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설 10대 딜레마-3]“줄도산 막자” vs “시장 왜곡”…구조조정 딜레마

우리나라는 그동안 건설사들이 어떤 연유에서든 연쇄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줄도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재정을 투입했었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경제 전반이 불안정해지고, 주택 공급의 안정성이 훼손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단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나,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거나 시장 왜곡 현상을 일으키는 등 산업 생태계를 오히려 해친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부실 사업·기업 퇴출과 민간 주택 공급을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시공능력평가 50~200위권의 중견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1월에 신동아건설(58위)과 대저건설(103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국내 토목 면허 1호 기업인 삼부토건(71위)까지 법정관리 절차를 밟았다. 지난달 24일부터 열흘간 벽산엔지니어링을 포함한 6개 중견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정도이다. 이는 부동산 경기 침체, 공사 미수금 증가, 책임준공 부담, 미분양 급증 등으로 인해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이 막힌 결과로 분석된다. 이러자 정부가 또 다시 “줄도산을 막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직접 매입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다. 명분은 건설업은 지난해 기준 GDP에서 차지하는 건설투자 비중이 약 15%에 달할 정도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건설업은 대형 건설사부터 1·2차 협력사 등 하도급 업체들로 촘촘히 연결된 구조다. 이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상거래 채권 변제가 안 돼 하도급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어 국가 경제 전체에 주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이번에도 경기 침체와 악성(준공 후) 미분양 문제, 공사 미수금 해결을 위해 양도소득세 감면을 포함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단기적 문제 해결에 그칠 뿐, 산업 구조 개선을 위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비판도 높다. 특히, 최근의 악성 미분양 문제 등은 건설사들의 책임도 크다. 4~5년 전 분양 시장이 과열될 당시, 무리한 사업 확장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지원이 반복될 경우, 건설사들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게 돼 스스로 경영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시장 논리에 따라 부실 기업의 퇴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조조정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부실기업을 조기 정리해 재정이 건전한 기업들이 시장 우위에 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공사이행보증금과 하도급대금지급보증 등 다양한 건설공사 보호장치가 마련돼 과거보다 연쇄 부도의 위험이 감소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정부 관리 하에 정리할 사업장은 정리하고 유동성도 적절하게 공급하고 있어 연쇄부도의 위험성은 제한적이다"며 “부동산PF에 너무 많은 투자가 된 것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으로 보면 되는데, 어려운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파산할 곳은 파산하고, 자산을 매각해 연착륙하는 과정을 거쳐야 산업 전체가 안정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K-건설 10대 딜레마-2] 가계부채냐 내수 활성화냐?

“내수(부동산)를 살리려니 가계 부채가 무섭고, 가계 부채를 줄이려니 내수가 죽어난다". 한국 경제가 최근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1.5%까지 추락하는 등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만, 가장 큰 거시경제 정책 수단인 기준금리 인하 조차 쓸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수를 살리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수다. 특히 가계의 대출 부담을 줄여줘 건설 경기 부양에 효과적이다. 건설업은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으로, 침체가 지속되자 지난해 국내 GDP 성장률을 0.4%포인트(p) 끌어내렸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GDP 성장률 제고를 위해선 내수 활성화, 그 중에서도 금리 인하를 통한 건설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를 인식, 유동성 공급을 위해 지난해 10월과 11월에 이어 2월에 세 번째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가 2%대로 내려온 건 2020년 10월 이후 2년 4개월만이다. 문제는 마냥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한국 경제만 고려했을 때는 4월에도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나, 2월에는 한국은행이 경기 침체를 우선으로 두고 금리를 인하했던 것과 달리 4월에는 경기가 우선순위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만 금리가 낮을 경우 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도 있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 특징상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집중될 정도로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국가다. '투기 붐'이 다시 일어 가계부채가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도 있다. 금리 인하는 최근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된 이후 강남 3구 집값이 폭등한 것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 실제로 금리 인하 기대감에 지난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3조원 넘게 증가하며 대출 증가세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가계부채는 금융권 1668조6000억원, 정책대출 314조8000억원을 포함해 이미 1983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5%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편에 해당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증가할 경우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며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시장 둔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경기 활성화와 가계부채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환대출, 중금리·중저신용자 대출 등 필요 자금 공급은 지속하되,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7월부터 시행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3.8%) 이내로 설정하고 현재 90.5%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GDP 대비 80% 수준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규모와 리스크를 금융권이 실수요자 위주로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방침을 함께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민간에 맡기는 구조인 이상 은행들이 가계부채 증가 억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금리 인하 흐름에 맞춰 대출 증가를 조절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해서다. 또,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다소 '엇박자'로 추진하면서 효과가 어떻게 튈 지 몰라 시장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K-건설 10대 딜레마] 자산 80%가 ‘집’…“이대로면 한국인들의 노후는 없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는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유동성이 떨어지고 '거품'이 많아 부동산에 의존하는 노인 세대들의 노후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육성할 수가 없어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판을 갉아 먹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부동산 위주 자산 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8.6%에 달한다. 이는 미국(28.5%), 일본(37.0%) 등과 비교했을 때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고령화와 가계 자산 및 소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가계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되는 현상이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고령층이 은퇴 후에도 자산을 빠르게 소진하지 않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지속 보유하기 때문으로, 특히 소비를 줄이면서까지 부동산을 유지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추세이다. 이는 가계 자산이 금융자산보다 부동산에 더욱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자본시장연구원은 짚었다. 한국의 부동산 선호 현상은 특수한 경제·산업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시설 복구 및 산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빠른 도시화가 이뤄지며 부동산이 안정적인 자산 축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또 과거 금융 시스템이 잘 발달하지 못해 돈이 생기면 땅이나 농지를 매입하는 것 '관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농업 중심 국가여서 상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부동산이 장기적인 가치 상승이라는 장점 때문에 부를 축적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절벽 문제와 지방 소멸 등 앞으로 한국 경제에 닥칠 문제를 고려했을 때, 부동산에 쏠린 자산 구조가 경제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에 자산이 묶이면 내수 소비와 생산적 투자가 줄어든다. 국내 증시로 자금이 흘러들어가지 못한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경제 성장에 지장을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고령층이 금융자산 비중을 줄인데다 2030세대도 과거보다 적극적인 금융투자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2034년 이후 국내 자본시장 자산 보유 규모가 본격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30여 년 전 일본이 겪었던 상황과 유사하다. 1980년대 일본은 저금리, 수출 촉진 정책, 기술 혁신 등으로 경제 호황을 맞이해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렸다. 1990년 당시 일본 가계의 비금융 자산 비율은 63.7%에 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했다. 주택 가격이 급락하자 가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소비가 급격히 줄고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에 빠져 장기간 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국도 부동산 자산 비중문제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을 낮추고 금융투자상품, 퇴직연금 등 금융자산 보유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신산업 육성 등 경쟁력 강화를 통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되면서 산업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결국엔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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