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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중국 자원 무기화에 맞설려면 자급률 높여야 한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일 텅스텐, 몰리브덴,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5개 광물 품목 수출 통제를 단행 했다. 수출 통제 5개 광물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주로 사용되는 합금 및 화학물 25개 제품 및 관련 기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2일에는 중국의 “수출금지.기술 제한 목록"의 조정을 입법 예고했다. 수출제한 목록에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포함 LMFP(리튬 망간 인산철) 배터리 등 배터리 양극제 제조 기술이 포함 되었으며 리튬 추출 기술도 수출 제한에 추가키로 했다. 일본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리튬 배터리 부품의 80% 이상을 생산했으며 양극재는 89.4%, 음극재는 93.5%를 생산했다. 또한 2023년 12월 2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희토류 추출.정제.가공기술의 수출 금지 항목에는 희토류 추출과 분리기술을 포함해 희토류 광물 및 합금재료 생산기술, 사미륨 코발트, 네오디뮴, 세륨 자석 제조기술, 희토류 붕산 칼륨 제조 기술 등이 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미국을 포함 우리나라와 주요국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중국은 이미 전 세계 광물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특히 미국에 대한 중요 금속광물 판매 조치에 들어갔다. 판매 금속광물 소재들은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AI), 항공우주 산업 등 미래 기술개발에 필수적 요소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전 세계 자원 공급망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의도가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수출금지 조치를 넘어 다른 국가의 핵심광물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해외 기지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수 년새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니켈 원광의 제련.가공 과정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니켈은 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재료이다. 중국은 지난 2022년 니켈의 공급망 장악을 위해 가격 폭락을 주도했다. 전 세계 니켈 사업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가장 큰 타격은 호주 몫이었다. 가격 붕괴는 니켈 광산 다수의 폐쇄를 초래했고 관련 기업 등이 줄도산하면서 실적자가 급증했다. 이후 호주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니켈을 포함한 각종 광물 시장의 외국인 투자 감시를 강화하는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수적인 리튬. 니켈을 비롯한 중요 광물시장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무력화하려는 조치는 비단 호주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주요국들도 대책 마련에 착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입법화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을 다음달 7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공급망 3법( 공급망기본법, 소부장특별법, 자원안보법)의 마지막 퍼즐로 불린 이 법은 지난 2021년 중국발 요소수 사태 이후 자원 공급망을 내실 있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추진돼 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이 되어 “자원안보협의회"를 만들어 5년 마다 자원안보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기업의 공급망 분석과 정부 진단을 포함한 조기경보 체계를 가동해 핵심광물의 수급 상황도 관리키로 했다. 또한, 비상시 민간기업도 한시적으로 핵심 자원을 비축 하도록해 민간의 협조 범위도 확대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전략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 된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는 미국과 동맹국의 경제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 종속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라는 심각한 도전에서 미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한미동맹의 경제안보 협력 강화와 직결된 문제이다. 즉 양국 모두의 전략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이런 도전을 극복하려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의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공급망에서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 서로 “윈윈"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한국의 해외 투자액 가운데 미국 투자는 162억 7300만 달러로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특히 이차전지의 경우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에 조 단위 투자를 하면서 현지 공장을 조성, 가동하기 위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대미 수출이 덩달아 늘어났다. 따라서 미국의 관세 정책을 우리가 잘 대응한다면 미국 산업에 우리 기업의 진출이 보다 늘어나고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호주, 베트남, 필리핀 등 광물이 풍부한 국가들과도 협력하여 공급망 다변화 및 광물 자급률 향상에도 힘써야 한다. 한편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축이 되어 국내 금속광산 재개발과 재자원화 산업 육성, 희소금속 부존 파악, 광산물 소재. 가공 핵심 기술개발, 인력양성 등의 정책을 통해 국내 광업 경쟁력을 강화하므로써 공급망 자립을 구축하는데 보템이 되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천구

[EE칼럼] 알래스카,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지평 될 수도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5일(현지 시간) 워싱턴에 위치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회복력 있는 동맹 간 에너지 협력' 회의가 열렸다. 필자도 발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함께 한국, 미국, 일본 간 에너지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알래스카의 댄 설리번(Dan Sullivan) 의원이 기조연설을 통해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상기 회의 직후인 6일부터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시바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양 정상이 '미·일 황금시대'를 열어가자고 한 이 자리에서도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등장했다. 일본은 약 440억 달러(한화 약 62조 원) 규모의 알래스카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며 이를 미국으로부터의 관세 압박에 대한 방패로 삼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 가스는 관세 전쟁에서의 방패, 그 이상의 지정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알래스카는 미국 에너지 자원의 보고 중 하나이다. 하지만 환경 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기조 속에서 그 잠재력은 봉인되어 왔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다양한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의 개발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첫 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NPR-A: National Petroleum Reserve of Alaska) 및 주 내 다른 지역의 자원 제한 문제를 해결하며,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NWR: 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서 불법적으로 취소된 석유 및 가스 임대 계약을 복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을 사인했다. 이미 트럼프 취임 직전인 1월 10일, 알래스카주의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공사(AGDC: Alaska Gasline Development Corporation)는 LNG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개발 업체인 글렌판(Glenfarne)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었는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알래스카의 가스 개발 및 수출 프로젝트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나 일본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에너지 공급에 있어 절대적인 부분을 수입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공급받아 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한국과 일본에게는 지속적인 고민거리였다.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탈(脫) 중동산 석유·에너지 다변화를 위해 가스와 원자력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스는 파이프라인으로 도입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1969년 11월 4일, 일본이 알래스카로부터 LNG를 도입한 것이 세계 최초의 LNG 사업이 되었으며, 대륙으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LNG 시장에 있어서 줄곧 높은 지위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이에 더해 최근에는 탈 러시아산 가스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들이 LNG 수입을 늘리면서 글로벌 LNG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이 도입하고 있는 사할린산(産) LNG 계약도 순차적으로 만료될 예정이니 만큼, 향후 10년 내에 이를 대체할 공급원을 마련할 필요도 커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래스카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각광 받을 가능성이 있다. 중동 지역에 비해 운송 기간이 절반 내지 3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송로 상 호르무즈 해협이나, 말라카 해협 같은 초크포인트(choke points)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절한 가격에 도입할 수만 있다면 이를 가공하여 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국 시장에 되파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대지에서 시작되는 가스 개발이 한미일 삼각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마침 19-20일 동안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민간 경제사절단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 정부와의 통상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니 만큼, 알래스카 가스 개발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바이다. 임은정

[EE칼럼] 전기료 누더기화: 공공 정책의 쓰레기통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한국의 전기요금은 이제 정치적 기회주의와 비효율성, 그리고 왜곡된 인센티브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한때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필요한 비용을 회수하는 단순한 구조였던 전기요금은 이제 여러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해결하려는 만능 도구로 변질되었다. 이로 인해 전력 시장의 본질은 훼손되고 투자자들은 투자목적과 상관없는 비용부담을 떠안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전력 소비자들도 내가 뭐에 대해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불투명하고 정당하지 않은 비용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몇일 전 KBS, EBS 공영방송의 수신료가 다시금 전기요금에 포함되게 되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난산 끝에 분리징수가 작년에 결정 공시되었으나, 올해 다시 전기요금에 통합되게 된 것이다. 정말 (주)한국전력에게 별걸 다 짊어지게 한다는 생각이 안들 수 없다. 징수의 편의성 측면에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겠지만, 사실 이는 본질적으로 전기요금의 근본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다. 당연히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성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이들은 지원되어야 할 공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전력 소비와 무관한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얹어, 전기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의 소비와는 관계없이 수신료까지 전기사용으로 인한 비용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또 다른 사례로서, 한전공대 운영비를 전기요금에서 충당하는 문제 역시 소비자로서 매우 심각하게 본다. 한전의 총괄원가는 한전이 전력 생산, 송배전, 관리, 기타 사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포함한 총액이다. 따라서 한전공대 운영비가 공익사업 비용으로 계상되면, 전력 공급 비용에 포함되어 총괄원가 반영되는데 이는 당연히 전기요금 책정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한전공대 운영비도 사실은 분리 공시를 해야한다. 전기요금에서 섞어버려 징수를 할 것이 아니라 KWH 당 얼마의 한전공대에 투입되는 비용이 소비자들에게 명백히 전가되는가를 계산해서,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기존에 전력산업에 대해 연구하는 많은 인력들이 각 대학 및 연구소에 산적해있는데도 한전공대의 운영을 전기 소비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면, 그 정보라도 공개되어야 할게 아닌가. 정치적인 이유로 (주)한국전력이 원치도 않은 출자출연을 하게 하니,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은 주식회사의 주주들이요 전기소비자도 편익과 관계없는 비용지출을 강요당한다. 이에 더해,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연구개발용' 전기요금 체계 마련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기존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등으로 구분되어있던 요금체계에 연구개발용을 추가 신설해 이를 농사용 전기요금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연구개발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기요금 갈라치기는 또다른 비효율을 초래한다. 연구개발 비용을 절감시켜주려면 다른 방식으로 해야지 왜 또 전기요금으로 지원하나.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세금은 걷기 힘드니, 전기 소비자들이 나눠 부담하라는 말 밖엔 안된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 정책의 짐을 죄다 전기요금에 얹고 있다. 농어촌 지원, 저소득층 할인, 도서산간 지역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목적을 수행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전력산업과 시장과는 관계없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전기요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은 전력산업의 비효율적을 가져오고,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공영방송 지원, R&D, 농어촌 및 저소득층 지원, 교육사업 출자에 대한 가치평가를 절하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기를 포함한 모든 상품 및 서비스 요금의 핵심 원칙은 비용과 편익의 반영이라는 기본이 자꾸 흐려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들을 전기료에 붙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그냥 순수하게 다른 사회적인 목표가 아닌 전력 생산, 송배전, 그리고 환경 외부비용만이 그 포함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도 본인들이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전기사용에 따른 기회비용을 온연하게 느낄 수 있다. 전기를 사용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석탄과 천연가스 그리고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느껴야 스스로 더 많은 양을 쓰거나 절약하는 등 경제논리에 따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는 누더기나 다름없어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책 결정자들도 전기요금을 기타 별개의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영방송, 교육, 연구개발, 사회복지 등은 모두 중요한 덕목이지만, 전기요금과는 분리된 별도의 재정 구조를 통해 지원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향은 공공 신뢰를 훼손하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조장하며 재정 투명성을 해친다. 전기요금 체계를 본래의 역할로 되돌리고 소비자들에게 명확하고 공정한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 유종민

[김한성 칼럼] AI 시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우리는 AI 기반 추천 알고리듬을 통해 개인화된 뉴스와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콘텐츠 모더레이션 과정은 점차 사람에서 AI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정보를 접하고 비교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즉각 답을 내놓고, 온라인 쇼핑몰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먼저 제안해 준다. 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놓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질문이 소멸되면 사고가 정체되고 선택의 폭도 제한된다. 일부 디스토피아적 상상 속에는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통제되거나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결과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지듯, 현실에서도 우리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이 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같은 물음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을 지키는 핵심 열쇠다.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 해소에 그치지 않고 사고를 심화하는 이유는, 학습 자체가 '물음표'에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난다는 통찰과 맞닿아 있다. “왜?"라는 물음을 던질 때 원인을 찾게 되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방법을 모색하게 되며, “그래서?"라는 의문을 통해 결과를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길 계기를 마련한다. 이렇듯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사고의 동력을 확보해 주며, 그 과정에서 창의성, 지적 호기심,그리고 비판적 사고가 함께 자라난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AI 활용과 질문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대다수가 AI를 도입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현재,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이 기업의 성공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AI 도입 전 필수적인 질문으로 “이 기업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ROI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가?" 그리고 AI 운영시 검증 질문으로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은 투명한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질문은 이제 인간만의 소통방식이 아니다. AI와의 소통도 결국 질문에서 비롯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은 AI에게 보다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서 예산을 20% 절감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제안해 달라"는 식으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면 훨씬 더 정밀한 결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즉,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어떤 답을 얻느냐를 결정한다." 이는 AI 시대의 핵심이 기술자체라기 보다는 질문을 다루는 방식이며, 질문하는 능력이 AI시대의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자동화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만약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기술의 편의에 휩쓸려 핵심 가치를 놓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옳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크고 작은 혁신이나 변혁은 언제나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기존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새로운 해결책이 모색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계속해야 된다. “내가 접하는 정보는 어떻게 선택된 것인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AI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었는지,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수 있다. “AI가 내린 이 결정은 어떤 기준을 따랐는가?"라고 질문하면, AI 시스템이 활용한 데이터의 출처와 분석 방식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얻는다. 또한, “기존의 방식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때,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놀랍게도 이러한 질문들이 쌓이면서, AI 기술은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비판적으로 AI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검토할 때, 우리는 데이터의 편향을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며,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의 AI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AI에게는 물론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이때 생겨나는 다양한 물음들은 2025년 2월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여러 색과 무늬가 어우러진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로 직조해낼 것이다. 이 타피스트리는 우리가 어떤 고민을 나누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성찰하고 성장했는지를 머지않아 선명하게 기록해 줄 것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따르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김한성

[EE칼럼] 에너지정책은 경험 삼아 해볼 도전이 아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독일 정부는 원전의 단계적 폐쇄를 결정했다. 2022년 말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려 했지만,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문에, 2023년이 돼서야 중단했다. 1961년 첫 원전을 가동한 이후 62년 만이다. 대신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늘리려 했다. 올겨울 독일은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을 자주 겪었다. 이 현상은 어둡고 바람이 멈춘 상태다. 바람이 잦아들고 해마저 비추지 않자,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동시에 급감하는 '녹색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그 빈자리는 화력발전이 채웠다. 그 여파로 지난해 말 독일의 화력발전은 한 달 만에 79%나 늘었다. 전기요금도 급증했다. 작년 12월 12일, 해가 진 직후인 오후 5시 전력 도매가격이 MW당 936.28유로로, 재작년 평균 78.51유로의 12배까지 뛰었다. 제철소 등 일부 사업장은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조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결국 지난달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짓겠다"라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의 폭탄선언이 나왔다. 그는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인사다. 1979년 3월 TMI-2 원전 사고 후, 현장을 방문한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 30여 년간 신규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국 원전 공급망이 훼손되고 원전 건설 역량도 크게 약화 되었다. 2009년 건설을 시작한 보글(Vogtle) 3‧4호기의 애초 예상 가동 시기는 2016년과 2017년이었으나, 건설사 파산 등으로 건설 기간이 늘어나 2023년 7월과 2024년 4월이 돼서야 가동에 들어갔다. 건설비용도 애초 추정치보다 2배나 많은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조 원이 들었다. 2024년 4월 2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들 원전이 미국에서 건설되는 마지막 대형 원전이 될 것이며, 원전업체는 대형 원전 건설을 더는 추진하지 않고 소형원자로(SMR)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라고 평가했다. 올해 1월 14일,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회사가 정부 소유 땅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을 허용하고, 데이터센터에 전력공급을 위한 청정에너지 전력원을 이들 회사가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전력원에는 원자력 발전과 SMR이 포함돼 있다. 전임 정부 정책 지우기에 열심인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도 이 행정명령은 철회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안정적 전력 공급원 확보에 얼마나 진심인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어떻게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력 가격은 따질 경황이 아니다. 전력 생산자와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통해 장기 계약을 맺고, 죽었던 원전도 살려낸다. 지난해 9월 컨스텔레이션에너지사는 TMI-1 원전을 재가동하여 20년간 전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TMI-1 원전은 1974년 상업 운전을 시작해 2019년 영구 정지됐던 원전이다. 이런 원전을 2028년부터 재가동하려고 한다. 이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을 위해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삼성전자 제2공장은 10GW 이상, SK 하이닉스 신규공장은 7.5G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SMR 25기 분량이다.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2개 공장에서 필요한 전기만 이렇다. 다른 산업과 운송 부문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대로라면, 2038년까지 원전은 4.9GW 추가되지만, 재생에너지 설비는 72GW나 추가된다. 이마저도 정치적 흥정으로 신규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려 한다. 이 많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섣부른 정치적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독일과 미국 사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영표 해설위원의 명언이다. 에너지정책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미래를 걸고 경험 삼아 도전해 볼 일이 아니다. 증명된 원전의 확대가 꼭 필요하다. 문주현

[EE칼럼] 우리의 습지, 갯벌도 소중한 자산이다

가이아(Gaia) 이론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자연생태계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는 직・간접적으로 인간을 비롯하여 다른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흔히 우리 몸 상태를 진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체온 측정과 혈액검사 그리고 폐기능을 검사한다. 현재 지구의 온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고, 사람 몸의 혈액에 해당하는 지구상의 물은 미세플라스틱 등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다. 또한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림은 개발로 인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구상의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지구의 콩팥, 습지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습지는 1970년에서 2015년 기간 동안 약 35% 감소했는데 이는 산림소실과 비교하여 3배나 빠른 속도이다. 습지의 소멸에 무관심한 인류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이 있다. 바로 2004년 인도양 일대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재난재해이다. 당시 20만명이 넘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염습지인 맹그로브 숲이 있던 지역은 쓰나미의 위력을 맹그로브 숲이 흡수하면서 인명피해 발생을 현격하게 감소시켰다. 그런데 이토록 고마운 맹그로브 숲이 사라져 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20년 사이 발생한 맹그로브 손실의 약 43%는 양식장과 오일팜 농장 등으로의 전환에 따른 것이다. 특히 동남아지역에서는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일명 '블랙타이거 새우(홍다리 얼룩새우)'를 양식하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훼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제프리 힐(Geoffrey Heal) 석좌교수는 “자연자본을 자본설비와 맞바꾼 전형적인 자연 착취"라고 꼬집었다. 습지에 대한 무관심과 단기적 이익을 위한 무분별한 습지의 파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맹그로브 숲 대신 우리에게는 연안습지 즉, 갯벌이 있다. 2022년 12월까지 확인된 우리나라의 갯벌 면적은 국토의 약 2.6%로 서울시의 약 4배 면적에 해당한다. 특히 신안갯벌을 비롯하여 서천갯벌, 고창갯벌, 보성・순천갯벌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자연유산이다. 갯벌은 낙지, 바지락 등 각종 수산물을 생산하고, 해양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것 외에도 지진과 해일로 인한 피해를 저감하는 등 우리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탄소흡수원으로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에도 기여한다. 갯벌은 잘피, 염생식물 등과 함께 블루카본(blue carbon)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연간 자동차 11만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해양수산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17.8조원으로 추산된다.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이자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있는 갯벌은 그동안 무분별한 연안개발 등으로 인해 갯벌 훼손과 해양생태계 파괴가 진행되었었다. 그에 따라 1987년에는 3,203㎢였던 갯벌 면적이 2022년에는 2,482㎢로 22.6% 감소하였다. 다행히 최근 들어 갯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갯벌보전에 대한 국민의식도 증진되어 갯벌체험 등 해양생태관광이 증가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갯벌은 불필요한 땅, 버려진 땅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소중한 곳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자산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매년 2월 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하고 습지의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단기적인 개발 이익보다는 미래의 가치를 지향하며 갯벌을 보전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조용성

[EE칼럼]온난화의 파라독스 한파

예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온난했던 연초의 날씨가 지난 주 초부터 돌변하여 전국을 냉기로 얼어붙게 하고 있다. 원인은 북극의 찬 공기덩어리가 한반도로 남하하며 몰고온 한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겨울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한파의 지속기간은 2-3일 정도인 것에 비하여 이번 한파는 예상보다 길게 이어져 이번 주 초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극발 한파는 단지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방 뿐만 아니라 미국의 뉴올리언스 같이 따뜻한 멕시코만 인근 지역이나 타이완과 같은 아열대 지역까지 남하하여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난 9일에 대만에 불어닥친 한파는 78명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한파라니 다소 의아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한파가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 심지어 온난화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긴 지속시간과 강한 강도를 갖는 한파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즉, 겨울철 이상 한파는 온난화의 파라독스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파라독스에 중심에는 제트기류가 있다. 제트기류란 겨울철에 북반구 중위도를 따라 둥글게 띠를 이루며 서에서 동으로 부는 강한 편서풍을 말한다. 1930년대 존재가 알려진 이 강한 편서풍의 밸트는 제트 추진 엔진이 고속으로 공기를 배출할 때와 같은 매우 강력한 흐름이라는 의미로 후에 제트기류라 명명되었다. 실제로 고도 10-12km 중위도 상공에 위치한 이 바람의 풍속은 중심부에서 최고 시속 300~500km에 이른다. KTX보다 빠른 속도이다. 그래서 항공사와 조종사들은 제트기류의 강풍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항공기의 비행시간과 연료효율성을 최적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미주지역으로 향하는 비행의 경우 순풍을 최대한 활용하면 전체 비행시간을 단축시키고 연료도 절약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동에서 서쪽으로 비행하는 경우에 조종사들은 날씨 상황에 따라 강한 역풍을 피해 항로를 택하기도 한다. 북반구 겨울에는 찬 공기덩어리가 북극을 중심으로 놓이게 되는데 찬 공기는 가라앉으려고 하고 더운 공기는 뜨려고 하는 기체의 일반적 성질 때문에 북쪽의 차가운 공기는 언제든 남쪽의 따뜻한 공기의 아래를 파고들며 남하하려 한다. 그런데 북극의 찬 공기의 남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트기류이다. 즉, 제트기류는 극지방의 찬 공기가 저위도로 흘러내려와 지구의 지면기온이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막아주는 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제트기류는 자전하는 지구 유체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북 간의 기온차가 크면 강하고 기온차가 작으면 약하게 부는 역학적 성질이 있다. 따라서 적도와 극지방 간의 기온의 차이가 크면 지구의 중위도 둘레를 도는 제트기류는 강해지고 이에 따라 찬 공기는 북극을 중심으로 갇히게 되지만 남북 간의 기온차이가 작아지면 제트기류는 약해지고 남북으로 사행을 하게 된다. 즉, 남북 간의 기온차가 작아지면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능력이 감소하면서 찬 공기가 사행하는 흐름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내려오게 된다. 제트기류가 남북으로 사행할 때 북쪽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지역은 한파를 경험하게 되며 반대로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북쪽으로 향하는 지역은 이상 난동을 겪게 된다. 남북 간의 기온차가 커서 제트기류가 중위도 둘레를 원형의 띠를 이루며 강하게 부는 경우를 양의 북극진동 상태라고 하고, 반대로 남북 간의 기온차가 적어서 제트기류가 사행을 함에 따라 지구 곳곳에 이상 난동과 한파가 발생하는 경우를 음의 북극진동 상태라 한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 활동에 의해 대기 중에 방출되고 있는 온실기체의 중가로 말미암아 전지구 기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의 전지구 평균기온은 15.10oC로 관측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무려 1.55oC가 상승한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1월의 전지구 평균온도는 13.23oC로 관측사상 가장 따뜻한 1월로 2024년 1월의 기록을 또다시 갱신했다. 지구온난화 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북극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하여 2-3배 정도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북극증폭"이라 부른다. 북극증폭은 보다 복잡한 물리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극지방이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 속도가 더 크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남북 간의 기온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고 남북으로 사행을 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지구촌 곳곳에 한파와 이상난동 현상이 빈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더 유의해야할 점은 제트기류의 사행으로 발생한 한파는 일반적인 한파보다도 강도와 지속기간이 길다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트기류의 사행은 일반적으로 블로킹(blocking)이라는 현상을 일으키는데, 블로킹이란 그 용어가 의미하듯이 공기의 흐름이 남북으로 사행함에 따라 정체되는 현상이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지난 45년 동안 170여 차례의 한파가 발생했는데 이 중 약 22%에 이르는 한파가 블로킹 한파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한파의 지속시간이 2-3일인데 비해서 블로킹 한파는 6.8일로 두 배 가량 길고 한파의 강도도 1.5배 정도 강하다. 이번 한파가 여기에 속하는 한파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겨울과 봄에 이상난동이나 갑작스런 한파는 사회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한파는 이에 대비하지 않은 인프라에 부담을 주어 에너지 수요 증가와 정전과 교통 장애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농작물 피해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심혈관계 질환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파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은 결국 피해에 대한 수리와 복구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뉴노말(new normal)은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난 후 새로운 상황이나 조건이 일상적인 표준이 되어버린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로 COVID-19 팬데믹 이후에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비대면 회의 등 새로운 생활 방식이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용어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 기상현상이나 극한적 날씨가 일상이 되어가는 요즘,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차원에서 기후변화 분야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파, 이상난동 그리고 이와 동반되는 폭설, 가뭄 등과 같은 현상은 더 이상 비정상적(abnormal) 기후형태가 아닌 새롭게 등장한 기후, 즉 뉴노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강한 한파와 이에 따를 폭설과 극심한 기온변동과 같은 새로운 표준기후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의 정비가 필요하다.

[기고]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에 관하여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처리수 방류를 발표했을 때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안전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오염수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모든 방사성 물질이 안전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ALPS(다핵종제거장치)에 의해 처리 과정을 거친다. 방류 시 삼중수소는 규제 기준치의 1/40,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치의 1/7 수준인 리터당 1,500베크렐(Bq/l) 미만으로 희석되므로 매우 보수적인 수준이다. 연간 삼중수소 배출 총량은 원전 가동 당시와 같은 22테라베크렐(TBq)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비교적 삼중수소 생산량이 낮은 비등경수로(BWR)인 만큼, 이처럼 보수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원전은 물론, 이미 수많은 원전에서 60년 넘게 사람이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보다 훨씬 많은 삼중수소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일본은 국제 안전 기준에 따라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처리수 방류 계획과 준비 과정을 독립적으로 평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IAEA는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저명한 전문가 11명과 IAEA 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고 2022년 2월부터 관련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3년 7월 '후쿠시마 제1원전 ALPS 처리수 안전성 검토에 관한 IAEA 포괄 보고서'를 통해 이번 방류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IAEA는 방류 기간 동안 현장에 상주하며 주변 해역의 방사능 수치를 독립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한국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비롯한 독립적인 제3의 실험실에서 해수 샘플 검사가 실시됐으며 IAEA는 2023년 5월 보고서를 통해 해수 샘플이 정확하게 분석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희석된 처리수는 2023년 8월 24일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방류됐으며 한번의 방류는 19일이 소요됐다. 일본 회계연도 기준 2023년에는 총 4차례의 방류로 4.5TBq의 삼중수소가 배출됐고 2024년에는 현재까지 6차례의 방류를 통해 10.3TBq의 삼중수소가 방류됐다. 현재 도쿄전력은 처리수 방류 현황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처리수 포털사이트(https://www.tepco.co.jp/en/decommission/progress/watertreatment/index-e.html)'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처리수 방류는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게 이뤄졌을까. 해수 삼중수소의 양은 어느 정도이며 한국에 도달할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방류 기간 동안 처리수 유량과 해수 희석 유량이 지속적으로 측정돼 희석 후 삼중수소 농도가 일본 정부 기준치 1,500Bq/l 이하로 유지되도록 한다. 삼중수소 농도는 발전소 앞 바다의 표층, 저층, 3km 이내, 10km, 30km, 50km 지점에서 측정되고 도쿄전력과 IAEA 외에 일본 환경성이 해역 모니터링, 해양 생물상(해초 및 어류) 조사, 해변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환경성은 자체 측정 결과를 공식 사이트(https://shorisui-monitoring.env.go.jp/en/)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규제청과 후쿠시마현에서도 독립적으로 해수 삼중수소를 측정하고 있고 일본 수산청은 수산물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다. 일반적인 측정 결과에 의하면 방류 지점 1km 이내 해수 삼중수소 수치가 10Bq/l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전력은 방류 지점 3km 이내 10곳에서 수치가 350Bq/l에 도달하면 조사를 실시하고 700Bq/l에 다다르면 배출을 중단한다. 모든 측정치는 이러한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IAEA는 ALPS 처리수 방류 시작 이후 2023년 10월 첫번째 점검을 시작해 지난해 1월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IAEA는 모든 운영 과정이 안전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필자는 지난해 2월 일본을 방문해 후쿠시마현 이와키 어시장을 방문했다. 생선 해부 샘플을 관찰하고 방사능 수치를 확인했지만 항상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한국에 유입되지 않을 것이며 일본산 수산물은 걱정하지 않고 섭취해도 되는 만큼, 한국 국민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처리수 방류는 일본이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토니 어윈(Tony Irwin)

[EE칼럼] 원자력 활용한 산업경쟁력 제고가 진정한 미래를 위한 투자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선진국은 인건비도 비싸고 모든 경비가 더 드는데 어떻게 그런 나라에서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고 공장과 일자리를 유지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고정비용 중 땅값 같은 것은 우리나라가 워낙에 불리하지만 아직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좀 더 낮으니 산업 경쟁력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국 일인당국민소득이 2023년 기준 33,121달러였는데, 영국은 48,866달러, 독일은 52,745달러, 그리고 미국은 81,695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세 위협을 가하면서 외국 기업들에게 산업체를 미국 내로 이전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을 보면 궁금증이 더해진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서 미국 노동자와 미국 에너지로 만든 공업생산품이 과연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약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다면 곧 모든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텐데 어떻게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국민소득이 높다고 공업 생산품의 원가가 그렇게 간단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로봇과 AI를 활용한 자동화를 진행해온 덕분에 선진국 산업의 생산성이 후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오랜 기간에 걸친 치열한 에너지확보 정책을 펼쳐왔기에 경쟁력 있는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을 짓는 것보다 더 수익을 크게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 산업들이 있었기에 그쪽으로 투자가 집중되어 왔을 뿐이지 산업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공업의 쇠퇴에 따라 직업을 찾지 못해서 사회보장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노동자 계층을 위해 산업 재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77.9달러, 독일 68.1달러, 프랑스 65.6달러에 이르지만, 한국은 아직도 44.4달러이다. 이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관계에 있다. 가내수공업 방식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 생산성의 향상은 신규투자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향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수년간 신규투자가 부진했던 공업생산성 지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약간 후퇴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생산성을 높이려면 신규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경쟁력이 높지 않으면 누가 그 나라에 신규 투자를 하겠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산업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라의 장기 발전에 꼭 필요하다. 여기서 에너지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버드인터내셔널리뷰에서는 작년 5월에 이미 에너지문제로 인해 독일의 산업경쟁력이 없어지고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 독일의 에너지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에 비해 35% 나 급등한 주요 이유로 러시아 일변도의 가스 공급에 지나치게 안주한 정책과 원자력발전량을 계속 축소한 탈원전 정책을 꼽고, 이 두 가지 정책을 바꾸어야 강력하고 회복력 있는 경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에 대해 합리적 분석보다는 정치적으로 접근한 결과가 최근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독일 경제 위기의 실제 이유인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스와 전기 가격이 사실상 그 나라의 에너지경쟁력 지표이다. 그중에서도 전기 가격은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 각국별로 그 편차가 매우 심한 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이 국가의 산업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산업용전기 요금만 급격히 올리고 있어서 걱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kWh당 산업용 전기요금은 종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80원정도 된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미국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7.89센트이니 놀랍게도 미국이 60%나 저렴하다. 참고로, 미국 가정용 전기 가격은 17.01센트이니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 요금인 172.4원에 비교하면 오히려 40%가 비싸다. 이런 상황이니 노동 생산성도 낮고 에너지 비용도 높은 우리나라에 산업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걱정이 저절로 들게 된다.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춘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최근 한수원이 제안한 스마트 넷제로 시티(SSNC)는 소형모듈형 SMR 원자로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획기적인 에너지 모델이다. 단순히 도시에 주거용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량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원자로의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체된 산업경쟁력을 일거에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자력이야 말로 기술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우리 노력하기에 따라서 얼마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이다.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트럼프가 쏘아 올린 에너지 비상사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 공언한 대로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미국의 정책 방향을 급격히 뒤집고 있다. 특히'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급선회시킨 소위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Unleashing American Energy)은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완전히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화석에너지로부터 멀어지는 에너지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을 선언한 유엔기후변화협약과도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후변화는 “녹색 신종 사기"일 뿐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에너지정책 방향성을 대내외에 분명히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상황 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는“미국은 에너지 생산, 운송, 정제, 발전의 부족으로 경제, 안보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직면했다."라는 인식 아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연방 정부 차원의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는 미국 역사상 처음일 정도로 충격적이다. 더욱이 세계 최대 석유, 가스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 수출국이 될 정도로 에너지가 풍부한 미국에서 전쟁 때나 발동할 수 있는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법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 프리미엄을 활용해, 현시점에서는 체감되지 않지만 이대로 가면 큰 에너지 위기와 미국의 리더십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미국 사회에 각성시키기 위해 정치적 초강수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질서는 미∙중 간 신냉전 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약 30년간 조성된 미국의 일극 체제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재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신냉전 승리 전략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통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MAGA)이다. 특히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서 완벽한 승리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고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왜냐하면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기재들은 모두 전기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하루 전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지금의 두 배,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미국 내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더그 버검 후보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전력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다면 중국과의 AI 군비 경쟁에서 패배해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비상한 각오로 AI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을 태세다. AI 산업이 필요한 에너지는 한순간도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기다. 자연 여건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되는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에 미국의 안보를 맡기기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기후변화 이슈를 후순위로 밀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이 화석연료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파리기후협약 탈퇴, 원자력 발전 활성화 등으로 집약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도, 대개의 전통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경쟁력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현 상황을 고려할 때,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성패에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충분하고 안정적인 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필요한 전기가 10GW를 넘을 전망이다.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수도권 신규 LNG 발전소 건설과 동해안과 서남해안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된 전기를 송전선로로 끌어오는 방안이 계획 중이지만, 탄소중립 목표, 송전선로 건설 지연, 한전의 재정 악화 등으로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비상사태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 비상사태가 미국에서는 부자 몸조심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의 몸부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년에 벌써 확정해야 할 11차 전력수급계획조차 거대 야당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는 한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박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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