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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4년 안보 희생 대가 0원…정부, 동두천 외면

박형덕 동두천시장 동두천시에는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걸산마을이 있다. 분명 대한민국 땅 위에 존재하지만 미군 기지 안에 있다는 이유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마을이다. 1951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마을 주민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입과 거주, 이동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도무지 지금 대한민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2014년, 한-미 양국은 걸산마을이 포함된 캠프 케이시 기지를 2020년경까지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고, 반환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지 사령부는 2022년 6월부터 신규 전입 주민에 대한 출입 패스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주민등록은 돼있는데, 실제로는 마을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최소한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다. 동두천시장 취임 이후, 걸산마을 패스 문제를 비롯해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온 동두천에 대해 정부가 마땅한 보상과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 요구해 왔다. 지역발전 범시민대책위원회와 시민도 다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궐기대회를 진행하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시는 전체 면적 중 42%에 해당하는 40.63㎢의 땅을 미군에 제공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한미군과 그 가족, 관련 종사자 등 약 2만명이 거주해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대규모 병력의 평택 이전 이후 미군이 급감하며 지역경제는 점점 침체됐다. 대신 지속적인 반환 요청으로 23.21㎢의 공여지를 돌려받았지만 99%가 산지여서 개발이 불가하다. 반면 평지로 활용 가치가 높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17.42㎢는 반환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기지의 장기 미반환으로 동두천 경제는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 피해 수치를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 미군 관련 자영업체 중 70% 이상이 폐업했고,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해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지방세 손실, 도시 개발 차질에 따른 매년 5278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 등 누적 피해는 25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여파로 2024년 상반기 실업률 전국 1위, 재정 자립도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때 10만에 육박했던 인구도 현재는 8만대로 줄어들어 이제는 동두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필자는 74년간 지속된 안보 희생에 대한 최소한 보상으로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군 기지 이전을 이유로 제정된 '미군 이전 평택 지원법'을 통해 평택은 삼성 반도체 유치, 기반 시설 조성 등 약 19조원 지원을 받아 인구 60만 도시로 성장했다. 평택 선례에 비춰볼 때, 동두천도 이에 상응하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김성원 국회의원이 '주한미군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두천이 입은 피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또한 2014년, 미군의 동두천 한시 잔류 결정에 따라 정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약 30만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조성 이후 분양과 기업 유치는 온전히 지자체 몫으로 떠넘겨진 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조성만 국가가 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기는 방식이라면 과연 그것을 '국가산업단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사실상 보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동두천시민과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 유치와 2단계 사업 추진에 있어 분명한 책임을 지고 실질적인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 더불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도 강력히 희망한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 국가산업단지 조성,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여부는 동두천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이제라도 정부는 동두천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고, 정당한 보상을 시작해야 한다. 박형덕 동두천시장 kkjoo0912@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개헌의 그림자, 권력의 계산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당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우 의장은 자신의 개헌 주장을 철회했다. 그의 개헌 제안은 타당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1987년 개헌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행 헌법은 그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윤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역대 국회는 모두 개헌 특위를 가동한 바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장애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투표 절차에 있다. 현행법상 개헌 관련 국민투표는 본 투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 투표는 사전 투표까지 실시하고, 개헌 관련 투표만 본 투표 당일에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개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과연 이런 이유에서 개헌에 반대했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되짚어 보면, 개헌론이 주로 부상하는 시기는 정권 말기와 대선 시기다. 이는 거의 예외가 없는 한국 정치의 '비공식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어 온 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개헌론의 등장은 권력, 그리고 세력의 불균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권 말기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권력 말기의 레임덕 현상으로 인한 권력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 시기에도 개헌론이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대개 대선에서 열세에 놓인 쪽에서 주도한다. 레임덕 방지든,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이든, 공통된 점은 개헌이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이다. 개헌이 이처럼 효과적인 카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블랙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헌 이슈가 부상하면, 다른 모든 정치적 이슈는 그 앞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는 자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신이 설정한 선거 구도도 흐트러지게 된다. 따라서 강세를 보이는 후보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임기 말에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도 개헌론을 꺼내 듦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나 책임을 일시적으로 무대 뒤로 물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권력 누수 현상을 일부 완화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전략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은, 정권이 제기하는 개헌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나 정권 말기의 야당은 개헌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치에서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의 틀 속에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정치인의 출현인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〇〇은 누렇고, 끈적끈적한, 이제 막 발효되기 시작한 포도주처럼 담벼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감각적인 문장은 200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나온다. (퀴즈. '〇〇'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20세기 소설의 이정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대낮의 반사광이 그 노란 날개를 스며들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덧문 문살과 유리창 사이 구석진 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두 문장에는 직접은 아니지만 내용상 태양이 개입한다. 만일 태양이 문학에 미친 흔적만으로 글을 쓰면 아마 전집이 가능할 법하다. 21세기 들어 태양은 문학뿐 아니라 삶 전반을 장악하는 중이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32%였고, 그중 태양광발전이 6.9%포인트였다. 풍력 8.1%포인트, 수력은 14%포인트로 아직 태양광의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태양광은 20년 연속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전력원이며, 최근 3년 사이 발전량이 두 배로 증가해 2024년에는 2,000TWh를 돌파했다. 기술발전과 비용하락으로 앞으로 태양광발전이 에너지 전환의 엔진 역할을 하리라는 데에 거의 이견이 없다. 이런 상황이 마뜩잖은 세력은 화석연료 진영으로, 대표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월 20일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발표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행정명령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에서 제외했다.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 안보의 기본 요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가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 11가지라고 분명하게 정의하며 태양광, 풍력 등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에너지에서 제외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석탄 산업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석탄 발전이 현재 미국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미만으로, 2000년(50%)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석탄을 더 때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게 트럼프 생각이다. 이런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석탄발전소가 화려하게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미국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보면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반대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2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추가된 미국 총 발전용량의 90% 이상이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특히 태양광은 전체 신규 발전용량의 81% 이상을 차지하며, 2024년 12월까지 16개월 연속 가장 큰 신규 전력원의 위치를 지켰다. 2024년에 추가된 새로운 태양광 발전용량은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합친 것의 거의 9배에 달한다.세계 흐름도 마찬가지다. 전기에너지 중 세계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0년에 46%로 확대되고 태양광발전은 34.9%포인트를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9% 미만으로 세계 평균의 3분의1에 못 미친다. 2030년 목표는 고작 20%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가 해야 할 많은 과제 중에 재생에너지 강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꼭 민주주의에 국한한 게 아닐 터이니, 누가 되든 트럼프 같은 역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퀴즈의 답은 '석양'이다. 안치용

[이슈&인사이트]美 관세 폭탄이 부른 또 다른 위기

미국의 대규모 관세폭탄이 대기업에게 해저 지진이라면, 트럼프의 '소액 면세' 폐지는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곧 이어 몰려올 거대한 쓰나미다. 소액 면세 기준을 활용해 미국에서 급성장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알·테·쉬) 등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판매하던 물량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거세게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판촉공세를 펴는 중국산 제품의 상륙에 진정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중국발 C-커머스가 이름들이 낯설게 들렸던 건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이들은 초저가와 광속 배송을 무기로 국내 소비자의 '합리적 욕망'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자국은 선명하다. 바로 소상공인의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4년 하반기, 유통 생태계에 또 하나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티몬과 위메프. 한때 쿠팡의 아성에 도전했던 이들 플랫폼에서 정산 지연 사태가 터졌다. 수개월 동안 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고,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온라인을 뒤덮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자금을 풀고 정산 주기 단축을 약속했지만, 상처는 깊고 복구는 더뎠다. 이 역시 알테쉬의 공세에 밀린 온라인발 위기의 전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어떻게 이 파고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에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초저가 전쟁은 더 이상 우리의 무대가 아니다. '싸고 많은 것'은 이제 중국의 강점이다. 우리가 갈 길은 분명하다. 중가 시장으로의 도약, 즉 가성비에서 가치비(Value-for-Money)로의 전환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싼 것'이 아닌 '좋은 것을 합리적으로' 찾는다. 이제는 품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에 담긴 철학과 손끝의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둘째, D2C(Direct to Consumer) 모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유통의 중간 단계를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소통하는 구조. 이는 단순한 유통 효율을 넘어, 브랜드의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다.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가 담긴 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산다. 셋째,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 싸워야 한다. 공동 물류, 공동 구매, 공동 마케팅, 공동 R&D. 연합과 협업 없이는 거대한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생존이 어렵다. 생존을 위한 '연대의 경제'가 절실한 시점이다. 넷째,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1인 가구, 개인 맞춤형 소비 등 소비자의 니즈는 급변하고 있다. 소상공인은 오히려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감성화. 단순히 '좋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담은 제품이 중요하다. 감정에 호소하는 콘텐츠와 리뷰, 브랜드 스토리가 '가격'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 이제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기부 산하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한유원)은 단순한 지원기관이 아니라, 생존 플랫폼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 전용 D2C 플랫폼, 공동 물류 시스템, 중가 브랜드화 지원,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교육… 이 모든 것들이 한유원의 새로운 임무가 되어야 한다. 중국발 초저가 공습과 플랫폼의 신뢰 붕괴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유통 생태계 전체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이 판을 읽고, 대응하고, 반격하지 않으면, 다음 생존자는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상공인은 생존하기 위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지원을 넘어 소상공인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설계하는 연출자이자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이슈&인사이트] 그는 아직 파면되지 않았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지난 4일 파면당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한 번 더 칼 대려는 거 아니다. 7년 전, 국민에게 사과하고 청와대를 나왔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나마 덜 나쁜 케이스였다고 느끼게 될 줄이야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다. 무서운 일이다. 인간의 죄의식이라는 거, 아니 생각이라는 거, 참 무섭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1주일 만에야 관저를 나오던 모습에서 망령과 미몽을 봤다. 절망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1500여 시민들(경찰 추산)은 “윤 어게인", “사기탄핵"을 외쳤다. 대학교 점퍼(과잠)를 입은 수 백 명 젊은이들은 윤과 포옹하다 울기도 했다. 박해받는 순교자나 체포돼 끌려가는 안중근 의사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윤 피고인의 지시로 50~70대는 대열의 뒤로 빠지고, 주민등록증 소지 20대 200명을 전열에 도열시켰다가 악수하고 포옹까지 했다고 한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고? 다시 출마하라고? 윤석열 피고인은 끝까지 사과는커녕 승복 메시지도 없었다. 관저에서 나오며 “나라를 위해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했다. 새로운 일! 파면되던 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런 그에게 자숙 요구는 너무 점잖다. 그는 '구속기간 만료 후 기소'로 구속사유가 취소돼 일시 석방된 피고인일 뿐이다. 그가 지지자들을 세뇌시키듯 조종하는 거야말로 경거망동이다. 헌재는 그를 파면했지만 계엄망령은, 내란망동은 그대로다. 그는 아직 파면되지 않았다. 과잠을 입은 그 젊은이들도 불과 몇 년 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을 배우고 한국사를 공부했을텐데, 헌법파괴자와 포옹하려 줄을 서고 다시 출마하라며 울부짖는다. 이들을 정신 나갔다고 손가락질하며 사회불안요인으로 방치한다면, 공동체나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몽과 망령에서 깨어나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야 말로 공동체가 공동체구성원에게 해야 할 의무이자 역할이다. 특정 신념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주장이나 신념체계를 신봉하건 누구를 지지하건 헌법과 법률의 범주 안에 있게 해야 한다. 관저에서 나온 윤 피고인은 빨간 모자를 건네받아 썼다. 트럼프를 가져다 베낀 그 빨간 모자. 영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Make Korea Great Again(한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가 수감돼 죗값을 치르는 게, 법치가 정상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확실히 보여주는 게, '중국인 부정선거' 망령에 빠진 사람에게 사실을 알게 하는 게, “아무개 헌재 재판관의 한국어 발음이 이상한 걸 보니 재판관으로 잠입한 중국인이 맞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미망에서 깨어나게 하는 게, 내란주모자를 다시 출마하게 하자는 피켓이 자신의 헌법상 권리를 파괴하는 망령임을 알게 하는 게 '코리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시작이다. 12.3 계엄내란을 통해 다시금 통렬히 깨닫는다.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새 정부는 윤정권 과오청산이나 사회대개혁과 함께, 이들 미몽에 빠진 사람들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도 애써야 한다. 그들을 정치적 지지자로 만들라는 게 아니다.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게 국민통합의 첫 단추이자 사회불안요인제거의 첫 걸음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게 하는 것,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사고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내란 이후 숙제다. 윤 피고인과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상식의 중요성을 거듭 깨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상식체계가 망가진 사람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암담하고 슬픈 얘기다. 이강윤

[이슈&인사이트]헌법재판소의 부정선거 의혹 해소 선고

12월 3일 야밤에 봉창 두드리는 계엄선포가 해가 바뀌어 4월 4일 아침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로 막을 내렸다. 윤석열 자신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헌법재판관이 주심으로서 결정문까지 작성한 선고에서 8대 0 만장일치 파면은 그 무게가 상당하다. 헌재의 선고 이후에 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사상자가 많았던 2017년 박근혜 파면 선고 당일의 모습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6월3일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는 제발 헌재가 선고 요지에 담은 선관위와 관련된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헌재는 “중앙선관위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 보안 취약점에 대하여 대부분 조치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사전.우편 투표함 보관장소 CCTV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개표과정에 수검표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였다"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투개표 과정에서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한 것이다. 2022년 7월 대법원이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에 대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과 같이 사법부는 일관되게 대한민국에 부정선거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와 달리 국회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3월 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사전투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전투표제도가 2014년 지방선거에 선보인 뒤 투표율상승에 기여했지만 이제는 그 효과가 줄어드는 중이고 2024년 총선에서 사전투표 관리에 722억 원이라는 어마한 비용이 들었는데 관리가 부실하다고 입장이다. 대신 장 의원은 “기존 수요일에 치러지던 본투표를 ... 옮겨 금·토·일 3일 동안 치르도록 하면 투표율 상승도 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표 관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와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사전투표까지 3일에 걸쳐 실시되는 투표에서 최근 투표율 상승효과가 사라지는 중이라면서 일요일을 포함하여 3일 연속 투표하면 갑자기 투표율이 올라가리라 기대할 수 있나. 3일 연속으로 투표하면 현 사전투표제와 달리 투표함 관리 등 여러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나. 사전투표 관리에 722억 원 이상이 들어서 문제라고 했는데 3일 연속 투표로 바꾸면 그 비용이 현저히 줄어드나. 3월 5일 출근길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한 정당의 대표가 대만식 투표소 개표를 소개했다. 그는 특정 정당이 사전투표제 폐지에 반대하니 "그럼 투표소 개표하자. 사전 선거도 투표소 개표 본 선거도 투표소 개표하는 것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제가 행안위에 있을 때 이미 선관위에서 가능합니다 ... 그 문제만 되면 많은 부정 선거의 의혹들이 해소가 된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사전투표를 투표소마다 바로 개표한다면 개표 비용이 엄청나게 추가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 비용을 세금으로 다 채워서 개표한다 해도 투표 결과가 바로 공개되면서 일어나는 일은 누가 책임지나. 투표 결과가 그다음 날 사전투표에 영향을 주고 다시 본 투표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현재 여론조사 결과도 선거일 직전에는 공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두었다. 대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아예 과거같이 부재자투표와 하루 본선거로 복귀하는 게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투표율 하락 등 다른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남는 것은 다시는 계엄군을 동원하여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점검한다며 직원을 출입통제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하며 전산시스템을 촬영하는 위헌적인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주장을 담은 유튜브를 즐길 시간에 2022년 7월 민경욱 전 의원의 부정선거 의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는 게 더 낫다. 또 이번 조기 대선에 개표참관인이나 개표사무원으로 직접 개표부정이 있는지 체험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곧 선관위마다 개표 참관인과 사무원 모집 공고도 나온다. 용돈 벌면서 부정선거 유무를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대법원과 헌재가 부정선거가 없다고 하니 안심하고 투표하시라. 이준한

[특별 기고] 이젠 전문화 된 항공 안전 전담 기관을 생각해야 할 때다

2025 을사년 새해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28일, 김해국제공항에서 아찔한 에어부산 391편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후미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번져 승무원 포함 총 176명의 탑승 인원이 비상 탈출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소방 당국의 침착한 대응과 적극적인 진화 노력으로 항공기만 소실되는 선에서 인명 피해 없이 참극을 막은 건 정말 기적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는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로 무고한 179명이 희생된 참사가 벌어졌다. 이처럼 연달아 발생한 대형 항공 사고에 모든 국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초동 조사 결과 조류 충돌 등 여러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고, 에어부산 화재 사고의 발화점은 승객의 짐 속에 있었던 보조 배터리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두 건의 공통점은 항공사의 통제 가능 범위 밖의 요소가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같은 일이 다른 항공사에서 일어났다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나 확신이 없다. 항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정책이 적용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아직도 존재하고, 이들의 위험성 정도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위험 요소를 제거·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발생 시 필연적으로 규모가 클 수 밖에 없는 항공 사고의 속성에 비춰 볼 때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항공업계의 경제적 규모는 현재 36조원 수준이나, 2030년 경 58조원으로 급성장하고 2만5000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돼 전망이 밝다. 그런 만큼 생태적으로 구조가 매우 복잡해 톱니 바퀴가 매우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참여자들의 높은 이해도와 안전 의식,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매우 중요한 분야다. 바로 이 부분이 국토교통부를 위시한 모든 업계 관계들이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는 마음으로 항공 산업과 안전을 위해 힘을 모아 나아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작금의 사고들을 바라보며 항공 산업의 중요한 요소인 안전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을 새로이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간 양적 팽창에 치중했던 업계 전반을 돌아보고 이번 사고들로 드러난 여러 불안전한 요소들을 저인망식으로 점검해 국제 기준에 비해 미비했던 부분을 찾아 시정함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국토부 산하로 집중된 항공 관련 조직들의 구성과 기능, 독립성·전문성을 점검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전문 인력의 양성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 업계 기반을 새롭게 다지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항공 사고의 위험 요소는 현장 최일선의 종사자가 가장 잘 안다. 정책을 입안하는 조직들은 인지하기 어려운 위험 요소들을 현업자들과 '안전 보고 제도의 운영'이라는 상호 작용을 통해 공유하고, 정책화하는 공고하고도 선진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항공 안전 보고 제도 자체는 존재하지만 항공사나 업계 종사자의 신뢰와 참여가 결여된 속 빈 강정이다. 국내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조직에서 찍힌다거나 관리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현장을 지키는 종사자는 안전 문화 창달을 위한 참여자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라는 수동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보고를 한다고 해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없을진대, 하물며 굳이 처벌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경험담과 위험 요소를 보고할 분위기 형성이 안 돼있어서다. 종사자의 실수를 숨기게 만드는 종래의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고, 현업자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은 항공 안전 시스템 개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실질적이고 강력한 면책 기반의 보고 제도 운용과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 안전 정책으로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이러한 비 처벌 공정 문화(Just Culture)와 신뢰에 기초한 보고 체계의 안전 문화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항공 안전 대책이라고 강조한다. ICAO 36개 이사국 중 33개국은 이미 별도의 항공 안전 관리와 사고 조사에 관한 전문 기관을 독립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없다. 항공 사고 조사 전문 기구의 독립과 함께 전문 인력이 항공 안전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항공안전청' 설립은 한시가 급하다. 여러 사고로 혼란스러운 지금이야말로 항공 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이해와 종사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현장을 잘 이해하고 전문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 독립 기관을 설립하기 좋은 때다. 또한 항공 안전을 위한 총체적인 점검과 과감한 제도 정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또 항공 안전 문화가 정착돼 '누가 했느냐?'는 추궁보다는 '무엇이 부족했나?' 하는 자성에 가까운 질문이 먼저 나오는 항공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이상한 나라, 이해할 수 없는 국민

이상한 나라, 이해할 수 없는 국민. 외국에서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평가하는 말이다. 남들은 수백 년 걸린 경제발전을 불과 30년 만에 해치운 나라, 그것도 가진 것이라곤 먹여 살릴 국민밖에 없는 나라, 전 국토가 잿더미로 변한 참혹한 전쟁을 겪어 아무 희망이 없던 나라. 그런 나라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과 첨단산업에 도전했고,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에 우뚝 섰다. 그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시민의 힘으로 군사독재를 무너뜨리더니 마침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일구어냈다. 이제 세계인은 대한민국을 알고 싶어하고, 이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 한다. 즉석 라면의 매운 맛에 반해 눈물을 쥐어짜며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을 먹는다. 한글을 공부하고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 유학을 온다. 입으론 BTS나 블랙핑크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으론 그들의 춤을 따라 둠칫거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발달과 유튜브 등 SNS의 보편화에 올라탄 우리의 문화예술가와 창작가들은 세계인을 대한민국의 문화영토에 초대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국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80년을 살아온 우리가 자해를 통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빠져 30여 차례 탄핵으로 윤석열 정부를 흔들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초년생 윤석열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윤석열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다혈질의 고집쟁이였다. 불과 0.73%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운명이었다. 더욱이 그 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국회에 지방권력까지 쥐고 있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첫 시험은 인수위 시절 맞은 지방선거였다. 대선 승리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 추문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인구 1,430만 명의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지사 선거에 국민의힘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국힘 후보 중 가장 중도와 청년세대 확장성이 큰 유 후보는 그대로 두면 국힘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용산이 개입해 인수위 대변인이었던 김은혜를 억지로 밀어 후보로 만들었고, 결국 민주당 김동연 후보에 패했다. 누구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유 후보에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으로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치명상을 입었다. 만일 유승민 후보를 선택했다면 수도권을 모두 국힘이 가져올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유 후보가 경기도지사가 됐다면 이재명 대표의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날 경기도의 모든 자료가 모두 쉽게 공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국힘 내부의 파워 게임에 어설픈 개입으로 용산은 점점 더 진흙탕 속에 빠져들었다.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이나 당 대표 경선에서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는 과정, 김기현 대표의 사퇴와 연이은 비대위 체제의 불안정성, 한동훈의 비대위원장 차출과 그와의 끝없는 갈등 등. 윤석열의 선택은 항상 갈등을 잉태했고, 결국 22대 총선은 민주당에 패배하기 전에 이미 내부가 스스로 무너진 결과였다. 국내정치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활용한 국제정치경제체제의 변화 시도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다. 세계 일류로 성장한 기업들의 노력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오직 단합된 힘이 필요하지만, 내부는 또 헌법재판소를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한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이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저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다. 쓰레기라면 일거에 쓸어버렸을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이 나라를 맡겨 둘 것인가. 우리가 무너진다면 세계인들은 또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토록 잘살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을까. 정말 이상한 나라고 이해할 수 없는 국민이라고. 홍성걸

[특별 기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을 이야기하자

최근 연이어 발생한 두 건의 항공기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조위는 항공과 철도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을 방지하며 안전 개선책을 마련하는 핵심 기관이다. 현재 사조위는 조직 구조상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운영돼 사고 조사 과정에서 이해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국민 신뢰 확보는 물론 대외적인 신인도 측면에서도 구조적 한계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공정하고 객관적 조사의 진행을 위해 시급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항공 산업의 급속한 양적 팽창과 더불어 다양한 항공 사고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문적인 조사와 대응을 위해 이제는 독립적인 사고 조사 기관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를 해외 선진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은 독립적 사고 조사 기관을 운영하고 있어 높은 신뢰도를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7년 설립된 미국의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연방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관으로, 업계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공정한 항공·철도·도로·해양 사고 조사 역할을 진행해 왔다. 이곳은 연방항공청(FAA) 등 정책 집행 기관과의 이해 충돌을 방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사고 원인 분석과 안전 권고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NTSB는 전 세계 항공 사고 조사 조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항공사고조사위원회(AAIB)는 교통부(DfT) 산하에 있지만 법적으로 독립된 권한을 보장받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속서 13에 따라 사고 조사의 목적이 책임 추궁이 아닌 안전 개선에 있음이 명확히 규정돼 있어 정부나 기업 등 외부의 개입을 불허한다. 또한 조사 보고서와 권고 사항은 AAIB 외의 어떤 기관도 수정할 수 없고, 사고 조사 방법과 범위를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 같은 독립성 보장 체계 덕분에 AAIB는 사고 조사 과정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항공사고조사국(BfU)과 호주의 교통안전국(ATSB) 역시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고 조사 기관으로 운영된다. 특히 ATSB는 조종사가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하는 구조를 채택해 사고 분석 과정에서 현장 경험을 지닌 전문가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위의 사례와 같이 사고 조사 기관이 정책 집행 기관과 분리되면 이해 관계에 따른 유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객관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만일 사조위가 국토부로부터 독립할 경우 사고 조사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또한 사고 원인 분석의 신뢰도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각종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국민 모두가 납득할만한 조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성을 갖춘 사조위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토부와 관련 기관에 좀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안전 개선 권고를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정책 집행 기관이 조사 결과를 수정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안전 대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조종사와 항공 전문가가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하면 실제 비행 중에 발생하는 문제와 조종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심층적이고 실질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더불어 조종사의 심리·생리적 상태를 고려한 선진적인 조사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사고 예방을 위한 더욱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ICAO와 국제철도연맹(UIC) 또한 독립적인 사고 조사 기구의 운영을 강력히 권고한다. 사조위의 독립은 우리나라가 국제 기준을 준수하는 국가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해외 사례를 참고할 때 독립 기관을 운영하는 국가일수록 사고 발생 후 개선 조치의 효과가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항공 사고 조사는 단순한 원인 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정이다. 사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더 미뤄져서는 안 된다. 정부와 항공 관계 당국이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즉각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해 국민이 신뢰하고 안심하는 선진화된 안전한 운항 환경이 구축될 날을 기대해 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신연수 칼럼] 대한국민, 폭싹 속았수다

기우였다. 헌법재판소가 5대 3으로 갈려 탄핵 선고를 하지 못한다는 우려, 4대 4로 기각되리라는 예상, 모두 빗나갔다. 재판관 8명의 성향은 각기 달랐지만,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해 파면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원일치였다. 돌아보면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재판관들이 진영으로 갈렸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헌재 폐지론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개인적 정치 성향보다 공적 책임과 법리를 우선했고,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행스런 일이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들이 많이 드러났다. 그 중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가 사법체계에 대한 조롱과 불신이었다. 대한민국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윤석열의 헌법 무시와 아전인수식 법 해석은 심각했다. 법치주의를 제일 중시해야 할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대놓고 법원과 판사를 공격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재판을 지연시키고, '정치 검찰'이란 비판 뒤에 숨어 여러 가지 범죄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은 국민들에게까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헌재의 이번 선고로 가장 첨예했던 불신이 해소됐다고 해서, 모든 걸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흔들었던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논란이 많은 헌재 재판관 임명 제도나, 문재인 정부 시절 졸속한 공수처 입법으로 대통령 수사와 기소에 혼란을 일으킨 사법체계도 세심하게 손봐야 할 것이다. 123일간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아픔 두 번째는 극단적인 사회 분열이다. 헌재 근처와 용산, 광화문 일대는 날마다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등을 지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엔 회복하기 어려워 보이던 극심한 갈등도 다행히 선고 이후엔 잦아들고 있다. 아직 일부 극단층이 현실을 부정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77% 라는 압도적 다수가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동안 불거진 분열과 갈등을 긍정적 참여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세 번째로 아픈 부분은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에 대한 깊은 회의다.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삼각대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발목을 잡는 지옥도를 우리는 3년 가까이 지켜봤다. 민주당과 국힘은 내가 잘해서 표를 얻기보다 상대방의 잘못에서 이득을 얻는 '적대적 공생'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관용과 자제, 타협이 없는 양당 대립이 줄탄핵과 줄거부권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이없는 파국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론 같은 가짜뉴스들이 언론자유의 틈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기생했다. 얻은 것도 있었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줄 알았던 젊은이들이 광장 전면으로 나왔다. 계엄령 시행에 소극적이었던 군인들, 그리고 촛불혁명을 '빛의 혁명'으로 이어받은 청년들은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한 MZ세대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청년들의 참여를 좋은 정치 문화로 이어갈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 유튜버나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단물만 빼먹는 가짜뉴스에는 책임을 묻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정책이 아니라 정당과 인물에 대한 호감도로 뽑는 미인대회 식 선거제도와 정치체제를 보완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고 뽑았다가 다시 파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아픔을 도약의 기회로 전환할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는 저서 에서 독재 국가와 무정부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있다고 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지만,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려면 강력한 시민사회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1987년 민주화를 이루고도 계속 고단한 길을 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한 회복력을 가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동안 동네 식당들은 텅텅 비고 직장인들은 불안감에 일손을 놓았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통과 갈등, 눈물과 환호를 거치며 우리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맬 힘을 얻었다. 최근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제주도 사투리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위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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