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과 영풍·MBK 파트너스 간의 경영권 분쟁이 해를 넘겨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가 참여한 합작 법인(JV)을 주주명부에 올리며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의 쐐기를 박자, 영풍 측은 유상증자 발행 가액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여기에 고려아연은 희소금속 회수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신청하며 '기술 안보'를 명분으로 한 방어막 구축에 나섰다. 1일 고려아연은 미국 '크루서블 JV(Crucible JV)'를 대상으로 실시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대금 납입이 완료됐고 예탁원 전자 등록까지 최종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 등이 참여한 합작 법인이 고려아연의 주주 명부에 정식으로 등재되는 절차를 밟게 됐다.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선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고려아연 측은 “신주 발행 효력은 대금 납입 다음 날인 2025년 12월 27일 자로 이미 발생했다"며 “상법 제423조 제1항에 따라 신주 인수인은 납입 기일 다음 날부터 주주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못 박았다. 특히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등기 불발설'이나 '신주 발행 효력 논란'에 대해 고려아연은 “허위 사실 유포이자 의도적인 시장 교란 행위이며, 엄중한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번 자금은 국내에서 환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달러(USD) 그대로 송금돼 미국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라며 “미국 정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무산시키려는 조직적 배후가 의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달 29일 영풍과 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이번 유증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크다고 주장하며 공세를 폈다. 영풍 측 논리의 핵심은 '환율 변동'이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결의한 12월 15일 직전 영업일(12일)의 환율은 1469.50원이었으나, 실제 납입일인 26일 환율은 1460.60원으로 급락했다는 것이다. 영풍 측은 “이로 인해 실제 납입된 원화 환산 금액이 이사회 결의 금액보다 약 173억 원 부족하게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더 큰 쟁점은 '할인율'이다. 자본시장법상 제3자 배정 유증의 발행 가액은 기준 주가에서 최대 10%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 영풍 측 계산에 따르면 법적 하한선은 1286,808원이지만, 납입일 환율을 적용한 실제 납입 금액은 약 1282,319원에 불과해 법정 하한선을 밑돈다는 것이다. 영풍 관계자는 “이사회가 환율 변동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외화 납입을 고집해 발생한 문제"라며 “이는 원천 무효 사유에 해당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으로, 정정 공시 등을 통해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미 지난해 12월 24일과 29일에 걸쳐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유증은 이사회에서 '미국 달러화'를 기준으로 발행가액과 총액을 확정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려아연 지속가능경영본부 관계자는 “관련 법규에 따른 기준 주가와 이사회에서 정한 발행가액 사이에서 적법하게 할인율이 산정됐다"며 “이사회 이후 통제할 수 없는 환율 변동에 따라 사후적으로 위법 여부를 따지는 것은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납입된 달러는 환전 없이 미국 투자금으로 바로 쓰이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 영향이 전혀 없다"며 “이미 외국환 신고까지 완료된 사안을 두고 딴지를 거는 것은 미국 제련소 건설과 한미 경제 안보 협력을 훼손하려는 의도"라고 맞받아쳤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고려아연의 또 다른 카드는 '기술 안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29일 산업통상부에 '아연·연·동 통합 공정을 활용한 희소금속 농축·회수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이번에 신청한 기술은 제련 과정의 부산물에서 비스무트·인듐·안티모니·텔루륨 등 첨단·방위산업 핵심 소재를 회수하는 기술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전 세계 인듐 생산 1위(연간 92톤)이자, 미국 인듐 수입의 30%를 책임지는 핵심 공급망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올해 희소 금속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신청에 '안티모니 제조 기술'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안티모니 기술의 국가 핵심 기술 지정을 추진했으나, 분쟁 당사자인 영풍 측의 반대 의견 제출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과 MBK가 기술 보호에는 찬물을 끼얹으면서 정작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술 유출'을 운운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호주 썬메탈(SMC)에 이어 미국 크루서블 메탈스(Crucible Metals, LLC) 역시 고려아연의 독자 기술과 통제하에 운영된다"며 기술 유출 우려를 일축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이번 국가 핵심 기술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해외 매각이나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적대적 M&A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를 주주로 끌어들이고 국가 핵심 기술의 방벽을 높인 최윤범 회장의 승부수가 영풍·MBK 연합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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