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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위 제재 ‘불복 확산’…KT도 소송 가능성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과징금 및 시정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기업이 17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1심 선고가 내려진 사건에서는 모두 개인정보위가 승소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모두 항소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SK텔레콤과 카카오, 메타, 구글은 물론 금융사와 제조업체까지 개인정보위 처분에 불복해 법적 대응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말 539억7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KT 역시 의결서 검토를 거쳐 행정소송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 개인정보위 제재에 기업들 줄소송 3일 개인정보위에 따르면, 현재 개인정보위 처분과 관련해 진행 중인 행정소송은 총 17건이다. 2023년 메타와 구글이 맞춤형 광고 관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후 삼성전자와 카카오, 카카오페이, 현대해상, 악사손해보험, 우리카드, 비와이엔블랙야크, SK텔레콤, 듀오정보 등이 잇따라 법원 판단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메타 관련 2건과 구글, 삼성전자, 카카오, 카카오페이 사건 등 6건은 1심 선고가 이뤄졌다. 모두 개인정보위가 승소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전부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11건은 1심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는 SK텔레콤이다. 개인정보위는 지난해 발생한 유심(USIM) 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가입자 2324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SK텔레콤에 1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SK텔레콤은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구글과 메타는 이용자 동의 없이 다른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에서 발생한 이용자 활동정보를 맞춤형 광고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각각 692억원과 3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카카오는 오픈채팅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151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받았고, 카카오페이는 약 4000만명의 개인정보를 중국 알리페이에 제공한 사안으로 59억68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 밖에도 우리카드(134억5100만원), 현대해상(61억9800만원), 악사손해보험(27억1500만원), 삼성전자(9억원), 비와이엔블랙야크(14억원), 듀오정보(12억원) 등이 개인정보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 “행정소송은 통상 절차"…업계 한목소리 소송 대리는 국내 주요 로펌들이 맡고 있다. 김앤장은 메타와 구글, 삼성전자, 카카오, SK텔레콤 등을 대리하고 있으며, 광장은 카카오페이와 악사손해보험을 맡았다. 태평양은 메타와 우리카드, 세종은 현대해상과 비와이엔블랙야크, 화우는 듀오정보 사건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행정소송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개인정보위 처분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위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가 과징금이나 행정처분을 내릴 경우 기업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절차"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과징금이나 제재 수위를 조금이라도 낮출 가능성이 있다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행정처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주주나 내부적으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며 “행정소송은 처분의 적법성과 과징금 수준 등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일반적인 절차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정보위 역시 행정소송이 잇따르는 것을 처분의 적법성과 직접 연결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통상적으로 행정소송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소송이 많이 제기된다고 해서 처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쿠팡 이어 KT도…행정소송 더 늘어나나 기업마다 소송의 쟁점은 조금씩 다르다. 구글과 메타 사건에서는 다른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에서 발생한 이용자 활동정보를 맞춤형 광고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누가 개인정보 처리 주체인지와 이용자 동의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카카오 사건에서는 오픈채팅 서비스에서 사용되는 내부 회원 식별정보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카카오페이 사건은 중국 알리페이로의 개인정보 제공이 업무위탁인지, 개인정보 이전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적 판단이 진행되고 있다. 행정소송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개인정보위는 지난 6월 쿠팡에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후 최대 규모인 6246억8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은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 의결서가 송달되지 않아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KT도 개인정보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개인정보위는 지난 7월 29일 펨토셀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KT에 539억7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다만 KT는 아직 의결서를 받지 않은 상태다. KT 관계자는 “의결서를 수령하는 대로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관련 입장을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KT 건은 사안이 다소 복잡한 편이어서 의결서 작성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통상 의결서 송달까지는 1~2개월 정도 소요되지만 사안에 따라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제재를 받은 사업자는 의결서를 송달받은 뒤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쿠팡과 KT의 향후 대응 여부에 따라 개인정보위 처분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침체된 가전 대신 ‘이 시장’ 키운 LG…성과가 달랐다

LG전자가 B2B 상업용 세탁가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흥 성장시장인 동남아시아에서는 현지 빨래방 프랜차이즈와 유통 채널을 잇달아 확보하며 저변을 넓히고, 동시에 진입 장벽이 높은 유럽·북미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대용량 신제품과 대형 유통사 공급을 늘리고 있다. 성격이 다른 두 시장에서 동시에 영토를 넓히는 전략이 맞물리며 글로벌 B2B 매출 확대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 동남아, 빨래방 프랜차이즈부터 유통 채널까지 LG전자는 최근 태국 2위 빨래방 프랜차이즈 기업 '트렌디 워시'가 운영하는 630개 매장에 상업용 세탁기와 건조기 공급을 완료했다. 올해 새로 문을 여는 400여 개 매장에도 추가 공급이 예정돼 있다. 트렌디 워시는 제품 내구성·에너지 효율과 함께 여러 매장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높이 평가해 LG전자를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에서는 'ELS', '빅 워시', '익스프레스 클린' 등 주요 유통 채널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현지 기반을 넓히고 있고,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현지 파트너사 'WW베트남'과 손잡고 스마트 세탁 매장 '비 런드리'를 열었다. 이 매장은 일반 고객 대상 세탁 서비스와 동시에, 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파트너·투자자가 LG전자 제품과 관리 솔루션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레퍼런스 매장 역할을 겸한다. 고온다습한 기후와 빠른 도시화, 1인 가구·임대주택 거주자 증가로 동남아시아의 상업용 세탁가전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LG전자의 지난해 동남아시아 상업용 세탁가전 매출은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태국이 2배 이상, 필리핀이 1.5배 이상 늘었다. 회사는 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사업 지역을 계속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유럽·북미, 기술력과 대형 파트너십으로 승부 동남아가 저변 확대라면, 유럽·북미는 기술 경쟁력을 앞세운 고부가 시장 공략이다. LG전자는 이달 대용량 제품 수요에 맞춰 유럽 시장에 20kg 이상 상업용 세탁가전 라인업 'LG 프로페셔널' 6종을 출시했다. 세탁기·건조기·일체형 세탁건조기로 구성된 이 라인업은 AI가 세탁물 무게를 분석해 물 사용량과 건조 조건을 자동 최적화하고, 저온 제습 방식의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옷감 손상도 줄였다. 별도 배기 덕트나 벽면 타공이 필요 없어 임대형 상업 공간에도 유연하게 설치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상업용 세탁가전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는 대형 사업자와의 협력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급을 시작한 북미 1위 세탁 솔루션 기업 'CSC 서비스웍스'에는 올해 공급 물량을 대폭 늘렸고, 2024년부터 거래해온 북미 2위 기업 '워시'와의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두 시장을 관통하는 경쟁력은 부품 기술과 관리 솔루션이다. 세계 최초로 세탁기에 상용화한 '인버터 DD 모터'는 세탁통과 모터를 직접 연결해 진동과 소음을 줄이면서 내구성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높인다. 여기에 매장 운영 플랫폼 '런드리크루'를 통해 여러 대의 세탁기·건조기 운전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하고, 오류 알림과 스마트 진단으로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점이 신흥국·선진국 시장 모두에서 통하는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LG전자 임기용 HS B2B해외영업담당은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검증된 관리 솔루션을 앞세워 글로벌 상업용 세탁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단독] 실탄 뚫린 공항, ‘통제’ 버리고 ‘AI·데이터’ 입는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빈발하는 공항 내 보안 검색 실패와 현장 인력 이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항공보안 패러다임의 전면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당국은 인력 통제와 규제 중심의 과거 방식에서 탈피해 데이터·인공 지능(AI) 기반의 첨단 보안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 청사진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이번 계획 수립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항공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개방형 시스템(OA)'과 '위험도 기반 검색(RBS)'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3일 본지 취재 결과, 국토부 항공정책실 항공보안정책과는 1억2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제4차 항공보안 기본계획(2027~2031) 수립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과업 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90일이다. 지난 1~3차 기본계획의 성과와 구조적 한계를 분석하고 다가올 5년의 보안 환경 변화에 대비한 새로운 정책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 6년 간 보안 사고 75건 발생… “인적·기술적 구조 한계 도달" 국토부가 4차 마스터 플랜 수립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현행 보안 시스템의 취약성이 강하게 작용했다. 통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8년 6건에 불과했던 국내 주요 공항의 보안 사고는 2023년 8월 기준 8개월 만에 29건으로 급증하며 최근 6년간 총 75건의 사고가 누적됐다. 실탄·도검류 등 치명적인 위해 물품 보안 검색 실패가 전체의 50.7%를 차지했고 적발 사실이 즉각 보고되지 않고 은폐된 정황까지 발생했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인적·기술적 모순이 얽힌 구조적 문제로 진단한다. 실태 분석에 따르면 인천공항 등 주요 공항의 보안 검색 요원 채용 후 1년 내 퇴사율은 60%에 이른다. 만성적인 인원 부족과 고된 교대 근무가 현장 요원들의 피로도를 높여 시각적 인지 오류(휴먼 에러)를 유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승객 편의를 위해 도입된 최신 3D 정밀 검색 장비(CT X-ray) 운영 과정에서 가방 끈 등이 내부에 걸리는 물리적 오작동이 빈발하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환경에서 3D 영상을 짧은 시간 내에 판독해야 하는 인지적 과부하 문제도 사고 증가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 특정 장비 독점 깬다… AI 활용 '개방형 아키텍처(OA)' 체계 구축 이러한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국토부는 신기술 도입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국토부는 '오픈 아키텍처를 활용한 데이터 상호 운용 방안'과 '각기 다른 제조사 장비의 검색 이미지를 하나의 통합 센터로 보내 검색하는 기술(CIP)'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공항에 설치된 검색 장비들은 특정 제조사가 하드웨어(스캐너)와 소프트웨어(판독 알고리즘)를 일괄 독점하는 폐쇄형 구조다. 학계와 업계는 이번 기회에 국제 범용 이미지 포맷(DICOS)을 활용한 개방형 아키텍처(OA)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 전면 교체 없이도 국내외 혁신 스타트업의 최신 AI 딥러닝 탐지 알고리즘을 시스템에 유연하게 탑재(Plug & Play)해 신종 위협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끄럽고 혼잡한 검색대 앞이 아닌 별도의 중앙 통제실에서 영상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중앙 집중식 이미지 판독(CIP)' 체계가 마련되면 요원의 인지 오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유럽민간항공위원회(ECAC)의 단일 성능 평가(CEP)를 분석해 국내 장비의 글로벌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 획일적 전수 검사 탈피…미국식 '위험도 기반 보안' 참고 필요성 여객 검색 방식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국토부는 미국 교통보안청(TSA)·유럽 등 국가별 정책을 분석해 '보안·편의 상생형 정책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보안 체계는 모든 승객을 동일하게 전수 검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TSA는 사전에 신원 조회를 통과한 저위험 여객에게 '프리체크(PreCheck)' 자격을 부여해 신발 탈의나 짐 분리를 면제해주고 최근에는 안면 인식 기반의 '터치리스 신원 확인(Touchless ID)' 제도를 운용 중이다. 학계에서는 한국 역시 철저한 사전 신원 확인과 생체 인식을 바탕으로 저위험군에게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하고 남는 보안 인력과 고성능 장비를 사전 정보가 없는 고위험군에 집중시키는 '위험도 기반 보안(RBS, Risk-based Security)' 체계로의 전환을 제언하고 있다. ◇ UAM 보안 설계와 '공정 문화' 현장 안착 과제 다가오는 도심 항공 교통(UAM) 상용화에 맞춘 신개념 보안 설계도 주요 과업이다. 국토부는 UAM 발전을 고려해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접근성이 핵심인 버티포트(이착륙장) 특성상 멈춰서 검사받는 대형 장비 대신 게이트를 통과하며 탐지하는 △워크스루(Walk-through) 센서 △디지털 ID 인증 △기체 해킹 방지용 사이버 보안 가이드라인 등이 새로운 법령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징벌적 규제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자율 신고제를 전제로 하는 '공정 문화(Just Culture)'의 현장 정착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보안 사고 발생 시 실무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형사 고발하는 징벌적 조치가 사고 은폐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최근 개정된 항공보안법에는 사고 발생 10일 이내에 자발적으로 신고할 경우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행정처분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번 4차 계획에서는 이 제도를 현장에 안착시켜 수집된 '아차 사고(Near-miss)'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스템 결함을 개선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조현상의 HS효성 ①] 스틸코드 지키고 음극재 키운다…‘투트랙 소재 전략’

2024년 효성그룹에서 분리된 HS효성이 독립경영 2년을 맞았다. 조현상 부회장은 세계 1위 타이어코드와 스틸코드 등 기존 자동차 소재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실리콘 음극재와 탄소섬유, 인공지능(AI)·데이터 인프라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계열분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적인 사업 모델을 어떻게 구축하느냐다. HS효성이 선택한 기존 사업과 신사업의 조합,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생산체계 재편, 소재를 넘어 AI로 확장하는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HS효성이 기존 자동차 소재 사업을 유지하면서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영역을 넓히는 '투트랙' 사업 재편에 나섰다. 지난해까지 매각을 추진했던 스틸코드 사업은 계속 보유하기로 했다. 동시에 벨기에 소재기업 유미코아와 손잡고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진출했다. 기존 사업을 매각해 신사업 재원을 마련하는 대신, 스틸코드와 타이어코드에서 창출되는 현금을 토대로 신규 투자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한 것이다. 2024년 효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HS효성은 조현상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조 부회장이 올해 지주회사 HS효성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핵심 계열사인 HS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도 소재 사업에 대한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 매각 대신 보유 택한 스틸코드 HS효성첨단소재는 지난 4월 스틸코드 사업 매각 절차를 중단했다. 회사는 지난해 7월 베인캐피탈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사업부 매각을 협의해 왔다. 스틸코드는 타이어가 차량 하중과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내부를 보강하는 철선 소재다. HS효성첨단소재는 국내외 생산기지를 통해 스틸코드를 제조해 글로벌 타이어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매각 추진 당시에는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투자재원 확보가 주된 배경으로 거론됐다. HS효성첨단소재가 타이어코드와 탄소섬유, 아라미드 등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소재 사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스틸코드의 사업적 가치가 다시 부각됐다. 스틸코드와 섬유 타이어코드는 고객사가 상당 부분 겹치고, 생산과 영업망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글로벌 타이어 업체들이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사업 매각이 장기적인 고객 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고려됐다. HS효성첨단소재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고객사의 공급망 안정 요구,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향후 수익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매각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추가 매각 계획 없이 스틸코드 사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스틸코드를 남긴 결정은 신사업 투자 방식에도 변화를 준다. 사업 매각을 통한 일회성 자금 유입은 사라졌지만, 기존 자동차 소재 사업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은 계속 확보할 수 있게 됐다. HS효성첨단소재의 2025년 연결기준 매출은 3조2830억원, 영업이익은 1574억원이었다. 전년보다 매출은 0.9%, 영업이익은 28.4%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8290억원과 영업이익 344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각각 2.9%, 29.9% 줄었다. 다만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보다 13.7%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주력인 타이어코드의 판매가격 조정과 물량 회복, 원재료 가격 반영이 본격화하면 수익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유미코아 기술에 HS효성 사업화 역량 결합 HS효성이 새 성장축으로 선택한 분야는 실리콘 음극재다. HS효성첨단소재는 유미코아의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인수한 뒤 합작회사 HS효성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다. HS효성첨단소재가 지분 80%, 유미코아가 20%를 보유하는 구조다. 국내 생산법인인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도 세워 울산 생산기지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HS효성첨단소재가 부담하는 초기 투자 약정액은 1억2000만유로, 약 2000억원이다. 지난 7월에는 합작사에 2000만유로를 추가 출자하기로 했고, 국내 법인도 생산시설 구축을 위해 3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향후 생산능력 확대 등을 포함한 중장기 투자 규모는 약 1조5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다만 착공과 양산 시점, 단계별 투자 규모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시장 성장 속도와 고객사 확보 상황에 맞춰 투자를 나눠 집행할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음극재보다 이론적으로 많은 리튬을 저장할 수 있다.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충전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와 급속 충전 성능을 개선할 소재로 꼽힌다. 반면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팽창하고 수명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대량생산과 품질 안정화가 쉽지 않다. 기술 확보만으로 시장 진입이 끝나는 사업도 아니다.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체의 장기간 성능 검증과 고객 인증을 통과해야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HS효성은 유미코아가 축적한 실리콘·탄소 복합체 기술에 HS효성첨단소재의 생산관리 경험과 글로벌 고객 네트워크를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자동차용 소재를 장기간 공급하며 확보한 품질관리 역량도 배터리 소재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타이어 소재·탄소섬유가 신사업의 투자 기반 신사업의 성패는 기존 사업에서 어느 정도의 현금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HS효성첨단소재의 핵심 기반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 형태를 유지하고 내구성을 높이는 섬유 보강재다. 글로벌 타이어 제조사와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탄소섬유도 수익성 회복이 기대되는 분야다. 최근에는 고압용기와 산업용 제품뿐 아니라 풍력발전 블레이드, 드론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HS효성첨단소재는 베트남 생산설비 증설을 통해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다. 회사는 베트남 생산법인 HS효성베트남의 잔여 지분 28.57%도 약 2643억원에 취득해 완전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핵심 해외 생산기지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향후 배당과 현금흐름을 온전히 확보하려는 조치다. 사업 구조는 스틸코드와 타이어코드가 단기적인 현금창출을 담당하고, 탄소섬유와 실리콘 음극재가 중장기 성장을 맡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방산·항공우주와 친환경 에너지 소재까지 응용처를 확대한다는 게 HS효성의 구상이다. 관건은 투자 속도와 재무구조 사이의 균형이다. 스틸코드 매각대금 없이 실리콘 음극재 생산기지를 구축해야 하는 만큼 기존 사업의 수익성 회복과 단계별 투자 집행이 중요하다. 배터리 소재 업황과 고객사 인증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제 증설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투자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HS효성의 선택은 기존 사업과 신사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과는 다르다. 자동차 소재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이곳에서 발생하는 현금을 배터리 소재에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구조다. 이 전략의 성과를 판단할 지표도 비교적 분명하다. 스틸코드와 타이어코드가 안정적인 수익성을 회복하는지, 탄소섬유 증설 물량이 매출로 연결되는지, 실리콘 음극재가 고객 인증과 양산 단계에 진입하는지가 핵심이다. 계열분리 2년을 맞은 조현상 회장의 HS효성은 '기존 사업 매각과 신사업 인수'에서 '기존 사업 유지와 신사업 육성'으로 포트폴리오 재편 방식을 바꿨다. 스틸코드에서 음극재까지 이어지는 투트랙 전략이 HS효성의 새로운 소재 성장 공식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1년째 표류 중인 게임문화산업 진흥법…하반기엔 속도 내나

게임진흥에 초점을 맞춘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이 1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20년이 넘은 게임 규제의 틀을 진흥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지만, 세부 내용에서 거버넌스 개편을 둘러싼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해 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제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올 하반기 입법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문화'·'진흥'에 초점 맞춘 게임법 개정안, 향방은?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가 오는 6일 서울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 전문가 포럼을 개최한다. 황성기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학계와 법조계, 업계, 이용자 단체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개정안의 핵심 내용들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2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규제 중심'의 게임법 틀을 '진흥과 자율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진흥원 설립 후 그 아래에 게임물관리위원회를 두고, 디지털게임의 등급분류를 민간 자율등급분류사업자에게 위탁하는 등 규제 완화와 산업 진흥을 동시에 추진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의 명칭도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 아닌 게임문화 및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로 변경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난해 9월 발의된 해당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국회 차원의 공식 심사 일정이 멈춰 있는 상태다. 그간 게임법 개정안이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로는 '한국게임진흥원' 신설을 두고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관련업계는 진흥원이 등급분류와 같은 내용 규제까지 맡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개정안에 반대해 왔으나, 지난 1월 이를 철회했다. 최근 22대 국회의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 되면서, 표류하던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 회장은 “최근 게임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데 업계 내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다"며 “국회도 하반기 원 구성을 계기로 전부개정안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실질적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게임물 관리의 거버넌스 개편, 우려점은? 게임진흥원 설립이 쟁점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능적 우려다. 게임위는 그간 '바다이야기'류의 사행성 게임 규제, 불법 P2E(Play to Earn) 게임 단속의 역할을 맡아왔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진흥원 아래 게임위를 두면 게임위의 불법 게임 단속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진흥과 규제를 한 기관에 두면 정책의 균형이 흔들린다는 지적이다. 또 게임위가 사실상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게임위 내부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게임산업을 옥죄왔던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이 게임 등급을 직접 분류하는 몇 안 되는 나라"라며 “특정 게임의 등급 분류 거부를 둘러싸고 게임위의 사전검열 권한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인 만큼 이번 개정안이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재홍 학회장은 “20년 가까이 이어진 '사전 검열형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흥 중심으로 정책 축을 옮기는 방향 자체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고 본다"며 “다만 디지털게임과 아케이드·사행성 게임의 위험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규제 완화가 사행성 관리의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직 개편 과정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기존 인력의 전문성이 사장되지 않도록 하는 이행 계획을 법 통과 이전 단계에서부터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시승기] 오래된 이름, 가장 젊은 감각…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

명차는 늙지 않는다. 특유의 안정감과 정숙함, 단단한 차체가 주는 믿음까지, 여전하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전면과 간결하게 다듬어진 면들이 화려함보다는 여유를 택했다. 넉넉한 실내 공간감과 안정적인 비율 역시 오랜 헤리티지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중후함을 과시하지 않으니 의외로 담백하다. 여기에 하이브리드의 산뜻한 주행감이 깔리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이 운전의 피곤함을 덜어준다. 차세대 AI 인포테인먼트가 주는 편리함은 덤이다. 40년을 달려온 국민 대형 세단이 '가장 젊은' 감각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진화해 나타났다. 지난 1일,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함께 서울에서 파주까지 왕복 95km를 달렸다. 차에 가까이 다가서자 얇은 일자형 램프가 먼저 켜졌다. 이어 빛이 좌우로 번져나가며 양쪽 헤드램프가 차례로 밝아졌다. 마치 환영인사를 건네는 듯 하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어떤 소음과 진동도 없이 부드럽게 움직일 준비를 마친다. 출발은 순수 전기차를 떠올리게 할 만큼 조용하고 매끄럽다. 손에 쥔 D컷 스티어링 휠도 안정감 있게 착 감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는데 송풍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대시보드는 한층 단정해보인다. 기대 이상의 첫인상이다. 이날 서울은 해가 쨍쨍했다. 넓은 선루프로 밝은 하늘이 보고 싶어 머리 위 콘솔을 터치하니 불투명했던 유리가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더 뉴 그랜저의 스마트 비전 선루프에는 기계식 블라인드가 아닌, 고분자 분산형 액정 필름이 적용됐다. 자연광이 실내를 가득 채우자 선루프를 활짝 연 것처럼 차 안이 환해졌다. 중앙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외부 온도는 33도. 유리를 직접 만져보니 폭염에도 뜨겁다기보다 미지근한 정도였다. 현대차는 뉴 그랜저 스마트 비전 루프의 열 차단 성능을 기존보다 30% 향상시켰다. 주행을 시작하니 전면의 슬림 디스플레이는 생각보다 작다는 인상을 준다. 처음에는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다. 다만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주행 정보를 대부분 대신 보여주면서 금세 적응하게 된다. 현재 속도와 내비게이션 안내, 차선 유지 보조 등 필수 정보는 HUD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계기판이 시야를 크게 차지 하지 않으니 전면 개방감이 살아나고, 수평으로 길게 뻗은 대시보드가 돋보인다. 올림픽대로에 오르기 전까지 도심을 달렸다. 막히는 구간이 많아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수시로 오갔지만, 울컥거리는 감속감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다만 가속페달은 다소 묵직하다. 밟는 즉시 튀어나가기보다는 힘을 차분히 쌓아 올리며 속도를 높인다. 원하는 만큼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생각보다 발끝에 힘을 더 줘야한다. 운전자에 따라 둔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점은 플래그십 세단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진가는 자유로에서 드러났다. 시속 80km 안팎에서 추월을 위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 회전수가 급하게 치솟으며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모터가 먼저 이끌고 엔진이 힘을 보탤 때 특유의 미세한 머뭇거림은 있었지만, 전환 자체는 꽤 자연스러웠다. 현대차는 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에 엔진 재시동 충격을 줄이는 '엔진 정지각 제어' 기술과 모터가 엔진 진동을 상쇄하는 '모터 역위상 제어' 기술을 적용했다. 순식간에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느낌은 아니지만, 힘을 꾸준히 이어가며 여유있는 가속감을 만들어냈다. 사소한 디테일도 있었다. 고속으로 한참 달리며 허리가 조금씩 굳는 느낌이 들 때쯤, 시트 등받이가 움직이며 허리를 부드럽게 밀어줬다. 운전석 자세 보조 시스템이다. 허리를 한 번 펴고 자세를 고쳐 앉으니 한결 피로감이 덜했다. 장거리 운전에서 은근히 체감되는 기능이다. 피로를 덜어주는 건 고속도로 주행 보조 2(HDA2)도 마찬가지였다. 차간거리를 3단계로 맞춰두니 간격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며 감속을 이어갔다. 브레이크를 급하게 움켜쥐거나 성급하게 속도를 끌어올리는 일은 없었다. 방향지시등을 켜자 차선 변경도 즉각 매끄럽게 이어졌다. 운전하는 내내 의외로 가장 많이 부른 이름은 '글레오'였다. 정차 구간이 없는 고속도로에서는 간단한 조작을 위해 중앙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돌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화면을 터치로 조작해야하니 한층 더 쉽지 않다. 대신 “글레오" 한 마디면 충분했다. “에어컨 온도 18도로 낮춰줘"라고 말하자마자 1초 만에 바람이 시원해졌다. 공조를 조절하거나 스마트 비전 루프를 제어하고, 차량 기능을 묻는 정도는 대화하듯 편하게 해결된다. 현대차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를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역시 연비다. 서울에서 파주까지 주행한 뒤 계기판에는 21.1㎞/L가 표시됐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최종 연비는 20.4㎞/L였다. 공인 복합연비(18.4㎞/L)를 꽤나 웃도는 수치다. 이날 33도의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내내 최저 온도로 가동했고, 에코 모드 대신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만을 오가며 달렸으니 효율보다는 성능 체험에 무게를 둔 주행이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선방'을 넘어 최고의 연비라 할만하다. 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시작 가격은 세제 혜택 적용 전 4864만원이다. 이날 시승한 하이브리드 캘리그래피 풀옵션 모델은 6454만원이다. 가격만 놓고 보면 제네시스 일부 모델이나 수입 프리미엄 세단이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운전대를 잡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랜 시간 다듬어온 완성도, '역시 그랜저'라는 익숙한 믿음이다. 40년을 달려온 비결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명불허전. 명차는 이번에도 그 이름에 충실했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엔씨·컴투스홀딩스, 亞 최대 박람회서 중화권 ‘노크’

엔씨와 컴투스홀딩스가 중국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SNIEC)에서 개막한 국제게임전시회 '차이나조이 2026'에서 중화권 시장을 노린 작품들을 각각 선보인다. 엔씨가 공개하는 타이틀은 '아이온2'과 '아이온 클래식'이다. 엔씨는 이번 차이나조이에서 아이온2의 현지 퍼블리싱을 맡은 중국의 셩취게임즈 부스에서 '아이온2'의 시연을 진행한다. '아이온2'의 현지 서비스명은 '永恒之塔2(영원의탑2)'로, 서비스 일정 등은 추후 공개된다. '아이온 클래식'의 현지 서비스명은 '永恒之塔: 经典, 영원의탑: 경전'로, 8월 현지 비공개테스트(CBT)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엔씨는 아이온2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아이온2'는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돼 큰 흥행을 기록한 PC 작품이다. '아이온2'의 지난해 영업매출은 941억원, 올해 1분기 영업매출은 1368억원이다. 현지 파트너사인 셩취게임즈는 앞서 지난 2009년 '아이온'의 중국 현지 서비스를 맡은 바 있다. 당시 아이온을 향한 현지 시장 반응이 뜨거웠던 만큼, 이번 작품도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김택진 엔씨 대표는 “원작이 그리고자 했던 이상을 한층 높은 완성도로 구현해냈다"며 “중국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오랫동안 기억될 작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펑청 셩취게임즈 대표는 “아이온2는 엔씨가 오랜 기간 쌓아온 MMO 개발 철학과 노하우에 최신 기술이 결합된 혁신적인 신작"이라며 “엔씨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출시부터 운영까지 차근차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컴투스홀딩스가 선보이는 작품은 엔데브게임즈가 개발한 PC 및 콘솔 기반 신작 '페이탈 클로(Fatal Claw)'다. 별도의 부스를 꾸리지는 않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운영하는 한국공동관을 통해 전시에 참가했다. 페이탈 클로는 신비로운 고양이 '키샤'와 함께 미지의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독창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횡스크롤 액션에 성장 요소를 결합했다. 지난해 11월 스팀을 통한 얼리액세스(미리해보기)에 돌입했으며, 대규모 업데이트로 신규 지역을 확장하며 탐험과 성장의 재미를 강화했다. 정식 출시일은 오는 26일이다. 컴투스홀딩스 측은 “관람객들이 게임의 핵심 재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보스 전투와 추격전 중심의 전용 시연 빌드를 선보인다"며 “현장 시연 참여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브라질 이어 튀르키예...정의선, 유럽 소형 EV 시장 출격 점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차의 첫 유럽 전략형 소형 전기차 '아이오닉 3' 양산을 앞두고 튀르키예를 찾았다.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의 승부수인 아이오닉 3의 생산라인을 직접 살피며 현지 전략을 직접 살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즈미트에 있는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아이오닉 3 생산라인과 현대모비스 배터리 시스템 조립(BSA) 공장을 둘러보고 현지 생산·판매 전략을 점검했다고 2일 밝혔다. 아이오닉 3는 현대차가 유럽 시장을 겨냥해 처음 내놓는 B세그먼트 전기차다. 인스터와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5·6·9에 이어 전기차 라인업을 확장하는 모델로, 수요층이 가장 두터운 소형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전략 차종이다. 오는 8월 양산을 시작해 하반기부터 유럽 시장에 순차적으로 판매된다. 아이오닉 3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와 최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이 적용됐다. 유럽 B세그먼트 전기차 시장은 완성차 업체들의 신차 출시가 이어지며 경쟁이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 3를 앞세워 B세그먼트 전기차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유럽 전동화 판매 기반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정 회장은 “양산 초기부터 품질을 최우선에 두고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안전성에서 유럽 시장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모비스 BSA 공장을 찾아 아이오닉 3에 탑재될 배터리 시스템 생산 과정도 확인했다. 현대차는 튀르키예를 유럽 시장 공략의 핵심 생산기지로 육성해 왔다. 튀르키예 공장은 1997년 가동을 시작한 현대차의 첫 해외 생산기지로, 그동안 i10과 i20, 베이온 등 소형차를 생산해 왔다. 현대차는 튀르키예 공장을 기반으로 아이오닉 3 생산을 본격화해 유럽 전기차 판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아이오닉 3의 연간 판매 목표를 4만대 이상으로 잡고 유럽 전동화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비행기 좌석 ‘찜’하면 추가금…美·EU “아이 옆자리는 예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어린 자녀와 보호자가 나란히 앉기 위한 좌석에는 추가금을 면제하는 제도와 서비스가 도입되고 있다.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지난달 7일 항공 여객 권리 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개정안에는 14세 미만 어린이와 동반자가 나란히 앉을 경우 별도의 좌석 지정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2004년 도입된 해당 규정을 20여 년 만에 손보면서 아동 동반 좌석을 새로운 승객 권리로 포함한 것이다. 미국 교통부(DOT)는 주요 항공사 10곳의 아동 동반 인접 좌석 정책을 공개하고 있다. 현재 알래스카항공·아메리칸항공·프론티어항공·하와이안항공·제트블루 등 5개 항공사가 일정 조건 아래 13세 이하 어린이와 동반 성인의 인접 좌석을 별도 비용 없이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외항사들은 가족 단위 승객을 겨냥한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트블루는 가장 저렴한 '블루 베이직(Blue Basic)' 운임에도 어린이와 동반 성인의 인접 좌석을 추가 비용 없이 배정하고 있다. 알래스카항공 역시 동일 예약의 13세 이하 어린이가 최소 한 명의 동반 성인과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현재 어린이와 동반 성인의 인접 좌석을 추가 비용 없이 보장하도록 하는 공통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신 항공사들이 유·소아 동반 승객을 대상으로 좌석 배정과 우선 탑승 등의 자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만 2세 미만 유아 동반객에게 앞열 좌석과 우선 체크인·우선 탑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성인 1명이 유아 또는 7세 미만 어린이 2명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 우선 좌석과 우선 체크인·우선 탑승 등의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업계에서는 아동 동반객의 편의를 높인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내 제도화에 따른 체계 변화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인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정책대학원 주임 교수는 해외 사례에 대해 “미성년자와 보호자의 좌석 배치도 모든 항공 승객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도입에 대해서는 “항공 승객의 보편적 권리는 계약의 영역에서 규율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법률이나 행정 규제로 강제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김수인 인턴 기자

[한화그룹 3세 승진-김동관] 수석부회장 체제 속 ‘방산·에너지’ 재편 의미는

재계 서열 5위 한화그룹의 '3세 경영' 청사진이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가운데, 확고한 자신의 영토를 부여받은 오너 3세들의 '경영 능력 입증'이라는 본격적인 시험대도 막이 올랐다. 본지는 방산·에너지, 금융, 테크·라이프 부문으로 나뉜 한화그룹 신 삼분지계(新 三分之計)의 전략적 의미를 진단하고 김승연 회장 슬하의 세 아들이 각각 돌파해야 할 핵심 과제를 심층 조명한다. 지난 30일 한화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을 쇄신하고 지배 구조 새 판을 짜는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글로벌 거시 경제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안보 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번 인사는 한화그룹 내 권력 지형과 사업 포트폴리오 무게 중심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김 수석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장악력과 후계자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김동관 수석부회장의 등장은 '포스트 김승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중대 이정표다. 2024년 5월 그룹 2인자로 불리던 금춘수 전 수석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약 2년 4개월 간 공석이던 자리가 채워짐으로써 '김동관 원톱 컨트롤 타워'를 통한 차기 왕위 승계 구도가 공식화됐다. 이와 함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부회장 승진, 삼남 김동선 한화비전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동시에 이뤄지며 장남(방산·해양·에너지), 차남(금융), 삼남(유통·로봇·기계)으로 이어지는 삼형제 책임 경영 구도도 한층 더 선명해졌다. 삼분지계 독자 경영은 각 산업 특성에 맞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을 가능케 해 궁극적으로 그룹 전체의 기업 가치 향상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복잡하게 얽힌 그룹 사업을 명확히 분리하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각 사업 부문별로 시장의 온전한 평가를 받아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가치 제고는 그룹의 해묵은 과제인 상속세 등 승계 문제를 둘러싼 잡음을 해결할 핵심 열쇠이기도 하다. 승계를 위한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핵심 계열사의 실적 호전과 배당 확대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는 최근 공개 매수와 장외 매수 등을 통해 ㈜한화 지분율을 22.15%까지 끌어올리며 지배력을 한층 강화했다. 삼형제가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 경영을 통해 실적을 끌어올리고 배당 여력을 확대한다면 ㈜한화·한화에너지를 통한 배당 수익으로 상속세 재원을 자연스럽게 마련해 시장의 우려와 승계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배 구조 변화는 최근 단행된 ㈜한화 지배 구조 개편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지난 15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한화 인적 분할 안건이 원안 가결됨에 따라 존속 법인에는 김 수석부회장이 총괄하는 방산·우주항공·해양·에너지 관련 핵심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 등이 남게 됐다. 반면 신설 법인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에는 삼남인 김동선 사장이 이끄는 테크·라이프 사업 부문이 안착하며 계열 분리의 뼈대가 세워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임원 인사와 주총 결과를 기점으로 그룹 전반의 추가적인 인적 분할·계열 분리 작업이 재점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삼형제의 독립 경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화의 사업 부문별 추가 인적 분할이나 한화에너지와의 합병 등 지배 구조 최상단에서의 구조 개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거시적 계열 분리 시나리오의 전개를 시사하는 것인 만큼 향후 각 형제가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거시적 지배 구조 개편 연장선상에서 단행된 이번 5개 주요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한화임팩트·한화자산운용·한화세미텍 대표이사 교체 인사는 전략적 포석을 내포하고 있다. 김 수석부회장의 양대 핵심 사업 축이라 할 수 있는 방산 부문과 에너지·석유화학 부문 수장을 전면 교체한 것은 과거 양적 성장을 이룬 안정화·통합 단계에서 탈피해 고수익 창출과 글로벌 거점 확보를 향한 확장 단계로 기업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진용 구축을 통해 김동관 수석부회장이 겨냥하는 최종 지향점은 화력·해양 플랫폼·첨단 레이다 등 각 그룹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기술력을 융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미국·유럽·중동 등 글로벌 주요 거점 시장에 한화만의 안보 표준을 제시하는 육·해·공 우주 통합 글로벌 솔루션 공급자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금번 임원 인사가 산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다. ◇ '방산 컨트롤 타워' 손재일 대표 2선 후퇴 이번 계열사 대표 인사에서 시장과 업계 이목을 집중시킨 대목은 지난 2년여간 그룹 방산 부문 양대 산맥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를 겸직해온 손재일 전 대표의 2선 후퇴다. 통합과 외형 확장을 이끌어온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상근 고문으로 발령 나고 양사에 각각 새로운 전문 경영인이 선임된 것을 두고 그룹 측은 사업 전문성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대 재해 리스크에 대한 문책성 인사와 두 방산 계열사 외형 성장에 따른 물리적 경영 한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손 대표 겸임 체제 종료와 퇴진을 촉발한 원인은 올해 6월 1일 발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사업장 폭발 사고다. 대형 추진 기관과 전술 지대지 체계를 연구·생산하는 대전 유성구 외삼동 사업장 56동 세척공실에서 로켓 추진제 제조 공정 중 화약 잔여물을 제거하던 작업 도중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해 근로자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2명이 중화상을 입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과거 사고가 반복됐다는 점은 그룹에 다각적 위기로 다가왔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8년 5월과 2019년 2월에도 유사한 폭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해 8년 간 동일 사업장에서 13명이 사망해 반복된 인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사태를 인지한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 대전경찰청은 합동 감식과 압수수색 등 수사에 착수했고 최고 경영자인 손재일 당시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가재웅 대전 사업장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며 각각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룹 차원에서 경영진 구속보다 더 큰 리스크로 다가온 것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공공 입찰 참가 자격 제한 가능성이었다.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발맞춰 강화된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계약 이행 중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동시에 2명 이상 근로자가 사망하는 위해를 가한 업체는 1년 이내 범위에서 정부 발주 신규 계약 입찰 참가가 제한된다. 전체 매출 중 내수 비중이 약 30퍼센트에 달하며 방위사업청 등 정부와의 방위력 개선 사업이 근간이 되는 방산 기업에게 1년간 공공 입찰 배제는 존립을 심대하게 위협할 수 있는 타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국 사업장 내 추진제 생산·취급 공정에 무인 자동화 설비 도입을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또한 김동관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경영진은 사고에 대한 대내외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전사적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을 거행함으로써 여론을 수습하며 수사 당국 조사를 대비하기 위해 통합 방산 부문을 이끌던 손재일 대표를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문책성 인사라는 단기적 요인 이면에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전략적 당위성도 존재한다. 지난 수년 간 글로벌 방산 수출 호조에 힘입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폭풍과도 같은 성장을 거듭했고, 단 한 명의 경영자가 겸임하기에는 두 회사 규모와 사업 복잡성이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디펜스와 ㈜한화 방산 부문을 흡수 합병한 이후 K-9 자주포·레드백 장갑차·천무 등 지상 무기 체계부터 정밀 타격 무기·항공 엔진·우주 발사체까지 아우르는 복합 하드웨어 방산 기업으로 진화했다. 반면 한화시스템은 대공 레이다·함정 전투 체계·군사 위성 통신·정보통신 시스템 구축과 미국 필리 조선소 인수를 통한 해양·유지 및 보수 등 방산·전자·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직 DNA와 연구·개발(R&D) 수행 주기, 해외 고객 접근 방식이 다른 두 회사를 단일 구심점으로 묶어두는 것은 합병 초기 융합 시너지 창출을 표방하던 시기에 유효했다. 수십 조 원 단위 수주 잔고를 관리하고 글로벌 거점을 각각 구축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각 사업 성격에 맞는 전문성을 갖춘 개별 컨트롤 타워가 필수적이다. 김 수석부회장은 겸임 체제를 해소함으로써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고 두 계열사가 독자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배 구조를 개편한 것이다. 김 수석부회장의 의중은 새로이 내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부문 이부환 대표이사·한화시스템 양기원·한화임팩트 사업부문 강정훈 등 핵심 대표이사 3인의 면면을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각 계열사가 처한 환경과 달성해야 할 전략적 목표에 맞춰 발탁된 맞춤형 경영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인사가 사업 통폐합과 내부 조직 안정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올해 하반기 인사는 글로벌 현지화 이종 비즈니스 간 밸류 체인·융합, 업황 부진을 맞은 현장 수익성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수석부회장직에 오른 김동관 체제의 귀추가 주목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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