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67) 일본 자민당 전 간사장이 27일 집권당 총재로 선출돼 내달 1일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비주류였던 그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다섯 번째 도전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극단적 주장을 배격하는 민주주의 원칙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는 154표를 얻어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181표)에 27표 뒤진 2위로 결선에 올랐다. 하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215표를 얻으면서 다카이치(194표) 경제안보담당상을 21표 차로 눌렀다. 의원 표 비중은 1차 투표에서 약 50%지만, 결선에서는 89%로 높아진다. 현재 자민당 내에서는 비자금 스캔들로 기존 6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해체를 선언했고, 아소 다로 파벌만 존속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일본 언론은 해체 여부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는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최대파벌인 아베파를 비롯, 아소파 지지를 받았다고 관측했다. 그런데도 이시바 총재가 승리한 배경으로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50명가량 되는 옛 기시다파 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1차 투표에서 탈락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지지 의원들도 결선 투표에서는 이시바 총재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75표 의원 표를 얻었으나 3위로 떨어졌다. 아사히신문도 기시다 총리가 파벌에 속했던 의원들에게 결선에서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에 반대 투표하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와는 정책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요미우리신문도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언하는 등 강경 보수 행보를 보이면서 극우 우려가 퍼졌다고 짚었다. 신문은 “기시다 정권에서 개선된 한일관계가 훼손돼 한미일 연계에 금이 가면 러시아, 중국, 북한의 불온한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다카이치를 지지한 세력에게 브레이크가 됐다"고 짚었다. 여기엔 제1야당 입헌민주당 대표로 최근 선출된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노다 대표는 중도 보수에다 정치 경험도 풍부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향후 '조기 총선'에서 민주당에 승리하기 위해 의원들이 경륜이나 이념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인물을 앞세워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1위 돌풍'을 일으킨 극우가 결선 투표 등 제도 장벽에 의해 집권 문턱에서 좌절한 사례는 앞서 유럽에서도 이어진 바 있다. 지난 2022년 스웨덴 총선에서는 온건당·스웨덴민주당·기독민주당·자유당 등 우파 연합이 좌파 연합을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당시 우파 연합 중 제1당을 차지한 것은 약 21%를 득표한 극우 스웨덴민주당이었다. 그러나 우파 연합은 스웨덴민주당 극우 성향을 문제 삼아 온건당 대표인 울프 크리스테르손 현 총리를 선출했다. 올해 프랑스 총선에서도 국민연합(RN)이 1차 투표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과반 득표로 인한 무결선 당선자 선두권으로 결선에 진출한 후보도 최다였다. 그러나 결선에서 중도와 극좌까지 포함한 '반 극우' 연대 및 대규모 단일화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RN은 126석을 얻어 단일정당으로는 제1당을 차지했지만, 연합세력이 공화당 일부 계파에 그쳤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추천권을 얻는데 실패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에서 연대했던 극좌 연합이 아닌 RN에 참여하지 않았던 우파 공화당 세력 내에서 총리를 선출했다. 안효건 기자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