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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와 재발방지의 악순환…포스코 안전경영 ‘상하 불통’?

포스코가 그룹 차원의 산업안전 경영을 최우선으로 표방했음에도 최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제철소장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의 거듭된 안전경영 강조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자 문책성 인사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안전사고의 원인이 유해물질 누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면서 그동안 현장 작업과정의 안전관리에 넘어 유해물질 관리를 비롯한 산업안전보건체계의 근본적인 허점도 진단하고 개선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 21일 이동렬 포항제철소장을 보직 해임했다. 이희근 포스코 대표이사(사장)가 직접 제철소장을 맡아 잇따른 산업재해의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포스코그룹은 유인종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 대표를 회장 직속 그룹안전특별진단 태스크포스(TF) 팀장에 선임했다. 유 대표는 그룹 차원의 안전사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주도하고, 그룹 안전 관리 혁신 계획을 실행할 예정이다. 유 대표는 삼성물산 안전기술팀장과 쿠팡 안전부문 부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번 인사 조치는 그안전을 강조하는 그룹 경영 기조 속에서도 포항제철소에서 산업재해가 잇따르자 책임을 물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스틸(STS) 4제강공장에서 슬러지(찌꺼기) 청소를 하던 50대 용역업체 직원 2명과 현장에 있던 40대 포스코 직원 1명이 작업 중 발생한 일산화탄소로 추정되는 유해가스를 흡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지난 5일에도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공장에서 포스코DX의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 4명이 화학물질 배관을 밟고 이동하다 배관이 파손되며 불산으로 추정되는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됐다. 3월에는 포항제철소 냉연공장에서 포스코PR테크 40대 직원이 수리 작업 중 설비에 끼여 숨졌다. 이 사장은 21일 사과문을 통해 “포스코는 사고발생 즉시 사고대책반을 가동하고 관계 기관의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사고를 당하신 분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모든 지원과 조치를 신속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올해 들어 연이어 발생한 안전사고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철저한 반성과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이 장 회장 중심으로 강화해온 안전경영 기조가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쓴소리가 제기된다. 포스코그룹은 회장 직속으로 안전특별TF와 독립적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그룹 안전관리 전문 자회사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을 설립하며 안전 경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글로벌 안전 컨설팅 기업인 SGS, dss와도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반복되면서 원인 진단을 다시 하고 그룹 안전관리 체계를 되돌아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금속노조 포항지부는 21일 기자회견 예고문을 통해 “도급계약으로 얻는 재원만으로 운영되는 도급사는 위험한 설비 개선은 물론, △가스 측정 △ 환기 △ 2인 1조 △ 보호구 지급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것이 포스코가 수차례 안전대책을 발표해도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작업장에서 유해가스 유출 방지, 유해가스·산소 농도 모니터링, 근로자 교육·사전점검이 하나의 사이클로 이뤄져야 재해 예방이 가능하다"며 “불완전 작업을 유발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현장 최고 책임자뿐만 아니라 경영진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포항·광양 이어 당진·인천도 신음…‘위기의 철강도시’

경북 포항에 이어 전남 광양까지 철강산업 의존도가 높은 대표 지역들이 잇따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내 철강도시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위기지역 2개 도시뿐 아니라 철강사들이 밀집해 있는 당진·인천마저 '철강 위기 도미노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과 보호무역주의 횡행, 국내경기 부진 등 복합위기에 따른 철강사의 실적 악화로 소재지 도시들의 지역경제도 덩달아 신음하고 있다. 2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 충남 당진 등 철강산업 비중이 큰 지역들이 잇따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거나 지정을 준비 중이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20일 전남 광양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2년간 지정했다. 앞서 8월 28일 경북 포항이 먼저 지정된데 이은 조치다. 충남 당진도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산업위기지역 지정을 추진 중이다. 철강산업의 현저한 악화가 우려된다는 점이 신청 이유였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면 긴급경영안정자금, 중소기업 정책금융 지원 강화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하게 된다. 산업 지원을 요청한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철강산업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 철강사 '빅3'를 기준으로 보면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에 세계 최대 규모로 제철소를 운영 중이다. 현대제철이 제철소를 운영하는 곳은 인천과 당진, 포항, 순천 4곳이다. 동국제강은 인천과 포항에서 봉형강 제품을 만들고, 당진 공장을 통해 후판을 생산한다. 이밖에도 많은 철강사들이 포항과 광양, 당진, 인천 등에 몰려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집계한 국가산업단지 동향정보에 따르면, 광양산단과 포항산단의 지난 상반기 철강산업 생산액은 각각 9조925억원과 8조621억원으로 전(全) 제조업 생산 가운데 약 90%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수출 비중은 37억달러와 19억3000만달러로 97.3%, 93.6%다. 당진의 경우, 철강 수출 비중이 22%(1억4286달러)로 적지 않고, 생산량 비중도 2023년 기준 59.9%(국가데이터처 광업제조업조사) 차지하고 있다. 인천의 철강 수출은 19억1142만달러로 비중이 6.5% 수준이지만, 전년 동기에 비해 2.9% 줄었다. 이들 지역에 터를 잡은 철강사들은 매출 실적 하락세로 고민이 깊다. 영업이익은 원가 절감 노력 등으로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지만, 매출은 수요 증가로 판매가 늘어야 향상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7조91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현대제철은 4% 감소한 11조5090억을 기록했다. 동국제강도 매출 1조6192억원을 나타내 13.3% 감소했다. 철강산업이 침체되면 지역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상반기 광양, 포항의 실업률은 3.4%와 3.3%로 전년 동기 대비 1.2%p, 0.4%p 높아졌다. 당진은 1.5%로 0.3%p 낮아졌다. 세 곳은 지역 제조업 고용의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긴 시간이 필요한 산업 구조 개편을 해야 지역경제도 살 수 있는 만큼 이른바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 철강산업 고도화 대책과 연계해 철강산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행히 K스틸법이 법안 발의 3개월여만인 지난 21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가결되면서 오는 27일 예정된 본회의라는 문턱만 남겨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달 중 K-스틸법이 통과되더라도 시행령 제정과 예산 배정, 철강산업 고도화 대책 연계 방안 등 구체적인 지원을 위해 논의할 내용이 아직 쌓여 있다"며 “내년 상반기가 돼야 지자체 차원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는 중장기 접근에서 철근 같은 범용재 생산을 줄이고 친환경 공정으로 전환하는 산업 구조조정도 버텨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이달 초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통해 내수 부진과 공급 과잉 문제에 빠진 철근부터 생산량 감축을 추진하고, 친환경 공정과 특수탄소강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을 지원하기로 큰 틀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는 지역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고통을 감내해야 지역경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철강 산업 구조 전환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명예교수는 “철강산업 구조 전환은 단기적으로는 (범용재) 설비 감축 문제이지만, 길게 보면 기술 연구개발부터 실증, 인증에 이르기까지 10년 이상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철강이 기반산업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철강산업 부진은 포스코 같은 철강사들 뿐만 아니라 가공업체, 인근 지역의 전방산업 기업들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며 “양적 수급 측면보다 제품·공정의 구조적 전환을 해내야 철강에 의존하는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고용 이슈 걱정도 덜 수 있는 지역별 철강경기 복원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철강산업이 구조 전환을 해나갈 큰 그림을 실행하기 위한 세부 사항을 조율해야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쓴소리도 제기됐다. 민 교수는 “지역 경제 지원책, 철강사 시설 전환까지 시행령 등으로 구체적인 목표치를 정하고, 철강사들이 전방에서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고객사들과 협력 관계를 재설정하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도 “중견·중소 철강사로 갈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를 도입하는 방안은 고로를 전기로로 대체하는 것이지만, 내년부터 발전사들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이 확대되면 철강사들이 더 큰 전기료 부담을 지게 되는 모순이 있다"고 짚었다. 손 대표는 “구조조정 이후 발생하는 유휴인력의 고용 문제를 산업 재배치와 재교육 같은 프로그램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전체 탄소중립 예산 중 산업전환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4% 수준으로 작다"며 “그러면 지자체 부담이 늘며 산업 전환 속도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처 간 정책 엇박자를 조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디젤게이트 10년①] 車업계 ‘세기의 스캔들’···후폭풍 전세계 ‘일파만파’

2015년 9월1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환경보호청(EPA)이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독일 폭스바겐이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테스트를 조작하는 '무효화 장치'(Defeat Device)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인간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유해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환경규제 검사를 할 때는 배출량을 낮추고, 평상시 주행에는 이보다 40배 이상 많은 NOx를 뿜어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디젤 게이트' 서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EPA가 폭로한 내용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발표일의 주말에 해당 소식이 전해졌는데, 폭스바겐코리아가 월요일인 9월21일 신형 '골프 R'를 출시했을 정도다.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기자 등을 불러 차량을 소개하며 행사를 열기까지 했다. ◇ 대상 차량 1100만대···CEO 사임하고 전세계서 '줄소송' 본격적인 후폭풍은 폭스바겐 측이 해당 사실을 인정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 9월23일 마르틴 빈터콘 당시 폭스바겐 CEO가 사임하며 전세계적으로 1100만대 이상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털어놨다. 폭스바겐은 차량의 전자제어장치(ECU)에 특수한 소프트웨어를 심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 소프트웨어는 차량이 배기가스 테스트를 받고 있음을 감지하면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최대한 작동시켜 배출량을 기준치 이하로 낮추게 작동했다. 일반 주행 시에는 이 기능을 멈춰 주행 성능을 더 높이도록 했다. 폭스바겐그룹은 글로벌 최대 자동차 제조 공룡이다. 당시에도 토요타그룹과 '글로벌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연간 판매는 2010년 700만대, 2011년 800만대, 2012년 900만대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디젤게이트 폭로 직전인 2014년에는 1000만대 기록도 넘어섰다. 주요 브랜드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왔다는 특징도 있다. 폭스바겐은 독일 브랜드지만 스코타(체코), 세아트(스페인), 스카니아(스웨덴), 람보르기니(이탈리아), 벤틀리(영국)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 디젤게이트 후폭풍이 순식간에 전세계를 덮치게 된 배경이다. 실제 리콜 대상 차량에는 폭스바겐 뿐 아니라 아우디, 스코다, 포르쉐 등 다양한 브랜드 모델들이 포함됐다. 골프, 제타, 파사트, 비틀, 투아렉, A3, A6, A7, A8, Q3, Q5, Q7, 카이엔 등 인기 차종들도 많았다. 각국 정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독일이 2015년 11월 조작 차량에 대한 의무 리콜을 명령했고 다른나라들도 관련한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1월 폭스바겐을 대상으로 민사 소송까지 시작했다. 폭스바겐그룹은 2016년 6월 미국 소비자 보상 및 환경 개선 비용으로 약 147억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형사 및 민사 벌금으로 43억달러 가량을 더 냈다. 회사 간부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지방법원은 올해 5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엔진 개발 부서장 옌스 하들러에게 징역 4년6개월, 파워트레인 부문 책임자 하노 옐덴에게 징역 2년7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피고인 가운데 최고위직인 전 개발 담당 임원 하인츠야코프 노이서는 징역 1년3개월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배기가스 후처리 담당 간부도 1년10개월 징역형이 유예됐다. 마르틴 빈터코른 CEO는 이들과 함께 기소됐으나 건강문제로 심리가 늦어져 따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외에도 31명의 전현직 폭스바겐 임직원이 기소돼 1심 재판 중이다. 뮌헨 지방법원에 기소된 폭스바겐 그룹 계열사 아우디의 전 CEO 루페르트 슈타들러는 형량 협상을 거쳐 2023년 징역 1년9개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항소했다. ◇ 사라진 '클린디젤' 신화···유럽 브랜드 신뢰도도 함께 추락 폭스바겐그룹이 이처럼 대담한 사기를 벌인 이유는 디젤차 수요를 전세계로 확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015년 전후로 디젤 승용차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곳은 사실상 유럽과 한국 뿐이었다. 유럽은 디젤 승용차의 발원지로 새롭게 판매된 신차의 절반 가량이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을 정도다. 폭스바겐그룹을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BMW 등 다른 유럽 브랜드들도 디젤 엔진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경우 수입차 시장 열기가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카푸어' 등 신조어가 유행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독일차'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수입차 업체들은 각종 할부 프로그램 등을 공격적으로 제공하며 유럽에서 과잉 생산된 디젤차를 우리나라에 밀어냈다. 국내에서도 월간 기준으로는 디젤차 점유율이 전체 승용차 판매 중 40% 가량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반면 중국·일본 등 주요국들에서는 여전히 가솔린 차량이 대세였다.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들이 하이브리드 기술에 강점을 지니고 있어 디젤차의 효율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경우 디젤차에 대한 정부 규제가 다른나라보다 강했다고 알려졌다. 중국 내 판매를 위해서는 현지에 들어가 차량을 생산해야한다는 패널티도 있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휘발유 가격이 워낙 저렴해 경유의 경제성에 대한 이점이 없어 디젤차 인기가 없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당시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자국 브랜드들이 그때만 해도 경쟁력이 있었다. 폭스바겐그룹 입장에서는 디젤 승용차를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 팔고 싶었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클린디젤'이다. 폭스바겐은 기술 발전으로 배출가스를 저감하는 장치가 고도화되면서 디젤차가 오히려 더 친환경적이라는 슬로건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가 '안방'인 유럽 대신 차량 판매가 거의 없다시피 한 미국에서 시작된 이유다. EPA 폭로에 앞서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와 국제청정교통협회(ICCT) 등은 폭스바겐 디젤차 NOx 배출량에 의심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작 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확인한 곳은 미국 대학들과 EPA였다. 디젤게이트 여파는 다른 유럽 브랜드로도 번졌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같은 방식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BMW·푸조·피아트 등도 함께 연루됐다. 10년이 지난 시점 아직까지도 '조작 디젤차' 들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은 전세계가 함께 나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차주가 리콜에 응하지 않는 사례 등으로 여전히 수십·수백만대의 디젤차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대로 수리가 안된 차량들이 개발도상국 등으로 수출된 사례도 상당수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폭스바겐그룹의 디젤게이트 때문에 10만~20만명 가량이 사망했고 앞으로도 희생자가 더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해외로 뻗어가는 LG전자 HVAC 영토···B2B 넘어 ‘B2G’까지 노린다

LG전자가 새 먹거리로 점찍은 냉난방공조(HVAC) 분야에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현지화 전략을 통해 주요국에서 수주를 따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사업 영역을 B2B(기업-기업간 거래)에서 'B2G'(기업-정부간 거래)까지 확장하는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정부 산하 기관인 '엑스포시티 두바이'와 '스마트시티 건설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엑스포시티 두바이는 2020 두바이 엑스포가 열린 부지에 약 3만5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3.5km² 규모 스마트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이번 파트너십은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논의된 인공지능(AI) 기술·응용 서비스개발 및 AI·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력 확대의 일환이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주목받는 첨단 HVAC 솔루션과 AI홈 허브 기반의 스마트홈 솔루션 공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차별화된 HVAC 기술력과 AI홈 허브 기반 스마트홈 솔루션은 UAE 정부의 미래비전 달성에 기여할 것"이라며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가 많은 중동 지역에서 B2G 영역의 신규 사업기회 확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전세계에서 HVAC 영토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UAE 전력회사 아쿠아파워, 전자 유통기업 셰이커 그룹, 데이터 인프라기업 데이터볼트 등이 짓는 차세대 데이터센터의 냉각 솔루션 공급 등에 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한 상황이다. LG전자는 북미 지역에서 사업 확장과 브랜드 인지도 강화를 위해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콘텐츠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AHR 엑스포 2025'에서 첨단 히트펌프 컨소시엄 소속 교수들과 함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일본 등 경쟁 업체를 누르고 싱가포르 초대형 물류센터에 HVAC 솔루션 계약을 따냈다. 축구장 약 9개 크기와 맞먹는 규모 싱가포르 초대형 물류센터에 고효율 상업용 에어컨 '멀티브이 아이'를 공급하기로 했다. LG전자는 HVAC 역량 확장을 위해 지난해 말 전담 조직 ES(Eco Solution)사업본부를 출범했다. 이후 수주 활동에 주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조주완 CEO는 올해 3월 열린 제23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핵심 사업으로 육성 중인 B2B 분야 외형을 더욱 성장시킬 계획"이라며 “B2B 사업 핵심은 HVAC와 자동차부품 사업인데 2030년 매출 규모를 20조원까지 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7월에는 HVAC 분야 최적의 설루션을 제공하며 시장 평균보다 2배 빠른 압축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G전자는 당시 ES사업본부의 중장기 사업 전략을 발표하면서 데이터센터향 냉각 솔루션 수주 목표는 지난해 대비 3배. 이를 통해 HVAC 시장 평균보다 2배 빠른 성장세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부사장)은 “HVAC은 질적 성장을 위한 B2B 영역의 핵심 동력"이라며 “냉난방공조 사업 가속화를 위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현재 전세계 12곳에서 HVAC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13번째 공장은 인도에 건설 중이다. HVAC 관련 교육 프로그램인 'HVAC 아카데미'도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IBIS 월드에 따르면 글로벌 HVAC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584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2028년에는 610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제네시스, 포르쉐 누르고 ‘최고 럭셔리車’ 선정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또 한 번 승전보를 전했다. 포르쉐를 포함한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을 제치고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1위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유력 매체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최근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Best Luxury Car Brand) 순위를 정하며 제네시스를 1위로 꼽았다. 지난 1948년 창간한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각 분야별 순위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다. 여러 매체가 순위를 인용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매체는 '2026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어워즈'에서 럭셔리, SUV, 승용, 트럭, 전동화, 럭셔리 전동화 등 총 6개 부문별 수상 브랜드를 발표했다. 올해는 39개 자동차 브랜드가 판매하는 전체 차량을 대상으로 안전성 평가, 신뢰도 데이터 분석, 자동차 전문 매체의 종합 의견 등을 반영해 평균 점수를 산출했다. 각 부문별 최고점을 받은 브랜드에게 시상했다. 제네시스는 나란히 최종 후보에 오른 포르쉐를 제치고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G90가 종합 점수 10점 만점에 9.6점을 기록했고 G80와 GV70도 동급 최고 순위를 차지해 이번 수상을 견인했다. 알렉스 크완텐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편집장은 “제네시스는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적인 수준의 차량과 프리미엄 고객 경험을 꾸준히 선보였다"며 “다른 럭셔리 브랜드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드 멘지스테 제네시스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제네시스는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과 첨단 기술, 정교한 주행 경험을 결합한 차량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이번 수상은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제네시스는 앞서 2018년 미국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 브랜드 평가(Brand Report Card)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적 있다. 당시만 해도 '신생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지만 아우디(2위), BMW(3위), 렉서스(4위) 등 34개 브랜드를 제치고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1위에 등극했다. 이후 고급차 라인업이 더욱 다양해지며 전세계에서 열리는 각종 시상식에서 '올해의 차' 또는 '최고 브랜드'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이번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시상에서 현대자동차도 2년 연속 '최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로 선정됐다. 팰리세이드와 투싼 등의 뛰어난 품질에 대한 호평에 힘입은 결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앞서 이 매체의 '2025년 최고의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어워즈'에서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투싼 하이브리드 등 3개 차종이 선정돼 2년 연속 완성차 브랜드 기준 최다 수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한희락 대한항공 HF팀장 “자율 보고, 안전 관리의 연료…처벌 대신 ‘공정 문화’ 뿌리내려야”

“현대 항공 안전 관리 시스템(SMS)이라는 비행기를 날게 하는 연료는 바로 '자율 보고'입니다. 그리고 그 연료를 공급하는 주유 장치가 바로 '공정 문화(Just Culture)'입니다." 21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가 주최한 '한국 민간 항공의 공정 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희락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 휴먼 팩터(HF)팀장(B777 기장)은 자율 보고 활성화를 위한 공정 문화의 중요성을 이와 같이 강조했다. 이날 '대한항공의 공정 문화(KE Just Culture)'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한 팀장은 과거의 처벌 위주 문화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전적 안전 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한 팀장은 항공 안전 관리의 역사가 1950년대 '기술적 시대'와 1970년대 '인적 요인 시대', 1990년대 '조직적 시대'를 거쳐 현재는 '통합 시스템 시대'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또 항공 산업이 작업자의 수행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인간이야말로 안전과 효율성,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주체라고 설파했다. 이는 과거 인간을 시스템의 불안전 요소로 보고 통제하려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유연한 대처 능력을 안전의 핵심 자산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사고 조사를 통해 안전 정보를 얻었지만 기술의 발달로 사고율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이제는 사고 데이터만으로는 안전 관리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인리히의 법칙을 언급하며 “실제 사고나 준사고 등 겉으로 드러나는 데이터는 빙산의 일각인 3%에 불과하다"며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97%의 잠재적 위험(Near Miss)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현장 종사자들의 자발적인 보고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 팀장은 사무직과 현장직의 업무 환경 차이를 언급하며 공정 문화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사무실에서는 실수를 수정할 기회가 많지만, 조종사나 정비사는 실시간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과가 즉각적인 안전 문제로 직결된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은 2023년부터 운항·정비·객실·통제·여객·화물 등 6개 부문에서 '공정문화위원회(JCC, Just Culture Community)'를 운영해오고 있다. 또 공정 문화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정책 선도(Lead)·글로벌 기준 부합(Align)·신뢰 구축(Trust)·조직 학습(Learn) 등 4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미래 항공 안전 정책을 선도하고, 국제적 추세에 발맞춘 제도를 만들겠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또한 투명한 위원회를 운영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 자율 보고를 활성화하고, 공정한 후속 조치를 통해 조직 전체가 배우는 문화를 조성한다는 게 사측의 방침이다. 한 팀장은 “도입 초기에는 각 본부별로 매뉴얼을 따로 만들다 보니 부문 간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는 '실질적 표류(Practical Drift)'가 있었다"며 “이 간극을 방치하면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운영상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은 작년 전 부문 실행 단계를 거쳐 올해 안으로 가이드 라인 표준화를 마치고 내년에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공정 문화 가이드 라인(KE/OZ JCC Guides Integration)을 완성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공정 문화의 방점은 '처벌'이 아닌 '학습'에 찍혀있다. 이날 발표에서는 공정 문화가 실제 징계 절차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4단계 프로세스'도 공개됐다. 대한항공의 프레임워크는 조사 승인(Approve Investigation)→행위 분류(Classify Behavior)→지속적 개선(Continuous Improvement)→책임 결정(Determine Accountability)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특히 2단계 '행위 분류'에서는 '대체 테스트(Substitution test)' 등을 활용해 고의성 여부를 엄격히 판별한다. 한 팀장은 “고의적 위반이나 무모한 행위는 명백히 처벌하되, 의도치 않은 실수에 대해서는 징계가 아닌 훈련과 코칭을 통해 조직 전체가 배우는 기회로 삼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부문별 징계 양형 기준의 불균형 문제도 거론됐다. 한 팀장은 “운항 승무원의 경우 실수가 발생하면 '인적 오류(Human Error)'로 분류돼 훈련으로 갈무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비 부문은 의사 결정 흐름도상 구조적으로 징계가 수반되는 '무모한 행위'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형평성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명백한 실수를 '인적 오류'로 포장해서도 안 되지만 구조적으로 징계만 양산하는 시스템도 문제"라며 “전사적으로 통일된 의사 결정 흐름도를 만들어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한항공은 △이벤트 조사 시 인적 요인 분석 기법(H-FACS) 도입 △행위 판단 기준의 일관성 확보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 결정 트리(Decision Making Tree) 정교화 등의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 팀장은 공정 문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독립성과 심리적 안정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각 본부의 수장들이 공정문화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위계 질서가 강한 문화에서는 본부장의 영향력 때문에 공정한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며 “위원장을 실무를 맡는 팀장급으로 낮춰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경영진에게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대한항공의 공정 문화는 아직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며 “처벌의 두려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실수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조직의 안전 자산이 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경영진과 현장을 끊임없이 설득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조종사들, 처벌 두려워 입 다문다…‘공정 문화’ 없는 항공 안전 담보 못해”

“작년 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이후에도 현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처벌이 두려워 숨겨진 '아차 사고(Near-miss)' 데이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립항공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 민간 항공의 공정 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현행 처벌 위주의 항공 안전 정책이 안전을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항공 안전의 패러다임을 '처벌'에서 '공정 문화(Just Culture)'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회사를 맡은 이충섭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장은 “공정 문화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고 조직의 학습 기회로 전환해 안전을 확보하는 핵심 가치"라며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인간적 전제를 바탕으로 처벌보다는 시스템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조 연설에 나선 이장룡 KAU 항공안전센터장은 “현대 항공 안전 관리 시스템(SMS)의 핵심은 '데이터'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과거의 안전 관리가 사고 후 원인을 찾는 반응 방식이었다면 현대는 사고 징후를 미리 찾아내는 사전적 방식"이라며 “이를 위해 필수적인 현장의 데이터는 종사자들이 처벌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실수를 보고할 수 있는 '공정 문화' 토양 위에서만 수집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한희락 대한항공 휴먼 팩터팀장(보잉 777 기장)은 “당사는 2023년부터 부문별 공정문화위원회(JCC, Just Culture Committee)를 설치해 운영해오고 있고, 처벌보다는 학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노력 중"이라며 “경영진을 설득해 징계 위주의 관행을 바꾸는 등 신뢰 회복에 힘쓰고 있다"고 사례를 발표했다. 한 팀장은 “하지만 정부 차원의 확실한 면책 보장이 없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수를 보고하라'고 독려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고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적 요인 분석 시스템인 HFACS(Human Factors Analysis and Classification System)를 도입해 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데이터 수집량의 격차도 컸다. 김진웅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비밀 보장과 면책이 확실한 미국의 경우 2024년 한 해에만 약 11만 건의 자율 보고 데이터가 수집됐지만 국내에서는 569건에 그쳤다. 김 연구원은 “그나마 최근 자율 보고 건수가 늘어난 것은 보고자에 대한 피드백을 강화하고 비식별 처리를 철저히 한 덕분"이라며 실제 접수된 사례들을 공개했다. 이 중에는 △조종실 내에서 몰래 흡연을 하는 기장 △관숙 비행을 위해 탑승한 운항 관리사나 관제사가 알코올을 섭취하고 조종실에 출입한 사례 △포항경주공항 내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흙더미(장애물) 방치 △인천공항 입·출항 차트 간 고도 설정 불일치 등이 있었고, 묻혀있는 상태로 남았을 심각한 위해 요인들이 자율 보고를 통해 개선될 수 있었다. 김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중립적인 제3의 기관이 데이터를 관리해 보고자의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한다"며 “우리나라도 처벌보다는 학습과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제도적 보완과 함께 보고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독립적인 데이터 수집 체계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앞서 지난 3월 29일 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전무) 역시 한국항공대학교 강연에서 “한국에는 더욱 강력한 면책 기반의 자발적 보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인공 지능(AI)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실수를 말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현장의 조종사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도 쏟아졌다. 이한소 아시아나항공 기장은 “공정 문화의 핵심은 '신뢰'인데 현재 조종사들은 이중, 삼중의 처벌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 기장은 “실수를 보고하면 회사에서 징계를 받고, 국토부 조사를 받으며 경제 활동이 중단되고, 결국 행정 처분까지 받게 된다"며 “자신의 실수를 진정성 있게 보고하는 것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과거에는 법적으로 면책 조항이 있었으나 국토부가 이를 삭제하면서 현장의 불안감이 가중됐다"며 “법적 보호 장치가 부활해야만 진정성 있는 보고가 가능하다"고 촉구했다 . 또한 그는 “에어버스와 보잉의 항공기 설계 철학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절차를 획일화해 오히려 안전을 저해하는 경우도 있다"며 현장의 기술적 특성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 정책도 비판했다. 실제 에어버스는 운항 자동화와 표준화를 우선시하고 컴퓨터가 조종사의 조작을 제한하거나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반면, 미국 보잉은 조종사의 통제권을 최우선으로 해 기계적 기술을 통해 조종사가 항공기의 반응을 직접 느끼고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날 토론에서는 현행 항공안전법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제기됐다. 유인호 법무법인 유인로(YOU IN LAW) 데표 변호사는 “국토교통부의 현행 규제 방식은 자식이 사고 칠까봐서 모든 것을 감시·통제하고 처벌하려는 '엄격한 아버지'와 같다"고 비유했다. 유 변호사는 “현행 관련법상 항공 종사자가 실수를 자율 보고하더라도 조사 결과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되면 면책되지 않는다"며 실제 판례(2021구합52648)를 들었다. 그는 “문제는 '중과실'의 범위가 모호해 전문가는 사소한 실수도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는 논리로 중과실 처분을 받을 여지가 크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형법에서도 자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주는데 항공안전법은 보고를 해도 정부가 인지하거나 중과실이라 판단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라며 “운항 규정 미준수 같은 사안은 고의·과실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처벌할 수 있어, 종사자 입장에서는 보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관계 당국도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섰다.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과는 지난 10월 44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항공 분야 공정 문화 실행 지침 마련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고의나 중과실 외의 의도치 않은 실수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제하고 재발 방지 학습 기회로 삼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한국항공안전연구소가 이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현장의 불신은 여전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화물 항공사 에어제타의 한 기장은 “현장에서는 '저스트 컬처(공정문화)'라는 용어조차 생소하거나, '보고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한 마당에 비행 중 발생한 사소한 실수라도 보고하면 회사 징계위원회나 국토부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경영진과 일선 직원 간의 인식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연구 용역이 단순 전시 행정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갖춘 실질적인 면책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훈 제주항공 기장 역시 “작년 무안 참사 이후 공정 문화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며 선도 항공사들의 노하우 공유를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항공 안전의 골든 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의·중과실의 명확한 기준 정립 및 처벌 면제 법제화 △자율보고 데이터의 철저한 비식별화·보호 △정부·항공사·노조가 참여 독립 공정 문화 협의체 운영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시승기] ‘최고의 아빠차’ 현대차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팰리세이드는 현대자동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차다. 회사가 글로벌 SUV 경쟁에서 밀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 때 혜성처럼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한때 베라크루즈 단종 등 실책을 했던 현대차지만 이를 갈고 만든 팰리세이드는 상품성 하나만으로 많은 운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 초 나온 2세대 완전변경 모델은 대형 SUV 팰리세이드의 장점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은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불고 있는 친환경차 열풍과 더불어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특히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차 디 올 뉴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승했다. 일단 실내 공간이 넓어 마음에 든다. 6인승 모델은 2열을 독립시트로 구성해 운영된다. 머리 위 공간이 충분해 3열로 이동이 편리하고 무릎 아래 공간도 충분해 여행에 불편함이 없다. 신형 팰리세이드는 기존 모델 대비 전장이 65mm 길어지고 전고는 15mm 높아졌다. 전방 틸팅형 워크인 기능이 적용된 2열 시트와 슬라이딩이 가능한 3열 시트가 들어가 편의성이 더 높아졌다. 키 180cm 성인 남성이 3열에 앉아도 답답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리어 쿼터 글래스 면적을 확대한 덕분에 개방감도 느껴진다. 예민한 승객이 아니라면 2열이나 3열 어디에 앉아도 차이를 느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어노브를 스티어링 휠 옆으로 옮기면서 실내 활용도가 더 높아졌다. 원래 기어노브가 있던 자리에 무선충전기와 함께 100W까지 충전 가능한 C타입 USB 충전포트, 2개의 대용량 컵홀더, 하단 수납공간, 양문으로 개방되는 콘솔박스 등이 들어갔다. 달리기 성능은 안정적ㄹ이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에는 'E-라이드', 'E-핸들링', 'E-EHA'(Electrically Evasive Handling Assist) 등 구동모터를 활용한 주행특화 기술이 들어갔다. 이를 통해 승차감과 주행성능을 향상시켰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E-라이드는 구동 모터의 토크 제어로 가감속 및 과속방지턱 통과 상황 등에서 발생하는 들림현상(피치)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E-핸들링은 곡선 도로를 달릴 때 구동모터의 가감속 제어로 무게 중심을 바꿔 조향 응답성과 선회 안정성을 높여준다. E-EHA는 긴급 조타 시 구동 모터를 통해 차량의 전·후륜 하중이동 제어로 회피성능 극대화시킨다. 연비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공인복합연비는 2WD 18인치 기준 14.1km/L를 인증받았다. 도심 주행 시에는 연료 효율성을 따로 신경쓰지 않고 주행했음에도 15km/L 안팍의 실연비가 확인됐다. 고속도로에서 급가속을 지속할 경우에는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차량에는 1.65kWh 300V급 고전압 리튬 이온 배터리가 들어가 있다. 현대차는 신형 팰리세이드에 실내 V2L, 스테이 모드 등 기능을 추가해 전기차에서 누릴 수 있었던 편의 기술을 하이브리드차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큰 차체를 지녔음에도 고속 주행 안정감이 뛰어나 만족스러웠다. 갑작스럽게 차선을 바꾸거나 과감하게 코너에 진입해도 차가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전방을 잘 주시하기만 하면 페달을 거의 밟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진화했다. 신차에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주행 보조 2 △후측방 충돌 경고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안전 하차 보조 △후방 교차 충돌방지 보조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측방 주차 거리 경고 △어드벤스드 후석 승객 알림 △스티어링 휠 그립감지 등 첨단 안전 사양이 적용됐다. 멋진 외관에 넓은 실내공간을 지녔는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해 연료 효율성까지 잡은 차다. 가족용 SUV를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아빠차'로 꼽힐만한 장점을 지녔다는 총평이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4982만~6326만원이다(개별소비세 3.5% 기준). 여헌우 기자 yes@ekn.kr

[주간 신차] 역동적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L’ 초대형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디 올-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L'을 국내에 들여온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네 번째 모델이자 최초의 오픈톱 2인승 로드스터다. 신차는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국내에는 지난 7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며 예약 받기 시작했다. '디 올-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L 680'은 4.0L 바이터보 엔진과 스피드 시프트 MCT 9단 변속기가 올라간다. 최대출력 585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액티브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으로 차체의 롤링 현상을 억제해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민첩한 핸들링을 가능하게 한다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유압식 요소가 기존 기계식 안티 롤 바를 대체하고 차체 롤 움직임을 빠르게 보정한다. 컴포트(Comfort), 마이바흐(Maybach), 스포츠(Sport), 인디비주얼(Individual) 네 가지 주행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컴포트와 마이바흐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 반응을 더욱 부드럽고 정제되게 세팅해 운전자의 조작에 한층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반응을 제공한다. 라인업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L 680 모노그램 시리즈'의 레드 앰비언스'와 화이트 앰비언스' 두 가지로 제공된다. 가격은 3억4260만원이다(이하 개별소비세 3.5% 기준). 캐딜락은 브랜드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에스컬레이드를 순수 전기 모델로 재해석한 '에스컬레이드 IQ'를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에스컬레이드는 1998년 1세대 출시 이후 전 세계 100만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링카다. 신차는 기존 내연기관 에스컬레이드 모델의 헤리티지 요소를 계승하면서, 혁신적인 전동화 기술과 풀사이즈 SUV의 감성을 결합한 게 특징이다. 에스컬레이드 IQ는 전장 5715mm, 축간거리 3460mm를 갖춰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 SUV 중 가장 크다. 205kW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739km 주행이 가능하다. 800V 초급속 충전 시스템이 적용돼 최대 350kW의 충전 속도를 지원한다. 10분 충전으로 최대 188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듀얼 모터 AWD 시스템은 최대출력 750마력(벨로시티 모드 적용 시), 최대토크 108.5kg·m의 힘을 낼 수 있다. 주행 상황에 따라 전·후륜의 구동력을 지속적으로 조절해 주행 효율성을 높였다. '슈퍼크루즈(Super Cruise)'가 국내 최초로 적용된 점도 눈에 띈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고 운전할 수 있는 기능이다. 국내 약 2만3000km의 고속도로 및 주요 간선도로에서 사용 가능하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는 국내에 프리미엄 스포츠(Premium Sport) 단일 트림으로 출시된다. 가격은 2억7757만원이다. 기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5 LA 오토쇼' 보도발표회에서 '올 뉴 텔루라이드'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는 차지만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SUV다. 이날 공개된 신형 텔루라이드는 2019년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약 6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완전변경 모델이다. 기아는 신차가 고유의 디자인 DNA를 계승해 강인하면서도 플래그십 모델다운 우아함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앞뒤 모두 특유의 수직형 램프와 두줄의 날카로운 선으로 별자리를 형상화한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조합해 누구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를 부각시켰다고 덧붙였다. 신차에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신규 탑재된다. 가솔린 2.5L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합산 최고출력 329마력, 최대토크 339lb·ft(약 46.9kg·m)의 힘을 낼 수 있다. 기존 가솔린 3.8 GDI 엔진 대비 배기량을 30% 이상 줄이면서도 최고출력은 약 13%, 최대토크는 약 29% 높였다. 본격적인 판매는 내년 1분기 중 시작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일문일답] 김정희 단장 “가덕도신공항 2035년 개항 차질 없을 것”

국토교통부가 한동안 중단됐던 가덕도신공항 건설 공사를 연내 입찰 공고하며 재개하기로 했다. 다만 개항 목표가 당초 정해졌던 2029년에서 2035년으로 늦춰져 부산시의 반발이 일고 있다. 국토부는 공사 기한이 연장된 이유에 대해 연약 지반 안정화를 위한 계측 과정 등이 추가되면서 공사가 지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21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백브리핑에서의 김정희 가덕도신공항 건립추진단장 및 홍복의 팀장과의 일문일답. -공기를 결국 연장했는데, 왜 늘린 건가. 84개월이 애초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정부가 업체에 고개 숙인 건가. ▲ 2029년 개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실 도전적인 공기를 설정했다. 기본계획 수립 시 다양한 방법으로 공기를 추정했고, 전문가 의견도 반영해 공기를 제안했다. 다만 공기가 빠듯하고 도전적이었기에, 건설업계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업계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입찰 공고를 내기 위한 후속 절차가 남아 있다면 얼마나 걸리나. ▲ 입찰 안내서는 일반 공개와 해당 업체 사전 공개를 거쳐 조달청에 송부된다. 조달청과 의견을 교환한 뒤 12월 중순경 조달청에 입찰 요청을 하면, 조달청이 약 보름 정도 검토 후 12월 말경 입찰 공고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늘어난 공사금액 2000억원은 어떻게 산정한 건가. 상향 조정 여지가 있나? ▲ 지난 입찰 공고는 2023년 12월 기준이었다. 그 사이 물가가 상승했다가 최근 다시 하락해 예정 가격 산출 시점과 입찰 공고 전 시점 사이 변동 폭만 반영했다. 기획재정부 국가 물가 반영 기준에 따라 산정한 부분이다.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기성이 나간 부분을 제외하고 차년도 물가가 3% 이상 변동하면 공사 계약 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추가 조정 여지도 법령에 따라 가능하다. -가덕도 신공항에 경제성 우려가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국가 균형 발전 사업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은 사업이다. 사업성을 따져 추진한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 파급 효과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하는 것이다. 단순 경제적 효과만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 또,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객이 올해 천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통해 동남권 지역 발전도 견인할 것으로 본다. -내년도 공항 예산이 많이 줄었는데, 그대로 진행이 가능한가? ▲ 시공 착공은 내년 하반기에 진행될 예정이다. 해상 장비 제작 등 시급한 비용 집행은 현재 예산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 내년에는 설계 중심으로 진행되며, 우선 시공 또는 착공 정도만 이루어져 현재 예산으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공사기간 2년 연장은 연약 지반 안정 문제가 핵심으로 보이는데 특정 공법을 염두에 두고 늘린 건가? ▲기본적으로 해저 연약 지반을 안정화시키는 공법은 동일하다. 기본계획에서는 수직 배수제를 설치하고 성토를 이용해 물을 배수하도록 했다. 개념 자체는 기본계획과 현대 측 제안 모두 같다. 차이점은 성토가 끝나는 시점에서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부분을 계측과 검증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조정하면서 공기가 늘어난 것이다. 성토가 충분히 안정화된 것을 확인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었다. 이 확인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기를 일부 연장한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안전하게 시간을 두고 안정화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영한 것이다. -현대에서 요구했던 기간도 안정화 후 확인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던 건가? ▲ 현대 측에서도 확인 기간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는 시공성을 유리하게 하는 공법으로 교량 영역이 커지는 방안을 제시했던 거다. 전문가 의견으로 공법 활용에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적절한 시간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공기 재산정의 주요 과제였다. 물 빠지는 속도와 침하 속도 차이 등은 예측과 추정의 영역이다. 저희가 한 방법과 현대가 추정한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저희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현대는 보다 세밀하게 설계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전문가 자문 결과 양측 모두 틀리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본 계획 단계에서 국토부가 했던 것들을 시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재입찰 공고가 나오면 우선협상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나? ▲ 2차, 3차 공고를 거쳐 유찰되면 한 개 컨소시엄과 우선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컨소시엄이 추가로 참여하지 않으면 더 빨리 우선협상이 가능하다. 다만 현행 국가계약법 절차를 준수해야 하므로 법을 초월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 -토지 보상과 어업권 보상, 이주 관련 진행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 토지 보상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수용 재결이 진행 중이며, 보상가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주민이 이의 신청을 했다. 국토부는 감정가를 재평가하고 있으며, 12월 말까지 토지 보상 절차를 마쳐 내년 1분기에는 주민과 합의점을 마련할 예정이다. 어업 보상은 어업 약정서를 두고 어민과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이주 및 생계 대책은 기재부와 예산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토지 보상비와 어업권 보상비는 금액 보상이 책정됐나? ▲ 토지 보상은 육지부 보상과 해상부 보상으로 나뉘는데 육지부 보상은 감정평가가 완료됐다. 약 25% 정도는 이미 수령했으며, 나머지는 재감정평가 후 수령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공사가 가능한 토지 사용권을 공단이 확보할 계획이다. 어업 피해는 감정평가로 확정된 금액이 있으며, 관련 예산은 확보되어 있다. 어업 피해 보상은 어업 사업자와 공단 간 약정을 체결해 피해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연차별 예산을 확보해 원만히 해결할 계획이다. -변동 사유가 발생하면 106개월 내에 공사를 완료하지 못할 수도 있나? ▲ 이번 사업은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찰자가 기본 설계를 한 뒤 시공까지 진행하는 구조다. 국토부는 입찰자가 지켜야 할 최소 공기 106개월을 제시했으며, 13개월은 성토와 계측을 통해 안정화 상태를 확인하는 기간으로 설정했다. 이 기간 내에서는 건설사가 공기를 단축할 가능성도 있다. 유찰을 감안해도 내년 하반기 우선분 착공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항 지연에 따른 부산시 반발에는 어떻게 대응할 예정인가? ▲ 부산시와는 조속한 사업 추진과 안전한 공항 건설, 업계 수용성 보장 등에서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다만 공기가 생각보다 많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공단과 부산시, 업체가 협력해 계측과 안정화 확인 등을 거쳐 후속 공정을 진행하며 공기를 단축할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공항 안전 범위 내에서 부산시 의견도 반영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없나? ▲ 현대건설이 당시 공기를 108개월 제안했지만 입찰 조건은 84개월이었다. 입찰 조건을 초과한 설계안은 국가계약법상 수용될 수 없다. 국가계약법을 위반한 측의 유책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소송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사 연장과 관련해 이전에는 안전에 주의를 덜 기울였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연약 지반 관련해서는 해석 프로그램을 사용해 기간을 산정하게 된다. 수치 모델 활용 시 (해당 기간에) 충분히 안정화된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그걸 토대로 발주했다. -시공사 변경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되나? ▲ 인프라 개항 일정 지연으로 정부가 피해를 봤다면 일정 부분 사실이다. 현대건설이 기본 설계한 금액을 피해봤다는 건 사업 포기 시 감수하고 제출한 걸로 이해가 된다. 일정 부분 다 피해자라 볼 수 있지만 재추진 계획을 통해 전체적인 편익을 산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전에는 2029년 개항 후 2030년 준공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개항과 준공을 동시 진행하나? ▲ 당초 계획은 29년 개항, 30년 준공이었다. 그러나 공항 운영자인 인천공항공사나 한국공항공사 등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객이 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이용자 불편과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항은 기반 시설과 모든 설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그랜드 오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업계에서도 안전사고 우려가 확인되면서, 개항과 준공을 맞추는 과정에서 공기가 늘어난 부분이 있다. 35년에는 준공과 개항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계획을 확정했으며, 해당 기간 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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