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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성장 페널티’ 기업규모별 규제 문제 심각···연간 GDP 111조원 손실”

기업이 성장해 고용을 늘릴수록 혜택은 끊기고 규제와 조세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 특유의 '성장 페널티'(Growth Penalty)가 국내 경제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0일 발표한 '한국 경제의 저성장 원인 진단과 기업생태계 혁신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50·300인 등 규제 장벽 앞에서 인위적으로 성장을 멈추거나 기업을 쪼개는 등 규제 회피를 위한 '안주 전략'(Bunching)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안주 전략은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저성장을 가져오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업들이 성장을 멈추면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의 채용 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소기업에 인력이 몰리면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경직성까지 더해져 실업이 늘거나 비효율적인 부문에 한 번 배치된 인력이 고착화되며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보고서는 구조적 모형을 활용해 기업규모별 차등 규제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기업생태계 왜곡으로 발생하는 GDP 손실은 약 4.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111조원 규모다.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우리 경제의 신진대사인 '진입-성장-퇴출'의 선순환을 막고 기업생태계를 영세 소기업 중심으로 굳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국내 소기업이 5년 뒤에도 여전히 영세한 규모(10~49인)에 머무는 비율은 최근 60%에 육박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1990년대(40%대) 대비 급격히 상승한 수치다. 기업들이 성장을 도모하기보다는 규제 회피 등을 위해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음을 시사한다. 성장 사다리도 끊어졌다. 소기업이 중규모 기업으로 도약할 확률은 과거 3~4%에서 최근 2%대로 반토막 났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확률은 0.05% 미만으로 떨어졌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조차 시장에서 나가지 않는 퇴출의 병목 현상도 심각하다. 과거 60%에 달했던 퇴출률은 최근 40% 밑으로 떨어졌다. '좀비 기업'들이 한정된 인력과 자본을 붙잡고 있어 혁신 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자원 배분의 동맥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이러한 규제 역설이 한국 기업생태계를 선진국과 정반대인 기형적 구조로 변질시켰다고 주장했다.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위주로 고용을 창출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영세 소기업에 인력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국가 경제 전체를 저생산성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저생산성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Up-or-Out 지원 체계 구축 △투자 중심 자금 조달 생태계 육성 △성장유인형 지원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Up-or-Out(성장 아니면 탈락)'형 지원 체계는 옥석을 가리는 성격이다. 단순히 업력이 오래됐다고 지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매출·고용 증가율 등 혁신 지표를 매년 평가해야 하는 방식이다. 성과가 있는 기업에는 지원 한도를 과감히 늘려 스케일업(Scale-up)을 돕고, 혁신 의지가 없는 기업은 지원을 즉시 중단하는 성과 연동형 지원 체계이기도 하다. 투자 중심 자금 조달 생태계 육성은 담보 위주 은행 대출만으로는 혁신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반영한 해결책이다.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 및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로 민간의 모험자본이 유망 기업에 직접 수혈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부채 의존적인 성장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밖에 기업 규모와 무관한 기본공제를 신설하고 투자·고용 등 국가 경제 기여도에 비례해 추가 공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성장이 곧 혜택'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가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나 관건은 현장에서의 속도감 있는 이행"이라며 “규제와 조세 제도의 과감한 재설계를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유인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에너지 인사이트] 저유가 장기화에도 환율 급등…한전, 깊어지는 고심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한전의 수익성이 확보되는 구조가 형성됐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23일 1482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를 기록한 뒤 당국의 개입으로 29일 1434원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해 올해 1월 20일 현재 1477원을 기록 중이다. 발전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전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낮더라도 환율 상승이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전가된다. 다만 국제유가 측면에서는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중심으로 산유국들이 꾸준히 원유를 증산해 배럴당 60달러 초반의 안정적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유가는 2021~2022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급등했다가 점진적으로 안정됐고, 최근에도 큰 변동성 없이 낮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후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저유가 기조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LNG 현물가격도 MMBtu당 11달러 초반대를 보이고 있어 일년 전의 13달러 중반대보다 낮게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안정적인 국제유가와 LNG 가격은 한전에 분명 긍정적 요인이다. 국내 전기 도매요금(SMP)은 사실상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안정되면 도매요금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이는 소매요금 급등 압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 유가 안정 기조를 선호하는 동시에, 자국 내 원유·가스 증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한전에는 반사이익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이 늘어나면 유가 급등 가능성은 낮아지고, 연료비 변동성도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가보다 환율 변수의 불확실성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저유가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안정돼야 한전의 연료비 부담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데, 현재로서는 환율이 가장 큰 변수로 남아 있다. 여기에 전력시장 구조 변화도 한전에는 부담 요인이다. 저유가 장기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는 SMP를 전반적으로 하향 안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꾸준히 인상돼 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과 전력 다소비 기업들은 한전의 산업용 요금을 회피하고, 전력도매시장이나 직접구매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전의 판매량 감소와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정책 환경도 녹록지 않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가 안정이라는 명분이 있는 만큼, 요금 인상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요금 동결이 장기화될 경우, 재무 구조 개선은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전의 총부채는 여전히 20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규모 송전망 투자 확대라는 과제까지 겹쳐 있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반도체·AI 산업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송전망 투자는 불가피하지만, 이는 또 다른 재무 부담 요인이다. 결국 한전은 저유가라는 우호적 외부 환경과 환율 급등이라는 불확실성, 그리고 전력시장 구조 변화와 요금 정책 제약이라는 삼중의 압박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유가 안정만으로는 한전의 고민을 덜어주기 어렵고, 환율·요금·시장 구조를 함께 바라보는 보다 정교한 해법이 요구되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 확대, 유연한 발전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근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누적 설비용량을 100GW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외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기만 하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가. 답은 명백히 '아니오'다. 재생에너지는 태생적으로 '간헐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태양광은 해가 뜨지 않으면 한 와트도 생산하지 못하고, 풍력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거대한 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봉장을 자처했던 독일에서 '둥켈플라우테'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바람이 불지 않고 구름이 가득한 날이 며칠간 지속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락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독일은 프랑스의 원전과 북유럽의 수력으로 만든 전기를 비싼 값에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독일 경제에너지부 부국장이 방한하여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만 전력망이 부족하여 5,000km를 깔아야 하고 조기 달성이 어려워서 천연가스발전소 10GW와 수소혼소 발전소 2GW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우리의 3배이고 산업용은 2배를 넘어선다. 전기요금은 폭등했고, 제조업 경쟁력은 급락했다. 유럽 경제의 엔진이었던 독일이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유연한 발전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변할 때 즉각적으로 출력을 조절해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발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30%를 넘어서면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ESS는 가장 응동성이 좋은 자원이어서 주파수 안정화에 기여하고 태양광과 연계하면 밤시간을 버텨줄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기후조건이 나쁜 날이 며칠간 지속되면 여전히 재생에너지과 ESS를 엄청난 양으로 설치한다고 해도 그 단독으로는 무용지물이다.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증가시킨 유럽이 지속적인 가격 폭등을 경험하는 것도 기후조건을 완벽하게 상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 LNG 발전 역시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유연 발전원이다. 출력 조절이 쉽고 빠르게 가동할 수 있어 첨두부하를 담당하는 데 적합하다. 탄소중립을 가는데 있어서 여전히 허점이 있지만 당분간 충분한 용량을 공급하면서 재생에너지 과다 발생일 때 출력을 낮추고 과소 공급일 때 출력을 급격히 올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원이다. 특히 제주도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과도하여 출력제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물리적 출력제약을 입찰제도라는 재무적 출력제약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도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는 엄청난 재무적 손실이다. 재생에너지를 더욱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제주도에 LNG 발전소를 계획대로 건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향후 5년간 매년 12GW씩 설비를 늘려야 달성할 수 있는 도전적 목표다. 그러나 설비만 늘린다고 끝이 아니다.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독일처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섬나라다. 유럽처럼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아 부족한 전력을 수입할 수도, 남는 전력을 수출할 수도 없다. 정부가 정한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은 매우 치밀한 전력시스템의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전, 재생에너지, LNG, ESS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산업의 혈액이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 공급 없이는 어떤 산업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한국은 제조업이 GDP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 강국이다. 전기요금이 중국의 2배를 넘어선 지금, 유연성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버티기 어렵다. 2026년은 에너지 대전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유기적인 상생 전략, ESS, LNG 수소전환 등의 유연한 전원을 결합한 통합 전략 없이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도, 산업 경쟁력 유지도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되, 유연한 발전원을 함께 확보하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을 설계해야 할 때다. 조홍종

김동철 한전 사장 “안전은 타협 불가한 최우선 가치”

한국전력공사(사장 김동철)가 전사 사업소장을 대상으로 한 안전경영 특별 교육과 현장 중심 안전 소통을 통해 '실천하는 안전문화' 정착에 나섰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전사 사업소장 등 350명을 대상으로 '안전경영 특별 교육'을 실시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교육은 인사이동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관리 공백을 사전에 차단하고, 사업소장 중심의 책임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 특히 한전은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소장의 직급과 직군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자료를 활용했으며, 전사 사업소장이 전원 참석해 안전 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교육 과정은 ▲2026년 안전관리 추진 방향 ▲사업소장의 현장 안전관리 중점 사항 ▲안전 관련 법령 이해 등으로 구성됐다. 한전은 이를 통해 신임 사업소장을 포함한 현장 책임자의 안전관리 역량을 선제적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한전은 교육과 함께 현장 안전관리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발주 공사 전 과정에 걸쳐 촘촘한 안전관리 체계를 적용해 작업 전에는 '원포인트 사전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작업 중에는 협력회사까지 포함한 '투트랙 현장 점검'을 실시한다. 작업 이후에도 현장 상황을 재확인하는 등 사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전 지역 본부장들과의 대면 안전 소통을 통해 본부별 특성을 반영한 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현장 안전 활동의 제약 요인을 개선해 사업소 단위의 자율 안전관리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동철 사장은 “안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아무리 훌륭한 안전 정책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업소장을 중심으로 현장 최일선까지 안전 정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 달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단 한 건의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한전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한전은 앞으로도 안전보건 관계자별 필수 안전교육을 지정하고 숙련도에 따라 교육 과정을 차별화하는 '안전교육 커리어패스'를 도입하는 등 현장 중심의 찾아가는 안전 소통을 지속 확대해 직원들의 안전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다”…원전에 대한 ‘전략적 모순’ 시민 인식

최근 정부가 검토 중인 신규 원전 건설에 응답자의 과반수가 찬성한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가운데, 우리 국민이 원자력발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공포와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2월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한 '원자력 에너지와 RE100(재생에너지 100%) 병존 이슈 및 현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시민들은 원자력을 심리적으로는 거부하면서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전략적 모순'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AIST 보고서에 담긴 전국 성인 남녀 18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심리는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뉜다. 먼저 감성적인 영역에서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시민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5점 만점 중 2.84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이는 태양광(3.54점)이나 풍력(3.83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원자력 에너지가 안전한 지에 대해서도 2.91점에 그쳐 척도의 중간점인 3점을 넘지 못하는 등 심리적인 불안감이 여전히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공포의 핵심에는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고,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이 사건을 부정적 인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시민들은 원자력이 위험하다고 느끼면서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3.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특히 국가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3.69점)이나 에너지 안보(3.51점)를 위해서는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즉, “위험해서 싫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모순된 생각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시민들의 심리 상태를 '대체적 수용' 혹은 '마지못한 수용'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후 변화 대처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마지못해서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문항에 대해 많은 시민이 동의(3.39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100%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기술적 한계를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원자력을 그 보완재로 선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현재 추진 여부가 재논의되고 있는 신규 원전 2기 건설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응답자의 54%는 '건설해야 한다'고 대답해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25%)를 크게 앞질렀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층의 71%가 찬성 의견을 밝혔고, 중도·진보층은 50%가 찬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원전과 차세대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바라보는 심리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아다. 전반적으로 차세대 원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평균 10.08점(24점 만점)으로 기존 원전보다 더 낮게 측정돼 아직은 생소하고 부정적인 태도가 강했다. 그러나 세부 분석을 보면 놀라운 반전이 발견되기도 한다. 보통 기존 원전에 대해 남성보다 훨씬 비판적이었던 여성들이, 안전성이 개선된 차세대 원전 기술에 대해서는 오히려 남성보다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사용하는 '병존 모델(CF100, 무탄소 에너지 100%)'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의견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양측 모두 실용적인 관점에서 두 에너지원의 공존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보고서는 원자력을 '기저부하 전력원'으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상호보완적 병존'을 우리나라의 최적 에너지 믹스로 제시했다. 지난해 2월 확정된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원전 비중을 35.2%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29.2%로 가져가는 로드맵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에너지 믹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첫째, 남부 지역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낼 수 있는 전력망 및 송전 인프라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약 56조 5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출력 조절이 가능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도입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보가 필수적이다. 셋째,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등 원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CF100의 국제적 공인과 인증 체계 확립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고서는 “경제적 보상과 안전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할 때 국민들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상호보완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이는 각기 다른 장단점을 지닌 RE100과 CF100의 상보성을 기반으로 우리 산업구조와 지리적 환경 등을 고려해 보다 유연한 탄소중립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테크 성패, 자본조달·실증에 달렸다”

'기후테크' 산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경쟁력이 기술 개발에서 '자본 조달 및 실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이 선언을 넘어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진입하면서다.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20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글로벌 기후테크 투자 트렌드 분석과 한국 투자생태계 활성화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에너지 전환 설비·인프라 투자는 약 2조800억달러로 2015년(약 3800억달러) 대비 5배 이상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각국 탄소중립 약속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설비 구축과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지는 본격적 '이행'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보고서는 실제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한 안정적인 자본 조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후테크 투자는 기술 개발 이후 설비 구축 및 양산 단계로 이어지는 성장 자본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유망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스케일업(Scale-up)의 병목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증 기회 부족도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꼽혔다. 기후테크는 현장에서 실제 설비를 가동하며 쌓은 운영 데이터가 있어야 기술 신뢰도를 입증할 수 있다. 현재 공공 입찰 시스템은 가격 요소를 우선시하고 있어 혁신 기술의 시장 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보고서는 공공이 초기 위험을 선제적으로 분담해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민관 혼합금융 확대'를 제시했다. 이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 소요되는 기후테크 기업의 자금 조달 문턱을 낮추는 핵심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미국 '칼씨드(CalSEED)' 사례를 벤치마킨해 공공 연구시설을 활용한 기술 검증 및 실증 지원, 공공 조달과 연계한 초기 수요 견인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칼씨드는 초기 기후테크 기업의 '죽음의 계곡' 해소를 목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운영 중인 자금·멘토링·실증·보급 통합형 초기 지원 프로그램이다. 박소영 무협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아시아 제조 밸류체인의 허브로서 배터리·철강·자동차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양산 기반과 풍부한 수출 경험을 보유한 것이 큰 강점"이라며 “이러한 제조 역량을 기후테크 상용화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공공 주도로 실증 환경을 체계적으로 확대하고 혼합금융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韓 RE100 이행장벽 세계 최고 수준…비용부담 낮춰야”

우리나라의 RE100 이행장벽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력구매계약(PPA) 부대비용 면제, 계약 체결 가능 고객 범위 확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RE100 활성화 정책과제'를 20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경협은 이번 건의를 통해 기업의 원활한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해 수요 촉진과 공급 확대 등 2개 분야 20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RE100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력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이다. 한경협이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정보프로젝트(CDP) 위원회가 발간한 'RE100 2024 연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은 미국(20개사)의 3.5배인 70개사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39개사)에 비해 약 80% 증가한 수치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RE100 이행장벽이 한국과 달리 감소 또는 보합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미국은 23개에서 20개로, 일본은 44개에서 48개로 변화했다. 중국 역시 27개에서 29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의 과반수(51.4%, 36개사)가 높은 비용을 재생에너지 조달의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한경협은 '재생에너지 수요 촉진과 RE100 이행 지원',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와 거버넌스 고도화' 등 2개 분야 총 20개 과제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건의했다. 우선 기업이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직접 사오는 PPA에 대한 과도한 부대비용을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PPA는 주로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전력구매계약 형태로 이뤄진다. 현재 기업들은 PPA를 통한 재생에너지 조달 시 순수 전력 값 외에도 송배전망 이용료와 전력산업기반기금 등 발전단가의 18~27%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내고 있다. PPA 체결 기업에게 전력산업기반기금 면제, 무역보험료 인하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국내 재생에너지 경쟁력이 타국과 유사한 수준이 될 때까지 PPA 부대비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해달라고 건의했다. 한경협은 PPA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사업자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고시를 보면 직접 PPA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대상은 고압 전기사용자(300킬로와트 이상) 등으로 한정돼 있다. 통신 중계기나 건설현장 임시전력 등 소규모 전기사용자는 직접 PPA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는 구조다. 소규모 전기사용자도 직접 PPA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한경협은 이와 함께 제도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직접 PPA에 'N:N 계약 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 직접 PPA 계약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에 1:1, N:1, 1:N 형태의 계약만 가능하다. 그 결과 중소·중견기업 및 소규모 발전사업자가 직접 PPA 계약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경협은 다수의 발전소와 전기사용자가 자유롭게 연대해 거래할 수 있도록 직접 PPA에 N:N 거래를 허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글로벌 신용평가 및 투자기관에서 기업의 탄소배출 저감 노력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설정하는 등 기업의 저탄소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과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메모리 반도체 산업구조 변한다? 삼성·SK ‘투자시계’ 속도조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기'에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설 투자 관련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공급 확대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지만 정치·경제적 변수가 워낙 많아 속도조절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인공지능(AI) 시대 시장 특성이 얼마나 바뀔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 구조 자체가 기존 '사이클'에서 벗어나 '수주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수요가 계속 탄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다. 반대쪽에서는 제조 기업들이 생산 규모를 늘리면 결국 공급이 넘쳐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이클 주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초호황 기조가 지속되기는 힘들다는 '신중론'이다. 이들은 'AI 거품론' 등을 근거로 삼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일단 예정된 투자에 속도를 내며 업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속내가 복잡한데 국내외에서 '정치 리스크'까지 부각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이 나온다. 미국 행정부는 자국에 생산 시설을 지으라고 우리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억장치다. D램과 낸드플래시(낸드) 두 종류로 나뉜다. D램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삭제된다는 특징이 있다. 용량 대비 가격이 낸드보다 높은 편이다. 낸드는 사진, 영상, 앱 등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는 공간이다. 처리 속도는 D램과 비교해 느린 편이다. 최근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은 일종의 '아파트형 D램'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D램을 높게 쌓아 데이터 처리 양을 크게 늘린 것이다. AI 시대 반도체들은 모두 '귀한몸'이 됐다. 초반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들어가는 HBM이 주목받았다. SK하이닉스가 기술 리더십을 가지고 삼성전자가 뒤를 추격하는 모양새였다. HBM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자 수익성도 올라갔다. 양사는 일반 D램 라인을 HBM에 우선 배치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반 D램을 만드는 라인이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공급이 줄고, 이로 인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낸드의 역할도 재조명받았다. AI가 학습을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읽고 써야 하는데 HBM이나 D램의 한계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낸드가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양산하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들어가는 SSD 용량은 1152테라바이트(TB)로 기존 제품인 '블랙웰'과 비교해 열 배 이상 많다고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55∼60%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3개월여만에 가격이 1.5배 이상 뛴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 가격도 33∼38%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는 “AI 추론 기반 인프라 개발은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조달을 촉진하고 있다"며 “D램 공급업체 재고 소진이 임박하고 출하량 증가가 웨이퍼 생산량 증가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투자 가속화에 따라 글로벌 서버 시장은 올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업용 SSD의 수요를 촉진하고 있다"며 “생산 능력 제한과 공급업체의 이윤 추구 및 출하량 조절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기업용 SSD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반가운 소식이다. D램 시장은 사실상 '삼파전'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D램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근소한 차이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가 다르지만 양사 모두 35% 안팎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업체들이 70% 이상을 공급하는 가운데 미국 마이크론이 20% 초반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낸드 분야는 경쟁 상대가 많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30% 수준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9%로 2위다. 키옥시아(약 16%), 샌디스크(약 13%), 마이크론(약 12%)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하위권 사업자인 샌디스크는 최근 고객사에 SSD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공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장기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선불을 받고 이마저 전액 현금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같은 호황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무작정 증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가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 업황 분위기만 살펴봐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7~2018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서버 수요 등이 급증하며 D램과 낸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당시에는 D램 평균가격이 전년 대비 30~40% 가량 뛰었다. 이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증설에 나서자 이듬해부터는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제조사들이 재고 평가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 전후 환경도 비슷했다.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원격·재택 근무가 늘자 노트북, 서버 등 판매가 덩달아 많아졌다. 이때도 D램과 낸드 가격이 올라가며 기업들 실적이 크게 좋아졌지만 과잉 공급으로 가격은 곧바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2023년에는 삼성전자가 감산 사실을 밝혀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공급 과잉 우려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버텨왔지만 그해 4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량을 조정 중"이라고 언급했다. 1분기 영업이익(6402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95% 급감한 시점이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감산을 인정한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이 회사는 앞서 공급 과잉 국면에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으로 경쟁 상대들을 굴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2010년 전후로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 등을 무너뜨린 사례가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개념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 구조 변화론'이다. 과거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앞으로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수요 증가→공급 과잉→가격 하락→공급 감소→가격 상승의 '사이클'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붐으로 생태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현재 빅테크 등은 AI 데이터센터 등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역시 많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고객들이 사가던 과거 구도를 넘어 '선주문 후생산' 방식이 안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과거와 같은 '반도체 겨울'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반대쪽에서는 'AI 거품' 주장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 AI 인프라 투자가 수익 검증보다 앞서 있다는 이유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는 돈을 벌고 있지만, 이 회사 GPU를 사는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AI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기에 접어든 것은 맞지만 사이클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산업 특성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호황에 수익성을 더 끌어올릴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평택 5공장 공사를 재개하고 증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8년께는 이 곳에서 HBM 등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작년 말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투자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초 SK하이닉스가 2028년까지 12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는데 상황에 따라 용인에만 600조원 가량 돈이 들어갈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양사 모두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 전면적 증설보다는 AI용 메모리와 첨단 공정 중심의 선별적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HBM의 경우 미세 공정뿐 아니라 적층·패키징·후공정 기술이 결합된 복합 제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확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양사 모두 수요가 늘었다고 무작정 생산 시설을 확충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메모리 반도체 산업 자체가 엄청난 투자를 기반으로 돌아간다는 특수성이 있다. 삼성전자를 보면 2022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23조8000억원 가량인데 시설투자로 48조원 가까이 썼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15조원 가량 적자를 내고도 48조원 이상 투자를 해야 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비용도 별도로 들어가야 한다. 올해 10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린다 해도 무작정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여기에 '정치 리스크'라는 변수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인에 만들려던 거대 반도체 단지를 새만금 등 전라권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선을 긋고 있긴 하지만 지방 정치인 등을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지속하고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해당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시설이 없으면 반도체 등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만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반도체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대만 TSMC 등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역시 추가 투자 결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뉴욕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통해 반도체 관세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상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워낙 가변적이라 정부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시계' 속도는 오는 2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양사는 이날 오전 나란히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연다. 이들이 같은 날 실적 관련 설명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먼저 콘퍼런스콜 개최 계획을 공시했는데 SK하이닉스가 일정을 같은날로 잡은 것이다. SK하이닉스 측이 사업 현황과 전략을 먼저 노출하기 싫어 '기싸움'을 펼치는 형국이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섣부른 탈원전·탈석탄에 탈났다…독일,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

독일이 장기화된 경기침체 속에서 기존 에너지전환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추진하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확대해왔지만, 이 과정에서 천연가스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에너지 비용 급등이 산업 경쟁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19일 발간한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제26-1호)'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부터 재생에너지 중심의 기존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일부 수정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의 주요 배경으로 경기침체와 에너지 비용 부담을 지목했다. 독일 경제는 지난 2023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 -0.9%, 2024년 -0.5%를 기록한 뒤 2025년에는 0.2%에 그쳤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 산업계는 경기침체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에너지 가격과 에너지전환 비용을지목했다. 미국 베이커연구소 역시 독일의 급격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반면, 독일의 에너지전환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는 전력수요는 탈탄소화가 진전되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재생에너지 보급 축소 움직임을 비판했다. 에경연 보고서는 독일 에너지 비용의 급등 원인을 에너지전환 그 자체보다는 전환 과정의 비효율성에서 찾았다. 탈원전과 탈석탄 속도에 비해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 확충이 뒤처지면서 그 공백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PNG)로 메우는 구조가 형성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연합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가스(PNG) 수입을 대폭 줄이고, 대신 미국 등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렸다. 이로 인해 LNG 가격이 유럽지역은 10배, 아시아 지역은 8배나 폭등했었다. 독일은 석탄과 원전 비중이 2000년대 초반 80%를 넘었으나, 현재는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이 이를 대체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 2024년 기준 58%에 달하지만 가스발전 비중도 15%를 상회하며 꾸준히 확대됐다. 현재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거의 중단하고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고 있어 가스 비용 부담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경제 전망 속에 독일 정부는 지난해 들어 재생에너지 차액지원제도(FiT)를 폐지하고 시장 기반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20기가와트(GW) 규모의 가스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도 제시했다. 다만 가스발전에 대한 정부 지원을 두고 유럽집행위원회(EC)가 일부만 승인하면서 독일 정부는 2032년까지 10GW 규모만 입찰로 추진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80%, 2035년 100% 목표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전력수요 증가 폭이 예상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에경연은 보고서에서 “한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 구조를 가진 만큼 독일 사례를 면밀히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가스 발전의 역할은 불가피하지만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하며 전력망 확충과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등 다양한 보완 수단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가스공사 사장 재공모…노조 청와대 시위 하루 전 결정

가스공사의 신임 사장 공모가 다시 진행된다. 앞서 가스공사 노조는 5명의 후보들이 모두 자격 미달이라며 청와대 앞 시위를 예고했는데 직전에 재공모가 결정됐다. 19일 가스업계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신임 사장 공모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가스공사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인기 전 새누리당 의원과 가스공사 출신 고영태·김점수·이승·이창균 씨 등 총 5명의 후보가 산업통상부에 추천됐다. 하지만 산업부는 모두 부적격이라 판단하고 재공모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신임 사장 재공모에는 가스공사 노조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지난 12월 30일 1차 성명을 통해 5명 후보가 모두 부적격이라고 비판했다. 20일에는 이와 관련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및 시위도 가질 예정이었다. 가장 유력했던 이인기 후보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3선을 역임한 유일한 정치인 출신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선거캠프에 참여하며 현 정부와 연을 맺었다. 하지만 가스산업 등 에너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인기 후보는 전문성에서 심각한 역량 미달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으며, 나머지 4명의 내부 출신 후보에 대해서는 “내부인사 출신 사장의 처참한 실패 경험 후 내부 출신 사장을 마냥 반기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내부 출신인 장석효 사장이 취임했으나, 관리 부처인 산업부와 정책적으로 마찰을 빚으면서 결국 산업부가 그를 비리혐의로 고발하면서 해임됐다.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20일 (5인 후보에 대한) 부적격 사유를 조목조목 짚은 의견서를 작성해 기자회견 후 청와대와 산업부 등 정부부처에 전달할 예정이었다"며 “금일 공사 담당부서로부터 정부가 보낸 사장 후보자 재추천 요청 공문이 접수됐다. 공공기관 운영법 제24조의2에 의거 '임원 결격사유에 해당하거나' '경영에 현저하게 부적당하다고 인정' 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우리 지부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재공모 결정은 현 사장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결과"라며 “우리 지부와 조합원이 사장 선임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잇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신임 사장 재공모 결정은 정확히 노조의 요구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청와대와 정부 역시 노조가 요구한 전문성과 대외협력 능력을 모두 겸비한 인물을 찾으려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신임 사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현 최연혜 사장의 임기가 길게는 4개월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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