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금융권 해킹 막을 수 있나

2014년 카드사 3곳 해킹 사태 이후 오랜만에 사이버보안 사고가 금융권 '태풍의 눈'으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카드의 대고객사과, 금융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을 위한 커뮤니티 개설, 금융당국의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소집, 야당의 간담회 개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책임소재 규명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수의 카드사가 사이버보안 관련 전담 임원을 두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는 등 현장의 안이한 대응 프로세스가 명분을 제공한 탓이다. 이와 관련해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과기정통부와의 합동 브리핑에서 “보안 역량 강화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준비해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과서적인 발언이지만 사고가 터지고 난 다음이라는 점이 아쉬움을 낳고 있다. 10년 가까이 큰 사고가 없었던 까닭에 보안 관련 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하더라도 해커들의 역량, 해킹 목적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은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활용으로 사이버 공격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이 단축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작부터 솔루션 마련에 나섰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는 망 분리 규제 도입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금융사 내부 전산망과 외부의 인터넷을 분리하는 것으로, 대규모 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적용됐다. 당시에도 외부 충격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행보를 재촉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망 분리 도입 당시부터 '언젠가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부자 유출 리스크 뿐 아니라 외부망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악성코드 유입 및 정보 유출의 위험이 포함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제로트러스트'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다. 이는 사용자 신원과 실시간 위험 평가를 고려해 모든 접근 요청을 대상으로 검증하는 보안 모델로, 내·외부 위협에 대한 방어력이 높다. 운영 비용이 낮고 망 분리의 단점으로 꼽히는 신기술 활용성도 끌어올릴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사가 관련 인력·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조가 수립되는 것을 중장기적인 대책으로 볼 수 있냐는 의문이 든다. 스포츠계에서는 '구닥다리' 전술의 단점을 비싼 선수로 떼우려는 감독을 무능하다고 평가한다. 우리 금융당국도 이같은 우를 범하는 대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이버보안 관련 규제를 전면적으로 점검·재편하는 행보로 국민들의 신뢰도 확보하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노란봉투법은 난색, 4.5일제는 환영…은행권의 ‘고객편의’ 진심은

은행권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5개월 여 앞둔 가운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곧바로 직원 채용과 서비스 제공의 대대적인 변화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비정규직 고용 지형부터 손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고객 서비스 위축이 예상된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 중 하나다. 법적 방어 조치로 인한 은행권의 변화가 결국 고객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고객 서비스 최전선인 콜센터부터 대출 상환 업무를 제외하는 등 이전보다 간단한 업무만 진행할 수 있도록 손 본 상태다. 대부분이 외주 인력으로 구성돼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작동이 어려운 고령층 고객은 축소된 지점을 직접 방문해야하는 불편을 겪게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은행권은 노조가 강해지면 파업이 많아지고, 이에 따른 고객 불편이 확대될 것이란 주장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의 한쪽 편에선 서비스 축소 가능성에 더 크게 직결되는 '주 4.5일제'를 두고 도입 촉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직원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4.5일제 도입을 통한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4.5일제를 반대하는 쪽에선 은행권이 제도 시행 후 소비자 피해가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주4.5일제가 제도화되면 상시적·구조적으로 고객의 서비스 이용 시간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철저하게 은행 입장에서 노동권 강화가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은 반대하고, 근로환경 개선은 내부 이익에 직결되기에 4.5일제는 찬성하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어느쪽이든 소비자는 이 과정에서 힘없이 순응하는 존재일 뿐이다. 둘 다 서비스 축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지만 두 사안에 모두 '고객'이 등장하면서 은행권이 이해관계에 따라 고객편의를 앞세우기도 하고 뒤로 미루기도 하는 편의적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 은행권이 명분에 따라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면 '고객 우려'라는 방패는 원칙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는 편의적 명분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은행권은 성장동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로 인해 정책비용 등 “정부에 더 내놓을 돈이 없다"며 울상이다. 그러나 근로 시간 단축은 성장동력 약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기에 이 역시 명분이 상충된다. 이득에 따라 내세우는 무기에 진정성이 없다면 합리적인 주장일지라도 공감을 사기 어렵다. 연일 '소비자 편의 보호'를 외치기보다 일관적인 태도와 이유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이유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페라리·에쿠스 몰면서 탄소중립 외치는 국회의원들

“2030년까지 국회 차량을 전부 무공해차로 바꾸겠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탄소중립 선언식'에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탄소중립을 다짐했다. 국회가 매년 배출하는 2만2871t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몰고 다니는 건 2016년식 올뉴카니발 디젤(배기량 2199cc)이다. 1km 주행 때 177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연간 1만3000km를 주행할 경우 연간 2.3t을 내뿜는다. 국회의원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경제가 국회 공직자윤리시스템(PET)에 공개된 22대 국회의원의 본인 명의 자동차 등록 내역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기차·수소차를 보유한 의원은 단 8명(2.7%)에 불과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갖춘 의원도 21명(7.0%)에 그쳤다. 반면 배기량 3000cc 이상 대형 승용차·SUV를 몰고 있는 의원은 61명(20.3%)으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개별 사례를 보면 극명하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과 배우자 공동 명의로 3900cc 페라리를 보유했다. 여기에 벤츠 SL400(3000cc)까지 배우자 명의로 등록돼 있어 단연 '최고 배기량 의원'으로 꼽혔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013년식 제네시스(3342cc)와 카니발(2199cc)을 처분하고 2021년식 제네시스(3778cc)를 새로 들였다. 배우자 명의 그랜저(2999cc)까지 합치면, 탄소중립보다는 '배기량 업그레이드'에 가까운 선택이다. 김윤덕 의원(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박형수·배준영·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3778cc급 제네시스·에쿠스·EQ900 등을 몰고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도 에쿠스(3778cc)에 더해 2019년식 카니발 리무진(2199cc), 2020년식 GV80(3470cc)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다. 물론 친환경차를 모는 이들도 있긴 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본인 차량이 없고, 배우자 명의의 소나타 하이브리드를 처분해 2024년식 전기차 아이오닉5로 교체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환경부 장관)은 2019년 니로EV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아이오닉5를 몰고 있다. 이학영·김용만 민주당 의원은 수소차 넥쏘를, 문대림 민주당 의원은 2022년식 GV70 전기차를 보유했다. 선언식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아이들과 손을 맞잡은 퍼포먼스와 의원회관 주차장에 즐비한 '검은색 대형 세단'은 이율배반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사상 최고치 코스피…외국인·기관이 끌고 개인은 빠졌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3400선을 넘어섰다. 지수는 4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인미답'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번 랠리의 힘은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개인은 오름세 속에서 매도에 나섰다. 9월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6331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기관도 9230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반대로 개인은 같은 기간 8조3650억원을 순매도했다. 사상 최고치 랠리가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에 의해 끌어올려졌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다. 투심을 자극한 정책 변수도 있었다. 지난 8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현행 50억원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나흘 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석 민생안정대책 당정협의에서 대주주 기준 50억원 유지를 공식화했다. 세제 불확실성이 걷히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고, 8일부터 6거래일 동안 코스피는 6.31% 올랐다. 업계는 이번 상승을 한국 증시 밸류에이션 회복으로 해석한다. MSCI 기준 코스피의 PBR은 지난해 말 0.87배에서 최근 1.2배로 뛰었다. 10년 평균(1.04배)을 웃돌았지만, 미국(3.9배), 선진국(2.8배), 신흥시장(1.7배)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추가 상승 여력도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외국인 의존형 상승'은 언제든 변동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상반기 상장사 영업이익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대외 불확실성과 정책 부담까지 고려하면, 이번 랠리가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코스피가 외국인 매수세에 좌우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주주 양도세 완화 같은 정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외국인 자금이 먼저 반응하고, 개인은 뒤따라 움직이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한국 증시가 스스로의 펀더멘털이 아니라 외부 자금 유입에 따라 등락하는 '외국인 의존형 시장'이라는 현실은 제도와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다. 진정한 체질 개선 없이는 이번 3400 고지도 또 한 번의 '외국인 장세'로만 기록될 수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AI시대, 활용 능력이 경쟁력이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쏟아지는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비슷하다. 'AI로 업무 혁신', 'AI로 고객 만족도 제고' 등이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들은 사례들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지난달 열린 LG유플러스 기자간담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AI는 1조 개에 달하는 고객 데이터를 단 6시간 만에 분석했다. 숙련된 전문가가 7만 시간, 무려 8년 이상 걸릴 일을 하루도 안 걸려 끝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최근 열린 삼성SDS의 '리얼 서밋 2025'에서는 더 직접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AI 통역·회의록 자동생성 등 기능이 소개되자 곧 사라질 직업군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수년간 언어 능력을 갈고닦은 동시통역사가 이제는 10개국 이상의 언어를 한 번에 소화하는 AI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인과 이 얘기를 나눴을 때 돌아온 대답은 “기우(杞憂)"였다. 결국 AI를 만든 것도 인간이니, 인간 스스로 자리를 위협할 만큼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AI는 이미 사람의 영역을 넘보고 있었다. 전문가들 역시 “AI는 거품이 아니라 지속 발전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AI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 여기까지 올까'를 묻는 게 더 현실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AI를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경쟁의 룰을 바꿀 무기가 됐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AI를 자신의 일에 맞게 접목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삼성SDS 행사에서 강연자로 나선 프로바둑 기사 출신의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의 말은 이런 흐름을 잘 대변해 준다. 그는 “AI 시대의 경쟁력은 활용 능력에서 갈린다"고 강조했다. 바둑계도 AI 프로그램 보급으로 평준화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AI를 이해하고 잘 다룬 이들이 더 큰 성과를 거뒀다는 설명이었다. AI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건 'AI가 인간을 대체할까'가 아니라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가'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일자리 위협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재생에너지 1~2년만에 늘리려면 결국, 민간보다는 공공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언의 타당성 논란과는 별개로,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무제한으로 풀겠다고 말한 건 아니다. 결국,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억제하면서도, 단기간에 확대하려면 공공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는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이후 한국전력 산하 발전공기업의 통폐합과 재생에너지 전담 기구 신설이 검토될 전망이다. 전담 기구가 입지 개발·계통 확보·인허가 단축·주민 수용성 제고를 전담하고, 통합된 발전공기업이 설비를 빠르게 설치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올해 풍력 고정가격계약에서는 공공 해상풍력 4건(총 0.7GW)이 모두 낙찰됐다. 반면 민간 해상풍력은 전부 탈락했다. 태양광 고정가격계약은 모집물량 1GW 중 4.6%만 낙찰되며 대부분 미달했다. 이 공백은 공공이 메울 가능성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예상보다 높게 책정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민간사업자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엄격하게 비칠 수 있다. 환경부는 환경규제 못지않게 기획재정부 눈치를 보며 물가 안정에도 신경을 써 왔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기후위기 대응만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체감상 산업통상자원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지난 2021년 700만원에서 올해 300만원까지 줄여왔다. 공공 전기차 충전요금은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항변해도 동결 기조를 유지 중이다. 물 요금은 투자보수비용도 못 건지는 수준인데 9년째 동결이다. 생활폐기물 처리는 소각장이 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음에도, 처리비용이 저렴한 시멘트 소성로 의존을 염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환경부가 재생에너지를 맡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와 비교해 민간사업자에게 높은 전력가격을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전력가격 억제 기조를 유지한 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면, 사업성에 덜 민감한 공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국산 설비를 더 써야 한다는 명분,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수익을 지역주민에게 공유하는 '햇빛·바람 연금' 구상까지 고려하면, 말을 잘 안 듣는 민간보다 공공이 더 맞는 그릇일 수 있다. 다만, 공공 역할 확대는 공기업 비대화와 한전·발전공기업의 재무 부담 심화라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공공과 비슷한 조건에서 수익구조를 재설계하든지, 정부에 시장 논리 존중과 민간 참여 위축 완화를 요구하든지로 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전세 옥죄기, 방향은 맞지만 보완해야

9·7 대책 이후 청년층과 신혼부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젊은 무주택자 입장에선 6·27 대출 규제로 집을 사는 길(주택담보대출)이 좁아진 데다 9·7 대책으로 세입자로 버틸 길(전세대출 3억→2억원 축소)도 줄어들었다.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웃도는 현실에서 자산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선택지는 빠르게 줄고 있다. 전세사기·역전세, 전세대출을 활용한 갭투자(전세 낀 매매)가 시장을 왜곡해온 것은 분명하다. 전세 제도를 손보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일요일 발표 후 월요일 즉시 시행된 규제는 실수요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시장에서는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여기에 9·7 대책이 전세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전세 공급이 한층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강남을 비롯한 서울 주요 지역에서는 보증금 1억~2억 원에 월세 100~200만 원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에게는 매달 이 정도의 고정 비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번의 목돈으로 '숨 고르기'를 가능하게 했던 전세의 징검다리가 더 빠르게 좁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앞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예고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 중인 임대주택 모델은 미국식 장기 모기지를 접목한 공공분양으로, 목돈이 없어도 30~40년 모기지처럼 집을 장기 할부로 마련할 수 있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국제적으로 드물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월세 또는 장기 모기지를 통해 주거를 확보한다. 한국은 전세가 장기간 유지되며 부동산, 특히 '똘똘한 집 한채' 중심의 노후 대비가 굳어졌고, 전세보증금이 집주인의 추가 매입·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한계 때문에 전세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 모기지 기반의 임대·금융 시스템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결국 전세 축소에서 장기 모기지 기반의 임대·금융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이번 대책이 그 첫 단추라면 시장 충격을 완화할 연착륙 장치와 세밀한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비(非)아파트 전세 매물 확대와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 등으로 빠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나온다. 전세의 부작용을 고치되 젊은 세대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을 함께 지켜야 한다. 단기 충격을 흡수할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 모기지형 공공분양이라는 큰 그림도 설득력을 잃는다. 정책의 방향은 맞다. 이제 필요한 건 정교한 보완책과 시장을 부드럽게 안착시킬 장치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대통령의 실용주의, ‘여의도 머슴’도 배워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난 100일을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규정했다. 또 앞으로의 남은 임기를 '도약과 성장의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11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은 대통령의 '실용주의'였다.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 활성화를 우선해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확대를 굳이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현실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야당과도 얼마든지 '협치'할 수 있다고 했다. 현실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비판도 마다않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우려되는 대목도 없진 않았다. 중소·벤처업계를 포함한 경영계가 반발하는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서는 “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라 악덕기업의 지배주주를 압박해 기업 경영 풍토를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고, 재정 관료들도 우려했다는 나랏빚에 대해서는 “칡뿌리 캐먹고 맹물 마시면서 어떻게 일하나, 지금은 씨를 뿌릴 때"라고 설명했다. 최근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의 악수 하루만에 “내란정당 해산"이라며 날을 세웠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100일은)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시간이었다"며 뻔뻔한 말을 했다. 민생경제 회복을 넘어 도약과 성장을 위한 협치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것이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했다. '머슴'들에게 일을 시켜놨으니, 누가 일을 잘하는지 두 눈 뜨고 잘 보라는 거다. 좌우로 편을 가르면 머슴들이 일은 안하고 편만 짤 거라고도 했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귀담아들을 얘기다. 일단 정부가 돈을 뿌렸으니 소비심리는 살아났고, 기업 체감경기도 반등했다. 남은 건 가을의 수확이다. 갈길은 멀다. 나랏빚은 많고 한국인 구금 같은 돌발변수도 있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지금부터라도, 도약과 성장을 위해 여의도가 좀 더 유연해지기를 바란다.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옆 나라 대통령 가랑이 사이라도 가겠다지 않나.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억대 연봉에 주 4.5일제…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10여년 전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 인근에서 겪은 일이다. 오전조 근무가 끝날 무렵 유독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단순히 “일하는 직원이 많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구조적 이유가 있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곳 근로자들은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모두 문앞에 모인다. 마치 달리기 경주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1~2시간 전에 일을 끝내고 휴대폰만 보고 있는 이도 많다. 수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이어오며 시간당 차량 생산 대수를 줄여온 탓이다. '묻지마 파업'으로 임금을 무제한 올릴 수는 없으니 근무 강도를 느슨하게 바꿨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현대차 베이징 3공장을 방문했다. 현대속도(现代速度)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중국 내 현대차 영향력이 상당하던 시절이다. 임금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데 차량 생산 속도는 2배 넘게 빨랐다. 이 곳 직원들은 주문이 몰리면 일이 늘어난다며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1시간이던 점심시간은 스스로 40분으로 줄이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자동차 시장 구도는 많이 달라졌다. 현대차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내 입지는 거의 사라졌다. 선진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전기차 등 일부 분야에서 중국차가 한국차를 넘어섰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한국 제조업 현장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 현대차 노조는 올해 정년 연장, 주 4.5일제, 성과급 수천만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잠정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억대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모습에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노조의 탐욕'이 아니다. 이런 요구가 지속 가능하냐에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대기업 중심, 고비용 체제, 강성 노조, 다단계 하청이라는 4박자를 기반으로 굴러가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근로조건을 바꾸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전가된다. 생산량 조절, 비용 상승, 일정 차질 등은 중소 협력업체에게는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여기서 정치권은 대개 '표'를, 노조는 '이익'을, 사측은 '타협'을 택한다. 그 누구도 전체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노조 역시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지금 한국 제조업이 '고비용·저생산' 구조에 머무른다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지금은 더 많이 가져가려는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모두가 살아남을지 고민할 때다. 파업과 투쟁 이전에 우리가 어느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공정한 책임 분담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땀 위에 세워진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계·전문가 우려 불식시키길

정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식 확정했다. 탄소중립 이행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단행된 이번 조직개편은 환경 중심의 에너지 거버넌스 재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와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깊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에너지 정책의 주무가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 중심의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전, 한수원, 발전 5사 등 주요 에너지 공공기관의 주무 부처도 바뀌게 된다.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구조 전환, 송전망 확충 등 과제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맡게 된다. 그러나 산업·에너지의 축이 환경 부처로 이동함으로써 생기는 정책 불일치, 실행력 저하, 규제 강화 우려는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은 환경 규제와는 다른 차원의 전문성과 추진력이 필요한데, 환경부 내에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지 의문"이라며 “에너지는 경제·산업 부문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들의 공통된 구조"라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은 에너지부(DOE), 독일은 경제기후보호부(BMWK), 일본은 경제산업성(METI) 등 모두 독립된 또는 산업과 통합된 부처가 에너지를 관할하고 있다. 원전 정책도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이번 개편으로 원전 운영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원전 수출은 산업부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바라카 원전 수주 사례에서 보듯, 운영과 수출은 불가분의 관계다. 외국 정부와의 신뢰 기반 협상에 있어 “운영은 저쪽에서, 수출은 이쪽에서"라는 체계는 국제 사회에서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발전공기업 통폐합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환경부가 주도하는 탄소중립 정책 하에서 기존 석탄발전 중심의 구조는 대대적인 재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발전 5개 공기업을 2개 권역형 공기업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지방 경제, 일자리, 노조 반발 등 사회적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 문제도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ESS 구축, 송배전망 확충 등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의 형평성 논란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체계 없는 에너지 전환은 오히려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진정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로 기능하려면 산업계와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정책 방향은 명분에서 시작되지만, 정책의 성공은 실행력과 균형감에서 판가름난다. 조직 개편의 '이름값'이 아닌, 실질적 성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