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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입 설탕’ 관세 낮춰 물가 관리…“4개월내 시장 풀어야”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관세를 낮춘 설탕의 시장 방출 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4개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관세가 낮아진 수입물품을 창고에 쌓아두고, 가격이 오를 때까지 판매를 미루는 부당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할당관세 개선방안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할당관세란 물가를 낮추고, 원활한 수급을 위해 일정 수입 물량에 대해 관세를 낮추거나 면제하는 제도다. 중동 전쟁 이후 환율과 유가 상승이 고물가로 이어지자 정부는 설탕, 수입산 과일 등 할당관세 대상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일부 수입업체 사이에서 보세구역에 물량을 장기간 보관하며 관세 인하 혜택만 받는 부당 행위가 발생했다. 수입 신고를 미루고, 시일이 지나 높은 가격에 판매하다 보니 시장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8월부터 할당관세 적용 품목인 설탕의 방출 의무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냉동 고등어도 수입 수산물 유통이력 관리 대상에 추가한다. 기존 냉동 '갈치·명태·오징어'와 냉장 오징어에서 5개 품목으로 늘려 수입 후 도매·가공·소매까지 모든 단계의 유통 경로 관리를 강화한다. 설탕의 시중 방출 의무 기간을 단축하고, 수입 수산물의 유통 경로 추적도 강화해 신속 유통을 도모하는 동시에 낮아진 관세 혜택이 물가 인하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관세법 개정을 통해 수입 제품의 보세구역 반입 후 가산세 부과 기준도 현행 30일에서 2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공급이 시급한 경우에는 주무 부처 장관 요청에 따라 세관장이 화주 등에 대해 직접 반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할당관세 적용 제품이 시장에 보다 신속하게 유통돼 물가를 빠르게 안정화하고, 시장 공급 지연 등 부정행위 차단을 강화하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연내 관세법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올해 연말까지 농축산물의 할당관세 적용 품목에 대해 수입·유통·판매 전 과정을 상시 점검할 수 있는 통합 관리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이 같은 업무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내 30명 규모의 할당관세 관리팀을 신설하는 방안을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중동 전쟁 이후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판매 기피 등 부정행위가 없도록 석유제품 매점매석 금지를 오는 7월까지 2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AI가 배 몰고 사고 막는다…정부, 자율운항선박 데이터 구축

부산=에너지경제신문 조탁만 기자 정부가 배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운항선박'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인공지능(AI) 데이터 구축 사업에 본격 나섰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7일 서울 LW컨벤션센터에서 '자율운항선박 AI 데이터플랫폼 사업 출범식'을 열고 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자율운항선박은 AI가 선박 곳곳의 센서와 항해장비, 엔진 정보를 스스로 학습해 운항을 판단하는 차세대 선박이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충돌을 피하고, 가장 빠른 항로를 찾거나 고장 가능성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정부는 이런 기술의 핵심이 실제 바다에서 쌓이는 데이터에 있다고 보고, 올해부터 4년 동안 346억 원을 투입해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으기로 했다. 실제 운항 중인 선박에서 나오는 정보를 표준화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사업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맡아 추진한다. 이날 행사에는 해운사와 조선사, 기자재 업체, AI 기업, 연구기관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데이터 공유와 선박 제공, 장비 지원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사업 수행기관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항해와 조종, 엔진, 원격관제, 통신, 기상, 해상교통, 안전 분야 등에서 100여 종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정부는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대형 조선사뿐 아니라 중소 조선사도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형 데이터로 구축한다. 또 올해 추진 예정인 6000억 원 규모의 'AI 완전자율운항 기술개발 사업'과도 연계해 실증과 상용화를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과 산업 확대, 전문 인력 양성, 국제표준 대응 전략 등을 담은 기본계획도 발표한다.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앞으로 자율운항선박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기업들이 데이터를 함께 모아 세계 최고 수준의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혜정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해운과 조선 산업이 디지털 전환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이번 사업이 우리나라 자율운항선박 기술 경쟁력을 키우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조탁만 기자 hpeting@ekn.kr

[이슈&인사이트] 중금리 대출 확대와 국민경제의 선순환

최근 금융위원회는 중·저신용 계층을 위한 중금리 대출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번 대책은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의 협력을 기반으로 중금리 대출의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보증 연계 및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금융회사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체계의 고도화를 병행하여 기존의 정형화된 신용 평점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한 위험 기반 접근을 도입하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대출 확대 정책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내에서 '중간 신용계층'을 흡수하고 금융시장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전략적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중금리 대출 확대는 여러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가계의 이자 부담 완화를 통해 소비 여력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던 차주들이 중금리 대출로 전환할 경우 평균 차입 비용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고신용자 대비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중·저 신용 계층의 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거시경제적으로 이는 내수 진작 및 경기 안정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경로로 작용한다. 둘째,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의 실질적 진전이다. 기존에는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제도권 금융 접근이 제한되었던 계층이 합리적인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의 분배적 기능과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된다.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경제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구조적 효과를 지닌다. 셋째, 비제도권 금융 및 불법 사금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점도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중금리 대출 시장이 충분히 형성될 경우, 이는 고금리 대출과 저금리 대출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기능하며, 금융 취약계층이 비제도적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한다. 넷째, 금융산업의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금융회사는 보다 정교한 리스크 기반 가격결정(risk-based pricing)을 구현해야 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신용평가모형, 데이터 활용, 핀테크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미국 사례는 상기 중금리 대출 정책 방향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참고 사례이다. 미국에서는 커뮤니티 은행과 핀테크 기업이 협력하여 중금리 대출 시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특히, 렌딩과 같은 플랫폼 기반 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안 데이터(예: 소득 흐름, 소비 패턴,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가 활성화되었다. 이는 전통적 신용평가로 포착되지 않던 차주들의 상환 능력을 보다 정밀하게 반영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규제 측면에서도 과도한 금리 통제보다는 투명성 제고와 경쟁 촉진에 방점을 두었으며, 결국, 중금리 대출은 금융 포용을 확대하는 동시에 시장 기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국내의 금융 정책 설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론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중금리 대출의 금리 범위와 정책 기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 및 조달 비용이 변동하는 환경에서 경직된 금리 기준은 금융회사의 참여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금리 대출의 금리 구간을 일정한 고정값이 아니라, 기준금리, 신용스프레드, 기대손실률 등을 반영한 '연동형 밴드'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 + 일정 스프레드 범위'와 같은 방식으로 상·하한을 조정하면 시장금리 변화에 자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리스크 기반 가격결정이 가능해져 공급 유인이 유지된다. 둘째, 신용평가 인프라의 획기적 개선이 요구된다. 비금융 데이터 및 대안 정보의 활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데이터 결합 및 활용에 대한 규제 합리화를 통해 평가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통신 요금 납부, 공과금, 플랫폼 거래내역, 소득 흐름, 고용 형태, 심지어는 사업자 매출 데이터와 같은 비금융·대안정보를 체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데이터가 단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형태로 결합·분석되어 예측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데이터 결합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안전한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는 인프라(예: 데이터 전문기관, 가명정보 활용 체계)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금융당국의 중금리 대출 확대 정책은 단순한 서민금융 지원을 넘어 국민경제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다. 금융 접근성 개선은 소비 확대, 창업 및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향후 금융당국은 중금리 대출의 공급 확대 뿐 아니라,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 혁신, 규제 체계의 정교화, 시장 참여 유인 설계 등을 통해 중금리 대출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bienns@ekn.co.kr

4월 물가 2.6% 상승…“21개월 만에 최고·5월 더 오른다”

지난 달 석유류가 22% 가까이 뛰며 소비자물가가 2.6% 상승했다. 2024년 7월(2.6%)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 상승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국제유가 급등 영향이 본격화되며 5월 물가 상승폭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데이터처가 6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2.6% 올랐다. 중동 전쟁 영향이 시작된 3월(2.2%)과 비교해도 0.4%포인트(p) 올랐다. 이는 석유류 물가가 21.9%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0.84%p 끌어올린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석유류만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2022년 7월(35.2%) 이후 3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휘발유는 21.1%, 경유는 30.8% 각각 올랐다. 등유도 18.7% 상승해 2023년 2월(27.1%) 이후 최대폭 상승했다. 석유류 급등에 공업제품도 3.8% 오르며 2023년 2월(4.8%) 이후 3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국제항공료와 엔진오일 교체료 등 일부 생활밀착형 서비스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며 유가 영향이 소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3월 국제항공료는 전월(0.8%) 대비 큰 폭으로 오른 15.9%를 기록했다. 해외단체여행비(11.5%), 엔진오일교체료(11.6%) 등도 크게 올랐고, 자동차수리비(4.8%)도 상승했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재료를 사용하는 세탁료(8.9%)도 전월(6.7%)보다 올랐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항공료에 이어 5월부터 국내항공료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중동 전쟁 영향으로 벽지와 바닥재, 페인트 등 주택수선 재료도 물가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5월부터 물가 상방 압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3월 수입물가지수는 원화 약세와 유가 급등 영향으로 1년 전보다 16.1% 상승했다. 이는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이다. 생산자물가도 전월 대비 1.6% 상승해 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가 상승으로 정유와 화학, 운송 산업 전 분야에서 생산비, 물류비 등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통상 수입물가는 2~3개월, 생산자물가는 1~2개월 가량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5월 이후 공업제품은 물론 서비스 가격, 외식 물가 등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 전체 소비자물가를 강하게 끌어올릴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도 석유류 가격 파급 효과 등을 들어 5월에는 물가 상승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향후 물가 경로상에는 중동 상황 전개양상과 이에 따른 유가 흐름, 석유류 이외 품목으로의 파급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석유류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며 5월 물가 오름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을 정한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등이 물가 상승 압력을 일정 부분 완화했다고 봤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과 유류세 인하로 4월 물가상승률이 1.2%p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보고했다. 앞서 정부가 지난달 24일 시행한 4차 석유 최고가격제로 휘발유는 리터(ℓ)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율도 휘발유 15%, 경유 25%로 상향 조정됐다. 이 심의관은 “석유류 가격뿐만 아니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일부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석유류가 더 크게 올랐다면 개인서비스·국제항공료 등의 상승 폭이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물가 상승에 대비, 민생물가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석유류 가격을 최우선 대응하고, 민생 밀접 품목들도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중동전쟁 등 대외 변동성 확대에 따른 물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물가 안정 기조를 더욱 공고히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이슈&인사이트] 나프타 수급 위기는 도시유전 개발 절호의 기회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고 해서 일상용품의 기초가 되는 원료다. 그러나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 섬유, 페트병, 화장품 용기, 비닐봉지, 배달 용기와 같은 포장 용품, 스마트폰 케이스, 장난감,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재와 같은 생활용품, 타이어, 차량용 내외장재, 건축용 단열재 및 파이프 등의 플라스틱의 원료가 나프타인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근에 호르무즈 사태로 쓰레기봉투 투매가 나서야 나프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품귀가 났을 때, 산유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서 해결하려고만 하지 자국의 도시유전을 개발해서 조달할 생각은 못 한다. 최근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6회 심의 회의에서 '국가 전략기술 체계 고도화 방향'과 '제6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심의·의결했다. AI 전환 선도, 통상·안보 주도권, 미래 혁신 기반이라는 3대 임무 아래 10개 분야 55개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데 도시유전 개발 과제는 어느 곳에도 없다. 5년간 60조 원 이상을 투자할 동 계획은 인공지능, 첨단로봇·모빌리티, 차세대 보안·네트워크,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 바이오, 차세대 전지, 우주항공·해양, 혁신·미래 소재, 미래에너지·원자력, 양자가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2025년 세계 64개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비교한 '기후변화대응 지수'(CCPI)에서 한국이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인 63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꼴찌인 이유로, 불확실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 탈화석 연료보다는 오히려 신규 석유·가스 사업을 늘리려는 투자 의지 등을 꼽았다. 작금의 호르무즈 사태는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는 거대한 투자의 기회이자 도약의 기회이다. 그것이 바로 도시유전의 개발이다. 한국의 연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1,100만~1,200만 톤이다. 이 중 실제로 녹여서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은 18%에 불과하고, 35%가 에너지를 회수하는 소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45%는 에너지 회수 없이 단순히 태우거나 매립(12%)한다. 도시유전은 재활용을 제외한 폐플라스틱에서 나프타를 뽑아내는 공정이다. 한국 도시유전은 연간 천만 톤의 폐플라스틱에서 7백만 톤의 나프타가 채유 될 수 있다. 한국 나프타 수요의 15%다. 15%의 자급자족 의미는 폄하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도시유전 개발의 성공 사례로 ㈜도시유전이 개발한 RGO 기술을 소개한다. RGO 핵심 기술은 폐플라스틱을 고열만으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 세라믹 촉매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로 폐플라스틱의 탄소 고리를 끊는다. 전자파로 분자 결합구조를 깨트려 분자의 특정 운동을 유도하는 방식은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비슷하다. RGO 기술은 500°C 이상의 고온을 쓰는 고온 열분해 방식과 달리 250°C의 저온에서 작동한다. 저온이라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 배출이 없고 에너지소비량도 적다. 수율은 70% 정도다. 전자파로 분자 고리를 끊기 때문에, 생성된 기름의 품질이 균질하다. 라벨 제거, 세척 등 전처리가 필요 없어 공정 비용이 절감된다. 2025년 정읍에 상업 플랜트(웨이브 정읍)를 준공하여 연간 수천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하고 있다. 기술 원천국인 한국보다는 영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큰 관심을 보인다. ㈜도시유전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생산 원가가 수입가에 비해서 높으나, 여기에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까지 더해지면 환경성과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유류로 환원시키는 유화 환원 기술이 선진국에서 연구돼 산업현장에 적용됐으나 대부분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공정 기술도 중요하지만, 폐플라스틱의 수집, 운반 등 자치단체. 시민 등의 기업 외적 제약이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름에서 나온 것을 다시 기름으로“ 만드는 도시유전 기술은 국가 전략기술 중의 기술임을 지적한다. bienns@ekn.kr

[EE칼럼] 마찰의 실종

우리 사회에서 마찰(摩擦)은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간의 마찰은 불편한 요소이고 피곤한 요소이다. 기관 간의 마찰도 다르지 않다. 불편하고 피곤하다. 심지어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마찰이 없다면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밀고 당김이 있어야만 균형점이 찾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사업자와 규제자를 보자. 사업자는 어떻게 하면 값싸게 잘 만들지가 관심사이다. 반면에 규제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들지, 사회에 악영향을 기치지 않을지가 관심사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관심사는 상충된다. 여기서 규제자가 일방적으로 승리한다면 가장 안전한 사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기면 가장 경제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이 둘이 마찰을 일으킨 결과 균형점이 잡힌다면 그 지점은 최적의 안전성과 최적의 경제성을 가지는 작품이 될 것이다. 바로 이 균형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이 균형을, 당사자간 마찰을 거치지 않고, 정치인이 잡는다면 대부분 마찰의 결과로 나타날 균형점과는 다른 지점으로 귀결될 것이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는 사업자나 규제자에게 편안한 상태가 된다. 마찰의 결과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사업자나 규제자 모두에게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둘이 편안한 선택을 하는 경우이다. 규제자가 사업자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거나 사업자가 규제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 저항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악의적 편안함이다. 그러는 동안 국민과 국가는 희생되는 것이다. 마찰이 실종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여야가 크게 불균형하고 있다. 마찰이 있을 수 없다. 일방의 생각대로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되겠지만 국민에게는 그리 바람직한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청회를 가봐도 별 이견이 없다. 반대의견이 없다. 발표 듣고 나면 그만이다. 반대의견이 없다면 공청회를 개최할 이유가 없다. 공청회 없이 진행해도 동일한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성하는 여러 가지 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반대의견을 개진할 인사를 집어넣지 않는다. 마찰이 없다. 조용하고 일방적이고 만장일치로 진행된다. 그럴거면 위원회를 왜 만들었나? 다른 생각들을 들어보고 정책의 그늘이나 이행에 문제가 생길 것을 미리 살펴보려는 것 아닌가? 회의 결과가 만장일치라는 얘기는 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수기만 모였다는 것이 아닌가?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문제집을 풀어봤을 때 모든 문제를 다 맞췄다면 문제집을 푼 시간은 100% 시간낭비이다. 문제집을 푸는 이유는 공부한 것 가운데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틀리거나 애매한 문제가 나와야지 자신이 확실히 모르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다 맞았다는 것은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만장일치의 완벽한 회의록, 기안자에서 최종결재권자까지 한 번도 수정되지 않고 서명된 문서는 문서를 보지 않고 결재를 했거나 마지막에 문서를 다시 작성해서 그렇게 짜맞춘 것일 뿐이다.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수정을 했는지를 완벽히 은폐한 서류일 뿐이다. 위원구성의 면면을 보면 그 위원회가 어떤 결론으로 끌고갈 요량으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위원회라는 형식요건은 갖추었지만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내용적 당위성은 저버린 것이다. 담당자가 일을 쉽게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독재를 잘 도와줄 분들만 모신 것이다. 반대의견을 자주 내면 위원이라는 감투가 떨어진다. 그럼 전문가들은 간사의 눈치를 보고 대세를 보고 총기를 감춘다. 뻔히 문제점이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런데 그게 국민에겐 좋은 게 아니다. 이제는 위원회를 구성한 담당자가 왜 그런 성향의 위원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위원을 추천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서류를 꾸밀 수 있으니까 잡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요령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를 더 교활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마찰을 피할 방법을 찾아준다. bienns@ekn.kr

“고려아연 판정승” 고법, 영풍-MBK 경영협력계약 문서제출명령 ‘정당’

서울고등법원이 장형진 영풍 고문이 제기한 영풍-MBK 경영협력계약 문서제출명령 결정 불복에 대한 항고를 기각했다. 고법이 사실상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준 것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을 놓고 영풍-MBK 연합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재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 영풍, 장형진 고문 3자 간 체결한 경영협력계약과 후속 계약서 일체를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문서제출명령에 불복해 장형진 영풍 고문이 제기한 즉시항고를 최근 기각했다. 영풍-MBK 경영협력계약 문건은 케이젯정밀(KZ정밀)이 장 고문과 영풍 이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9300억 원대 주주대표소송에서 피고들의 배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MBK에 영풍이 소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맺으면서 영풍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의혹 규명도 이번 판결로 한층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KZ정밀 관계자는 “서울고법 제25-2민사부가 지난 4월 28일 장형진 영풍 고문이 서울중앙지법의 경영협력계약 문서제출명령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즉시항고를 기각했다"며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가 KZ정밀이 장 고문을 상대로 신청한 문서제출명령을 인용한데 이어, 이번 항고심 재판부 결정으로 1심 결정의 정당성이 재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영풍과 그 특수관계인이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대해 각종 의무를 부담함에 따라 영풍에 손해가 생기는지 여부 및 손해의 구체적인 정도와 범위 등은 본안소송에서 충실한 증거조사에 기초한 면밀한 심리를 통해 판단될 문제"라며 “이를 위해서라도 계약서를 증거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본 1심 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공개매수신고서 등을 통해 공시된 내용은 계약서의 주요사항을 요약한 것으로, 영풍과 피고 장형진이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부여한 콜옵션의 구체적인 행사조건과 행사 방법 등이 그것만으로 모두 밝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계약서 중 아직 공시되지 않은 부분의 내용에 따라 영풍의 손해액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정의했다. 이어 고법은 “계약서의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차별적인 행위가 될 소지가 있다"며 경영협력계약 문서 제출 요청이 주주로서 정당한 감시권한 행사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 같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따라 장형진 고문은 2024년 9월 12일 영풍, 장 고문, 한국기업투자홀딩스 간에 체결한 '경영협력에 관한 기본계약'과 후속 계약서 일체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해당 계약은 영풍과 MBK 측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면서 체결됐다. 공시 분석 결과 경영협력계약에는 영풍과 그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한국기업투자홀딩스의 동의 아래 행사하며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추천한 이사가 영풍이 추천한 이사보다 1인 더 많아야 한다는 내용 등이 올라와 있다. 특히 계약에 의거하면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영풍 측 주식에 대해 콜옵션, 우선매수권, 공동매각(드래그얼롱)요구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KZ정밀 관계자는 “1심에 이어 항고심 재판부도 영풍-MBK 경영협력계약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다"며 “영풍의 핵심 자산인 고려아연 주식이 어떠한 조건과 방식으로 MBK 측에 이전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 이러한 과정에서 법인 영풍과 일반 주주의 이익이 훼손됐는지 여부를 주주대표소송에서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김한성의 AI시대] AI 시대, 누가 판단을 설계하는가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2026년, 우리는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동료'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으로 업무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AI. 한국은 같은 시기 세계 최초로 AI 기본법을 시행했다. 기술과 규제가 동시에 움직이는 이 순간,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이제 AI는 검색, 금융, 행정, 정책 결정 전반을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운영체제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통제하는가 이다. 존 L. 오스틴은 말했다. “말하는 것은 곧 행동이다." 이제 프롬프트는 입력이 아니라 실행이다. 한 문장이 정책을 만들고, 판단을 내리고, 여론을 움직인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듯,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니체의 통찰은 더 근본적이다. 권력은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 AI가 판단하는 순간, 그 의미를 해석하는 권력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권력이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매일 그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속에서 다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은 지금도 우리의 일상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어떤 뉴스가 먼저 보이는가, 누가 대출을 승인받는가, 어떤 정책이 채택되는가, 어떤 콘텐츠가 확산되고 어떤 의견이 사라지는가. AI는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은 다시 사회의 방향을 만든다. 이때 질문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 판단 기준은 누가 설계했는가. 그 기준은 누구의 가치에 기반하는가. 잘못된 판단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판단에 개입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한다. 바로, 정책의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AI 정책은 주로 기술 경쟁력 확보와 위험 규제에 집중해 왔다. 물론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의 본질은 단순한 위험 관리가 아니라 판단 권력의 배분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AI 도입 속도와 기술 수용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판단 구조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다. 기업이 설계하고, 정부가 규제하며, 시민은 사용하는 구조. 이 구조에서는 의미를 결정하는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음 단계의 정책은 명확해야 한다. 핵심은 하나다. '판단력의 사회적 분산' 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설명 가능한 AI'에서 '참여 가능한 AI'로의 전환이다. 지금의 정책은 알고리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시민이 알고리즘의 판단에 질문하고,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필요할 경우 수정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공 AI 시스템에 대한 시민 감사권, 알고리즘 결정에 대한 공식 이의 제기 절차, 정책 AI에 대한 공개 피드백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 이는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둘째, 'AI 리터러시'에서 '판단력 교육'으로의 전환이다.현재 교육은 AI를 잘 사용하는 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중요한 것은 사용 능력이 아니라 AI의 결과를 해석하고,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능력, 즉 판단력이다. 국가 교육 시스템은 AI 출력 평가 기준의 표준화, 에이전트 기반 토론 수업, AI 편향 분석과 수정 실습 등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학생은 더 이상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AI 판단에 개입하는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 경제'에서 '의미 거버넌스'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정책은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참여형 데이터 신탁(Data Trust), AI 학습 방향에 대한 집단 의사결정, 그리고 '알고리즘 배심원제'와 같은 제도적 실험이 필요하다. 이는 데이터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판단 기준 자체를 사회가 공동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세 가지 전환은 하나로 수렴된다. AI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판단 과정에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다음 시대의 정책이다. 기술은 점점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시스템은 위험하다. 질문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술은 답을 만든다. 그러나 문명은 질문을 만든다. AI 시대의 정책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국가 경쟁력의 기준도 바뀐다.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더 공정하고 참여적인 판단 구조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AI를 잘 쓰는 나라를 넘어, AI의 의미를 함께 결정하는 나라. 그때 우리는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문명의 설계자가 될 것이다. bienns@ekn.kr

‘액상형 전자담배’에도 세금 매긴다…3만원 이상 오를 듯

앞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가격이 대폭 오를 전망이다. 법적인 '담배'로 분류되면서 개별소비세, 담배소비세 등 담배에 붙는 세금 격인 제세부담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제세부담금이 더해 지면 30㎖ 기준 액상형 전자담배 가격은 3만원대로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가격 상승에 따른 혼란과 제도 안착 등을 고려해 제세부담금을 2년간 50% 감면하기로 했다. 오는 2028년 4월 23일 감면 종료 이후에는 세금이 전액 적용돼 액상형 전자담배 가격은 더 오르게 된다. 4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개정 담배사업법 시행에 따라 담배의 정의가 기존 '연초의 잎'에서 연초 전반과 천연·합성 포함 니코틴까지 확대됐다.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한 액상형 전자담배도 담배사업법에 따라 관리가 엄격해진다.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제조 또는 수입 판매하려면 각각 재경부 장관, 시·도지사에게 허가 및 등록을 해야 한다. 또 제품 반출 시에는 개소세, 담배소비세 등 제세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법 개정 이전에는 연초와 궐련형 전자담배에만 제세부담금이 부과됐다. 합성 니코틴 기반의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세금이 없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액상형 전자담배에도 1㎖당 약 1823원의 제세부담금이 붙게 됐다. 세목별로 보면 지방세 중 담배소비세 628원, 지방교육세 276원 등이 부과된다. 개소세 370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525원, 폐기물부담금이 24원 등도 추가된다. 30㎖ 제품 기준으로 세금만 약 5만4000원 수준이다. 다만, 제도 안착을 위해 폐기물부담금을 제외한 주요 세목에 2년간 한시적으로 50% 감면이 적용된다. 따라서 30㎖ 기준 1만원대 액상형 전자담배 가격은 세금이 2만7000원 가량 붙어 판매가는 3만원 이상 오르게 된다. 감면이 종료되는 2년 이후에는 100% 세금이 부과된다. 기존 1만원대 액상형 전자담배 가격이 7만원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3만~4만원 제품은 10만원 이상으로 가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법 개정 후 9000억원 규모로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포함해 관리를 강화한 이유는 전자담배가 청소년에게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 2%대에서 2024년 4%대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또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이후 일반 담배로 이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고, 무인 자판기에서 구매할 수 있어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확산의 원인이 됐다.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고, 반드시 지정된 오프라인 점포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미성년자 대상 판매와 판촉 행위 등도 금지된다. 담뱃갑에는 경고 문구·그림과 니코틴 용액의 용량 등 성분 표시도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법 시행 전 제조·수입된 액상형 전자담배 재고 제품 관련 유해성분 검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재고 제품에 대한 온라인 판매, 장기 유통 제품 판매 제한 권고, 소비자 고지 등 관리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액상형 전자담배 기존 재고 제품에는 재세부담금이 없었다"며 “재세부담금에 따라 기존 제품과 가격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소비자들이 정확히 식별하도록 개봉 표지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삼성전자에 쏠린 성과급 압박, 혁신 동력 흔든다

평택 캠퍼스 앞, 긴장감이 공기를 가른다. 확성기 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노조의 구호는 더욱 단단해진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최고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을 밀어붙이고, 경영진은 물러서지 않는다. 협상은 멈췄고, 대치는 깊어졌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산업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된 바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진 논쟁은 지금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다. 엔비디아의 급성장은 곧바로 '누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젠슨 황은 AI 반도체 초호황 속에서 천문학적 보상과 주식 평가이익을 거머쥐며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그의 부는 혁신의 보상이었지만 동시에 불평등의 상징으로도 소비됐다. 여기서 논쟁은 단순한 시기심을 넘어 구조적 질문으로 확장됐다. 기업의 성공이 개인의 성과인가, 아니면 사회 인프라와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인가라는 문제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초고액 자산가 과세 논의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세금이 추진되며 기술기업 경영진이 직접 겨냥됐다. 젠슨 황은 세금을 회피하기보다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훨씬 냉정했다. 투자자들은 세금 증가가 결국 기업의 투자 여력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기업과 인재들이 세 부담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떠올랐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조차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론으로 돌아선 이유다. 분배를 강화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성장 기반을 흔드는 역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셈이다. 이제 시선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자. 삼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의 요구는 직관적으로는 설득력을 갖는다. 사상 최대 실적, 그에 걸맞은 보상. 그러나 문제는 요구의 방식이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하겠다는 발상은 기업 경영을 경직시키는 구조로 이어진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낙차가 극단적이다. 지금의 이익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이 변동성을 무시한 채 '현재의 몫'을 고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기업의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익의 성격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의 인프라 투자, 협력사의 기술 축적, 수많은 주주의 자본, 그리고 시장 전체의 수요가 얽혀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집단이 선점적으로 분배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파업은 권리이지만, 동시에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노조의 정당성마저 약화시킨다. 그렇다고 경영진의 태도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버티기'는 전략이 아니라 방어적 습관에 가깝다. 왜 지금 투자가 중요한지, 왜 성과급 확대에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업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면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수십조 원의 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오히려 오만으로 해석되기 쉽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재무적 여력이 아니라 설득의 언어다. 반도체 산업의 현실은 냉혹하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경쟁자들은 이미 다음 세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미세공정 경쟁, AI 반도체 주도권, 공급망 재편까지 어느 하나도 늦출 수 없다. 공장 하나에 수십조 원이 들어가고, 기술 격차는 한 번 벌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지금 쓸 것인가, 미래를 위해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이 지점에서 해법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과급은 단기 성과의 보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이익이 클수록 보상이 늘어나는 구조는 유지하되, 그 증가분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로 이어지도록 설계된다면 갈등의 성격은 달라진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덜 받는다'가 아니라 '함께 키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고, 기업 역시 투자 여력을 지킬 수 있다. 동시에 기업은 이익의 흐름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숫자를 숨기지 않고, 어디에 쓰이는지,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순간 분배 요구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여기에 정부가 강제적 개입 대신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든다면, 이익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환원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고 지속 가능하게 나눌 수 있느냐다. 지금의 파업과 버티기는 모두 절반의 해법이다. 노조는 명분을 소모하고 있고, 경영진은 신뢰를 잃고 있다. 반도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쟁자는 이미 다음 공정을 돌리고 있다. 선택은 분명하다. 더 크게 싸울 것인가, 아니면 더 크게 성장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시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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