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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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RE100, 문제를 삼으니 문제가 된다

기업들이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정부는 관련 대책을 내놓으며 기업 달래기에 나섰지만 충분치 않은 모습이다. 기업들이 RE100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오는 2026년 본격 시행 예정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때문이다. CBAM의 주요 내용은 탄소를 배출하면서 만든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배출한 만큼 세금을 내라는 거다. RE100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장부상 기록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전기를 생산하면 바로 거대한 전력망이라는 바다에 흩뿌려진다. 우리는 화석연료, 원자력, 재생에너지 전기가 뒤섞인 전력망으로부터 전기를 받을 뿐이다. RE100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전기값을 지불하면 RE100으로 인정해주는 원리다. 당장은 기업이 정부나 가정보다 재생에너지 전기가 급하다. 한 가족이 쓸 수 있는 마스크가 한 개뿐이라면 가장 몸이 안 좋거나 밖에 자주 나가야 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게 낫다. RE100도 그렇게 갈 수 없을까. 장부상 기록일 뿐인데 재생에너지 전기가 시급한 기업들에게 국내 재생에너지 전기를 몰아준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까 싶다. 국내 재생에너지 전기 대부분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에 따라 대규모 화력발전, 원자력을 운영하는 발전기업에 묶여 있다. 이러니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가 부족하다고 더 아우성친다. 사실 발전기업들에 묶인 전기를 기업들에게 풀어주는 제도로 녹색프리미엄이 있다. 녹색프리미엄은 기업들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할 때 웃돈을 주면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줬다고 인정해주는 제도다. 문제는 녹색프리미엄이 CBAM을 피할 수 있는 RE100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녹색프리미엄 낙찰가격은 1킬로와트시(kWh)당 10원 정도다. 발전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는 데 1kWh당 싸도 30원, 많게는 70원으로 잡는데 이와 비교하면 턱없이 저렴하다. 그러니 녹색프리미엄은 탄소감축 실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RPS 제도를 좀 더 상세히 봐보자. 발전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를 확보하는 비용은 국민들이 전기요금(기후환경요금)으로 대신 내준다. 기후환경요금에 매년 수조원이 부과되고 4인 가구당 대략 매달 2000~3000원은 내야 한다. 녹색프리미엄 제도를 좀 손봐서 기업들이 국민의 전기요금을 일부 대신 내주고 진짜 재생에너지 전기를 가져갈 수 없을까. 이는 법이나 시스템 한계보다는 발전기업 할당 분량 외에, 추가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원하는 쪽에서 문제 삼을까봐 건들이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U는 CBAM을 EU 이익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활용한다. EU가 시키는 대로 순진하게 RE100을 따라가면 결국 국익에는 손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밸류업, 꾸준함이 곧 성공이다

올해 하반기 국내 증시가 반등세를 보이면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수년 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없었던 상장사들도 '밸류업 정책'에 발을 맞추는 분위기다. 실제 올해 자사주를 취득, 소각한 상장사가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1조8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2조2000억원으로 25.1% 증가했다. 자사주 소각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2조4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7조원으로 190.5% 늘어났다. 이달 들어서도 주주환원책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재 보유한 자사주 10% 중 교환사채 발행에 따른 의무 예탁분 4%(345만주)를 제외한 6%(525만주, 약 1조9000억원)를 2026년까지 전량 소각한다. 또 추가로 1000억원 수준의 자사주를 신규 매입해 즉시 소각하기로 이사회에서 의결한 바 있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꾸준히 진행하지 않던 상장사들도 속속 매입 소식을 전하는 중이다. 더네이쳐홀딩스는 최근 약 20억원 규모의 자사주 16만2469주를 매입한다고 공시했다. 더네이쳐홀딩스는 하반기 주주환원 정책 계획에서 올해 12월까지 총 4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두 차례에 걸쳐 분할 취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광밴드도 16일 2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보통주 172만8608주를 장내 직접 취득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취득, 소각 소식은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밖에 없다. 기존에는 지배력 확보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정부 정책으로 주주환원 목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2400선에 머물던 코스피 지수는 2800선까지 상승한 상태다. 올해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등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 충분하단 평가다. 국내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장기간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꾸준한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나와야한다. 정부와 기업도 중장기적 측면에서 목표를 세우고 있는 만큼 흔들림 없는 일관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윤하늘 기자 yhn7704@ekn.kr

[기자의 눈] 中이커머스 주춤? 안심하긴 이르다

“마케팅만 해도 이 정도인데 제대로 투자하면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어요." 국내 유통시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알리)·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을 두고 국내 이커머스 관계자가 내뱉은 우려 섞인 평가이다. 싼 가격을 무기로 급성장한 중국 이커머스가 최근 불거진 유해물질·저품질 문제 여파로 잠시 주춤해졌단 말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한 중국 이커머스가 본격적인 투자로 배송 경쟁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한국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착잡한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업계 한켠에서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 이커머스에서 국내 이커머스로 돌아서고 있다는 분석은 대표주자격인 알리·테무의 월간활성이용자 수(MAU)가 잇단 악재로 감소하고, 1인당 구매 객단가가 낮아진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와이즈앱)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올해 2분기(4∼6월) 기준 1인당 결제추정액을 분석한 결과, 알리와 테무는 각각 3만 4547원, 7110원으로 집계돼 △G마켓·옥션 16만 7202원 △티몬 16만 3754원 △쿠팡 14만 1867원 △SSG닷컴·이마트몰·신세계몰 13만 1393원 등 국내 이커머스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그렇다고 중국 이커머스가 한풀 꺾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알리·테무에 이어 패션잡화 전문 이커머스인 쉬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가세하면서 중국 이커머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알리가 일찌감치 한국 중소기업 우수제품 전문관 'K에비뉴'로 고객 유입을 늘리는 동시에 그동안 고객서비스에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이달에 첫 고객간담회를 열어 제품 및 서비스 관련 민원을 수렴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개선 노력은 저품질·유해물질 논란 등 악재를 상쇄하고 앞으로 중국 이커머스가 한국시장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순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국내 이커머스들도 중국 이커머스의 공세를 정부의 보호막(규제)을 이용하려는 수동적 대응 자세를 버리고, 가격과 품질·고객만족 등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시장(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쿠팡, 아마존을 답습하나

“소비자는 저품질의 검색으로 비싼 물건을 사게 되고, 입점업체는 계속해서 광고료를 지불한다. 결국 '아마존(AMAZON)'만 이긴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라인플랫폼 공정화 및 독점방지' 토론회에서 염승열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법률센터 부소장(변호사)은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커머스기업 아마존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의 고소장 내용을 소개했다. 염 변호사는 “쿠팡에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며 “쿠팡은 아마존의 사례를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둘러싼 플랫폼 업계와 입점업체, 소비자 간 입장차는 선명하다. 특히 법안의 이해당사자인 플랫폼업계는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고 신사업 진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오히려 기존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또한, 국내 기업에 역차별, 글로벌 통상 마찰 우려 역시 이들이 규제에 반대하는 이유다. 업계 안팎에서는 입법 공백기간 동안 플랫폼 기업의 힘은 더 막강해졌다고 주장한다. 규제 입법이 논의되는 사이 쿠팡이 멤버십 비용을 58%, 배달의민족이 배달 수수료를 44% 인상한 것에 '괘씸죄'를 물어야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플랫폼업계 의견도 함께 듣기 위해 쿠팡을 비롯해 네이버·카카오 등 이커머스기업에 참석을 요청했으나, 해당기업들은 “부담스럽다"며 참석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회 주최측과 참석자들은 “가장 궁금한 게 해당기업의 의견인데 참석하지 않아 유감"이라며 “(참석하지 않고) 업계 의견을 수렴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국회에선 벌써부터 여러 건의 플랫폼 규제 법안이 발의됐고, 지난해 말 경쟁촉진법을 내놓은 뒤 재검토에 들어갔던 공정거래위원회도 플랫폼 규제를 위한 정부안 마련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회 말미에 밝힌 김태룡 전 한국행정학회 회장의 언급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건 가진 자들이 베풀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의 이면 속에 숨은 '공정'이란 개념을 생각해야할 때입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트럼프에 요동치는 증시

이번주 금융시장의 초미의 관심사는 미국 대선판이 될 전망이다. 지난 주말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피격 사건 때문이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현장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은 지지층의 결집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번 피격 사건은 미국 대선 판도를 흔들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특히 미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들어 보이는 트럼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은 현 시점 가장 '핫'한 사진이 됐다. 이 사진을 두고 “역사에 잊히지 않을 이미지"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것은 물론 벌써 해당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까지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피격 사건이 미국 대선 판도를 흔들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자 증시도 요동치고 있다.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를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초반 지지율도 1%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쇼맨십으로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피격 사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가상자산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4일 비트코인은 열흘 만에 6만달러 고지를 재탈환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상화폐 산업에 우호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로의 자금 유입도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국내 증시에서는 개장 직후 트럼프 수혜주로 불리는 방산주가 일제히 급등했고 반대로 신재생에너지주는 투심이 약화되면서 하락세를 그렸다. 대선까지 아직 3개월이 남은 만큼 또 다른 이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혜주는 또 바뀌고 주가는 또 움직일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증시 불확실성에 우리 증시는 한동안 계속 요동칠 수밖에 없다. 미 대선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 영향으로 또 우리 증시는 어디로 향해 갈지 궁금해진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일반직 노조의 자가당착과 당랑거철

뇌피셜(腦+official) [명사]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공식적인 사실인 양 주장 또는 추측하는 행위. 지난 11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하 APU)과 일반직으로 이뤄진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공동 기자 회견을 관통하는 단어다. 두 노조는 지금껏 그래왔듯 거친 어조로 “합병 결사 반대"를 외치며 한국산업은행·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성토했지만 '뇌피셜'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역력해보였다. 이들이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는 홀로 화물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유리한 역량을 갖춰야 하며, 합병 회사와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짤막한 한 줄 뿐이다. 과연 이들이 원하는대로 될까. 사실상 자살 골이나 다름 없고 오히려 무효타에 해당할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도 EC에 합병 반대 서한을 발송할 수 있었을 텐데, 왜 9부 능선을 넘은 현 시점에 보냈느냐"고 최도성 APU 위원장에게 질의했다. 최 위원장은 “EC가 (독과점 문제를 들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기업 결합)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고, 고용 문제를 중요시 하는 집행 기관이라는 믿음이 있어 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또 “(에어인천으로의) 화물본부 매각에 반대해 조종사들의 집단 사직서를 받고 있다"며 “우리와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EC에 직접 찾아가 당국자와의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 면직 형식으로 회사를 떠나겠다는데 상식적으로 전세계 그 어디에도 이를 만류할 행정 기관이 있을리 만무하다. 또 이것을 이유로 EC가 성사 단계에 가까워진 인수·합병(M&A)을 무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독과점 논란 해소 차원에서 티웨이항공에 기재와 운항·객실 승무원을 '웻 리스(wet lease)' 형식으로 전폭 지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이 에어인천에 대한 방책을 찾아서 EC의 요구 사항을 해결한다면 사직서를 제출한 APU 조합원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게 명약관화하며, 당랑거철(螳螂拒轍) 국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권수정 노조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지면 대한항공에 의한 시장 독과점이 심화될 것"이라면서도 “항공권 가격은 고정값이 아니어서 경쟁 체제 안에서 만들어진다"며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로 인천국제공항은 '제5자유 운수권'이 적용돼 대한항공이 함부로 가격 조정을 하려 들면 80여개 외항사들이 귀신 같이 좌석 공급에 나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유일한 국적 풀 서비스 캐리어(FSC)로 남을 경우 경쟁 상대가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올해 안으로 들여오기로 한 A350 여객기 2대를 대한항공에 사전 이관하기로 했다며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사장)를 배임(背任)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도 납득할 수 없다. 설령 영업이익을 벌어다주는 수단을 넘긴 게 사실이라 해도 현 시점에선 정리 해고의 불안감이 사라지도록 M&A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 APU의 집단 사직으로 EC가 조건부 M&A 승인을 뒤엎는다 치자. 그러면 7900여명의 아시아나항공 구성원 모두의 생계가 흔들리고 회사는 더욱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야말로 사실상 배임 행위일진대 후사를 책임 질 수 있나? 약 4년을 끌어온 대한항공과의 M&A가 APU와 노조 소원처럼 무산된다면 모든 절차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연결 재무제표상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총 12조7739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4.65% 늘었고, 부채 비율은 2006.94%로 항공기 리스료·유류 헷징을 감안해도 고도 비만이다. 그럼에도 권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은 지금까지 살아 남았고, 최대 매출·영업이익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며 “수년 간 임금도 2.5%만 올리고 잘 버텨왔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회계사를 대동해 계산해보니 실제 부채 비율이 500%대로 나타났다"고 첨언했다. 어느 나라식 기적의 셈법인가. 아직까지도 회생이 가능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 객관화가 안 됐나.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하드 캐리 덕에 숨통이 겨우 붙어있어 언제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이다. 영업이익으로 빚 갚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독자 생존을 외치며 제3의 인수자를 찾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다. 같은 직급이어도 일반직 기준 대한항공 대비 아시아나항공 근로자의 연봉은 1000만원 가량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U와 노조 모두 M&A에 훼방 놓을 생각을 접고 지속 가능하며 윤택한 생활을 이어갈 방법을 고민할 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왜 우리가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1983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발표했던 선언문 제목이다. '도쿄 선언'으로 잘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주름잡고 있는 시장이었다. 한국은 반도체 불모지였다. “TV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30여년이 지났다. 삼성이 '반도체 성공스토리'를 썼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초창기 경영진과 연구원들이 고군분투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64K D램'을 개발한 스토리. 아무도 관련 기술을 공유해주지 않아 눈대중으로 공부해야 했다는 푸념. 공정 간 거리를 보폭으로 재며 밤마다 모여 정보를 공유한 얘기까지. 삼성전자는 선배들의 눈물과 땀방울을 토대로 삼아 전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작년 기준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한 금액이 147조1710억원 수준이라고 집계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들고 있는 소액주주도 500만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다소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새 먹거리로 점찍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선두 업체인 대만 TSMC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업계 판도가 워낙 빠르게 변하다보니 아주 작은 실책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결국 이례적으로 반도체 수장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무기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성과급도 수천만원씩 가져가지만 돈을 더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전삼노 집행부는 상식을 벗어난 행보만 계속하고 있다. “공장을 세우겠다"는 해사행위는 애교 수준이다. 삼성이 반도체를 못 만들게 하겠다고 외신과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연예인을 초청해 '호화 집회'까지 열었다. 삼성전자가 극소수 몰염치한 직원들 탓에 몸살을 앓는 사이 TSMC, 인텔 등은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TSMC는 'AI 특수'를 누리며 한때 시가총액이 1조달러 선을 넘어섰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삼성전자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가 없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나에게도 득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일하는 곳이다. 전삼노가 지난해 8월 확보한 대표교섭노조 지위는 다음달 종료된다. 삼성전자 노사 관계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22대 국회, 에너지3법 조속 통과 기대

22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선임이 한 달여 만에 마무리됐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불발된 고준위특별법·해상풍력법·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주요 에너지 법안들은 하나같이 시급 민생법안이다. 가장 시급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안은 22대 국회에서는 이인선,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이 다시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 처분시설과 중간 저장시설 건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장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 고리 등 다수 원전에서 10년 내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가 포화 수준에 이를 전망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가 발표한 원전 계속운전도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도 국민의힘 에너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성원 의원이 다시 대표발의했다. 수년 전부터 이미 완공된 석탄화력, 태양광, 풍력발전기들이 송전망 부족으로 인한 계통 접속 불발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신규 원전의 적기 계통 접속과 확대되는 재생에너지 발전력 수용 등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믹스 이행을 위해서도 전력망의 대폭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상풍력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에 나섰다. 21대 국회에서 법 제정이 무산되면서 풍력발전 업계는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풍력업계에 따르면 송전망 부족으로 인한 발전사업 인허가 불허가 이어지면서 이미 해외 풍력발전 기업들에게 한국 시장의 매력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내년 초까지 사업 진행이 계속 불발될 경우 관련 인력들이 자리를 더 이상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법안들은 21대 국회 막바지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 여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와 법안 발의 의원들에게 법안 통과를 설득해 통과가 확실 시 됐었다. 대통령실은 물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법안 통과 의지도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결국 불발됐다. 이 법안들은 모두 정쟁의 요소가 아님에도 여야는 특검법 등에 대한 이견으로 이 법안 통과를 외면했다. 여야 모두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다. 부디 22대 국회에서는 민생과 미래세대를 위한 신속한 결단을 기대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인터넷은행의 금리 혼란

인터넷전문은행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열린 인터넷은행 도입 성과 평가 및 시사점 세미나에서 제4인터넷은행 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과 달리 기존 인터넷은행들이 금융당국의 표적이 됐다. 기존 은행과 다르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행태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후 인터넷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시중은행 금리보다 높아졌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과 케이뱅크의 주담대 고정(혼합)형 상품 금리는 최저 연 3%대 중반대인 반면,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는 최저 연 2%대로 떨어졌다. 인터넷은행은 그동안 낮은 금리를 내세우며 고객들을 끌어왔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줄인 비용으로 금융상품 금리 경쟁력을 높여 고객 혜택으로 돌려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인터넷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시중은행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면서 대환대출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 1월 주담대 대환대출 인프라가 시작되자 카카오뱅크과 케이뱅크로 이동하는 대출 수요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당시에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이 대환대출 확대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은행이 주담대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금융당국 평가에 인터넷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어 보인다. 당국은 인터넷은행이 설립 취지에 따라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인터넷은행 3사는 올해 목표 비중인 30%를 모두 달성한 상태다. 중저신용자 대출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담보대출을 확대해 은행의 포트폴리오를 안정화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무턱대고 중저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줄인다면 은행은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반 금융소비자들이 인터넷은행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금리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인터넷은행이 낮은 금리를 제공하자 시중은행들도 금리를 낮춰 금리 경쟁이 벌어졌고, 금융소비자들이 금리 효용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환대출을 강조하던 당국과 주택담보대출 확대를 비판하는 당국 사이에서 인터넷은행은 당국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당국 정책이 은행권에 혼란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가계부채 관리, 금융당국-은행만으로 어림도 없다

우리 경제의 대표적인 리스크 요인인 가계부채 문제로 은행권이 연일 어수선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은행채) 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전문은행마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담대 금리를 미세 조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한 영향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권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사업자, 가계대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자산건전성 관리 강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주담대 등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칫 지금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은행권의 무리한 영업 기조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발언이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작년 11월 은행들이 대출상품 한도를 줄이거나 아예 일부 상품에 대한 대출 취급을 중단하는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 은행권 입장에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당장 대출을 원하는 금융소비자에 등을 돌리고, 대출 문을 걸어잠그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NH농협은행이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신규 주담대 취급을 전면 중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주문, 은행들의 금리 인상, 취급 기준 강화 등의 연결고리가 벌써 수년째 반복됐다는 방증이다. 이는 금리가 하락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주담대를 통해 주택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더 큰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감에 기인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대책도 '내 집 마련의 꿈'과 무관치 않다. 당장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울만한 주거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양육한단 말인가. 2년 혹은 4년 마다 주거지를 옮기지 않고, 넓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남부럽지 않게 아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나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빚을 내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은 매섭고 참담하다. 결국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가계부채 문제가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는 것은 가계부채만 잡으려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금리와 역행하는 현 주담대 금리 기조는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특정 부처, 특정 기업이 아닌 모든 부처가 중지를 모으고 누증된 가계부채 문제의 구조적 해결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지금 가계부채 문제에 절실한 건 정부의 현명한 판단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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