 최대주주는 SK스퀘어(20.07%)다. 국민연금공단 지분(7.35%)과 자사주(5.09%)도 있다. SK스퀘어는 이밖에 SK플래닛(86.26%), 티맵모빌리티(60.09%), 11번가(80.26%) 등도 거느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아래로는 에너지·배터리 계열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인 SK온(100%), SK에너지(100%), SK지오센트릭(100%), SK어스온(100%), SK아이이테크놀로지(53.35%) 등 지분을 보유 중이다. SKC는 SK넥실리스(100%)와 SK엔펄스(99.05%) 같은 회사 주식을 지니고 있다. SK텔레콤 자회사로는 SK브로드밴드(100%), SK텔링크(100%) 등이 있다. '사촌경영'의 끈도 탄탄하다. SK그룹의 또 다른 축인 SK디스커버리는 최창원 부회장이 맡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최종건 창업회장의 아들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SK디스커버리 지분은 최창원 부회장(41.69%)을 중심으로 특수관계인들이 51%를 들고 있다. SK디스커버리는 SK㈜를 중심으로 한 지주사 체제에 편입되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 지분율도 0.12%에 불과하다. 그룹 지주사인 SK㈜가 SK디스커버리와 별도로 독립돼 있다는 뜻이다.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40.79%), SK가스(72.08%) 등을 지배한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 주식 66.37%를 들고 있다. 지분상으로는 거의 엮여있지 않지만 이들은 'SK' 브랜드를 함께 사용하며 계열사처럼 운영된다. 여기에 최창원 부회장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는 등 그룹 전체 '2인자' 역할을 맡고 있다. 법적으로는 '남남'이지만 브랜드·거버넌스는 '한 울타리'에 들어간 모양새다. SK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일부를 개편했다. 지난해 11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법인을 출범시킨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통해 자산 규모 100조원이 넘는 민간 에너지 회사로 닻을 올리게 됐다. SK E&S는 SK이노베이션 내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운영된다. SK㈜는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지분 매각 작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말 이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하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거래 대상 주식은 SK㈜가 보유한 70.6%다. 나머지 29.4%는 최태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반도 손본다. SK디스커버리, SK이노베이션, SK에코플랜트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가 따로 전개하던 사업을 매각 또는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SK디스커버리가 지닌 SK이터닉스 경영권을 팔고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안 등을 추진 중이다. 사촌 경영인 간 따로 전개하던 사업을 최태원 회장에게 집중시키며 중복사업을 정리하는 성격도 있다. SK그룹 지배구조 '옥에 티'는 SK하이닉스가 지주사의 손자회사 자리에 있다는 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증손회사를 두려면 손자회사가 해당 기업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 확장을 막기 위한 구조 규제다. 반도체 설비 투자 비용이 수백조원 규모로 커진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투자 장애 요인으로 전락했다. SK하이닉스가 사업에 투자를 하려 해도 외부 자본을 참여시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 역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지분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증손회사의 의무 보유 지분율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 등이 거론된다. 수혜를 받는 기업이 사실상 SK그룹뿐이라 실제 법 개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자본시장은 SK그룹 중간지주회사인 SK스퀘어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21년 기존 SK텔레콤이 인적분할해 탄생했다. 통신 사업 중심의 존속 회사는 SK텔레콤으로 남고 투자 사업 중심의 신설 회사는 SK스퀘어로 나뉜 것이다. 인적분할 당시부터 SK하이닉스의 투자 여력을 끌어올리는 차원에서 SK㈜와 SK스퀘어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 안팎에서 나왔다. SK스퀘어 측이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SK㈜와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고려한 적도 없다"고 선언했지만 합병 가능성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진행형인 노소영 관장과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은 SK그룹 '최태원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대형변수다. 지난해 대법원 항고심 선고로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은 마무리됐지만 파기환송된 재산분할 건은 지난달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리에 들어간 상태다. 2022년 1심은 재산분할액을 665억원으로, 2024년 2심은 1심보다 20배 이상인 1조3808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재산분할액에 대해 파기 판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조치했다. 결국 파기환송심의 최대 관심사는 재산분할 최종금액의 크기다. 2월 23일 종가 기준 SK㈜의 시가총액은 약 27조원이며,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1297만5472주의 가치는 총 4조8300억원 수준이다. 파기환송 결정으로 최태원 회장이 현재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은 맞지만, 파기환송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총수일가의 이혼소송 리스크를 유리하게 해소하더라도 SK㈜는 자사주 문제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SK㈜는 자사주를 24.8% 확보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외 특별한 주주가 없어 경영권에 위협을 받지 않겠지만 총수일가 지분율이 25.41%로 압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SK그룹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에게 경영권 위협을 당했던 '트라우마'를 잊지 않고 있다. 승계 측면에서 보면 SK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이변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주 시절 '형제경영'과 현재 '사촌경영'을 지나 중장기적으로는 '가족경영' 체제를 더욱 단단하게 가져갈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회장을 축으로 지분이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지분 관계가 거의 엮여 있지 않음에도 SK그룹 전체를 함께 지휘하고 있다. 현재까지 분쟁을 일으킬 여지가 있는 다른 사람은 없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앞서 최태원 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친척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SK㈜ 등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30대 시절이던 1998년부터 SK그룹을 이끌어왔다. 중간 중간 고비가 있을 때 여동생인 최기원 이사장은 최태원 회장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왔다. 다른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보유주식 대부분을 팔아 현금화했다. 지금은 SK스퀘어를 이끌며 전문경영인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지만 SK㈜를 비롯한 주력사 지분은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은 2023년 그룹 최연소로 임원이 된 후 경영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최근 미국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날 때 동행하는 등 존재감을 점차 발산해나가고 있다. 향후 그룹의 바이오 신사업 분야에서 영향력을 보다 확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차녀 최민정씨는 주로 독자 노선을 걸었다. 해군 장교 임관, SK하이닉스 근무, 미국 스타트업 창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가고 있다. 장남 최인근씨는 SK E&S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로 이직한 상태다. SK그룹이 'ESG 모범생'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들이 일감몰아주기나 계열사 '꼼수 합병' 등 우회적인 경로로 자산을 늘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다른 총수 일가 자녀들과 비교하면 배당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어 각종 보수 등을 통해 증여·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 보면 이혼소송 불확실성만 제거하면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재산이 늘어날 여지가 더 많다. 두산과 협상 중인 SK실트론 매각 작업 역시 최태원 회장이 '실탄'을 상당 수준 챙길 수 있는 딜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협상에서 최태원 회장 보유 지분은 팔리지 않는다. 회사 가치가 높아지면 경영권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개인 주식은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그동안 ESG, 사회적 가치 등의 중요성을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이를 종합하면 시장과 여론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족경영' 기틀을 다지고 나아가 일부 계열사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한때 최태원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지주사인 SK㈜가 갑자기 '투자전문 자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던 시기다. 당시 SK㈜는 정기주주총회 이후 '파이낸셜 스토리'를 발표하며 '주가 200만원, 기업가치 140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거래가가 20만원대에 머물렀던 때다. 통상 대기업 총수 일가는 상속세 부담 등을 고려해 지주사 주가가 낮은 상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최태원 회장이 특정인에게 그룹 지배권을 통째로 넘기지 않기 위해 SK㈜ 주가를 높이고 싶었던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23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나만의 승계 계획이 있지만 아직 공개할 시점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