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방위산업의 패러다임이 '무기 판매'에서 국가 간 '공급망 동맹'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과거에는 성능과 가격이 수주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면 이제는 수출국이 수입국의 산업 생태계에 얼마나 깊숙이 참여하고 장기적인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척도가 됐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서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최대 6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캐나다 해군의 차세대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다. 캐나다는 오는 2030년대 중반 퇴역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3000톤급 잠수함 최대 12척을 도입하는 대규모 조달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이 사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K-방산 원팀'과 독일의 전통 강호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 간의 치열한 2파전으로 압축됐다. 6일 산업연구원(KIET)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가 요구하는 절충교역(ITB,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Benefits) 조건과 자국 산업 기여도를 누가 더 정교하게 충족하느냐가 최종 승패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자원 부국으로서 최근 미국 중심의 수출 구조에서 탈피해 에너지 수출 시장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고도화된 정제 역량·제조 기술을 캐나다의 풍부한 현지 자원과 결합하는 '국가 공급망 동맹' 모델이 수주를 위한 최우선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캐나다 해군의 안보 전략 전환과 CPSP의 추진 배경 캐나다의 잠수함 도입 사업은 노후 전력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북대서양·태평양,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해 전략적 중요성이 급증한 북극해를 방어하기 위한 캐나다의 중장기 해양 안보 전략의 핵심 축이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다. 북극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안보의 최전선이 됐다. 현재 캐나다가 운용 중인 빅토리아급 잠수함은 1990년대 영국 해군으로부터 중고로 도입한 것인데 노후화가 심각해 현재는 단 1척만이 정상 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전력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캐나다 정부는 2021년부터 CPSP를 공식화하고 얼음 아래에서도 장기간 작전이 가능한 '빙하 아래 작전 능력(Under-ice capability)'과 장거리 항속 거리와 고도의 은밀성을 갖춘 최첨단 디젤 잠수함 12척의 도입을 결정했다. 이는 캐나다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조달 사업으로 함정 건조 비용만 20조 원 이상이며 30년 이상의 유지·보수(MRO) 비용을 합산하면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육박한다. ◇ 마크 카니 정부의 '바이 캐네디언' 기조와 산업 전략 지난해 출범한 마크 카니(Mark Carney) 정부는 방위산업을 국가 경제 활성화의 핵심 동력으로 규정했다. 캐나다 정부가 발표한 '방위산업 전략 2026'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국방 조달 금액의 70%를 캐나다 자국 기업에 배정하고 이를 통해 12만5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CPSP는 캐나다 내에 독자적인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발전 프로젝트'로 설계됐다. 따라서 입찰 참여 업체들은 플랫폼의 성능만큼이나 캐나다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캐나다 정부의 CPSP 평가 기준에 따르면 성능이나 가격보다 장기적인 운영 지원과 경제적 기여도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지·보수·군수 지원(MRO)'은 전체 점수의 절반인 50%를 차지한다. 이는 캐나다 해군이 장비를 도입한 후 자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수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한국은 이를 위해 기존 캐나다 빅토리아급 잠수함 MRO를 전담해온 영국 밥콕(Babcock)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독일의 나토(NATO) 인프라 우위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전략적 협력(15%)' 분야는 제안서 제출 시점부터 전체 계약 가액의 약 40%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현지 투자 및 협력 계획을 요구한다. 캐나다의 ITB 제도는 수출 기업이 계약 금액에 상응하는 경제적 가치를 캐나다 내에서 창출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누가 더 매력적인 '산업 패키지'를 제시하느냐가 당락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 K-방산의 기술적 우위…장보고-III 배치-II의 경쟁력 한화오션이 제안한 플랫폼은 대한민국 해군이 운용 중인 3000톤급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이다. 이 모델은 현존하는 디젤 잠수함 중 가장 진보된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으며 캐나다 해군의 작전 요구 사항을 완벽히 충족한다. 장보고-III 배치-II의 가장 큰 강점은 공기 불요 추진 장치(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결합한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이다. 기존의 납축전지 잠수함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효율이 우수해 수면으로 부상해 공기를 흡입하는 과정인 '스노클링' 없이도 3주 이상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 이는 광대한 영역을 은밀하게 감시해야 하는 캐나다 해군에게 압도적인 전술적 우위를 제공한다. 이 잠수함은 탄도 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수직 발사관(VLS)을 10셀 보유하고 있다. 이는 연안 방어용 외에도 국가 차원의 비대칭 억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또한 7000해리(약 1만2900km)에 달하는 긴 항속 거리와 북극해의 1m 두께 얼음 아래에서도 생존 가능한 설계를 갖추고 있어 대서양·태평양·북극해 등 캐나다의 3개 대양 작전에 최적화됐다. 한화오션은 잠수함 계약 체결 이후 인도까지 통상 9년이 걸리는 기간을 6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만약 연내 계약이 체결될 경우 2035년 이전에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모두 대체해 전력 공백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 이는 수주 물량이 밀려 납기 지연 우려가 제기되는 독일 TKMS와 차별화되는 한국만의 제조 경쟁력이다. ◇ 한화그룹의 5대 핵심 산업 협력 모델은 '20만 고용 창출' 한화그룹은 캐나다의 미래 산업 전반에 걸친 대규모 투자와 협업을 제안하며 ITB 조건을 공략하고 있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올해 1월 캐나다 현지 5개 분야 핵심 기업들과 전략적 투자·협력을 위한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최대 철강업체인 알고마 스틸에 약 3억4500만 캐나다 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 이 투자를 통해 캐나다 현지에 강재 공장을 건설하고 잠수함 건조와 MRO 인프라에 활용될 고장력강 등 특수 철강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캐나다의 기초 산업인 철강업을 부흥시키고 국방 소재의 자급자족을 지원하는 핵심 전략이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캐나다의 AI 유니콘 기업인 코히어와 함께 조선·잠수함 분야 인공지능 기술 협력을 추진한다. 코히어의 거대 언어 모델(LLM)과 멀티모달 기술을 생산 계획·설계·제조 등 조선 산업 전반에 적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잠수함의 시스템 통합·지능형 자동 운용 기술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한화시스템은 캐나다의 위성 통신 선도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텔레셋과는 차세대 저궤도(LEO) 위성 통신망 구축·한국군 저궤도 위성 통신 체계 사업의 공동 개발을 논의 중이다. 또한 MDA 스페이스와는 소프트웨어 정의 위성(SDS) 플랫폼인 '오로라(AURORA)'와 한화의 방산 전자 전문성을 결합해 잠수함 작전 시 보안 통신과 데이터 복원력을 극대화하는 위성 통신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안보·감시 분야에 필수적인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 기술 고도화를 위해 PV 랩스와 협력한다. 이는 잠수함의 눈 역할을 하는 잠망경 감시 시스템의 국산화와 기술 발전에 기여할 전망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는 한화의 이러한 산업 협력 방안이 실행될 경우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캐나다 현지에서 누적 연인원 20만 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봣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요구하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 HD현대의 대규모 패키지 딜…에너지와 R&D의 시너지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과 'K-방산 원팀'을 구성해 수주전에 참여하는 한편, 독보적인 정유·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조 단위의 대규모 패키지 딜을 제안했다. HD현대는 잠수함 창정비 역량을 기반으로 캐나다 해군이 잠수함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종합 컨설팅을 제공한다. 또한 캐나다 현지 조선소에 선박 건조 노하우와 함정 기술을 직접 전수해 캐나다 조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파격적인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 이는 '물고기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전략으로 캐나다 정책 결정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협력 제안은 이번 수주전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HD현대는 잠수함 사업 기간 동안 캐나다 원유 업체와 협력해 수조 원 규모의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현재 캐나다는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원유·LNG 수출을 미국 외 지역으로 다변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이라는 안정적인 거대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은 캐나다 국가 경제에 전략적 이점이 된다. 인공 지능(AI)·바이오 등 첨단 연구·개발 분야까지 캐나다 유수 대학·연구 기관과는 공동 협력을 추진한다. 이는 단기적인 무기 거래를 넘어 양국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지향한다. ◇ 독일 TKMS의 반격과 '폭스바겐의 이탈'이라는 변수 한국의 도전에 맞서 독일의 TKMS는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NATO) 동맹국으로서의 지위와 풍부한 수출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이 제안한 212CD형 잠수함은 노르웨이와 독일 해군이 공동 도입 중인 최신 기종으로, 다이아몬드형 선체 설계를 통해 스텔스 성능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독일은 캐나다와 같은 나토 회원국으로서 정보 공유가 원활하고, 공동 훈련 및 정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운다. 또한 유럽 연합의 'EU SAFE' 기금을 활용한 금융 지원 가능성도 언급하며 캐나다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독일 측에 결정적인 타격이 발생했다. 캐나다 정부가 수주 조건으로 요구해온 자동차 분야의 투자가 독일 측 파트너인 폭스바겐(Volkswagen)의 거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폭스바겐 그룹의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 CEO는 “우리는 다른 비즈니스 거래에 활동을 연동시키지 않는다"며 독자 경영 원칙을 고수했고, 이는 독일 정부가 제시했던 '잠수함-자동차 패키지' 전략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캐나다 산업부 장관이 “근본적으로 자동차 공장 유치를 원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독일의 이러한 내부 균열은 한국에게 거대한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 반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이 정부 특사단과 함께 캐나다를 방문해 수소 경제 인프라 구축과 자동차 산업 협업을 논의하는 등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원팀'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 에너지-자원-제조를 잇는 '국가 공급망 동맹'의 가치 산업연구원은 한국과 캐나다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 파트너'라고 분석했다. 캐나다는 풍부한 자원과 첨단 기초 기술을 가졌고 한국은 이를 제품화하고 상용화하는 세계 최고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는 현재 생산되는 원유의 95%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가격 결정권 확보와 리스크 분산을 위해 아시아 시장 진출이 절실하다. 한국은 세계적인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캐나다의 액화 천연 가스(LNG)·원유 인프라 투자에 참여하고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이미 한국가스공사가 지분 5%를 보유한 'LNG 캐나다' 프로젝트는 이러한 협력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캐나다의 풍부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블루·그린 수소 생산 역량과 한국의 수소차 및 연료전지 기술을 결합하는 논의도 활발하다. 현대자동차는 캐나다 전역에 수소 연료 전지 기반의 대형 화물차와 철도 네트워크인 '수소 통로(Hydrogen Corridor)'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잠수함 수주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니켈·리튬·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채굴(캐나다)-가공(한국)-배터리·전기차 제조(양국 협력)로 이어지는 전주기 공급망 협력은 양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축이다. 북극해 방어 임무를 수행할 CPSP와 연계해 북극 지역의 인프라 개발 협력도 유망하다. 한국은 세계적인 쇄빙선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험난한 기후 조건의 북극 지역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분야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결합은 캐나다의 북극 주권 수호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카드다. ◇ '국가적 신뢰', 60조 원의 문을 여는 열쇠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의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은 올해 상반기 내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수주전은 캐나다의 안보와 경제의 미래를 30년 이상 함께할 '전략적 파트너'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한국 정부는 압도적인 성능의 장보고-III 배치-II 플랫폼을 앞세워 한화그룹의 5대 핵심 MOU, HD현대그룹의 조 단위 원유 수입 패키지, 현대차의 수소 인프라 제안 등 독일이 따라올 수 없는 '산업 생태계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다. 독일의 경제 파트너인 폭스바겐의 이탈은 한국에게 천재우보(千載一遇)의 기회가 되고 있다. 정부 역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정관 산업부 장관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을 파견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사단이 출국 전 6·25 전쟁 참전 캐나다군 명비에 헌화하며 보여준 '보훈 외교'는 양국이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피로 맺어진 혈맹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캐나다 측의 깊은 신뢰를 끌어냈다. K-방산이 이번 60조 원 규모의 대어를 낚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방위산업 역사상 명실상부한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전무후무한 쾌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60조 원의 문을 열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캐나다 국민과 정부에게 '한국은 당신들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 미래 산업까지 책임지는 진정한 동맹'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대한민국 'K-방산 원팀'이 보여주고 있는 정교한 '국가 공급망 동맹' 전략이 북극해의 빙하 아래에서 국산 잠수함의 위용을 떨칠 날을 기대해 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