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업체 베뉴지가 본사업을 종료하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 유통업계 경쟁 심화 속에서 백화점을 버리고 웨딩홀 및 골프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들에 대한 별다른 사업 확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더해 미래 사양 산업으로 분류돼 베뉴지의 성장성에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는다. 작년 하반기에는 주식 투자에 따른 손실에도 수백억원어치 주식을 추가 매입해 주주들의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베뉴지는 지난 17일 263억원 규모 백화점 상품유통 사업에 대한 영업을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정지 사유는 매출 감소 및 영업손실 지속, 정지 시점은 오는 2월 28일이다. 현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 김만진 회장은 1971년 그랜드백화점을 창업, 1986년 강남점을 여는 등 유통업체로서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백화점 외에도 마트, 패션 아울렛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유통업계 경쟁이 심해져 점포가 하나씩 폐업하기 시작하자 골프장, 웨딩홀, 호텔 등 사업 분야를 다각화했다. 2016년에는 사명을 베뉴지로 바꾸기도 했다. 본래 주력이었던 유통사업은 이제 그랜드백화점 일산주엽점 단 한 곳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익성 악화에 일산주엽점마저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베뉴지의 매출은 △2021년 509억원 △2022년 589억원 △2023년 650억원으로 꾸준히 상승세였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2021년 29억원 △2022년 113억원 △2023년 92억원으로 수익성이 안정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작년 3분기에는 누적 매출 498억원, 영업이익 107억원을 기록한 상태다. 특히 백화점 부문 매출액의 경우 작년 3분기 180억원을 기록, 전년 매출(263억원)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매출 비중도 40%에서 36%로 위축됐다. 백화점은 전체 매출 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고물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영업손실이 계속됐다. 재작년에는 온라인몰 사이트를 오픈했으나 매출 기여는 미미했다. 결국 유통업으로 시작했던 베뉴지는 경쟁력 상실로 유통을 버리고 골프 등 레저 중심 업체로 거듭나게 됐다. 이로써 당장 매출에는 큰 공백이 생겼지만 수익성은 개선되리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향후 베뉴지의 주력 사업이 될 웨딩홀은 △2022년 115억원 △2023년 176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작년 3분기에도 162억원을 거둬 2년 연속 성장세가 유력하다. 단 업계 일각에서는 베뉴지의 전망에 여전히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베뉴지가 영위하고 있는 주력 사업의 미래 성장성이 좋다고 말하기 어려워서다. 웨딩홀 사업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밀렸던 수요가 모이며 매출이 급증했지만, 저출산으로 결혼 적령 인구는 나날이 감소하는 데다 결혼에 대한 수요도 예전만 못하다. 골프 사업 부문은 아예 성장이 정체됐다. 2022년에는 연간 매출 199억원을 거뒀으나 2023 163억원, 2024년 3분기 116억원에 그쳤다. 베뉴지는 종속회사 부국관광을 통해 골프장 베뉴지 CC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외 추가적인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써튼호텔을 인수하며 시작한 호텔 사업은 매출 내 비중이 8%에 그친다. 사업 확장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베뉴지가 최근 사업보다는 주식 투자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베뉴지의 보유 주식을 포함한 공정가치금융자산은 2023년말 566억원에서 작년 3분기 1110억원으로 급증한 상태다. 총 유동자산이 1486억원 중 75%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내 증시 불안으로 투자 성과마저 미미하다. 작년 3분기 당기에만 219억원의 공정가치금융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했는데, 이 영향으로 베뉴지는 작년 3분기 2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도 123억원의 순손실이 났다. 1분기, 2분기도 각각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베뉴지가 투자했다고 알려진 종목 중 삼성전자만 3분기 25% 주가가 빠진 영향이다. 이 외에 베뉴지가 보유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포스코인터내셔널 등도 이차전지 업종 부진 영향으로 주가가 대부분 하락했다. 이들은 4분기에도 주가 하락이 계속돼 베뉴지가 입은 손실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 손실로 현금 유동성이 부족하게 되자, 베뉴지는 작년 7월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21만주를 담보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충당하기도 했다. 베뉴지가 유통사업을 종료하며 122명분의 인건비 절약, 장부가 1078억원에달하는 토지·건물 등 여유 자산을 갖게 됐지만 이 역시 사업 투자보다는 주식 투자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창업자 일가의 이같은 경영에 이미 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작년 정기주주총회 당시에도 소액 주주들은 김만진 회장 및 2세 김창희 이사 등의 해임, 배당 증액, 자사주 소각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모두 부결된 바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슈퍼 개미' 배현진 노블리제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베뉴지 지분을 10%까지 확보하며 경영권 분쟁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김만진 대표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50%를 넘어 지분 차이가 상당하다. 당장 창업자 일가가 경영 방침을 혁신하지 않는 이상 베뉴지의 위태로운 경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베뉴지 측 한 임원은 “아직 사업계획 수립 전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 딘 백화점 일산주엽점의 부동산은 매각보다는 리뉴얼해서 다른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식은 기존에 보유하던 부동산을 매각한 대신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우창 기자 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