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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5월 이후 국제원유시장은 어디로?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거의 모든 전문 기관과 전문가들의 예측과 다르게 중동사태가 두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국제적인 전문 기관도 예측하지 못한 수준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잘못된 예측을 하였다. 특히 사태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에너지 무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났기에 전쟁 발발 시점에서의 예측들이 큰 오차로 빗나갔다. 4월 말에 발간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단기에너지예측(Short-Term Energy Outlook) 보고서의 국제시장가격 전망치 역시 이란 사태가 시작된 직후인 3월 초의 보고서 내용과 사뭇 달라져 있다. EIA는 Brent시장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올해 2분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보다 높은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그리고 3분기 이후에 가서야 90달러 이하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3월 초 예측에서는 Brent시장 원유가격이 2026년 평균으로 하여 79달러일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96달러로 보고 있다. 22%나 올린 것이다. 또한 OPEC+의 원유생산량의 예측치가 3월 보고서에 비하여 5% 줄어들었으며, 세계 원유비축량의 예측치는 기존에는 2%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였다가 오히려 0.3%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번 이란 사태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원유 비축 부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5년도에 전 세계 원유비축량이 많이 증가하였기에 이란 사태 이전에는 2026년에 대하여 낮은 원유 가격과 높은 원유 비축 물량을 예상하였었다. 그러나 사태의 장기화로 수요국의 원유 비축 물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생산국, 특히 걸프만 주변 중동 산유국의 원유 비축 물량은 사상 최대로 치솟았다. 이는 원유가 지질구조의 문제로 일단 생산을 시작하면 생산량의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잘못 조절하면 매장된 유전의 지질구조에 영향을 주게 되어 생산량을 원래대로 늘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수송도 어렵고 생산량 조절도 어렵게 되자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를 모두 자국의 비축시설 안에 비축하고 있으며 이미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UAE 등이 우리나라의 원유 비축기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도 이번 사태가 종료되고 나면 수요국 모구 원유 비축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시에 산유국들도 수요국 주변에 일종의 중간 비축기지를 운영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한편 국제원유시장의 선물가격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시장 참가자들은 아직도 이란 사태가 조만간 끝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란을 제외하면 중동 산유국 원유 생산시설의 대규모 파괴가 없어 실질적인 수급에는 크게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천연가스는 카타르 일부 액화시설의 파괴로 상당 기간 차질이 예상된다. 전문가들도 시장가격이 본질적인 수급 상황보다 지엽적인 보도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 그리고 재무적인 이익을 노리는 투기로 인하여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멀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던 4년 전부터, 가깝게는 2월 말에 시작된 이번 이란 사태로 인하여 전쟁의 참상이 매우 심각함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고,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안보는 물론 에너지 사용 구조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함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천연가스 수급에 문제를 야기하며 주로 난방용 연료에 그 피해가 집중되었다면 이번 이란 사태는 원유의 수급에 문제가 나타났는데 이는 다시 다양한 석유제품의 수급 문제로도 이어졌으며 피해도 주로 제품 수급 부분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석유제품 가격의 상승은 앞으로 소비자물가를 상당 기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간 시행된 에너지정책이 주로 연료 부분에 맞추어져 있었기에 원료 부문에 대한 정책이 매우 적었고, COVID-19 사태 이후 일회용품이 크게 늘어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회용품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와 원료 부분에의 효과적인 대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요구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산업 및 석유화학산업을 가지고 있어 정말로 다양한 석유제품을 그동안 편하고 손쉽게 사용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관련 산업계의 구조조정 과정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겠다. 한편 EIA는 2027년 중반에 가서야 국제원유가격이 70달러 선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하여 2027년에는 미국 원유생산량이 일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OPEC의 원유생산량은 그러나 사태 이전에 예측한 수치와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휴전 협정이 진행됨에 따라 국제원유시장이 안정되어 가고 있어 응급처방으로 시행하고 있는 시책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시기가 빨리 도래하기를 희망하여 본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나프타 수급 위기는 도시유전 개발 절호의 기회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고 해서 일상용품의 기초가 되는 원료다. 그러나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 섬유, 페트병, 화장품 용기, 비닐봉지, 배달 용기와 같은 포장 용품, 스마트폰 케이스, 장난감,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재와 같은 생활용품, 타이어, 차량용 내외장재, 건축용 단열재 및 파이프 등의 플라스틱의 원료가 나프타인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근에 호르무즈 사태로 쓰레기봉투 투매가 나서야 나프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품귀가 났을 때,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서 해결하려고만 하지 자국의 도시유전을 개발해서 조달할 생각은 못 한다. 최근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6회 심의 회의에서 '국가 전략기술 체계 고도화 방향'과 '제6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심의·의결했다. AI 전환 선도, 통상·안보 주도권, 미래 혁신 기반이라는 3대 임무 아래 10개 분야 55개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데 도시유전 개발 과제는 어느 곳에도 없다. 5년간 60조 원 이상을 투자할 동 계획은 인공지능, 첨단로봇·모빌리티, 차세대 보안·네트워크,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 바이오, 차세대 전지, 우주항공·해양, 혁신·미래 소재, 미래에너지·원자력, 양자가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2025년 세계 64개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비교한 '기후변화대응 지수'(CCPI)에서 한국이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인 63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꼴찌인 이유로, 불확실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 탈화석 연료보다는 오히려 신규 석유·가스 사업을 늘리려는 투자 의지 등을 꼽았다. 작금의 호르무즈 사태는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는 거대한 투자의 기회이자 도약의 기회이다. 그것이 바로 도시유전의 개발이다. 한국의 연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1,100만~1,200만 톤이다. 이 중 실제로 녹여서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은 18%에 불과하고, 35%가 에너지를 회수하는 소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45%는 에너지 회수 없이 단순히 태우거나 매립(12%)한다. 도시유전은 재활용을 제외한 폐플라스틱에서 나프타를 뽑아내는 공정이다. 한국 도시유전은 연간 천만 톤의 폐플라스틱에서 7백만 톤의 나프타가 채유 될 수 있다. 한국 나프타 수요의 15%다. 15%의 자급자족 의미는 폄하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도시유전 개발의 성공 사례로 ㈜도시유전이 개발한 RGO 기술을 소개한다. RGO 핵심 기술은 폐플라스틱을 고열만으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 세라믹 촉매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로 폐플라스틱의 탄소 고리를 끊는다. 전자파로 분자 결합구조를 깨트려 분자의 특정 운동을 유도하는 방식은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비슷하다. RGO 기술은 500°C 이상의 고온을 쓰는 고온 열분해 방식과 달리 250°C의 저온에서 작동한다. 저온이라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 배출이 없고 에너지소비량도 적다. 수율은 70% 정도다. 전자파로 분자 고리를 끊기 때문에, 생성된 기름의 품질이 균질하다. 라벨 제거, 세척 등 전처리가 필요 없어 공정 비용이 절감된다. 2025년 정읍에 상업 플랜트(웨이브 정읍)를 준공하여 연간 수천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하고 있다. 기술 원천국인 한국보다는 영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큰 관심을 보인다. ㈜도시유전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생산 원가가 수입가에 비해서 높으나, 여기에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까지 더해지면 환경성과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유류로 환원시키는 유화 환원 기술이 선진국에서 연구돼 산업현장에 적용됐으나 대부분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공정 기술도 중요하지만, 폐플라스틱의 수집, 운반 등 자치단체. 시민 등의 기업 외적 제약이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름에서 나온 것을 다시 기름으로“ 만드는 도시유전 기술은 국가 전략기술 중의 기술임을 지적한다. bienns@ekn.kr

[에너지 인사이트] “닫힌 듯 열려 있는 호르무즈”…에너지 안보의 본질을 묻다

중동 사태가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 지속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연일 롤러코스터같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완전한 차단 여부보다 언제든 특정 항로와 물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불확실성이 시장 전반에 깔려 있다. 더 복잡한 형태의 리스크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지정학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물리적 공급이 유지되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공급망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다. 이번 사태는 '막혔느냐'보다 '언제든 막힐 수 있느냐'가 더 큰 변수임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별로 체감하는 위기의 강도도 다르다. 미국은 이미 셰일혁명을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며 중동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원유와 LNG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충격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국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연료 가격과 공급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LNG 중심 전력 시스템은 연료 가격 변동이 곧 전력시장 가격으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욱 민감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번 위기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가 본질이 아니다. 중동을 비롯한 에너지 지정학적 충돌은 형태만 바꿔가며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정책은 단기적 상황이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급격히 방향을 바꾸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관점에서 설계되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탈탄소'나 '에너지 전환'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에너지 안보 전략이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언제든 리스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원전은 연료비 변동 영향이 제한적이고, 석탄은 공급망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재생에너지는 장기적으로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수단이다. 각 전원의 장단점을 고려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최근과 같은 지정학적 긴장 상황에서는 '가격'보다 '안정성'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에너지 정책이 비용 중심으로만 설계될 경우 위기 상황에서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한국 원전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듯, 이번 위기 역시 에너지 구조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방향은 단순한 전환이 아니라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금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안보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끊겼을 때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끊기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문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 3조 쏟아부은 멕시코 구리광산…결국 ‘2달러 매각’

한국광해광업공단이 3조원 이상을 투자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단돈 2달러에 정리하면서 공공 자원외교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손실 최소화'라는 재무적 판단과 '정책 실패'라는 비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공단은 최근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의 지분과 채권 전량을 지난해 11월 27일부로 멕시코·미국 소재 기업에 각각 1달러씩, 총 2달러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형식상 매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잔여 부채를 넘기는 조건의 '사실상 무상 처분'에 가깝다. 이번 거래에서 매각가가 2달러로 설정된 것은 세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최소 명목가액일 뿐, 핵심은 매수자가 남아 있는 부채를 전액 떠안는 구조다. 공단은 이를 통해 약 8490억원의 부채를 줄이고, 자본도 6800억원 이상 늘어나는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볼레오 광산은 구리, 코발트, 황산아연 등 약 1억5000만톤의 매장량을 보유한 대형 프로젝트로, 항만·정제련 설비·발전소 등 인프라도 갖춘 '풀 패키지' 광산이다. 투자 초기에는 한국형 자원개발 성공 사례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연약한 지질 구조로 인한 채굴 난이도, 멕시코 현지의 정치·사회적 리스크, 경쟁 광산 대비 높은 생산원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업은 매년 수천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해외자산관리위원회는 2022년 “추가 투자보다 조기 손실 확정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후 매각을 추진했지만 세 차례 입찰이 모두 유찰됐다. 사실상 '살 사람 없는 자산'이 된 셈이다. 공단 측은 “입찰이 반복적으로 실패한 상황에서 부채를 이전하는 조건의 매각이 최선이었다"며 “더 지연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였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번 사례가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단이 투자한 33개 사업 중 자산 가치가 상승한 곳은 국내 자산을 포함해 7곳에 불과하며, 해외 프로젝트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낸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는 과거 자원외교 확대 국면에서 '속도 중심 투자'가 이뤄진 결과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탐사·개발·운영 전 과정에 대한 기술적·상업적 검증 없이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결국 비용 구조와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최근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희토류·핵심광물 공급망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단 역할 확대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부터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정책 목표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광산 평가·운영·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춘 '상업적 플레이어'로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볼레오 광산 매각은 '손실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왜 이런 선택에 이르게 됐는가'를 묻는 사건이다. 향후 공단이 다시 해외 자원개발 전면에 나설 경우, 이번 사례는 피할 수 없는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현장] 중동발 위기에도 흔들림 없다…인천 LNG 기지 가보니

인천 센트럴파크에서 버스로 20여분, 인천신항을 지나 바다 쪽으로 더 들어가자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생산기지인 한국가스공사 인천 LNG 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지 안으로 들어서자 아파트 15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저장탱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에 오르면 지상식과 지중식 저장탱크 23기, 기화설비, 배관망, 부두 설비가 바다 위 인공섬에 촘촘히 들어선 모습이 한눈에 펼쳐졌다. 지난달 30일 한국가스연맹 현장답사로 방문한 인천 송도국제도시 선갑도 해상에 조성된 인천 LNG 기지는 총면적 약 45만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한다. 이곳은 오직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해 만든 천연가스 생산기지다. 1996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후 국내 천연가스 수요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수도권 공급의 핵심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인천기지의 LNG 저장능력은 총 348만㎘로, 국내에서 약 18일간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글로벌 LNG 수급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우리나라는 과거 중동 LNG 의존도가 약 70%에 달했지만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현재는 약 15% 수준까지 낮아져 있을 때 전쟁이 터졌다. 지금도 비상 상황이긴 하나 카타르·오만 등 중동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사할린 등 여러 수입처에서 LNG를 들여오고 있어 충격이 일정 부분 완화됐다. 현장 관계자들도 기지 운영에 큰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지금은 봄철로 가스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수기다. 천연가스는 냉방 수요가 늘어나는 여름과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에 사용량이 크게 증가한다. 당장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 수급 자체보다 공공부문 차량 홀짝제에 따른 출퇴근이 불편해졌다고 한다. 인천 LNG 기지는 자가용 없이는 접근이 쉽지 않아 직원들은 외부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 LNG는 해외 가스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 안팎으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것이다. 23개의 거대한 저장탱크 내부 역시 영하 162도로 유지된다. 탱크 내부에는 극저온을 견디도록 설계됐고 외벽은 두꺼운 특수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LNG는 기체 상태보다 부피가 약 600분의 1로 줄어들어 대량 저장과 장거리 해상 운송이 가능하다. 이렇게 들여온 LNG는 인천기지 저장탱크에 보관된 뒤 다시 기체 상태로 바뀐다. 이후 지하 배관망을 통해 가정, 산업체, 발전소 등에 공급된다. 버스는 다시 부두 쪽으로 향했다. 부두까지 이어지는 길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긴 방파제처럼 뻗어 있었다. 양쪽 아래로는 LNG 수송선에서 저장탱크까지 연결되는 배관들이 나란히 이어졌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길 끝에는 거대한 설비들이 솟아 있었다. LNG 선박이 들어오면 이 설비를 통해 액체 상태의 LNG가 저장탱크로 이송된다. 인천기지는 7만5000t급과 12만7000t급 초대형 LNG 선박이 동시에 들어올 수 있는 2개 부두를 운영한다. LNG 수송선은 안전을 위해 입항 1km 전부터 엔진을 끄고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부두로 들어온다. 현장에서는 LNG 선박의 입항을 돕는 예인선 계류장도 볼 수 있었다. 기지에는 총 4척의 예인선이 있다. LNG 선박 한 척이 싣고 오는 물량은 적게는 저장탱크 1기 이상, 많게는 2기 가까이를 채울 수 있는 규모다. 하역에는 통상 10~12시간이 걸리며, 선박은 약 24시간가량 기지에 머문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여름철에는 월 10~12척, 겨울철에는 월 20~25척가량이 입항한다"며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에는 사실상 매일 LNG 선박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중동 사태로 러시아산 LNG 복귀 빨라질 것”

“이번 중동 사태로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러시아의 세계 LNG 시장 복귀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가스연맹은 30일 인천 송도센트럴호텔에서 인천 LNG기지 방문에 앞서 세미나를 열고, 최근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LNG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이날 강정욱 한국가스공사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물류 차질이 심화되면서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할 새로운 공급처가 주목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강 책임연구원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수출되는 LNG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동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물동량이 급감하고 있다"며 “해협 인근에는 200척에 달하는 선박이 묶여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LNG 설비는 일부만 멈춰도 전체 생산이 중단되는 구조라 한 번 타격을 받으면 정상화까지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주요 국가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는 LNG 수입 비중은 인도 50%, 중국 33%, 한국 15%, 일본 6%이다. 강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과거 카타르·오만 의존도가 약 70%에 달했지만,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현재는 약 15% 수준까지 낮춘 상태"라며 “덕분에 이번 사태에서도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도입선은 더욱 다변화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올해 1~3월 LNG 수입동향을 보면 △호주 348만톤(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 △말레이시아 211만톤(8.1% 증가) △카타르 161만톤(20.4% 감소) △인도네시아 98만톤(81% 증가) △미국 92만톤(20.6% 증가) △캐나다 87만톤(첫 수입) △중국 54만톤(1392% 증가) △러시아 51만톤(11% 감소) 등을 기록했다. 이번 중동 사태의 LNG 시장 충격은 아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제한적이다. 강 연구원은 “최근 LNG 가격 변동 폭은 약 20달러 내외로, 러우 전쟁 당시보다 상승 폭이 크지 않다"며 “유럽은 직접적인 타격이 적고 아시아 중심으로 영향이 나타나면서 시장 반응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강 책임연구원은 “세계 2위 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현재 정상적인 수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해협 봉쇄 위기가 장기화될 수록 충격은 러우 전쟁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중립 기조 속에서도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이 겹치며 현실적으로는 에너지 안보가 우선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글로벌 LNG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5월 발전용 가스요금 7.5% 상승…중동쇼크 본격화

4월 제한적 상승에 그쳤던 발전용 천연가스 요금이 5월 들어 더 크게 인상되며 전기요금 상승 압력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상승한 국제 가스가격이 점차 현실로 반영되고 있다. 29일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5월 발전용 천연가스 도매요금은 GJ당 1만7961원으로 전월(1만6706원) 대비 7.5%(1255원) 인상됐다. 4월 약 4% 상승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크게 확대됐다. 민수용(주택용·일반용)을 제외한 도시가스 요금도 일제히 올랐다. 업무난방용은 7.2%, 산업용은 10.6%, 수송용은 10.2% 상승하며 전반적인 연료비 부담이 커졌다. 이번 인상은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가스가격 상승이 본격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통상 LNG 도입가격은 운송 기간 등의 영향으로 2~3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요금과 전력시장에 반영된다. 이에 따라 4월까지는 전쟁 이전 저가 물량이 일부 반영됐지만, 5월부터는 고가 물량 영향이 본격화된 것이다. 발전용 가스요금 상승은 곧바로 전력도매가격(SMP)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SMP는 가장 비싼 발전원의 연료비를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국내 전력시장에서는 LNG 발전이 사실상 기준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5월부터 날씨가 더워져 전력수요까지 증가할 경우, 고가 LNG 발전기 가동이 늘어나 SMP 상승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SMP 상승은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가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경우 한국전력은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유사한 흐름이다. 당시 국제 가스가격 급등으로 SMP가 kWh당 200원을 넘고 12월에는 267원까지 치솟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지연되면서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놓였다. 결국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이어졌고 부채는 200조원을 넘어섰다. 이에 러-우 전쟁에 이어 SMP 상한제가 다시 도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MP 상한제는 SMP에 일정 수준 이상의 상한을 두는 제도로, 연료비 급등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전력 구매단가 상승을 억제하는 장치다. 전기요금 상승압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석유 최고가격제처럼 가격 통제로 인해 발전사의 연료비 상승이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수요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후 신호등] 원유 수입다변화, 준비는 됐나? 韓 정유산업에 묻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의 봉쇄에 미국이 '역봉쇄'로 맞서면서 언제 다시 완전히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20% 이상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 전반에 구조적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원유의 안정적 수급에 산업 기반을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 그중에서도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약 70%에 이르는 한국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정부와 정유업계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미국산 셰일 오일과 서아프리카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고, 장기 계약 구조를 재조정하면서 물류 경로 다변화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어디까지나 '조달 전략'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있다. 즉, 도입된 원유를 기존 설비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느냐는 기술적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중동산 원유를 전제로 설계·최적화돼 왔다. 이 때문에 원유 수입 다변화는 단순한 원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유 공정 전체의 열역학적 조건, 반응 경로, 촉매 선택, 설비 재질까지 모두 연결된 '시스템의 문제'다. ◇설계 원유(Design Crude)에 묶인 산업 구조 정유 공장은 특정 성질의 원유를 처리하도록 설계된다. 이를 '설계 원유(design crude)'라고 하는데, 이 기준은 단순한 참고값이 아니라 공정 설계의 출발점이다. 상압증류시설(CDU)의 온도 프로파일, 가열로의 열부하, 열교환기 네트워크, 촉매 반응 조건 등은 모두 이 설계 원유의 물성에 맞춰 최적화된다. 불가리아 국립과학아카데미 연구팀이 지난 2024년 국제 학술지 '자원(Re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설계 원유와 다른 대체 원유를 투입할 경우 정유 공정 전반에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파울링(침적물 형성), 부식 증가, 장비 고장, 촉매 비활성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일 공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압증류시설에서 발생한 분리 효율 저하는 진공증류, 수소첨가분해, 탈황 공정 등 다음 공정(다운스트림) 전반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된다. 즉, 원유의 변화는 공정 전체의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중동산 원유에 맞춰진 구조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중동산 원유는 일반적으로 황 함량이 높고 비중이 큰 '중질·고유황유'인 반면, 미국산 셰일 오일은 비중이 낮고 황 함량이 적은 '경질·저유황유'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품질 차이를 넘어 공정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다. ◇수압파쇄 기술로 생산되는 셰일오일 미국산 셰일오일이 '경질유'로 분류되는 이유는 지질학적 특성과 조성 때문이다. 셰일오일은 수압파쇄(hydraulic fracking) 기술을 통해 근원암에서 직접 생산되는데, 상대적으로 짧은 탄화수소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사슬이 짧은 저비점 탄화수소, 즉 가솔린 범위의 가벼운 성분 비중이 높다. 또한 셰일오일은 포화 탄화수소 비중이 높고 아스팔텐과 같은 중질 성분이 거의 없어 점도가 낮고 흐름성이 좋은 특징을 보인다. 황과 니켈, 바나듐과 같은 불순물 함량도 낮아 '저유황 경질유(light sweet crude)'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성은 'API 중력'이 일반적으로 40°(40도) 이상 높은 값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API(미국석유협회) 중력'은 원유의 '가벼움(밀도)'을 나타내는 지표다. 쉽게 말해 물 대비 상대 밀도를 기준으로 환산한 지표다. API가 31°를 초과하면 경질유이고, 22~31°는 중간유, 22°도 미만이면 중질·초중질유로 분류한다. 다만 이처럼 가벼운 특성은 가솔린 수율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된 기존 정유 설비에서 설계 원유와 다른 조성의 원유가 유입될 경우 공정 불안정성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환경 측면에서 볼 때 수압 파쇄는 암반층에 고압의 물·모래·화학물질을 주입해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하는 방식이어서 지하수 오염과 토양 오염 위험이 제기된다. 또한 지반 균열 확대와 관련된 유도 지진, 그리고 메탄 누출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도 주요 환경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산 원유 도입이 가져오는 '설비 충격' 대체 원유 도입 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정유공장 설비는 가열로(furnace)다. 가열로는 원유를 일정 온도까지 가열해 증류 공정에 투입하는 핵심 설비로, 설계 시 특정 원유의 비중과 증류 특성에 맞춰 열부하가 결정된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설계보다 가벼운 원유를 처리할 경우 증발 특성 차이로 과열 또는 국부적 열 집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열로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작동하는 설비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공정 전체의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불가리아의 루크오일 네프토힘 부르가스(LUKOIL Neftohim Burgas, LNB) 정유소는 2009년에 상압증류시설 1호기(CDU-1)를 개보수했는데, 1년 뒤인 2010년에 설계 유종인 우랄 원유보다 훨씬 가벼운 카자흐스탄산 경질유(CPC)를 약 25% 혼합해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열전달 불균형과 과열 구간이 발생하면서 열부하 분포가 설계 범위를 벗어나고, 결과적으로 총 열부하도 증가했다. 결국 고온·고압 환경을 견디지 못한 가열로 코일이 파열되는 중대 사고로 이어졌다. 또한 경질유는 증류 특성이 달라 증류탑 내부의 유동 패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분리 효율 저하, 거품 발생 등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제품 품질과 수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촉매 오염과 공정 붕괴의 위험 정유 공정의 또 다른 핵심은 촉매다. 특히 수소첨가분해(hydrocracking)와 탈황 공정에서는 촉매의 활성도가 곧 생산성과 직결된다. 대체 원유 도입 시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 중 하나는 나트륨(Na) 오염이다. 산도가 높은 원유를 처리하기 위해 가성소다(NaOH)를 투입하거나 탈염 공정이 부실할 경우 나트륨이 촉매 표면에 축적돼 활성 부위를 차단한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가성소다 투입량을 4배 증가시키면 촉매 내 나트륨 농도는 약 3배 증가하고, 이는 촉매 수명을 크게 단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나트륨은 단순한 오염 물질이 아니라 '촉매 독(poison)'으로 작용한다. 촉매 기공을 막아 반응 경로를 차단하고, 활성 금속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그 결과 반응 효율이 떨어지고, 동일한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원료가 필요하게 된다. 또한 염화나트륨(NaCl, 소금)과 같은 성분은 고온에서 염산(HCl)을 생성해 설비 내부를 부식시킨다. 이는 열교환기, 배관, 증류탑 등 주요 설비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유지보수 비용을 급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혼합의 함정'…블렌딩이 만능은 아니다 정유업계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원유를 혼합해 설계 원유와 유사한 특성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원유를 혼합할 경우, 특히 설계 범위를 벗어난 원유가 급격히 투입될 경우 공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변화 예측과 달리 점도·증류곡선이 달라질 수 있고, 특히 증류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거품 발생이나 분리 효율 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혼합 원유의 수율은 단순 평균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거동하기 때문에 기존 경험적 모델로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 화동 이공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2021년 '컴퓨터와 화학공학 (Computers and Chemical Engineering)'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원유 도입 시 중간 생성물의 수율 예측 오류가 다운스트림 공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산 계획 문제를 넘어, 정유사의 수익 구조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 된다. 해외 연구에서는 몇 가지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해결책 ①: 인공지능 기반 '확률적 공정 최적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2단계 확률적 프로그래밍'이다. 중국 화동이공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원유 품질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확률적 모델을 통해 공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다양한 원유 조합에 따른 수율 분포를 확률적으로 계산하고, 최적의 블렌딩 전략과 공정 조건을 도출한다. ▶해결책 ②: 원유 '지문 분석' 기술 수입 다변화 환경에서는 원유의 성질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란 샤리프 공과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2020년 '마이크로케미칼(Microchemical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체크로마토그래피(GC-FID)와 적외선 분광법(FT-IR)에 기반한 '지문 분석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기술로 원유의 화학적 '지문'을 분석해 경질유인지 중질유인지, 산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해결책 ③: 공정 시뮬레이션과 열 통합 영국 헐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2023년 '에너지원(Energy Source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아스펜 하이시스(Aspen HYSYS) 기반의 공정 시뮬레이션과 열 통합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원유 조합에서도 최적 운전 조건을 도출할 수 있다. 아스펜 하이시스는 석유·가스 및 화학 공정의 흐름과 반응을 가상으로 계산해 설계와 운전 조건을 최적화하는 공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다. ▶해결책 ④: 설비 개보수(Revamp)의 현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설비 개보수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정유 설비 개보수는 수천억 원 이상의 투자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유'가 아닌 '산업'을 바꿀 각오를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단순한 공급망 위기가 아니다. 원유 수입 다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기존 정유시설이나 산업 구조와 충돌할 수도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곧 리스크 해소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중동산 원유에 맞춰 설계된 정유 시스템은 미국산 셰일 오일과 같은 대체 원유를 받아들이는 순간 한계에 직면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블렌딩 기술, 인공지능(AI) 기반 공정 최적화, 지문 분석, 설비 개보수 등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중동 전쟁 위기는 한국 정유산업에 “어떤 원유든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공급망 다변화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기술 혁신과 설비 유연성(flexibility) 확보의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의 정유 산업은 지정학적 위기를 넘어 구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오만과 편견, 그리고 오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이란 핵무장 저지를 명분으로 전쟁 개시를 선언했다. 그는 이미 작년 1월 20일 두 번째 임기 시작 직후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계 최대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順) 수출국인 미국의 비상사태 선포는 생뚱맞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조처가 유전, 정유시설 등 화석연료 인프라 개발촉진을 유발할 것이라고 했다. 신속한 석유·가스 시추 허용과 각종 규제 대폭 완화를 위한 '미국 에너지 잠재력 해방'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도 시사했다. 그리고 금년 2월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이 돌아왔다.'라고 공언하였다. 석유 시추 허가 55% 급증,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의 부흥, 원자력 부흥, 전기차 의무화 중단 등을 주요성과로 제시하였다. 전임 정부의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을 뒤집고 다시 화석연료 중심 체제로 회귀한 셈이다. 에너지를 인류 공영의 기반이라기보다 특정 권력자의 '오만한(arrogant)' 국제질서 장악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미국 여론은 딱히 호의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 같다. 미국 성인 27%만이 이란 공습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로이터·입소스)도 있다. 지지 거부 응답은 43%, 잘 모른다는 응답은 30%이란다. 당연히 트럼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호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아니다. 유럽(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와 일본, 호주, 한국 등 전통적 미국 동맹국마저 갈수록 소극적이다. 근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과 상호 공영을 통해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여온 '브래튼우즈' 체제의 훼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체제는 미국 달러 가치를 금(1온스당 35달러)가격과 연계하고 다른 국가의 통화가치를 달러에 고정하는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金兌換) 정지로 변동환율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후 미국 주도 세계질서체제가 약화 되었다. 약소국과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국제 규범도 약화 되었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수단 내전, 미국-이스라엘과 중동 각국 간의 분쟁으로 지속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MAGA)'의 강화 움직임과 함께 '오만한' 접근책에 대한 반감 고조는 세계공영체재의 균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등 인접국들과 UN 등 국제기구들의 권유와 중재 노력에 따라 일정 기간 휴전과 뒤이은 종전 협상은 진전될 것 같다. 상호이익 균형점에서 합의를 위한 노력은 지속할 것 같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의 정상화도 기대된다. 전쟁이나 국가개입에 따른 폐해 대비는 거의 불가능하거나 매우 큰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공급탄력성 제고는 항상 긴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석유 등 에너지 시장의 정상화 논리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 효율성은 생산 가능 곡선에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종식되는 단계에서부터 유발된다고 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 학습이 유용할 것이다. 1973년 10월부터의 1차 파동, 1978년에서 1981년 초까지 이란혁명으로 인한 2차 파동 그리고 두 파동 간의 중간 기간을 포함하면 대략 13배($3→$39) 올랐다. 그러나 두 차례 파동 지속기간은 각기 3년 이내이어서 그 폐해는 신속하게 복구하였다. 우리나라는 매우 특이하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이하였다. 석유파동 기간 중 건설수출. 설비산업 육성, 건설 진흥, 에너지 이용 합리화 강화 등 새로운 성장 계기를 마련하였다. 개도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 진입 계기를 마련했지만 에너지 상황이 닥치면 대부분의 후발 개도국들은 주요 생산요소 석유 가격 급등으로 구조적 위기상태에 빠진다. 그들은 선진경제 진입을 위한 우회로(迂廻路;Detour) 선택에 장애를 겪는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경제 효율성은 퇴보한다. 후발국들의 선진경제체제 진입에 필요한 각종 장애 요인 제거/예방은 더 많은 사회비용을 초래하는 논리적 모순(아이러니)이 우려된다. 대부분 예상치 못한 시장변동이나 정치권 무능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현안 에너지 문제 분석/검증과정에서 인접국이자 세계 1위 에너지소비국인 중국의 여건변화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이 서방에 대한 전략자산(희귀광물 등)과 핵심부품(태양광 패널 등)의 공급통제와 관련 상품이나 부품 대량구매를 통한 시장통제 능력 과시는 우려스럽다. 사실 여건변화에 대응한 공급망 조정작업에서 혜택보다 비용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글로벌 공급체계의 상호 의존도는 증가하고 있다. 비용증가는 당연하다. 이에 합리적 수준에서의 비용상승 제어가 글로벌 차원 주요 해결과제 중 하나이다. 특히 에너지-환경-기술개발 등 공급망 결정에 새로운 요인일수록 산업성숙도와 국제적 연대가 미진하고 공공영역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책기획과 초기 평가과정에서 장기적 정책 안목에서 진중한 경쟁력 평가가 필요하다. 관료주의 폐해와 정부 실패 보완이 그 성공 관건이다. 끝으로 시장 결함보완은 관련 전문가들의 영역이자 책임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한다. ekn@ekn.co.kr

[EE칼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4월이다. 영어로 April(에이프릴) 이라고 하는 어원은 '열다(open)'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아페리레(aperi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모든 만물이 겨울을 지난 후에 꽃이며, 대지가 다 열리고 있으니 '열리다'라는 말은 참 잘 맞는 말이다. 4월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이 서양의 시인 티에스 엘리엇(T.S. Eliot)이 말한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말일 것이다. 황무지라는 5부작 시에서 1부의 죽은 자의 매장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 왜 잔인하다고 했는지는 해석이 다소 분분하지만 아무튼 현재 시점으로 보면 4월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의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문제로 고통받는 잔인한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한국같이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 참! 한가롭게 시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다. 이란 사태로 또 다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카타르의 LNG 시설이 폭격되는 순간 한국에게는 직격탄이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태리,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독일 등이 폐쇄하기로 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거나 석탄 생산을 늘리고 있다. 유럽 연합, 톡일, 스페인, 포르투칼 같이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는 이란 전쟁의 가격 충격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적었다고 한다. 석탄 발전관련한 것은 단기적인 에너지 위기 대응 목적이라고 본다.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에너지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 정부는 공공 기관 차량 5부제 의무화, 공영주차장 5부제, 기존 80퍼센트 수준의 석탄 발전 출력 제한 완화, 원전 4기의 재가동, 석유화학에서는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 기업의 출퇴근 시간 조정, 그리고 전국 5156개 사업장 중에서 석유 소비의 약 92%를 사용한 50개 기업에 대해서 석유사용 절감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절약 목표를 달성하면 에너지 절약 설비 시설 투자에 대한 자금지원 등을 고려 중에 있다. 기존에 많이 해오던 식상한 조치들이다. 좀 더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절약하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가 보조금 지원으로 유가 상한제를 하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가뜩이나 국가 부채가 매년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정 적자는 어찌하라는 것인가. 적절한 빠른 시기에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여 절약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소재 부품 안보도 생각해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맞는데 리튬, 태양광 소재, 부품 관련 안보도 중요하다. 이것이 안된 상황에서 태양광만 늘리다고 능사가 아니다. 중국기업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국산기술과 소재부품 등을 반드시 고려한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보급 정책이 필요하다. 바이오매스 에너지, 수열 에너지, 양수발전, 중력에너지 등등을 더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세 번째는 매일 매년 시행하는 에너지 절약 정책이 중요하다. 에너지 위기라고 잠깐 하다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는 도돌이표 정책으로는 안된다. 근본적인 정책과 외국으로부터의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는 에너지 외교 안보 정책이 있어야 하지만 다양한 공급선부터 확보해야 한다. 민관이 공동으로 에너지 개발도 적극하도록 해야 한다. 4월의 뜻이 '열리다'라고 하였듯이 정부, 기업, 시민들은 열린 생각, 열린 마음, 열린 정책. 모든것이 열려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폐쇄하는 마음으로는 나라의 발전은 없다. 잔인한 계절은 아니다.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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