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이슈&인사이트]체코원전 수주의 정치적 왜곡을 경계한다

체코가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두코바니 원전 5호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이 선정됐다. 한국 원전의 우수성이 유럽에서 인정된 것이라 향후 원전 수출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 것이라 경사 중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체코 원전 수주를 둘러싸고 국내에서는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30조 원은 과장된 것이고 실제로는 10조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든지, 1GW급 APR1000 모델은 처음 시도하는 기술이라 위험성이 크고 CDF(노심손상빈도)와 LRF(대량방출빈도) 면에서 다른 나라 최신 모델에 뒤처진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또 금융조달의 측면에서 한국이 25억 달러를 대출해 주고, 47억 달러를 자본 투자했다는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사례를 들어 체코 원전도 결국 우리 돈을 들여 짓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원전 수출은 투명성이 부족하고 공기가 지연되기 십상이어서 당초보다 비용이 크게 초과되는 경우가 많아 체코 원전 사업도 위험하다는 식의 주장이 일부 언론이나 유튜브 채널, 심지어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해 부정적 주장에 대해 필자 포함, 4명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에교협(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이 지난 10월 7일, 과학적 전문성과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3명의 발제자 중 중앙대 정동욱 교수가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의의와 향후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하도 말이 안되는 주장이 많으니 이에 대해 FAQ까지 만들어 사실관계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의미, 그리고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이하는 정 교수의 발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우선 건설비는 체코가 EU 회원국이어서 EU의 공정 조건에 따라 전액 체코 정부가 지원한다. 향후 추가건설 가능한 3기의 원전은 다양한 파이낸싱 모델이 있을 수 있어 그때 가서 협의해 결정하게 된다. 체코의 참여율 60% 보장은 사실과 다르다. 원전건설에 자국 기업의 참여를 원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고리원전 1호기를 처음 도입할 때 우리 기업의 참여를 요구했었다. 이번 두코바니 5호기 건설에 체코의 자국기업 참여 요구가 있었지만 60%는 계약조건에 포함되지 않았고, 체코기업의 참여가 가능한 부분도 국제입찰을 통해 공정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즉 외국 경쟁기업에 비해 체코의 기업이 더 우수한 기술과 더 나은 조건이어야만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덤핑 주장은 한마디로 무식의 소치다. 올해 착수한 신한울 3·4호기의 사업비는 1기당 5조7,500억 원이다. 두코바니 5호기의 사업비는 11조6,000억 원으로 거의 두 배의 가격에 수주한 것이다. 물가 상승과 해외 건설로 인한 공사비 상승 요인이 있으나 반대로 용량 감소로 인한 비용감소 요인도 있다. 바라카 원전 건설 당시에도 국내 건설비의 약 2배 정도로 계약한 것을 고려하면 결코 덤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 주장도 사실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은 수출통제와 서브라이선스의 문제지 지재권의 문제가 아니다. 지재권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수출통제는 NSG(Nuclear Suppliers Group)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웨스팅하우스의 제소는 미국법원에서 이미 기각됐다. 미 수출통제법에 의한 제한(10CFR810)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적용되므로 체코와는 상관없다. 또 서브라이선스는 기술전수에 해당해 원전건설과 별도의 계약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폄훼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모르거나 원전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APR1000 모델은 체코의 전력수요에 맞춤형으로 제시한 모델로 국내에서도 아직 시공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국내 컨설턴트들도 알만한 위험성을 이미 두코바니 원전 4기와 테믈린 2기를 운용하고 있는 체코가 모를 리 없다. 공기가 늘어질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원전건설은 공기 준수, 효율성, 저렴한 가격, 안전성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체코는 물론, 다른 원전 수입 예정 국가들도 모두 알고 있다. 안전성이나 공기 준수, 가격 등이 EU 회원국인 프랑스를 제치고 한국을 선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는 체코의 발표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만 처음 시공하는 모델이니 국내에서 동일한 모델을 동시에 시공한다면 혹시 나타날 수 있는 기술적 어려움에 대응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홍성걸

[이슈&인사이트]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와 교육감 선출 방식의 논란

철 지난 레코드판이 다시 돌고 또 도는 중이다. 지난 8월 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 선고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10월 16일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다. 서울시 교육감을 보궐선거로 뽑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곽노현 교육감이 중도에 하차하면서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와 함께 보궐선거를 통하여 문용린 교육감이 당선된 적도 있다. 서울시 교육감의 흑역사가 이것만은 아니다. 2008년 7월 역사상 첫 교육감 직선제로 당선된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도 임기 동안 간부들에게 뇌물을 받고 교원들 부정승진을 지시한 혐의로 1년 뒤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다음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곽노현 교육감도 경쟁자에게 단일화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고 증거인멸도 시도한 혐의로 임기를 중단했다. 결국 직선제 서울시 교육감으로 공정택, 곽노현, 조희연은 모두 비리로 임기를 제대로 못 마쳤고 그나마 문용린 하나만이 임기를 채운 셈이다. 2008년 7월 교육감 선거는 역사상 첫 직선제로 상징성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관심은 냉랭했다. 투표율이 불과 15.4%에 그쳤다. 물론 2012년 12월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는 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74.5%를 기록했다. 그때는 대통령선거와 교육감 재선거를 동시에 실시한 덕택이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는 기초자치단체장(부산 금정구, 인천 강화군, 전남 영광군과 곡성군) 4명 선거와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관심이 적고 투표율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첫 직선제 이후 재보궐선거가 반복되고 투표율이 상당히 낮은 선거가 이어지는 데 또 다른 문제는 교육감 선거 방식 관련 논란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먼저 교육감을 임명하자는 주장이 있다. 명색이 교육감을 뽑는 자리인데 교육 전문가는 없고 후보가 난립하는데 유권자의 참여는 낮기 때문이다. 선거 비용도 다른 선거보다 훨씬 많이 들어서 선거가 혼탁하고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교육감을 임명제로 돌린다는 것은 교육 자치와 직선제 민주화에 역행하는 바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다음으로 교육감을 광역단체장 후보와 런닝 메이트제로 하자는 방안도 어김없이 다시 나온다. 교육감 후보들이 서로 진보니 보수로 나뉘어서 파란색 또는 빨간색 옷을 입고 기성 정당인 뺨치게 합종연횡을 자유자재로 하기 때문에 정당 공천 금지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교육감 선거가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보단일화 방식과 성사 여부에 집중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차라리 광역단체장-교육감 런닝 메이트제는 인위적인 후보단일화 관련 논란과 문제를 피하는 대신 정당에서 책임지고 검증된 후보를 공천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혹자는 런닝 메이트제 도입이 지방교육자치법 제24조 제1항에 “교육감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해당 시도지사의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서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부터 과거 1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만 해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정당의 공천을 받게 되는 런닝 메이트제는 교육기본법 제6조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결국 런닝메이트제 도입은 당연히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31조부터 개정하지 않고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백보 양보해서 만약에 개헌 없이도 런닝 메이트제가 가능하다면 도입에 따른 새로운 문제와 혼란을 피할 대책도 필요하다. 만약 교육감이 비리로 임기를 중단하게 된다면 새로운 교육감은 보궐선거로 할 것인가 아니면 광역단체장이 임명할 것인가 아니면 광역단체장까지 보궐선거로 다시 뽑을 것인가. 또 만약 광역단체장이 중간에 물러나는 일이 생기면 런닝 메이트제인 교육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런닝 메이트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유행 지난 채 다시 도는 레코드판이라는 말이다. 이준한

[특별기고] 그린암모니아 생태계 전망 및 대응 전략

◇클린 암모니아 프로젝트 161개, 45개국 257파트너 참여 현재 대부분의 암모니아는 '하버-보쉬' 공정으로 생산되고 있다. 질소 가스와 수소 가스를 고압과 고온에서 결합해 높은 압력·온도에서 암모니아를 제조한다. 이 공정에 질소와 수소를 공급하기 위한 원료는 다양하며, 보통 암모니아 생산에 필요한 수소연료의 생산방법에 따라 색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크게, 화석 연료중 석탄액화로 생산된 갈색(brown) 수소와 암모니아, 천연가스의 개질로 만들어진 회색(grey) 수소와 암모니아, 천연가스 개질 시 발생한 탄소를 포집 및 저장(CCS)해 만들어진 청색(blue) 수소와 암모니아,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한 수전해 수소 생산 기술로 만들어진 그린(green) 수소와 암모니아로 구분될 수 있다. 정책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청정(clean)암모니아는 통상 블루암모니아와 그린암모니아를 대상으로 한다. 상업용 암모니아 생산은 하버-보쉬법으로 지난 1920년대에 시작됐다. 1930년대에는 전체 암모니아 생산량의 약 30%가 전기 기반이었으며, 단일 공장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간 1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노르웨이의 수력발전소 지역인 리우칸에서 가동됐다. 수전해 기반 암모니아의 전 세계 생산능력은 1960년대에 연간 약 65만톤으로 정점을 찍었고, 전 세계 암모니아 생산량의 약 4%를 차지했다. 그러나 수전해 녹색 암모니아는 이후에 더욱 저렴한 천연가스 개질 암모니아에 밀려 퇴출당했다. 오늘날 암모니아의 약 80%는 농업용 비료로 사용된다. 나머지는 폭약, 플라스틱, 합성 섬유 및 수지, 냉매, 질산과 같은 화학 물질로 사용된다. 최근에는 (액체) 암모니아가 국제적인 수소경제 생태계 관점에서 극저온(-253도(℃)) 액체수소의 선박운송을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캐리어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현재 운행되고 있는 모든 선박의 연료 소비량은 연간 약 3억톤이며, 암모니아로 환산하면 6억5000만톤에 해당한다. 전 세계 암모니아 생산량은 현재 연간 2억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박용 연료 암모니아가 식량 생산에 필요한 비료와 경쟁하는 것을 피하려면 녹색 암모니아 및 청색 암모니아의 생산능력이 크게 발전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이 반드시 수요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공급 원료의 수급이 원활한 지역이면 가능하다. 즉, 생산된 암모니아는 선박으로 운송되며, 현재 세계적으로 연간 약 2000만톤 규모의 암모니아가 거래되고 있다. 암모니아 운송은 주로 LPG선과 같은 가스 운반선에 의해 이뤄지며 선박의 운송 적재용량은 통상 4만톤급이나 최근에는 최대 5만4000톤급도 가능하다. 녹색암모니아의 비용은 천연가스에서 생산되는 암모니아보다 2~3배 더 높다. 그러나 녹색암모니아 가격은 향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즉, 학습곡선 효과로 인한 수전해 플랜트 가격 하락과 소요되는 재생에너지 전력 비용의 감소가 크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화석연료는 세금과 규제의 대상으로 좀 더 강화된 조치를 부담하게 되면서 해상 및 육상의 모빌리티, 유틸리티 규모 발전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연료 간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만일, 탄소세가 tCO2(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 단위)당 150~200달러 규모로 책정된다면 녹색 암모니아는 현재에도 석유베이스 연료와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2024년도 노르웨이선급협회(DNV) 보고서에서는 청정암모니아로서 그린암모니아와 블루암모니아를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해운 분야에서의 암모니아의 공급과 수요에 중점을 두고 분석을 수행했다. 단, 지난해에 공표된 국제해사기구(IMO)의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 넷제로 목표보다 완화된 2018년의 50% 감축목표에 기초한 분석 결과이다. 분석대상인 161개의 프로젝트가 대부분 2030년까지를 실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초해 2030년까지의 클린 암모니아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있다. 161개 프로젝트에는 45개국 257프로젝트 파트너가 참여하고 있다. 발표된 클린 암모니아 총 생산량은 연간 2억4400만톤이며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 생산량을 초과한다. 주요 국가별 프로젝트 규모 가운데 호주가 압도적으로 큰 비중(22.17%)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자국의 태양광 및 풍력을 이용한 녹색암모니아 생산이다. 두 번째 규모(14.38%)인 미국은 대부분이 청색 암모니아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생산되는 셰일 오일과 CCS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모리타니, 오만, 이집트, 모로코 등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생산량이 두드러진다. DNV보고서에 따르면 선박 연료 전용 암모니아 생산은 10개국에서 30개 프로젝트가 목표로 하고 있다. 총 생산량은 연간 2080만톤이며 대부분은 그린암모니아를 계획하고 있다. 주요 선도국은 호주(49%)와 이집트(33%)이다. 비료, 에너지 등 다목적용으로 연계된 그린암모니아 생산량은 연간 총 1억7400만톤이다. 따라서 발표된 프로젝트 모두가 2030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경우에는 선박 연료용 그린암모니아의 공급 가능량은 연간 2100만∼1억5100만톤 범위로 추정되고 있다. 비료생산용 암모니아 생산 신규 프로젝트 수는 16개국에 걸쳐 33개이다. 총 추가 생산량은 연간 1107만톤이며 그중 연간 980만톤이 그린암모니아, 128만톤이 블루암모니아다. 가장 대표적인 비료용 그린암모니아 생산국은 모로코이며 예상 생산량은 연간 400만톤이다. 호주는 암모니아를 연간 약 5400만톤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비료용 암모니아 프로젝트 총생산량은 55만톤이다. 재생에너지만을 이용한 비료 전용 프로젝트 외에도 여러 혼합 용도 프로젝트가 있으며 총 생산량은 연간 7100만톤으로 예상된다. 암모니아는 가장 유망한 장거리 수소 운반체 후보이다. 41개의 프로젝트가 발전용 수소에너지 운반체로서 암모니아를 구체적인 목표로 하고 있으며 총 생산량은 연간 3250만톤이다. 이 중 98%가 그린암모니아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용(발전) 그린암모니아 생산을 주도하는 국가는 호주(35.62%)와 아프리카의 모리타니(30.81%)이다. 에너지를 포함해 다목적 용도(비료, 연료 등)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의 총 생산량은 연간 1억7300만톤이다. DNV의 프로젝트 성공확률 자체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도의 현실적인 선박 암모니아 공급연료량의 하한은 연간 500만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혼합용도의 공급량(2720만톤)을 고려하면 총 연간 3220만톤의 공급이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연료전용 공급량 연간 500만톤은 모두 그린암모니아인 점이다. 그린 및 블루 암모니아 연료의 개발은 암모니아 엔진의 개발과 병행해 진행돼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암모니아 엔진 개발은 오는 2026년경 완료돼 신조선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2030년경 부터는 그린 암모니아 연료 추진 선박이 해운 운송의 탈탄소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암모니아 교역을 위한 공급망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참여자들은 천연가스 개질 암모니아 생산 및 관리, 운송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천연가스 개질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기 위해 기존 공장에 CCS를 개조하거나 새로운 공장에서 블루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대규모 암모니아 사용자로는 Yara, Nutrien 등의 비료 생산업체와 Chevron, BP와 같은 정유업체가 있고 이러한 업체들은 현재 시장, 공급망 및 천연가스 개질에 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은 청정 암모니아 초기 가치사슬 단계에 속해 있으며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기업들이다. 천연가스는 개질을 통한 수소생산과 CCS를 이용한 탈탄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좌초자산으로 바뀔 것으로 보여지며 Equinor와 BP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 플레이어들이다. 일부 기업은 통합된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한 전용 수전해 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Iberdrola와 Statkraft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전해 역량이 부족한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IHI와 같은 수전해 전문기업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표는 클린암모니아 시장의 플레이어를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저렴한 해상풍력 전력 공급과 수전해 효율성에 경제성 달려 수소 생산 및 기타 전환 공정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는 해상 풍력 발전으로부터 공급을 받는다. 그린수소는 세 가지 수전해 기술로 생산된다. 즉, 알칼리 전기 분해(AWE), 양성자 교환 멤브레인 전기 분해 (PEM WE) 및 고체 산화물 전기 분해(SOE)이다. 다음으로 극저온 공기 분리 공정으로 질소가스를 생산하며 하버-보쉬 공정(HB)에 의해 암모니아를 합성한다. 수전해에 필요한 용수는 해수를 담수화해 공급한다. 이 방식은 계통연계 그리드의 지원 없이 운영될 수 있으며 생산된 암모니아는 선박 또는 전용 해저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육상 또는 해상의 저장소에 이송된다. 또는 해상벙커링을 통해 암모니아 추진 선박의 연료로 해상에서 직접 공급이 가능하다. 현재 AWE는 MW급의 대형 수전해가 가능하며, 사용수명이나 수소생산단가, 기술성숙도 면에서 다른 두 기술보다 우수하다. PEM 방식과 SOE 방식도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대형화를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다.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기술들이 연구실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은 기초연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린수소와 이를 이용한 암모니아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의 90% 정도가 수전해에 이용됨으로 전체적인 경제성은 결국 저렴한 해상풍력 전력 공급과 보다 효율 좋은 수전해 기법의 통합운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중 B는 공기분리장치(ASU)를 통한 N2 생산이며 여기에 소요되는 에너지도 해상풍력의 전기를 이용한다. C는 수전해 수소를 이용하는 개량된 하버-보쉬 공정을 나타낸다. 이외에 수전해에 필요한 고순도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해수담수화 공정이 필요하다. 대규모 생산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으며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도 해상풍력에서 공급할 수 있다. 해상풍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정이 열의 흡수와 방출을 동반하는 화학반응이므로 다양한 열관리 기술을 동원해서 가능하면 열손실을 줄일 수 있는 통합공정관리가 경제성 확보를 위한 핵심기술로 평가된다. 부유식 해상풍력을 이용한 수소생산 실증연구가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보고서(Dolphyn Hydrogen, 2019)에서는 수소생산 시설을 영국동부 해안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플랫폼(sub structure)에 직접 설치하는 방안, 해상풍력 단지의 전력을 모아서 단지내에 중앙집중식으로 부유식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방안, 해상풍력 전력을 육상으로 연계해 해안에서 수소생산시설을 설치하는 방안들에 대해 장단점을 비교하고 있다. 그 결과, 반잠수식 부유식 해상풍력플랫폼 위에 직접 설치하는 방식이 가장 유효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탑재 터빈의 용량은 2메가와트(MW)와 10MW급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현재는 터빈의 대형화로 15~20MW급이 주력 터빈으로 설치될 예정이고 여기에 대응하는 수전해 시설 용량도 모듈당 10MW를 상회하는 제품들이 출현하고 있어 규모확장에 따라 다른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상풍력 수소생산 프로젝트가 'PtoX' 개념으로 독일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시리즈 중 하나인 H2Mare는 31개의 연구기관과 산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예산은 독일정부지원으로 규모가 1억유로 이상이며 과제기간은 2021∼2025년이다. 이중 세부 프로젝트인 H2Wind는 전해조를 풍력 터빈 플랫폼에 설치해 터빈과의 최적 결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수전해 방식은 컴팩트 PEM방식이다. 이 과제에서는 생산된 수소를 저장하는 공정도 개발 중이며 해상에서 이용가능한 해수 담수화 공정을 테스트하고 있다. OffgridWind에서는 전용 육상 테스트인프라를 구축하였고 테스트는 2024년 봄에 시작되었다. 또한, 생산된 수소를 육지로 운송하는 기술과 수소생산을 위한 풍력 터빈의 전체 수명주기 경제성 평가 연구도 수행한다. PtX-Wind에서는 해상에서 메탄, 메탄올, 암모니아. 물, CO2, 질소 등을 직접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또한 해수 전기분해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성공하게 되면 바닷물을 담수화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섯번째 그림은 이러한 수행과제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도이다. ◇제주-부산 중간 EEZ해역 평균풍속 약 8m/s, 이용률 35~40%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월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전원별 발전 비중 중 수소 및 암모니아 발전 비중을 2030년 2.1%, 2036년 7.1%로 설정했다. 액화천연가스(LNG)-수소 50% 혼소와 석탄-암모니아 20% 혼소 발전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발전량 계획은 2030년에 13.0테라와트시(TWh)(수소 6.1TWh, 암모니아 6.9TWh), 2036년에 47.4TWh(수소 26.5TWh, 암모니아 20.9TWh)를 목표로 한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통해 수소 또는 수소화합물(암모니아 등)을 연료로 생산된 전기를 구매 공급하는 제도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향후 상당한 양의 수소 또는 암모니아가 필요하게 되어서 국내 발전사와 기업들은 우선 석탄 혼소 발전용으로 클린(그린과 블루) 암모니아를 도입할 예정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 '청정암모니아 전주기 밸류체인 체계구축 연구 보고서' 에서는 클린 암모니아 전주기 관점에서 국내외 현황과 정책 제안 등이 체계적으로 제시돼 있다. 이 보고서(안지영, 2023)에서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에서 클린 암모니아를 생산해 국내로 도입하는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시나리오별 도입단가를 분석하고 있다. 미국 블루암모니아의 도입단가는 300~500달러/tNH3 범위 내에 있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생산세액공제를 반영할 경우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블루암모니아는 300~400달러/tNH3 범위로 경제성이 가장 좋은 것으로 추정되며 호주 그린암모니아의 도입단가는 700~800달러/tNH3 범위로 도입 시나리오 중 가장 낮은 경제성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안보 차원에서는 클린에너지의 해외 도입을 통한 장기적인 비축이 우선적인 대책이 될 수 있으나, 국내에서도 자체적으로 대량생산을 위한 타당성 검토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시점이다. 앞에서 언급된 최신 자료들에 의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해상풍력을 이용한 그린수소 및 암모니아 생산 공급 실증 연구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자원이 우수한 배타적 경제수역(EEZ)해역에서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 굴지의 조선 3사 및 협력사들의 해상풍력 제조 및 설치 능력과 다양한 해상 플랜트 건조 경험을 살리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PtoX 융합 기술이 탄생할 수 있어 차세대 산업으로서도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 및 울산항에 기항하는 대형 해운선사 항로에 위치한 EEZ 해역에서 1만MW의 부유식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는 경우를 가정해 본다(이영호, 2024). 제주와 부산의 중간 EEZ해역의 경우, 허브높이 100m에서 평균 풍속은 약 8m/s이다. 이 풍속에서의 이용률은 대략 35~40%로 예상한다. 수심도 75∼100m 범위여서 부유식 풍력 설치 수심 조건(>60 m)을 만족시키는 대륙붕 해역이다. 15MW 터빈을 사용하고 좌우 이격거리를 단순히 4D x 6D(D: 터빈 직경250m 기준)로 하면 1000MW 설치용량에 필요한 해상면적은 100㎢정도로 추정한다. 따라서 1만MW 단지조성에는 1000㎢규모의 해역이 필요하다. 제주도의 면적은 1850㎢이다. 제주도에서는 면적의 54% 규모인 가로 25km x 세로 40km 해역(1000㎢)에 1만MW의 부유식 풍력단지 조성이 가능하다. 현재 녹색 암모니아 생산에 필요한 전력은 1톤당 10메가와트시(MWh)수준이다. 1만MW 규모의 단지에서 이용률을 35%로 가정하면, 연간 3068만MWh의 전력이 공급되며 매년 약 3백만톤 규모의 그린암모니아 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간 약 140만톤을 주로 비료생산용으로 전량 수입하고 있다. 한편, IMO의 해운분야 탈탄소화 정책에 따라서 암모니아 무탄소 연료 선박의 안전 관련 법규의 정비가 올해 중 완료될 예정이고 오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조선의 건조가 시작된다(LR 보고서, 2024). 우선은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이 자체 연료로 운항되며, 호주, 미국, 중동 등에서 만들어진 해외 물량이 국내의 비축기지에 운송될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국내의 수소 및 암모니아 혼소발전용 수요, 무탄소 선박 연료 벙커링 공급 수요, 종래의 비료생산 수요 등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의 전주기 공급망의 확보는 매우 시급하다. 여러 혁신적인 제도 개선과 관련 기술개발이 동시에 이뤄지면 2050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수소 생태계의 조성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신 3김시대...치졸한 작은 정치

사자나 범과 같은 큰 짐승을 잡으러 나선 포수는 꿩이나 참새 같은 작은 짐승을 보아도 함부로 총을 쏘지 않는다. 이는 작은 짐승을 잡으려다가 큰 짐승을 놓칠까 저어함이다. 마찬가지로 큰 정치에 발심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큰 발심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작은 정치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엔 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없고 정상배, 모리배, 무뢰배 등 소인들만 참새 사냥으로 우르르 몰려다닌다. 한국 정치사에 3김시대가 있었다. 3김 시대는 제3공화국 군사정권 시대인 1960년대 말부터 민주화 이후 2000년대 전반기까지 30년을 넘게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명의 거물 정치인이 정치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다. 이들은 모두 성씨가 김 씨였기에 오류 방지를 위해 머리글자를 따서 일명 YS(김영삼), DJ(김대중), JP(김종필)로 불렸다. 3김 시대는 1969년 11월, 4선 의원이었던 42세의 YS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0년 3선 의원인 46세의 DJ가 출마하면서 3김 정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자 YS-DJ는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JP는 외유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김은 각각 PK, 전라도, 충청도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 연횡 했다. YS는 1992년 14대 대선으로, DJ는 1997년 15대 대선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3김시대가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90년대 중반부터는 3김 정치는 패거리 보스정치, 권위주의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고 “3김이 망해야 한국 정치가 산다."라는 3김 정치가 청산 대상으로 거론되었다. 2009년 DJ, 2015년에 YS, 2018년에 JP가 차례로 영면하여,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3김의 타도 대상이었던 박정희를 포함해서 3김시대는 큰 정치의 시대였다. 중앙정보부장이 청와대 독대에서 YS가 영화배우 이빈화, 조미령과 놀아난 사건과 DJ가 장안의 여인에게서 출산한 혼외자까지 기록된 파일을 들추며 보고하였다. “임자, 그 보고서를 당장 파기하시오! 아무리 정치가 살벌하다 하여도 배꼽 아래를 말하는 건 사내대장부의 할 짓이 못되오!"라고 핀잔을 먹었다. 1960년대는 요정 정치'가 횡행했던 시절이라서 상대 정치인의 사생활은 노출되었지만, 입에 올리지 않는 게 관례였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일은 더욱 그랬다. 3김은 박정희 대통령의 본처 김호남과 장녀 박재옥 문제로 육영수 여사를 폄하하지 않았다. 정치가 격렬했지만, 진검승부였고 치졸하지 않았다. 지금은 새로운 3김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신 3김시대는 문 대통령의 김정숙,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김혜경, 윤 대통령의 김건희 여사가 모두 김 씨라서 연유한다. 3김 시대가 진검승부의 큰 정치 시대라면 신 3김시대는 치졸한 참새 정치 시대다. 야권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을 추진하자, 여권은 김정숙 여사의 단독 인도 방문을 고발했다. 김혜경 게이트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법인카드'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자 등에게 음식을 제공한 혐의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에 대한 진검승부가 아닌 그들의 가족에 대한 기소는 - 진실에 상관없이 - 참새 정치에 속한다. 소리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1990년대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초입 단계에 진입하여 있다. 한국 경제는 퍼펙트스톰에 직면했는데, 정작 국정운영 총책임자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참새에게 총질이나 하고 있다. 국회는 야당이 발의하면 여당은 '묻지 마 반대'하고,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은 '묻지 마 거부'하고, 국회는 다시 재의결하지만 결국 폐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 3김 정치에서는 정치인은 없고, 정상배만이 활개를 친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큰 정치인이라면 참새에 총질을 멈추고, 하루속히 큰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윤덕균

[신연수칼럼] 남며들다(남한에 빠져들다)

1989년 대학생 임수경의 방북은 남한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가 노태우 정부에서 가석방되고 김대중 정부에서 복권되었다. 그런데 당시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이탈 주민들을 인터뷰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임수경의 복장, 말투, 행동을 보며 자유세계에 눈을 떴고, 당국이 주입한 인식에서 벗어나 남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회를 동경하며 탈북까지 하게 되는, 북한 사회 균열의 출발점이 되었다(김윤희, “북한에서 '임수경 열광'과 도전받은 집단주의", 2022). 북한 독재 정권은 자진 방북한 임수경을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하려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TV로 중계하고 신문에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임수경은 저절로 굴러들어온 '홍보 수단'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훔쳐 간 '도둑'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임수경 현상'은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이 뒷받침하고 독일 통일에서 현실화된 '접근을 통한 변화'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다. 접촉과 교류만으로 통일을 이룰 수는 없지만, 접촉과 교류 없이는 진정한 통일도 없다. 가장 강력한 통일 정책의 하나는 바로 북한 주민들이 '남며들다(남한에 빠져들다)' 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의 선전 도구였던 임수경, 정반대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훔쳤다 35년 전 임수경의 밀입북을 도왔던 임종석 전 의원이 오랜만에 통일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라는 연설을 해 정치권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임 전 의원의 연설 전체를 읽어보면 '통일을 하지 말자'라기보다는 우선 평화공존에 집중하고 통일은 먼 훗날 검토하자는 얘기다. 당분간은 남과 북이 두 개의 국가임을 인정하고. 법과 제도도 그렇게 바꾸자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남북이 서로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논의가 오래된 만큼, 임 전 의원의 주장은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더구나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20~39세 젊은이들은 '현 상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36.0%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답(30.9%)보다 많을 정도로, 통일에 부정적이다. 1994년 이후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1단계 화해와 협력, 2단계 공존공영의 남북연합, 3단계가 통일로서 단계적, 점진적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통일운동의 한 주역이었던 임 전 의원이 이 시점에 굳이 평화보다 통일문제를 앞세워 '도발적 발언'을 한 것은 현재 그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헌법의 영토 조항과 평화통일 추진 조항까지 삭제하자는 제안은 너무 나갔다. 헌법을 바꾼다 한들, 비핵화 회담에서 늘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직접 담판하려는 북한이 '고맙다'며 남한과 대화하려고 할까. ◇한반도 평화와 점진적 통일 위해 정치력을 발휘할 지도자는 없나 정부 여당의 대응은 더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평화 통일 추진 의무를 저버리는 반(反)헌법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이 굳이 국무회의에서 아무 직함 없는 민간인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평소 '반국가세력'을 들먹이며 정부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시도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는 윤대통령은 헌법에 명시된 평화통일 추진을 위해 무엇을 했나? 접경 지역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대북 전단 대 오물 풍선' 싸움이나 강 대 강 군사 대립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 대한민국' 비전은 북한이 흡수통일방안이라고 반발할 정책으로, 평화통일방안의 1단계인 화해 및 협력과 정반대 방향이다. 강력한 안보 태세를 갖추되, 미일은 물론 북한 및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들의 마음을 사서 대화와 평화공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동서독 통일에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이라는 진보-보수 두 주역이 있었다. 브란트는 동독과 교류 협력하는 동방정책으로 통일의 바탕을 만들었고, 콜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으면서 외교력과 유연성을 발휘해 통일을 이뤄냈다. 한국에는 통일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 통일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는 없는가.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특별기고] 한국남동발전의 미래

한국남동발전(주)에서 비상임이사로 활동한지 어느덧 3년 4개월이 되어 간다. 활동한 내용들을 정리하는 동안 우리 국민의 생명줄 같은 전기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남동발전 임직원들의 모습이 어느새 추억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전기생산은 안정적 연료 확보로 이어져야 하고 특히 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발전소 관리·운영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어느 정부에서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부존자원이 적고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분야가 바로 전력산업의 핵심인 전기생산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 특히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분야가 전력산업이다. 남동발전은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따른 연료비 폭증 및 석탄발전 조기 폐지, 친환경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 확대라는 여러 현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사적인 노력의 집중으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완화하는데 기여 했으며,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직원들의 고강도 자구 노력으로 3년 연속 당기순이익 증대, 2년 연속 부채 비율 개선(2023년 기준 124%)을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4년 연속 '재난관리 분야 평가 최우수 등급' '5년 연속 감사평가 A등급' 등 공공기관 대상 정부 경영평가에서 해마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공기업 경영평가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 정부가 발표한 '2023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보면 32개 공기업 중 남동발전이 종합 1위를 획득했는데 경영관리와 주요사업 등 평가 항목에서 골루게 탁월한 성적을 보여 줬다.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재무부분에서의 부채 비율은 2021년 147.7%에서 2022년 126%, 2023년 124.3%로 3년 연속 감소했다. 부채 비율이 200%를 넘는 공기업이 적잖은 점을 고려할 때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 설비 운영을 통해 설비 이용률 향상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에는 4만850GWh의 전기를 생산 했으며, 3만8422GWh를 판매해 5조7000억원의 전력 판매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 전력 생산량과 판매량은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 58만8232GWh의 6.9%이며, 남동발전이 전체 판매량 54만3973GWh의 7.1%를 점유하고 있다. 남동발전은 이와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이제는 더 큰 미래 에너지산업에 도전해야 한다. 전기생산에서 전기와 열 등 에너지 생산뿐 아니라 전력산업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발전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사업 영역을 넓혀야 한다. 핵심은 AI 전력, 신재생에너지, 송전망 등 전력 인프라, 그리고 전력산업 관련 소재 등이다. 왜, AI는 전기 먹는 하마가 되었는지부터 고민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2022년 11월 챗(chat) GPT가 최초로 출시되고 세계에 생성형 AI 열풍이 확산되면서 빅테크들은 앞다튀 AI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열풍은 데이터센터 확대로 이어져 2026년까지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AI용 데이터센터는 딥러닝(머신 러닝의 방법 중 하나)을 반복 수행해 기존 연산 대비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6년 세계 전력 수요 증가분 3449TWh에서 AI용은 530TWh(15.4%)를 차지할 것으로 IEA는 전망하고 있다. AI발 전력 수요 증가는 데이터센터 구축 및 다양한 경로에서 에너지 및 소재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신재생에너지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넷제로를 이행할 현실적이며 경제적인 방안으로 원전의 준공 연한 (7~11년) 대비 재생에너지는 2~4년으로 짧고 발전원가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미국이 2026년 5조2000억달러 등 유럽 및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를 포함한 신흥국에서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총 발전량 증가분 1462TWh에서 AI용은 262TWh(17.9%)로 예측하고 있다. 셋째, 전력 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망 사업이다. 전력망은 전력을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중요 인프라이다. 최근 광섬유망, 초고압 변압기 등 요구 변화에 기준 설비로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IEA에 따르면 미국 전력망의 3분의 1은 30년이 넘은 구형이며, 유럽도 절반 이상이 구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 세계 전력망 수요는 선진국의 노후 대체 수요와 신흥국의 신규 수요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투자는 2026년까지 4200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2026년 아시아 1800억달러, 북미 1100억달러, 유럽 900억달러, 그리고 남미 220억달러, 아프리카 160억달러 등으로 전망하고 있다. 넷째, 에너지산업에서의 소재이다. 핵심광물은 성장하는 친환경에너지 분야의 필수 원소로 빠르게 자리 매김하며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의 전력망,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은 최근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바나듐 에너지저장장치(ESS) 공동 개발 및 실증사업 추진 협약을 맺었다. 국내 에너지기업도 ESS 시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진출에 나서고 있다. 이차전지용 핵심 소재의 수요 비중은 구리(45%), 리튬(87%), 니켈(50%), 코발트(59%) 등으로 지속적인 증가세가 전망된다. 남동발전이 현재처럼 발전소 운영·관리와 건설에만 집중 한다면 변화하는 미래 에너지산업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를 보고 글로벌 종합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구축에 나서야 한다. 미래 에너지산업은 'AI형 확산'이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그리고 '에너지 및 소비시장'에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해상풍력, 태양광, 양수발전 등)사업, 전력망 사업, 친환경 에너지 소재사업 등에 진출해 보다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마련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친환경에너지 기술개발과 수소 및 암모니아 사업, 수소연료 저장 공급 시스템 사업(수소연료 기술 센터 등) 등 수소 분야 연구와 사업화 등을 통해 종합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지난 3년 4개월의 기간이 개인적으로 '더 큰 성장을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묵묵히 일하는 임직원들의 도움에서 나온 것이다. 전력산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기에 수 많은 회의와 현장 방문, 반복할 수 밖에 없었던 질문에도 불구하고 잘 응해준 임직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남동발전의 더 큰 성장을 기원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이슈&인사이트] 내수진작을 저해하는 요인들

최근 우리 경제의 고민거리는 민간소비 부진이다. 민간소비 부진의 직접적 원인은 고물가이다. 고물가는 높은 원달러 환율 지속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과 관련이 있다. 곡물, 석유 등 해외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여건상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도입단가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 여파로 민간소비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경제에서 수출과 함께 성장의 한축인 민간 소비의 부진은 경제성장률 둔화로 나타났다. 민간소비 동향을 판단할 수 있는 소매판매액 지수 변화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년동기 대비 약 3%나 낮아졌다. 특히, 동 지수는 9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여 역대 최장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로인해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이전기 대비 0.2% 역성장했다. 최근 정부는 내수진작을 위해 국군의 날의 임시 공휴일 지정 등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 오히려, 정부는 일시방편적 대책보다는 민간소비를 저해하는 요인들을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첫째, 소비자의 신용카드 일시불·할부거래 결제를 늘리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미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카드 사용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기존 10%에서 20%로 2배 인상했다. 비교적 적절한 대책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시불·할부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사의 신용판매 부문에 대한 사업축소가 문제이다. 실제로 카드사는 무이자 할부·할인·포인트 적립 등 신용판매 관련 소비자 부가서비스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로인해 신용카드 일시불 거래의 금년 1분기 성장률은 8%에 그쳤다. 전년도의 15%의 성장률에 비하면 가파르게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자동차·가전 등 고가의 내구재 구입시 이용하는 신용카드 할부거래 성장률도 올해 1분기의 경우 3.7%였는데, 이는 지난 2022년의 12%에 비해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 일시불·할부거래를 축소한 대신 카드사들은 카드론 공급을 늘리고 있다. 최근 카드론 잔액이 4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신용판매 부문의 낮은 수익성을 카드론이라는 높은 수익으로 보전하려는 카드사의 영업전략이 반영된 결과이다. 후불결제가 보편화인 국내 소비행태를 감안할 때, 카드사들이 일시불·할부거래의 신용판매부문을 축소한 것은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와 무관치 않다. 동 제도는 가맹점 수수료율을 3년마다 재평가하여, 시장 상황에 맞게 수수료율을 재조정한다는 당초 취지가 있었으나, 실제로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율은 지속 인하되어왔다. 더욱이,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우대 가맹점의 비중도 96%까지 늘어났다. 신용판매 부문에 소요될 영업자금 확보를 위한 조달비용이 증가한 최근 상황에서 해당 사업에 대한 수익성이 크게 줄어든 신용판매 부문보다 카드론 등 대출성 현금부문에 카드사의 사업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일시불·할부거래에 대한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는 결제수단으로서 신용카드에 대한 혜택을 줄여 민간소비 증가에 기여하는 신용카드 사용의 유인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높은 배달앱 중개수수료율은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의 지갑을 닫게 만든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올해 8월의 외식물가 상승률은 3.0%로 2.4%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돈다. 외식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높은 현상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김밥, 칼국수 등의 최근 가격은 3년 전 가격에 비해 20% 이상이나 상승했다. 외식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은 대체로 영세한 편이며,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형 스낵업체와 같이 불황기에 대량의 원자재를 구입하여 구매단가를 낮추거나, 자동화 설비 확충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이 없는 영세한 사업 단위가 많아 원가 상승시 이를 소비자 판매가격에 이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 배달앱 서비스의 높은 중개수수료율은 영세 자영업자의 소비자 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외식물가 상승세를 더욱 심화시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급증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높은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월 이후 한번도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은 한국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주담대의 급증을 불러왔다. 또한, 향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며, 주담대 수요를 늘리고 있다. 이는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비용 및 주담대 이용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 등으로 이어져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계기가 된다. 결국, 가처분 소득의 감소는 민간소비 감소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내수진작을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요인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즉, 신용카드의 일시불·할부거래 이용률 둔화, 높은 배달앱 중개수수료율, 주택담보대출 급증은 내수진작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서지용

[이상호 칼럼] ‘삐삐’ 폭탄공격 당한 헤즈볼라와 끝나지 않는 중동 전쟁

2024년 9월 17일과 18일,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일명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와 무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여 약 3,000명의 조직원이 죽거나 다쳤다. 현재 사망자는 14명이나 중상자가 많아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공격의 배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스라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로이터 통신 등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이 사태의 배후라고 레바논 고위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보안이 취약한 휴대전화를 추적해 헤즈볼라 주요 요인과 조직원을 제거하는 방식을 애용해 왔다. 이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추적을 회피하여 작전 효율을 높이는 대안으로 구시대 골동품인 '삐삐'를 통신과 소통에 사용했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주문한 5,000대의 무선호출기에 소량의 폭발물을 비밀리에 장착했고 이번에 공격에 사용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가짜 무선호출기 공장 설립과 운영을 위해 약 15년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치밀함과 집요함, 그리고 헤즈볼라 제거를 위한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공격 후 이스라엘은 20, 21일 연속으로 레바논 남동부와 수도 베이루트를 맹폭하며 헤즈볼라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은 존재로 1982년 결성된 이후 줄곧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서 왔다. 더군다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심각한 피해를 준 하마스를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의 분노를 자초했다. 작년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9.11이었다. 이스라엘은 9.11 테러 충격으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미국만큼 충격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마스 테러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더 이상 대화를 통한 평화 모색을 포기한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전쟁 개입을 막으려는 선제공격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헤즈볼라 전체를 완전히 무력화하여 제거하기 위한 결전의 의지로 파악된다. 이스라엘도 이번 공격으로 민간인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실제 이번 공격으로 어린이들과 민간인 여럿이 희생되었다. 국제 사회 일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테러 행위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정당한 군사 작전의 일부이며 본격적인 군사 행동 이전에 적의 지휘부와 주요 조직원을 조기에 타격하여 위협을 최소화하는 선제적 정밀 유도 무기 공격이라고 판단하여 시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번 행동이 무차별 테러라는 비난을 아예 묵살하고 오히려 확전을 통해 헤즈볼라를 발본색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각오가 아니라면 테러 행위로 비난받을 '삐삐' 폭탄이라는 기발하지만, 무차별적인 살상 무기로 공격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불구대천지원수'인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어떻게 하면 조기에 마비시켜 제거할 수 있는지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했고 이번 공격은 전략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국가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국가 보존보다 더 큰 목표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 때문에 비난을 받겠지만 국익 수호를 위해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다시 한번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의 우수함을 입증했고 앞으로 헤즈볼라를 비롯한 여타 세력이 이스라엘에 효과적으로 보복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완전히 제거하는 전과를 거두어도 결국 다른 반이스라엘 세력의 출현을 막지 못할 것이다. 중동의 비극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마스와 동조 세력을 응징하는 이스라엘이 아무리 이번 공격이 명분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해도 일부 지나친 이스라엘의 행위는 만행으로 보일 수 있어 국제 사회의 비난과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보복의 악순환은 중동을 끝나지 않을 영원한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이를 회피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가 필요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의 국제정세를 보면 이런 노력의 성과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상호

[이슈&인사이트] G20 정상회의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2024년의 G20 정상회의가 가을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Group of 20의 약자인 G20는 국제경제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20개의 선진 및 신흥경제국이 1999년에 출범시킨 협의체인데, 이 분야의 현안에 관한 소통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세계 경제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G20의 정상회의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각국 정상들의 모임이다. G20 국가들은 세계 인구의 2/3, 세계 총생산량의 90%, 국제무역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G20에서 이루어지는 합의 내용과 그 이행은 국제사회의 경제 패러다임에 상당한 파급력을 가진다. G20에 속하는 국가의 대표자들은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ECB(유럽중앙은행) 등 여러 국제금융기구와 함께 1년 동안 셰르파(Sherpa) 회의, 장관급 회의, 의제별 실무그룹 회의 등 여러 종류의 회의에 참여한다. 각국 고위급 대표들은 셰르파 회의에 참석하여 G20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질 의제와 정상들의 선언문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G20 의장국은 해마다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각국 정부의 최고 대표자가 함께 만나서 각종 회의의 근간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한다. 정상회의가 시작된 2008년 당시에는 경제문제에만 논의가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G20 설립의 목적이 국제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과 탄력성의 확보이기 때문에, 이제는 정상들이 자연스럽게 경제와 관련된 국제정치와 안보 논제를 언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에너지 확보, AI 등 다양한 주제들이 포괄적으로 논의되는 추세이다. 2022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COVID-19 상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함께 하는 회복, 더 강한 회복'(Recover Together, Recover Stronger)이라는 슬로건이 채택되었다. 올해 G20의 의장국은 브라질인데, 이번 G20 정상회의는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될 계획이다. 이번 회의의 슬로건은 '정의로운 세계와 지속가능한 지구의 구축'(Building a Just World and a Sustainable Planet)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1차 셰르파 회의 기조연설에서, '사회적 포용과 기아·빈곤 대응'(Social inclusion and the fight against hunger and poverty),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and energy transitions),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Reform of global governance institutions)을 G20가 국제사회를 위한 우선 과제라고 소개하였다. 셰르파 회의에서는 G20가 앞장서서 식량난과 공급망 교란 문제를 해결하여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고, 에너지 안보나 AI 및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에 있어서 국가들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최근 G20 셰르파 회의에서는 농업, 디지털경제, 에너지 전환 등의 논제와 함께 의장국인 브라질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동원(Global Mobilization against Climate Change) 작업반과 글로벌 기아 및 빈곤 퇴치 연합(Global Alliance against Hunger and Poverty) 작업반 업무가 논의되었다. 올해 2월에 개최된 G20 외무장관 회의에서 브라질은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다자기구의 실패를 언급하며,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수를 확대하고 UN의 개편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G20 셰르파 회의에서 언급했던 3개의 우선순위 중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에 관한 것이며, 브라질이 UN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긴장이 고조되는 국제정세로 인하여 이러한 내용에 관한 G20 국가들 사이의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은 경제의 많은 부분을 무역과 국제경제에 의존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으므로, 한국과 한국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당연히 국제경제의 흐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부와 기업의 정책에 반영해야만 한다. 한편으로는 G20 자체가 국제경제의 논제에 대응하는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현실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G20 회원국이자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주체로서 한국이 그러한 흐름이나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제안해야 할 숙제가 있기도 하다. 11월에 개최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G20 정상회의는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사회 전반에 놓인 문제들을 국가지도자들이 논의하는 무대이므로, 지금은 한국의 이해관계를 비롯하여 의장국인 브라질의 목표, 그리고 다른 구성원들의 의도를 차분하게 파악하며 의견을 개진할 준비의 시기이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해리스, TV토론 판정승에도 트럼프와 초박빙인 이유

얼마전 실시된 미 대선 TV토론 직후 CNN이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해리스 부통령이 TV토론에서 승리했다고 보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자는 37%에 불과했다. 트럼프를 지지해 온 폭스뉴스 정치 분석가 부릿 흄도 “트럼프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늘만큼은 해리스의 밤이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의 사퇴로 갑자기 후보가 된 해리스는 첫 번째 대선 TV토론 준비에 매진한 반면에, 트럼프는 자신만만함을 과시하듯이 당일까지도 선거유세를 벌였다. 특히 해리스가 트럼프의 공격을 무디게 했고 실점을 유도했다. 공화당 인사들조차 트럼프가 해리스의 작전에 말려들어 평정심을 잃으면서 해리스의 실정을 공격할 기회를 모두 놓쳤고 경제·이민·외교 분야에서 공격할 것들이 많았으나 일관성 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탄했다. 아울러 해리스는 검사 출신답게 성추문 입막음 사건 등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조목조목 지적했는데, 트럼프는 법정에서 검사를 쳐다보지 못하는 피의자처럼 주눅이 든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감점요인이 됐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해리스는 토론 내내 트럼프를 '증인석'에 세워 검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했다. 이번 TV토론에서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이민 문제였다. 해리스가 이민문제와 관련 “유세장에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며 떠난다"고 언급하자, 트럼프는 불쾌감을 표시하며 “아이티 이민자들은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고 말하면서 크게 실점하였다. 이민문제는 해리스의 약점으로서 트럼프가 매섭게 공격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트럼프의 개, 고양이 발언은 TV토론 후에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티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 곳곳에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지면서 시 당국이 시청 건물을 폐쇄했다.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TV토론에서 해리스가 판정승했지만,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궁금증이 남는다. TV토론 직후 로이터 통신이 입소스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는 트럼프에 5% 포인트 차로 앞섰지만, 그전에 비해 소폭 커진 것에 불과했다. 지난달 말 같은 기관 조사 때 해리스는 45% 대 41%의 지지율로 트럼프를 4%포인트 차로 앞선 바 있다. 지난 6월 TV토론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압도하자 트럼프 대세론이 형성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유는 트럼프는 의사당 난동사건, 성추문 입막음 사건 등 사법리스크가 많은 비호감 인물이지만, 미국이 백인이 주류인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힘을 받는다. 백인남성으로서 흑인여성인 해리스보다는 유권자 구도상 유리하고 그의 국수주의적인 정책도 지지를 받고 있다. 또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방식도 일부 작용한다는 평가다. 최근 로이터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56%는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와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60% 관세를 주장하는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답했다. 이 주장은 트럼프가 하고 있고,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경제문제 해결에서 해리스보다 잘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대목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유세 도중 총에 오른쪽 귀 윗부분을 맞아 다친 지 약 두 달 만에 플로리다주 소재 본인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중 또다시 암살 시도로 보이는 사건에 직면한다.대선을 50여일 앞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극심한 분열 양상 속 초박빙 판세로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앞으로도 변수가 많이 있을 것이라는 여겨진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우리로서는 계속 상황을 주시하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강국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