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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 ‘리니지’ 저작권 침해 소송 결과 엇갈려…부정경쟁행위 핵심 쟁점으로

엔씨소프트가 자사 대표작 '리니지 시리즈' 지식재산권(IP) 보호를 위해 진행 중인 소송전의 결과가 엇갈리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두 건 모두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아 부정경쟁행위 유무가 희비를 가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이번 법적 분쟁이 게임 간 유사성 기준 마련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롬(ROM)'의 판결 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30일 법조계와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5-1부(송혜정·김대현·강성훈 부장판사)는 웹젠에 'R2M' 게임 서비스 중단과 함께 손해배상금 169억1820만9288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국내 게임업계 저작권 분쟁 사상 법원에서 인정된 가장 큰 배상액이다. 앞서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과 벌인 소송전과는 다른 결과다. 엔씨는 지난 1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를 모방했다는 이유로 제기한 저작권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중지 청구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3민사부(박찬석 부장판사)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두 재판부 모두 엔씨가 주장한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표절 근거로 제시한 각 게임 구성요소를 다수 게임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규칙으로 본 것. 게임물 간 유사성이 사실상 장르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단순 유사성만으론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는 타인의 투자·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부정하게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저작권 침해와는 서로 다른 법적 근거를 갖지만, 상호보완적 측면이 있어 동시에 소송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통상 게임의 배경·규칙·전개방식 등은 아이디어로 간주돼 저작권법이 규정하는 보호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은 이용자 혼란을 초래하거나 시장 경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포함해 저작권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할 수 있다. 즉, 창작물에 대한 원고의 성과와 게임 간 유사성이 시장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입증하는 게 관건이다. 먼저 '아키에이지 워'는 개발·출시가 리니지 시리즈의 명성과 시장 점유율을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엔씨가 제시한 증거들은 주로 사용자경험(UI)·게임 시스템 등 구성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재판부는 이를 장르의 보편적 특성으로 해석한 것. 재판부는 “엔씨는 리니지2M의 구성요소와 진행방식이 창작성을 가진다고 했지만, 이와 유사한 방식들이 이미 선행 게임에 존재한다"며 “엔씨의 표절 근거는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는 공통요소로써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R2M'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엔씨의 손을 들어줬다. 웹젠이 게임 출시 이후 게임 내용을 일부 수정한 건 사실이지만, 증거를 종합했을 때 부정경쟁행위가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각 구성요소의 선택·배열·조합이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 △'리니지M'과의 실질적 유사성 △엔씨가 7년 동안 1000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자한 점 △게임 시스템의 명성과 고객흡인력 등을 고려해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2심에서도 이같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18일 1심 2차 변론기일이 예정된 카겜·레드랩게임즈와의 '롬' 법적 분쟁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엔씨는 지난해 2월 이 게임이 '리니지W'의 콘셉트·시스템 등을 다수 도용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선 두 소송과의 차이점은 출시 시점이다. 롬의 경우, 정식 출시 이전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란 시각이다. 이는 엔씨의 대응 기조가 강경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되는데, 관련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경쟁작 출시로 인한 이용자 이탈을 막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일종의 '경고 조치'인 셈. 업계는 3개 소송의 판례가 향후 MMORPG 장르 내 저작권 기준을 정립하는 중요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향후 대법원 판결이 예정된 R2M 소송이 바로미터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 대법원 판결은 법률 해석을 넘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높아 유사 사례 발생 시 위법 여부를 판가름하는 우선척도로 작용하기 때문. 이철우 게임 전문 변호사(문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R2M의 대법원 판결 결과가 아키에이지 워와 롬의 판결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R2M 판결의 경우, 리니지라이크류 개발 방향 변화 계기가 된 건 맞지만, 게임 간 표절에 대한 부정경쟁방지법의 법리를 완전 확립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롬은 앞선 두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출시가 예정됐단 점에서 개발진이 유사 소송 제기 가능성을 인지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이나 민법의 불법행위 책임 영역에서 위법성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추가 법리 확립이 필요한 만큼 아키에이지 워의 항소심 향방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AI 가전=삼성’ 주도권 굳히기 나선다…비스포크 AI 라인업 공개

삼성전자가 진화된 '비스포크 AI' 가전을 앞세워 글로벌 AI 가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대한다. 보안과 연결성을 핵심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며,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웰컴 투 비스포크 AI' 미디어 행사를 열고, AI 기술이 접목된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이번에 공개된 제품은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 냉장고 △2025년형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2025년형 올인원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AI 스팀' 등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신제품에서 가장 강조한 요소는 '연결성'이다.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가전 간 연결을 강화해, 소비자가 더욱 직관적이고 편리한 사용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신제품에 탑재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스마트싱스에 연결된 모든 가전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다. △와이파이 △직비(Zigbee) △매터 스레드(Matter Thread) 등 다양한 프로토콜을 지원해, 별도의 허브 없이도 조명과 스위치 같은 사물인터넷(IoT) 기기까지 제어 가능하다. 보안 역시 대폭 강화됐다. 삼성전자는 기존 보안 솔루션인 '녹스(Knox)'를 발전시켜, AI 가전에도 '녹스 매트릭스(Knox Matrix)'를 적용했다. '녹스 매트릭스'는 블록체인 기반의 보안 기술로, 가전제품 간 보안 상태를 상호 점검하고, 외부 위협이 감지될 경우 자동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비밀번호와 인증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를 별도의 보안 칩에 저장하는 '녹스 볼트(Knox Vault)'도 가전제품에 최초로 적용됐다. 여기에 양자컴퓨팅의 보안 위협을 대비한 '양자 내성 암호(PQC)' 기술도 도입해 보안 수준을 한층 높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AI 가전=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비스포크 AI 가전이 글로벌 시장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 사업부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AI 기반 맞춤형 서비스와 에너지 절감 기능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네이버 쇼핑과 쿠팡에서 인기 있는 AI 가전 633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의 제품이 스마트폰 연동과 에너지 효율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신혼부부나 1인 가구 소비자들 사이에서 '축하 선물'로도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AI 가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가전 시장이 전반적인 수요 부진을 겪는 가운데, 여러 제조사가 AI 기술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며 시장 확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LG전자는 AI를 '공감지능'으로 정의하고, 사용자의 불편을 스스로 인식해 해결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 가전 브랜드 로보락도 AI 기반 자율 주행 시스템을 적용한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며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AI 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대표 브랜드로 각인시키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삼성전자는 보안과 연결성을 더욱 강화한 비스포크 AI 가전을 앞세워 시장 주도권을 확립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은 '웰컴 투 비스포크 AI' 미디어 행사에서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보안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가장 큰 강점은 보안"이라며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했고, 올해 확실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종승 삼성전자 DA사업부 개발팀장(부사장)도 이날 행사에서 “삼성전자는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보안과 연결성을 강화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러한 혁신이 AI 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일단락…최윤범 다음 과제는 대타협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면서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지속된 경영권 분쟁이 우선 일단락됐다. 다만 최 회장 측이 완승을 거둔 것은 아니다. 고려아연 이사회에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진입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결국 경영권을 확보한 최 회장이 분쟁 상대방과 대타협을 진행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면서 고려아연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고려아연은 12조52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7235억원으로 2023년 대비 9.64% 늘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서 견조한 영업실적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이익은 1948억원으로 2023년 5334억원 대비 63.48% 줄었다. 이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급증한 차입금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고려아연은 MBK·영풍 측의 공개매수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차입금을 크게 늘렸다. 2023년 말까지 9259억원 수준이었던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연말 4조9721억원으로 5배 넘게 급증했다. 또한 비철금속 업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의 세부 매출을 살펴보면 아연(30%), 은(29%), 연(18%)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연·연의 단가가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고려아연의 수익성도 개선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고려아연의 존재감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산물이 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중국이 텅스텐,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인듐 등 5개 품목과 관련 기술에 대해 수출 통제를 발표했을 때도 정부는 가장 먼저 고려아연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5개 품목 중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은 모두 안정적인 국내 생산과 공급이 이뤄지고 있으며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이 중 3개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인듐은 인공지능(AI)용 반도체 기판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로, 고려아연은 지난해 92t(톤)을 생산했으며 이는 글로벌 생산량의 8.5%에 해당한다. 수익성·업황 악화와 공급망에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정기 주총에서 우선적인 경영권의 향방이 결정된 만큼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이 대타협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번 정기 주총에서 이사 수 상한 정관이 도입됐고 그 상한만큼 이사가 새롭게 선임됐기에 단기간에 이사회 구성을 크게 바꾸기가 어려워졌다. 양 측이 2~3년 동안 본안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더라도 이번 정기 주총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 때까지 최대주주는 MBK·영풍 측이지만 최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 내부 구도 역시 양 측 모두에게 편하지 않다. 기존에 장형진 영풍 고문만 홀로 버티던 고려아연 이사회에 이번 정기 주총 결과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 권광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 3명이 새롭게 합류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이사회가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측 5대 1에서 11대 4로 재편됐다. MBK·영풍 측은 이사회 내부에서 운신의 폭이 확대됐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고, 최 회장 측도 반대파가 늘어난 만큼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할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양 측이 격렬하게 여론전과 소송전에 집중한다면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양 측이 한 걸음씩 물러나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영권을 수성한 최 회장 측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진단이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1월 임시 주총 직후에 MBK 측에 먼저 화해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MBK·영풍 측이 입장을 돌린다면 극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정기 주총 이후 양 측이 2~3년씩 소송을 진행하면서 불편하게 동거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양 측이 고려아연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씩 타협을 진행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 “한국선 자발적 보고 어렵다…더 강한 면책 제도 필요”

“게이트에 항공기를 택싱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모두 지켰지만 날개를 긁은 비행팀과, 무시했지만 사고 없이 게이트에 진입한 팀이 있었습니다. 자, 과연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요. 행동입니까, 결과입니까? 조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공정 문화(Just Culture)'가 필요합니다."(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전무)) 대한항공의 항공 안전 총괄 임원이 한국 항공업계의 안전 보고 시스템과 문화의 구조적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조종사·정비사·객실 승무원의 실수 데이터를 통해 사고를 예측하려는 인공 지능(AI) 기반 시스템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한국에는 면책 제도가 활성화 돼있지 않아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조라고 비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초점이 처벌이 아니라 재발 방지에 맞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8일 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전무는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안전센터 개원식에서 '현대적 안전 시스템의 영향력(Impact of Modern Safety Systems)'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진행했다. 트로이대학교 항공자원관리학과 출신인 월시 전무는 25년 이상의 항공 안전 분야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로, 델타·아틀라스·하와이안항공에서 CSO 등 안전 관리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항공 안전의 세계적 기준은 사고 이후 대응보다 사고 전 징후를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 시스템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유럽 항공안전청(EASA)은 직원들이 실수를 보고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공정 문화에 입각한 데이터 기반의 예측 시스템을 강화해왔다. 한편 국내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찍힌다거니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월시 전무는 이 자리에서 실수를 숨기게 만드는 기존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이 안전 시스템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더욱 강력한 면책 기반 자발적 보고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Korea needs stronger immunity based, voluntary reporting programs)"고 언급했다. 국내에는 아직 이와 같은 문화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을 외교적인 수사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데이터를 인용하며 공정 문화와 신뢰 없는 보고 체계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프로그램을 곁들여도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월시 전무는 “사고는 눈에 보이는 빙산의 꼭대기일 뿐이며, 그 아래 수많은 '아찔한 순간(Near-miss)'들이 놓여 있다"며 “이 데이터를 포착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구성원들이 두려움 없이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인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국내 항공 안전 체계는 '형식은 있지만 신뢰는 없는 시스템'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이날 월시 부사장은 새로운 통합 안전 관리체계(SMS 2.0)의 핵심으로 '인적 오류·위기 관리 보고와 분석 데이터 시스템(HFACS, Human Factors/Risk Management Reporting and Analysis Data System)' 구축 계획을 소개했다. 이는 조종사·객실 승무원·정비사의 행동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수집·분석해 인간 오류 트렌드를 축적함으로써 상황에 맞게 파악하고 사고를 예측하려는 전략을 담고 있다. 그는 특히 “인공 지능(AI)의 영향력은 명백하다(The impact of AI should be obvious)"며 AI 기반 예측 분석이 미래 항공 안전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도 사람이 실수를 '말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월시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번 발언은 자칫 형식적으로 흐르기 쉬운 한국의 항공 안전 관리 체계에 대해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대한항공 고위 임원이 공개 석상에서 이 같은 의견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내국인 임원이었다면 쉽사리 꺼내지 못할 이야기였겠지만 월시 전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안주연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법 박사는 저서 '저스트 컬처(Just Culture)'를 통해 “항공 실무자들이 신뢰하고 안전 위험을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항공 안전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직 대한항공 기장인 권보헌 한국시스템안전학회장(극동대학교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은 “처벌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사고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화세미텍, HBM 시장 진출…국내 반도체 체인 다변화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이 SK하이닉스와 HBM용 반도체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변화가 본격화 중이라는 분석이다. 그간 해당 장비는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단독으로 공급해왔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신규 벤더의 시장 진입이라기보다 반도체 장비 시장 내 공급망 전략이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TC본더 사업을 위한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유증신주는 100% 모회사인 한화비전이 전량 인수한다. 마련하는 자금은 최근 SK하이닉스와 체결한 계약을 위해 사용한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와 최근 HBM 패키징 공정에 사용되는 TC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엔비디아(NVIDIA) 공급체인'에 합류했다. TC본더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조에서 핵심 장비로 꼽힌다. 이번 계약은 2023년 첫 공급 이후 두 번째 계약으로, 후발 주자로서 한화세미텍이 일정 수준의 기술 신뢰성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의 TC본더는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의 오랜 협력 관계 속에서 TC본더 개발과 공급을 선도하며, HBM2E부터 HBM3E까지의 장비를 안정적으로 납품해왔다. 2025년 초에도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 108억원 규모의 HBM3E용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2024년까지 누적 공급액은 3500억원을 넘는다. 이에 한화세미텍이 계약을 확보하며 SK하이닉스의 공급 체계에 변화가 생긴 변화의 핵심은 '단일 벤더 체제'에 대한 재평가다. HBM 시장이 고속 성장하고 기술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 병목이나 리스크 발생 시 대체 가능한 벤더를 확보해두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복수 벤더 전략이 조달 안정성과 기술 유연성 확보를 위한 사실상의 전제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한미반도체의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시장 구조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미반도체가 여전히 기술력과 신뢰성 면에서 독보적이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고객사인 SK하이닉스가 전략적 판단 하에 조달 구조를 재설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화세미텍의 기회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세미텍은 원래 디스플레이 장비에 주력해왔으나, 2020년대 초반부터 반도체 장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2023년부터는 TC본더 개발에 집중 투자했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공급사로서의 기술 검증을 통과했다. 여기에 더해 한화비전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본력을 뒷받침하면서, 생산능력 확대와 수주 대응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자금력이 결합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HBM 장비를 넘어 다른 장비 카테고리로도 복수 벤더 전략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검사장비, 테스트 소터, 번인 시스템 등에서도 기술 의존도가 높은 단일 벤더 체제를 유지할 경우, 조달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인텔, 마이크론, TSMC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핵심 장비에 대해 복수 벤더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반도체 기업 역시 유사한 조달 전략을 본격화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시장이 기술력 중심의 경쟁에서, 전략적 유연성과 공급망 대응력을 포괄하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술력은 여전히 핵심적인 경쟁 요소지만, 그것만으로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고객의 전략을 읽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조직력과 자본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애플·HP·레노버 ‘기부 제로’…외국계 전자기업 사회공헌 기대이하

한국 시장에서 소비재를 주로 판매하는 외국계 전자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많게는 수천억원대 이익을 내면서 기부금은 거의 내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부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보편화된 시점에 사회 환원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이 국내 고용 창출이나 설비투자 측면에도 거의 기여하지 않는데다 본사 등에 배당에는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부각된다. 30일 외국계 전자기업 12개사의 최근 회계연도 기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전체 영업이익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0.55%로 집계됐다. 삼성전자(6.6%)와 비교해 12분의 1 수준이다. 대상 기업은 △애플코리아(이하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중, 0%) △다이슨코리아(0.8%) △캐논코리아(1.3%) △HP코리아(0%) △소니코리아(1.3%) △한국레노버(0%) △한국후지필름비즈니스이노베이션(0.02%) △한국화웨이(0.3%) △한국엡손(0.3%) △파나소닉코리아(1.3%) △밀레코리아(0.6%) △니콘이미징코리아(0.7%) 등이다. 특히 애플코리아, HP코리아, 한국레노버 등 3개사는 기부금 지급액을 표시하지 않아 '0원'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같은 기간 각각 3013억1300만원, 71억8027만원, 59억7543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한국후지필름의 경우 92억4575만원을 벌어 기부금으로 250만원을 냈다. 다이슨코리아(기부금 2억45만원)와 캐논코리아(기부금 3억600만원)를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은 수십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려 수천만원 수준을 기부했다. 전기 대비 기부금 액수를 늘린 기업은 다이슨코리아(1억8760만원→2억45만원), 소니코리아(2000만원→3098만원), 파나소닉코리아(1930만원→3204만원), 한국화웨이(0원→2000만원), 니콘코리아(439만원→1254만원) 5개다. 본사 등에 하는 배당에는 다들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12개사의 배당금 지급액은 총 4267억930만원으로 기부금 합계(6억1879만원)의 690배에 달한다.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 지급액(배당성향)이 100%를 넘어서는 곳은 애플코리아, 소니코리아, 한국엡손, 파나소닉코리아, 한국후지필름 등이다. 대상 기업 중 애플코리아, 다이슨코리아, HP코리아, 한국레노버, 한국화웨이 5개사는 유한회사다. 업계에서는 외국계 전자업체들이 국내에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생활가전, 복합기, 카메라 등 '소비자 친화형' 제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B2C 제품을 팔아 전국민과 접점이 높은 브랜드가 대부분인 만큼 일정 수준 사회공헌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코리아와 다이슨코리아의 경우 매출액을 각각 7조8376억원, 7943억원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글로벌 공룡' 애플코리아는 세금 회피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회사는 최근 회계연도(2023년 10월1일~작년 9월30일) 감사보고서에서 매출액이 7조8376억원인데 매출원가가 7조2268억원에 달한다고 적었다. 전기에도 매출 7조5240억원 중 원가가 6조6803억원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 애플코리아가 매출원가율을 뻥튀기하는 방식으로 영업이익을 낮춰 세금을 줄이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인앱결제' 관련 수익을 제대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애플코리아 측은 “애플이 사업을 운영하는 각 국가에서의 소득은 과세 대상"이라며 “배당 전 이익에 세금을 납부하고 배당금 지급 시에도 한국 세법에 따라 추가 세금을 낸다"고 공식 입장을 낸 상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롯데, 취약계층 사회공헌 앞장서…‘마음이 마음에게’

롯데가 '마음이 마음에게' 슬로건 아래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아동, 나라사랑 분야에 초점을 맞춘 지원 프로그램으로 고객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8일 롯데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 롯데는 충남 태안군에서 농어촌 조손가정을 지원하는 '조손 가꿈' 완공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사업은 전국 농어촌 지역 조손가정 50가정의 노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조부모와 손자녀에게 추억 여행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조손가정의 복지 공백을 줄이고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마련해주는 데 기여했다. 롯데는 지역아동센터 환경개선 사업인 'mom편한 꿈다락'도 활발히 추진 중이다. 문화체험 및 아동 역량 강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 군산 회현면 1호점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 양평, 천안, 대전 등 2024년까지 총 93개소 조성을 완료했다. 또한 2017년부터는 어린이들의 놀이 환경 조성과 교육 환경 불평등 해소를 위한 'mom편한 놀이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울산 남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 29호점을 오픈했으며, 이번 달에는 의정부에 30호점을 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롯데는 지난해 11월 제13회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한편, 롯데는 지난해 11월 15일 서울시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에서 대학생 봉사단 '밸유 for ESG'(이하 밸유 봉사단) 3기 발대식을 개최했다. '밸유'는 'Value Creators in Universities'의 줄임말로, 롯데지주가 월드비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2018년 출범한 프로그램이다. 밸유 봉사단 3기는 이번 달부터 3개월간 아동 대상 공정무역 교육, 지역사회 어르신 안전 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활동, 업사이클링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1월 14일에는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에서 장난감 업사이클링 봉사활동과 프로젝트 루프 관련 키링 제작 등 자원순환활동을 체험했다. 이날 직접 분리하고 소독한 장난감은 분해작업을 거쳐 플라스틱 재생 소재로 다시 활용될 예정이다. 롯데는 국가에 헌신하는 국군 장병과 가족들이 존중받는 문화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육군본부 주관 '자랑스러운 육군 가족상'에 상품과 문화체험 활동을 후원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21일에는 계룡대 공군본부에서 공군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컨테이너형 독서카페 '청춘책방'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청춘책방'은 군부대 장병들의 자기계발을 위한 공간을 조성해주는 사업이다. 업무협약식 이후에는 '청춘책방 북 콘서트'를 개최해 김대호 아나운서와 박세리 골프감독이 장병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롯데는 미 육군 지원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 1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험프리스 기지를 방문해 '2023 험프리스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행사를 지원했다. 이 행사에는 미군 및 미군 가족 1000여 명과 함께 험프리스 기지 사령관 및 롯데 관계자가 참석했으며, 롯데는 롯데웰푸드 '간식자판기' 선물세트 1000개(약 1500만원 상당)를 후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KAU 항공안전센터’ 개원…“산·학·연·민·관·군 항공 안전 허브 역할 충실히 수행”

한국항공대학교가 대한민국 항공 안전 분야의 산·학·연·민·관·군 허브 역할을 할 'KAU 항공안전센터'(이하 항공안전센터)를 설립했다. 한국항공대는 이곳을 통해 5대 핵심 분야에 대해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연구 결과를 국가 항공 정책 수립에 제언한다는 방침이다. 28일 한국항공대학교는 항공우주센터 비전홀에서 항공운항학과 이장룡 교수를 수장으로 하는 항공안전센터를 개원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전세계 항공 여객 수는 2022년 32억명이었으나 코로나19 종식 이후 이듬해에는 42억명으로 증가했고, 정기 상업 운송 항공편수도 같은 기간 3100만편에서 3500만편으로 약 13% 늘어나는 등 지속적으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한편 항공 사고 건수는 25% 가량 많아졌다. 지난 10년 간 항공 사고 증감은 운항편수 증감과 비례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2023년 이전 5년 간 정기 항공 운송 항공 사고는 총 9건이었고 사망 사고는 없었다. 특히 2013년 샌프란시스코 사고 이후 항공 무재해 상태를 이어왔으나 작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2216편이 활주로에서 이탈해 대참사가 발생했고, 올해 1월 28일에는 김해국제공항에서 에어부산 391편이 보조 배터리 화재로 반소됐다. 이날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항공안전센터 설립 배경은 안전을 위한 교육·기술 ·정책 연구 등의 모든 기능을 통합해 수행토록 하기 위함"이라며 “안전 전문가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본 센터는 국내 항공업계의 현안과 정부의 수요, 안전에 대한 국제적 표준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산·학·연·민·관·군의 허브로서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무결점(제로 디펙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총체적 노력은 시장 확대에 따라 계속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장룡 한국항공대 항공안전센터장(항공운항학과 교수)은 “항공 분야에는 큰 재해가 발생한 이후에서야 시정 조치가 이뤄진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블러드 프라이어티(Blood Priority)라는 표현이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대한민국 항공 안전의 아카데믹 리더'라는 사명감 아래 안전을 위한 기술·문화·교육에 핵심 기여는 비전을 갖고 항공 안전 기술 정책을 개발하고, 항공 안전 문화의 공유·확산과 안전 보안 전문 교육 선도 등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항공안전센터는 안전·보안교육원, 안전관리기술연구실, 정책연구실 등 20여개 조직으로 구성돼 △안전 관리 △운항 기술 △운항 안전 시설 △항공 교통 관제 △안전성 인증 △항공 안전 정책 등 5대 핵심 분야에 대해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연구 결과를 국가 항공 정책 수립에 제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국내·외 항공 종사자 안전 보안 전문 교육을 수행하는 한편, 산·학·관 항공 안전 네트워크 강화·혁신 성과 공유 등을 중장기 계획 하에 추진할 예정이다.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 국내 항공 안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혁신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며 “정부는 항공안전혁신위원회를 구성해 항공 안전을 더욱 확보하기 위한 제도·기술·운영·시설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한국항공대의 항공안전센터 개원은 향후 국가 항공 안전 혁신 대책의 실효성과 지속성을 뒷받침하고, 대한민국 항공 안전 토대를 더욱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유종석 대한항공 부사장은 “항공안전센터는 최신 운항 기술과 안전 관리 체계와 관련 정책을 연구해 항공 안전 분야에서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내고 산업계와 학계, 정부 간 협력을 통해 항공 안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사도 적극 동참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 전 항공우주정책대학원장)은 “안전이라는 목표와 현실적 여건의 격차가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리스크 발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며 “항공 안전 전문성 제고 차원에서 센터의 개원은 그간 관련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했던 사람으로서 아주 기쁜 일"이라고 전했다. 황 원장은 “항공안전기술원장으로서 한국항공대 항공안전센터와 적극 협력하고, 업계 임원들과 의견을 모아 우리나라 항공 안전 사고 제로화를 이루는데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롯데케미칼, 日 레조낙 지분 매각으로 2750억 확보

롯데케미칼이 일본 합작사 레조낙(Resonac Holdings Corporation, 구 쇼와덴코) 지분을 매각하며 유동성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지주는 28일 롯데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던 레조낙의 지분 4.9% 전량을 2750억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으로 롯데케미칼은 2020년 지분 취득 이후 배당금 포함 약 800억원 수준의 투자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투자 회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 악화와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롯데케미칼은 그룹 차원의 유동성 위기 대응 전략에 따라 비핵심 자산 매각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조낙 지분은 전략적 투자보다는 재무적 투자 성격이 강했던 만큼, 이번 매각은 “선택과 집중" 기조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된다. 롯데케미칼은 “레조낙과의 사업 협력은 지분 매각 이후에도 지속된다"며 “이번 매각은 비효율 자산을 정리해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최근 연이어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자회사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지분 49% 중 25%에 대해 PRS(Price Return Swap) 계약을 체결해 6500억원을 확보했고,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약 66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이 두 건만 합쳐도 약 1조3100억원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셈이다. 이외에도 지난해 말에는 파키스탄 법인을 979억원에 매각했고, 국내에서는 저수익 기초화학 라인을 셧다운하는 등 고정비 절감을 통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최근 롯데케미칼은 유가 및 납사 가격의 변동성과 글로벌 수요 둔화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이다. 여기에 잇따른 해외 대형 투자 프로젝트(LCI, 롯데GS화학 등) 집행과 맞물려 재무 부담도 가중됐다. 이에 롯데그룹 차원에서도 이 같은 유동성 압박 해소를 위해 전방위적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롯데렌탈 지분 56.2%를 약 1조5800억원에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했고, 이에 앞서 롯데웰푸드의 증평공장, 코리아세븐의 ATM사업, 롯데쇼핑의 부동산 자산 등도 잇달아 정리됐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지난해 자산재평가를 통해 각각 8조3000억원, 8조7000억원 규모의 자산 가치를 상향 조정했고, 이로 인해 양사의 부채비율도 각각 165%→115%, 190%→129%로 크게 개선됐다. 한편, 석유화학 업황 반등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롯데케미칼은 고부가 소재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수소, 배터리 소재, 리사이클 등 미래 성장 분야로의 투자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자산의 효율성과 현금 흐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경영 기조를 조정 중이다. 시장 관계자는 “롯데그룹 전반에 걸친 자산 구조조정은 단기적 유동성 확보 목적과 중장기적 사업구조 개선이라는 두 축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롯데케미칼 역시 대규모 투자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재무적 부담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최윤범 회장,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 수성 성공…경영권 분쟁 우선 일단락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동안 지속됐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승리로 우선 일단락 됐다.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이 이사회 과반을 수성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날 정기 주총 표결은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상태로 이뤄졌기에 향후 법정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1년 이상 진행되는 소송전으로 전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28일 오전 11시30분 가량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제51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당초 개회 시간은 9시였으나 중복 위임장 확인 작업 등의 절차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2시간30분 가량 지연됐다. 이날 주총 의장을 맡은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주총 시작 직후 '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H)→영풍'의 상호주 관계에 따라 상법상 영풍 보유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2일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SMH가 영풍 지분 10.3%를 취득해 '고려아연→SMH→영풍→고려아연' 방식으로 상호출자 고리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이는 상법에서 A사가 단독 또는 자회사·손자회사를 통해 다른 B사의 주식을 10% 이상 보유한 경우, B사가 가진 A사의 지분은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상호주 제한 규정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자 영풍은 정기 주총 개최 이전 법원에 의결권행사허용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27일 법원이 가처분을 기각하면서 결국 상호주 관계에 따라서 의결권을 제한받게 됐다. 이에 영풍은 27일 저녁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1주당 0.04주의 배당을 결의해 SMH의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리며 상호주 관계를 해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MH는 주총 직전 장외에서 영풍 주식 1350주를 매수해 지분율을 다시 10.3%로 끌어올려 상호주 관계를 재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MBK·영풍 측은 이 같은 절차가 위법하다고 반발했다. MBK·영풍 측 법률 대리인은 “SMH가 보유한 영풍 지분율이 10%를 초과했다고 하는데 언제, 어떤 경위로 취득했나"라며 “상호주 제한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려아연 법률 대리인은 “회사는 SMH로부터 오늘 주식 확보 통지를 받았고 여기엔 잔고 증명서와 거래 내역서가 포함돼 있다"며 8시54분에 잔고 증명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 25.4%가 제한된 상태로 최 회장 측이 제안한 핵심 안건들이 순조롭게 가결됐다. 최 회장 측이 상정한 이사 수 19명 상한 안건은 주총에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 중 71.11%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어 진행된 이사 선임 투표는 지난 1월 임시 주총 의결에 따라 집중투표제로 표결했다. 이사 수가 19명 이하로 제한됨에 따라 집중투표제로 선출할 이사 수는 8명으로 확정됐다. 표결 결과 고려아연 측 후보 5명 중 박기덕·김보영·권순범·제임스 앤드류 머피·정다미 등 5명이 선임됐다. MBK·영풍 측이 추천한 후보 17명 중에서는 권광석·강성두·김광일 등 3명이 선암됐다. 이로써 임시 주총에서 선임된 직후 직무집행이 정지된 4명 합쳐서 최대 19명으로 제한된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 구도로 재편됐다. 이로써 고려아연은 이사회 주도권을 지킬 수 있게 됐고 최 회장은 MBK·영풍으로부터 경영권을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날 주총 결과와는 별개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MBK·영풍이 고려아연의 영풍 의결권 제한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에도 김광일 MBK 부회장과 강성두 영풍 사장이 고려아연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점도 변수다. 이사회 구성은 최 회장 측이 앞서지만 향후 운영 과정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한편 이날 주총 현장에는 고려아연 노동조합과 홈플러스 노조가 공동으로 MBK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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