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RE100⑯] 유승훈 교수 “韓,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한계…가격 고려한 CFE 확보 시급”

에너지업계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적으로 오르는 등 제조기업들의 상황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청정전력 공급 방식으로 RE100만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다. 탄소 저감에 있어서는 RE100이나 CFE가 동일한 만큼 양 쪽 모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낮은 전기요금은 기업들의 성장 및 수출 확대에 크게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가격이 낮은 무탄소에너지원(CFE)의 확보가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CFE(Carbon-Free Energy)는 기업 등 사용자로 하여금 재생에너지, 원전,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등의 청정 에너지 및 기술만 사용하도록 하는 이니셔티브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전력만 사용하도록 하는 RE100보다는 청정 에너지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유 교수는 “주요 수출산업에서 전력요금 비중이 높은 편이라 전기요금은 경쟁력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작년 11월과 올해 10월 모두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해 수출주도형 제조업의 원가경쟁력을 약화시켜 중소 철강사 등 일부 부문에서는 공장의 해외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게 현실"이라며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오히려 사회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RE100은 기업들의 전력 조달에 대한 자율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전력 조달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기업의 경쟁력이 달라지는데 무작정 재생에너지로만 100% 조달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실제 현재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해 4월 킬로와트시(kWh)당 200원이 넘었던 상황에 비해 1년 가까이 150원 안팎을 유지하며 안정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격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의무량 증대와 RE100 수요 증가로 REC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공급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연간 6.3GW는 문재인 정부의 보급실적 연간 3.5GW의 1.8배에 달한다"며 “한전의 적자를 심화시키는 보조금을 늘리기보다는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경매제를 도입해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독특하게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고유가의 4중고를 겪고 있다"며 “전기와 가스 요금은 40% 가량 올랐지만 한전 및 한국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는 단기간에 해결이 쉽지 않아 요금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또한 정부의 긴축 건전재정으로 에너지기업의 생존 및 성장 전략 마련이 절실한 상황에 속에서 CFE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끝으로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RE100에 대한 제약조건을 완화하고 우리 기업들의 친환경 요건에 대한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무탄소 청정에너지원을 발굴하고 기술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CFE를 고려할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재생에너지 수급 매칭부족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 및 대체하는 에너지를 매칭해야 한다. RE100과의 보완성을 염두한 CFE 인증서 제도 설계를 위해 전력수급계획과 전기사업법을 수정하고 인증서 거래절차를 전력시장 내로 제도화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길 잃은 RE100⑭] RE100이냐, CFE냐 논쟁 그만…“모든 가능성 열어줘야”

에너지 정책이 길을 잃고 겉돌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요구를 받고 있지만 한전의 역대급 적자와 송전망 확충 지연으로 인한 발전사들의 손실 확대, 에너지요금 인상 난항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화석연료와 원전 사용을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제적으로 친환경 정책과 에너지정책 방향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청정에너지 사용 방식에서 RE100뿐만 아니라 원전,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청정수소까지 포함하는 CFE(무탄소에너지 100% 사용)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RE100이 낫냐, CFE가 낫냐라는 대립적 논쟁에서 벗어나 두 방식을 모두 포용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3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지난 정부의 탈원전 논쟁과 마찬가지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비중, RE100이냐 CFE(Carbon Free Energy, 무탄소에너지)냐를 두고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RE100과 CFE는 모두 탈탄소화를 목표로 하지만, RE100은 재생에너지 사용에만 초점을 맞춘 반면 CFE는 탄소 배출 없는 모든 전력을 포함하고 있어 보다 유연하고 실질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원전과 CCUS, 청정수소, 재생에너지를 포함하는 CFE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거대 야당은 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해 제품 생산을 요구하는 RE100이 대세라며 맞서고 있다.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한 11차 전기본 정부안도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 비중 등에 대한 이견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확정이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RE100과 CFE를 대립적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고 있다. 두 방식 모두 청정 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CFE가 RE100보다 범위가 크다. 다만 RE100은 이미 인증방식 등에서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실행되고 있는 캠페인인 반면, CFE는 아직 인증방식이 등이 아직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일단 정부가 기업에게 재생에너지 직접생산 혹은 구매비용 감축 등 RE100을 이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지원하고, 추후 CFE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과 약속해 주길 촉구하고 있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우리의 수출 주도형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치권이 중심을 잡고 방향성을 확실히 정해줘야 한다"며 “그러나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임기가 맞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여권과 야권이 서로 견제하면서 힘 겨루기를 하거나 개개인별로 연관된 이해관계 때문에 정책 해결이 뒤로 밀리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예산안은 물론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통령실의 가족 리스크 등 정쟁이 치열한 상황이라 당분간 여야가 에너지 정책에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는 2038년까지 CFE의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무탄소 전원의 균형 있는 확장을 목표로 하고, 소형모듈원전(SMR), 수소발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재생에너지 혹은 원자력발전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각각의 목소리도 크다. 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탄소중립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의 차이는 크지 않다. 목표도 명확하다. 단지 원자력의 위해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며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목에 RE100도 있고 CFE도 있다. 양자택일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두가지 모두 활용해야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국회도 이 부분에서 타협하고 모두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RE100 달성에 어려움이 있어 원전을 포함하는 CFE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경제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RE100과 CFE를 모두 대응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정책과 가격 변화에 따라 사업 비전과 흥망이 널 뛴다"며 “에너지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와 국제적인 시장 경쟁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길 잃은 RE100]⑬ “롤러코스터 배출권 가격 잡아라” 내년부터 금융사도 시장 참여

올해 상반기까지 글로벌 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매우 저렴했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근 네 달 동안 45% 이상 가격이 급증했다. 단기간에 가격이 급변동하는 불안정한 탄소배출권 시장 탓에 기업들이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수립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도 내년 2월부터 자산운용사와 은행·보험사, 기금관리자 등도 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시장 참가자가 늘어나면 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시장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다만 금융사가 거래 참여자로 들어온다면 오히려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중 현재 가장 거래가 많이 되는 KAU24는 지난 22일 1만1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KAU24는 지난달 말 1만2550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20여일 가량 1만1000원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KAU24의 최저점이었던 지난 6월 29일 8610원에 비해서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최고점에 비해서는 45% 이상 차이가 난다. KUA24의 가격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6월 29일까지 8610원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네 달 동안 크게 올랐다. 지난 2015년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이후 한국거래소는 배출권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설정해준 할당량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은 이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야만 한다. 배출권 가격은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오고 있다. 다만 배출권 가격이 급변동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변동성이 크지 않았던 해로 꼽힌다. 실제 KAU21은 2021년 6월 23일 1만1550원으로 최저점을 기록했으나 8월 25일 2만9500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두 달여 만에 가격이 2.5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이에 주요 기업에서는 합리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사업이 순항해 생산을 늘릴 경우 배출권을 시장에서 매입해야하는데 가격 변동성이 매우 심해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윤여창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배출권거래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배출권 시장기능이 적절하게 작동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시장기능은 적절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시장 참여업체들이 배출권을 필요로 할 때 구매하기 어렵거나 미래의 시장운영을 예측하기 어려워서 불확실성이 커질 때 예비적 저축을 위한 경향이 과도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다시 배출권 거래시장의 유동성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도 이 같은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 2월부터 배출권 시장 참여자를 확대한다. 자산운용사, 은행·보험사, 기금관리자 등도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인투자자도 증권사를 통해 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지난 9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권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마치고 규제·법제 심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배출권 거래 시장 참가자는 지난 4월 기준 780여개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와 8개 시장조성자, 21개 증권사 등에 불과하다. 내년 2월 시행되는 배출권거래법 개정안에 의하면 배출권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시장참여자의 범위는 기존 할당 대상 업체, 시장 조성자 및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에서 자산운용사, 은행 및 보험사, 기금관리자 등으로 넓어진다. 내년부터 이 같이 시장 참가자가 늘면 배출권 가격이 급등락하는 상황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사들이 충분한 유동성을 제공해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락하는 일이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산업권에서는 금융사가 전체적인 거래를 주도하게 된다면 오히려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배출권을 실제 소비하지 않은 금융사가 배출권 가격을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해 시세 차익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RE100 등을 달성하기 위해 배출권거래제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시장 참여자 확대를 통해 배출권 시장이 기업이 신규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신호를 주는 동시에 새로운 부가가치까지 창출하는 시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길 잃은 RE100]⑪ 탄소배출 1등 기업들 배출권 팔아서 4747억원 수익···느슨한 배출권 제도 탓에 재생에너지 활용 뒷전

정부의 배출권거래제도의 허점 탓에 탄소 배출이 많은 국내 기업이 오히려 이익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탄소 다배출 기업이 경기 위축 상황에서 남아돌 수밖에 없는 배출권을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상 배출권을 90%나 제공하는 국내 시장이 너무 느슨한 면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출허용총량 등을 세심하게 설정해 주요 기업들이 실제로 탄소 감축에 노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25일 산업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몇 년 동안 국내 기업 중에 탄소 다배출 기업이 탄소배출권거래제도 덕에 큰 이익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에 따르면 1·2·3차 배출권거래제 기간 동안 주요 다배출기업이 남아도는 배출권을 팔아 큰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5년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이후 포스코 등 10개 다배출기업은 배출권 판매수익으로 약 4747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주요국의 환경정책을 아우르는 근간은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이다. 현재 적용되는 파리기후협약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체결된 기후변화협약을 뜻한다. 파리협약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 이내로 통제하자는 이전(교토의정서)보다 한층 강화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각국의 대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 위한 배출권거래제도다. 배출권거래제의 적용대상이 되는 대기업은 정부로부터 과거배출량 기반의 배출권 무상·유상할당량을 제공받게 된다. 만약 어떤 기업이 할당된 배출량 이상으로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면 다른 업체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반대로 남은 배출권은 거래소에서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국내 정부는 파리기후협약 전후로 이 같은 배출권거래제도를 준비해왔다. 지난 2010년 제정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서 '정부는 시장기능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첫 법률적 발판이 됐다. 이어 2012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본격 시행됐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지속된 1기는 거래제도 안착을 위해 경험 축적 기간으로 배출권 전량이 무상할당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된 2기에서부터 무상할당량이 97%, 유상할당량이 3%로 할당됐으며, 배출권 거래도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2021년부터 내년까지 지속되는 3기에서는 유상할당 비율이 10%로 이전보다 상향 조정됐다. 포스코 등 주요 다배출 기업은 현행 10% 수준의 유상할당량을 대부분 매각해 상당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해 국내 산업권에서는 코로나19와 그 직후 이어진 글로벌 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탄소 다배출 기업이 생산량을 자연스레 줄이면서 남아도는 배출권을 매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상할당량이 90%에 달하는 국내 시장의 느슨함이 탄소배출권거래제의 근본적인 도입 이유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탄소 배출에 재무적 리스크를 부여하겠다는 탄소배출권 시장의 도입 취지를 떠올려보면 수년 동안 대규모 무상할당량의 범위 내에서만 생산을 하고 나머지 10% 유상할당량을 매각해 시장에서 수익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재의 상황이 적절치는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탄소 다배출 기업의 경우 10%에 해당하는 유상할당량도 다른 기업보다 많이 책정을 받기에 이를 매각한다면 수익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는 구조다. 앞서 탄소를 많이 배출해왔을수록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2026년부터 시작되는 탄소거래제 4기에서는 무상할당량 규모를 현행 90%에서 큰 폭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산업권에서는 배출권거래제도의 느슨함 탓에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수준의 탄소를 배출하더라도 재무적 리스크가 거의 없는 탓에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더 큰 손해로 인식된다는 분석이다. 산업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부터 최근까지 민간 LNG 발전사는 발전소를 돌리지 않고 대규모로 받은 배출권을 매각해 수백억원의 수익을 기록하고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며 “단순히 탄소배출권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사업을 극도로 줄이는 일부 기업의 행태를 막기 위해 무상할당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길 잃은 RE100]⑫ 트럼프 복귀로 美 기후협약 탈퇴 가능성 높아…국제 탄소시장 표류 우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귀환을 확정지으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지구촌 탄소시장이 출범도 하기 전에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참석한 200여개국 대표들은 유엔(UN)이 운영하는 '국제 탄소시장' 운영 지침을 승인했다. 이는 국가간 탄소배출권 거래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2015년 파리협정 이후 9년 만에 세부 이행 지침이 수립될 전망이다. 국가 또는 기업이 산림 보전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을 통해 감축한 온실가스 양을 거래할 수 있는 길이 확장되는 셈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단행한 투자를 통해 줄어든 탄소배출량을 투자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오프쇼어링'(자국 사업장의 해외 유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에 앞서 성급하게 논의가 마무리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비영리단체 탄소시장감시의 이사 머들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 실패 대응 방안 마련을 비롯한 과제가 산적했다"고 꼬집었다. 지속가능항공유(SAF)가 팜유를 비롯한 바이오연료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산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 등 탄소배출권을 둘러싼 '그린 워싱' 논란도 여전하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도 국내 그린워싱 적발건수가 2021년 272건에서 지난해 4940건으로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신제품의 탄소배출량을 '0'이라고 홍보했으나, 환경부가 매스 밸런스 방식의 문제를 들어 광고 삭제 및 정정을 요구하는 행정지도 처분을 내린 사례가 포함됐다. 바이오매스 발전에 필요한 연료 공급을 위해 과도하게 벌목하거나 탄소배출권 확보를 목적으로 산림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의 거주지를 파괴하는 등 환경·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언급된다. 향후 거래 취소를 비롯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각국의 참여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과 달리 이번 총회는 미국·프랑스·인도·브라질 등의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명분은 페루 리마에서 마련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참석이지만, 글로벌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하자던 조약의 실효성이 퇴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만명에 달했던 전체 참석 인원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시장에서 빠지면 수급 밸런스가 무너질 공산도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2060년으로 잡고, 인도·러시아를 비롯한 탄소 다배출국도 유럽과 비교하면 느슨한 감축량을 제시하는 등 형평성 문제도 여전하다. 2030년까지 약속한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매년 6조7000억달러(약 9364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된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너무 클 뿐더러 '최대주주' 미국이 빠지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기후변화 정책을 가리켜 '신종 녹색 사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라고 비난하는 중으로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기후분석 사이트 카본 브리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이 2030년까지 40억t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원유 채굴량을 늘리고 천연가스 수출도 확대하는 등 화석연료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데 따른 것이다. 국제관계학계 한 관계자는 “탄소중립을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중"이라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기후변화는 사회주의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발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궤를 같이하는 등 국제사회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길 잃은 RE100]⑩ 국내 재생에너지, 경제성·안전성 글로벌 최악…“규제 완화·주민참여형 사업 필요”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가격이 선진국보다 높아 국내 기업들의 RE100 달성이 더욱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안전성을 개선하려해도 규제가 겹겹이 쌓여 있는 탓에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RE100 달성을 위해서 일부 규제를 해소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산업권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와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이미 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것과 아직도 큰 온도차가 있다는 진단에서다. 18일 산업권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안정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100에서도 지난 2023년 발행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혹은 국내에 진출한 RE100 가입 기업의 40%가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에 애로 사항이 있다고 보고해 전 세계 국가 중에 가장 비율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위인 대만이 33%, 3위인 싱가포르가 27%에 그쳤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보고한 기업들은 '조달옵션이 부족'하고 '재생에너지의 비용이 비싸다'고 이유를 꼽았다. 국토가 좁고 계절 변화가 심한 국내에서는 태양광·풍력 등 주요 재생에너지 재생에서 다른 선진국보다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아울러 송전망 설비도 미비해 남해안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인구밀집지역인 수도권으로 수월하게 전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국내 정부도 이를 알고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5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과 8월 '해상풍력 경쟁입찰 로드맵' 등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RE100 수요 기업의 최근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해 자발적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전력구매계약(PPA) 중개시장에 대한 시범사업이 실시된다. 이는 같은 시기 공고된 태양광·육상풍력 경쟁 입찰에 선정된 발전소에게 RE100 수요기업과의 매칭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매칭 기회는 RE100 가입 국내기업 3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되며 앞으로 사업대상 및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산업부는 지난 7월 산업단지의 태양광 발전 활성화 방안을 담은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및 공급망 강화전략' 발표하기도 했다. 거주인구가 적고 계획적으로 개발된 데다, 기업들이 밀집한 산단을 재생에너지 생산·보급 최적지로 보고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현재 2.1GW 규모의 산단 소재 태양광 발전 설비를 12GW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동시에 기업의 RE100 이행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산단 입주기업 PPA 망사용료 지원도 확대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업계가 요청하는 태양광 발전설비 이격거리, 해상풍력 고도제한 관련 규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태양광 발전설비 이격거리 규제는 지자체가 지역주민의 정주여건 등을 고려해 설정한 태양광 발전시설과 이격 대상간의 최소거리다. 개발행위허가 단계에서 작용하는 해당 규제는 2014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조례에는 태양광발전설비에 대해 도로나 주택부지의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500m이내, 주요관광지와 문화재 등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 입지하지 않도록 거리규제를 두고 있다. 현재 전국 지자체 중 57%에 달하는 129개 지자체가 재생에너지 이격거리를 규제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국방부는 현재 해상풍력 발전기 높이가 500피트(약 152.4m)를 넘는 경우 획일적으로 높이 조정 의견을 내고 있는데, 해당 규제가 해상풍력 발전 효율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규제로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건설 자체가 위축되다보니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안정성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선진국들이 영농형 태양광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육성해오고 있는 것과 큰 차이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해 농업과 에너지 생산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태양광 발전 시설보다 간격을 넓히고 높게 설치해 농기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농업인들은 농지를 보전하면서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농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의 공존을 위해 영농형태양광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일찍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농형태양광의 발상지인 일본은 2013년에 영농형태양광 관련 법안이 통과돼 약 4000건 이상의 영농형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됐다. 프랑스도 영농형태양광을 농업 보호 시설로 인정하고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 농지법 하에서는 농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가 최장 8년까지만 운영할 수 있어 영농형태양광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허가 최장 기간인 8년이 지나면 수명이 25년 이상인 발전소를 철거해야 하는 탓이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수록 지역주민 생활권에 가까워지고, 이로 인해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커져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며 “지역주민에게 재생에너지 설비를 참고 수용하라고 달래기보다는 목표 달성을 함께하는 파트너로 대우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길 잃은 RE100]⑨ “RE100 이행수단, 다다익선…인센티브 늘려야”

국내 기업들이 RE100을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가지 수단에 의존하는 것보다 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비용 부담과 인식 부재 등으로 인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RE100은 2050년 또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이전 시점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서 쓰는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자가발전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녹색프리미엄 등의 방법으로 이행할 수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그러나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수출 제조사 610곳을 조사한 결과 '이용하지 않음'이 85.4%로 가장 많았다. 연구원은 이번 설문을 통해 RE100을 처음 접했다는 기업이 절반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이행률이 낮았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RE100 이행수단을 쓰는 곳 중에는 '1가지 수단만 사용한다'가 9.2%, '2가지'와 '3가지 이상'은 각각 3.6%·1.8%로 집계됐다. 특히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이용률과 다양성이 적었다. 중소기업은 '이용하지 않음'이 89.5%로 가장 높았다. RE100을 이행하려는 기업 중 1가지 수단만 쓰는 곳은 7.8%, 2가지는 2.0%였다. 3가지 이상 사용하는 곳은 0.7%에 불과했다. 중견기업의 경우 '이용하지 않음'이 85.6%로 중소기업 보다 3.9%p 적었다. 1가지 수단만 쓰는 비율은 9.1%, 2가지는 4.2%, 3가지 이상은 1.1%로 나타났다. 대기업은 47.5%가 RE100 이행수단을 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1가지 수단만 쓰는 비율이 20.0%로 가장 컸고, 3가지 이상이 15.0%로 2가지(12.5%) 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러가지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을 믹스한 한국형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각각의 솔루션에 단점이 있는 만큼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가발전은 사업장 내 태양광 발전설비 구축 등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솔루션으로, 국내 기업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 RE100을 이행 중이라고 밝힌 89곳 중 60.7%(복수응답)가 자가발전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재생에너지의 대표적 리스크인 간헐성에 노출되지만, 정부가 시설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른 수단 보다 도입이 쉽기 때문이다. 녹색프리미엄은 34.8%로 집계됐다. 이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소비하고 이를 인증 받으려는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납부액을 약정한 뒤 기존 전기요금에 별도의 프리미엄을 더해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지도 및 활용법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학·연이 손잡고 한국RE100협의체를 운영 중이지만, 정보 공유와 실무 교육 등이 회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이다. REC 인증서를 구매하는 비중은 30.3%였다. 다만 REC는 '그린워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가중치 논란도 꾸준히 불거지는 등 지속가능한 수단이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접 PPA 계약을 맺거나 제3자 PPA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10%에 머물렀다. PPA는 사용자가 일정 기간 고정된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PPA의 경우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구매하는 방법이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력소비량이 적은 기업은 계약을 체결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다. 현재 재생에너지 단가가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을 상회하는 상황인 만큼 PPA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력망 이용료와 부가정산금을 비롯한 비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킬로와트시(kWh)당 10원의 하한선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상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용부담을 토로한 셈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입찰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 재생에너지 공급량 확대로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물량을 늘리고 가격 안정성을 확보해야한다"며 “정권 교체에 따른 에너지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고,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수출기업에 대해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 것도 수출길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길 잃은 RE100]⑧ RE100 압박, 국내 중소·중견기업 해외로 밀어낸다

국내 산업계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더 많은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오프쇼어링(기업이 생산설비 등을 해외로 옮기는 것)'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무역연구원이 수출 제조사 6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래처로부터 RE100을 요구 받을 경우 30%에 달하는 기업이 사업장 또는 거래처를 옮기거나 거래 자체를 중단하겠다고 응답했다. RE100은 2050년 또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이전 시점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서 쓰는 전력량 100%를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등 RE100 이행수단을 활용하겠다는 비율이 80.0%로 가장 높았고, 다른 거래처를 찾겠다는 곳은 15.0%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가겠다는 비율은 5.0%였다. 그러나 중견기업의 경우 RE100 이행수단 활용이 74.6%, 다른 거래처 물색과 사업장 이전은 각각 12.1%·5.7%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은 RE100 이행수단 활용이 68.3%로 가장 낮았다. 반면, 다른 거래처 물색은 13.4%, 사업장 이전은 9.5%에 달했다. 재생에너지 요구 기업과의 거래 중단(3.6%)을 유일하게 선택한 곳도 중소기업이었다. 전체 기업 중 7.5%가 사업장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수출 실적이 낮을수록 RE100 이행수단으로 대응하겠다는 비율도 적었고, 사업장 이전 및 거래 중단을 선택하겠다고 답한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출액 500만달러 미만의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는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이 녹록치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성이 낮고 공급량도 충분치 않은 탓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23년 하반기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를 통해 국내 태양광 발전단가가 MWh당 78~147달러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31~45달러) △인도(26~47달러) △베트남(48~96달러) △미국(52~79달러) △프랑스(38~59달러) 등을 대폭 상회하는 수치다. 제조 수출기업 중 재생에너지를 사용 중인 곳이 8.7% 불과한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현재는 물론 향후에도 이용할 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52.8%로, '현재 이용하지 않고 있으나, 향후 사용할 계획이 있다(38.5%)' 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가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 절감(42.0%)이지만, 관련 니즈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업장을 옮기겠다는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동남아(52.2%)으로 나타났고, 미국(19.6%)·중국(10.9%)·인도(8.7%)·호주(2.2%)를 비롯한 국가가 뒤를 이었다. 동남아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에 힘입어 RE100 달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으로 불리며, 전기요금이 낮은 곳도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SK·LG·롯데 등 국내 기업들도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지 사업장 구축을 가속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한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최대 30%까지 이뤄진다. 호주는 그린수소 산업 육성 등을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인도도 현재 20%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발전량 기준 10%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2030년에도 20%대 초중반도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RE100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오는 까닭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리쇼어링(해외 사업장의 귀국)' 및 해외 기업 유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면 국가경제가 약화될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솔루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길 잃은 RE100⑦] 조상훈 기후솔루션 연구원 “RE100, 그린철강 넘어 경제 지킴이”

철강산업이 RE100을 달성하면 해당 업종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동차와 조선 등 수요산업의 수출길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조상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철강이 그 자체로 주요 수출품이지만,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탄소배출량으로 인한 직·간접적 무역제제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저탄소화에 실패하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EU향 철강재 수출을 위한 탄소 차액 추정치 이상의 피해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연구원은 지난해 녹색산업법을 통과시킨 프랑스가 자동차에 사용된 소재들의 탄소배출량을 근거로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과 중국 전기차를 대거 탈락시킨 사례를 들었다. 국내 기업들이 멕시코를 통해 우회 수출하던 루트도 탄소배출량 기반 규제 적용시 좁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알루미늄·카본섬유·나노셀룰로오스를 비롯한 소재를 활용해 자동차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으나, 철강은 앞으로도 차량 무게에게 30~50%를 차지하는 주요 소재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BAM과 관련해서는 “EU에서 생산한 강재가 다른 나라보다 얼마나 친환경성이 높은지, 판가는 어느정도로 잡는지와 국내에서 저탄소 강재를 만드는 비용과 탄소차액간 차이가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100을 위한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 및 안정성이 유의미하게 개선되면 기업들이 EU에 차액을 지불하는 것보다 더 큰 단기 손실이 발생해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유인이 생긴다는 논리다. 조 연구원은 “업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고로 60%, 전기로 40% 비율까지 합탕할 때 고로 100%와 유사한 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전기로에 RE100이 이뤄지면 t당 탄소배출량을 2.3tCO2e에서 1.3tCO2e로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철강' 시장 활성화되면 탄소 차액을 줄일 수 있으나, 현재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철강은 제조 공정에서 화석연료를 쓰지 않음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한 제품이다. 조 연구원은 “수요산업은 철강사가 만들지 않아 구매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철강사는 사겠다는 확약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국면을 타파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협의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으나, 정부가 경제산업성 주도로 '그린철협의회'를 만든 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그린스틸의 개념과 구매자-판매자의 비용 분담 방안 및 정부 지원책 등의 해법을 제안한다"고 소개했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고, 토요타 등 수요기업들이 철강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국제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저탄소 강재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조치다. 조 연구원은 “철강사들이 수요에 대해 어느정도 신뢰를 갖고 기술 개발 및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며 “그린스틸 생산량이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및 수소 사업자도 이에 맞춰 투자를 결정하는 등 다각적인 연쇄효과가 발생한다"고 발언했다. 그린수소 비용을 낮추려면 철강산업에도 인센티브를 적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경제성 있는 그린수소를 수소환원제철에 활용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센티브가 청정발전 입찰시장을 통한 발전비용 보상이 전부인 까닭이다. 철강 등 전력소비량이 많은 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와 해상풍력 고도제한 규제 온화를 통해 공급량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수소와 같이 에너지 형태를 전환해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철강에서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지역경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국내에서 수출되는 강재 대부분이 고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고로강재를 퇴출하고자 한다면 설비들의 자산가치가 상실된다는 이유다. 경쟁국 대비 뒤쳐진 국내 재생에너지 및 수소 시장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국내 고로를 폐쇄하고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연구원은 “호주가 그린수소 수출을 넘어 해외 철강사들이 직접 환원철 제조설비와 철강 생산시설을 자국에 구축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은 '산업 엑소더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탄소집약적 산업군의 대표주자인 철강이 탈탄소를 달성하고 화석연료 기반의 철강이 그린스틸로 전환될 수 있도록 연구와 활동을 하는 단체로, 2021년 11월 첫 철강보고서를 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길 잃은 RE100]⑥ 태양광·풍력·원자력 정산단가 145.8원·136원·78원…송전망 부족도 발목

국내 수출기업들 사이에서 글로벌 고객사의 RE100 이행 요구에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공급 안정성 탓에 RE100 달성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별 기업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단행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태양광·풍력 발전의 경제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태양광·풍력 정산단가(MWh 기준)는 각각 145.8원과 136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달 원자력 단가가 78원임을 감안하면 각각 86.92%와 74.36% 높은 수준이다. 석탄화력 발전 단가인 164.2원보다는 태양광·풍력 가격이 낮은 것으로 집계됐으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이행비용정산금' 등을 감안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RPS 제도는 재생에너지 보급·확산을 위해 운용돼왔다. 대형 발전사가 총 발전량 중 일정 비율을 발전 단가가 높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면, 한국전력이 발전 원가와 전기 공급 가격의 차액을 보전해 주는 구조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해 지급하는 보조금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한전이 부담한 RPS 관련 비용인 4조원이 태양광·풍력 정산 단가에 반영된다면 가격이 석탄 이상으로 급증할 수밖에 없다. 태양광·풍력 정산 단가는 지난 2017년 100원 미만을 기록했으나 2022년 이후 최근 3년 동안은 100원 이상으로 오히려 올랐다. 이 기간 원자력 정산 단가가 60원 안팎으로 견조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태양광·풍력 발전의 경제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전력업계에서는 기존의 원자력 발전의 의존도를 낮추면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력 정산 단가는 기업의 원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너무 비싼 전기를 생산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다. 특히 수출기업이 많은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히려 발전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력 생산을 국내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에서 발전 단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기업들 사이에서 국내 송전망 부족도 RE100 달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8월 기준 국내 재생에너 발전 설비용량은 3만3416MW로 전체 발전 규모의 22.36%까지 비중이 늘었다. 그러나 발전량은 올해 1~8월 누적 기준 4만3834GWh로 전체 발전량의 10.9%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송전망 설비가 미비해 재생에너지 발전 지역에서 주로 전기를 소비하는 수도권 지역으로 전기를 송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태양광·풍력 발전은 광범위한 면적이 필요하거나 바람이 계속 불어야 하는 등 자연적 조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남해안이나 제주 지역에 설비가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전력 소비가 많은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권으로 전력을 옮기려면 송전망 확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송전망 건설 반대 등으로 전력망 확충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한국전력이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불허한 경기도 하남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남시는 전자파 발생과 주민 협의 부족을 이유로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불허했으나, 한전은 이 처분으로 수도권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겨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 같이 지역 주민의 반대가 적지 않아 송전망 확충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면 국가 경제와 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게 되지만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이 알아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기에 국가 차원에서 나서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공급 안정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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