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에 따라 불안이 반복되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낡은 시스템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를 혁신하고 도시·교통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등 정부·민간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내놓은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건산연은 주택정책 선진화를 위해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대출 규제가 늘어나고 주택 공급량 및 거래량이 감소하는 등 불안 요소가 가득하다. 전·월세 가격마저 폭등하며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출산율 감소로 인해 인구구조가 가파르게 변화하고 지역별 양극화도 심하다. 서민 주거사다리로 여겨지던 전세는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계속 오르는데다 전세사기가 급증하면서 제 역할을 상실할 위기다. 집값도 지속적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산층마저도 '내집 마련'에 큰 부담을 느낀다. 한국은행이 주요국 가격 통계 비교사이트 '넘베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지난 6월 기준 25.1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위권 소득으로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25년 정도 걸린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분양 증가, PF 부실 등 고질적인 문제가 경기 순환 과정에서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 원인은 고도성장기 설계돼 수명이 다한 낡은 주택 시장 시스템이다. 이미 우리나라 경제는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2%의 저성장기로 돌아섰다. 인구구조 변화, 빈부 격차 확대, 지역간 양극화, 노후주택과 빈집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심각하다. 그러나 주택시장의 정책과 주요 제도들은 여전히 고성장기에 맞춰져 있으면서 큰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경기 상황 대응 수준의 단기적 처방에 그치고 있다. 규제 강화와 규제 완화로 냉온탕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주택 정책도 '땜질식'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치유하는 근본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다. 허윤경 건산연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통합적·종합적 관점하에서 미래에 대응한 정책 체계를 마련해 주거안정 및 산업 혁신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존의 단기 대응 위주가 아니라 정책 지속가능성 및 예측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시장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건설업계도 부동산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양사업 비중을 줄이고 임대주택 등 운영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해 산업 선진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게 허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건설 산업이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로 진입하면서 시장 규모가 작아지고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도 새로운 먹거리 창출 등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손쉬운 활용이나 젊은 인재 수급 활성화 등의 지원 대책도 거론된다. 정부와 민간의 건설 투자 활성화도 단기적인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나경연 건산연 경제금융·도시연구실장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2024년 건설시장 및 건설산업 정책 진단 세미나'에서 “정부·민간이 건설투자를 활성화해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건설 신규 투자가 1조원 증가하면 일자리 1만500여개가 창출되고, 민간 소비가 3400억원 증가하는 등 경제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공공에서 도시, 교통 물류 등 인프라 전반을 아우르는 장기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철도 지하화 등 민·관이 협력해 추진할 수 있는 다양한 도시개발 정책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비아파트 시장 운영을 보다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홍성진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장은 “건설산업 육성·진흥은 지방소멸 위기 극복 및 지역 경기 활성화 등 미래 지향적 정책을 동력으로 삼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