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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pe3 공시는 2031년, 기업은 기다려도 될까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넷제로의 문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는 지난 6월 11일 '기업 넷제로 표준(Corporate Net-Zero Standard) V2.0'을 발표했다. 새 표준은 2027년 2월 1일부터 사용할 수 있으며, 2028년 2월 1일부터 제출하는 모든 신규 목표에 의무 적용된다. 비록 SBTi가 법적 규제는 아니지만, 전 세계 1만 1000개 이상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이를 통해 과학기반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SBTi가 이번 변화를 '야망에서 현실 구현으로'라고 칭한 이유도 분명하다. 이제 몇 퍼센트를 줄이겠다는 선언적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은 감축 목표를 구체적인 전환계획과 연결하고 자본 배분, 설비 투자, 구매·조달 등 실제 경영 의사결정으로 옮겨야 한다. 이행 장애요인과 진척도 역시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그저 선언에 머물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실행하고 증명하는 탄소경영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Scope3, 즉 가치사슬 기타 간접배출이다. 새 표준은 기업이 가치사슬 내 중요한 배출원과 배출집약 활동을 찾아내고 실제 감축수단과 연결하도록 요구한다. 모든 협력사에 처음부터 실측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처럼 평균 배출계수에만 의존한 단순 계산으로는 감축 성과를 입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자연스럽게 주요 공급업체의 활동 데이터와 실제 감축 성과 등 신뢰할 수 있는 1차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새롭게 도입된 '지속적인 배출 책임(Ongoing Emissions Responsibility)'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고품질 탄소크레딧 등을 기후 기여 수단으로 인정하되, 그것이 직접 감축을 대체하는 면죄부는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긋는다. 일각에서는 유연성 확대로 인해 기업 간 비교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뉴클라이밋 연구소(NewClimate Institute)의 지적도 나오지만, 이는 V2.0이 복잡한 기업 현실을 반영해 실질적 넷제로 행동을 촉구하는 '실행 프레임워크'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2031년 유예? 멈추지 않는 글로벌 시계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까지 왔을까. 정부는 지난 7월 8일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최종안을 발표했다. 2028년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9년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28~2029년 운영 상황을 평가해 2030년에는 2조원 이상까지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는 거래소 공시가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사업보고서 내 법정공시로 곧바로 출발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다만 구체적인 책임범위와 제3자 인증제도 등은 향후 입법과 하위법령 정비 과정에서 확정돼야 한다. 한국 기업이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Scope3의 시차다. 정부는 인프라 부족을 고려해 Scope3 공시를 대상별로 3년간 유예했다. 이에 따라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기업은 2031년, 5조원 이상은 2032년, 2조원 이상은 잠정적으로 2033년부터 공시 의무를 지게 된다. 제3자 인증도 2030년부터 의무화될 방침이다. 겉보기엔 준비할 시간이 넉넉해 보인다. 그러나 국내 공시의 시계와 글로벌 공급망의 시계는 다르게 흘러간다. 당장 SBTi V2.0은 2028년부터 신규 목표 제출의 기준이 되고,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자들은 이미 공급망의 탄소 정보와 감축 성과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글로벌 스탠더드가 급변하는데도 국내 제도의 유예 기간만 믿고 안주하는 것은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이나 다름없다. Scope3 공시의 유예가 곧 Scope3 관리의 유예를 뜻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탄소 책임의 외주화를 넘는 거버넌스 정부도 발 빠르게 준비에 착수했다. 2028년까지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 등 주요 15개 수출 업종의 Scope3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활용 가능한 전과정목록(LCI) 데이터 1000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 번 입력한 데이터를 여러 수요기업이 공동 활용하는 산업공급망 ESG 플랫폼도 추진한다. 한국은 K-ETS 제4기를 시행하고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하면서, 공시와 탄소가격, 산업전환을 동시에 제도화하는 궤도에 올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제도의 도입을 넘어 데이터의 실질적 연결에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시작된다. 같은 협력기업이 대기업 A사에는 A사의 양식으로, B사에는 또 다른 엑셀로 탄소 데이터를 제출해야 한다면 Scope 3는 감축보다 서류작업부터 늘릴 수 있다. 대기업이 협력사에 짐만 전가하는 '탄소 책임의 외주화'를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한 번 측정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여러 제도에서 공동 활용할 수 있는 통합 인프라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지역 산·관·학이 연계된 밀착형 거버넌스가 중소 협력사의 현장 데이터 산정 역량을 직접 돕고 나서야 한다. Scope 3의 3년 유예기간은 규제를 미뤄둔 시간이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의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을 확보하는 골든타임이어야 한다. 넷제로의 다음 경쟁은 누가 더 큰 감축 숫자를 선언하느냐가 아니다. 공급망의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투자와 조달을 바꾸며, 그 결과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증명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한국 기업에 남은 시간이 2031년까지라고 생각한다면 시계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기후전략은 이미 약속의 문장에서 '실행의 장부'로 넘어가고 있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LG전자, 버려지는 가전에서 핵심광물 희토류 캔다

LG전자가 가전 부품의 폐기 단계에서 희토류 영구자석을 회수해 산업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국가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LG전자는 27일 경기도 용인시 수도권자원순환센터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E-순환거버넌스와 '폐가전 냉매압축기 폐영구자석 회수 시범사업' 업무협약(MOU)을 맺었다고 밝혔다. 협약식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 금한승 제1차관, E-순환거버넌스 이상진 이사장, LG전자 생산기술원 양희구 생산혁신센터장, 정대진 금형/품격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시범사업은 가전 핵심부품인 컴프레서의 폐기 단계에서 희토류 영구자석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사업이다. 희토류는 전기차·산업용 모터·가전 등 첨단 산업에 폭넓게 쓰이는 핵심 광물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컴프레서에 포함된 희토류 영구자석은 강한 자력 탓에 분리가 어려워 구리 등 일부 금속만 회수한 뒤 대부분 고철로 재활용돼 왔다. LG전자는 자기장을 활용하는 탈자(脫磁) 기술로 희토류 영구자석의 강한 자력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분리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고열을 가해 자석을 분리하던 기존 열처리 방식 대비 에너지 사용이 줄고, 분리된 자석 역시 열 변형 없이 물성을 유지해 회수 효율과 재활용 가치가 높아진다. 희토류 영구자석 분리 공정에는 비전 AI 기반 이미지 분석 기술도 적용된다. AI가 폐컴프레서의 크기와 모양을 인식하고 분리해야 할 영구자석의 위치를 정밀하게 분석해 최적의 분리 공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존 철·구리·알루미늄 중심이던 자원 회수 범위가 희토류 함유 영구자석까지 확대된다. LG전자는 이번 시범사업으로 연간 약 4만 대 규모의 폐가전에서 약 1.6톤의 희토류 영구자석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수된 영구자석은 향후 새로운 자석 생산을 위한 원료화 기술 개발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양희구 LG전자 생산기술원 생산혁신센터장은 “자원순환 분야의 기술 역량을 지속 강화해 사용이 끝난 제품에서 핵심 소재를 회수하고 다시 활용하는 순환경제 실현에 기여하는 한편, 미래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순환 이용 기반 구축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李정부 히트펌프 판 키우자…삼성·LG도 ‘발맞춰 뛴다’

정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걸면서 국내 가전업계도 관련 생산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친환경 냉난방 시장이 본격 개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 생산 확대와 기술 투자로 시장 선점에 나섰다. 다만 국내 주택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공동주택에는 아직 제품을 들이기 어려워, 본격적인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26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다음 달 말부터 광주사업장에서 'EHS 히트펌프 보일러'의 국내 양산을 시작하고, LG전자도 연내 국내 생산 확대를 목표로 창원 생산기지를 보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안타증권 등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국내 히트펌프 시장 규모는 3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보급 대수는 2022년 기준 36만대에 그쳐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배경에는 반복되는 폭염으로 고효율 냉난방 설비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이 있다. 가전업체는 물론 보일러·산업설비 업체까지 가세하며 대성히트에너시스, 경동나비엔, 센추리 등도 기존 제조망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뛰어든 상태다. 연소 과정 없이 외부 열을 실내로 끌어와 냉난방을 해결하는 히트펌프는 가스보일러보다 에너지 효율이 3~5배 높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독일에서는 이미 히트펌프 판매량이 가스보일러를 앞질렀고, 글로벌 시장도 지난해 133조원에서 2034년 302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보급사업 발판 삼아 국내 생산 속도전 삼성전자는 정부의 난방 전기화 드라이브를 새로운 매출원이자 성장동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35년 난방 전기화 보급 정책을 국내 B2B 및 친환경 가전 시장을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는 중대한 기회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 제2캠퍼스에 2132㎡ 규모 생산라인을 새로 짓고 지난 19일부터 시험생산에 돌입했다. 연간 10만대 이상 생산 능력을 갖추며 해외 생산분을 국내로 대체하는 '리쇼어링'에 나선 것은 참여 업체 중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LG전자는 정부 보급 활성화 사업에 납품하는 제품 역시 연내 국내 생산 체제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LG전자는 신규 부지 투자 대신 기존 창원 생산라인을 보강해 히트펌프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미 올해 상반기 제주 보급사업(1042가구) 중 가장 많은 450가구를 전담하며 1위 사업자로 선정된 데다, 2008년부터 유럽 등 해외에서 히트펌프 사업을 벌여온 경험까지 갖추고 있어 국내 생산 전환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LG전자 관계자는 “정부 사업에 참여하며 제품을 알릴 기회이자 사업을 확장할 계기로 보고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행보는 이미 진행 중인 정부 보급사업과 맞물려 있다. 국비 138억원이 투입된 제주 보급사업(총 2460가구) 가운데 상반기 물량 1042가구 중 450가구를 LG전자가 전담해 1위 사업자에 올랐고, 삼성전자는 하반기 1418가구 규모 2차 사업에 참여를 확정했다. 정부 주도로 새 시장이 열리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다퉈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 아파트 공략은 아직 숙제 관건은 국내 주택 구조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공동주택 공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히트펌프 난방 시스템은 기존 보일러보다 기계실 공간이 더 필요해 아파트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이를 극복할 제품을 개발 중이지만 정확한 상용화 시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별도의 한국형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파트·공동주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내 주거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 해외 사양과 차별화한 한국형 히트펌프 솔루션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용인 삼성물산 주거연구소와 제주도 등에서 실제 주거 패턴을 반영한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로 알고리즘과 편의 기능을 계속 업그레이드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별도로 양평·충주·남해 등 전국 각지에서도 난방·온수 성능 실증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내 생산능력 확대나 구체적인 판매 목표는 아직 설비 투자 초기 단계인 만큼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구체화할 예정이다. 대중화까지 넘어야 할 비용 장벽도 만만치 않다. 본체와 온수 저장탱크, 배관 공사비를 합치면 대당 1400만원 안팎이 들어 기존 보일러보다 월등히 비싸다 보니, 최대 70%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일반 요금제를 받으려면 전용 계량기를 별도로 달아야 한다는 점도 진입 장벽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시장 형성 초기인 만큼 일정 수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한 단계"라며 “보급이 확대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제품과 설치 비용이 낮아지고, 기업들의 기술 혁신과 경쟁까지 더해져 소비자 부담도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탄소가격은 높을수록 좋은가…독일이 한국에 던진 질문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유럽의 기후 규제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독일 연방내각은 독일 연료배출권거래법(Brennstoffemissionshandelsgesetz·BEHG) 개정안을 의결하고, 2027년에도 이산화탄소 1톤당 55~65유로의 가격구간(Price Corridor)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법대로라면 2027년부터 독일의 국가 탄소가격이 기존 EU 배출권거래제(EU ETS1) 가격과 연계될 예정이었다. 독일은 이를 한 해 더 안정적인 가격구간 안에 두기로 한 것이다. 아직 의회 입법 절차는 남아 있다. 한편 EU 건물·도로교통 배출권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2·ETS2)​는 2028년부터 본격 가동된다. 기존 EU ETS와 별도의 시장으로, 건물·도로교통과 일부 추가 부문의 연료배출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의 선택은 이런 과도기에 기업과 가계에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한 해 더 제공하려는 조치로 읽을 수 있다. 이를 기후정책의 후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독일이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원칙을 포기한 것도, 기존 EU ETS를 완화한 것도 아니다. BEHG는 주로 난방과 도로교통에 사용되는 연료의 배출을 다루는 독일의 국가 제도다. 철강·발전 등 기존 EU ETS나 수입제품의 탄소비용을 조정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는 구별된다. 핵심은 탄소가격 신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격 충격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있다. ◇ 가격표보다 중요한 '시장 설계' 독일의 선택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55~65유로라는 숫자보다 시장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정부안은 한 계정이 경매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입찰물량을 기존 50%에서 20%로 낮추고, 2026년 배출권을 2027년 의무이행에 사용하는 이월도 제한한다. 독일 에너지·수도산업협회(BDEW)는 이러한 조치가 과도한 청약을 줄이고 기업이 경매 참여에 동원해야 하는 자금과 금융비용을 낮추며 차익거래 유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가격 안정 논의와 별개로 독일의 에너지 전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 젤레스트라(Zelestra)는 지난 2월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Mecklenburg-Vorpommern)​의 27.5MWdc 규모 클레베노우(Klevenow) 태양광 발전사업 건설 상황을 공개했다. 당시 회사는 연간 약 2만8700MWh의 전력 생산과 30MWh 규모 배터리저장장치(BESS) 개발 계획을 제시했다. 이 사업을 이번 BEHG 개정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가격 충격을 관리하는 것과 탈탄소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는 선택은 아니라는 점은 보여준다. ◇ K-ETS 4기가 풀어야 할 '가격의 질' 독일의 선택은 제4기(2026~2030)에 들어선 한국 배출권거래제(K-ETS)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8월 14일 한국거래소에서 2025년 할당배출권(Korean Allowance Unit 2025·KAU25) 종가는 톤당 2만7650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2025년 11월 약 1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했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한 상승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가격의 높고 낮음만이 아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탄소가격을 얼마나 더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기업이 5년, 10년 뒤 탄소비용을 가늠하고 설비교체와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가격 신호를 신뢰할 수 있는가"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은 감축 유인을 약화시키지만, 급격한 가격 변동 역시 장기투자를 어렵게 한다. 이것이 탄소가격의 '수준(Level)'만큼 '질(Quality)'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이 제4기 배출권시장에서 한국형 시장안정화예비분(Korean Market Stability Reserve·K-MSR)​을 도입한 것도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정부는 공급 과잉 때 경매를 줄여 공급량을 조절하고, 공급 부족 때는 예비분을 추가 공급하는 방식을 기본 방향으로 제시했다. 다만 2026년에도 세부적인 설계와 운영기준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관건은 제도를 얼마나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K-MSR이 정부가 상황에 따라 임의로 가격을 움직이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급 조정의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명확히 하고 시장 참여자가 대응을 예측할 수 있는 '규칙 기반의 안정화 장치'​로 운영해야 한다. ◇ 더 센 가격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가격 그렇다고 유럽 시장의 탄소비용 신호가 약해진 것은 아니다. 2026년 2분기 CBAM 인증서 가격은 톤당 75.28유로로 공표됐다. 실제 한국 수출기업의 부담은 제품의 내재배출량과 EU의 무상할당 조정, 한국에서 실제 지불한 탄소가격의 공제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유럽이 탄소비용을 무역과 투자 판단에 반영하는 방향을 거둔 것은 아니다. 기후정책의 성패는 가장 높은 탄소가격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감축 신호는 분명하게 주되 기업과 가계가 준비할 시간을 제공하고, 시장 참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전환 경로를 만드는 데 있다. 앞선 CSRD의 조정에서 보았듯 탄소시장 역시 강도만을 겨루기보다 예측 가능성과 실효성을 함께 높이는 '실용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탄소가격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더 센 가격이 아니라, 더 신뢰할 수 있는 가격이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LG화학, 신학기 맞아 ‘두근두근 꿈을 담은 책가방’ 전달

LG화학이 새학기를 앞두고 사업장 인근 아동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하며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활동은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아 시작한 임직원 참여형 사회공헌 프로그램 '기부Week'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기부자와 수혜자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새학기를 맞아 113명의 아이들이 직접 희망한 책가방, 문구세트, 필통, 노트, 운동화, 미술용품 등을 대상으로 신청 받았으며, 임직원들은 아이들의 사연과 신청 목록을 토대로 선물을 마련했다. 기부에 참여한 LG화학 최윤승 책임은 “아이들이 받고 싶었던 선물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큰 기쁨을 얻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세영 선임은 “아이들이 새 학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데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LG화학은 미래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맞춤형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국가인권위 결정문이 다시 그은 기업책임의 경계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ESG 분야에서 실제 변화가 드러나는 순간은 새로운 용어나 유행이 등장할 때가 아니라, 기업의 책임 범위가 다시 설정될 때다. 지금은 기업이 정보를 얼마나 공개했느냐보다, 사업 과정이나 공급망에서 어떤 위험을 인지하고, 실제로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핵심적인 물음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늘(20일) '기업 인권침해 예방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 인권실사법」 조속히 입법해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두 건의 법률안에 대한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앞서 인권위 상임위원회가 지난 5월 21일 의결한 이번 결정의 정식 명칭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이다. ◇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정문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안창호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는 최근 일부 인권 현안이나 독립성·공정성 문제로 논란을 겪어왔다. 그래서 이번 결정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단순히 정치적 목적이나 이미지 쇄신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이번 결정문은 그동안 쌓여온 기업 인권 규범의 제도적 연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결정문의 핵심은 인권과 환경에 대한 실사다. 기업과 공급망이 지닌 위험요소를 미리 찾아내고(식별), 예방한 뒤, 실제로 실행했는지를 점검하는 체계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그 근거로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 OECD 다국적기업 책임경영 가이드라인 등이 제시됐다. 공시가 '무엇을 공개했는가'를 묻는다면, 실사는 '위험을 인지하고 실제로 어떤 조치를 했는가'를 묻는다. 이제 ESG 용어는 보고서의 문구에서 현장의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권위는 법 적용 범위도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호 의원안은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매출 2000억 원 이상 기업에 적용되고, 박홍배 의원안은 1000명 이상, 매출 5000억 원 이상 기업이 대상이며 중소기업은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있다. 인권위는 기존의 안전보건 관리 프로세스 운영 경험 등을 근거로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분야는 공급망이다. 인권위는 공급망을 “기업 활동 전반에 걸친 직·간접적 관계"까지 포함해야 하며, 위험도가 높은 분야부터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위험 기반 접근법'을 권고했다. 법의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대기업의 원료·부품·물류·외주 등과 연결된 중소·중견기업 역시 실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공급망은 제품이 오가는 경로이면서, 동시에 책임도 확장되는 통로다. 다만, 실사가 서류 작업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협력업체에 수십 장의 설문지와 확인서를 보낸다고 해서 실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는 또 다른 행정부담만 남길 뿐이다. 강제노동이나 산업재해, 심각한 환경오염 등 실제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부분부터 찾아내 개선하는 것이 실사의 본질이다. 인권위는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와 단체는 물론, 이들을 대변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단체까지 포함해 그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임박한 경우"에는 분쟁해결기구가 즉각적으로 구제 조치를 할 수 있게 하고, 금전적 제재나 공공조달 참여 제한 같은 실제적인 행정·재정적 수단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결정이 '한국판 CSDDD(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의 확정은 아니다. 국회의 논의와 감독 체계, 기업 부담, 그리고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 등 남은 과제가 많다. 하지만 흐름은 분명해졌다. 공시에서 실사로, 실사에서 다시 예방과 구제로, 그리고 책임 강화로 이어진다.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넘어서야 비로소 진짜 실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책임이 공급망 구석구석까지 미칠 때, ESG는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하게 된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LG전자, 바다숲 조성한다…신소재 ‘마린 밸런스’ 사업화 속도

LG전자가 해양수산부, 경상남도, 한국수산자원공단과 손잡고 해양생태계 복원에 나선다. 기능성 신소재 '마린 밸런스(Marine Balance)'를 바다숲 조성에 적용해 탄소흡수원을 넓히는 동시에, 관련 기술을 B2B 성장동력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20일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에서 해양수산부·경상남도·한국수산자원공단과 '바다숲 조성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협약식에는 LG전자 최성봉 빌트인·쿠킹솔루션사업부장, 해양수산부 최현호 수산정책실장, 경상남도 박일웅 행정부지사, 한국수산자원공단 김종덕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협약에 따라 2026년부터 2029년까지 4년간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역 약 1.5㎢에 바다숲이 조성된다. 여의도 면적(2.9㎢)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고성군 해역에 마린 밸런스를 적용하면, 이후 해조류 생장과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이번 협약은 LG전자의 해양생태계 복원 행보 연장선에 있다. 앞서 부산광역시·순천시와 각각 협약을 맺고 낙동강 하구 염습지, 순천만 갯벌 약 1500㎡에 마린 밸런스를 적용해 효과를 실증해 왔다. 마린 밸런스의 핵심은 물과 만나면 미네랄 이온을 방출해 해조류·염생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성분을 일정한 양과 속도로 공급하는 기술이다. LG전자는 사용 목적과 환경에 따라 미네랄 성분의 용출량·속도를 정밀 제어하는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성분과 함량은 물론 소재 형태까지 환경에 맞춰 설계할 수 있어, 미네랄이 빠르게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단한 비즈나 납작한 칩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이 가능하다. ◇ 특허 420건에 베트남 증설까지…B2B 소재사업으로 육성 LG전자는 이 기술을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B2B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유리 파우더 기반 기능성 소재의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 역량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1996년부터 연구를 이어와 현재까지 확보한 기능성 소재 관련 특허만 420여 건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유럽 시장 진출에 필요한 항균제 관련 규제 등록을 마쳤고, 유해성 평가를 통해 제품 안전성도 입증했다. 생산 인프라 확대도 뒤따르고 있다. LG전자는 창원 LG스마트파크에서 연간 약 4500톤 규모의 기능성 소재 생산라인을 운영 중인 가운데, 최근 베트남 하이퐁 생산법인에 연간 약 2000톤 규모의 생산라인을 추가로 구축했다. 하이퐁 라인을 통해 북미·유럽·중국은 물론 인도·동남아 등 글로벌 사우스 시장 수요에도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적용 분야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플라스틱·페인트·고무 등에 소량 첨가해 미생물로 인한 악취와 오염을 억제하는 항균·항곰팡이 소재 'LG 퓨로텍', 무기물 기반으로 헹굼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세탁 기능성 소재 'LG 미네랄 워시(LG Mineral Wash)' 등이 대표적이다. LG전자는 고객 요구에 맞춰 성분과 특성을 설계하는 맞춤형 솔루션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LG전자 최성봉 빌트인·쿠킹솔루션사업부장은 “환경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하는 기능성 소재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B2B 사업 기회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규격 미달 중국산 태극기 저가 유통 심각…국내 제조업체 경영난 우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태극기를 구입할 때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된 국기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법정 규격과 디자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품질 중국산 태극기의 무분별한 유통을 막고 국기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비례대표)은 공공부문의 국내 생산 국기 구매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대한민국국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9일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국가 및 지자체가 국기의 존엄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국기의 도안·규격·표준색도 등 제작 기준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구매하는 국기의 국내 생산 여부에 대한 강제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최근 법정 표준 규격이나 색도조차 맞지 않는 저품질 중국산 태극기가 저가를 무기로 국내 시장에 대량 유통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국내 태극기 제조업체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생산 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이에 국가 상징인 태극기만큼은 최소한 공공부문이라도 엄격한 품질기준을 갖춘 국산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자국 국기 보호를 위해 엄격한 법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4년 제정된 '올 아메리칸 플래그 법(All-American Flag Act)'을 통해 연방정부가 미국산 국기만을 구매하도록 의무화했다. 원단과 실, 염료 등 모든 원부자재는 물론 직조·염색·봉제·포장 등 전 공정이 미국 내에서 이루어진 제품만 자국산으로 인정하며 국기의 상징성과 자국 제조 기반을 적극 보호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장이 국산 원료 사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여 국내에서 생산된 국기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소희 의원은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 국민적 자긍심이 담긴 국가의 상징"이라며 “공공기관에서조차 중국산 저가 국기를 사용하는 것은 국기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 국내 생산 태극기를 구매하도록 해 규격 미달 국기 유통을 막고 국가 상징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미국의 ESG 압박, CSRD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최근 글로벌 ESG 뉴스를 보면 묘한 착시가 생긴다. 미국이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 규제를 강하게 문제 삼고, EU도 기업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규제를 손질하면서 마치 'ESG의 시대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과 자본시장의 실제 흐름은 다르다. 규제의 범위와 강도는 조정되고 있지만 기업의 기후·인권·공급망 정보를 표준화하고 검증 가능한 투자정보로 만들려는 방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 규제 후퇴가 아닌 '재조정'의 시간 논쟁의 중심에는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이 있다. CSRD는 기업에 '착한 경영'을 권고하는 캠페인이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환경·사회·거버넌스 정보를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에 따라 공시하도록 하는 법적 제도다.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기후·사회 문제가 기업의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각각 살피는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이 핵심이다.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환경 위해를 예방하고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과는 구별된다. EU는 올해 두 제도를 모두 크게 손질했다. 지난 2월 EU 이사회가 최종 승인한 '옴니버스 I'에 따라 CSRD의 일반적인 적용범위는 종업원 1000명 초과이면서 연간 순매출 4억5000만 유로 초과 기업으로 좁아졌다. 반면 CSDDD는 종업원 5000명 초과, 연간 순매출 15억 유로 초과 기업​으로 범위가 더욱 축소됐다. 두 기준은 명확히 다른 제도에 적용된다. 7월에는 EU 집행위원회가 개정 ESRS를 채택했다. 의무 데이터 항목을 60% 이상 줄이고 전체 데이터 항목도 70% 이상 축소해 기업의 보고 부담을 낮추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CSRD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ESRS에 따른 공시와 이중 중대성을 중심으로 한 기본 구조는 유지된다. 원칙의 폐기라기보다 경쟁력과 행정 부담을 고려한 '규제의 재조정'에 가깝다. ◇ 기계가 읽는 데이터로 진화하는 ESG 미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2025년 8월 미·EU 공동성명에는 CSRD와 CSDDD가 대서양 무역에 부당한 제약이 되지 않도록 EU가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 8월 14일 앤드루 퍼즈더 주EU 미국대사는 이를 근거로 추가적인 규제 수정을 요구했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협력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EU의 규제체계와 규제 자율성 자체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규제완화와 통상 압박이 강해졌다는 사실을 지속가능성 공시의 세계적 후퇴로 일반화할 근거는 아직 없다. IFRS재단에 따르면 40개가 넘는 관할권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도입하거나 활용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EU도 지난 7월 유럽단일접근점(European Single Access Point·ESAP)의 1단계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금융시장과 지속가능성 관련 공개정보를 단계적으로 통합하고 2027년 7월까지 일반 이용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ESG 정보가 기업이 발간하는 보고서 속 문장을 넘어 기계가 읽고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비교·분석할 수 있는 '시장 데이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 한국의 해법은 '데이터 실용주의' 한국의 대응 역시 'EU식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것인가, 미국의 규제완화 기조를 따라갈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이어서는 안 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최종안을 발표했다. 2028년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시작해 2029년에는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30년 2조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할지는 시행 상황을 평가한 뒤 검토한다. 법정공시를 위해 자본시장법 개정도 추진한다. Scope 3 공시는 공시대상별로 3년의 준비기간을 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데이터 실용주의'다. 대기업에는 글로벌 자본시장과 호환되는 공시·검증 체계를 갖추도록 하되, 중소·중견기업에는 업종별 Scope 3 산정도구와 한 번의 입력으로 여러 원청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공동 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가 2028년까지 주요 수출 15개 업종의 Scope 3 가이드라인과 1000개의 전과정목록데이터(LCI)를 구축하고, '단일 입력-다수 대응'을 지향하는 산업공급망 ESG 플랫폼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ESG를 둘러싼 정치의 온도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탄소와 공급망, 인권과 기후위험 데이터가 기업의 비용과 시장 접근을 좌우하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ESG 구호가 아니다. 국제 규제가 바뀌어도 통용되는 데이터와 검증 능력, 그리고 우리 산업구조에 맞는 실용적인 전환 전략이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ESG 점수보다 중요한 것, 지속성과 신뢰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기업의 ESG 평가가 발표될 때마다 관심은 등급에 쏠린다. 누가 A를 받았는지, 누가 한 단계 떨어졌는지가 뉴스가 된다. 평가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투자자가 기업을 비교하려면 공통의 척도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해의 높은 점수가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유럽의 최근 움직임은 이 질문을 던지게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개정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을 채택해 유럽의회와 이사회 심사 절차에 넘겼다. 개정안은 의무 데이터포인트를 60% 이상, 전체 데이터포인트를 70% 이상 줄였고, 기업별 보고비용도 30% 이상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인권 같은 지속가능성의 핵심 의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 변화는 'ESG의 후퇴'라고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자료를 내놓았느냐보다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되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人而無信 不知其可也)"고 했다.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ESG에서 신뢰란 거창한 윤리적 구호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난해 공개한 탄소배출량과 올해의 숫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가, 협력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숨기지 않고 고칠 수 있는가, 이사회가 그 정보를 실제 투자 결정에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다. 사회적 자본 이론이 신뢰를 중요한 경제자원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뢰가 높으면 매번 상대방을 의심하고 확인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기업과 투자자, 원청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뢰는 선언 한 번으로 생기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 여러 해 반복될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연구가 있다. 카르티카(Kartika), 쿠수마(Kusuma), 누스티니(Nustini)가 2026년 'Economic Studies'에 발표한 연구는 2008~2022년 동남아시아 6개국 251개 상장기업의 1263개 기업-연도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한 해의 ESG 점수와 별도로 최근 4년 가운데 적어도 3년 동안 해당 국가와 산업의 평균보다 높은 ESG 성과를 유지했는지를 'ESG 지속성(ESG permanency)'으로 측정했다. 결과는 의미가 있다. 당해 연도의 ESG 점수도 기업가치와 양의 관계를 보였지만, 여러 해 지속된 ESG 활동 역시 기업가치와 유의한 정(+)의 관계를 나타냈다. ESG를 일회성 행사나 한 해의 성적표가 아니라 축적되는 경영능력으로 볼 근거가 생긴 셈이다. 기업의 축적된 역량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도 있다. 누라흐만(Nurahman)과 헤르수곤도(Hersugondo)가 2026년 'Economic Studies'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인도네시아 비금융기업 44개사를 분석한 결과, 기업연령이 ESG와 재무성과의 관계를 조절하는 효과가 일부 지표에서 확인됐다. 특히 ESG와 기업연령의 상호작용은 자기자본이익률(ROE)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이것을 “오래된 기업일수록 ESG를 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기업연령이 높아지면 조직의 관성이 커질 수도 있다. 다만 오랜기간 축적된 내부통제와 정보체계, 이해관계자 관계가 ESG를 실제 경영성과로 전환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가능성은 생각해 볼 만하다. 한국 기업에는 이 문제가 곧 현실이 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최종안에 따르면 지속가능성 의무공시는 2028년(FY2027)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부터 시작된다. 산업통상부는 올해 중소·중견기업 500개사에 ESG 공급망 실사 컨설팅을 지원하고 2028년까지 간편 공급망 실사 플랫폼을 구축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과 전과정평가(LCA) 등을 다루는 전문인력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일을 수동적인 '규제 대응'으로만 받아들일 때 생긴다. 에너지 사용량을 측정하고 스코프3(Scope 3)를 계산해도 그것이 설비투자와 구매·조달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숫자는 늘어도 경영은 달라지지 않는다. 재생전력 조달과 에너지 효율 투자, 협력업체 관리가 일상의 경영 판단에 들어와야 공시도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기업 간 차이는 보고서를 얼마나 두껍게 만드느냐보다 같은 기준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 정보를 실제 의사결정에 얼마나 오래 사용해 왔느냐에서 벌어질 것이다. 등급은 기업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하지만 경영은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기록이다. ESG 역시 그렇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점수가 아니다. 반복된 실행이 만든 신뢰다.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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