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북·경남 등지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무차별 확산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가운데 기후, 친환경 등을 언급하는 미국 기업들이 대폭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이후 반(反)그린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기업들이 친환경 행보를 보이다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블룸버그통신의 기후변화 온라인 플랫폼 '블룸버그 그린'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상장사들이 올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청정 에너지 △그린 에너지 등 기후·친환경 용어들을 언급한 횟수가 318회로 집계됐다. 기업들의 기후·친환경 언급 횟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했던 2020년 2분기에 333회를 보였지만 글로벌 탄소중립 열풍으로 2022년 1분기엔 1300회까지 급증했다. 그 이후엔 언급 횟수가 조금씩 하락하는 추이를 보이다 작년엔 500회 미만으로 줄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던 작년 4분기엔 379회로 줄더니 올 1분기엔 5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S&P500 중 임의 소비재, 금융, 에너지 섹터에 속한 기업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지난해 2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임의 소비재와 금융 섹터 기업들의 기후·친환경 언급 횟수는 전년 동기대비 52% 가까이 급감했고 에너지 섹터 기업들 사이에서도 횟수가 31% 가량 감소했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은행 연합체인 '넷제로은행연합'(NZBA)를 지난해 12월 6일 최초로 탈퇴했고 이후 웰스파고,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등이 이를 뒤따랐다. 또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작년말 성명을 내고 자사의 2025년,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빅오일(글로벌 석유공룡)들이 청정에너지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러한 흐름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파리 기후협약 탈퇴, 전기차 의무 폐지 등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 지우기에 나섰다. 또 미 정부 기관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후 등을 피해야 할 용어로 지정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달초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모닝스타의 호텐스 비오이 지속가능성 리서치 총괄은 “출범한 새 행정부가 반기후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기후와 관련) 모든 것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일부 투자자들은 기후 관련 내용을 듣고 싶어하지만 기업 경영진들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예일 경영대학원의 토드 코트 교수도 “기업들 사이에서 이제 기후변화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까 말까'라는 목록에 등록됐다"며 “연방정부의 압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대신 목표를 조용히 달성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PwC가 발표한 '2025 탈탄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참연한 기업들이 5년 전에 비해 9배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조용한 진전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며 “원치 않는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후 공약을 공개하는 것을 피하고 대신 스포트라이트에서 최대한 거리를 벌려 기후 관련 진전을 이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컨설팅 기업 커니가 지난해 500명 이상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조사한 결과 90% 이상은 그린 투자를 늘리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모닝스타는 기후·친환경 등을 언급하는 기업들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업 노력이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오이 총괄은 “기업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 등의) 진전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며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