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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워터펌프 설치로 인도네시아 주민에 식수공급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지난 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수자원 인프라 지원사업인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를 마치고 기증식을 열었다고 7일 밝혔다.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이번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는 한국타이어의 인도네시아 공장이 있는 자카르타 동쪽 브카시 지역에 깨끗하고 안전한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해외 사회공헌사업이다. 브카시 지역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건기 기간에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 사태를 겪는 곳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타이어 현지 공장이 있는 나가 십타 마을에는 공장 임직원을 포함한 300여 가구가 거주 중이며, 이 가운데 50여 가구는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수자원 인프라 설치를 통해 생활용수 구입 비용을 낮춰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인프라가 열악한 현지 생활 여건을 개선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한국타이어는 기대했다. 앞서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8월 브카시군의 다른 마을에 워터펌프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올해 8월 기준 230여 가구 주민 1100여 명이 약 280만 리터(L)의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 “비행 안전은 수많은 협력의 산물”…국립항공박물관 ‘Cleared for Take-off’展

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모든 항공 규정은 피로 쓰여졌다). 모든 항공 안전 규정은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생겨난 다음에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미국연방항공청(FAA)이 항공사고 사망자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선언적 격언이기도 하다. 평소 이 섬뜩하고도 비장한 문구를 알고 있었지만 최근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기체 결함·난기류 부상 등 각종 항공 안전 사고 소식과 겹쳐지며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항공 안전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립항공박물관이 마련한 기획전시 'Cleared for Take-off: 비행을 만드는 순간들'이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국립항공박물관 3층에서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가 한 번의 비행을 위한 수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모든 절차들이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7일 기자가 찾은 전시장 프로그램은 비행기가 뜨기 전, 가장 먼저 선행되는 '하늘 읽기'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0년대 항공기상청에서 실제 사용했던 시정계(RVR, Runway Visual Rangingmeter)와 초음파 풍향 풍속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특히 활주로 가시거리를 측정하는 시정계가 조종사의 평균 눈높이인 '2.5m'를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설명에서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안전 시스템의 디테일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보안 검색 구역에서는 엑스레이 검색 장비와 2025년형 최신 휴대용 금속 탐지기를 통해 우리가 공항에서 겪는 번거로운 과정이 실은 '모두의 하늘길을 지키는 약속'임을 보여주었다. 창밖으로 무심코 지나쳤던 활주로와 계류장의 풍경도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실제 항공 현장에서 쓰이는 터그 카·항공기용 탑재 용기(ULD, Unit Load Device)와 진입각 지시등(PAPI, Precision Approach Path Indicator)이 전시돼 현장감을 더했다. 특히 소음 속에서 오직 수신호로 거대한 비행기를 지휘하는 '마샬러(Marshaller)'의 형광색 작업복과 신호봉은 조종석 밖에서 안전을 지원하는 든든한 조력자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가장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기내 안전장비 섹션이었다. 최근 기내 보조 배터리 화재 사고 등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기내 격리 보관백(Fire Containment Bags)'의 실물 전시는 매우 시의적절했다. 소방 제품 전문 브랜드 '119레오'가 제작한 이 특수 가방은 화재 위험 물질을 격리해 확산을 막는 장비로, 국토교통부가 올해 9월부터 모든 항공기에 2개 이상 탑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항공 안전 규정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위협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화장실 쓰레기통 온도가 오르면 색이 변하는 온도 감지기 같은 세심한 장치들도 흥미로웠다. 전시는 인천국제공항 소방대의 방화복과 헬멧, 1997년 객실 승무원 비상 훈련 교본 등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화재 시 승무원의 호흡을 15분간 지켜주는 보호 호흡 장비(PBE, Protective Breathing Equipment)와 24시간 공항을 지키는 소방대원들의 장비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의 헌신을 대변하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남가연 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일상처럼 누리는 항공 여행 뒤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장비, 절차가 움직이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마련됐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장을 나서며 'Cleared for Take-off(이륙 허가)'라는 짧은 교신 용어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확인과 점검이 담겨 있는지 실감했다. 각종 항공 사고 뉴스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은 지금, 이번 전시는 우리가 누리는 비행이 수많은 전문가들의 노력과 견고한 시스템 위에 세워진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승객들의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 이번 전시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우리가 누리는 비행이 얼마나 치열한 과정 끝에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편 이 기획 전시는 내년 5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항공기상청·한국공항보안·JAS·골든코리아의 자문과 자료 대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어서울·전일본공수(ANA)·유나이티드항공의 협조로 이뤄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요동치는 美 자동차 시장···현대차그룹 ‘유연성’ 빛 볼까

미국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대신 내연기관차 보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급선회하면서다. 바이든 체제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며 전기차 제조·보급에 돈을 퍼붓던 게 불과 3년 전 일이다. 갑작스럽게 판도가 바뀌자 제조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새로운 자동차 규제안을 발표했다. 제조사들이 준수해야 하는 최저 연비인 기업평균연비제(CAFE)를 기존 1갤런당 50마일에서 1갤런당 34.5마일로 낮추는 게 골자다. CAFE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연비를 개선하고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생산을 확대하도록 하는 유인이었다. 제조사가 판매하는 모든 차량의 평균 연비를 측정해 기준을 준수했는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해당 규제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연기관차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인해 일반적인 소비자가 신차 가격에서 최소 1000달러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를 제거했고 자동차 산업을 더 큰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다"고 논평했다. 수혜는 미국 업체들이 볼 전망이다.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포드 등은 연비가 떨어지는 대형차 판매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동안 CAFE 기준을 준수하지 못해 벌금을 내오기도 했다. 미국 브랜드들은 한국·유럽 경쟁사들과 비교해 전동화 전환을 늦게 시작했다. 뒤쳐진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이차전지 제조사들과 합작사를 만드는 전략 등을 구사해왔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 포드와 SK온 등이 손을 잡는 식이다. 이들은 이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탓에 전기차 생산에 속도조절을 하던 와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CAFE 규제 완화로 이들은 내연기관차 보급 쪽에 더욱 무게추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IRA 등을 통해 지원되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지난 9월부터 끊긴 상태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빅4는 GM, 토요타, 포드, 현대차·기아이다. GM과 토요타가 10%대 후반, 포드와 현대차·기아가 10% 초반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혼다, 스텔란티스 등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이들을 뒤쫓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GM(268만9346대), 토요타(233만2623대), 포드(206만5161대), 현대차·기아(170만8293대) 순이었다. 이 중 GM과 포드 등 미국 제조사들은 연비 향상 등에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대신 기존 내연기관차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방'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 등 라인업도 늘릴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토요타는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차에 계속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북미 지역 하이브리드차 생산 확대를 위해 1조원대 자금을 투자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혼다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등에 대응해 하이브리드차의 미국 생산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현대차·기아는 '유연성'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해왔다. 엑셀 수출을 시작하고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가 인기를 끌 때부터 현대차는 '세단 명가'로 유명했다. 이후 쏘나타를 거쳐 투싼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아의 대형 SUV 텔라루이드는 한때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각광받기도 했다. 현대차·기아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기차 전용 공장도 만들었다. 현대자동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지난해부터 전기차 양산을 시작했다. 추가 투자를 통해 연간 생산 규모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동시에 하이브리드차 판매도 확장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친환경차 누적판매는 올해 8월 기준 150만대를 돌파했다. 최다 판매 차종은 현대차 투싼과 기아 니로의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 덕분에 현대차·기아는 관세 장벽 등 악재도 잘 이겨내고 있다. 최근 보조금이 끊기며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지만 다른 차종들이 선전하며 전체 규모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지난달 미국 판매는 15만4308대로 전년 동월 대비 0.1% 증가했다. 차종별로 보면 전기차 판매가 4618대로 58.9% 급감했다. 대신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3만6172대로 48.9% 급증하며 이를 상쇄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3405대), 엘란트라 하이브리드(2208대) 등 다양한 차급이 골고루 팔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 정부가 CAFE 등 '오락가락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정책이 또 다시 급변할 경우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GM·포드 등이 이번 조치 이후 전기차 기술 개발을 멈출 경우 '제2의 바이든 시대'가 열렸을 때 현대차그룹과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불확실성'도 제거한 상태다. 미국은 한-미 무역협상 합의에 따라 이달 4일 자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공식 인하했다. 앞으로 관심사는 대형차를 선호하는 미국이지만 소형차 시장이 열릴 수 있을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CAFE 규제 완화를 발표하며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이들 나라를 가보면 비틀같은 작은 차들이 있다. 정말 작고 귀엽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생각했고 모두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숀 더피 교통부) 장관에게 이런 차의 생산을 즉시 승인하라고 지시했고, 여러분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기아는 캐스퍼, 레이, 모닝 등 경차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상태다. 다만 시장이 열릴 경우 해당 분야에서 보다 더 강점을 지닌 일본 브랜드들과 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SK 겸직, LG 세대교체, 롯데 유임…석화3사 CEO 인사 ‘3색’

석유화학 기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황 부진을 돌파하고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내년도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유화학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겸직을 택했고, LG화학은 7년만에 첨단소재 전문가로 수장을 교체했다. 지난해 쇄신인사를 단행한 롯데케미칼은 '유임'으로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낸다. 7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롯데케미칼과 LG화학에 이어 이달 SK이노베이션 까지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내년 석화사업 구조 개편을 이끌 진용을 갖췄다. 석화사들은 기초소재 사업을 효율화하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화사업의 수장을 통합해 양사의 정유-화학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힘을 실었다. 원유 정제부터 에틸렌 같은 기초 소재 생산, 고분자 소재를 뽑아내는 작업까지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이 사업군별로 운영 개선(OI) 작업을 이어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SK지오센트릭 CEO에 김종화 SK에너지 대표이사(사장)를 선임하며 이 같은 의도를 드러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은 운영개선(OI) 추진단 내 SK이노베이션 계열의 공급망 최적화 기능을 강화했다. 이를 계기로 SK이노베이션이 울산에서 운영해온 정유·석유화학 단지 '울산 콤플렉스(CLX)' 차원에서 생산구조 효율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사장은 SK에너지와 SK지오센트릭를 두루 경험하며 SK의 정유와 석유화학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다. 김 사장은 SK에너지 엔지니어링본부장, SK이노베이션 안전보건환경(SHE)부문장, 년 SK지오센트릭 최고안전책임자(CSO) 겸 생산본부장, 울산CLX 총괄을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SK에너지 대표를 맡았다. 김 사장은 취임 일성부터 이 같은 의지를 보였다. 김 사장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구조적 변화라는 큰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OI 추진을 통해 실행력을 키우고, 정유와 화학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7년 만에 새 CEO를 선임하며 조직 세대 교체와 첨단 소재 중심 사업 재편을 택했다. LG화학의 새 사령탑은 첨단소재 중심으로 경험을 쌓아온 김동춘 첨단소재사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맡게 됐다. 김 사장은 LG화학에서 반도체소재사업담당, 전자소재사업부장, 첨단소재사업본부장을 거쳤고, 주식회사 LG에서 경영전략과 신사업 개발을 담당하기도 했다. LG화학은 김 신임 사장에 대해 “첨단소재 사업의 고수익화, 미래 성장동력 발굴, 글로벌 고객 확대 등에서 성과를 창출하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며 “김 사장이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사업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미래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 선임 직후 내놓은 신성장 동력 개편 방향도 인공지능(AI)과 전동화(electrification)에 초점을 맞췄다. 첨단사업은 전기차용 양극재 사업을 이어가며 전자·반도체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 석유화학 사업도 기존의 수소화 식물성 기름(HVO)과 재활용 소재 등 지속 가능한 소재 뿐만 아니라 전기차·전지·가전·반도체·의료용 고부가 석화소재 공급처를 넓힌다는 목표다. 롯데케미칼은 이영준 기초소재 대표이사 겸 롯데 화학군 총괄이 계속 이끈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롯데그룹 화학군은 지난해 정기 인사에서 총 13명의 CEO 중 10명을 교체했다. 이 총괄은 첨단소재 PC사업본부장과 첨단소재 대표이사를 맡은 경험도 있다. 기초화학 중심 사업을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을 맡았다. 화학사업 내 시너지 창출과 효율화라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 그룹이 도입 3년여만에 헤드쿼터(HQ) 체제를 폐지하는 가운데서도 화학군 HQ를 포트폴리오 전략실(PSO)로 개편해 사실상 총괄 체제를 남겨두기도 했다. 석화사들별로 다른 인사 초점이 향하는 목표는 부진한 시황 극복이다. 석화사들은 이달 말까지 울산과 전남 여수, 충남 대산 석화단지별로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 규모를 감축하는 등의 사업 재편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해야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충남 대산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지난달 말 산업통상부에 재편안을 제출했고, 5일 채권단이 금융 지원 내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여수산단에서 GS칼텍스와 사업 재편안을 찾고 있고, SK지오센트릭은 울산에서 대한유화·에쓰오일과 논의 중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무안공항참사 조사위’ 독립성을 흔드는 건 누구인가

지난 4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개최할 예정이던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중간보고·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가족협의회와 국회 12·29 특별위원회의 공식적인 연기 요청과 공청회장의 안전 우려였다. 그러나, 사조위의 연기 결정은 독립성이 생명인 조사기구가 스스로 정치권의 압박과 피해자단체의 실력행사에 백기투항한 것이자 대한민국 항공안전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연기 사태의 비판점은 명확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더십 부재가 사조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 유가족과 정치권의 '선 넘는 개입'이 공청회를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대상은 국토부 장관이다. 참사 초기부터 콘크리트 둔덕 설치·관리 등 국토부 책임론이 불거졌음에도 장관은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사조위가 '셀프 조사' 논란에 휩싸이도록 방치했다. 주무부서의 비겁한 회피는 유가족들에게 '국토부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 사조위를 여론의 광장 한복판에 고립시켜 동네북이 되도록 만든 꼴이 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유가족 협의회와 국회 12·29 특위의 행보다. 이들은 현재 △공청회·중간 보고 중단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서의 피해자 참여 보장 △이재명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조위의 소속을 총리실로 옮기는 법 개정 논의는 입법부의 권한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요구 사항들은 명백히 국제 기준을 위반하고 과학적 조사를 무력화하는 '외압'이다.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하는 움직임은 결국 이 사고를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유가족들은 대놓고 “우리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조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슬픔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과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해당 규정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해 관계자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오직 데이터에 기반해 원인을 분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조사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유가족이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 농민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리는 전문가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인 사망 진단서가 정치적 외압과 여론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 방향이 옳았든 틀렸든, 전문가의 영역이 '목소리 큰 진영'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서도 유가족들은 블랙박스가 가리키는 '잘못된 엔진을 정지한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만약 유가족의 압력에 밀려 사조위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잉의 기체 시스템 결함'이나 '시설 책임'으로 결론을 수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백남기 진단서 사태'가 될 것이다. 과거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나 아시아나항공 214편 샌프란시스코 사고 때도 유가족들은 기체 결함을 주장하며 조종사 과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가족의 눈물 대신 차가운 팩트를 선택했기에 전 세계 항공업계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더 안전한 하늘을 만들 수 있었다. 국회 12·29 특위와 유가족에게 묻는다. 사조위가 국무총리실로 가든 대통령 직속이 되든, 사고 당시 조종사가 멀쩡한 엔진을 껐다는 블랙박스의 기록이 바뀔 수 있는가? 국내 항공 사고 처리 인력풀은 매우 협소한데 그 어디에도 전문가가 없어 결국 국토부에서 조사관들을 파견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생겨났던 항공사고 조사 결과들은 어떻게 수긍해 왔나? 사조위의 상급 기관이 바뀐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사고 조사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의 영역이다. 피해자가 조사관이 되는 순간 사조위는 '원인 규명'이 아닌 '책임 추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배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할까 우려스럽다. 유가족이 사건사고의 재판관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전문가를 배척하고 감성이 과학을 지배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사조위의 독립성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가장 원한다는 유가족들과 그들 곁에 선 정치인들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대기업 41% “내년 투자”…올해보다 증가

통상 리스크와 고환율 등 대내외 경영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내년도 투자 계획을 수립한 국내 주요기업 비중이 올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7일 공개한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 '2026년도 투자계획'(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 응답기업 110개)에 따르면, 내년도 투자계획 수립 비중은 40.9%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경협의 '2025년도 투자계획(응답기업 122개)'에서 계획수립 32.0%보다 8.9%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이번 2026년도 투자계획 조사 결과에서 '투자계획 미정'은 43.6%, '투자계획 없다'는 15.5%로, 응답기업 10곳 중 6곳(59.1%)이 내년 투자계획이 없거나 아직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인 2025년도 투자계획 조사 결과의 '투자계획 미정' 56.6%, '투자계획 없다' 11.4%과 비교해 투자계획을 못 세운 기업 비중이 13.0%p 줄어들었다. 반면에, 투자계획 없는 기업 비중은 4.1%p 더 늘어났다. 특히, 2025년도 투자계획에서 전년도(2024년)과 비교해 투자계획 미정 기업 비중이 6.9%p(49.7→56.6%), 투자계획 없는 기업 비중이 6.1%p(5.3→11.4%) 나란히 상승한 것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한경협 조사에서 2026년도 투자계획 수립 기업 가운데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와 비슷하게 유지(53.4%)하거나 확대(13.3%) 응답 기업이 66.7%를 차지했다. 이와 달리, 올해보다 투자 규모 축소 응답은 33.3%였다. 내년도 투자 확대 기업들은 △미래산업 기회 선점·경쟁력 확보(38.9%) △노후화된 기존 설비 교체․개선(22.2%)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반면에 2026년도 투자계획 미정 기업들이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이유로는 △조직 개편 및 인사 이동(37.5%)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 우선(25.0%)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18.8%) 등이었다. 또한,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투자계획이 없는 기업들은 그 이유로 △2026년 국내외 경제전망 부정적(26.9%) △고환율과 원자재가 상승 리스크(19.4%) △내수시장 위축(17.2%) 등을 지목했다. 기업들은 2026년 투자 3대 리스크로 △관세 등 보호무역 확산 및 공급망 불안 심화(23.7%) △미·중 등 주요국 경기 둔화(22.5%) △고환율(15.2%)을 선정했다. 또한, 국내 투자 시 최대 애로점으로 △세금 및 각종 부담금 부담(21.7%) △노동시장 규제 및 경직성(17.1%) △입지, 인·허가 등 투자 관련 규제(14.4%) 순으로 응답했다. 한경협은 올들어 법인세 부담 증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정년연장 논의 등 기업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기업들이 여전히 투자 결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했다. 이밖에 국내 주요기업들은 국내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로 △세제지원·보조금 확대(27.3%) △내수경기 활성화(23.9%) △환율 안정(11.2%) 등을 제시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공급망 불안, 외환 변동성, 각종 규제 등이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라며, “환율 안정 노력과 함께 첨단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주, 규제 개선 등 투자 활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국내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 투자계획 조사에는 인공지능(AI) 투자 계획 항목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응답기업 10곳 중 약 4곳에 해당하는 36.4%가 'AI 투자계획을 수립'(12.7%)했거나 '검토 중'(23.7%)이라고 말한 반면, AI 투자 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절반을 넘어선 63.6%를 차지했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SK하이닉스, 반도체 최고권위 ‘GSA 어워즈’ 2관왕

SK하이닉스가 세계반도체연맹(GSA)이 주최한 'GSA 어워즈 2025'에서 2개 부문을 석권했다. 7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GSA 어워즈는 GSA가 1996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반도체 산업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다. 리더십, 재무 성과, 업계 존경도 등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를 거둔 기업과 개인을 시상한다. SK하이닉스는 '연 매출 10억달러 초과 부문 최우수 재무관리 반도체 기업상'과 '우수 아시아태평양 반도체 기업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 재무관리 부문은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며, 아시아태평양 반도체 기업 부문에서는 첫 수상이다. 이번 수상은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에서 획기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루션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며 고객 수요에 적기 대응한 기술 리더십과 고객 중심 경영을 인정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 사장은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과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로서 고객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AI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클린룸 가동에 들어간 청주 M15X 팹에 장비 반입을 빠르게 진행해 내년 상반기 내 HBM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어 지난 2월 본격 착공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도 당초 계획보다 조기 준공한다는 목표이다. 연합뉴스

[김한성의 AI시대] AI 활용 국가, 한국이 만들어야 할 제3의 길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5년, 글로벌 기술 생태계를 가장 크게 뒤흔든 변화는 단순히 성능이 향상된 AI가 아니었다.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고 목표를 재구성하며 상황에 따라 절차를 스스로 설계하는 새로운 유형의 '에이전트형 AI(Agentic AI)'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AI가 더 이상 우리가 묻고 이에 대한 응답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맥락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협력적 존재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의 위상이 바뀌면, 인간이 AI와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국가가 AI를 사회에 통합하는 전략 역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각국은 저마다의 여건에 맞춘 AI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중이다. 미국은 초거대 모델 경쟁을 기반으로 명령형(Command-Based) AI 전략을 강화한다. 우수한 모델을 만들고, 사람이 명령을 내리면 AI가 수행하는 구조다. 한편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와 통합적 국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관리형(Manager-Based) AI를 구축시킨다. 도시 운영, 사회관리, 산업 정책까지 AI가 집단적 효율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두 모델 모두 강력하지만, 공통점으로 인간과 AI가 함께 사고를 확장하는 구조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한국은 이 두 모델과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미국처럼 막대한 원천기술 투자를 지속하기 어렵고, 중국처럼 국가 단위로 데이터를 일원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AI 기술이 고도화된 지금, 경쟁의 중심은 “누가 더 큰 기술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사회와 결합시키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즉, 서열 경쟁이 아니라 문명적 선택의 경쟁, 다시 말해 새로운 형태인 제3의 길이 열리고 있다. 한국이 선택할 전략적 방향은 협력형(Cooperative) AI 패러다임이다. 한국 사회는 높은 문해력, 빠른 적응력, 촘촘한 소통 구조 등 협업 중심의 문제 해결 방식에 익숙하다. 이는 인간과 AI가 판단을 나누고 서로를 보완하는 Agentic AI의 작동 원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한 디지털 행정, 의료보험, 교육 인프라 등 한국의 전 국민적 표준화 경험은 AI 협업 체계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즉, 한국은 초거대 모델 경쟁보다 기술을 사회운영 방식과 결합해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 강점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다. 이 협력형 패러다임을 국가 전략으로 실체화하려면 개인 → 조직 → 데이터 → 신뢰로 이어지는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첫 정책과제는 전 국민 AI 협업역량 표준(K-AI Collaboration Standard)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코딩 교육의 확장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AI와 어떻게 대화하고 판단하며 공동 작업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기준이다. 예컨대 공공기관은 문서작성 과정에 AI 협업 절차를 도입하고, 교육 현장은 'AI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채택할 수 있다. 이는 AI 리터러시를 단순한 교육 과제가 아니라 국가 인적자본 전략의 중심 축으로 재정의하는 일이다. 이러한 협업 역량의 기반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산업·행정·의료·교육 등 각 분야의 업무 구조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 둘째 정책과제는 산업·행정·의료·교육 등 주요 영역의 업무 구조를 AI 협업 프로세스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는 기존 업무에 AI를 단순히 덧붙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업무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각 부문마다 역할·책임·안전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일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으며, 이를 조정할 상시적·전문적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현재 존재하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국가 AI의 비전과 원칙을 정하는 전략·심의 기능을 담당한다면, 실제 행정·산업 현장에서 AI 협업 프로세스를 구현·조정할 풀타임 전담 실행조직—'AI 활용 전략본부(가칭)'—이 별도로 필요하다. 부처 단위의 분절된 정책 체계만으로는 협력형 AI 패러다임의 구조적 확장을 감당하기 어렵다. 셋째 정책과제는 데이터 신뢰 프레임워크(K-Data Trust Framework)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데이터를 일원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기관·기업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고 교환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협력형 AI는 정답형 데이터보다 맥락형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이 데이터가 안전하고 투명하게 흐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수다. 넷째 정책과제는 AI 자율성 증가에 대응하는 책임성·투명성 체계(Algorithm Accountability System)를 구축해야 한다. 알고리즘 감사, 설명 가능한 AI 기준, 시민 참여형 평가 시스템 등은 한국형 협력 패러다임을 국제적 신뢰 기준으로 발전시키는 핵심 토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정책들이 결합되면 한국은 원천기술 경쟁에서 1·2위를 다투지 않더라도, AI 활용의 질과 사회적 수용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즉, 기술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라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AI는 이제 자율적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은 그 구조를 실현할 사회적 기반과 정책적 의지를 모두 갖춘 드문 나라다. 제3의 길은 선택지가 아니라, 한국이 갖춘 조건을 현실로 전환하는 전략적 방향이다. AI 시대의 경쟁은 서열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며, 한국은 그 설계를 통해 미래 문명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김한성

“AI 서비스서 통화 내용이 샜다”...통신사 보안체계 ‘전면 점검’ 불가피

LG유플러스의 인공지능(AI) 통화 요약 서비스 '익시오'에서 이용자들의 통화 내용이 다른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최근 SK텔레콤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KT의 서버 해킹 및 무단결제 사고에 이어 통신사 보안사고가 연달아 터지며 보안 체계 전반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지난 2일 오후 8시부터 3일 오전 10시 59분까지 '익시오'를 신규 설치하거나 재설치한 이용자 101명에게 다른 고객 36명의 통화 요약문, 통화 상대 전화번호, 통화 시각 등이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주민등록번호·여권번호 등 고도의 민감 정보나 금융 정보는 빠져 있었으며, 법정 신고 요건(유출 인원 1000명 이상 또는 민감정보 포함)에 해당하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화 내용이라는 민감한 정보가 약 14시간 동안 외부로 노출된 데다, 회사 자체 감지가 아닌 이용자 신고로 사고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LG유플러스는 이번 사고가 해킹이 아닌 내부 시스템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AI 통화기록과 요약 파일을 저장하는 익시오 서버 기능 개선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10월에도 내부자 계정을 관리하는 권한관리 시스템(APPM) 서버가 해킹된 정황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했다. 이는 KISA가 7월 화이트해커 제보를 통해 해당 공격 가능성을 통보한 지 약 3개월 만에 이뤄진 조치다. 당시 미국 보안매체 프랙은 해커 조직이 외주 보안업체 시큐어키를 침해해 확보한 계정으로 LG유플러스 내부망에 침입했으며, 이로 인해 8938대 서버 정보, 4만2256개 계정, 167명의 직원 정보가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다만 회사는 관련 정보가 유출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통신사들의 보안 사고는 올해 들어 연달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SK텔레콤에서는 가입자 대부분에 해당하는 2324만 명의 휴대전화번호·가입자식별번호(IMSI)·유심 인증키(Ki·OPc) 등 25종 정보가 해커에게 넘어가 '유심 교체 대란'이 벌어졌다. KT에서도 지난해 10월까지 관리 사각지대에 있던 불법 기지국이 해커의 침입 통로가 된 사실이 확인됐고, 올해 3~7월에는 악성코드 감염 서버 43대를 발견하고도 이를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채 자체 조치한 사실이 드러나 '허술한 보안 관리' 논란이 일었다. 이어 KT 가입자 362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2억4000만원 규모의 소액결제를 당한 초유의 사고도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국민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기간 산업인 통신사들의 보안 역량이 현재와 같은 수준에 머물 경우, 통신 서비스와 AI의 결합이 가속화되면서 보안 취약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최근 통신 3사를 대상으로 사전 예고 없는 '실제 해킹 방식'의 불시 점검을 시행하는 등 보안 강화 압박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쿠팡 정보 유출 사태 등을 계기로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이 형식적으로 운영돼 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인증제 사후 관리와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LG유플러스, AI 통화 앱 ‘익시오’ 고객 36명 통화정보 유출(종합)

LG유플러스가 인공지능(AI) 통화 애플리케이션(앱) '익시오'의 통화정보가 유출됐다. LG유플러스는 고객 36명의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 다만 이번 사안은 해킹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6일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최근 익시오 서비스 운영 개선 작업 과정에서 캐시 설정 오류로 고객 36명의 일부 통화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시각, 통화내용 요약 등 정보가 다른 고객 101명에게 일시적으로 노출됐다. 유출 추정 시간은 이달 2일 오후 8시부터 3일 오전 10시 59분 사이다. 이 시간 동안 익시오를 새로 설치하거나 재설치한 이용자 101명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 개인별로는 1~6명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노출됐다. LG유플러스는 통화기록과 통화요약 파일을 저장하는 '익시오' 서버의 기능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오류로 정보 유출이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의 정보가 아닌 내용을 발견한 이용자가 고객의소리(VOC)를 통해 회사 측에 알리면서 LG유플러스도 상황을 인지했다. LG유플러스 측은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등 고유 식별정보와 금융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LG유플러스는 이달 3일 오전 10시께 고객 신고로 문제를 인지했고, 즉시 원인 파악과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노출된 통화 정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도록 30여분만에 조치를 완료했고, 6일 오전 9시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를 마쳤다. 이후 해당 고객 전원에게 전화로 안내를 진행하고, 연락이 어려운 고객에게는 문자로 사실을 알렸다. LG유플러스 측은 “이번 사안은 해킹과 관련이 없다"며 “관계기관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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