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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조선의 수호통상조약,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세기 조선은 내부의 모순적 사상과 부패한 관료들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시 한반도까지 밀려온 제국주의로 조선이 가지고 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까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서구와의 직접 교류를 거부하고 청에 의존하던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라고도 부르는 근대적이지만 불평등한 조약인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였다. 이후 조선은 1882년부터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서구 열강들과 유사한 조약을 체결하여 항구를 열어 외국과 직접 교류하며 공식적인 외교관계도 수립하였다. 조선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지속되었던 1886년까지 제국주의 국가들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조선이 서구 열강과 체결한 이 조약은 기존 청 또는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와 유지하였던 외교관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서구적 방식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약을 근거로 조선에는 그들의 외교공관이 마련되었고, 전문적인 외교관이 파견되었다. 한반도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던 이들, 과거부터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한 청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를 구현하려는 일본이 복잡하게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정부가 청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종료하고 자주적으로 서구와 교류하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조선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예를 들어, 1884년 체결된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도 양국 직접 교류에 국제법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 조약의 여러 내용이 불평등한 것이었음을 관찰하면, 양국의 불평등한 외교관계는 예상가능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당시 체결되었던 수호통상조약들과 다른 고유한 규범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제국은 청과의 베이징 조약 등으로 극동에서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여 부동항을 얻고 조선과 국경을 직접 마주하며 교류하게 되었다. 결국 동아시아 상황을 관망하던 러시아는 조선과 직접 교섭을 하려고 하였고, 이 조약의 배경과 협상 과정은 러시아의 극동이자 한반도 주변에 관한 러시아의 인식과 정책 그리고 당시의 국제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육로 교류에 관한 규정은 청의 반대로 규정화되지 못하였지만, 수년이 지나서 별도의 조약인 육로통상조약의 체결로 해결하였다. 이 조약과 조선이 체결한 다른 수호통상조약의 관세(율)에 관한 규정과 내용들도 차이가 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역사의 산물이 되어버린 조선이 체결한 수호통상조약의 현대적 의미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최혜국 대우의 원칙은 A국과 B국이 서로 좋은 교역 수준을 제공하다가 A국이 제3국인 C국과 더 좋은 (최고의) 교역 수준 혜택(최혜국 대우)을 제공하면, 자동으로 B에게도 C국 수준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호통상조약에도 최혜국 대우의 원칙이 명시되었는데, 지금은 WTO 다자주의 무역조약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많은 조약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원칙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이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게 당시 현실에서는 조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한반도에서는 조선의 붕괴와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광복, 남과 북의 분열과 이데올로기 경쟁, 경제성장과 평화 그리고 핵무장 위협 등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국제사회도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종료로 인한 신흥국의 출현과 발전, 이념으로 무장된 냉전, 유럽의 분열과 통합, 그리고 소련의 붕괴와 새로운 러시아의 갈등 확산 등이 발생하였다. 한반도의 작은 한국 그리고 서구 열강이었던 국가들은 조선 말기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냉전 시기 이념경쟁과 한국전쟁, 20세기 말부터 이어진 경제협력 그리고 최근의 경제제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연결된다. 세상이 묘하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비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오래전 조선이 체결했던 수호통상조약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2.0시대에도 예상되는 강달러와 고금리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트럼프가 과연 중국에게 60%를 그리고 나머지 나라들에게는 10% 이상의 일반관세를 부과할지 그리고 강달러가 지속될지 세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트럼프 2.0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주요 정책은 감세와 관세다. 관세로 감세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와 금리의 인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은 지난 주 하원의 예산안 투표 부결과 연준의 내년 2번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점도표를 보면서 과연 트럼프가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 20세기 이전 미국은 관세만으로 재정을 꾸려 왔다. 트럼프는 19세기 말 맥킨지 대통령 시대가 가장 미국다운 시대였다고 자주 말하면서 그 시대를 오마쥬 하여 관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관세 전쟁을 선포했지만 세계는 관세부과 폭탄을 맞기 전에 트럼프 인수위에 줄을 대고 딜을 시작하고 있다. 각 나라는 트럼프에게 조공으로 미국 물건을 더 사주겠다고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고 우리도 LNG 수입선을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릴 협상을 하면서 트럼프 관세 비율을 줄이는데 각고의 노력들을 하고 있다. 관세의 부과는 미국의 무역불균형을 완화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거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관세가 감세를 만회한다지만 그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감세에 따른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거다. 지난 목요일 연준회의에서 내년 금리를 2번 정도 밖에 내리지 않을 거라는 점도표 발표 때도 시장이 경기를 일으켜 시중 금리는 오르고 주식은 빠졌다. 시장은 계속해서 높은 금리 (H4L)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시대에는 강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달러가 강세가 된다면 수입 단가를 떨어뜨려 물가에는 도움이 되지만 관세를 올린다고 하니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을 거다. 미국 달러 강세로 각국이 미국 채권 매수를 늘려 준다면 미국 금리의 하락에 도움이 되겠지만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달러 자산 동결을 목격한 중국과 중동 국가들의 미 채권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이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제품의 가격만 올려 수출에 마이너스 효과와 인플레에 영향을 줄 거라 예상된다. 2022년 러-우 전쟁과 AI 산업의 발달로 미국 자산 가치가 올라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물밑들 밀려 들어오고 있다. 달러 강세와 경제 성장이 나온다면 물가는 안정되겠지만 돈 유입량이 임계점을 넘어 미국 부동산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지금도 인플레가 고집스럽게 끈적거림으로 남아 있는데 잠잠했던 인플레가 다시 발생할 거고 연준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거다. 이는 부메랑처럼 미국 채권 이자에 부담을 주어 미국 재정안정화를 계획하는 트럼프 계획이 빗나갈 거다. 현실은 우려한대로 달러가 지금 이리도 강한데도 미국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달러로도 미국 물가 상승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번 연준에서 강달러와 고금리로 물가를 진정시키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보였다 트럼프의 의도와는 반대로 시장은 강달러와 고금리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탄핵 정국으로 환율이 1450원을 넘은 상태에서 우리는 내수 부진으로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미 연준이 내년 금리를 2번만 내린다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린다면 미국과의 금리차와 달러 강세로 인해 외인 자금의 유출과 1500원을 넘는 원달러 환율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환율과 자본유출을 고려한 금리 동결.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최용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개혁과 노인빈곤율

2023년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4.2%의 약 3배에 달했다. 에서는 평균소득 기준 순 연금대체율이 35.8%로 OECD 평균 61.4%보다 훨씬 낮았다. 노인빈곤율은 높고 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기본적인 연금체계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연금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공적연금으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퇴직연금(혹은 퇴직금)이며, 세 번째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개인연금 상품이다. 연금체계의 목표는 간단하다. 은퇴 후 생애 평균소득 대비 70%를 소득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출범 당시 이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기대여명의 증가로 연금제도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번 개혁을 거쳐야 했다. 1998년 1차 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재정추계를 도입했으며, 2007년에는 이를 다시 40%로 낮췄다. 연금을 받는 연령 역시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를 통해 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할 수 있었으나, 노인빈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24년 7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2,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영향력이 큰 제도를 개선하거나 개혁하는 논의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표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논의는 대체로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가'라는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사업장 가입자 기준으로 소득월액(월급여) 39만 원에서 617만 원까지를 기준으로 납부한다. 회사와 개인이 각각 4.5%씩 총 9.0%를 부담하며, 이를 40년간 유지하면 소득대체율은 40%가 된다. 그러나 직장인의 평균 근속연수 23~26년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 중반으로 낮아진다. 국민연금 개혁은 이 9%의 납부율과 40%의 소득대체율이라는 방정식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현재 추계에 따르면, 2040년대 후반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미래의 재정상황을 예측한다. 재정추계는 약 20년 이후의 기금소진 시점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납부율과 소득대체율 간의 다양한 조합을 제안하면서도 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많은 가정이 수반된다. 따라서 납부율과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뿐 아니라 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 등 대체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가능한 대안 중 하나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선을 현재 617만 원에서 건강보험처럼 상한을 없애는 것이다. 이 경우 추가적인 납부금 확보로 납부율을 약 2%포인트 이상 올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만, 납부 금액 대비 은퇴 후 수령액의 소득비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대안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씩 높이는 것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약 8~10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 거버넌스 선진화, ESG 철학을 포함한 기금운용 정책의 실질적 개선, 전문 인력 확충 및 처우개선 등이 필요하다. 2,200만 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한국 사회의 핵심 노후 복지제도다. 명확한 해결책 없이 OECD 국가 중 최악의 노인빈곤율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재광 ESG모네타 대표

[이슈&인사이트] 새로운 시위 문화는 미래 세대의 신사회운동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모인 즉석 거리광장에는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다시 만난 세계', '아파트', '삐딱하게', '불타 오르네', '챔피언, 위플레시', '슈퍼노바'와 같은 아이돌의 노래를 떼창으로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춘다.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최소한 몇 곡을 미리 연습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10대 중고생은 물론, 20~30대의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시위에 나서 노래와 춤이 한결 경쾌해지고, 곳곳에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심각해야 할 시위 현장에 춤과 노래라니? 그 뿐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어떤 이들은 시험공부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모차를 이끌고, 어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한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시위 현장에 늘 등장하는 노조나 노총, 동아리, 정당의 구태의연한 깃발은 보기 힘들고, 기상천외한 시위대의 깃발이 휘날린다.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까지 나서야겠냐"라는 의미를 지닌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더 이상 미룰 수없다"는 의미에서의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시위하다가 물 주는 일을 잊을까 걱정하는 '화분 안 죽이기 실천 시민연합' 등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시위대가 응원봉을 든 이유는 박근혜 탄핵 당시 촛불이 금방 꺼졌다고 망발한 국회의원 때문이고, 재치 있는 상식 밖의 깃발 문구는 역시 탄핵시위 배후가 있다고 퍼뜨리는 음모설에서 '배후는 나 자신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메시지는 분명해보인다. 기존의 과격한 노동 시위에서 벗어나, 시위대는 무질서하지만 환경운동, 페미니즘, 소수자 권리, 비정규직 권리, 장애인인권, 반려견 및 반려묘 권리 등 다양한 메시지를 신명나게 표출한다. 권력자의 위세 당당한 '처단' 발언에도 시위 현장은 도리어 축제의 큰 마당이 되었다. 여의도 국회 앞 시위 현장에서 뭔가 나사빠진 느슨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기존의 질서에 익숙한 꼰대다. 당신은 아마도 전국의 시민단체와 노조, 정당, 친목 단체, 대학동아리들이 저마다 전열을 다지며 깃발을 휘날리면서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들여다보면 나 홀로 또는 연인이나 친구끼리 리더도 없이 대오(隊伍)도 흐트러지고, 구호도 제각각 외쳐댄다. 이런 오합지졸의 시위대에 이른바 검찰 정권(?)이 무너지다니, 아마도 어이없이 느껴질 것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의힘의 의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면서 '종북세력 축출',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시위대에 기대어 권토중래를 꿈꾼다는 것은 시위대의 '무질서함'을 얕잡아 본 탓일게다. 그러나 이 '하찮은' 움직임들이 위압적이던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유연한 시위의 놀라운 탄력성 덕택이다. 정치 기획자의 음모 섞인 구호가 없는 시위에는 정해진 울타리와 성역이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랭 투렌은 무정형적(無定形的) 시위문화의 확장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젊은 세대가 훨씬 더 다양한 이슈를 들고 나온 시위 현장은 여당이 우려하는 전통적인 '계급투쟁'의 장이 아니다. 미래의 세대가 꿈꾸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인 셈이다. 정치권은 춤과 노래를 앞세운 미래 세대의 신사회운동에 긴장해야 할 일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신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광화문 태극기부대와 어깨동무를 할 것인가? 성일권

[이슈&인사이트]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와 국민경제

지난 11월말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었다. 당초 가계대출 증가 및 원달러 환율 상승을 우려한 금융안정 측면에서 기준금리 동결이 예상되었다. 더욱이,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시 해외 원자재 도입단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경우를 감안하면, 물가안정 측면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금통위의 결정은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였고, 인하배경도 당초 기대와 달랐다. 경제성장률 둔화 전망에 대한 원인으로 손꼽히는 내수진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금통위원장의 인하배경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이전 금통위원장이 기준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거론하던 내용과 사뭇 달랐다. 물가안정 또는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한국은행 본연의 역할과 관련된 상황 설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경기부양 또는 내수진작 필요성에 화답하는 모양새라 자칫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우선, 물가안정 측면에서 살펴보면, 한국은행이 물가지표로 참고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최근 1.3%로 나타나 한국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 2%에 부합한 것으로 확인된다.하지만, 가계입장에서 국내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CPI 상승률과 외식물가 상승률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외식물가 상승률은 최근 3%에 가까운 수준으로 CPI 상승률보다 높은 현상이 3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연준은 노동부에서 집계하는 CPI보다는 상무부에서 발표하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를 선호한다. PCE가 도시 이외 농촌 지역의 소비지출 현황을 포함하는 등 적용 범위가 훨씬 넓고, 물가파악을 위한 조사대상 항목도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사대상 항목을 1년 주기로 평가하는 CPI에 비해 PCE는 분기 단위로 조사 항목의 업데이트 속도가 빠르다. 우리의 CPI도 도시 가계의 일상생활 영위를 위해 구입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대상으로 460개 항목을 조사대상으로 하지만, 미 PCE에 비해 조사 대상 항목수가 적고, 소비자 체감 품목 비중이 작으며, 조사대상 품목의 업데이트 주기도 3년으로 긴 편이다. 이로써, 미국 PCE 상승률 2%와 한국의 CPI 상승률 2%는 물가안정 측면에서 수준이 같지 않다. 더욱이, 식자재 및 원자재 가격 상승시 규모의 경제가 어려워 이를 소비자가격으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높은 영세한 자영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구조상,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해외도입단가 상승시 국내 물가압력이 다시금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외식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 물가목표를 초과하고 있으며, 높은 외식물가가 가계의 큰 부담이 되고 있어, 현재 지갑을 닫는 경향이 높다. 한편, 가계대출 증가 측면에서 언뜻 기준금리 인하가 이자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어 민간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는 오히려 부동산 매수를 증가시킬 개연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대출수요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은행도 예금금리 인하 폭보다 훨씬 작은 대출금리 인하를 통해 이자마진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인해 은행의 이자수익 보존을 위해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다. 일부 은행은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출 문턱이 높아 오히려 대출시장에서 은행이 갑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해 금통위가 한번도 기준금리를 높이지 않았던 이유로, 올해까지 가계대출은 급증했고, 올해 2분기 이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최근까지 대출금리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의 이자비용 절감으로 가처분 소득을 늘려, 민간소비 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즉, 금통위가 기대했던 경기부양을 위한 내수진작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자. 최근 국내 증시는 기업가치라는 펀더멘털(fundamental)요인보다는 환율, 금리, 경기 등 경제환경과 관련된 단기 주가 영향요인인 모멘텀(momentum) 요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환율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기준금리 대비 낮은 국내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는 자국 통화인 원화 가치의 평가절하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여건상 국내 증시 수익률이 미국 보다 높지 않은 상황에서 환차손까지 확대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실제로 올해 10월 한달 동안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 규모는 4조원을 상회하고 있으며, 3개월 연속 매도세를 유지 중이다. 국내 증시의 부진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여건을 악화시켜,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으로 상장기업의 주식발행 실적은 전년 동기대비 약 96%나 감소했다. 증시부진으로 주식발행을 내년으로 미룬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11월 금통위의 기준금리 전격 인하가 당초 기대했던 경기부양 측면의 내수진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금통위는 본연의 목표인 물가 및 금융시장 안정에 좀 더 주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계엄 후폭풍, 경제 불안을 해소하려면

12월 3일 선포되었던 계엄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졌다. 계엄이 해제된 후에도 지난 7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불성립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대거 이탈하였다. 현 정부가 추진해왔던 밸류업은 밸류다운으로 흐름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실물경제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계엄 후폭풍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경제 불안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소비 분야를 살펴보면,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 후유증, 러-우 전쟁 후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장기간 소비가 위축되다가 최근 들어 회복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계엄 후 소비가 다시 위축되면서 연말 특수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연말 회식 등 모임이 취소되면서 외식업계 자영업자의 한숨이 깊어지기도 했다. 기업들은 투자를 유보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내 경제마저 불안정해졌다. 또한 정치 불안에 편승하여 산업계의 파업이 늘어나면서 생산 차질이 나타났다. 지난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후 노동계 총파업이 종료된 것은 다행이지만 지난 2주간의 생산 차질은 불가피했다. 철도 파업은 총파업보다 조기에 종료되었지만, 물류에 타격을 주면서 수출과 내수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려던 외국인직접투자(FDI)마저 투자를 보류하면서 일자리 증가나 세수 증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부도 예정했던 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려워지면서 금년도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야당 주도의 국회가 내년도 사업예산을 감액하면서 안정적으로 내년도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어느 정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출도 어느 정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하면서 화장품, K푸드 등 K컬처와 관련된 상품의 수출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가 주도해왔던 원전 수출에도 차질이 예상되며, 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인 방산 수출에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제조업, 특히 자동차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한편 여행수지 관련하여 외국 관광객 유입이 감소하면서 여행업계는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면세점이나 관련 상권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대외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자본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이탈하여 기업들은 자본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외국 자본 이탈로 환율이 상승할 경우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서 안정세로 접어든 국내 물가도 다시 반등할 우려가 있다. 현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야당의 경제정책과 관련된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정치적 불안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정책을 어느 정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정치적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적어도 경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야가 협력하여 대외신뢰도를 회복하여 외국 자본이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현 정부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는 국익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체코 원전과 같은 해외원전 수주는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사항이므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 노력하여 본격적으로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방산 수출에도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기보

[이슈&인사이트]경제 위기...트럼프 신 행정부와의 스킨십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오후 가결된 직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계속 함께할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약속은 변함없다"며 우리의 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15일 오전 한덕수 권한대행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였다. 한 대행은 “앞으로 모든 국정이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갈 것이며, 한미동맹 또한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서 “철통같은 한미동맹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 발전·강화를 위해 한국 측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군사 쿠테타, 계엄령 발포 등 군사적 조치에 대해 매우 강경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태국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양국간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제재 조치를 취하여 문민정부로의 권력 이양을 압박했다. 이번 비상계엄 조치로 인한 혼란 상황에 대해 미국 조야에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즉,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약 북한이 도발하면 누구에게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어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됨으로써 군 지휘계통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헌법 질서를 복원하는 것을 평가하고 안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가 이루어진 것은 한국정치 상황에 대해 미국 정부가 안도하고 있다는 반증으로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곧 시작될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뒤따른 정치 위기로 인해 행정부 교체 과도기라는 중대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를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약화된 것은 매우 뼈아프다. 지금은 새로운 관세나 한국 기업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을 시점인데, 비상계엄 상황 발생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주와 일본 같은 주변국은 트럼프 정부를 겨냥해 열심히 뛸 텐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해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정상외교가 향후 수개월간 사실상 공백 상황을 맞게 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지만, '임시직'이라는 한계상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는 힘들다. 미국 신 행정부의 정책이 수립되기 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입장이 미 정책에 반영토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직후 최대한 신속하게 한미 정상회담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질이 생기게 됐다. 한덕수 권한대행도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형식이든 접촉하여 협의를 하려고 시도하겠지만, 문제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가라앉기까지 한국과 관계의 우선순위를 낮게 설정할 수 있어 용이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기존 대미 라인을 풀 가동하여 트럼프 행정부와 스킨십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외교부가 중심을 잡고 주미대사관이 보다 순발력 있게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대기업 중에는 상당한 수준의 외교력과 정보력을 갖춘 데가 많다. 민관 협력 시스템도 가동해야 하며, 우리 현지 공관이 기업 외교를 측면 지원해야 한다. 비상상황에서는 모든 역량을 모으고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탄핵안 가결 이후...문제는 경제야

매서운 겨울이 오고 있다. 겨울이야 때가 되면 늘 찾아오는 계절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폭설로 시작한다. 마치 마른하늘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우리 경제에 예사롭지 않은 겨울이 예고되듯이 말이다. 지난 3일 밤 10시 30분 계엄령이 발동되자마자 원화 NDF 환율은 1,430원대까지 치솟았으나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물량으로 잠시 하락하였다가, 1,440원을 넘기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금융환경에서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외환시장 개입으로 안정될 수 있겠으나, 몇 시간후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환율은 1,420원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 지난주 탄핵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환율은 1,430~1,440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어제 비록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되었으나 문제는 정치적 리스크에서 전이된 경제적 리스크이다. 환율상승은 우리 경제의 수출경쟁력과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도 이제 옛말이다. 이미 과잉공급과 저가 밀어내기로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중국에 대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지니려면 환율이 매우 큰 폭으로 상승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환율상승은 어떤 측면에서도 반갑지만은 않다. 환율 급등은 해외투자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10% 수익을 낸 해외자본이 달러로 환전하여 자국으로 회수할 때 원화환율이 10% 오른다면 투자수익률이 0%가 된다. 환율이 10% 이상 상승할 경우 투자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이러한 해외자본의 이탈을 부추긴다. 수출경쟁력은 고사하고 국내 금융시장에 자금경색과, 자산가격의 하락은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한 TF, 민간부채의 문제를 크게 악화시킨다. 민간부채 문제로 금리인상 시기에 온갖 비명소리가 들리던 우리경제다. 유동성 감소는 금리인상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을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급격한 환율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외환당국의 개입은 달러 매도와 원화 매입이 이루어지므로 자연히 본원통화를 감소시킨다. 이는 긴축적 통화정책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므로 바짝 얼어버린 자금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된다. 계엄 다음날 열린 임시 금통위에서 한은 총재가 약 150조의 유동성 공급을 약속한 이면에는 외환시장 개입으로 감소할 수 있는 유동성이 최대 150조에 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한편 한은이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은행의 지준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지는 못한다. 만약 자금시장의 불확실성 증대와 해외자금 이탈 등 대외여건 불안으로 은행이 보수적으로 자금울 공급하고 초과지준만 증가한다면 시중에 자금부족현상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계엄의 부작용을 축소하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동원할 경우 은행은 자본건전성 등 위험관리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며 이는 더욱 심각한 자금경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자금부족이 지속될 경우, 내수경기 부진으로 업황이 단군이래 가장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들의 폐업으로 임대를 구한다는 상가가 늘어가는 마당에 자영업자들이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폐업은 가속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가 소유자들은 괜찮을 것인가? 그들도 부채를 통해 상가를 구입하였을 것이고 또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하다. 대외여건은 또 어떠한가? 지금 중국은 여러 교역대상국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한중 FTA를 요구하고 알리, 테무가 국내시장을 침투하기 위해 TV 광고까지 동원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이렇다할 정책적 대안도 내놓지 못하였다. 미국은 이제 한 달 뒷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는 마당에 우리의 대통령은 사실상 공석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가오는 2025년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내수를 살리고 대외 경쟁력 강화와 불확실성 감소를 위해 노력해야할 시기에,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휘말려 대통령은 대표성을 잃고 정책여력은 계엄의 불을 끄기 위해 모든 자원이 동원하게 되었다. 그렇다 문제는 경제다. 대외의존도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 석연치 않다. 여러분도 계엄령이 발동된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사업을 한다던가 행여 해외여행이라도 선뜻 가겠는가? 이제 우리가 그런 나라가 되었다. 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우리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나라"라고들 했다. 지금은 “전성기인줄 착각했던 나라"라고들 한다.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겨울 한파처럼 우리의 살을 에는 추위와 고통이 될 것이다. 1992년 당시 미대선 후보 빌 클린턴이 우리에게 외치는 듯 하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김수현

[박원주 칼럼]리더십 ...그 책임의 무게

우리 사회에 리더는 왜 있는 것일까? 필자가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2003년의 이야기부터 해 보자. 일본인 지인과 함께 차를 몰고 동경으로 가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국회 의사진행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두고 참의원 의원들과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라크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대량살상 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세계의 안보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제 정신이냐며,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아무런 객관적 증거도 내밀지 못한 채 미국의 주장이 맞다고 강변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궁색해 보였다. 아무리 일본 정치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크다고 하지만 행정수반인 총리가 노골적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미국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 반환 등 여러 이슈에서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던 터라 더 대비되어 보였다. 일본인 친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총리는 당연히 저래야 하는 것 아닌가. 총리가 국회에서 욕을 먹으면서 미국 입장을 지지하니 미국이 더 파병을 서둘러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고,국민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주장에 대놓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지 않나." 조금 충격을 받았다. 국가 지도자의 체면을 손상시켜 가면서 국민들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리고 약간의 깨달음도 얻었다. 지도자는 자기 몸에 검댕을 묻히면서 국민들의 자존심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일본 정부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다음 해에야 마지못해 이지스함과 소수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한국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달랐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고 동등한 위치를 고수하려 했고,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도 살펴야 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 의견을 낸 것에 대해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나름 그 의견에 공감하는 바도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2003년 4월 2일 국회는 비전투병력의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철군을 결정한 2008년 말까지 우리나라는 총 3000여명의 병력을 이 전쟁에 보냈고 이는 미국, 영국에 이어 연합군중 세번째로 대규모 파병이었다. 이 결정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는 재앙이었다. 취임 당시 60%에 달했던 지지율이 이 것 때문에 20%까지 급락했다. 노 대통령은 나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고 국익을 지켰던 것이다. 두 리더 모두 국가와 국민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기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 썼고, 노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잃었다.리더가 지켜주어야 할 국가와 국민의 가치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 재산권과 경제적 이익, 헌법상의 자유 등 많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 리더는 어떤 가치를 희생해서 무엇을 지켜야 할 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그 결단이 독단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하게 리더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시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상대국이었고 원유, 천연가스, 알미늄 등 필수 원자재의 주요 공급처였다.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교민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활발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우리 조선소에 40척 이상의 대형선박 건조를 발주해 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미국, EU, 일본 등은 광범위한 대러 수출규제와 금융제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정부는 우리 국민과 기업의 타격이 적은 부분부터 적극적으로 제재에 참여했다. 그러나, FDPR로 대표되는, 비전략물자에 대한 자발적 수출규제는 우리 대러수출을 본격적으로 제약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유력 언론 등을 중심으로 정부의 미온적 제재 참여에 대한 비판이 계속 커져 갔다. 수출규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씨도 먹히지 않았고, 국격에 걸맞는 희생을 해야 된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2022년 3월 FDPR 참여를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대러 제재가 기업 피해로 번지지 않도록 뼈를 깎는 외교적 노력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2년반이 지난 지금, 적지 않은 우리 기업들이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멀쩡한 수출상품에 대해 상황허가를 신청했다가 반려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정부가 기업에 대해 이럴 수 있냐고 항변하는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런 결정을 했던 전 정부에 대해 격한 비난을 쏟아낸다. 2021년의 상황을 설명하면 그땐 제재가 이런 의미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돌이켜 보면 모두의 이익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결정은 우리 선택지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여론은 한국의 국격과 동맹의 가치를 경제적 이익보다 앞세우는 선택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그 결과로 고통받는 기업들을 마주할 때 마다 당시 이 결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그 책임의 막대한 무게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잡다한 이야기를 했지만, 현재로 돌아와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리더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국민을 지키려 몸을 내던지는 이, 자기 이익을 희생하면서 국익을 지키려는 이, 어려운 선택을 하고 그 책임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이, 그 어느 누구도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책임 있는 의사 결정에서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현장에서 서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공무원들이 없다. 중요한 정책 결정들이 멈춰서 있고, 국회는 여야간 정쟁의 장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배가 불렀는지 코인과세 같은 설익은 어젠다를 내놨다 주어담는 등 연이은 실책으로 점수를 까먹고 있고,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은 흉하기 짝이 없는 내분에 휩싸여서 민생이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위선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령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이자 책임감 없는 리더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짓까지 벌일 수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 주었다. 바로 하루전이었던 12월 2일 공주에서 열렸던 민생토론회에서 경제와 소상공인, 서민을 살리겠다고 비장하게 약속했던 대통령이다. 그가 겨우 하루만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기울어 가는 자기 권력을 지키려 했다. 국민의 인권을 초법적으로 제약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국회기능을 정지하겠다는 계엄사 첫 포고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6시간만에 내외 압박으로 계엄령이 해제되었지만 그 상처는 앞으로 두고 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80년대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군사독재를 몰아내려 거리로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같은 시기를 살았던 대통령이 이럴 수 있는가? 거듭된 정쟁과 쿠데타, 내분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아사지경에 빠졌던 남수단의 내전이 상기된 것은 과한 일일까? 리더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로서 자기 소임을 다하는 행위자를 말한다. 역할을 손에서 놓고 자리에만 연연하는 리더는 없는게 낫다. 그가 자기 책무에 따라오는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방종하게 행사한다면 더더욱 존재 자체가 해악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을 위해 자기 이익을 희생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이제라도 조용히 물러나 주면 고맙겠다. 박원주

[이슈&인사이트]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이재명 대표 재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곧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2020년 5월에 시작된 재판이 지연되었다가 팔레스타인 등과 전쟁 중인데 4년도 더 지나 재판이 재개되는 것이다. 총리의 재판은 모두 세 건인데 병합으로 진행된다. 먼저 네타냐후는 2007년부터 2016년 사이 할리우드 프로듀서와 오스트레일리아 억만장자로부터 한화로 3억 원이 넘는 선물을 받았고 이들에게 미국 비자 갱신, 세금 면제 기간 연장, 사업 거래 등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또 총리는 2014년 이스라엘 신문 예디오트 아흐로노트의 발행인, 2012~2017년 이스라엘 기업 유로컴그룹 소유주 부부에게서 각각 향응 등을 제공받고 대가성 있는 거래를 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네타냐후는 1996~1999년과 2009~2021년에 이어 202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세 번씩이나 이스라엘의 총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16년부터 뇌물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고 경찰은 2018년 2월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월 사이에 그를 사기, 배임,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모두 두 번째 임기 중에 이루어졌다. 애초에 재판도 두 번째 임기 중인 2020년 5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시작되었으나 코로나19가 재판을 지연시켰다. 2022년 12월 네타냐후가 극우정당들과 연정을 하여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고 1년도 안 지나 10월에 가자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이란과 레바논까지 전쟁을 확대하면서 재판을 연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사법부는 전쟁을 핑계로 미루지 않고 재판을 속개했다. 잭 스미스 미국 연방 특별검사는 11월 25일 공소 취하 요청서 두 건을 법원에 제출했다. 스미스 특검은 트럼프가 기소된 2020년 의사당 폭동 사건과 백악관 기밀문서 불법 유출 사건을 맡고 있다. 스미스 특검은 트럼프 당선 이후 자진 사임한다는 소식까지 있다. 트럼프가 받는 다른 두 건의 재판 가운데 이미 배심원단의 유죄평결을 받은 성추문 입막음 돈제공 사건도 11월 26일로 예정된 선고 재판까지 중단되었고 조지아 대선 결과 뒤집기 사건의 수사도 중단된 상태다. 미 법무부는 1973년 닉슨 대통령과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을 거치며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 입장을 지켜왔다.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으로 현직 대통령 신분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을 기소하면 법무부가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행정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조는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도 이어졌다. 대통령의 국정 보장을 위한 불기소 입장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적 원칙은 서로 상충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미스 특검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이미 기소가 이루어진 이상, 법무부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 금지 조항이 적용된다고 판단"했으나 “범죄의 심각성이나 증거의 탄탄함, 소송의 타당성이 달라지지 않으며 정부는 여전히 (기소를)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특검은 기소 취하 요청서를 제출한 뒤 법원이 “기소가 취하되더라도 철회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2011년 대법원 판례를 지적했다. 트럼프 임기 이후에 같은 혐의로 다시 기소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것이다. 대통령이 법 위에 있지 못하다는 것을 1973년과 2000년 법무부에서 대통령의 면책은 임시적이며 임기 동안에만 적용된다고 함으로써 상충성을 피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요건 관련으로 헌재에서 주심 재판관이 지정되었다. 검찰, 경찰, 공수처에서 수사도 시작되었다. 또 차기 1위의 야당 대표는 8개 사건에 대한 재판 다섯을 받고 있다. 형사 소추에 재판도 포함되는지, 또 대통령이 선거 전에 기소된 사건으로 당선 무효형이 선고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하는지도 관심이다. 초유의 일이 세계적으로 동시다발로 벌어지기 때문에 무엇이 맞는지 또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국격이 떨어지고 허송세월이라 안타깝기 한이 없다. 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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