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사 HMM이 운용하는 화물선이 원인 미상의 폭발로 화염에 휩싸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미국이 해협 봉쇄 해제를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에 돌입한 직후 발생해 의도적 피격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국제 정세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관실 덮친 거대한 폭발음…긴박했던 4시간의 사투 5일 외교·해운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40분경(한국 시간) 아랍 에미리트 연합(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파나마 선적의 HMM 중소형 벌크 화물선 '나무(NAMU)'호에서 원인 모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배 하단부에서 시작된 불길 탓에 초기 진압에 어려움이 컸으나, 선원들이 신속하게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며 4시간여에 걸친 사투를 벌인 끝에 자정을 넘긴 무렵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관련, HMM 관계자는 “선미 좌현 기관실 쪽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배에 물이 새어 침수되거나 가라앉을 위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피해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6명을 포함해 총 24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전원 무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美 '해방 프로젝트' 개시 당일 터진 폭발…조심스러운 HMM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이번 폭발이 단순 선체 결함인지, 외부 세력에 의한 의도적 타격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고 당일 오전, 미국은 두 달째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상선들을 구출하겠다며 '해방 프로젝트(프로젝트 프리덤)' 개시를 선언했고, 이에 이란은 “미국의 어떠한 개입도 휴전 위반"이라며 맹렬히 반발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사태의 복잡성을 더했다. 해방 작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계산된 도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당사자인 HMM 측은 피격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해당 선박은 외부 강판에 일부 손상을 입은 채 인근 두바이항으로 예인될 예정이다. HMM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피격 여부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지만, 당사자인 선사 입장에서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확실한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섣불리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공식적인 멘트나 추측성 발언을 자제했다. 이어 “현재 해협 안쪽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에 맞는 예인선을 수배 중"이라며 “두바이항까지 배를 끌고 가는 데는 한두 시간이 아닌 며칠이 소요될 예정이며, 항만에 도착한 이후에야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 묶인 160명 韓선원…정부·HMM 초비상 사태 돌입 닫힌 바닷길 속에서 불의의 사고까지 터지면서 억류된 우리 국민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두 달여간 이어진 해협 봉쇄로 인해 현재 해협 내측에 발이 묶인 한국 관련 선박은 26척에 달하며, 외국 선박 승선 인원까지 합치면 도합 160명의 한국인 선원이 고립된 상태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황종우 장관 주재로 긴급점검회의를 연달아 개최하고, 폭발 사고 인근 수역인 UAE 앞바다에서 대기 중이던 HMM 소속 선박 5척 등 우리 선박들에게 걸프 해역 안쪽인 카타르 방향으로 긴급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HMM 역시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부산에 위치한 HMM 오션 서비스의 선박 종합 상황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는 철통 보안 속에서 인공 위성과 폐쇄 회로(CC)TV를 통해 사고 선박의 상황과 해협 내 다른 선박들의 동선을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일말의 긴장 완화 기류가 흐르던 호르무즈 해협은 이번 폭발 사고를 기점으로 다시 짙은 전운에 휩싸였다. 좁은 해협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치열한 셈법과 무력 충돌의 위기감은 사고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당분간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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