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이 단행한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벼랑 끝 전술'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됐던 현대자동차 등이 경영권 분쟁에서 중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자칫 백기사들이 중립을 선택할 가능성을 고려해 유상증자를 단행했다는 진단이다. 4일 산업권에 따르면 조만간 열릴 고려아연 주주총회가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한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고 법원의 가처분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최근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반격을 노리는 모습이다. 최 회장이 결정한 대규모 유상증자는 앞서 자사주 공개매수처럼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는 승부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이번 유상증자는 소액주주와 캐스팅 보터인 국민연금이 지지를 잃게 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단행된 조치라 더욱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해 뚜렷한 이유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다만 재계에서는 그동안 우호 세력으로 분류된 지분들이 막상 표 대결에서 중립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져 최 회장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을 살펴보면 상대측인 MBK·영풍은 서로간의 계약이라는 확실한 결속력을 통해 단일한 대오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의 백기사들은 각자 고려아연 지분 보유 목적과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다는 진단이 나온다. 백기사 중 고려아연 지분 5.05%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최 회장의 비전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LG화학도 배터리 소재 확보를 위한 협력 차원으로 지분 1.9%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0.5%를 보유한 모건스탠리는 지분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이들이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을 지지할지 확실치 않다는 진단이다. 실제 고려아연 이사회에 입성해 있는 현대차 측 이사는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결정과 가격 상향 결정 이사회에 연달아 불참한 것으로 파악된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계획에 없었던 경영권 분쟁에 엮여 어느 한 쪽과 불편해지는 일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이 같은 입장이라면 분쟁의 변곡점인 주주총회에서도 기권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비슷한 LG그룹과 모건스탠리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울러 MBK·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발표한 직후 현대차·LG그룹 주요 관계자들은 백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최 회장과 회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다소 선을 긋고 멀리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 시기 최 회장과 직접 면담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또 지난해 말 MBK파트너스의 공격을 받았던 한국타이어는 스스로를 최 회장의 우호주주라고 선언했으나 다른 백기사들은 비슷한 신호를 내놓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최 회장이 지분 보유 목적이 다른 각각의 주요 주주들로부터 확실하게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 만약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현대차·LG·모건스탠리가 중립을 택해 7.45% 수준의 지분이 기권표가 된다면 7.5% 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결국 MBK·영풍과의 지분 격차인 3%포인트(p)를 좁혀 역전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MBK·영풍이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게 되고 최 회장은 순식간에 경영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백기사가 중립을 택해 기권표가 나오더라도 MBK·영풍을 앞지르기 위해 최 회장이 유상증자를 결정하게 됐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 때 최 회장의 백기사 중 일부가 지분을 매각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최 회장 입장에서는 모든 백기사를 신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